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약간 이상한 건지, 가끔 나는 그럴 때가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무료한 오후 3시쯤 컴퓨터 앞에 앉아 아련하게 밀려오는 졸음에 젖어들고 있을 때, 유체이탈을 한 내가 나를 바라보는 듯한 착각. 혹은 무수히 착각을 한 기억을 갖고 있다.

 

그 기억, 혹은 착각의 기억을 파고든다면 소설 한 편쯤 쓸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시도조차 못했다. 실체가 잡히지 않는 머릿속 회로를 따라가서 만나게 될 지점이 필시 50년 가까운 세월 빚어온 마음속 우물 안일 터. <여섯 번째 사요코>로 데뷔한 작가 온다 리쿠는 이 마음속 우물에서 일어나는 평범하면서도 기이한 일상을 추리형식으로 재현해내고 있다. 제목은 <코끼리와 귀울음>. 전직 판사 출신인 세키네 다카오와 그 가족이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별 것 아닌 것 같은 사건을 만나고 해결해가는 과정을 열두 편의 짧은 이야기로 담고 있는 단편소설집이다.

 

재밌는 건 아버지인 세키네 다카오는 <여섯 번째 사요코>에서 남자주인공 슈의 아버지로도 나왔고, 아들인 슈운은 슈의 형이자 <PUZZLE>의 주인공으로, 딸인 나쓰는 슈의 누나이자 <도서실의 바다>의 주인공으로, 그리고 세키네의 산책친구인 미쓰루는 <메이즈>의 도키에다 미쓰루로 나왔다는 것. 말하자면 온다 리쿠의 다른 작품 속 캐릭터들이 이 책 <코끼리와 귀울음>에 등장해서 추리 경쟁을 벌이는 셈이다. 이 가운데 담배 대신 캐러멜을 우물거리며 날카로운 관찰력과 직관력을 발휘하는 세키네 다카오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포와로와 마플처럼 탐정캐릭터로 남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특히 매력적이다.

 

이들 각자가 따로 또 같이 벌이는 추리를 통해 멀쩡한 사람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의 기저인 인간의 머릿속 회로와 그 회로 끝 마음속 우물을 들여다보기를.

 

 

 

# 밑줄긋기

 

친구 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친구 언니의 대학선배 S코 씨는 회사에 다니며 시내 아파트에 혼자 살았습니다. S코 씨는 옛날부터 공부도 잘하고 착실하고 책임감도 있어서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S코 씨는 신상품 개발 때문에 매일 야근을 했습니다. 어느 날 밤 S코 씨는 회사에서 혼자 야근을 하고 있었습니다. S코 씨의 직장은 건물 10층입니다. S코 씨는 컴퓨터 잎에 앉아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서 “이제 됐나?”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S씨는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잘못 들었으려니 하고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러자 얼마 있다가 또다시 “이제 됐나?” 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S코 씨는 깜짝 놀라 또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S코 씨 뒤에는 커다란 창문이 있었습니다. 그 창밖에 글쎄, 커다란 빨간 개가 공중에 떠서 S코 씨를 보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S코 씨는 겁이 나서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이튿날부터 S코 씨는 열이 나 앓아눕고 말았습니다.

S코 씨는 아파트 5층에 살았습니다. 앓아누운 지 사흘 만에 열이 내려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 S코 씨는 커튼을 걷었습니다.

그러자 공중에 그 빨간 개가 떠있었습니다. 개는 또다시 S코 씨에게 물었습니다.

“이제 됐나?”

S코 씨는 무심코 “이제 됐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빨간 개는 큰소리로 웃으며 어디론가 달려가 버렸습니다.

며칠 뒤 S코 씨가 아직도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 것을 걱정한 동료가 S코 씨 집에 찾아왔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온몸에서 피가 빠져 쭈글쭈글해진 S코 씨 시체가 있었다고 합니다.

빨간 개를 본 사람은 개가 “이제 됐나?”라고 묻는다고 “이제 됐어”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혹시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도고 씨, 도고 씨, 도고 씨”라고 세 번 읊으면 사라진다고 합니다.

 

<코끼리와 귀울음>에 들어있는 ‘마술사’ 중에서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은 눈에 들어오는 법이야. 자기와 같은 곳으로 가는 게 아닐까 싶은 사람은 그 외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서서히 두드러져 보이지 않나. 이만큼 다양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있어도 어차피 자기 목적밖에 보이지 않아. 이것도 현재의 격자창이라는 생각, 안 드나?

 

<코끼리와 귀울음>에 들어있는 ‘신 D고개 살인사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