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소설을 읽은 건 3년 전이었다. 한 노파의 쓸쓸한 삶과 죽음을 어떤 기교도 없이 담백하게 그려낸 소설이었다. 노파는 삶에서 그랬듯 죽음 앞에서 또한 철저하게 혼자였으며 삶이 죽음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 그 정도의 인상을 받고 책을 덮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노파의 죽음이 가끔 생각났다. 때론 어머니와 할머니의 모습이 노파와 겹쳐지기도 하고 지금 이순간의 나 자신 같기도 했다. 차고 맑은 겨울 달빛 아래 숲속 공터에서 삶에 지친 노파가 잠들었다가 얼어죽었고 그 주위를 일곱 마리의 개들이 무리지어 빙빙 돌고 있다. 노파가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순간 개들 역시 개와 늑대의 위태로운 경계선을 달리고 있었다. 어떤 수식도 의미도 필요없이 그 자체로 처절한 광경이었다. 노파의 소외된 삶이 더욱 가혹하게 느껴졌다. ‘그토록 처절한 어떤 것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지닌다’는 소설 속 문장이 거슬리기도 했으나 아름다움의 뿌리가 슬픔이었던가, 존재의 슬픈 연원을 엿본 느낌이다.

 

 

 

* 셔우드 앤더슨(1876~1941) 미국에서 가난한 마구상의 아들로 태어나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마흔이 넘어 문학에 투신했으며 <오하이오주 와인즈버그> <검은 웃음소리> <알의 승리> 등 주요 저서가 있다. 플롯 중심의 전통적 단편소설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단편을 개척해간 작가로 현대 미국소설의 원조라고 불린다. 헤밍웨이와 울프, 포크너에게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숲속의 죽음

 

 

1

 

그녀는 노파였다. 그리고 내가 살던 읍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농가에서 살았다. 시골에서나 조그만 읍에서 사람들은 그런 노파를 흔히 본다. 그러나 그런 노파들에 관해서 사람들은 별로 알지 못한다. 그런 노파는 노쇠한 말을 몰고 읍내로 들어오기도 하고 장바구니를들고 터벅터벅 걸어오기도 한다. 닭 몇 마리와 달걀을 팔려고 바구니에 그것들을 담고 식료품 가게로 향하기도 한다. 거기서 그녀는 물건을 흥정해서 그것들을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나 콩 같은 것들과 맞바꾼다. 그리고 설탕과 밀가루 한두 파운드를 사기도 한다.

그런 후에는 정육점에 가서 개 먹이를 얻는다. 10 내지 15 센트어치쯤 물건을 사기도 하지만 그럴 때면 꼭 뭔가를 공짜로 얻는 것이다. 전에는 정육점에서 간(肝) 같은 것을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거저 주었더랬다. 우리 집에서도 늘 간을 먹었다. 언젠가는 형이 읍내 시장 근처 도살장에서 소 한 마리의 간을 몽땅 얻어왔는데 어찌나 많이 먹었던지 나중엔 진력이 날 정도였다. 돈 한 닢 안 들이고 말이다. 그 후로는 간에 대해서라면 생각하기조차 싫었다.

그 시골 노파는 간과 수프 뼈를 약간 얻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한담을 주고받는 일이 없었다. 필요한 물건을 구하면 즉시 도망치듯 집을 향해 떠나는 것이었다. 노파에게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다. 그녀를 태워주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들은 마차를 타고 길을 따라 곧장 달리면서 그런 노파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염증성 류머티즘이라는 병으로 앓고 있던 어느 해 여름과 가을, 우리 집을 지나 읍내에 드나들던 그런 한 노파가 있었다. 그 노파는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귀로에 올랐다. 크고 삐쩍 마른 개 두세 마리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 노파는 아무것도 특별할 게 없는 여자였다.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그런 이름없는 사람들 중의 하나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생각 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이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지금에야 갑자기 나는 그녀를, 그리고 그녀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이야기이다. 그녀의 이름은 그라임즈였고 읍에서 4마일쯤 떨어진 조그만 계곡의 둔덕에 서 있는, 칠도 하지 않은 조그만 집에서 그녀의 남편과 아들과 함께 살았다.

남편과 아들은 불량배였다. 아들은 스물한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형무소 신세를 진 경력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남편이 말을 훔쳐서 딴 곳으로 빼돌린다고 수군거렸다. 이따금 말이 없어진 사실이 드러날 때면 그 남편도 역시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가 말을 훔치는 현장을 목격하진 못했다.

언젠가 내가 톰 화이트헤드네 마방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을 때 그 사람이 그곳에 와서 앞쪽의 의자에 앉은 적이 있었다. 두세 사람이 거기 있었지만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 사람은 잠시 그렇게 앉아 있더니 곧 일어나 나가버렸다. 자리를 뜨면서 그는 몸을 돌려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도전의 빛이 담겨 있었다. ‘좋아, 나는 친하게 대하려고 노력했어. 너희들이 나에게 말조차 붙이려고 하지 않은 거야. 이 읍내에선 어디를 가나 그런다구. 언젠가는 너희들이 아끼는 말이라도 없어져 보라구. 그땐 어쩔 거야?’ 물론 그가 실제로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었다. ‘네놈들 턱이라도 바숴줄까 부다.’ 그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때 그 눈의 표정이 나를 오싹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 남자의 집안도 한때는 돈푼깨나 있는 집안이었다. 그의 이름은 제이크 그라임즈였다. 이제 모든 것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그의 아버지인 존 그라임즈는 그곳이 새로 개간될 당시에 제재소를 하나 가지고 있어서 상당한 돈을 벌었다. 그러다가 그는 술에 빠지고 여자 꽁무니를 쫓아다니고 해서 그가 죽었을 때는 별로 많은 돈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나마 남은 재산은 제이크가 다 날려 버렸다. 곧 벨 나무도 없어지고 땅도 거의 다 거덜이 나버린 것이다.

제이크는 그가 어느 유월에 밀타작 일을 도와준 한 독일인 농장 주인으로부터 아내를 얻어왔다. 그녀는 그때 어린 처녀였는데 몹시 겁을 먹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 농장 주인이 이 소녀에게 뭔가 흑심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아마도 계약 고용된 소녀였을 텐데 농장 주인의 아내는 둘 사이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편이 어디 가고 없을 때면 그 소녀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아내가 장을 보러 읍내에 나가면 농장 주인은 그 소녀를 쫓아다녔다. 그녀는 제이크에게 아무 일도 없었노라고 후에 말했지만 제이크는 그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소녀를 처음 꼬여냈을 때 쉽사리 그녀를 손아귀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만일 독일인 농장 주인이 참견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녀와 결혼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농장에서 타작일을 돕던 어느 날 밤 그는 소녀를 마차에 태우고 함께 드라이브를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일요일 밤 다시 그녀를 데리러 왔다.

소녀는 주인 모르게 집 밖으로 나오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녀가 마차에 막 올라타려고 할 때 주인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났다. 날이 거의 어두워질 무렵이었는데 말 머리께에서 그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가 말 고삐를 움켜쥐자 제이크는 말 채찍을 꺼내 들었다.

그들은 결판을 낼 참이었다. 독일인 주인은 아주 거친 사내였다. 아내가 알건 말건 아마도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제이크는 채찍으로 그의 얼굴과 어깨를 마구 후려쳤지만 말이 놀라서 날뛰는 바람에 마차에서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두 사나이는 본격적으로 한판을 붙게 된 것이다. 하지만 소녀는 싸움을 보지 못했다. 말이 달아나기 시작해서 길을 따라 거의 1마일쯤 내달린 후에야 소녀는 가까스로 말을 멈출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길가의 나무에 간신히 말을 비끄러맸다(내가 어떻게 이 모든 걸 다 알고 있는지 나 자신도 의아스럽다. 아마도 어렸을 때 들은 마을 이야기들이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는 탓이 아닌가 싶다).

제이크는 독일인 주인을 해치운 후에 그곳에서 소녀를 발견했다. 그녀는 마차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잔뜩 겁을 집어먹은 채 울고 있었다. 그녀는 독일인 주인이 자기를 어떻게 해보려고 애쓴 일, 한 번은 헛간 속으로 자기를 뒤쫓아 들어온 일, 또 언젠가 우연히 집 안에 단둘이 있게 되었을 때 앞이 다 드러나게 자기의 옷을 찢었던 일 등 제이크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 만일 안주인이 마차를 몰고 대문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더라면 주인은 그녀를 틀림없이 겁탈했을 거라고 소녀는 말했다. 안주인은 물건을 사러 읍내에 가고 없었던 것이다. ‘그래, 아내가 말을 헛간으로 끌고 들어올 거라구.’ 주인은 아내에게 들키지 않고 밭으로 살짝 빠져나가는 데 성공했다. 그러면서 만일 이를 일러바치면 죽여 버리고 말겠노라고 소녀에게 말했다. 자, 그러니 어쩔 도리가 있겠는가? 소녀는 헛간에서 가축들에게 먹이를 주다가 잘못해서 옷이 찢어졌노라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 생각이 나는데 소녀는 계약 고용된 몸이었고 부모가 어디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어쩌면 아버지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독자들은 무슨 뜻인지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그렇게 계약 고용된 아이들은 가혹하게 다루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어서 노예나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그 당시는 고아원이라는 것도 별로 없던 때여서 그런 아이들은 법적으로 어떤 가정에 예속이 되었다. 어떤 가정에 가느냐는 완전히 운에 딸린 문제였다.

2

 

그녀는 제이크와 결혼해서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낳았지만 딸은 곧 죽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가축을 먹이는 일에 전념했다. 그것이 그녀의 일이었던 것이다. 독일인 농장에서도 그녀는 주인 내외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 일을 맡아했다. 안주인은 엉덩이가 펑퍼짐한 건장한 여자여서 대부분의 시간을 남편과 함께 밭에 나가서 일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집안에서 주인 내외를 먹이고 헛간에서는 소를 먹이고 또 돼지와 말과 닭들도 먹였다. 소녀 시절 그녀의 매일매일의 모든 시간은 뭔가를 먹이는 일로 보내진 것이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제이크 그라임즈와 결혼하게 되었고 이제 그를 먹여야 했다. 그녀의 몸은 자그맣고 가냘퍼서 결혼한 지 서너 해가 지나고 두 아이를 낳고 나자 가녀린 어깨가 굽어지기 시작했다.

제이크의 집은 계곡 가까이에 있는 빈 제재소 부근에 있었는데 그는 늘 여러 마리의 큰 개들을 집에서 기르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를 훔치지 않을 때면 말을 사고파는 장사를 했기 때문에 볼품없이 비쩍 마른 말들을 늘 집에 두고 있었다. 게다가 돼지 서너 마리와 암소 한 마리까지 기르고 있었는데 이 가축들은 얼마 남지 않은 그라임즈가의 땅에서 모두 방목을 하고 있어서 제이크는 거의 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빚을 내서 탈곡기 일습을 사들여 몇 년 간 운영해 보았지만 수지가 맞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를 믿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은 제이크가 밤에 그들의 곡식을 훔쳐내지나 않을까 의심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일거리를 얻기 위해서 먼 곳까지 가야 했는데 그건 너무 비용이 많이 들었다. 겨울철에는 사냥도 하고 땔나무도 만들어서 가까운 읍내에 내다 팔기도 했다.

아들 녀석은 자라면서 꼭 아버지를 닮아갔다. 그들은 함께 취했다. 그들이 집에 돌아왔을 때 집 안에 먹을 것이 없으면 제이크는 아내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녀는 닭 몇 마리를 따로 기르고 있었는데 그런 때면 얼른 닭 한 마리라도 잡아야 했다. 그 닭들을 다 잡아먹어 버리면 읍내에 내다 팔 달걀도 없게 될 텐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녀는 동물들을 어떻게 기를까, 어떻게 하면 돼지들을 살이 통통하게 오르게 해서 가을에 잡을 수 있도록 할까, 일생동안 그런 궁리를 하며 살았다. 돼지를 잡으면 고기의 대부분은 남편이 가져가서 읍내에 내다 팔아버렸다. 만일 남편이 선수를 치지 않으면 아들이 그 짓을 했다. 그들 부자는 이따금 서로 싸웠고 그들이 싸울 때면 그녀는 부들부들 떨며 옆에 서 있었다.

어쨌든 그녀는 침묵을 지키는 버릇이 생겼고, 그 버릇은 아주 굳어져 버렸다. 그녀가 늙어 보이기 시작할 무렵부터 -- 아직 마흔이 채 안됐지만 -- 남편과 아들이 말 장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사냥을 하거나 도적질을 하거나 하여튼 집을 비우고 없을 때면 그녀는 이따금 집 주위와 농장 구내를 돌아다니면서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곤 했다.

이 모든 것들을 다 어떻게 먹일 것인가, 그것이 그녀의 문제였다. 개들도 먹여야 했다. 그런데 헛간에는 말이나 소를 먹일 건초도 충분치가 못했다. 만일 닭들을 제대로 먹이지 못하면 어떻게 알을 낳을 수 있을 것인가? 팔 달걀이 없으면 농장 일을 유지해 가는 데 필요한 물건들을 어떻게 읍내에서 구해올 수 있을 것인가?

다행히도 남편을 먹여야 할 필요는 없는 셈이었다. 그들이 결혼한 지 얼마 안 돼서부터 특히 아이들을 낳은 후 남편을 거둬 먹이는 일에는 손을 뗀 거나 다름없었다. 남편이 오랜 기간 동안 어디로 돌아다니는지 알지 못했다. 때로는 몇 주일씩 집을 비웠고 아들이 자란 후에는 함께 어디론가 떠나곤 했다.

그들은 모든 집안일을 그녀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떠맡긴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돈도 없었고 아는 사람도 없었다. 읍내에서는 그녀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 하나 없었다. 겨울철이면 나뭇조각들을 땔감으로 주워 모아야 했고 얼마 안되는 곡식으로 가축들을 연명하게 하려고 애써야 했다.

헛간에 있는 가축들은 그녀를 보고 배고프다고 울어댔고 개들을 그녀를 졸졸 따라 다녔다. 암탉들은 겨울에 알을 별로 많이 낳지 못했다. 암탉들은 헛간 구석에 떼 지어 웅크리고 앉아 있었고 그녀는 그 닭들을 계속 주시해야 했다. 겨울철에 만일 닭이 헛간에서 알을 낳는데 그 일을 못 보고 지나치면 알은 얼어서 깨져 버리기 때문이다.

어느 겨울날 그 노파는 달걀 몇 개를 들고 읍내로 갔는데 개들이 그녀 뒤를 따랐다. 거의 세 시가 돼서야 집을 나선데다가 눈이 많이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며칠 동안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구부정한 어깨로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뭐라고 중얼거리며 걸어갔다. 그녀는 낡은 곡식 부대 속에 달걀을 넣어 그것들을 밑바닥에 감추듯이 들고 갔다. 달걀이 많지는 않았지만 겨울철에는 달걀 값이 오르기 때문에 그것을 맞바꾸어 약간의 고기,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와 설탕 조금씩, 그리고 어쩌면 커피도 약간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정육점 주인이 간 한 조각쯤은 거저 줄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가 읍내에 도착해서 달걀을 가지고 흥정을 벌이는 동안 개들은 문밖에 엎드려 있었다. 그녀는 흥정을 썩 잘해서 그녀가 바랐던 이상으로 필요한 물건들을 구할 수 있었다. 그 다음에 정육점으로 갔는데 정육점 주인은 약간의 간과 개 먹이를 그녀에게 주었다.

그리고 정육점 주인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그가 그녀에게 그처럼 친절하게 소상한 이야기를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가 가게에 들어올 때 정육점 주인은 혼자 있었는데 그처럼 병들어 보이는 노파가 궂은 날 밖에 나와 돌아다닌다는 생각에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매섭게 추운 날인 데다 오후에 좀 멎었던 눈이 다시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정육점 주인은 그녀의 남편과 아들에 대해서 뭐라고 날을 하고는 그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녀는 약간 놀란 표정을 담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자신이 곡식 부대에 넣어준 그 간 조각이나 고깃덩이가 달라붙어있는 그 묵직한 뼈를 그 남편이나 아들이 먹으려 든다면 정말이지 그 따위 인간은 굶어죽어야 마땅하다고 정육점 주인은 말하는 것이었다.

굶어죽다니? 아니지, 다들 먹여야지. 사람도 먹여야 하고, 쓸모는 없지만 팔아치울 수 있을지 모르는 말들도 먹여야 하고, 석 달 동안 젖 한 방울 짜내지 못하는 삐쩍 마른 불쌍한 젖소도 먹여야지.

말, 소, 돼지, 사람들, 모두들 먹여야지.

 

3

 

노파는 가능하면 어둡기 전에 집에 돌아와야 했다. 개들은 그녀가 둥에 둘러맨 묵직한 곡식 부대에 코를 킁킁 대며 바짝 뒤따랐다. 읍내를 벗어나자 그녀는 담장 옆에 멈춰서서 끈으로 그 부대를 등에 꼭 졸라맸다. 바로 그럴 목적으로 호주머니 속에 끈 부스러기들을 가져왔던 것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갈 때는 한결 수월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두 팔이 아파왔다. 담장을 기어서 넘어야 하는데 그건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한번은 벌렁 넘어져 눈속에 빠져버렸다. 개들은 깡충대며 뛰어 돌아다녔다. 그녀는 안간힘을 써서 간신히 다시 일어나는 데 성공했다. 담장을 넘어가려는 것은 언덕 너머 숲을 통해서 지름길이 나 있는 까닭이었다. 큰길을 따라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려면 1마일쯤 더 걸어야 했다. 어둡기 전에 집에 도착하지 못할까 걱정이 될뿐더러 게다가 가축들을 빨리 먹여야 했던 것이다. 건초나 옥수수도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어쩌면 남편과 아들이 집에 돌아올 때 뭘 좀 가지고 올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그라임즈가의 유일한 마차를 타고, 쓰러질 것 같은 또 다른 말 두 필을 고삐로 묶어 끌고, 함께 떠났다. 그 말들을 팔아서 돈을 좀 벌어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술에 취해서 돌아올지 모른다. 그들이 돌아올 때 집 안에 뭐라도 먹을 것이 있는 게 좋을 것이다.

아들은 십오 마일 떨어진 군청 소재지 읍에 사는 어떤 여자와 관계가 있었다. 그 여자 역시 아주 불량하고 거친 여자였다. 한번은 아들이 그 여자를 집에 데리고 왔는데 둘 다 술에 취해 있었다. 마침 제이크가 집에 없던 그 날, 아들과 여자는 그녀를 종 부리듯 마구 부려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런 일에는 아주 익숙해 있었으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녀의 방식이었다. 독일인 농장에서 살던 소녀 시절에도, 그리고 제이크와 결혼한 이후에도 그런 식으로 살아온 것이다.

아들이 그 여자를 집에 데리고 들어온 날 그들은 마치 결혼한 부부처럼 잠자리를 같이 하며 집에서 밤을 보냈는데, 그런 사실에 그녀는 별로 충격을 받지 않았다. 이미 어려서 그녀는 갖은 충격적인 일들을 다 겪은 탓이었다.

등에 짐을 진 채 그녀는 힘들여 들판을 가로질러, 깊이 쌓인 눈을 헤치며, 숲속으로 들어섰다. 오솔길이 있긴 했지만 길을 따라 걷기가 힘들었다. 언덕 꼭대기 바로 너머 삼림이 아주 울창한 곳에 조그만 공터 같은 것이 있었다. 누군가 한때 그곳에 집을 지을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 공터는 집채와 정원을 갖출만한, 읍내의 건물 부지만한 정도의 넓이였다. 오솔길은 공터의 한쪽 옆을 따라 뻗어있었는데 노파는 그 공터에 이르자 잠시 쉬어가려고 나무 밑에 주저앉았다.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짐을 나무 밑둥에 기댄 채 자리를 잡고 앉으니 참으로 좋긴 했지만 어떻게 다시 일어설 것인가? 그녀는 잠시 그 걱정을 하다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녀는 얼마 동안 잠을 잤을 것이다. 너무나 추우면 그 이상 더 추위를 느끼지 않는 법이다. 오후가 되어 날이 좀 풀리면서 눈발이 더 굵어졌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날이 개고 달까지 나왔다.

읍내까지 노파를 따라온 그라임즈의 개는 네 마리였는데 모두 크고 삐쩍 마른 개들이었다. 제이크 그라임즈나 그의 아들 같은 사내들은 꼭 그런 개를 기르는 것이다. 발길로 차고 함부로 다루지만 그런 개들은 용케 붙어 있다. 그 그라임즈의 개들은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이리저리 먹이를 찾아다녀야 했다. 그래서 노파가 공터의 한 옆에서 등을 나무에 기대고 잠이 들어 있는 동안에도 먹이를 찾아 열심히 쏘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개들은 토끼를 쫓아 숲 속과 그 부근의 밭을 마구 헤집고 다녔는데, 그러는 동안에 다른 농장의 개 세 마리가 가세해서 한패를 이루었다.

얼마 후 개들은 모두 공터로 돌아왔다. 개들은 뭔가에 흥분해 있었다. 그처럼 차고 맑고 달빛 가득한 밤은 개들에게 뭔가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그들이 이리의 모습으로 겨울밤에 떼 지어 숲을 헤매고 다니던 그 태고적의 어떤 옛 본능이 그들 속에서 되살아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개들은 노파 앞의 공터에서 토끼 두세 마리를 잡아 당장의 허기를 채웠다. 그러고는 공터에서 원을 그리고 달리면서 놀기 시작했다. 개들은 앞 개의 꼬리에 코를 바짝 대고 빙글빙글 계속 돌았다. 겨울 달빛이 내리비치는 눈을 잔뜩 인 나무 아래 공터에서, 부드러운 눈을 단단히 다지며 원을 그리는, 그렇게 잠자코 원을 그리며 달리는 개들의 모습은 한 폭의 기묘한 그림을 이루는 것이었다. 개들은 침묵 속에서 계속 원을 그리며 빙빙 돌았다.

노파는 죽기 전에 어쩌면 개들의 그런 모습을 보았을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한두 번 깨어나서 흐릿해진 눈으로 그 기묘한 광경을 바라보았을는지도 모른다.

그저 졸릴 뿐, 이제는 별로 추위도 느끼지도 않았을 것이다. 목숨은 오래오래 지탱이 되는 법이다. 아마도 노파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독일인 농장에서의 소녀 시절을, 그리고 그 전 어머니가 그녀를 남겨두고 훌쩍 떠나버리기 전의 어린 시절을, 노파는 아마도 꿈꾸었을 것이다.

노파의 꿈은 별로 즐거운 것은 아니었으리라. 그녀의 삶에서 그다지 즐거운 일이란 없었으니까. 이따금 그라임즈의 개 한 마리가 달리던 원을 벗어나서 노파 앞으로 다가와서 멈춰 섰다. 개는 뻘건 혀를 늘어뜨린 채 노파의 얼굴 가까이에 제 얼굴을 바싹 들이댔다.

개들이 그렇게 달리는 것은 어쩌면 죽음의 의식 같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달밤에 개들에게 살아났던 이리의 원시적 본능이 어쩌면 그들로 하여금 뭔가 두려움을 느끼게 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우리는 이제 이리가 아니야. 우리는 인간의 종인 개라구. 인간이여, 계속 살아 다오! 인간이 죽으면 우리는 다시 이리가 되고 말 거라구.’

개들은 한 마리씩 노파가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그 자리로 와서 노파의 얼굴에 코를 바싹 들이댄 후 만족스런 듯한 표정으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다른 개들과 함께 달렸다. 그 날 밤 노파가 죽기 전에 개들은 모두 차례대로 그 동작을 반복했다. 나는 자라서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그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언젠가 역시 겨울 밤에 일리노이주의 어느 숲 속에서 한 떼의 개들이 바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린애이던 그 날 밤 그 노파가 죽기를 기다리던 것처럼, 개들은 내가 죽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 나는 젊은 청년이었기 때문에 죽는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었다.

노파는 차분히 그리고 조용히 죽었다. 그녀가 죽었을 때, 그래서 그라임즈의 개 한 마리가 다가와 그녀의 죽음을 확인했을 때, 모든 개들은 달리기를 멈췄다.

개들은 노파의 주위로 모였다.

그래, 노파는 이제 죽은 것이다. 노파가 살았을 때, 그녀는 그라임즈의 개들을 먹였다. 그런데 이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노파가 등에 지고 있는 곡식 부대 안에는 소금에 절인 돼지 고기, 정육점에서 얻은 간, 개 먹이, 수프 뼈 등이 들어 있었다. 읍내 정육점 주인은 갑자기 동정심이 일어 노파의 곡식 부대를 그처럼 묵직하게 채워주었던 것이다. 노파에겐 큰 수확인 셈이었다.

그것은 이제 개들에게 큰 수확이 되고 있었다.

 

4

그라임즈의 개 한 마리가 다른 개들 사이에서 갑자기 뛰쳐나와 노파의 등에 매달린 짐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개들이 정말로 이리였다면 아마도 그 개가 그 무리의 두목이었을 것이다. 다른 개들은 모두 그 개가 하는 대로 따라서 했다.

개들은 노파가 끈으로 등에 졸라맨 그 곡식 부대에 모두 그들의 이빨을 박았다.

개들은 노파의 몸을 공터 한가운데로 끌고 나왔다. 닳아빠진 옷이 노파의 어깨로부터 곧 찢어져 나갔다. 하루인가 이틀 후에 노파가 발견되었을 때 그 옷은 엉덩이 부분까지 찢긴 상태였다. 그러나 개들은 그녀의 몸을 다치게 하지 않았고, 곡식 부대에서 고기를 끌어냈을 따름이었다. 노파가 발견되었을 때 그녀의 몸은 얼어서 굳어 있었는데 어깨가 아주 좁고 몸이 자그마해서 그 시신은 마치 아름다운 젊은 처녀의 몸처럼 보였다.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중서부의 읍에서, 읍 부근의 농가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났던 것이다. 토끼 사냥을 나섰던 한 사냥꾼이 노파의 시신을 발견했으나 그 사람은 시신을 건드리지 않았다. 눈 덮인 조그만 공터에 둥그렇게 다져진 자국하며, 곡식 부대를 끌어내어 그것을 찢어 열려고 하면서 시신을 끌어당긴 그 장소에 내려앉은 침묵하며, 하여튼 뭔가가 그를 겁먹게 하여 그는 서둘러 읍내로 돌아온 것이었다.

나는 신문배달을 하는 나의 형과 읍내 중심가에 있었고, 형은 석간신문을 여기저기 점포에 배달하는 중이었다. 거의 밤이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사냥꾼은 식료품 가게에 들어와서 그 이야기를 전하고는 철물점으로, 다시 약국으로 옮겨갔다. 사람들은 보도 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길을 따라 숲 속의 그 장소로 향했다.

형도 신문배달을 계속해야 했지만 그 일을 그만두었다. 모두들 숲 속으로 몰려갔기 때문이었다. 장의사도 지서 주임도 함께 갔다. 몇몇 사람은 큰길에서 오솔길로 갈라지는 곳까지 마차 썰매를 타고 가서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말의 편자가 닳아 길 위에서 말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걸어간 우리들보다 더 빠를 것도 없었다.

지서 주임은 남북전쟁 때 다리를 다친 몸집이 큰 사람이다. 그는 무거운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길을 따라 재빨리 걸어갔다. 나와 형은 그의 뒤를 바짝 따랐고, 우리가 걸어가는 동안 다른 어른들과 아이들이 우리 무리에 합세했다. 노파가 큰길을 버리고 오솔길로 접어든 그 지점에 이르렀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웠지만 달이 떠 있었다.

지서 주임은 아마도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이라 여겨 사냥꾼에게 계속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사냥꾼은 총을 어깨에 둘러 맨 채 걸어갔고 개 한 마리가 그 뒤를 바짝 따랐다. 토끼 사냥꾼이 그처럼 돋보이게 되는 기회는 흔치 않을 것이다. 사냥꾼은 지서 주임과 함께 앞장서서 행렬을 이끌어가며, 그 기회를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상처는 전혀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젊은 여자였어요. 얼굴이 눈에 묻혀 있더군요. 아니요,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사냥꾼은 시신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무서움을 느꼈던 것이다. 그 여자는 살해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무들이 앙상하게 드러나고 땅 위에는 하얀 눈이 덮인 늦은 오후의 숲 속에서 모든 것이 침묵 속에 잠겨 있을 때에는 오싹하는 느낌이 몸과 마음으로 엄습해 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때 어떤 이상하고 괴상한 일이 주위에서 일어나면 오직 빨리 그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일 것이다.

어른들과 아이들은 한 무리를 이루어 노파가 들판을 가로질러 간 지점에 이르렀고, 거기에서 다시 지서주임과 사냥꾼을 따라 약간 경사진 비탈길을 올라 숲 속으로 들어갔다.

형과 나는 잠자코 걸었다. 형은 신문 다발을 부대 속에 넣고 어깨에 멨다. 읍내에 다시 돌아오면 저녁을 먹으러 집에 가기 전에 신문 배달을 계속해야 하는 까닭이었다. 형은 이미 그렇게 믿고 있는 게 틀림없어 보였는데 내가 형의 배달 일을 함께 돕게 되면 둘 다 늦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어머니나 누나가 우리의 저녁을 데워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뭔가 이야기할 거리가 생기지 않겠는가. 아이들에게 그런 기회란 자주 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냥꾼이 식료품 가게에 들어올 때 마침 우리가 그곳에 있었던 것은 정말 운이 좋은 것이었다. 사냥꾼은 시골 사람이어서 형이나 나나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제 사람들의 무리는 그 공터에 이르렀다. 그런 겨울밤이면 어둠이 더 빨리 내린다. 그러나 만월의 달이 모든 것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형과 나는 노파가 죽은 그 나무 가까이 서 있었다.

달빛 속에서 조용히 얼어붙어 누워 있는 노파의 모습은 늙어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그녀의 몸을 눈 속에서 바로 젖혔을 때 나는 모든 것을 보았다. 내 몸은 어떤 알 수 없는 신비스런 느낌으로 떨렸고 형도 마찬가지였다. 추위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형이나 나나 그때까지 여체를 본 적이 없었다. 노파의 몸을, 마치 대리석처럼 그렇게 희고 아름다워 보이게 만든 것은 언 몸에 달라붙은 눈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읍내에서 몰려온 사람들의 무리에는 여자가 없었다. 그래서 읍내의 대장간 주인이 옷을 벗어 노파의 몸 위에 덮어씌웠다. 그러고는 노파를 팔에 안고 읍내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잠자코 그 뒤를 따랐다. 그 당시엔 노파가 누군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5

 

나는 모든 것을 보았다. 마치 경기장 트랙을 축소해놓은 것 같은, 개들이 달려서 다져진 눈 속의 그 타원형 자국도 보았고,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는 모습도 보았고, 하얗게 드러난 아주 젊어 보이는 그 어깨도 보았으며, 어른들이 뭐라고 속삭이는 소리도 들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저 어리둥절해할 따름이었다. 그들은 시신을 장의사로 운반해 갔다. 대장간 주인, 사냥꾼, 지서 주임, 그리고 몇몇 사람이 장의사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만일 아버지가 거기 계셨더라면 아버지도 들어갈 수 있었겠지만 아이들은 허용이 되지 않았다.

형과 함께 나머지 신문을 다 배달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 이야기를 전한 건 형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마도 형이 하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나중에 읍내에서 나는 그 노파에 관한 다른 단편적인 이야기를 들었음에 틀림없다. 하여튼 다음날 노파의 신원이 확인되고 조사가 진행되었다.

남편과 아들의 소재가 밝혀져 그들은 읍내로 불려왔다. 사람들은 그들과 노파의 죽음을 연관 지어 보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들의 알리바이는 완벽했던 것이다.

하지만 읍내 사람들은 두 사람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은 그곳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그 후로 듣질 못했다.

오직 그 숲 속의 광경을 나는 한 폭의 그림처럼 기억하고 있을 따름이다. 주위에 둘러서 있던 사람들, 얼굴이 눈 속에 묻힌 소녀처럼 보이던 여인의 나체, 개들이 달려서 다져진 타원형의 자국, 그 위의 맑고 찬 겨울 밤하늘, 그리고 흰 조각구름들이 하늘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나무들 사이로 열린 조그만 공간을 가로질러 내달리면서.

숲속의 그 광경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지금 들려주려는 진짜 이야기의 토대가 된 것이었다. 여러 가지 단편적인 이야기들은 먼 훗날 천천히 모아져야 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었다. 젊었을 때 나는 독일인 농장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그 농장에 고용되어 있던 소녀는 주인을 무서워했다. 그리고 농장 주인의 아내는 그 소녀를 미워했다.

그곳에서 나는 많은 것을 보았다. 언젠가 훗날, 어느 맑고 달 밝은 겨울밤에 일리노이주의 한 숲속에서 개들과 기묘하고 신비스런 모험을 겪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어느 여름날, 친구와 함께 읍에서 몇 마일 떨어진 한 계곡을 따라 걷다가 그 노파가 살던 집에 이른 적도 있었다. 노파가 죽은 후로 그 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 그래서 문들은 돌쩌귀에서 삐져나와 부러져 있었고, 유리창들도 모두 부서져 있었다. 친구와 내가 집 밖의 길에 서 있을 때 개 두 마리가, 틀림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개 두 마리가, 집 모퉁이를 돌아 달려 나왔다. 크고 삐쩍 마른 개들이었는데 녀석들은 담장 쪽으로 내려오더니 길에 서 있는 우리를 노려보았다.

그 노파의 죽음에 관한 이 모든 이야기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에게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선율은 한 번에 하나씩 서서히 모아져야 했다. 뭔가가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죽은 그 노파는 동물의 생명을 먹여 살리도록 운명 지어진 여인이었다. 어찌했든 그녀가 한 일이란 오직 그 일뿐이었다. 그녀는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도, 아이 적에도, 결혼한 후에도, 늙어가면서도, 그리고 죽었을 때에도, 동물의 생명을 계속 먹여 살린 것이었다. 그녀는 소와 닭과 돼지와 말과 개와 사람의 그 동물적 생명을 먹여 살렸다. 그녀의 딸은 어려서 죽었고 하나뿐인 아들과 그녀는 이렇다 할 모자의 관계를 맺지 못했다. 죽던 날 밤 그녀는 동물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먹이를 몸에 지니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그녀는 숲 속의 공터에서 죽었고 죽은 후에도 동물의 생명을 먹여 살리는 일을 계속했다.

그 날 밤 우리가 집에 돌아와서 형이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어머니와 누나가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 나는 형이 뭐랄까, 그 이야기의 소중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형이나 나나 그때는 너무 어렸던 것이다. 그토록 처절한 어떤 것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지니는 것을.

그 점을 특별히 강조할 생각은 없다. 나는 그저 그 날 밤 형의 이야기에 왜 불만을 느꼈는가, 그리고 그 후에도 왜 줄곧 그래 왔는가를 설명하려는 것일 뿐이다. 이 단순한 이야기를 내가 왜 다시 한번 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여러분이 이해해주기 바라는 마음에서 이야기를 한 것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