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문자답

박승민




어영부영 야매로 시인노릇을 한지가 꽤 오랜 세월이다. 그럼에도 나는 “시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여전히 오리무중 속이다.

그러나 아무리 둔감해도 질문을 거듭하면, 대답은 아니지만 대답과 엇비슷한 무늬의 부스러기들이 머릿속에 잔광으로 남는다.


다시 “시인이란 무엇인가?” 자문자답해본다.

아마 내가 이해하는 범주 안에서 말한다면, 시인이란 “자기를 포함해서 이 세상 타자들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 혹은 “듣고 난 후에 이를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세심하게 기록하는 사람”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먼저 자기 자신이 문제이다. 80년대 우리문학이 시인 자신이 자기 존재문제를 정리하고 궁구하기보다는 -사실 시대적 급박함이 그럴 시간적 유예기간을 허용하지도 않았지만- 사회적 문제에 성급하게 투신한 결과, 일부 시인들의 경우 자신의 몸과 이념의 몸이 따로 논 경향들이 자주 목격되었고, 그 결과 작품의 형상화 과정에서 도식적, 교조주의적 경향들이 빈발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후,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함께 찾아온 소위 민중 시인들의 너무 가벼운, 또는 너무 빠른 투항의 결과로 이어졌고 -이것이 보수진영의 노골적인 비웃음거리가 된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충격은 지금까지도 여진으로 남아 현 한국문학의 환경자체가 지나치게 자연경도문학이 되거나 자신의 존재문제만을 과도하게 집착하게 하는 급우경화의 결과를 낳았다.


결국 시인이란 김수영이 말한바 대로 죽음의 문제, 즉, 자기 자신의 삶과 죽음을 향상 교직시키면서 혹은 쟁투시키면서 자기를 수면 가장 밑바닥까지 끌어내려 응시하려는 내면적 싸움이 없다면, 그 고통에서 건져 올린 무게가 아니라면 그의 문장은 티끌 같은 적은 세월에서조차도 쉽게 마모되는 모래알갱이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시인 자신이 자신의 내면적 존재문제에만 정착 혹은 유착한다면, 그는 타자와 유리된 채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저 지난 시절, 수없이 명멸했던 가난한 개별적 文士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타자가 머무는 곳을 향해 항상 자신의 귀와 마음을 열어두는 엄결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 때 타자라함은 타인은 물론이고 타 생물종, 타 외계, 타 제도와 법규, 도덕과 규율, 정치와 역사를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즉, 자기 절대주의적 입장에서 벗어나 상대주의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려 할 때, 더 나아가 가기 자신조차도 상대화시켜 끊임없이 반성하고 번복하고 갱신하려는 정신이 살아 있을 때, 그는 세월의 흐름에도 쓰러지지 않는 청년적 문장을 생산해 낼 것이다.


 말하지 못하는 하늘의 말을 대신 전해주는 자, 서 있지 못한 나무의 아픔을 적어 놓는 자, 폭염에 바스라질 듯 위태롭게 매달린 시든 꽃잎의 운명을 대신 울어주는 자, 자신의 수탈을 정치적으로 발언하지 못한 채 고단한 일생을 한숨처럼 살고 있는 폐지수거노인의 안부를 물어 주는 자,,, 그리고 그 부당성을 언어미학으로 말 할 수 있는 자,

그가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