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유희

                



주진


                  

 창밖이 훤한 걸 보니 아침이다. 용자씨는 고개를 들어 방 안을 둘러본다. 용자씨 침대와 기역자로 이어지며 이불 한 채가 바닥에 깔려 있고, 그 속에서 영감이 단잠에 빠져 있다. 방 안에는 길게 풀린 두루마리 휴지와 피 묻은 휴지 뭉치, 과자를 포장했던 비닐, 물컵, 효자손, 파리채, 때묻은 수건, 지난밤 영감이 빼준 기저귀까지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다. 자정 이후 기저귀를 갈지 못한 용자씨는 엉덩이부터 등까지 척척하다. 빨리 딸이 와서 갈아주길 바라지만 방 안 꼴을 보니 딸이 온다 한들 쉽지 않겠다. 그 년이 오기는 할까? 딸이 저녁 외출을 할 때마다 용자씨는 불안하다. 요즘 들어 히스테리가 심해지고 외박도 잦아졌다. 바지 주머니를 더듬어 딸의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꺼낸다. 딸이 나가 있을 때마다 만지작대다 보니 볼펜 글씨가 희미해지고 종이 결이 부슬부슬 일어나 너덜거린다. 집안에 영감과 둘이 남겨진다는 건 무방비상태와 같았다. 용자씨보다 열 살이나 많은 영감은 보행이 불편한데다 치매기까지 있었다. 욕실에 물을 틀어놓은 채 나오기도 하고 현관 문고리를 누른 채 마당에 나갔다가 문이 잠기는 바람에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는 용자씨 역시 애간장이 탔었다. 그러니 가스불을 켠다든지 욕실에서 미끄러져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당장 봐줄 사람이 없었다. 영감은 귀까지 어두워서 그 자신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소통 불능이다. 어젯밤에도 용자씨는 효자손으로 벽을 수십 번 두드리고 파리채를 던지고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러서야 그를 일으킬 수 있었다. 계월이한테 전화 좀 해보슈. 계월이한테 전화 좀 해보라니까. 영감은 용자씨가 건네준 쪽지를 들고 머리맡에 놓인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안 받아. 전원이 꺼져있대. 영감은 쪽지를 용자씨 가슴께로 던지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얼마 전만 해도 전화를 걸면 왜 전화질이냐고 욕이라도 해댔는데 요즘은 아예 전원을 꺼놓는다. 그래도 쪽지는 세상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다. 


 등짝이 젖어 불쾌한데다 양쪽 골반골 부위가 쓰리고 가렵다. 영감은 항상 기저귀를 거꾸로 댄다. 엉덩이에 대야 할 부분을 앞쪽에다 갖다 대니 흡수하는 면적이 작아져 소변이 금세 등짝으로 번진다. 게다가 쓸데없는 데에 공을 들인다. 접착밴드는 살짝 붙이는 시늉만 해도 될 것을, 골반 뒤편까지 바짝 잡아당겨 붙여놓으니 딱딱한 밴드가 살을 파고드는 것이다. 매번 지적하고 화를 내보지만 개선은커녕 그럴수록 영감은 기저귀에 손을 대려 하지 않는다. 영감 입장에선 힘들게 뒤를 봐줬는데 고맙단 소리는 못 들을망정 타박이니 그럴 만도 했다.

 지난밤에도 그런 저런 문제로 난투극이 벌어졌었다. 기저귀를 갈아달라면 영감은 꼭 용자씨의 아랫도리를 벗겨놓고 매만지며 장난을 친다. 자라목을 하고 흐리멍덩한 눈으로 비척비척 다가왔다가도 용자씨의 속살을 보면 눈빛이 달라지는 것이다. 긴 손톱이 여린 속살을 스칠 때마다 아픈 것도 짜증나지만 손톱 밑에 낀 때를 생각하면 여간 찝찝한 게 아니다. 영감은 씻는 데에 게으르다. 그 손으로 사타구니도 긁고 리모콘도 만지고 용자씨에게 귤도 까서 먹여주고 떡도 집어 먹인다. 배… 좀… 타자. 영감은 기저귀를 갈기 위해 그녀의 비대한 몸을 돌려놓느라 낑낑대다가 침대 위로 한쪽 발을 올려놓았다. 이 양반이, 미쳤나. 하라는 일이나 똑바로 하슈. 용자씨는 머리맡의 효자손을 집어 영감의 대머리를 후려쳤다. 순식간이었다. 영감이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나동그라졌다. 손가락 틈으로 피가 흘렀다. 피를 보자 영감은 벌떡 일어나 주먹으로 냅다 용자씨의 이마를 쥐어박았고 그녀는 다시 효자손을 휘둘러 영감의 팔이며 어깨를 마구 때렸다. 오른팔은 용자씨가 움직일 수 있는 부위였다. 노쇠하여 굼뜬 영감은 다시 엉덩방아를 찧고 날라드는 효자손을 피하며 간신히 기어서 물러났다. 영감이 벽에 기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겨워하는 모양을 보자 용자씨는 심했나 하는 마음이 들었고 그러자 더욱 화가 치밀었다. 그러게 왜 쓸데없는 짓을 해. 그놈의 손버릇은 죽기 전엔 못 고치지. 용자씨는 칠십 평생 정절을 지켜오기나 한 것처럼 아랫도리에 예민하다. 영감이 만진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소원하는 배 좀 태워준다고 망가질 것도 아니지만 용자씨의 마음은 열리지 않는다. 그건 영감의 손길이 아쉽고 그립던 지난 시절에 대한 모욕이다. 그럴 때마다 딸은, 죽으면 썩어문드러질 걸 뭘 그리 아끼냐고 악다구니를 쓰며 아버지 편을 들었다. 용자씨는 내가 아무 놈한테나 훌러덩 내주는 니년하고 같냐는 욕덩어리가 목구멍으로 치밀어 오르지만 눌러 참는다. 딸은 어제 저녁에 친구를 만난다며 나가서 밤새 들어오지 않았다. 딸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서 용자씨는 더욱 과격했는지도 모른다. 같은 여자로서 남편 사랑 못 받고 홀로 생활을 꾸리다시피한 어미 편을 들 수도 있으련만 딸은 부모를 싸잡아 비난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비 편이었다. 흰 피부에 눈매가 처지고 입술선이 단아한 영감은 체구도 아담하고 그에 걸맞게 다감했다. 반면 눈빛이 매서운 호랑이상인 용자씨는 덩치도 영감보다 크고 다혈질이었다. 영감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사람들의 보호본능을 자극시키는 일면이 있었다. 어쩌다 그런 영감과 부부의 연이 되어 용자씨로서는 억울한 경우가 많았다. 찬바람 불면 중앙시장에서 신선한 소골 주문해 뒀다가 고아먹이며 수발한 정성은 그렇다 치고, 철새 따라 나도는 영감을 ‘오죽하면 그러겠느냐’고 편드는 말들이 더 참기 어려웠다. 얼토당토않은 동정표였다. 영감은 공사판을 따라다니며 토목 일을 보았다. 목돈을 만지면 방석집으로 갔고 없으면 대폿집을 드나들었다. 부뚜막에 먼저 오르는 얌전한 고양이처럼 가는 곳마다 여자 복이 많아 용자씨 속을 무던히도 썩였다. 한때 그녀에게 매독을 옮긴 적도 있었다. 딴 데 눈을 팔면서 조강지처를 홀대할 만큼 낯가죽이 두껍지도 못했다. 이래저래 성정이 불같은 용자씨 혈압만 오르내렸다.

 용자씨는 칠 년 전에 뇌출혈로 쓰러져 몸의 반쪽이 마비가 됐다. 아기처럼 주는 대로 받아먹고 기저귀에 용변을 본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용자씨의 일과는 먹고 싸는 일에 집중하고 매달리고 기를 쓰게 됐다. 배설이 항상 큰 문제였다. 뒤가 묵직한데도 일주일이 넘도록 변을 보지 못할 때는 아랫배가 불쾌하고 노폐물이 목까지 차오른 듯 답답했다. 온몸이 유독가스에 서서히 중독돼 가는 기분이다. 한번씩 아랫배를 누르고 괄약근에 힘을 주며 몸부림치다 보면 굳어 있던 몸이 니은자로 휘어 있곤 했다. 얼굴이 벌개지며 숨이 가쁘고 진땀이 난다. 미쳤어, 미쳤어, 죽을라고 환장했나 봐. 그러다 터지면 이번엔 정말 가는 거여, 알아? 그럴 때마다 딸은 빈정거렸다. 그려, 제발 가기라도 했으면 좋겄어. 오도 가도 않고 항문에서 딱딱하게 굳어가는 똥을 달고 일주일만 살아봐라. 용자씨는 속으로 웅얼거린다.


 딸깍. 철문이 열리는 소리에 용자씨는 눈을 떴다. 딸이 왔다. 이제 됐다. 맛있는 냄새에 침이 고이듯 가까워지는 발짝 소리에 등짝이 스멀거린다. 우선 기저귀만이라도 빼줬으면 좋겠다.

 “아니, 이게 뭐야. 아휴, 나 미쳐. 아주 난장판이구만. 이 바퀴벌레 한쌍, 징허네 징해.”

 바깥 공기와 함께 술 냄새가 훅 퍼져 들어온다. 또 섞었구먼. 음식물이 쉬고 썩은 내가 난다.

 “공주님 오셨어?”

 “공주는? 지랄!”

 딸의 도끼눈에 용자씨는 딸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 눈을 내리뜨고 손으로 자신의 아랫도리를 쿡쿡 찌르는 시늉을 한다.

 “알았어, 숨 좀 돌리고. 그러니까 엄마는 대접을 못 받는겨. 나 방금 문지방 넘었어. 어련히 알아서 해드립니다요. 안 그래도 머리 아파 죽겠는데 방에 들어오니까 지린내 땜에 토할 거 같아.”

 딸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바닥에 널린 것들을 거친 발길질로 쓸어 한군데 모아놓는다.

 “그러니까 이것부터 빨리 빼달란 말여!”

 용자씨가 참다못해 소리를 지른다.

 “사람이 참을성이 없어, 상황 좀 봐가면서 말하면 안 돼? 항상 그런 식이야, 엄마는. 남의 사정이야 어찌됐든 자기만 괴롭다 하고 자기만 편해야 하고, 자기만 알지.”

 “왜 이렇게 시끄러워?”

 영감이 깼다. 귀가 더 어두워지는지 그런 척하는 건지 영감은 웬만한 말에는 모르쇠로 일관이다. 모녀가 싸우든 마누라가 물을 달라고 소리를 치든 모르쇠다. 그러다가도 분위기가 수위를 넘는다 싶으면 슬그머니 모녀 사이에 끼어든다.

 “왔냐? 밥 안 줘?”

 영감은 딸만 보면 밥 타령이다.

 “아휴, 뭐든지 꼭 쌍으로 놀아요. 이쪽은 빼 달라, 저쪽은 밥 달라. 밥은 타이머 꽂고 갔으니까 다 됐을 테고 국만 데우면 돼. 사람 꼴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난리들이라니까.”

 딸은 기어이 그대로 방을 나간다. 용자씨는 눈을 감아버린다. 예전의 용자씨 같으면 딸의 뒤통수로 벌써 재떨이가 날아갔을 게다. 갑자기 뭔가가 입술을 찌른다. 영감이 베지밀에 빨대를 꽂고 용자씨 입 속으로 들이밀고 있다. 누운 채 굶어죽을까 봐 틈만 나면 과자니 귤이니 입속으로 쑤셔 넣으려 한다.

 “먹어.”

 대책없는 영감이다. 본디 타고난 품성과 상관없이 용자씨와는 하나에서 열까지 어긋나기만 하는 사오정 같은 사람이다.

 “저리 치우소!”

 고개를 홱 돌려 빨대를 뿌리친다.

 “성질머리하고는.”

 영감은 용자씨가 뿌리친 베지밀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간다. 그 바람에 빨대 구멍에서 흘러나온 액체가 용자씨 턱 밑으로 흘러 목 언저리까지 적셨다. 맑은 물도 아니고 이런 끈적끈적한 액체가 묻는 건 질색이다. 씻으러 갈 수도 없고 누가 알아서 닦아 주는 것도 아니니 이렇게 사소한 얼룩과 냄새들이 찌들고 발효되는 과정을 용자씨는 고스란히 견뎌야 한다. 아무도 용자씨의 그런 얼룩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럴 때면 자신이 커다란 오물덩어리가 된 것 같다. 큰 오물덩어리에 한 점 얼룩이 묻는 것이다. 오물덩어리에 묻는 것은 이미 얼룩이 아니었다. 모든 일이 그런 식이다. 깨끗한 곳에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지만 쓰레기가 쌓여 있는 곳에는 아무 거리낌 없이 휴지를 버리고 소변을 보는 것이다. 얼룩이라는 건, 얼른 세면실에 가서 씻거나 옷에 닦은 뒤 다음날 얼마든지 빨아 입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나 쓰는 말이다. 그래서 용자씨는 자신에게 묻는 것은 얼룩이 아니라 모욕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턱받이를 해주지 않고 먹이려들 때나, 배려한답시고 먹을 것을 입에다 쑤셔 넣으려 할 때 화가 난다. 비록 입속에서 구린내가 가실 날이 없고 살비듬이 생선비늘처럼 떨어지고 락스를 아무리 넣고 빨아도 지린내가 빠지지 않는 옷과 이불을 걸치고 있지만, 용자씨는 그랬다.

 일상이 비록 남의 손을 빌려야만 유지되는 것이긴 하지만 용자씨가 고집스럽게 요구하는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땀이나 눈물 닦는 수건과 음식물이 얼굴에 묻었을 때 닦는 수건을 구별할 것, 그리고 허리 아래를 닦는 수건은 절대로 허리 위에는 쓰지 말 것, 그녀가 먹는 것은 오로지 여러 가지 곡물 죽과 동치미가 전부인데 수저를 따로 쓸 것 등이다. 죽 뜨던 수저로 동치미를 뜨면 금세 국물이 지저분해지고 그렇게 먹다 남은 동치미를 버리는 것도 아까운 일이다.


 “벌려!”

 “생각 없어.”

 “아, 또 왜 그래? 심통 부리지 마. 죽 데웠잖아.”

 딸은 죽을 뜬 수저를 용자씨 입 속으로 거칠게 들이민다. 용자씨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허옇게 더께가 덮인 용자씨의 혀는 플라스틱 같다. 혀 특유의 섬세한 감각과 부드러움은 남의 손을 빌려 수저질하게 되면서부터 잃어버렸다. 딸이 기계적으로 들이미는 수저를 혀를 놀려 밀고 당기며 조절한다. 입속에서 음미할 여유는커녕 기를 쓰며 죽을 삼킨다. 식도가 점점 차오른다 싶으면 혀로 요리조리 수저를 밀며 시간을 번다. 용자씨 이마에 땀이 맺힌다. 딸의 손놀림을 가늠해야 하기 때문에 딸을 향한 용자씨의 번득이는 눈빛은 자동차 헤드라이터를 켠 듯 형형하다. 그 눈빛 때문에 딸의 손놀림이 더 빨라진다. 꿈틀거리는 혀의 힘이 수저를 통해 전해질 때마다 딸은 진저리가 난다. 하루 세 번 반복되는 이 행위를 할 때마다 ‘왜?’라는 의문이 고개를 쳐든다. 오로지 먹고 배설하는 기능뿐이면서, 그마저도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면서, 엄마는 왜 이다지도 먹을 것에 집착하는가? 그녀 자신은 속마음과 달리 왜 죽을 끓여내고 악착같이 먹이는가? 불가사의한 모순이었다. 대접이 비자 딸은 거꾸로 들어 비었음을 확인시킨다. 마지막으로 변비약 두 알을 입속으로 던지듯 집어넣고 물컵에 빨대를 꽂아 들이댄다. 한 모금, 두 모금, 세 모금. 홀수를 좋아하는 용자씨는 자신의 의지로 가능한 것은 모두 홀수 번으로 끝낸다. 용자씨는 딸의 눈을 보며 손가락으로 다시 뒤를 봐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알았다구. 아버지 식사나 끝내야지. 지금, 밥상 앞이야.”

 보채는 아이 단도리하듯 딸은 단호하다. 용자씨는 고개를 들어 영감의 밥상을 본다. 영감은 둥근 소반으로 독상을 받고 식사중이다.

 “뭐 맛난 거 아버지만 따로 줬을까봐? 그런 거 없어. 하여간 그놈의 식탐은…….”

 딸은 용자씨의 입가를 닦아주고 영감을 향해 돌아앉는다. 자박하게 조린 조기를 뜯어 영감의 밥숟가락 위에 얹어 놓는다. 마지못해 우물거리던 영감이 활기를 띤다.

 “너도 먹어야지.”

 용자씨가 말한다.

 “입맛도 없고……. 여기저기 쑤시고 죽겠네.”

 “그러게 집에서 잠이나 잘 것이지, 왜 밤에 술 마시고 다녀.”

 딸은 난데없이 뒤통수 맞은 얼굴이다.

 “말이라고 해? 일 년 삼백육십오일 하루 이십사 시간 꼬박이 엄마 아버지 옆에만 붙어 있으란 소리야? 내 생활은 어디 있고? 이러다 스트레스로 팍 뒈져야 엄마 속이 시원하지?”

 “밤에 나가서 술 마시고 남자 만나고 노는 게, 그래 네 생활이냐?”

 “환장허겠네, 내가 술을 마시든 남자를 만나든 엄마가 무슨 상관이야? 나도 낼 모레면 환갑이야. 동의서 받을 나이 아냐. 나도 자식 며느리 수발 받을 나이라구. 엄마 눈에는 아직도 내가 맨날 사고치고 다니는 어리숙한 년으로만 보여? 나 이계월, 밖에 나가면 똑부러져. 화끈하고 정 많고 의리있고.”

 “화끈하고 정 많아서 그래, 돈 한푼 없는 것이 보험쟁이 친구 보험 다 들어주구 건강식품인가 뭔가 파는 친구 물건 다 팔아주구, 쩔쩔거리며 이리 꿔다 저리 메꾸구 그러냐? 엄마 아버지 몫으로 나오는 교통비랑 노령연금 다 빼다가 의리 만들어?”

 “나 미쳐. 알지 못하면 주둥아리 닥치셔. 흑마늘이니 홍삼이니 다 누구 입으로 들어갔는데? 시도 때도 없이 그거 안 주나 하고 기다린 사람 누구여? 정말 이러니 정 떨어지는겨. 내가 뭣하러 몸 망가져가며 이런 놈의 집구석에 붙어있나 몰러.”

 딱. 영감이 수저를 소리내며 놓았다. 딸은 붉으락푸르락 하며 소반을 들고 나간다. 오십 중반이 되어가는 딸은 아직 혼자다. 잠시 미용실이나 옷가게에서 일을 한다며 집을 떠나 살아보기도 하고 그러는 중간에 남자와 동거도 했지만 결국은 혼자 빈손으로 돌아왔다. 딸도 처음부터 사나웠던 건 아니었다. 용자씨가 쓰러진 뒤 2, 3년 동안 딸의 정성은 극진했다. 용자씨가 7년째 누워 있으면서도 큰 병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도 딸이 몸에 좋다는 약초를 끊이지 않고 달여 준 덕분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또 그 때문에 목숨이 이리도 질겨졌나 싶기도 하다.

 딸은 심호흡을 한다. 들고 나온 소반 위의 남은 반찬을 플라스틱 볼에 쏟아 넣고 고추장을 한 숟갈 퍼 넣어 밥을 비빈다. 이러니 위장병이 나을 리가 없다. 위장, 관절, 혈압, 허리병에 불면약까지 복용하는 약만도 한줌이다. 한의사는 기혈이 막혔다 하고 양의는 스트레스성이라 했다. 어제는 순영이 미장원에서 등에 부황을 뜨다가 죽는 줄 알았다. 갑자기 손발이 저리고 두근거리면서 숨이 가빠왔다. 정신을 놓게 될 것 같아서 119를 불러달라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순영이 머리를 말다 말고 방으로 달려와서 주무르며 난리를 피운 뒤에야 진정이 됐다. 플라스틱 볼을 가랑이 사이에 놓고 비빈 밥을 입에 담는다. 먹다 보니 좀 전에 찜질방에서 미역국을 먹은 게 생각났다. 요즘은 끼니를 챙겼는지 말았는지, 배가 고픈 건지 부른 건지, 방금 뭐했는지 뭘 하려고 했는지 생각도 안 나고 머릿속에 부옇게 때가 낀 듯하다. 누워 있는 엄마는 아직도 서슬퍼런 성질이 그대로인데다 눈치는 어찌나 빠르며 귀는 또 얼마나 밝은지, 보기만 해도 상대방 속을 샅샅이 꿰뚫어 숨이 턱 막힐 지경이다. 골목에서 나는 발소리만으로도 누군지 알아맞히고 얼굴만 보고서도 무얼 하다 왔는지 알아낸다. 세월이 흐를수록 정신은 더 멀쩡해져간다. 사지가 굳은 사람은 엄마인데 목에 사슬이 걸린 것은 자신이었다. 어릴 때부터 엄마 품에서 벗어나려고 그리도 애를 썼건만 결국 이렇게 붙들려 살게 되다니 어처구니없다.

 답답한 마음에 점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점쟁이는 용자씨가 그 해를 넘기지 못 할 거라고 했다. 영감은 진작에 갔어야 할 사람인데 마누라 지켜주느라 아직 못 가고 있다는 것이다. 용자씨가 가면 영감도 곧 따라갈 것이니 준비나 잘 하고 있으라 했다. 그 해 내내 딸은 마지막이려니 하며 귀하고 맛난 음식을 내놓고 품질 좋고 비싼 기저귀를 사고 용자씨 잔소리를 다 받아내며 정성을 들였다. 안방 문을 열 때마다 긴장이 됐고 잠든 용자씨의 코 밑에 손가락을 대보기도 했다. 그러나 죽음의 그림자는 집 안까지 들어오지는 못했다. 딸은 눈이 많이 내리던 날 창문을 열었다가 마당 장독대 위에 까치가 죽어 있는 걸 보았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대추나무 아래 고양이가 기어들어와 쓰러지더니 하루를 못 넘기고 죽었다. 그 뒤로 삼 년이 지났다. 안방의 붙박이로 누워 있는 용자씨와 영감, 그리고 딸의 눈동자 속에는 기다림에 지친 서로의 모습이 정물처럼 담겨 있다. 조바심과 지겨움도 한철 메뚜기떼처럼 지나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쁜 기억들만 남는다. 두어 숟갈 먹다 말고 찬장에서 약 바구니를 꺼냈다. 먹다 만 약과 새로 받아온 약이 한데 섞여 바구니는 약으로 수북했다. 아프니까 처방은 받아오지만 복용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어제 받아온 위장약 봉지를 일일이 뜯어 분홍색 작은 알약만 꺼낸다. 잠을 못 잔다고 하자 언제부턴가 의사는 분홍색 알약을 추가로 처방해 주었다. 이번에도 열흘치, 열 알이다. 흰 봉지들 틈에서 작은 갈색 약병을 찾아내어 그 속에다 모두 집어넣는다. 약은 이제 반 병을 채웠다. 딸은 절대로 용자씨처럼 삶을 이어가지는 않겠다고 다짐한다.


 오줌으로 물컹거리는 기저귀를 빼내고 나니 용자씨는 살 것 같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딸만큼 자신의 몸을 잘 알아주는 이가 없다. 요즘 딸은 허리가 아프다며 기저귀 가는 일을 힘겨워했다. 딸은 용자씨 몸을 옆으로 굴리고 기저귀를 빼낸 뒤 따뜻한 물수건으로 등을 닦아내고 긁기 시작한다. 용자씨가 가장 기다리는 순간이다. 옷과 기저귀와 수건 따위에 짓눌려 돋을새김처럼 금이 그어진 등판을 딸은 손톱을 세워 사정없이 긁는다. 용자씨는 몸을 부르르 떨며 새소리 같은 비명소리를 낸다. 이럴 때 용자씨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영감과의 잠자리도 이만큼 좋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순간 모든 게 멈춰지면 얼마나 좋겠는가 생각한다. 세상이 끝나든지 자신이 끝나든지. 얘야, 조금만 더, 조금만. 속으로 용자씨는 애원한다. 그러나 딸은 이내 한숨을 크게 토해내며 손을 놓고 주저앉는다.

 “야아, 어깻죽지 아래 뭐가 났나 만져 봐라.”

 용자씨 목소리가 안타깝다.

 “으이그, 한도 끝도 없어. 이제 고만해.”

 딸은 피가 스며들어 벌건 손톱을 용자씨 눈앞으로 들이댄다. 아물만하면 또 그렇게 긁으니 상처가 덧나기도 했다. 뒤를 해결하고 나니 무릎과 발목이 저릿저릿 쑤신다. 마비된 왼쪽과 달리 아직 감각이 남아 있는 오른쪽이 칭칭거리며 신호를 보낸다. 

 “아씨, 거기 화장대 속에 물파스 있어?”

 “그냥 발라 달라 그래. 아씨니 뭐니 하지 말고. 그리고 한 가지 일이 마저 끝나거든 시켜. 아직 기저귀도 못 채웠어.”

 그리고 물티슈를 뽑아 사타구니를 꼼꼼히 닦고 새 기저귀를 끼우고 골반골에 닿지 않게 헐겁게 접착 밴드를 붙인다. 딸은 용자씨가 쓰러지고 나서 YWCA에서 하는 간병인 교육을 받았다. 그래선지 초기에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 간병 일을 해냈다. 요령 있게 몸을 일으켜 하루에 한 번 침대에 앉혀주기도 하고 누워 있는 채로 비누칠을 하여 몸을 닦아주기도 했다. 변이 막히면 관장도 해주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딸은 함께 간병인 교육을 받은 이가 병원에서 하루의 반만 일을 하고도 150만원을 받았다더라고 했다. 용자씨는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때만 해도 괜찮았다. 지방 변두리라 얼마 되지는 않아도 이 집의 전세금으로 딸의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딸은 부모고 돈이고 다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이 진심이든 홧김에 내뱉은 것이든 용자씨는 섭섭하지도 않았고 화도 나지 않았다. 용자씨 자신도 목숨에 진력난 지 오래였다. 더 기막힌 것은 목숨에 진력난 것과 먹고 싸고 편하고 싶은 욕구는 별도의 문제라는 거였다. 딸은 몸이 굳어갈수록 먹고 싸는 본능에 강렬해지는 용자씨에게 위선자라니 이중인격이라니 하며 서슴없이 욕을 해댔다. 이제는 그마저도 익숙해져서 용자씨는 차라리 딸의 욕설을 들으며 편안한 잠을 자곤 했다. 용자씨가 죽고 싶다 하면서도 혀의 힘이 강해지는 것처럼 꼴보기 싫다 하면서도 딸은 용자씨를 위해 콩을 불려 믹서에 갈고 팔이 아프게 저으면서 죽을 쑤었다.

 방 밖 어딘가에서 약하게 전화 벨소리가 들린다. 

 “전화 받아봐!”

 기다리던 중요한 전화이기라도 하듯 용자씨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친다.

 “깜짝야. 어련히 받을 걸 왜 그리 큰소리야?”

 딸은 투덜거리며 나간다. 딸의 휴대폰에서 나는 소리며 자신과 관계없는 전화라는 걸 알면서도 용자씨는 귀를 기울였다. 웅얼거리는 소리의 크기로 보아 통화는 작은방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내용을 알 수는 없었으나 딸의 목소리는 서슬이 사라져 부드러웠고 간간이 웃음소리도 섞였다. 평소 친구들과 통화를 한대도 저러지는 않았다. 별일이었다. 한번쯤 놀랄 만한 소식이 있었으면 좋겠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놀랄 만한. 쓰러져 누운 뒤로 이 세상마저 정지해 버린 건 아닐 텐데 용자씨는 진공의 세계에 갇혀버린 듯하다.

 통화를 끝내고 들어온 딸의 표정이 사뭇 밝다.

 “누구여?”

 “알면?”

 딸은 빈정대면서도 싫지 않은 기색이다. 용자씨는 때를 놓치지 않고 내지른다.

 “이 년아, 이렇게 누워 있어도 내가 니 에미다.”

 “지랄! 이러니까 틈을 주면 안 돼. 부탁이니까 좀 먹힐 소리를 하소.”

 딸은 이내 받아치지만 비수가 담긴 어조는 아니다. 뭔가 딴 생각에 마음이 뺏겨 있다. 용자씨는 의기소침해진다.

 “참, 내, 살다 살다……. 내 안부 궁금해 하는 사람 첨 봤네.”

 딸은 속에 담아두고 혼자 음미하는 체질은 못된다. 어제 딸은 남자를 만났다고 했다. 미장원 친구와 대폿집에서 한잔하고 있을 때였다. 옆자리에서 사십대 남자가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누구를 기다리는 기색도 없고 한숨만 푹푹 쉬고 있어서 딸이 먼저 말을 걸었다 했다. 젊은 양반이 무슨 사연이 있어 혼자 앉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잔 받으시라고. 남자는 합석하고서도 묻는 말에나 겨우 대답할 뿐 말이 없었다. 그러다 식당이 문을 닫자 노래방에 가자고 제안한 건 남자였다. 노래방에서도 남자는 두 여자가 부르는 노래를 듣기만 할 뿐이었다. 마이크를 대줘도 한사코 사양하며 듣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했다. 말도 없고 노래도 안 했지만 분위기가 싫지는 않았는지 끝까지 앉아서 감상하더라고, 딸은 나긋한 목소리로 지난 밤 일을 늘어놓았다.

 “어제는 웬일로 노래도 어찌나 잘 되는지 밤새 부르라면 부르겠더마는. 마지막엔 내 십팔번 패티김 노래 있잖아. 가슴~속에 스며드는~ 고독이 몸부림칠 때~ 크아, 마무리 확실하게 했지. 순영이랑 나는 찜질방으로 가고 그 사람은 택시 타고 갔는데, 누님 잘 들어가셨냐고 전화까지 해주네. 어제 고마웠다면서.”

 “사내놈들 다 똑같아.”

 용자씨는 체념하듯 내뱉는다. 고작 영감 한 사람 겪었을 뿐인데 용자씨는 이 세상 사내를 다 겪은 것처럼 말한다.

 

 수요일은 자원봉사자 유 선생이 오는 날이다. 유 선생이 오는 날은 집 안이 생기가 돈다. 평소 같으면 늘어지게 자다가 아침인지 점심인지 애매한 시간에 상을 차리던 딸이 일찍 일어나 수선을 떤다. 딸은 마음 놓고 외출 준비를 하고 영감도 자리에서 일어나 은근히 기다리는 눈치다. 일주일에 한번 오는 유 선생은 용자씨와 영감이 유일하게 접촉하는 외부인이기도 했다.

 딸은 옷을 이것저것 입어보느라 바쁘다. 나잇살이 찐 건지 스트레스 살인지 몇 년 새 체중이 많이 불었다. 양볼과 턱, 어깨, 팔뚝, 배와 허리, 엉덩이 에 이르기까지 질이 안 좋은 라텍스를 덕지덕지 붙인 것 같다. 재킷을 입으면 암홀이 끼고 섶이 벌어졌다. 바지를 입으면 지퍼 끝부분이 벌어지고 밑위가 찢어질 듯했다. 결국 딸은 투덜거리며 고무줄 바지에 바바리를 걸쳤다.

 “아니, 아버지가 우황청심원을 또 두 개나 잡쉈네. 엄마 것까지 먹어버렸어. 비상으로 두는 건데, 에구 웬일로 면도까지 하셨대? 면도하라고 노랠 부를 땐 못 들은 척하더니.”

 영감 머리맡에서 빈 약병을 쳐들어 보이며 딸이 말했다. 영감은 여전히 못 들은 척 텔레비전에 눈을 박고 있다. 영감은 오늘 또랑또랑해 보인다. 그게 단지 우황청심원을 두 병이나 먹고 면도를 해서만은 아니라는 걸 용자씨나 딸은 안다. 딸은 재미있다는 듯 킬킬거린다. 먹을 때와 화장실 갈 때 빼고는 진종일 누워 사는 영감은 유 선생이 오면 그나마 일어나 집 안을 걸어다녔다. 어제부터 그들은 유 선생 얘기를 하며 오늘을 기다렸다.

 40대 초반의 유 선생은 지난해 정기 방문 오는 보건소 간호사를 따라왔다가 인연이 됐다. 얼굴이 둥글넓적하고 싹싹한 여자였다. 청소하고 점심상 봐주고 몸도 닦아주고 얘기도 나누며 서너 시간 돌봐 주다 갔다. 영감은 유 선생에게 아기처럼 굴며 생떼를 쓰기도 했다. 딸이 해준다는 걸 마다하고 유 선생한테 손톱 발톱을 깎아달라는 건 점잖은 표현이고 숫제 누워서 일으켜 달라거나 밥을 먹여 달라고 했다. 유 선생이 손을 잡아 주면 영감은 팔까지 만지려 들고 거동을 도와주면 갑자기 몸을 돌려 유 선생을 껴안기도 했다. 그럴 때 영감은 호흡이 거칠어지고 팔 힘도 유 선생이 당황할 만큼 셌다. 그때마다 유 선생은 몸을 자꾸 움직여야 운동이 된다며 영감이 민망하지 않게 피해 갔다. 서너 번 그런 일을 겪더니 유 선생이 어느 날 커다란 곰인형을 가져와 영감 품에 안겨 주었다.


 “어르신, 여기 그림 속에 뭐가 있어요?”

 유 선생은 8절 크기의 퍼즐그림판을 영감 앞에 내보이며 묻는다. 영감은 배시시 웃는다.

 “웃지만 말고 말씀 좀 해 보세요.”

 그래도 영감은 웃기만 한다.

 “소방차, 구급차, 경찰차, 이삿짐차, 풍선 든 아이, 사탕 든 아이, 피자가게…….”

 참다못한 용자씨 입에서 대답이 줄줄 나온다. 늘 같은 질문이었고 늘 같은 상황이 된다. 용자씨는 누워 있고 유 선생과 영감은 방바닥에 마주 앉아 있다.

 “할머니는 보지도 않고 잘도 아시네. 지금도 총기가 좋은데 젊을 때는 얼마나 좋으셨을까?”

 유 선생이 웃으며 퍼즐조각들을 바닥에 쏟아 놓아 밑판과 분리시켰다.

 “자동차들부터 놓아 보세요.”

 영감은 유 선생이 밀어주는 조각부터 집어 든다.

 “좋고말고지. 우리 아버지가 그 시절에 일찍 깬 사람이라 여자도 배워야 된다고 나를 학교에 보냈어. 어릴 때부터 하나를 가르쳐주면 내가 열을 알았다고. 어찌나 똑똑했는지 사촌언니들도 나한테 와서 배웠지. 여학교 가서는 내가 계속 반장을 맡았어. 일어섯, 앉아, 앞으로 가, 뒤로 돌아, 구령도 쩌렁쩌렁 얼마나 잘 붙였는지 운동장에서 조회할 땐 항상 내가 지휘했다우.”

 용자씨의 레퍼토리가 시작됐다. 어린 시절 에피소드부터 부모 형제를 비롯해 동네 사람들과 얽힌 사건들, 영감과 결혼하던 당시의 일들. 용자씨가 입을 열어 이야기를 시작하면 누가 듣거나 말거나 자신이 됐다 싶을 때까지 이어진다. 용자씨는 어떤 말이든지 뱉을 만큼 내뱉어야 머릿속이 청소가 되고 가슴도 후련해졌다. 유 선생은 간간이 장단을 맞추고 영감은 말없이 퍼즐에 열중한다. 100개의 퍼즐 조각은 모양이 다 제각각이다. 영감은 퍼즐조각을 낱낱이 모양으로만 맞추어나갈 뿐 그림의 내용으로 맞추지 않는다. 그림 속에는 여러 종류의 차들이 도로를 달리고 아이들이 인도로 걸어가고 가게들이 즐비하다. 피자가게에 들어가는 아이, 풍선장수, 엄마 손을 잡은 아이……. 분주하면서도 정겨운 거리의 풍경이다. 유 선생은 일부러 그런 그림을 골라왔는데 영감은 수십 번을 맞춰도 퍼즐판 속에 어떤 그림들이 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영감은 배가 그려진 퍼즐조각을 들고 한참 헤맨다. 배는 강물이 있는 곳에 있겠지요? 강물이 어디 있나 찾아보세요. 힌트를 줘도 영감은 자신의 방식을 버리지 못했다.

 “…… 찾아봐요. 작은 방에 있나 찾아봐요. 유 선생님, 유 선생님.”

 실타래처럼 풀어놓던 얘기 끝에 용자씨가 유 선생을 부른다. 용자씨는 딸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딸이 외출만 하면 불안해하는 걸 알고 있기에 유 선생은 그러려니 귓등으로 들어 넘겼다. 오늘 용자씨는 유난히 뜬금없이 말을 섞는다. 딸은 아무나 저 좋다는 사람만 있으면 밥이나 해주며 함께 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작은 방에 우리 애 가방이 있나 좀 봐줘요. 그 바퀴 달린 빨간 색 가방 있잖아. 끌고 다니는 큰 가방 말이우.”

 가방은 작은 방 구석에 있었다. 용자씨는 또 딸에게 전화를 해보라고 성화다. 딸의 휴대폰은 역시 전원이 꺼져 있다. 유 선생이 퍼즐 맞추기를 끝내고 점심을 차리려 주방으로 나가자 영감이 비척거리며 따라 나간다.

 “이봐요, 이봐. 자리에 누워 잠이나 잘 것이지 쓸데없이 어딜 돌아다녀?”

 용자씨가 영감을 향해 면박을 주었지만 영감은 못 들은 척한다. 영감은 엄마를 따라다니는 아이처럼 유 선생 옆에 우두커니 서 있다. 무슨 행동이 나올지 몰라 유 선생은 긴장이 된다. 들어가 계시라고 말하려는 참에 비상벨 소리가 들렸다. 벨소리는 날카로운 흉기가 유리를 깨고 들어온 것처럼 요란했다. 유 선생은 다급하게 안방으로 들어갔다. 용자씨는 오른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베지밀, 베지밀……. 냉장고에서 베지밀 세 개 꺼내서 선생님 하나 드시고, 나도 먹고, 영감도 주세요. 점심 차리지 말고 그걸로 한끼 때우고 치우자고.”

 유 선생이 난감해했지만 용자씨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베지밀 하나로 점심을 때웠다. 용자씨 기저귀를 갈고 유 선생은 평소보다 일찍 나섰다. 대문 앞에는 담배꽁초와 과자봉지, 종이쪽지 등 쓰레기로 지저분하다. 처음 몇 번 유 선생은 쓰레기를 줍고 비질도 했으나 끝없이 쌓이는 쓰레기로 이내 지쳐버렸다. 영감이 거동이 자유로웠을 때는 날마다 비질을 해서 골목 안이 환했었다. 이제 이 근처는 사람의 발길이 끊긴데다 악취가 풍기고 스산한 기운이 돌았다. 영감과 용자씨가 들어있는 집 자체가 그대로 폭탄이었다. 뇌관을 슬슬 달래가며 저절로 용도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폭탄. 대문 앞에 설 때마다  선생은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야.’고 머리를 젓는다. 그러나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순간 유 선생에게는 다음 일과가 바쁘게 다가왔고 버스는 일상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오후 시간은 고요히 지나갔다. 유 선생이 돌아가자 영감도 다시 이불을 고치처럼 몸에 둘둘 말고 누워 버렸다. 한 방에 있으면서도 두 사람은 각자 타임머신을 타고 먼 차원의 세계로 떠난 것처럼 시간을 보낸다. 어둑해지도록 딸은 돌아오지 않는다. 딸의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손에 쥐고 용자씨는 얕은 잠을 자다 깨다 한다. 창밖으로 나무 그림자가 얼렁거릴 때마다 숨죽여 귀 기울인다.

 깜깜해지자 영감은 유령처럼 소리 없이 일어난다. 창으로 희부염한 달빛이 들어오고 영감의 구부정한 실루엣이 드러난다. 영감은 용자씨 침대를 향해 비실비실 걸음을 떼어놓는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한나절을 보냈을 뿐인데 먼 여행에서 돌아온 것처럼 용자씨와 영감은 안부를 확인한다. 무사귀환에 대한 안도인지 실망인지 두 사람은 어둠 속에서 우두망찰 마주한다. 영감이 손을 들어 이불을 들추려 한다. 용자씨 입에서 난데없이 구령이 떨어진다.

 “뒤로오 돌앗!”

 영감은 두 손을 차렷 자세로 붙이고 뒤로 돈다.

 “앞으로잇 갓!”

 영감은 최대한 꼿꼿한 자세로 앞을 향해 걷는다.

 “우향 우! 앞으로잇 갓!”

 영감은 방문 앞에서 옆으로 방향을 틀어 다시 걷는다.

 “좌향 좌! 앞으로잇 갓!”

 영감이 엉거주춤 멈추려할 때마다 용자씨의 구령은 채찍질하듯 쩌렁쩌렁 높아진다. 영감은 방 안을 돌고 돌았다. 소리를 지를 때마다 용자씨의 기저귀는젖어들어 이미 등짝까지 척척해졌다. 용자씨는 구령을 멈추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