꽃 피고 바람 불어


“살살 다루야 한데이.”

덕만은 두 이랑 건너에서 오디를 줍고 있는 아들과 며느리한테 이르고 또 이른 말을 습관처럼 내뱉고 만다. 아기의 속살처럼 여린 오디는 익을 대로 익어 손가락에 조금만 힘을 주어도 알맹이가 터져 검은 물기가 번져 나왔다. 장사꾼은 처음 오디가 나올 땐 좀 물러도, 좀 빨간 기색이 있는 덜 익은 오디도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잘도 받아 주더니 요즘 들어 한창 오디가 쏟아져 나오니 여간 까다롭지가 않았다. 오디 재배농민들 역시 장사꾼이 까다롭게 굴수록 여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디 나무 밑에 처 놓은 그물에 나무를 흔들어 떨어진 오디를 바구니에 담아 한꺼번에 스티로폼 상자에 담으면 일이 한결 수월하겠는데 한 번 만지고 두 번 만질수록 오디는 물러 물기가 스며 나왔고 장사꾼은 너무 무르다 하여 받아주질 않았다. 그러니 오디를 일일이 하나씩 주워 4kg짜리 스티로폼 상자에  곧장 담으니 일손이 더디기는 배는 더 더뎠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장사꾼이 가져가지 않으면 다른 판로가 없으니 상전도 그런 상전이 따로 없다.

“알아요. 맨날 하는 일 뭐 그거.”

예, 하면 좀 좋은가. 아들은 퉁명스럽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한다. 덕만은 하지만 에이, 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않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했다.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 오디를 줍는 일이 한창 기운 쓸 젊은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조금만 쪼그리고 있어도 무릎이 아프고 허리 등 근육이 당겨왔다. 다행히 며느리는 재미있어 했다. 태어나서 처음 딴다고 했다. 역시 남자에겐 여자가 있어야 한다. 며느리가 새로 들어오고부터 아들이 그나마 마음을 잡고 일을 한다. 복이 넝쿨째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다.

“아직 시간 많이 남았으니께 좀 쉬다 하거래이.”

덕만은 자리에 앉아 담배를 꺼내 물며 혼자 쉬기도 뭣 하여 덕담처럼 한마디 했다. 그럽시다. 아내가 먼저 앉았고,

“우린 괜찮아요. 아빠하고 엄마나 좀 쉬세요.”

며느리의 대답이 냉큼 달려왔다. 아빠? 흐흐흐. 들을수록 또 듣고 싶은 말이다. 시아버지한테 아빠가 뭐여. 아내는 궁시렁거렸지만 덕만은 듣기가 좋았다. 며느리는 시집을 오자마자 아빠 아빠하며 살갑게 굴었다. 하기야 아는 말이 몇 안 되는 줄은 알았지만 아버님보다야 얼마나 듣기 좋단 말인가. 흐흐흐.

“이 양반은 메눌 아이만 보면 사족을 못 쓴다니께.”

아내는 덕만을 보며 질투를 한다. 질투. 그렇다. 덕만의 눈엔 그렇게 느껴졌다. 하지만 질투 또한 싫지가 않았다. 한여름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어쩌다 들른 며느리가 있을 땐 남우세스럽게 덕만에게 달려들어 등목을 하자고 웃통을 벗겼다.

“야가 왜 이런다야.”

처음엔 덕만은 기겁을 했다.

“아빠. 덥잖아요. 제가 물 끼얹어드릴게요.”

며느리는 반 강제로 웃통을 벗기곤 수돗가에 엎드려뻗쳐를 시켰다. 웃통을 벗은 채 또다시 옷을 입기도 뭣 하여 옛날 군대갔을 때처럼 엎드려뻗쳐를 하니 시원한 물과 함께 보드라운 손길이 등과 옆구리를 살살 문질러 왔다.

“아가 대충 해뿌려라. 차갑다카이.”

겉으로야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속으로야 좋아서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등목 하는 거 너들 나라에서도 하든?”

필리핀에서도 이런 풍습이 있나 했더니 한국에 와서 배웠단다.

복덩이야. 덕만은 며느리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겉으로 말하면 복이 달아날 것 같았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아들이 며느리와 결혼한 게 꿈만 같았다. 구미 공장에 다니던 아들은 반도체 공장이라고 하던 직장이 경기도 파주로 이전해 가면서 강제로 명퇴를 당했다. 직장을 잃으니 부부 싸움이 곧잘 일어나고 기어코 며느리가 짐을 쌌다. 큰애가 다섯 살 작은애가 세 살 때였다. 아들보다 저 손자들을 어떻게 하나 자면서도 꿈에서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는데 일여 년 지날 무렵 아내가 지나가는 투로 요즘 국제결혼도 잘 하던데, 하였다. 국제결혼? 덕만은 오랫동안 그 말을 곱씹었다. 한 동네 사람이 읍내에 있는 결혼업체에 다니다 보니 이 근방엔 일찍 그쪽 방면으로 눈을 떠 며느리가 외국인  집이 여럿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저녁 마실이 잦다 했더니 천만 원을 내놓으라고 했고 덕만은 못 이기는 체 내놓았다. 불같은 성격을 가진 아들을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아들이 필리핀에 군말 없이 다녀왔다. 저도 아내 없이 애들 둘이나 키울러니 자신 없었던 모양이었다.  아무리 못 사는 외국에서 온다고 해도 자식이 둘이나 있는 홀아비한테 누가 시집오려나 했더니 신기하게도 필리핀에서 색시가 왔다. 처음엔 색시는 못 살겠다고 사기 결혼이라고 울고불고 지랄했다. 뜻도 모르는 영어로 말했지만 덕만은 그게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들었다. 자식이 없는 줄 알았단다. 속았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결혼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파하기가 쉬운가. 아내 또한 근 1년 동안 아들네 집에 가 살다시피 하더니 이내 저들끼리 정도 붙고 애도 낳으니 둘이 떨어질 줄 몰랐다. 그때는 아들도 마음을 잡아 구미 생활 청산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읍내에 방을 장만한 후 본격적으로 논농사를 지었다. 200여 마지기. 3만 평. 소리만 들어도 억, 하고 뒤로 나자빠질 지경이었다. 평생 농사를 지었지만 아직까지 그렇게 많은 논을 소유한 사람을 듣도 보지도 못 했다. 물론 남의 땅이었지만 트랙터며 이앙기 등 모든 논기계을 장만하여 농사를 지으니 옛날 다섯 마지기 논일거리도 되지 않았다.

“내년부터는 짓지 말아요.”

아들은 오디가 든 스티로폼 상자를 한쪽으로 쌓으면 말했다. 덕만은 오디 상자를 세었다. 22개. 얼추 잡아도 44만원이다.

“왜. 내가 할 테니 어여 집에 들어가.”

덕만은 이 녀석이 왜 또 이러나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왜 이딴 걸 짓는다고 사람을 오라 가라 해요.”

“그럼 오디 따러 오지 말든가.”

덕만은 녀석의 아픈 점을 찔러 보았다. 아들은 10여 일 전 오디 따러 오라니까 대뜸 그 돈도 안 되는 오디를 뭐 할라고 심어가꼬, 했다. 그럼 오기 싫으면 오지 말든지 했더니 트럭에 며느리를 태우고 와 매일 오디를 땄다. 아마도 며느리가 또 잘 구슬린 것 같았다.

덕만은 집 옆에 딸린 500여 평에 2년 전 오디 나무 400주를 심었다. 다시는 아들이 그 땅에 가타부타 말하지 못하기 위한 것도 그랬고 일손이 적게 들면서 수익이 괜찮은 게 오디였기 때문이었다. 그 땅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땅이었다. 덕만도 그 땅에서 농사를 배웠다. 그런 땅에 아들은 팔고 돈을 은행에 집어넣으면 이자도 안 되는 농사를 짓는다고 퉁을 주었다. 땅을 팔아서 읍내에 작은 가게라도 내고 싶다고 타령을 부르더니 그 땅만 보면 시비를 걸었다. 땅이 동네에 있으니 집터로 값이 제법 나갔다. 요즘 전원주택이다 하여 읍내 사람들이 변두리에 있는 땅을 많이 구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덕만은 그 땅만은 팔 수가 없었다. 땅 판 사람치곤 잘 된 사람을 보지 못 했다. 어디 땅만한 게 있는가.   

“아버지는 이 오디 농사가 인건비는 고사하고 이자라도 나오는 줄 아시는가배.”

“농사를 어디 이윤타산만 보고 짓는다더냐.”

“이윤을 따지야지요. 이젠 농사도 기업처럼 경영해야 한다고요.”

“그냥 짓는 거여. 이윤 쫒다가 땅 팔고 사업하다 망한 사람 한 둘이 아니다.”

“망한 사람보다 서울에서 집 사 놔서 수십 억 번 사람은 아버지는 듣도 보도 못 했소.”

“아, 그만 하소.”

아내가 나섰다. 이러다 또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뭔 불상사라도 일어나지 싶었던 모양이었다.

덕만은 오디 상자를 두 개씩 들고 마을회관 앞으로 날랐다. 장사꾼이 오디를 가지러 오는 곳이 마을회관 앞이었다. 오디 농사를 처음 시작한 곳이 이 동네라 나이 든 사람들이 오디나무를 많이 심었다. 그러니 작목반을 구성했을 때 어디에 오디를 모아두고 장사꾼을 오게 할 것인가 의견이 분분할 때 마을 이장이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 동네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사실 수만 많았지 양으로 치면 얼마 안 되었다.)오디 농사를 짓고 또한 나이가 많아 차로 다른 지역으로 운반할 수 없으니 이 동네로 오디를 모두 가지고 와야 한다, 고 했다. 다른 동네서 짓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이라 차도 있고 제법 오디 짓는 평수도 넓었다. 차를 가진 젊은이들이 양보를 해서 이 동네 마을회관 앞으로 결정 되었다.

덕만은 오디를 다 옮긴 후 수돗가에 가서 오디 물이 든 손을 씻고 세수를 했다.

“저도 갈게요.”

며느리가 뒤를 따라나섰다.

“집에 안 가?”

“그이가 잠깐 이장 좀 만나고  온대요. 내년 영농자금 대출 좀 알아본다고.”

“그 이자 싸다고 영농자금 탐내다가 큰코 다친다. 그게 다 빚이여. 빚.”

“저도 알아여. 아빠.”

며느리는 덕만과 팔짱을 끼었다.

“아그들 밥은?”

“학원 갔다가 오니까 일곱 시 넘어서 올 거예요.”

며느리는 이제 제법 한국말을 또렷이 했다. 큰손자가 중2. 작은손자가 초등학교 6학년이다. 이 며느리가 낳은 막내 손자가 초등3학년이다. 며느리가 들어온 지 벌써 10여 년이 다 되어 간다. 이젠 시골 아낙이 다 된 것 같다. 며느리는 다른 시골 아낙처럼 챙이 큰 모자에 수건을 두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더위를 잘 타지 않았고 피부가 그을릴까봐 걱정도 하지 않았다. 챙을 내리면 꼭 외계인처럼 보이는 햇빛 차단용 모자만 썼다.

“안즉 나이가 몟 살인데 학원 보내여. 생고생 시키지 말고 맘껏 뛰놀게 해여."

덕만은 나잇살 훈시를 했다.

“요샌 걸음마만 배우면 학원 다 보내는 걸요. 그래도 우린 영어 학원은 안 보내잖아요.”

며느리는 또한 애들이 학원에 있다가 와야지 낮에 일을 거들 수 있다는 말을 보탰다. 며느리는 아들 뒤를 따라다니며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아 했다. 덕만이 생각하기에도 며느리는 똑똑했다. 필리핀에서 대학물까지 먹었다는데 오히려 덕만은 그것이 걸렸다. 마누라는 자고로 서방보다 못 해야 집안이 편하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아내도 처음엔 그것이 걸린다고 했지만 애들이 크자 애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데 덕만이 보기에도 영락없는 ‘선생님'이다. 올해 안으로 어떻게 하든 친정에 보내줘야 할낀데. 덕만은 속으로 단단히 마음먹고 있었다.

마을회관 앞 공터에는 5톤 트럭에 하얀 스티로폼 상자가 사람 키 높이보다 더 높게 반 이상이 실려 있고 사람들은 무리지어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 이런 걸 가져오면 어떡해요. 내 참.”

5톤 트럭 짐칸 위에서 장사꾼이 큰소리로 말했다. 트럭 뒤에는 최영감네 할멈이 어쩔 줄 모르며 장사꾼에게 사정을 했다. 몇 년 전에 최영감이 암으로 죽고 난 뒤 혼자 산다.

“담엔 잘 선별해 가꼬 올끼니께 이번만 봐줘요.”

할멈은 애절하게 말했고

“이렇게 무른 것은 사람들이 안 사간다니까요. 저 쪽으로 치워요.”

장사꾼은 트럭 위에서 호령했다. 덕만이 보기에 아직 마흔 살도 되지 않은 젊은이이다. 객지에 사는 자식들도 넉넉지 않아 할멈이 오디를 팔고 옥수수나 채소 같은 걸 시장에 팔아 겨우 살아가는 형편이다.

한쪽에선 사람들이 모여 성토를 하고 있다. 스티로폼 상자가 모자란다고 했다. 스티로폼상자는 장사꾼이 10여 일 전 일주일치 분량이라며 4000여 개를 마을회관 앞에 갖다 놓은 것인데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서로 많이 가져가 스치로폼 상자가 턱없이 부족했다. 많이 따지 않은 사람도 공짜니까 넉넉하게 12개짜리 한 뭉치를 몇 개씩 더 가져가 스티로폼 상자가 부족하다고 다들 난리였다.    

“그런 사람은 작목반에서 제명해야 돼.”

“전화를 하면 받지도 안 해여.”

몇몇이 화가 나서 그런 말을 했다.

“알았어요. 다음 회의 때 제명할게요.”

작목반 회장이 모여든 사람에게 말하곤 장사꾼에게 다가갔다. 한참이나 뭔가를 설명하는가 싶더니 모여든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그 사람 오디는 장사꾼도 안 받기로 했어요.”

“잘 했어. 어려울수록 잘 협조를 해야지.”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아직 오디를 따지 않는 품종을 가진 사람이 스티로폼 상자 300개를 가져갔다고 했다. 그러니 스티로폼이 모자라 회장이 왜 상자를 그렇게 많이 가져갔느냐. 당신은 지금 따지 않고 나중에 따지 않느냐. 그러니 우선 상자가 모자라는 사람에게 주고 나중에 상자가 더 도착하면 그때 가져가라, 했더니 처음엔 바쁘다고 갖다 줄 시간이 없다고 했다가 아예 이젠 전화를 받지도 않는다고 했다.

“저 사람이 스티로폼 상자를 많이 갖다 주면 되잖아요.”

며느리가 안타깝다는 듯이 장사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도 살 만큼만 상자를 주문했겠지만 어쨌든 상자 때문에 서로 맘 상하는 건 경우에 맞지 않다. 하지만 서로 꼭 그것 때문이겠냐.”

덕만은 사람들 표정에 서려 있는 악의를 느끼며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 사람들이 진작에 느끼고 있는 것은 스티로폼 상자에 있지 않았다. 상자야 모자라서 아우성을 쳤지만 몇 개씩이라도 장사꾼이 매일 가져와 그러저럭 아쉬운 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상자를 많이 가져간 사람을 성토하면서도 장사꾼과 최씨네 할멈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상황을 곁눈길로 관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 오디가 출하할 때 한 상자에 25,000원, 1kg에 6,250원 하던 오디가 어제부터  한 상자에 20,000원으로 내렸다. 그러니까 1kg에 5,000원으로 수매했다. 오디가 많이 나올수록 가격이 내려가는 데에야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가격이 너무 많이 내렸다고 뒤에서 수군거렸다. 거기다 조금이라도 무르거나 붉은 기가 도는 덜 익은 오디도 엄격하게 재단하여 받지 않았다. 그러니 오디를 팔지 못 하고 도로 가져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결국 최씨네 할멈은 꾸부정한 허리로 오디 상자를 한 쪽으로 치우고 있었다. 누가 봐도 힘겹게 옮기고 있는데도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덕만의 팔을 잡고 있던 며느리가 트럭으로 다가가 상자 두 개를 들더니 마을회관 옆 수돗가에 있는 그늘로 옮겼다. 나머지 두 개도 옮겨놓더니 두 손을 탁탁 털었다. 할멈은 고맙다는 말도 없이 어기적어기적 상자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저기 봐요.”

“아. 나도 눈 있어.”

“정말 보고만 있을 거요?”

모여든 사람들은 회장을 바라보았다.

“너무 무르거나 덜 익은 오디는 저 사람도 팔아먹지 못 한다는데 어떡하겠어요.”

회장도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이건 너무 하잖아. 며칠 전까진 다 받아주더니 말이야.”

“양이 많이 나오니까 자기도 최상품만 가져가겠다는 것이지.”

“젊은 사람이 너무 겁대가리가 없어.”

말은 말을 이은 채 무수히 쏟아졌다. 하지만 트럭 위에서 호령하는 장사꾼에게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마을회관이 있는 동네에서 오디 농사를 짓는 노인네들은 그나마 장사꾼과 흥정을 잘 했다.

“내일부텀 잘 해 올 테니까 잘 봐줘바여.”

“빨갛잖아요. 이러면 안 돼요.”

“담부터 잘 선별 할 팅께”

넉살좋은 노인과 장사꾼이 입씨름하는 것을 사람들은 지켜보았다.

“그럼 사천오백에 합시다.”

1kg에 500원 깎겠다는 의사였다.

“그래여.”

그렇게 거래는 이루어졌다. 그러나 가끔 젊은 사람들과는 마찰이 일었다. 노인네들은 오디가 적고 젊은이들은 오디가 많기도 했다. kg당 몇 백 원이 100kg가 넘으면 총 금액은 많이 달라졌다. 매일 따는 오디라 가격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저 후레자식 같은 놈.”

젊은 누군가가 말을 했고.

“듣겠네 이 사람아.”

나이 많은 사람이 뒤를 받았다.

“순 도둑놈이랑께.”

“날강도여.”

저마다 사람들은 수군거렸고,

“그렇다고 저 사람이 안 사가면 어쩌겠나.”

누군가의 말에 사람들은 침묵했다. 사람들은 발밑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담배를 꺼내 물었고 누구는 가래침을 뱉었다.

“우리도 걱정인데요.”

며느리가 덕만에게 다가오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좀 무른 편이제? 그 정도는 괜찮을 끼다.”

덕만은 속으론 걱정이 되었지만 겉으론 태연한 척 했다. 어제도 좀 무르다고 장사꾼에게 핀잔을 들었지만 잘 구슬러 팔지 않았던가.

“원래 이래요?”

“원래 그래.”

덕만은 쪼그리고 앉으며 말을 받았다.

“정말 너무 하네요.”

“그려, 너무 하지.”

옆에 앉은 며느리의 말에 덕만은 추렴을 넣었다.

“그만 집에 가 봐여.”

“파는 거 보고요. 뒤빠꾸하면 어쩌려구요.”

“너들 있다고 뒤빠꾸가 뒤빠꾸 안 할 꺼 같으냐?”

덕만은 오히려 며느리가 있는 게 신경 쓰였다.

“가져가서 소나 먹여야겠네.”

산모퉁이에 사는 차영감이 덕만의 옆으로 오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왜 잘 익었는데.”

멀리서 보기엔 알맞게 거무스름했다.

“덜 익었다야. 내 참. 이 정도면 최상품이지.”

잘 익은 오디는 장사꾼에게 팔고 좀 덜 익거나 무른 건 소가 있는 집에서 소에게 주었다.

“소가 횡재하겠구만. 그 몸에 좋다는 오디를 소가 다 먹으니.”

“소나마 잘 키우면 어디 더 나을 수도 있어.”

덕만은 차영감에게 위로한답시고 말을 했지만 영 개운치가 않았다. 사람 먹는 것을 짐승에게 주다니.

“작목반에서 뭔 대책을 안 세우는가?”

“오늘 뭔 얘기를 한다는구만.”

차영감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담뱃값은 올라가고.”

“이 참에 끊어. 오디 따서 담뱃값도 못하려고.”

“아무래도 그래야겠네.”

담배연기가 차영감의 머리 위로 솟아올랐다.

“그래도 오디만한 효자가 없는데 말이야.”

“그려. 오디 따고 나믄 전지하고 거름 주믄 올해 일은 끝이 아닌가.”

다른 과수에 비해 오디농사가 일손이 많이 안 가 노인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초겨울부터 전지하고 거름하고 약 치고 봉지 씌우고 1년 내내 일을 해야 하는 다른 과수에 비하면 오디 딸 때 15일 정도 바쁜 거 외에는 거의 일이 없었다. 오디 따는 시기도 모심기가 끝나고 난 뒤인 6월 초부터다. 오디 나무 가꾸는 거야 노인들이 선수였다. 예전에 뽕나무를 많이 키워봤기 때문이다. 덕만도 아들이 팔라고 통 사정하는 집 옆 밭을 안 팔고 오디 나무를 심은 것도 이 정도면 죽을 때까지 가용으로는 요긴하게 쓰겠다 싶어서이다. 읍내에서 가까운 스무 마지기는 이미 아들에게 넘겨준 지는 오래되었다. 새로 며느리가 들어오고 아들이 마음을 잡자 단단히 단도리를 할 겸 넘겨주었던 것이다. 이제 딴 생각 품지 말고 열심히 농사를 지어 일가를 잘 이끌어 가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한동안 열심히 농사짓던 아들은 자꾸 땅 팔 생각을 한다. 오이 하우스를 크게 지을까 곶감 하우스를 지을까 궁리하는 듯 한데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게 없는 모양이었다.

“애들도 크고 학원비도 많이 드는데.”

“곧 있으면 애들 대학 갈 낀데.”

곧잘 사투리를 쓰는 며느리도 이젠 한국 사람이 다 되어 교육열이 높았다. 이번 겨울 방학 때는 중2짜리 큰애를 필리핀 친정에 있게 할 작정이란다.

“지금 쌀값이 얼만지 알아요?”

덕만이 웬만하면 그대로 논농사를 짓지, 하면 아들은 음성을 높였다. 요 몇 년 사이 쌀값이 폭락했다는 것이다. 농산물 가격이야 오를 때도 있고 내릴 때도 있다고 했더니 아들은 전망이 없다고 했다. 언제 농사꾼이 전망 보고 농살 지었냐. 오를 때가 되면 오르겠지, 했더니.

“쌀이 시방 정부가 가지고 있는 것만 해도 얼만지 알아요? 얼마나 남아돌면 가축 사료로 쓸 계획이라고 해요.”

저런 처죽일놈들. 쌀을. 말이 목구멍으로 올라왔다. 아무리 그래도 쌀을 가축 사료로? 이 정도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아들을 설득시키지 못 할 것 같았다.

“북한에 보내야 해요. 저 쪽 사람들 굶어 죽는다잖아요.”

며느리가 전망 있게 얘기했다.

“인도적 차원에서라도 지원을 했어야 했는데.”

아들이 나름대로 원인을 내놓았다. 아들이 원인 분석했고 며느리가 전망을 내놓았으니 추렴만 넣어주면 될 걸,

“그 쌀을 군량미로 쓰면 어쩐다야. 핵무기를 만들면.”

덕만은 기어코 하지 말아야 될 말을 했다.

“그러니까 안 돼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인도적으로다 굶는 사람은 도와줘야제.”

집을 나서는 아들 내외에게 담배를 물며 겨우 그 말을 했을 뿐이었다.

이제 몇 년 안에 물려준 스무 마지기 논을 팔고 무슨 수작을 꾸밀 것 같은데 어떻게 막을 도리가 없다는 게 덕만으로서는 답답했다. 쌀이 남아돌아 사료로 쓴다는데 쌀농사를 계속 지으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몇 억이 드는 곶감 농장이나 하우스 시설을 하라고 하기엔 돈이 없었고 대출을 내어 짓는다 해도 매년 대출 이자 갚고 나면 남는 것도 크게 없을 듯 싶었다. 그러다 망하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오이 하우스나 곶감 농장을 많은 빚을 내어 하다가 망한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있으면 망한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

“그래서 이대로 하잖 말이요?”

덕만은 생각에 잠겼다가 큰소리에 깜짝 놀랐다.

장사꾼에게 오디를 파는 사람들은 주로 노인네들이었고 젊은이들과 오디를 다 판 사람들이 살구나무 그늘 아래 모여 난상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렇잖으면 어쩌잔 말이여?”

두 사람 다 답답하다는 듯 음성을 높였다.

“내 말은 이참에 본때를 보여주잔 말이여.”

“어떻게? 모두들 팔지 말자는 말이여?”

“그래야지요. 모두 다 팔지 말아 봐요. 장사꾼 저도 뭐로 장사할거여?”

“그 뒤론?”

“가격이랑 까다롭게 선별하는 거 흥정을 해야지요.”

“맞아요. 그렇게라도 해야지”

“맞아.”

몇몇 사람들이 동의를 했다. 하지만 반대편도 지지 않았다.

“그럼 저 사람이 오디를 안사겠다면?”

“안 살 리가 있어요? 여기만 많이 나오는데.”

“그럴 수도 있잖아. 만약 안 사믄? 이 많은 모든 오디 다 버리자고?”

사람들은 두 패로 갈라졌다. 오디 농사를 많이 짓는 사람과 나이 많은 사람들은 이대로 참고 그냥 팔자는 쪽이고 젊은 사람들과 오디가 적은 사람들은 하루 이틀 오디를 못 파는 한이 있더라도 장사꾼과 협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가격이 좀 내려간다고 해도 다른 작물에 비해 일손이 적게 들어 괜찮은 편이었다. 오디 농사를 몇 천 평 짓는 사람들은 올해는 그냥 넘어가고 내년에 어떻게 해 보자고 했다.

“그러니까 애초에 한 사람에게만 팔믄 안 된다고 얼매나 그랬어? 그런데 회장단에선 내 말을 무시하더니만.”

이젠 작목반의 집행부에게로 화살이 돌아갔다.

“판로를 여러 군데로 해 놔야지 장사꾼도 지 멋대로 못 한다카께.”

년 초에 작목반 총회를 하면서 지금의 장사꾼에게 팔겠다고 한 게 화근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했지만 회장단에서 묵살했다. 이제 와서 장사꾼을 찾지도 못 할 뿐더러 찾는다 해도 이미 다른 지역에서 사고 있어 가격 흥정에 약점이 있었다.

덕만은 사람들 틈에 끼여 있는 아들을 보았다. 이 녀석이 여기는 왜 왔냐. 볼일 다 봤으면 집으로 곧장 가든지. 여긴 왜 왔냐. 그는 불만스럽게 아들을 노려보았다. 아들은 작목반원이 아니라 그런지 묵묵히 있었다. 다행이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이럴 때 다수의 결정에 따라가는 게 상책이었다. 장사꾼도 눈치를 챘는지 이미 많이 너그러워져 있었다. 가재 눈을 뜨고 회의를 하는 사람들을 곁눈질하며 오디를 사던 장사꾼은 말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이젠 됐다 고마 해라. 덕만은 이쯤에서 회의를 끝내기를 바랐다. 장사꾼도 이 정도면 이쪽의 뜻을 이해했으리라 믿었다. 최상품으로만 가져가고 싶은 게 장사꾼의 심정 아니겠는가. 그 또한 나무랄 일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은 돌아가 오디가 실린 자신의 차 꽁무니를 장사꾼 차에 붙이고 오디를 팔았고 아직 팔지 않은 사람들도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몇은 집으로 돌아갔다. 살구나무 아래 그늘엔 회장단을 비롯해 몇몇의 젊은이들만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덕만이 오디 상자를 실을 차례가 오자 아들이 먼저 알고 다가왔다.

“왜 집으로 가지.”

“이것만 실어주고요.”

“아직 이 팔다리 쓸만 해.”

“나중에 약값이 더 들어요.”

“일 안해도 약은 먹어야 혀.”

“저리로 가소.”

아들은 오디 상자를 들고 차로 날랐다. 덕만은 뒤로 나앉았다. 막상 뒤로 나 앉고 보니 그리 싫지는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신이 하던 일이 하나둘 아들에게 넘어가고 있었다. 그려. 이제 니들의 세상이여. 덕만은 길 옆 담벼락 그늘에 앉았다.

며느리가 아들이 오디 상자를 장사꾼 트럭으로 옮기고 있는 것을 도우러 갔다 왔다. 트럭에는 상자가 거의 다 실어갔다. 아직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몇 되지 않았다.

“결론 난 게 뭐 있다야?”

덕만은 며느리에게 물었다. 뭘 바라고 물은 것은 아니었다.

“결론난 게 뭐 있겠어요.”

뻔한 대답이 돌아왔다.

“어제도 그렇고 아레께도 그렇고 맨날 회의해도 뾰쪽한 수가 없다.”

“오디 많은 사람들이 좀 나서야 하는데…….”

“그 사람들은 하루 이틀만 빠져도 손해가 막심하다.”

“그래도 장사꾼이 그런 사람을 제일 무서워하는데요.”

며느리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덕만은 그런 며느리가 맘에 들면서도 불안했다. 농사꾼은 너무 많이 생각해도 안 되었다. 아들과 며느리는 생각이 너무 많았다.

“쟈가 왜 저런다야?”

덕만은 눈을 훼둥그레 떴다. 며느리와 얘기하며 눈길은 아들에게 두고 있었는데 아들은 장사꾼과 싸우고 있었다. 처음 몇 상자는 잘 싣더니 장사꾼이 몇 개를 옆으로 밀쳐놓았다. 바닥에 있는 상자는 몇 되지 않았다. 밀쳐놓은 게 어림잡아도 다섯 상자는 되는 듯 했다. 아들은 장사꾼에게 따지는 듯 했다.

“저걸 어째.”

며느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좀 가야겠다.”

덕만은 아들보다는 자신이 직접 가서 얘기하는 게 나을 듯 했다. 어제도 두 상자를 얘기 잘 하여 kg당 500원 적은 가격으로 팔았다.

“좀 기다려 봐요.”

일어서는 덕만의 팔을 며느리가 잡았다. 아녀 가서 내가 얘기해야 혀, 하고 덕만이 일어서려는 찰나, 아들은 오디 상자를 내동댕이쳤다.

어.

주위 사람들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니 저 놈이.”

덕만은 어이가 없어 엉거주춤한 자세로 아들을 노려보았다. 그때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딴 건데 이게 무르면.”

아들은 장사꾼을 노려보았다.

“이것 봐요. 무르잖아요.”

“이 정도는 다 물려. 그 위에 있는 거 내려 봐. 한번 비교해 보란 말이야.”

“함 보세요.”

장사꾼도 트럭 위에서 지지 않고 맞고함 쳤다.

“씨발, 오디 안 팔아.”

아들은 장사꾼이 밀쳐놓았던 상자 또 하나를 내동댕이쳤다. 사람들이 트럭 주위에 모여들었다.

“저, 저런 놈이.”

덕만은 팔을 부르르 떨었다. 곧장 아들에게 달려들 기세인데 며느리가 덕만의 팔을 잡았다.

“잠깐만요.”

“아이고 저러다 오디 다 박살내겠다. 저 놈이 미쳤지.”

“잠깐만 기다려 봐요.”

며느리는 덕만의 허리를 잡았다.

“네가 가서 좀 말리든지.”

며느리도 뚜렷한 판단이 서지 않는지 덕만의 허리춤만 잡고 어쩔 줄 몰라 한다.

“괜찮은데 뭘.”

“이 정도도 안 받어?”

“너무 하구만.”

“어, 씨발.”

모여든 사람들이 한 마디씩 했고 누구는 욕을 내뱉었다.

“내꺼 빨리 내려. 씨발.”

아들은 장사꾼을 보며 악을 썼고 장사꾼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이 정도도 안 받으면 어떡해요?”

회장이 나섰다.

“이 정도면 양호하지 않나요?”

총무가 거들었다.

“왜 안 받는 줄 알아?”

아들은 잡혀 있는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

“트럭을 봐. 다 찼잖아. 그러니까 이젠 아주 최상품만 가져가겠다는 심보 아냐.”

아들은 트럭의 짐칸을 가리켰다. 짐칸에는 빈자리가 없고 뒷자리가 조금 낮게 쌓여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여기 남은 오디 중에 좋은 것만 가져갈라고. 우리 농사꾼들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고. 에이…….”

아들은 또다시 밀쳐놓았던 오디 상자를 집어 들었고 사람들은 팔을 잡았다.

“아조 박살을 내라, 내.”

덕만은 어찌할 줄 몰라 며느리에게 허리춤을 잡힌 채 악을 썼다. 아들은 마을회관 뒤로 사람들에게 끌려갔다.

“정말 그러요?

회장이 나섰다. 모여든 사람들은 일제히 장사꾼을 바라보았다.

“그게 아니고.……”

장사꾼은 난감하다는 듯 아직 팔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오디를 훑어보았다.

“그게 아니믄.”

“그럼 안 되지.”

“오디 많이 나왔다꼬 또 값 내릴라고 그러는 거 아니여?”

사람들은 중구난방으로 말을 했다. 덕만은 며느리의 팔을 뿌리치고 트럭 가까이 다가왔다. 며느리가 옆에 섰다.

“그거 내려놓으라고.”

덕만은 턱으로 트럭 위에 올려져 있는 팔린 오디를 가리켰다.

“예?”

장사꾼은 덕만을 바라보았고

“안 판다니께. 내 꺼 다 내려놔!”

덕만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빠!”

며느리가 울상을 지었다.

그때 회장이 장사꾼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무어라 중얼거렸다. 장사꾼은 한참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다가

“그럼 다 살게요. 대신 담부턴 좀 좋은 것만 잘 선별해서 가져오셔요.”

“이만하면 최상품이여.”

덕만은 호기롭게 말했다. 그럼. 최상품 중에서도 최상품이지. 주위 사람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자 실어요.”

회장이 덕만을 밀어내고 남은 오디를 다 실었다. 장사꾼이 밀쳐놓은 상자까지 트럭에 쌓았다. 장사꾼이 돈주머니에서 돈을 내어 세었다.

“사십만 원이요.”

덕만은 돈을 받았다.

“버린 두 상자 값은 안 줘?”

“맞아 줘야지.”

사람들은 장사꾼에게 독촉했다.

“이 사람들아 뭔 소리여. 그건 경우가 아니여.”

덕만은 큰소리로 말했다. 아들이 다가왔다. 덕만은 아들과 며느리를 살구나무 아래로 끌었다.

"너 성질 좀 죽여라. 이놈아.”

“어떻게 그래요. 눈 뻔히 뜨고 당할 판인데.”

“그래도 먹는 거 갖고 그러는 게 아니여.”

“그래도 아버지가 주운 거는 하나도 손 안 됐어요.”

“오디에 이름 붙어 났던?”

“보믄 알아요.”

아들은 꼬박꼬박 대꾸했다.

“저도 아빠가 주운 거 아니라믄 엎고 싶었어요.”

며느리가 말했다. 기가 막혔다. 이것들이 아주 썅으로 놀고 있구나 싶었다.

“남자가 그러더라도 여자는 그러면 안 되제.”

덕만은 이쯤에서 끝내는 게 체면 살린다 싶어 그만 마무리 하였다.

“자 받어.”

며느리에게 오디 판 돈을 내 밀었다.

“이걸 왜요?”

며느리가 뜨악하게 바라보았다.

“옷도 사 입고 맛있는 거 사 먹어.”

“됐어요.”

아들이 말했다.

“너 주는 거 아니여. 우리 며느리 주는 거여. 어른이 주믄 고맙습니다, 하고 받는 거여.”

“고맙습니다. 아빠.”

며느리는 낼름 받았다.

“허허.”

덕만은 웃음을 지었다. 며느리의 얼굴을 보니 꽃 피고 바람 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