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2호...
   2019년 10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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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14년 1월 41호부터 2014년 10월 53호까지...
편집자
79754 2014-11-03
38 병(甁) 속의 새 1 외1편/신순말 [1]
편집자
5217 2010-07-30
10.08월 3호 시 병(甁) 속의 새 1 신순말 포로로 새 한 마리 나뭇가지에 앉았다 몇 번 몸을 출렁이다 이내 반듯해지는 가녀린 나뭇가지라도 그 무게쯤 가뜬하다 움직이는 새를 못 움직이는 나무가 저렇듯 품어주고 있음을 생각하니 세상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가득하다 새가 깃든 고운 병 깨트리지 않아도 입이 좁은 병속 새를 누군가 꺼냈을까 앉은 새 떠난 후에도 가뿐히 선 나무처럼 해우소에서 -근심에 관한 명상- 신순말 어설피 씹은 하루 트릿하게 있노라면 매 순간 순간이 하루가 되는 거라 그 말씀, 생목 오르고 새 한 마리 날았다. 저 새, 순식간에 근심 풀어 나는데 한 길 사람 속 삭히지도 못하여 한나절 열두 고개를 돌고돌아 가는 길. 없는 복에 눈멀어 자꾸만 그윽대며 서리어 앉히는 일 늘 쉽기야 하는가 근심이 근심이도록 길을 내어 주는 일.  
37 창작과 의식
편집자
4024 2010-07-30
주목! 이 문학단체 본지(문예지 ‘창작과 의식’)는 2004년 11월 창간호를 발행하며 한 척의 배를 오늘 우리 문단에 띄우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지만 제호의 원칙에 따라 ‘창작’에 몰두하되 ‘의식’있는 작가로 3-40명 정도의 작가들로 결성된 것입니다. 당시의 우리 문단에는 등용문은 열려 있었지만 너무 흔쾌히, 즉 아무나 열고 들어갈 수 있는 문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큰 차이점이 있는 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등단비용이 어느 정도 설정이 되면 작품에 관계없이 마구잡이 형식으로 등단이 가능했다는 게 본지 결성에 큰 영향을 준 것이라 봅니다. 이에 본지 작가회(당시 ‘문학회’) 회원들이 십시일반 협조하는 체제로 글다운 글, 시다운 시를 게재해 보자는데 뜻을 모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 속에는 많은 담지 못할 입방아도 들었습니다. 이에 아랑곳 하지 않은 채 묵묵히 걸어온 길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며, 본지 제호를 벗어나지도 벗어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조금 아쉽다면, 초심에서 벗어난 경우 뼈를 깎아내는 아픔이었지만 과감히 배제를 시켜야 했다는 것입니다. 즉 ‘大를 위해 小를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5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몇 번이고 접어야하는가를 고심하기도 했습니다만 본지가 추구하고자 했던 ‘문학상’ 및 ‘청소년 백일장’에 미련을 버리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청소년 백일장은 전국적 내지 지역적으로 선별하여 즉석이거나 메일로 접수하여 시도하면서 ‘장원’ 1명, ‘우수’ 2명, ‘가작’ 3명을 당선시키면서 상장이나 부수적인 상품권 지급에서 본지의 어려운 재정난에 부닥치기도 하여 6회를 마감으로 일단 보류하고 있습니다만, 본지 작가회에서 월 회비 1만원씩 갹출하여 새로운 발돋움을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운영이사님 외 몇 몇 지인들로 하여금 본지에서 주관한 ‘문학상’ 제도를 개설하여 상금 50만원 지급과 동시에 상패를 증정하여 2009년 창작문학상 ‘신 영’ 작가님, 의식 문학상 ‘김청수’ 시인님에 이어 올 해 2회는 통합하여 ‘창․의 문학상’으로 설정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1급 뇌병변 장애인 ‘김철이’ 작가님을 선정하기도 했습니다.(참고로, 본지 문학상 선정에 있어서는 작품의 우월성은 물론이지만 문학 활동함에 있어 어려움이 있는 작가를 선정하기도 함.) 본지의 카페는 문학지의 홈페이지와 다름없다고 봅니다. 그저 카페활동이 아닌 작가의 작품을 올리고 이에 선정되는 작품은 문예지의 텍스트화로 출간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본지 출간에 있어서 등단식과 함께 통상 3개월에 한 번 정도 모이는 것으로서 어떤 모임이 되었던 문학의 고취성이 담기지 않는다면 모임을 갖지 않습니다. - 참고 1 : 본지는 현재 통권 22호(여름호) 발간 중이며, 출판사를 겸하고 있으므로 개인시집 30호를 출간 했습니다. 창작과 의식(http://cafe.daum.net/feelingpoetry) 발행인 박세문("백강" <tpans1114@hanmail.net)  
36 용사동락락龍蛇同樂樂 외1편/차영호
편집자
4427 2010-07-30
10.08월 3호 시 용사동락락龍蛇同樂樂 차 영 호 문경 가은에 가면 연개소문 세트장이 있고 삼족오三足烏 날개 펄럭이는 고구려적 안시성도 있어 성안 옥사獄舍에 걸린 주련柱聯 용사동락락龍蛇同樂樂 톡 까놓고 뒹굴면 왕후장상이나 백정고리짝이나 매일반이라는 말씀 저거 요새도 유효한 쿠폰일까 고치를 짓다 어둑발 내리는 대둔산 북사면을 오른다 머나먼 절집, 비단길앞잡이처럼 앞길 걷던 노인이 손사래 치며 주저앉는다 이윽고 일주문 턱인 돌 틈을 삐져 모롱이 도니 보인다 산이 반도가 지축이 기울어질 만큼 육중한 성곽, 저걸 딛고 어디까지 오르라는 것이냐 계단 밑 쪽방마다 틀어박힌 머리 파르란 여치들, 어쩜 그리 고치 속 번데기처럼 말갛게 길들여져 있을까 모두들 한사코 끌어안은 보퉁이 어여 내던지라고 한 무더기 새떼 높이 울며 허공을 난다 갑자기 엉치등뼈가 아프다 내 친구 젊어죽은 오쟁이가 불쑥 발치에서 튕겨 나와 독성각 괘불탱 수염 같은 터럭을 뽑아 고치를 짓는다 친친  
35 타인의 생/이중기
편집자
3744 2010-07-30
10.08월 3호 수필 타인의 생 이 중 기 잠에서 깨어난 나는 아까부터 인기척 하나 들리지 않는 방안의 공기를 꼼꼼하게 읽고 있다. 조용하다. 너무 조용해서 벽시계 초침소리가 귓속을 텅텅 차댄다. 나는 방문 쪽으로 머리를 돌려놓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쪽으로 난 방문 앞에 붙박혀 있던 손바닥만한 햇살이 기척도 없이 걷히어 가고 제법 서늘한 기운이 깔린다. 어디 먼데서 낙엽 타는 냄새가 코끝에 와 닿는다. 내 코는 습자지처럼 낙엽 타는 냄새를 빨아들인다. 설핏, 어둠이 내린다. 환경의 변화가 아무런 충격이 될 수 없다면 어둠의 도래가 그러하리라. 나는 기분 좋게 눈을 감으며 정신이 무척 맑아져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방바닥을 차고 올라오는 냉기에 소스라친다. 나는 망설이다가 벌떡 일어나 앉는다.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는데 갑자기 허기가 아랫배를 왈칵 거머잡는다. 나는 이마를 짚으며 눈을 감는다. 몇 끼를 굶었던가, 지난 며칠을 찬찬히 훑어본다. 그러나 아무것도 제대로 기억해낼 수가 없다. 내장을 타고 물 흐르는 소리가 차갑게 들린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숨을 크게 들이쉰다. 나는 언제 어떻게 집으로 돌아 왔는지 기억되지 않는다. 숙취에서 깨어날 때처럼 단절된 기억의 이쪽과 저쪽을 부지런히 들락거려 본다. 그러나 기억은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 며칠째, 엄습해 오는 오한과 끊임없이 쏟아져 내리는 콧물을 간신히 견디다가 해거름에 집을 나선 게 어젠지 그저껜지도 희미하다. 종규에게도 그는 연락두절이었다. 술에 취해 내게 들렀다가 간 기억이 희미한데 집을 비운지가 열흘이 지났다고 한다. 휴대전화는 전원이 끊어져 있고 노모와 누이가 있는 도시의 집에서도 그는 연락두절이었다. 나는 종규에게 애써 초조함을 내비치지 않으려고 했던성싶다. 종규의 강요로 두 점 접바둑을 두었는데 두 판을 내리 졌던 것 같다. 나는 마지막 돌을 팽개치듯 내던지며 고꾸라졌던 기억이 난다. 이마를 찡그리며 아득하게 먼 기억의 끈을 당겨본다. 나는 혼미한 상태에서 신열을 앓는다. 끊임없이 뒤척거렸으리라. 누군가 내 손을 잡고 바람개비처럼 빙빙 돌린다. 개들이 자지러지게 짖으며 달려들어 전신을 낭자하게 물어뜯어 놓아도 나는 꼼짝할 수가 없다. 알 수 없는 사람들이 턱없이 발길질을 해대고, 갑자기 대형 화물차가 달려와 깔아뭉갰고, 느닷없이 주먹들이 날아와 명치끝에 박힌다. 으으으으, 씹어뱉듯 뇌까린 신음과 뒤척거림이 끝없이 이어졌으리라. 어쩌다 간신히 잠의 늪에서 빠져나와 게으르게 눈을 떠도 그러나 내 눈빛은 사물을 제대로 붙들어내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데 갑자기 무언가가 냅다 등을 떠민다. 몸 곳곳에서 땀이 질척거린다. 나는 소리 없이 방안에 들어차는 어둠의 부피가 두터워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 새벽의 희미한 기억 속에서 빠져나온다. 가슴에 손을 대자 공명함처럼 울린다. 마치 부스럼이 앉은 상처나 물집을 건드렸을 때의 감촉과 흡사하다. 나는 등과 배를 쓰다듬으며 전신이 하나의 상처나 물집으로 변해버린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나는 그것이 엉망으로 앓은 몸살의 후유증임을 안다. 나는 허리 뒤에 두 손을 대고 힘을 준다. 끊어질 듯 허리가 아프다. 아직 다 철수하지 못한 몸살의 잔류병 탓이다. 나는 허리를 반듯하게 눕힌다. 어느새 방안은 수중처럼 깜깜하다. 어둠의 무게에 숨이 가쁘다.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당기고 대문 쪽에다 신경을 매복시킨다. 발소리가 들린다. 발소리는 거침없이 마당을 가로질러와 방문 앞에서 멎는다. 나는 벌떡 일어나 문을 연다. 그러나 그는 거기 없고 찬바람이 이마를 치고 간다. 나는 멍하니 어둠 속을 바라보다가 문을 닫고 이불 속으로 파고든다. 무릎을 당겨 배에 붙이고 새우처럼 척추도 접어 몸을 조그맣게 만든다. 문득 배고프다는 생각 끝에 허기가 사정없이 아랫배를 걷어찬다. 내리 여섯 해나 농사를 망친 그의 부엌 냄비 속에는 가끔씩 거미가 줄을 치기도 했다. 달포 전에 내가 갖다 준 김치는 맛이 변했을 것이고 라면을 끓여 먹고 남은 찌꺼기를 노린 쥐들이 냄비 속을 들락거릴 것이다. 땟물이 줄줄 흐르는 서른여섯 사내의 부엌과 방을 나는 눈을 감고 찬찬히 살피다가 어금니를 깨문다. 이마가 넓은 갓 서른 사내를 빚더미에 앉혀버린 건 순전히 내 탓이었다. 그는 열심히 살았으나 농사는 어설펐다. 농운은 늘 그를 비켜갔다. 올해 고추농사마저 징그럽게도 쏟아 부은 장맛비가 깡그리 망쳐버렸다. 2천 평을 조금 넘는 부재지주의 땅을 얻어주며 꼬드긴 6년 전의 내 잘못을 술이 취해 탓하던 그의 젖은 목소리가 가슴을 후빈다. 형님…… 이건 내 인생이 아닙니다. 매일 매일이 타인의 생 이었어요. 그 젊디젊은 나이에 6년이나 타인의 생을 살아주다 만 사내의 절규 앞에 나는 안주도 없이 소주만 들이켤 뿐 무어라 한 마디 변명할 자신이 없었다. 젊은 사내의 생을 파탄 내버린 것은 나라의 농업정책이 아니라 내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는 어디에서 무었을 하고 있을까. 나는 그를 만나고 싶다. 6년이나 타인의 생을 살 수밖에 없었던 그의 아픔을 20년 넘게 타인의 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나의 말 몇 마디로 덮기에는 태부족이겠지만, 나는 그를 만나 이 한 마디는 꼭 들려주고 싶다. 궁색한 변명일지라도, 빨래줄 가득 흰 기저귀가 펄럭이는 나라가 그리웠노라고. 이제 막 말을 배운 어린 것들의 깔깔거림을 보고 싶었노라고. 단지 그것뿐이었노라고.  
34 붉은 밭 1외1편/박명희
편집자
4576 2010-07-30
10.08월 3호 시 붉은 밭 1 박명희 집에서 먼 밭 돌 반 흙 반이던 붉은 밭 엄마는 그 밭가 느티나무 아래 밥을 부려놓고 나를 부려놓고 온종일 밭을 일구셨다 사방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 어린 나는 면벽수행법을 배웠고 엄마는 한숨 같은 휘파람을 배웠다 밭 가운데에 맑디맑은 옹달샘을 품은 밭 아홉 식구 밥을 품은 밭 이따금 미풍이 책장을 넘기 듯 나를 넘기면 붉은 밭이 나오고 옹달샘이 나오고 무지개가 나오고 하늘빛 나이아가라치마를 입은 젊은 엄마가 나온다. 붉은 밭 2 박명희 제 어미 자궁을 찢고 목화꽃 탄생하는 목화밭을 온종일 바라보고 있었지요. 몸이 무려울만큼 심심했지요. 그래서 꿩처럼 껄껄 울어보았지요 산도 껄껄하고 울었지요. 엄마, 빨갱이 내려온다며 옹달샘에서 물 한 바가지 떠다 보리밥 한 덩이 말아줬지요 열여섯 살 어린 빨갱이 내려와 밥 빼앗아 간다며 겁 줬지요 그때 나는 빨갱이가 밥 뺏어가는 짐승인 줄 알았지요. 살쾡이 같은 너구리같은  
33 꽃이 피는 이유 /이숲
편집자
3504 2010-07-30
10.08월 3호 소설 꽃이 피는 이유 이숲 해는 지고 사위는 막 어두워지는데 이상하게 눈앞이 환했다. 가로등은 아직 켜지지 않았다. 그는 손등으로 눈을 씻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벚꽃이다. 하천 둑길을 따라 임립한 수십 년생 벚나무들이 팝콘 같은 꽃을 넘치도록 달고 있었다. 꽃이 어둠을 밝히기도 하는구나. 그런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처럼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꽃은 그래서 피는구나. 어둠 속에서도 환하게 빛나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고 피는구나,’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연이어 꽃으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해 준 조물주에게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여든 해를 넘게 살면서 수없이 봄을 맞고 벚꽃을 비롯한 숱한 꽃을 보았으며 그 아름다움에 경탄했다. 하지만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 꽃이 피는 이유라든지, 꽃을 피워 준 존재에게 감사함을 느낀다든지. 서글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남은 삶을 가늠하기 어려운 오늘에야 그런 사실을 알게 되다니. 심사가 엉킨 실타래처럼 어지러웠다. 전립선암 치료를 받느라 입퇴원을 반복하고부터 꼭 제시간에 맞춰 약을 먹으려고 식사시간을 엄격하게 지켰다. 식사 전후로는 늘 이렇게 가벼운 산책을 하려고 애썼다. 그러지 않으면 입맛도 없고 소화도 잘 되지 않았다. “회장님, 사꾸라 꽃이 절정인 것 같습니다.” 벚꽃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자 최성환이 한마디 했다. “저녁 진지 드시려면 이제 슬슬 돌아가야 겠는데요,” 발걸음을 돌이키는데 어찔해지더니 다리가 휘청거렸다. 최사장이 얼른 노인을 부축했다. 기운이 없어 몸이 허방을 떠다니는 것 같아 가끔 현기증을 느끼는데도 아무도 지팡이를 권하지 않았다. 하기는 아직까지는 혼자 걸을 수 있었다. 곧 기운을 차리면 현기증도 없어지고 다리 힘도 생길 것이다. 공기 좋은 곳에서 지내면서 식사에도 특별히 신경 쓰고 좋다는 건강식품도 매일 먹고 있으니 곧 좋아질 것이다. 의사나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들 말했다. 하천 둑이 끝나는 내리막길에서는 최성환이 숫제 옆에서 부축을 했다. 건강할 때 5분이면 닿을 길을 10여분이나 걸었다. 대문이 저만큼 보이는데 운전하는 박 과장이 랜턴을 들고 대문을 막 나서고 있었다. “아직 훤한데 뭐 하러 불을 들고 와.” 노인이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제 할 말을 했다. “그래도 길바닥은 어두운 걸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시면 큰일이죠. 지팡이라도 짚으시 면...... .” 최사장이 주의하라고 헛기침을 한 번 하자 박과장은 입을 다물었다. 가끔 쓸데없는 말을 하는 버릇이 있어서 마음에 안들 때도 있지만 그만큼 순진한 속이 다 들여다보여서 이십 년 째 운전을 맡기고 있었다. 어느 때는 몇 년 전에 먼저 간 아내처럼 잔소리 같은 걸 할 때도 있었다. 모처럼 입맛이 좋아서 입에 맞는 음식을 건강할 때처럼 양껏 먹으려고 하면 꼭, 괜찮으시겠어요? 하고 물었다. 그 말을 무시하고 좀 더 먹으면 꼭 소화가 안돼서 고생을 했다. 최사장은 박과장이 너무 허물없이 군다고 노인의 식탁에 앉는 걸 탐탁해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성환이 가끔 며칠씩 내려와 머물 때는 박과장이 알아서 나중에 따로 밥을 먹었다. “머위나물은 뒤뜰에 막 올라 온 걸 뜯어다 무쳐서 땅기운이 그대로 살아있고요, 이 두릅은 뒷산에서 조금 전에 뜯어 데친 거니까 아주 싱싱합니다.” 이곳 시골 집 살림을 맡아서 하는 먼 조카뻘 되는 애 어멈이 냅킨을 앞 접시 옆에 놓으며 말했다. 노인에게 먹는 게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 버린 걸 아는지 애 어멈은 식탁 차리는 일에 무척 애를 썼다. 그리고 한 접시 한 접시 마다 특별한 사연과 의미를 만들었다. 하기는 같은 나물이라도 그저 시장에서 사다 무친 것보다 어느 땅에서 나고 어떻게 자란 걸 알고 먹는 게 훨씬 맛이 있었다. 음식 접시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건 최사장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해서든 식사를 제대로 하게 하려는 노력 같아서 노인은 한 수저라도 더 먹으려고 노력했다. “금방 뜯어다 무친 이런 머위나물은 서울선 구경하기도 힘듭니다. 섬유질도 많고 순전히 흙냄새만 맡고 자란 무공해 나물이니까 몸에 약이 되지요.” 어린 머위를 데쳐서 된장에 무친 건 아내도 즐기던 것이다. 특히 복 더위가 기승일 때는 다 자란 머윗대를 베어다 손질을 해서 들깻국물에 뭉근히 볶아 먹는 좋아했다. 그걸 한 해도 빠뜨린 적이 없었다. 서울 집에 있다가도 그 무렵이면 어김없이 시골집에 전화를 해서 머윗대를 베어서 올려 보내게 했다. 몇 년 만이라도 더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내가 죽은 다음부터 늘 그런 생각을 했는데 오늘 따라 더욱 그런 생각이 간절했다. 젊은 시절에 옷감 장사를 하며 환기 안 되는 공장에서 먼지를 많이 마셔서 그랬는지 폐가 약했던 아내는 결국 폐암으로 세상을 버렸다. 돈으로 낫게 할 병이 아닌데도 일본으로 미국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마지막 길마저 고생을 시키고 말았다. 아내는 아이를 낳지 못했던 것 외에는 아무런 걱정이 없던, 도량 넓고 속 깊은 여자였다. 일이 안 풀려 몇 번이나 빚더미에 올라앉아도 매번 다시 시작하고 결국에는 큰돈을 모으게 된 것도 그 사람 덕이었다.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서 하나 얻은 아들을 애지중지 자기자식으로 길렀지만 마지막 길에는 그 아들 손을 잡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아들은 생모와 기른 어미 사이에서 그 누구의 온전한 아들도 되지 못했다. 그래서였는지 유학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고 이국에서 그 나라 사람이나 다를 바 없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 아들이 누린 물질의 풍요와 어른들의 일방적인 사랑은 아들을 박정한 사람으로 만든 것만 같았다. 아들은 부모가 병이 들면 의사와 간병인과 식사 수발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밥을 먹어 줄 사람과 병원에 데려다 줄 운전사가 있으면 그 필요가 다 채워지는 줄 아는 것 같다. 더구나 이생에 작별을 고하는 순간에 늙은이가 느낄법한 두려움과 슬픔을 자식이 덜어 줄 수도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노인 역시 그랬다.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왜 불효가 되는지 늙어서야 비로소 이해를 했다. 비록 남들과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라 초년에 마음고생을 했다고는 해도 자신이 누리는 현재의 행복이 부모와 조상 덕분임을 알지 못하는 아들에게 그런 것까지 바란다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 듯하다. 언짢은 생각 때문에 영 입맛이 없어 아욱국에 밥을 말아 겨우 반 그릇을 비웠다. 거실로 나와 어멈이 쌀가루와 강낭콩으로 직접 만들었다는 화과자 반쪽과 최사장이 비싸게 주고 구했다는 푸얼차를 마셨다. 약 먹을 식후 삼십 분까지 거실에 앉아 있으려고 하니 최성환이 뉴스를 보시라며 티비를 켰다. 요즘 뉴스에는 한반도에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알려주는 듯 한 보도가 한두 가지는 꼭 나왔다. 순식간에 지나간 세월이지만 그 동안 두 번이나 전쟁을 겪었다. 소년시절에는 선박 엔지니어였던 아버지 덕에 일본에서 고생 모르고 자랐지만 대동아 전쟁 말기에는 공습과 식량 부족을 겪으며 난생 처음 전쟁의 공포를 알았다. 대학 졸업반이던 해에 육이오 전쟁이 났다. 통역 장교로 미군 부대에서 몇 년을 보냈다. 동년배들보다는 몸고생을 덜한 편이었지만 전쟁의 참혹함까지 덜 겪은 건 아니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그때의 처지가 그대로 나오는 꿈을 꾼다. 학교에서 일본승전기원 웅변 연습을 하고 허기진 채 집에 돌아와 텅 빈 솥 안을 들여다보며 허망하해 하는 소년의 모습, 길가에도 논밭에도 숲에도 빈집에도 어디에 가도 부패해가는 시신들이 넘쳐나던 모습. 그 숱한 죽음에서 살아남아 말년에 이르렀는데 다시 전쟁이라니. 몇 년 만 더 살았으면 하는 소망으로 하루하루 살고 있지만 전쟁이라면 어서 눈을 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노인들처럼 지금까지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살아왔지만 한 번도 전쟁을 해서 공산주의자들을 쳐부숴야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평생 기업가로 손익을 따지는 일만 하며 살아서 그런지 전쟁만큼 손해나는, 어리석은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고귀한 생명을 셀 수 없이 잃는 일과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면서 애써 이루어놓은 산업을 잿더미로 만드는 일이 그 일인데. 숱한 애국자들은 전쟁을 해서라도 공산주의자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야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것만이 애국의 길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평생 돈벌이만 골몰하며 살았지만 나름대로 수출에 공을 세워 산업훈장도 받고 했으니 그만하면 애국을 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살았다. 군부 통치 시절에 정부의 특혜를 받으며 돈을 벌었다는 비난도 받은 적이 있지만 부끄러울 것은 없었다. 예편한 군인들 몇몇을 고위 관리자로 활용한 일을 두고 그렇게 말하면 억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말 그들에게 나쁜 전력이 있다면 그 보응은 그들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안정된 직장을 얻었고 노인은 든든한 바람막이를 활용했을 뿐이었다. 모름지기 애국이란 것은 내나라 내 민족에게 도움을 베푸는 일이지 아무리 선한 동기를 내세워도 사람을 죽이는 일일 수밖에 없는 전쟁을 운운하는 것은 결국 악행이라고 생각했다. 병마에 시달리며 죽음 눈앞에 두고 그 애국이란 걸 생각하니 참 우습고 부질없는 게 그것 같다. 아버님은 일찍이 고학으로 일본 유학을 해서 유능한 선박 엔지니어로 일본에 충성한 셈이고 그 아들인 노인은 통역장교로 연합국과 미국을 위해, 또한 이후에는 외화벌이로 조국에도 충성했다. 노인의 외아들은 미국의 일등시민으로, 기업가로 살면서 그 나라에 기여하고 있다. 손녀는 중국의, 세계적인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그 나라 국적의 남자와 교제한다니 어쩌면 그 나라의 애국 시민으로 살는지도 모른다. 국가주의자들의 시선으로는 가족 모두가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를 했겠지만 자신이 처한 그때의 그 상황에서 자신의 삶에 충실했고 동족이든 이민족이든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은 삶을 살았다면 최상의 인생을 산 셈이 아닌가. 그는 꺼릴 것이 없었다. ‘다른 사람을 속이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것은 무엇이라도 빼앗지 않는다면 손가락질 받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그런 말씀을 자주하셨다. 나이가 들어 생각해보면 그 말씀이 어쩌면 일본에 기여한 당신의 불편한 마음을 위로하고자 했던 교훈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아버님 말씀이 마음에 박혀서인지 다른 사람이 원망할 일을 하지 않으려 애쓰며 살았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후사를 얻으려고 조강지처에게 아픔을 준 일이다. 아내가 스스로 권했던 일이라고는 해도 아내로서 여자로서 무척 힘든 일이었을 것이었다. 아들과 아들의 생모가 받았을 고통이 있다고 해도 아내에 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한 번도 그런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아내는 전쟁 직후에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구제 옷으로 장사를 시작해서 남편의 사업 밑천을 모을 만큼 수완이 뛰어나고 적극적인 여장부였지만 아이 문제는 구시대적으로 대처했다. 입양도 양자 들이는 일도 모두 마다 하고 굳이 남편의 핏줄을 원했다. 남편의 피를 이은 아이를 기르는 어미의 행복을 누리고 싶다는 게 그 이유였다. 아내는 잠깐 그 행복을 맛보긴 했다. 그러나 결국 그 사람이 얻은 건 어미에게 행복을 주는 아들이 아니라 상속자였다. 상속자. 어떤 이는 애완동물이나 소나무에게도 상속을 했고 또 어떤 이는 자선 단체에 재산을 남기기도 한다. 아무려면 어떤가. 돈이 신의 자리에서 군림하는 세상이라지만 그것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건 돈 자랑하는 일, 무익한 일일 뿐이다. 아들에게 갈 것은 이미 해외 투자 형식으로 모두 상속했다. 빌딩 서너 개와 회사 주식에서 나오는 수익금은 이공계 우수학생지원과 연구 기금 지원을 위해 설립한 재단에 상속될 것이다. 매각되지 않아 세금만 축내는 각지의 부동산도 최성환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 재단에서 맡을 것이다. 노인이 뉴스를 잘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최성환은 NHK를 보시라며 채널을 바꾸었다. 이십대 후반에 평사원으로 입사해서 경영자까지 한 최사장은 지금껏 35년을 곁에 두었다. 그도 이젠 예순을 넘은 사람인데 여전히 젊은 비서 시절처럼 사소한 것까지 챙긴다. 들어가서 쉬라고 해도 10시까지 앉아 있겠다고 한다. 일본어 방송에서도 여전히 뉴스를 한다. 뉴스나 신문을 안 보게 된 게 몇 년은 되었다. 병치레를 하면서 세상의 변화에 무관심해지고 희비에도 감정 변화가 둔하게 되었다. 사람을 만나도 현재나 미래의 이야기보다는 지나간 시절의 얘기를 하게 된다. 지나간 시절, 공장을 늘려 짓고 수출량을 늘리고 어떤 사람을 데려다가 어떻게 일을 했는지 하는 얘기들이 대부분이다. 방금도 최성환은 오사카 지방 뉴스가 나오자 지난 시절에 알게 된, 그곳 출신의 일본인 바이어 우에다 얘기를 했다. 지금도 한국에 나올 때마다 연락을 해서 식사를 하곤 하는 사람이다. 그가 두어 번 초청을 해서 오사카에 가서 관광을 하고 골프를 하기도 했다. 유난히 개를 좋아하던 우에다상이 공장 경비견으로 키우던 진돗개를 만지다가 물렸던 적이 있었다. 문병을 가서 백구를 없애야겠다는 최성환의 말에 그는 입원실 침상에 무릎을 꿇고 백구를 용서해달라고 절을 해서 최성환을 당황하게 했다. 이십여 년 전 일이지만 그 얘기는 언제나 재미있었다. 우에다상 덕분에 오랜만에 유쾌하게 웃어보았다. 화살처럼 순식간에 날아 가버린 세월이지만 지난 일을 생각하면 어떤 일들은 수백 년 전 얘기처럼 아득하다. 순식간에 지나간 시간이지만 아득하게 기억되는 시간이라니, 참으로 모순이다. 일본의 간토 지방 소도시에도 벚꽃이 만개한 모양이다. 꽃구경 나온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그림이 나온다. 바쁘게 일만 하던 지난 시절, 꽃놀이 나온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저런 한가로운 뉴스로 바뀐 계절을 알아차리며 살았다. 열심히 살았고 성공한 삶이었다고 자부한 일생이었다. 그러나 무언가 여전히 미진하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성공한 삶이었는가. 무엇을 두고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지 갑자기 의심스러워 진다. 큰 재산을 모으고 풍요로운 말년을 보내는 것을 두고 그렇게 말할 수 있나? 깜빡 졸았던 모양이다. 최성환이 방에 들어가 주무시라고 말을 해서 정신이 들었다. 방으로 들어가시겠느냐고 물었지만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오늘따라 침실로 들어가기 싫었다. 넓고 천정이 높아 썰렁하기만 하던 거실이 더 편안하다. 최성환은 먼저 들어가겠다며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몸과 정신의 모든 정기가 빠져나간 듯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목소리조차 잠겼다. 앉은 채로 몸을 소파에 기댄다. 이대로 모든 정기가 빠져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불러야하나. 노인은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이내 단념한다. 눈앞이 환해졌다. 벚꽃이다. 아까 어스름해질 때 본 꽃인지, 방금 전에 뉴스에서 본 간토지방의 꽃인지, 우에다와 함께 본 오사카의 벚꽃인지 알 수 없지만 무척이나 찬란한 빛이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아, 그래서 꽃은 피는 거였구나. *  
32 ‘우리들의 문학’은 안녕하신가?/한경희 [1]
편집자
3385 2010-07-30
‘우리들의 문학’은 안녕하신가? 한경희 서경식 교수가 미국의 노마필드 교수를 초청 ‘교양의 재생을 위하여’라는 특강을 마련한 내용이 “교양 모든 것의 시작”으로 정리되어 있다. 교양과 우리 삶이 어떻게 관련되어있는지를 아프게 묻고 있는 질문을 통해 우리도 함께 고민해보자. (“교양 모든 것의 시작” 서경식 저, 이목 역, 노마드 북, 2007.) 서경식 교수의 책 내용을 요약하면서 교양이 지닌 힘에 대해 다시한번 돌아볼 수 있었다. 굳이 ‘교양’이란 단어가 불편하다면 ‘상식’이라도 좋다. 깨어있는 사람들의 생각이면 또 어떤가. 갈수록 살아가기 어려우니 문학책 읽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끼지 못한다. 시대의 모서리에 문학이 서성거리는가, 모를 일이다. 지금 어떤 목적을 위해 인문교양이 필요한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의미있는 삶을 살도록 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 전쟁, 기아, 빈곤을 퇴치해야 한다. 교양은 비판적 인식을 키운다. 우리가 사는 세계의 현상을 정확히 포착하는 능력이다. 미국사회, 최고의 강대국이지만 돈 없고 가난한 국민은 정규교육과 의료서비스를 받으려면 군대에 입대하는 것만큼 확실한 게 없다. 혹, 전쟁에서 죽더라도 그 생명의 가치는 사회적 손실로 인식되지 않는다. 불평등의 폐해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의 결핍이다. 전쟁을 자주 도발하는 미국에서 전쟁의 실제 부담을 지는 사회적 약자들은 군인과 그 가족이 전부라는 것, 시카고대학 내 반전 토론회에서 시카고 노숙자 75%에서 80%가 베트남전쟁의 재향군인이라는 사실, 요즘 신입 노숙자들은 거의 걸프전 참가 병사라는 것, 전쟁후유증은 오래 지속된다. 일본의 경제적 풍요가 만든 매력적인 현상으로 일본 대학생이 캄보디아로 가서 난민 실태를 체험한다. 이 청년에게 성원을 보내고 싶지만 동시에, 드는 생각은 일본도시의 노숙자들과 일본 젊은이들의 교류가 가능한가. 해외의 난민과 달리 민족(국민인)의 노숙자를 보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캄보디아는 좀 거리를 두고 볼 수 있지만, 국내 난민은 자신도 이처럼 될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일으킨다. 국가는 경제난을 전쟁으로 해결한다는 것, 그리고 전시체제를 만들기 위해 맹목적인 애국심(쇼비니즘)과 민족주의를 불러일으킨다. 시민의 교양으로 국가가 부추기는 전쟁강요와 (민족주의, 애국심의 유발) 다른 시민간의 단결이 필요하다고 서경식 교수는 주장한다. 교양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2차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아 그 잔인한 실상을 증언한 이탈리아 화학자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라는 책에는 인간의 합리적 이성, 양심, 대화능력 등 인간성의 척도로 간주되는 관념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가를 산산조각이 난 관념인가를 기록하고 있다. 인간이라면 이런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막연한 믿음의 근거는? 인간이라면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실제 현실에서 버젓이 일어난다면? 아우슈비츠는 영양 섭취가 절대 부족해서 아무리 애를 써도 3달 안에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고, 가혹한 강제노동을 매일 강요받았고, 사소한 규칙이라도 어기면 무시무시한 고문과 처벌이 있던 곳, 이런 공간에 있는 인간은 다른 사람의 약점을 고발하거나, 어떻게 남을 속여서 그의 물건을 훔칠까, 나보다 더 약한 인간을 짓밟아 살아남을까를 궁리하는 곳이다. 여기서 동료 수용자 ‘피콜로’가 시를 낭송해달라고 해서 떠오른 단테 “신곡” 중 오디세우스 노래가 떠올랐고 불어로 번역해서 틈나는대로 들려주었다. 레비는 이탈리아인이고 피콜로는 프랑스인. “그대들은 자신의 타고난 본성을 생각하라 그대들은 짐승처럼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덕과 지혜를 구하기 위하여 태어났도다.” 오디세우스 역시 트로이 전쟁을 경험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고난의 항해를 계속했다. 자신의 동료에게 이 시를 전달할 때, 자신의 생명줄인 빵마저도 필요 없다고 생각하게 될 만큼 집중할 수 있었다.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교양이 나를 도와주었다.”라고 했다. 이 시가 수용소 생활을 견디게 했다. 그런데 이 저자는 수용소에서 귀환한 뒤 40년을 아우슈비츠 증인으로 활동하고 살았지만 1987년 자택계단에서 몸을 던져 자살했다. 인간은 짐승이 아니고, 덕과 지혜를 구하기 위해 산다는 그의 신념에 의지해 살아온 사람이 자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바로 현대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시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자신이 사는 곳에 틀어박혀 안만 바라보고 외부를 볼 줄 모른다. 자신 외부의 참혹한 현실을 애써 못 본체 한다. 덕과 지혜를 따르려고 노력했지만 실제로는 자진해서 야만화가 되고, 기계로 변해온 존재이다. 이런 현실을 방치해 둬도 좋은가. 역사 속에서 안과 밖을 다 봐야 한다. 타자의 시선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연하다는 듯 전쟁이 벌어지는 시대를 막지 못한다. 우리가 자유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 지난날 인문지식은 소수 특권 엘리트 남성만이 향유, 이때가 그야말로 야만, 냉혹의 시대였다. 이젠 대중과 시민이 인문적 지식을 향유해야 한다. 서경식 교수의 책 내용을 간추린 것이라 해도 좋을 만큼 내용 전달에 멈췄다. 우리는 무엇으로 살았고,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야만적이지 않을 수 있도록 조절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그것이 교양이라면 고색창연하더라도 교양은 되새김되는 것이 마땅하다. 모든 교양이 불안하다면 우리들의 문학은 안녕하신가를 묻고 싶다. 한경희(문학평론가)  
31 유행가 다시 부르다 외 1편/정선호
편집자
4369 2010-07-30
10.08월 3호 시  유행가 다시 부르다 리메이크된 유행가, 가사는 그대로인데 음정과 박자 바뀌었군요. 젊은 작곡가들 노래가 처음 만들어지던 세월 리메이크한 것일 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요. 한때 무대 위 화려하게 장식했던 노래 세월 흐르자 강물 속에 가라앉았다 수면 위로 떠올라 흐르는 것이지요. 다시 떠올라 예전 사람들과 요즘 사람들 섞여 함께 바다를 향하는 것이지요. 예전보다 빠르게, 외국어도 섞여 불리고 있네요. 보세요 세월이 리메이크된 지금, 펑퍼짐한 청바지 입은 늙은 가수들 묵혀 두었던 기타 들고 길 나서고 있네요. 젊은 가수들 그들의 악보 들고 자동차로 거리를 질주하고 있어요. 그 노래 강물위에 꽃밭 이뤄 환하게 흐르고 있네요. 수로왕비릉* 앞에서 물을 긷다 수로왕비릉 앞 약수터에 사람들 가득하다 허황옥은 아유타국에서 가야국에 도착해 먼 여정에서의 목마름에 약수터 만들었다 살아있는 동안 백성 위해 약수를 주고 죽어서도 후손들 위해 무덤에서 약수 만들어 올려준다 사람들 젖 먹던 시절 떠올리며 물 받고 있다 어느 깊은 밤 무덤 속이 무척 궁금해 무덤에 들어갔다 들어가 약수 만드는 수로왕비와 금관가야의 인부들을 만났다 그들과 인사하고 약수 만드는 공정을 지켜보았다 왕비는 나를 능 앞 공주노래연습장으로 인도했으며 약수로 술 빚어 주었다 그 곳엔 왕비의 딸들 모여 가야금 연주곡에 맞춰 노래하고 있다 왕비 역시 불멸의 가수 꿈꾸며 밤마다 노래를 연습해 왔던 거였다 수로왕비가 백 오십세까지 살았던 비법은 약수와 약수로 빚은 술을 마시고 매일 밤 달을 보며 노래를 불러서였던 거다 *. 수로왕비릉 :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에 있는 가야의 수로왕비의 능 **** 정선호. 시집 『내 몸속의 지구』  
30 (독자 투고작)구박데기 밥상 외 1 편/최기종
편집자
4382 2010-07-28
10.08월 3호 시 구박데기 밥상 최기종 어깨 아픈 아내를 대신해 밥상을 내었다. 아내의 웃음 한 줌 받아낸다고 깐에는 큰 맘 먹고 밥상을 차렸다. 밥은 밥통 속에 있었고 국은 가스렌지에다 데우면 되었고 찬거리도 줄줄이 냉장고에서 기다린다. 하나씩 꺼내어 덮개만 벗기고 밥상에 올렸다. 하! 이렇게도 수월한 걸 몰랐네. 1식8찬에다 국물까지 보탰으니 상다리가 휘었다고 자찬하면서 아내를 깨워서 밥상머리 앉혔는데 이제 아내의 칭찬이 눈처럼 내릴 거라고 '룰루랄라'하고 있는데 뜻밖에도 아내는 눈도 주지 않고 푸념일색이다. 이거 구박데기 밥상이구만. 어제 먹던 걸 그대로 내면 어떠케에? 이거야 칭찬은 고사하고 돌무더기만 와르르 무너져내린다. 밥상을 차리면서 최 기 종 간장 한 종지 내는 데도 피와 땀과 눈물이 들어간다. 생선 발라 드시던 어머니의 웃음이며 무시밥 팍팍 비벼 먹던 사랑님이며 입 삐척거리며 콩조림 뱉어내던 아들내미며 깨소금내 풀풀 핑기던 딸내미 모습이 어른거린다. 삼색나물 묻혀 내는 데도 빛과 소리와 향이 스며든다. 조물조물 바삐 움직이는 손놀림 따라 데쳐낸 음표들이 소리를 내고 금이 되고 은이 되는 색깔이며 향내가 소복소복 봄산을 이룬다. 뒷모습 그대로 종종거리면서 손을 놀리고 도마를 치고 불을 댕기면서 일용할 양식을 준비하는 데 기본 찬거리만으로도 세상은 광활했고 호화판 잔치상 상다리가 휘어도 세상은 초근목피, 보리고개처럼 빈약했다. 된장찌개 한 뚝배기 끓이는 데도 행주치마 저고리 다 젖는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자리를 만든다고 세상에서 가장 질긴 끈을 잇는다고 손으로 발로 가슴으로 차려 놓은 밥상 위에 복숭아꽃, 살구꽃 활짝 피었다. **** <만경강> 동인, <목포작가회의> 활동. 교문창 회원시집『대통령 얼굴이 또 바뀌면』에 작품 발표<1992년> 시집『나무 위의 여자』, 『만다라화』  
29 숲속의 죽음 / 셔우드 앤더슨
주진
4927 2010-07-21
내가 좋아하는 소설 * 이 소설을 읽은 건 3년 전이었다. 한 노파의 쓸쓸한 삶과 죽음을 어떤 기교도 없이 담백하게 그려낸 소설이었다. 노파는 삶에서 그랬듯 죽음 앞에서 또한 철저하게 혼자였으며 삶이 죽음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 그 정도의 인상을 받고 책을 덮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노파의 죽음이 가끔 생각났다. 때론 어머니와 할머니의 모습이 노파와 겹쳐지기도 하고 지금 이순간의 나 자신 같기도 했다. 차고 맑은 겨울 달빛 아래 숲속 공터에서 삶에 지친 노파가 잠들었다가 얼어죽었고 그 주위를 일곱 마리의 개들이 무리지어 빙빙 돌고 있다. 노파가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순간 개들 역시 개와 늑대의 위태로운 경계선을 달리고 있었다. 어떤 수식도 의미도 필요없이 그 자체로 처절한 광경이었다. 노파의 소외된 삶이 더욱 가혹하게 느껴졌다. ‘그토록 처절한 어떤 것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지닌다’는 소설 속 문장이 거슬리기도 했으나 아름다움의 뿌리가 슬픔이었던가, 존재의 슬픈 연원을 엿본 느낌이다. * 셔우드 앤더슨(1876~1941) 미국에서 가난한 마구상의 아들로 태어나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마흔이 넘어 문학에 투신했으며 <오하이오주 와인즈버그> <검은 웃음소리> <알의 승리> 등 주요 저서가 있다. 플롯 중심의 전통적 단편소설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단편을 개척해간 작가로 현대 미국소설의 원조라고 불린다. 헤밍웨이와 울프, 포크너에게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숲속의 죽음 1 그녀는 노파였다. 그리고 내가 살던 읍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농가에서 살았다. 시골에서나 조그만 읍에서 사람들은 그런 노파를 흔히 본다. 그러나 그런 노파들에 관해서 사람들은 별로 알지 못한다. 그런 노파는 노쇠한 말을 몰고 읍내로 들어오기도 하고 장바구니를들고 터벅터벅 걸어오기도 한다. 닭 몇 마리와 달걀을 팔려고 바구니에 그것들을 담고 식료품 가게로 향하기도 한다. 거기서 그녀는 물건을 흥정해서 그것들을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나 콩 같은 것들과 맞바꾼다. 그리고 설탕과 밀가루 한두 파운드를 사기도 한다. 그런 후에는 정육점에 가서 개 먹이를 얻는다. 10 내지 15 센트어치쯤 물건을 사기도 하지만 그럴 때면 꼭 뭔가를 공짜로 얻는 것이다. 전에는 정육점에서 간(肝) 같은 것을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거저 주었더랬다. 우리 집에서도 늘 간을 먹었다. 언젠가는 형이 읍내 시장 근처 도살장에서 소 한 마리의 간을 몽땅 얻어왔는데 어찌나 많이 먹었던지 나중엔 진력이 날 정도였다. 돈 한 닢 안 들이고 말이다. 그 후로는 간에 대해서라면 생각하기조차 싫었다. 그 시골 노파는 간과 수프 뼈를 약간 얻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한담을 주고받는 일이 없었다. 필요한 물건을 구하면 즉시 도망치듯 집을 향해 떠나는 것이었다. 노파에게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다. 그녀를 태워주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들은 마차를 타고 길을 따라 곧장 달리면서 그런 노파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염증성 류머티즘이라는 병으로 앓고 있던 어느 해 여름과 가을, 우리 집을 지나 읍내에 드나들던 그런 한 노파가 있었다. 그 노파는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귀로에 올랐다. 크고 삐쩍 마른 개 두세 마리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 노파는 아무것도 특별할 게 없는 여자였다.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그런 이름없는 사람들 중의 하나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생각 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이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지금에야 갑자기 나는 그녀를, 그리고 그녀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이야기이다. 그녀의 이름은 그라임즈였고 읍에서 4마일쯤 떨어진 조그만 계곡의 둔덕에 서 있는, 칠도 하지 않은 조그만 집에서 그녀의 남편과 아들과 함께 살았다. 남편과 아들은 불량배였다. 아들은 스물한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형무소 신세를 진 경력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남편이 말을 훔쳐서 딴 곳으로 빼돌린다고 수군거렸다. 이따금 말이 없어진 사실이 드러날 때면 그 남편도 역시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가 말을 훔치는 현장을 목격하진 못했다. 언젠가 내가 톰 화이트헤드네 마방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을 때 그 사람이 그곳에 와서 앞쪽의 의자에 앉은 적이 있었다. 두세 사람이 거기 있었지만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 사람은 잠시 그렇게 앉아 있더니 곧 일어나 나가버렸다. 자리를 뜨면서 그는 몸을 돌려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도전의 빛이 담겨 있었다. ‘좋아, 나는 친하게 대하려고 노력했어. 너희들이 나에게 말조차 붙이려고 하지 않은 거야. 이 읍내에선 어디를 가나 그런다구. 언젠가는 너희들이 아끼는 말이라도 없어져 보라구. 그땐 어쩔 거야?’ 물론 그가 실제로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었다. ‘네놈들 턱이라도 바숴줄까 부다.’ 그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때 그 눈의 표정이 나를 오싹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 남자의 집안도 한때는 돈푼깨나 있는 집안이었다. 그의 이름은 제이크 그라임즈였다. 이제 모든 것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그의 아버지인 존 그라임즈는 그곳이 새로 개간될 당시에 제재소를 하나 가지고 있어서 상당한 돈을 벌었다. 그러다가 그는 술에 빠지고 여자 꽁무니를 쫓아다니고 해서 그가 죽었을 때는 별로 많은 돈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나마 남은 재산은 제이크가 다 날려 버렸다. 곧 벨 나무도 없어지고 땅도 거의 다 거덜이 나버린 것이다. 제이크는 그가 어느 유월에 밀타작 일을 도와준 한 독일인 농장 주인으로부터 아내를 얻어왔다. 그녀는 그때 어린 처녀였는데 몹시 겁을 먹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 농장 주인이 이 소녀에게 뭔가 흑심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아마도 계약 고용된 소녀였을 텐데 농장 주인의 아내는 둘 사이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편이 어디 가고 없을 때면 그 소녀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아내가 장을 보러 읍내에 나가면 농장 주인은 그 소녀를 쫓아다녔다. 그녀는 제이크에게 아무 일도 없었노라고 후에 말했지만 제이크는 그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소녀를 처음 꼬여냈을 때 쉽사리 그녀를 손아귀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만일 독일인 농장 주인이 참견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녀와 결혼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농장에서 타작일을 돕던 어느 날 밤 그는 소녀를 마차에 태우고 함께 드라이브를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일요일 밤 다시 그녀를 데리러 왔다. 소녀는 주인 모르게 집 밖으로 나오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녀가 마차에 막 올라타려고 할 때 주인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났다. 날이 거의 어두워질 무렵이었는데 말 머리께에서 그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가 말 고삐를 움켜쥐자 제이크는 말 채찍을 꺼내 들었다. 그들은 결판을 낼 참이었다. 독일인 주인은 아주 거친 사내였다. 아내가 알건 말건 아마도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제이크는 채찍으로 그의 얼굴과 어깨를 마구 후려쳤지만 말이 놀라서 날뛰는 바람에 마차에서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두 사나이는 본격적으로 한판을 붙게 된 것이다. 하지만 소녀는 싸움을 보지 못했다. 말이 달아나기 시작해서 길을 따라 거의 1마일쯤 내달린 후에야 소녀는 가까스로 말을 멈출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길가의 나무에 간신히 말을 비끄러맸다(내가 어떻게 이 모든 걸 다 알고 있는지 나 자신도 의아스럽다. 아마도 어렸을 때 들은 마을 이야기들이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는 탓이 아닌가 싶다). 제이크는 독일인 주인을 해치운 후에 그곳에서 소녀를 발견했다. 그녀는 마차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잔뜩 겁을 집어먹은 채 울고 있었다. 그녀는 독일인 주인이 자기를 어떻게 해보려고 애쓴 일, 한 번은 헛간 속으로 자기를 뒤쫓아 들어온 일, 또 언젠가 우연히 집 안에 단둘이 있게 되었을 때 앞이 다 드러나게 자기의 옷을 찢었던 일 등 제이크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 만일 안주인이 마차를 몰고 대문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더라면 주인은 그녀를 틀림없이 겁탈했을 거라고 소녀는 말했다. 안주인은 물건을 사러 읍내에 가고 없었던 것이다. ‘그래, 아내가 말을 헛간으로 끌고 들어올 거라구.’ 주인은 아내에게 들키지 않고 밭으로 살짝 빠져나가는 데 성공했다. 그러면서 만일 이를 일러바치면 죽여 버리고 말겠노라고 소녀에게 말했다. 자, 그러니 어쩔 도리가 있겠는가? 소녀는 헛간에서 가축들에게 먹이를 주다가 잘못해서 옷이 찢어졌노라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 생각이 나는데 소녀는 계약 고용된 몸이었고 부모가 어디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어쩌면 아버지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독자들은 무슨 뜻인지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그렇게 계약 고용된 아이들은 가혹하게 다루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어서 노예나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그 당시는 고아원이라는 것도 별로 없던 때여서 그런 아이들은 법적으로 어떤 가정에 예속이 되었다. 어떤 가정에 가느냐는 완전히 운에 딸린 문제였다. 2 그녀는 제이크와 결혼해서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낳았지만 딸은 곧 죽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가축을 먹이는 일에 전념했다. 그것이 그녀의 일이었던 것이다. 독일인 농장에서도 그녀는 주인 내외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 일을 맡아했다. 안주인은 엉덩이가 펑퍼짐한 건장한 여자여서 대부분의 시간을 남편과 함께 밭에 나가서 일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집안에서 주인 내외를 먹이고 헛간에서는 소를 먹이고 또 돼지와 말과 닭들도 먹였다. 소녀 시절 그녀의 매일매일의 모든 시간은 뭔가를 먹이는 일로 보내진 것이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제이크 그라임즈와 결혼하게 되었고 이제 그를 먹여야 했다. 그녀의 몸은 자그맣고 가냘퍼서 결혼한 지 서너 해가 지나고 두 아이를 낳고 나자 가녀린 어깨가 굽어지기 시작했다. 제이크의 집은 계곡 가까이에 있는 빈 제재소 부근에 있었는데 그는 늘 여러 마리의 큰 개들을 집에서 기르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를 훔치지 않을 때면 말을 사고파는 장사를 했기 때문에 볼품없이 비쩍 마른 말들을 늘 집에 두고 있었다. 게다가 돼지 서너 마리와 암소 한 마리까지 기르고 있었는데 이 가축들은 얼마 남지 않은 그라임즈가의 땅에서 모두 방목을 하고 있어서 제이크는 거의 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빚을 내서 탈곡기 일습을 사들여 몇 년 간 운영해 보았지만 수지가 맞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를 믿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은 제이크가 밤에 그들의 곡식을 훔쳐내지나 않을까 의심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일거리를 얻기 위해서 먼 곳까지 가야 했는데 그건 너무 비용이 많이 들었다. 겨울철에는 사냥도 하고 땔나무도 만들어서 가까운 읍내에 내다 팔기도 했다. 아들 녀석은 자라면서 꼭 아버지를 닮아갔다. 그들은 함께 취했다. 그들이 집에 돌아왔을 때 집 안에 먹을 것이 없으면 제이크는 아내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녀는 닭 몇 마리를 따로 기르고 있었는데 그런 때면 얼른 닭 한 마리라도 잡아야 했다. 그 닭들을 다 잡아먹어 버리면 읍내에 내다 팔 달걀도 없게 될 텐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녀는 동물들을 어떻게 기를까, 어떻게 하면 돼지들을 살이 통통하게 오르게 해서 가을에 잡을 수 있도록 할까, 일생동안 그런 궁리를 하며 살았다. 돼지를 잡으면 고기의 대부분은 남편이 가져가서 읍내에 내다 팔아버렸다. 만일 남편이 선수를 치지 않으면 아들이 그 짓을 했다. 그들 부자는 이따금 서로 싸웠고 그들이 싸울 때면 그녀는 부들부들 떨며 옆에 서 있었다. 어쨌든 그녀는 침묵을 지키는 버릇이 생겼고, 그 버릇은 아주 굳어져 버렸다. 그녀가 늙어 보이기 시작할 무렵부터 -- 아직 마흔이 채 안됐지만 -- 남편과 아들이 말 장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사냥을 하거나 도적질을 하거나 하여튼 집을 비우고 없을 때면 그녀는 이따금 집 주위와 농장 구내를 돌아다니면서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곤 했다. 이 모든 것들을 다 어떻게 먹일 것인가, 그것이 그녀의 문제였다. 개들도 먹여야 했다. 그런데 헛간에는 말이나 소를 먹일 건초도 충분치가 못했다. 만일 닭들을 제대로 먹이지 못하면 어떻게 알을 낳을 수 있을 것인가? 팔 달걀이 없으면 농장 일을 유지해 가는 데 필요한 물건들을 어떻게 읍내에서 구해올 수 있을 것인가? 다행히도 남편을 먹여야 할 필요는 없는 셈이었다. 그들이 결혼한 지 얼마 안 돼서부터 특히 아이들을 낳은 후 남편을 거둬 먹이는 일에는 손을 뗀 거나 다름없었다. 남편이 오랜 기간 동안 어디로 돌아다니는지 알지 못했다. 때로는 몇 주일씩 집을 비웠고 아들이 자란 후에는 함께 어디론가 떠나곤 했다. 그들은 모든 집안일을 그녀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떠맡긴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돈도 없었고 아는 사람도 없었다. 읍내에서는 그녀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 하나 없었다. 겨울철이면 나뭇조각들을 땔감으로 주워 모아야 했고 얼마 안되는 곡식으로 가축들을 연명하게 하려고 애써야 했다. 헛간에 있는 가축들은 그녀를 보고 배고프다고 울어댔고 개들을 그녀를 졸졸 따라 다녔다. 암탉들은 겨울에 알을 별로 많이 낳지 못했다. 암탉들은 헛간 구석에 떼 지어 웅크리고 앉아 있었고 그녀는 그 닭들을 계속 주시해야 했다. 겨울철에 만일 닭이 헛간에서 알을 낳는데 그 일을 못 보고 지나치면 알은 얼어서 깨져 버리기 때문이다. 어느 겨울날 그 노파는 달걀 몇 개를 들고 읍내로 갔는데 개들이 그녀 뒤를 따랐다. 거의 세 시가 돼서야 집을 나선데다가 눈이 많이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며칠 동안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구부정한 어깨로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뭐라고 중얼거리며 걸어갔다. 그녀는 낡은 곡식 부대 속에 달걀을 넣어 그것들을 밑바닥에 감추듯이 들고 갔다. 달걀이 많지는 않았지만 겨울철에는 달걀 값이 오르기 때문에 그것을 맞바꾸어 약간의 고기,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와 설탕 조금씩, 그리고 어쩌면 커피도 약간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정육점 주인이 간 한 조각쯤은 거저 줄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가 읍내에 도착해서 달걀을 가지고 흥정을 벌이는 동안 개들은 문밖에 엎드려 있었다. 그녀는 흥정을 썩 잘해서 그녀가 바랐던 이상으로 필요한 물건들을 구할 수 있었다. 그 다음에 정육점으로 갔는데 정육점 주인은 약간의 간과 개 먹이를 그녀에게 주었다. 그리고 정육점 주인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그가 그녀에게 그처럼 친절하게 소상한 이야기를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가 가게에 들어올 때 정육점 주인은 혼자 있었는데 그처럼 병들어 보이는 노파가 궂은 날 밖에 나와 돌아다닌다는 생각에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매섭게 추운 날인 데다 오후에 좀 멎었던 눈이 다시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정육점 주인은 그녀의 남편과 아들에 대해서 뭐라고 날을 하고는 그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녀는 약간 놀란 표정을 담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자신이 곡식 부대에 넣어준 그 간 조각이나 고깃덩이가 달라붙어있는 그 묵직한 뼈를 그 남편이나 아들이 먹으려 든다면 정말이지 그 따위 인간은 굶어죽어야 마땅하다고 정육점 주인은 말하는 것이었다. 굶어죽다니? 아니지, 다들 먹여야지. 사람도 먹여야 하고, 쓸모는 없지만 팔아치울 수 있을지 모르는 말들도 먹여야 하고, 석 달 동안 젖 한 방울 짜내지 못하는 삐쩍 마른 불쌍한 젖소도 먹여야지. 말, 소, 돼지, 사람들, 모두들 먹여야지. 3 노파는 가능하면 어둡기 전에 집에 돌아와야 했다. 개들은 그녀가 둥에 둘러맨 묵직한 곡식 부대에 코를 킁킁 대며 바짝 뒤따랐다. 읍내를 벗어나자 그녀는 담장 옆에 멈춰서서 끈으로 그 부대를 등에 꼭 졸라맸다. 바로 그럴 목적으로 호주머니 속에 끈 부스러기들을 가져왔던 것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갈 때는 한결 수월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두 팔이 아파왔다. 담장을 기어서 넘어야 하는데 그건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한번은 벌렁 넘어져 눈속에 빠져버렸다. 개들은 깡충대며 뛰어 돌아다녔다. 그녀는 안간힘을 써서 간신히 다시 일어나는 데 성공했다. 담장을 넘어가려는 것은 언덕 너머 숲을 통해서 지름길이 나 있는 까닭이었다. 큰길을 따라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려면 1마일쯤 더 걸어야 했다. 어둡기 전에 집에 도착하지 못할까 걱정이 될뿐더러 게다가 가축들을 빨리 먹여야 했던 것이다. 건초나 옥수수도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어쩌면 남편과 아들이 집에 돌아올 때 뭘 좀 가지고 올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그라임즈가의 유일한 마차를 타고, 쓰러질 것 같은 또 다른 말 두 필을 고삐로 묶어 끌고, 함께 떠났다. 그 말들을 팔아서 돈을 좀 벌어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술에 취해서 돌아올지 모른다. 그들이 돌아올 때 집 안에 뭐라도 먹을 것이 있는 게 좋을 것이다. 아들은 십오 마일 떨어진 군청 소재지 읍에 사는 어떤 여자와 관계가 있었다. 그 여자 역시 아주 불량하고 거친 여자였다. 한번은 아들이 그 여자를 집에 데리고 왔는데 둘 다 술에 취해 있었다. 마침 제이크가 집에 없던 그 날, 아들과 여자는 그녀를 종 부리듯 마구 부려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런 일에는 아주 익숙해 있었으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녀의 방식이었다. 독일인 농장에서 살던 소녀 시절에도, 그리고 제이크와 결혼한 이후에도 그런 식으로 살아온 것이다. 아들이 그 여자를 집에 데리고 들어온 날 그들은 마치 결혼한 부부처럼 잠자리를 같이 하며 집에서 밤을 보냈는데, 그런 사실에 그녀는 별로 충격을 받지 않았다. 이미 어려서 그녀는 갖은 충격적인 일들을 다 겪은 탓이었다. 등에 짐을 진 채 그녀는 힘들여 들판을 가로질러, 깊이 쌓인 눈을 헤치며, 숲속으로 들어섰다. 오솔길이 있긴 했지만 길을 따라 걷기가 힘들었다. 언덕 꼭대기 바로 너머 삼림이 아주 울창한 곳에 조그만 공터 같은 것이 있었다. 누군가 한때 그곳에 집을 지을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 공터는 집채와 정원을 갖출만한, 읍내의 건물 부지만한 정도의 넓이였다. 오솔길은 공터의 한쪽 옆을 따라 뻗어있었는데 노파는 그 공터에 이르자 잠시 쉬어가려고 나무 밑에 주저앉았다.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짐을 나무 밑둥에 기댄 채 자리를 잡고 앉으니 참으로 좋긴 했지만 어떻게 다시 일어설 것인가? 그녀는 잠시 그 걱정을 하다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녀는 얼마 동안 잠을 잤을 것이다. 너무나 추우면 그 이상 더 추위를 느끼지 않는 법이다. 오후가 되어 날이 좀 풀리면서 눈발이 더 굵어졌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날이 개고 달까지 나왔다. 읍내까지 노파를 따라온 그라임즈의 개는 네 마리였는데 모두 크고 삐쩍 마른 개들이었다. 제이크 그라임즈나 그의 아들 같은 사내들은 꼭 그런 개를 기르는 것이다. 발길로 차고 함부로 다루지만 그런 개들은 용케 붙어 있다. 그 그라임즈의 개들은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이리저리 먹이를 찾아다녀야 했다. 그래서 노파가 공터의 한 옆에서 등을 나무에 기대고 잠이 들어 있는 동안에도 먹이를 찾아 열심히 쏘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개들은 토끼를 쫓아 숲 속과 그 부근의 밭을 마구 헤집고 다녔는데, 그러는 동안에 다른 농장의 개 세 마리가 가세해서 한패를 이루었다. 얼마 후 개들은 모두 공터로 돌아왔다. 개들은 뭔가에 흥분해 있었다. 그처럼 차고 맑고 달빛 가득한 밤은 개들에게 뭔가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그들이 이리의 모습으로 겨울밤에 떼 지어 숲을 헤매고 다니던 그 태고적의 어떤 옛 본능이 그들 속에서 되살아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개들은 노파 앞의 공터에서 토끼 두세 마리를 잡아 당장의 허기를 채웠다. 그러고는 공터에서 원을 그리고 달리면서 놀기 시작했다. 개들은 앞 개의 꼬리에 코를 바짝 대고 빙글빙글 계속 돌았다. 겨울 달빛이 내리비치는 눈을 잔뜩 인 나무 아래 공터에서, 부드러운 눈을 단단히 다지며 원을 그리는, 그렇게 잠자코 원을 그리며 달리는 개들의 모습은 한 폭의 기묘한 그림을 이루는 것이었다. 개들은 침묵 속에서 계속 원을 그리며 빙빙 돌았다. 노파는 죽기 전에 어쩌면 개들의 그런 모습을 보았을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한두 번 깨어나서 흐릿해진 눈으로 그 기묘한 광경을 바라보았을는지도 모른다. 그저 졸릴 뿐, 이제는 별로 추위도 느끼지도 않았을 것이다. 목숨은 오래오래 지탱이 되는 법이다. 아마도 노파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독일인 농장에서의 소녀 시절을, 그리고 그 전 어머니가 그녀를 남겨두고 훌쩍 떠나버리기 전의 어린 시절을, 노파는 아마도 꿈꾸었을 것이다. 노파의 꿈은 별로 즐거운 것은 아니었으리라. 그녀의 삶에서 그다지 즐거운 일이란 없었으니까. 이따금 그라임즈의 개 한 마리가 달리던 원을 벗어나서 노파 앞으로 다가와서 멈춰 섰다. 개는 뻘건 혀를 늘어뜨린 채 노파의 얼굴 가까이에 제 얼굴을 바싹 들이댔다. 개들이 그렇게 달리는 것은 어쩌면 죽음의 의식 같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달밤에 개들에게 살아났던 이리의 원시적 본능이 어쩌면 그들로 하여금 뭔가 두려움을 느끼게 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우리는 이제 이리가 아니야. 우리는 인간의 종인 개라구. 인간이여, 계속 살아 다오! 인간이 죽으면 우리는 다시 이리가 되고 말 거라구.’ 개들은 한 마리씩 노파가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그 자리로 와서 노파의 얼굴에 코를 바싹 들이댄 후 만족스런 듯한 표정으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다른 개들과 함께 달렸다. 그 날 밤 노파가 죽기 전에 개들은 모두 차례대로 그 동작을 반복했다. 나는 자라서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그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언젠가 역시 겨울 밤에 일리노이주의 어느 숲 속에서 한 떼의 개들이 바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린애이던 그 날 밤 그 노파가 죽기를 기다리던 것처럼, 개들은 내가 죽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 나는 젊은 청년이었기 때문에 죽는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었다. 노파는 차분히 그리고 조용히 죽었다. 그녀가 죽었을 때, 그래서 그라임즈의 개 한 마리가 다가와 그녀의 죽음을 확인했을 때, 모든 개들은 달리기를 멈췄다. 개들은 노파의 주위로 모였다. 그래, 노파는 이제 죽은 것이다. 노파가 살았을 때, 그녀는 그라임즈의 개들을 먹였다. 그런데 이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노파가 등에 지고 있는 곡식 부대 안에는 소금에 절인 돼지 고기, 정육점에서 얻은 간, 개 먹이, 수프 뼈 등이 들어 있었다. 읍내 정육점 주인은 갑자기 동정심이 일어 노파의 곡식 부대를 그처럼 묵직하게 채워주었던 것이다. 노파에겐 큰 수확인 셈이었다. 그것은 이제 개들에게 큰 수확이 되고 있었다. 4 그라임즈의 개 한 마리가 다른 개들 사이에서 갑자기 뛰쳐나와 노파의 등에 매달린 짐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개들이 정말로 이리였다면 아마도 그 개가 그 무리의 두목이었을 것이다. 다른 개들은 모두 그 개가 하는 대로 따라서 했다. 개들은 노파가 끈으로 등에 졸라맨 그 곡식 부대에 모두 그들의 이빨을 박았다. 개들은 노파의 몸을 공터 한가운데로 끌고 나왔다. 닳아빠진 옷이 노파의 어깨로부터 곧 찢어져 나갔다. 하루인가 이틀 후에 노파가 발견되었을 때 그 옷은 엉덩이 부분까지 찢긴 상태였다. 그러나 개들은 그녀의 몸을 다치게 하지 않았고, 곡식 부대에서 고기를 끌어냈을 따름이었다. 노파가 발견되었을 때 그녀의 몸은 얼어서 굳어 있었는데 어깨가 아주 좁고 몸이 자그마해서 그 시신은 마치 아름다운 젊은 처녀의 몸처럼 보였다.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중서부의 읍에서, 읍 부근의 농가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났던 것이다. 토끼 사냥을 나섰던 한 사냥꾼이 노파의 시신을 발견했으나 그 사람은 시신을 건드리지 않았다. 눈 덮인 조그만 공터에 둥그렇게 다져진 자국하며, 곡식 부대를 끌어내어 그것을 찢어 열려고 하면서 시신을 끌어당긴 그 장소에 내려앉은 침묵하며, 하여튼 뭔가가 그를 겁먹게 하여 그는 서둘러 읍내로 돌아온 것이었다. 나는 신문배달을 하는 나의 형과 읍내 중심가에 있었고, 형은 석간신문을 여기저기 점포에 배달하는 중이었다. 거의 밤이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사냥꾼은 식료품 가게에 들어와서 그 이야기를 전하고는 철물점으로, 다시 약국으로 옮겨갔다. 사람들은 보도 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길을 따라 숲 속의 그 장소로 향했다. 형도 신문배달을 계속해야 했지만 그 일을 그만두었다. 모두들 숲 속으로 몰려갔기 때문이었다. 장의사도 지서 주임도 함께 갔다. 몇몇 사람은 큰길에서 오솔길로 갈라지는 곳까지 마차 썰매를 타고 가서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말의 편자가 닳아 길 위에서 말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걸어간 우리들보다 더 빠를 것도 없었다. 지서 주임은 남북전쟁 때 다리를 다친 몸집이 큰 사람이다. 그는 무거운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길을 따라 재빨리 걸어갔다. 나와 형은 그의 뒤를 바짝 따랐고, 우리가 걸어가는 동안 다른 어른들과 아이들이 우리 무리에 합세했다. 노파가 큰길을 버리고 오솔길로 접어든 그 지점에 이르렀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웠지만 달이 떠 있었다. 지서 주임은 아마도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이라 여겨 사냥꾼에게 계속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사냥꾼은 총을 어깨에 둘러 맨 채 걸어갔고 개 한 마리가 그 뒤를 바짝 따랐다. 토끼 사냥꾼이 그처럼 돋보이게 되는 기회는 흔치 않을 것이다. 사냥꾼은 지서 주임과 함께 앞장서서 행렬을 이끌어가며, 그 기회를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상처는 전혀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젊은 여자였어요. 얼굴이 눈에 묻혀 있더군요. 아니요,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사냥꾼은 시신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무서움을 느꼈던 것이다. 그 여자는 살해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무들이 앙상하게 드러나고 땅 위에는 하얀 눈이 덮인 늦은 오후의 숲 속에서 모든 것이 침묵 속에 잠겨 있을 때에는 오싹하는 느낌이 몸과 마음으로 엄습해 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때 어떤 이상하고 괴상한 일이 주위에서 일어나면 오직 빨리 그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일 것이다. 어른들과 아이들은 한 무리를 이루어 노파가 들판을 가로질러 간 지점에 이르렀고, 거기에서 다시 지서주임과 사냥꾼을 따라 약간 경사진 비탈길을 올라 숲 속으로 들어갔다. 형과 나는 잠자코 걸었다. 형은 신문 다발을 부대 속에 넣고 어깨에 멨다. 읍내에 다시 돌아오면 저녁을 먹으러 집에 가기 전에 신문 배달을 계속해야 하는 까닭이었다. 형은 이미 그렇게 믿고 있는 게 틀림없어 보였는데 내가 형의 배달 일을 함께 돕게 되면 둘 다 늦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어머니나 누나가 우리의 저녁을 데워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뭔가 이야기할 거리가 생기지 않겠는가. 아이들에게 그런 기회란 자주 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냥꾼이 식료품 가게에 들어올 때 마침 우리가 그곳에 있었던 것은 정말 운이 좋은 것이었다. 사냥꾼은 시골 사람이어서 형이나 나나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제 사람들의 무리는 그 공터에 이르렀다. 그런 겨울밤이면 어둠이 더 빨리 내린다. 그러나 만월의 달이 모든 것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형과 나는 노파가 죽은 그 나무 가까이 서 있었다. 달빛 속에서 조용히 얼어붙어 누워 있는 노파의 모습은 늙어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그녀의 몸을 눈 속에서 바로 젖혔을 때 나는 모든 것을 보았다. 내 몸은 어떤 알 수 없는 신비스런 느낌으로 떨렸고 형도 마찬가지였다. 추위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형이나 나나 그때까지 여체를 본 적이 없었다. 노파의 몸을, 마치 대리석처럼 그렇게 희고 아름다워 보이게 만든 것은 언 몸에 달라붙은 눈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읍내에서 몰려온 사람들의 무리에는 여자가 없었다. 그래서 읍내의 대장간 주인이 옷을 벗어 노파의 몸 위에 덮어씌웠다. 그러고는 노파를 팔에 안고 읍내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잠자코 그 뒤를 따랐다. 그 당시엔 노파가 누군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5 나는 모든 것을 보았다. 마치 경기장 트랙을 축소해놓은 것 같은, 개들이 달려서 다져진 눈 속의 그 타원형 자국도 보았고,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는 모습도 보았고, 하얗게 드러난 아주 젊어 보이는 그 어깨도 보았으며, 어른들이 뭐라고 속삭이는 소리도 들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저 어리둥절해할 따름이었다. 그들은 시신을 장의사로 운반해 갔다. 대장간 주인, 사냥꾼, 지서 주임, 그리고 몇몇 사람이 장의사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만일 아버지가 거기 계셨더라면 아버지도 들어갈 수 있었겠지만 아이들은 허용이 되지 않았다. 형과 함께 나머지 신문을 다 배달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 이야기를 전한 건 형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마도 형이 하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나중에 읍내에서 나는 그 노파에 관한 다른 단편적인 이야기를 들었음에 틀림없다. 하여튼 다음날 노파의 신원이 확인되고 조사가 진행되었다. 남편과 아들의 소재가 밝혀져 그들은 읍내로 불려왔다. 사람들은 그들과 노파의 죽음을 연관 지어 보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들의 알리바이는 완벽했던 것이다. 하지만 읍내 사람들은 두 사람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은 그곳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그 후로 듣질 못했다. 오직 그 숲 속의 광경을 나는 한 폭의 그림처럼 기억하고 있을 따름이다. 주위에 둘러서 있던 사람들, 얼굴이 눈 속에 묻힌 소녀처럼 보이던 여인의 나체, 개들이 달려서 다져진 타원형의 자국, 그 위의 맑고 찬 겨울 밤하늘, 그리고 흰 조각구름들이 하늘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나무들 사이로 열린 조그만 공간을 가로질러 내달리면서. 숲속의 그 광경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지금 들려주려는 진짜 이야기의 토대가 된 것이었다. 여러 가지 단편적인 이야기들은 먼 훗날 천천히 모아져야 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었다. 젊었을 때 나는 독일인 농장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그 농장에 고용되어 있던 소녀는 주인을 무서워했다. 그리고 농장 주인의 아내는 그 소녀를 미워했다. 그곳에서 나는 많은 것을 보았다. 언젠가 훗날, 어느 맑고 달 밝은 겨울밤에 일리노이주의 한 숲속에서 개들과 기묘하고 신비스런 모험을 겪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어느 여름날, 친구와 함께 읍에서 몇 마일 떨어진 한 계곡을 따라 걷다가 그 노파가 살던 집에 이른 적도 있었다. 노파가 죽은 후로 그 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 그래서 문들은 돌쩌귀에서 삐져나와 부러져 있었고, 유리창들도 모두 부서져 있었다. 친구와 내가 집 밖의 길에 서 있을 때 개 두 마리가, 틀림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개 두 마리가, 집 모퉁이를 돌아 달려 나왔다. 크고 삐쩍 마른 개들이었는데 녀석들은 담장 쪽으로 내려오더니 길에 서 있는 우리를 노려보았다. 그 노파의 죽음에 관한 이 모든 이야기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에게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선율은 한 번에 하나씩 서서히 모아져야 했다. 뭔가가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죽은 그 노파는 동물의 생명을 먹여 살리도록 운명 지어진 여인이었다. 어찌했든 그녀가 한 일이란 오직 그 일뿐이었다. 그녀는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도, 아이 적에도, 결혼한 후에도, 늙어가면서도, 그리고 죽었을 때에도, 동물의 생명을 계속 먹여 살린 것이었다. 그녀는 소와 닭과 돼지와 말과 개와 사람의 그 동물적 생명을 먹여 살렸다. 그녀의 딸은 어려서 죽었고 하나뿐인 아들과 그녀는 이렇다 할 모자의 관계를 맺지 못했다. 죽던 날 밤 그녀는 동물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먹이를 몸에 지니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그녀는 숲 속의 공터에서 죽었고 죽은 후에도 동물의 생명을 먹여 살리는 일을 계속했다. 그 날 밤 우리가 집에 돌아와서 형이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어머니와 누나가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 나는 형이 뭐랄까, 그 이야기의 소중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형이나 나나 그때는 너무 어렸던 것이다. 그토록 처절한 어떤 것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지니는 것을. 그 점을 특별히 강조할 생각은 없다. 나는 그저 그 날 밤 형의 이야기에 왜 불만을 느꼈는가, 그리고 그 후에도 왜 줄곧 그래 왔는가를 설명하려는 것일 뿐이다. 이 단순한 이야기를 내가 왜 다시 한번 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여러분이 이해해주기 바라는 마음에서 이야기를 한 것일 따름이다.  
28 아우를 위하여/황석영
편집자
4265 2010-07-15
내가 좋아하는 소설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는 여러모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비교되는 작품이다. 두 작품을 보면 두 작가의 역사관을 엿볼 수 있다. 큰 역사의 흐름에서 민중의 힘을 믿는 작가와 그렇지 못 한 작가. 작품 결말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두 작품 모두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문제는 같으나 해결하는 방식에 있어선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아우를 위하여>는 ‘학생들’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반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유능하고 젊은 선생’이 와서 문제를 해결해준다. 어떤가. 학교 문제가 사회 문제라고 가정한다면, 그 문제를 누가 해결해야 할 것인가. 사회 구성원(민중)들인가 아니면 사회 구성원들을 지배하는 지배층인가. ******************************** 아우를 위하여 황 석 영 뭔가 네게 유익하고 힘이 될 말을 써 보내고 싶다. 네가 입대해 떠나간 이제 와서 우울한 고향 실정이나 우리의 지난 잘잘못을 들어 여기에 열거해 놓자는 건 아니야. 아무 얘기도 못해 주고 묵묵히 너를 전송했던 형의 답답한 마음을 이해하여 주기 바란다. 나는 우리가 지금쯤은 의심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어떤 문제를 확실히 해두고, 또한 장래를 굳게 믿기 위하여 내 연애 이야기를 빌리기로 한다. 너는 십구 년 전에 내가 누구를 사랑한 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아마 놀랄 거다. 따져봐. 내 열한 살 때가 아니냐. 에이, 이건 오히려 형의 달착지근한 구라를 읽게 됐군, 하며 던져 버리지 말구 읽어주렴. 너 영등포의 먼지 나는 공장 뒷길들이 생각나니. 생각날 거야, 너두 그 학교를 다녔으니까. 아침마다 군복이나 물빠진 푸른 작업복 상의를 걸친 아저씨들이 한쪽 손에 반찬 국물의 얼룩이 밴 도시락 보자기를 들고 공장 담 아래를 줄이어 밀려가곤 했지. 우리 아버지두 그 틈에 있었을 거야. 참 그땔 생각하면 제일 먼저 까마중 열매가 떠오른다. 폭격에 부서져 철길 옆에 넘어진 기차 회통의 은밀한 구석에 잡초가 물풀처럼 총총히 얽혀서 자라구 있었잖아. 그 틈에서 우리는 곧잘 까마중을 찾아내곤 했었다. 먼지를 닥지닥지 쓰고 열린 까마중 열매가 제법 달콤한 맛으로 유혹해서는 한 시간씩이나 지각하게 만들었다. 먼지 나는 길, 공자의 담, 까마중 열매 다음에 생각나는 긴 땅에 반쯤 묻혀있던 노깡들이야. 사택 앞의 쓸쓸한 가로를 따라서 가죽나무가 서 있고, 나뭇가지에는 하늘소벌레가 살았고, 벽돌벽의 어지러운 선전문 자국들, 창고의 탄환 흔적, 그리고 인가 끝에 상두도가가 있었고, 실개천을 가로지르며 노깡들이 엇갈려 길게 누워 있었지. 노깡 속엔 우리가 그 무렵에 눈이 시뻘개서 찾아다니던 총알이 많이 나오곤 했었다. 총알을 찾으러 캄캄한 노깡 속에 들어갔다가 내가 기절했던 걸 어머니에게서 아마 들었을 거야. 애들이 그 속에서 사람이 많이 죽었다며 전혀 접근을 꺼려하길래 어느날 나 혼자 들어갔지. 안은 아주 비좁구 캄캄했는데 물이 질퍽하게 괴어 있더구나. 손으로 더듬으며 중간까지 가보니까 예상대로 기관포 탄환이 많이 있더랬어. 나는 아이들의 찬탄과 선망을 독차지할 일을 생각하고 온통 가슴이 떨렸어. 탄창 사슬에 끼인 게 한 줄이나 되더라. 나는 정신없이 파구 또 팠지. 한참 동안을 파는데 꺼림찍한 기분이 들구 뭔가 손가락에 걸려 나오는 거야. 나뭇조각인 줄 알았어. 돌보다는 가볍구 나무보단 좀 듬직하단 말이야. 그래 눈앞에 바짝 갖다 대구 들여다보니깐 뼈다귀야. 둥그런 관절두 달려 있는 진짜 뼈다귀 말이지. 이크...... 나는 그게 날 잡구 늘어지는 기분이더라. 양쪽 입구를 보니까 꼭 관솔 빠진 구멍만큼 보이는 거야. 소릴 지르다가 뻐드러졌어. 근처 실개천서 빨래하던 아줌마가 나를 끌어내줬단다. 어머니가 야단쳤어. "너 그런 데 들어가면 귀신이 잡아 먹는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어린애들이 그런 일루 호되게 놀라게 되면 잠잘 때 악몽을 꾸어서 식은땀을 흘리며 경기를 일으키는 거야. 내가 몸이 불편할 때 꿈을 꾸면 말이야, 언제나 그 노깡 속에 들어가 있는 거야. 어느 때는 그게 우리 영단 집의 시멘트 굴뚝 속이 되고, 피뢰침 달린 유리공장의 벽돌도가니 안이 되고, 시궁쥐가 많이 사는 공중목욕탕의 하수도 속이 되는 거야. 끝은 언제나 비슷하지. 양쪽 입구가 무너져, 해골바가지나 뼈다귀 손이 쑥 솟아올라서 내 머리털이나 발목을 말야 꽉 잡구 안 놓는 거야. 상두도가집 아이가 그 자리에 찾아가서 침을 세 번 뱉고 왼발로 세 번 구르면 된다기에 그대루 했는데두 여엉 무서운 기분이 가시질 않았어. 내가 일단 자기의 공포에 굴복하고 승복하게 되자, 노깡 속에서의 기억은 상상을 악화시켜서 나를 형편없는 겁쟁이루 만들고 말았다. 그런데 어떤 아름다운 분이 나타나 나를 훨씬 성숙한 아이로 키워줬지. 눈빛처럼 흰 여학생 칼라 뒤로 얌전히 빗어 묶은 머리를 길게 땋아 늘였고, 목소리가 노래하는 듯 고운 분이었어. 우리를 위압하고 공포로써 속박하는 어떤 대상이든지 면밀하게 관찰하고 그것의 본질을 알아챈 뒤, 훨씬 수준 높은 도전 방법을 취하면 반드시 이긴다. 그이를 사랑하게 되면서 나는 분명히 무언가를 배웠는데, 그 무렵엔 꼭 집어내서 지각할 수는 없었지. 이제 와 생각하니 그이는 진보(進步)의 의미와 사랑의 가치를 내게 가르쳐 주었던 거야. 나는 피난지 부산의 학교에서, 수복되고도 수 년이 지난 서울로 전학을 해왔던 첫날, 기분이 잡쳐버리고 말았다. 우리 학교에 미군부대가 들어와 있어서 학년별로 여러 곳에 뿔뿔이 흩어져 빈 창고나 들판에서 공부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흙바닥에 가마니를 깔았고 책상대신 화판을 받쳐 글씨를 썼다. 어둠침침한 창고 교실에서 백 명이 넘는 아이들이 우글거렸으니 언제나 먼지가 뿌옇게 일어나는 게 보였다. 교실이 엉망인 것뿐만 아니라 우리 학교 애들은 질이 나빴는데 전쟁통에 몇 년씩 학년을 묵은 큰 애들이 열 명쯤 되었다. 백여 명의 아이들을 키 순서대로 세워 놓으면 나 같은 건 겨우 앞줄에서 몇 번째가 될 만큼 작았다. 애들은 내게 아무런 관심도 돌리지 않았으나, 첫 번 일제고사에서 수석을 차지하고 나자 친구가 더러 생기게 됐던 거였다. 나는 담임선생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메뚜기라는 별명을 가졌는데, 머리 가운데가 쭉 벗어지고 양쪽 관자놀이 부근에만 곱슬털이 부성부성한 모습이었다. 그는 국민학교 선생님 노릇에 별로 흥미가 없는 것 같았다. 무슨 가게인지를 부업으로 벌여놓고 있었는지라 그는 툭하면 자습시간을 주고선 하루 온종일 밖으로 나돌아 다녔다. 각 학년의 교실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고, 교장 선생님도 일학년부터 육학년까지 모든 학급을 한 바퀴 돌아보려면 큰맘을 먹어야 했으니 메뚜기 씨께선 만판이었다. 메뚜기가 요행이 교실에 붙어 있게 되는 날도 오후에는 모두 야외로 끌고 나가서 몇 시간씩이나 풍경 사생을 그리게 해놓고는 공부 끝이라는 거였다. 내가 전학가기 전인 일학기까지도 석환이가 반장 노릇을 했으나, 나처럼 몸집이 작고 약골이었던 그애는 큰 아이들이 득실대는 교실의 기강을 잡을 도리가 없었다. 첫째 가다 장판석, 둘째 가다 임종하, 셋째 가다 박은수, 그 이하는 그애들에게 붙어서 알랑대던 떨거지 몇 명이 있었다. 모두 중학 이삼학년씩은 되었을 나이배기들이었다. 내가 입학할 무렵에 세력의 판도가 바뀌게 되었는데 이영래라는 새로운 가다가 신입해 왔던 것이다. 영래는 미군 부대 하우스 보이로 싸젠이 기른다는 아이였다. 술이 주렁주렁 달린 인디언식 가죽 저고리에 청바지를 입고 시계까지 차고 다녔다. 눈이 가늘게 찢어지고 어깨가 바라진 영래는 벌써 다리에 털이 돋은 열다섯 살바기였다. 미군 지프가 신입생과 선물을 싣고 제분 회사 창고 앞마당을 돌며 클랙슨을 뿡빵 울리니까 애들이 모두 환호성이었다. 배불뚝이의 맘 좋게 생긴 싸젠이 초콜릿과 도넛을 애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었다. 그날로 영래를 찬양하며 그애의 가방을 들어다 주는 아이가 생겼고, 얼마 안 가서 둘째 셋째 가다인 은수와 종하까지 그애 편으로 붙었다. 영래가 드디어 첫째 가다 장판석이를 빈 발전실로 유인해다가 몽둥이로 습격해서 항복을 받았다. 판석이는 아래 권위로 밀려나고 영래가 하루아침에 첫째가 되었는데도 아이들은 그런 일에 별로 아랑곳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큰 애들은 뒷전에서 저희끼리 킬킬대며 우리가 모르는 얘기만 지껄이며 따로 놀았으니까. 어느 토요일 아침, 메뚜기가 셔츠 바람으로 들어와 바께쓰에 물을 떠다 교실에서 세수를 했다. 그는 팔목시계를 연방 들여다 보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에 또...... 내가 급한 볼일이 생겨서 나갔다 올 테니까 자습하도록, 어이 급장." 맨 앞줄에 앉았던 석환이가 엉거주춤 일어나려니까, 메뚜기는 그애를 힐끗 바라보고는 곧장 교실 뒷전만 두리번댔다. "장판석이, 판석이 어딨나?" 아이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보앗고 누군가 웃음을 참는 소리도 들렸다. 판석이는 괜히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애 바로 앞에 앉은 임종하가 들릴까말까한 소리로 "얘는 나한테두 져요." 중얼거리자 아이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메뚜기가 그 소리를 놓쳤을 리 없었다. "에 또, 학기두 바뀌구 했으니까...... 오늘은 자습 후에 반장 선출을 해보는 것두 학습이 될 거다. 상급생이 됐으니까 그만한 자치 능력도 생겼을 줄 믿는다. 그런데 석환이 말고 누가 의장 노릇을 했으면 좋을까...... 누가 좋겠니?" 메뚜기가 묻자 앞에 꼬마들이 요란하게 떠들어댔다. "이영래요. 걔가 잘해요." 메뚜기가 영래를 불러내어 "반장과 함께 조용히 자습을 시킨 뒤에, 자치 회의를 해라." 이르고 훌짝 나가 버렸다. 선생님이 나간 뒤에, 머쓱하게 서 있던 영래가 교탁 앞에 비스듬히 걸터 앉았고 애들은 다음 행위에 잔뜩 기대를 가지면서 그애를 올려다 보았다. 영래가 말했다. "전부들 책을 집어넣어. 오늘 오전에는 씨름 대회를 연다." 애들이 손뼉을 치며 와글와글 책보를 쌌고 영래는 교탁에 발을 올려놓고 의자를 흔들며 말타는 시늉을 했다. "헌병 대장 사령부, 짜가닥짜가닥 팡팡, 이 새끼들 조용히 해." 영래가 은수에게 몽둥이를 주워 오라고 명령하니 그놈은 잽싸게 뛰어나가 각목 하나를 주워왔다. "종하 일루 나와." 비실비실 웃으며 앞으로 나온 종하에게 영래가 말했다. "웃지 마 임마, 이걸 갖구 수틀리게 놀면 모두 조기는 거야. 알았지?" 종하는 가마니를 깔지 않은 흙바닥 통로를 각목을 들고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다. "오늘부터 너는 기율 부장이다." "뭐야 그게...... 반장하군 다른가?" "임마 중학교 교문 앞에두 못 가봤어? 완장차구 서서 잘못한 애들 벌주는 거 말야." 은수가 항의했다. "그럼 나는 뭐야, 넌 뭐구......." "이새끼 나는 의장이잖아. 종하는 기율부장, 너는 말이지 총무다." "반장보다 높은 거냐?" 아이들이 킥킥. 종하는 내 앞을 지나며 공연히 똑바로 앉으라면서 허리께를 각목으로 꾹 찔렀다. 나는 등에 힘을 주고 빳빳이 긴장해서 앉아있었다. 그때 석환이가 안으로 폭싹 기어들어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말야...... 씨름대회는 반대한다." 아이들이 왁자지껄하며 석환이 쪽에다 불평을 제각기 터뜨렸다. "혼자 잘난 체하지 마라 짜식." "누가 네 명령이나 듣겠다누." "영래야 때려줘라." 영래가 교탁을 쾅 때리며 말했다. "새끼들 조용하라니까." 임종하가 각목을 땅에다 쿵쿵 찧으며 주위를 둘러보았고 아이들이 잠잠해졌다. 석환이는 가까스로 말할 기운이 났는지 아까보다 더욱 또렷하게, "선생님이 자습을 한 다음에 자치회를 하라구 그랬어. 또 혼자서 마음대로 학급 간부를 지명해서도 안 된다구 생각해." 바보같은 놈들이 설쳐대는 꼴을 보니 나도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영래만한 통솔력도 없는 터에 모두들 나더러 공부 좀 한다구 으스댄다고 할 거였다. 그 전 학교에서처럼 발언권을 얻어 동의와 제청을 받고 의견이 받아들여지고 하는 재미있던 판국과는 전혀 딴판이어서, 까짓거 입다물고 구경이나 하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몇몇 줄반장 애들은 불만이 있어 보였으나 교실 뒤에 버티고 선 종하 쪽을 연방 돌아보기만 하는 거였다. 영래가 씨익 웃었다. "응 좋아, 애들한테 물어보자. 얘들아 씨름대회를 뒤로 미루고 자습할까?" 반 아이들이 웅성대며 항의하거나, 재삼 석환이를 욕하기 시작했다. "대신에 자치회를 먼저 하자. 너희들 석환이가 반장 노릇하는 걸 찬성하는 사람 손들어." 한 사람의 손도 올라가지 않았고 뒤늦게 들었던 애들도 대부분 아이들의 드높은 불만의 분위기에 위축되어 슬금슬금 내려버렸다. "다음은 내가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 절반 이상이 손을 들었고 두 번 다 손을 안 든 애들도 많았다. "봤지? 자치회는 이걸루 끝났다." "그래, 이영래가 오늘부터 우리 반 급장이다." "반대하는 놈들은 우리 반이 아니야." 영래는 만족에 가득차서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밖으로 집합. 야 종하야, 집합시켜서 오목내 다리 밑으루 내려가." 나는 환성을 울리며 밀려나가는 애들의 뒤를 따라나갔고, 우리 뒤에서 종하가 "빨리빨리 움직여." 어쩌구 하며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석환이와 몇몇 아이들이 꾸물거리는 걸 보고 영래가 뒷짐을 지고 서서 종하에게 말했다. "야 단체행동에서 빠지는 애는 잡아다 조겨." 은수도 말했다. "그래 영래 말이 옳다. 개인적으루 놀면 혼을 내야 해. 우리 반 애들이라면 다 함께 해야 한다." 바깥일에 분주한 메뚜기가 돌아왔을 때, 아이들은 영래의 지시에 의하여 자발적인 대청소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메뚜기는 학급에 기강이 서고 자치 능력이 향상된 데 대하여 만족했고, 아이들이 영래를 급장으로 선출한 것에도 별로 이의가 없어 보였다. 우리 부모는 내 상급학교의 진학문제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동네에서 어느 대학생이 개인교사를 한다며 애들을 모으고 있는 중이었으므로 나를 그리로 보냈었다. 거기서 치른 학력 테스트의 결과를 알고 어머니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대학생의 말에 의하면 이런 실력으로는 중간급인 사립 중학교에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거였다. 그때부터 밤늦게까지 입시공부에 시달리지 않으면 안되었고, 자습시간이 많았던 학급실정이 오히려 내게는 다행이었다. 따라서 나는 전입생으로서 서먹서먹하던 그 전보다 더욱 학급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영래가 반장이 되고 나서 나는 학교에 가는 일이 시큰둥해진 느낌이었다. 무관심했던 내게도 불편한 사태가 자주 벌어지게 되었는데, 영래가 너무 자기 마음대로만 하려고 그랬기 때문이었다. 은행지점장의 아들이나 공장장 아들, 극장, 양조장집 아들같은 너댓 명의 부잣집 애들은 특히 괴로움을 많이 받았었다. 그애들은 뭔가 좋은 것들, 이를테면 장난감, 극장표, 돈 같은 것들을 갖다 바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내일까지 가져와." 한마디면 통하는 모양이었다. 대부분의 다른 애들은 평소부터 그애들에게 반감을 많이 갖고 있어서 영래나 종하나 은수의 명령이 이행되지 않았을 때에 그애들이 교실 뒤에서 엎드려 뻗쳐를 하고 궁둥이를 맞는 걸 통쾌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부잣집 애들도 나중에는 그리 불만스러워하는 것 같지 않았는데, 청소당번을 제외받았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애들은 자기가 싫어하는 애들을 혼내주도록 저 세 아이들 중 아무나에게 선물을 하면 되었던 거다. 있으나마나한 부반장으로 영락한 석환이도, 나도, 하여간에 좀 영리한 애들은 끼리끼리 소곤소곤 어린이 잡지나 돌려보면서 그애들의 노는 꼴에 전혀 상관하지 않으려 애썼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느 정도 기가 죽었으나 그래도 아직은 영래를 신뢰했는데 그는 아이들을 재미있게 하고 동시에 무서운 존경을 일으키게 하는 데 재주가 비상했던 것이다. 영래의 제의로 우리는 두어 차례의 모금을 했었다. 한번은 담임선생 메뚜기네 아기의 돌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서였고, 다음엔 청소도구를 마련한다는 구실이었다. 판단이 부족했던 우리가 어렴풋이 느끼기에도 금액이 좀 과했던 것 같았다. 제삼 분단장인 동열이의 머리가 터졌던 건 바로 그 일 때문이었다. 그애가 쑤군거린 얘기를 들어보면 거둔 돈의 절반을 그애들이 쓱싹해서는 학교 앞 찐빵가게에 맡겨놓고 까먹고 있다고 했다. 얘기를 들은 다섯 아이들 중 누군가의 --- 아마도 영래와 방향이 같은 기지촌에 사는 아이가 그랬을 --- 고자질에 의해서 폭행이 벌어졌다. 예의 메뚜기가 자리를 비운 자습시간에 영래가 무조건 동열이를 불러내어 "임마, 너 나한테 잘못한 거 없어?" 하고 따지면서 다짜고짜 발길로 걷어찬 다음 막대기로 그애 머리를 깠다. 아이들은 숨을 죽이고 침을 삼키며 그애가 머리를 움켜쥐고 죽는 소리로 우는 걸 바라보기만 했다. 종하가 옆에서 얼러댔다. "짜식들 누가 돈을 떼먹었냐, 얘 맞은 거 담임한테 찌르면 알지?" 영래는 역시 화를 발칵 내고 "쓸데없는 소리하지마 새꺄." 종하를 윽박지른 다음에 우리에게 씩 웃어 보였다. "돈이 남은 건 맞다. 그걸 말이지 나는 다음에 쓸라구 남겨뒀던 거야. 축구부를 만들기루 했지. 다른 반과 시합을 갖구 다음번엔 저쪽 오목내 학교 패들하구두 붙는다." 아이들이 와글와글 손뼉치는 소리. "그러구 얘가 맞은 건......." 영래가 공포에 질려 꿇어앉은 동열이를 거만하게 내려다보며 잠깐 사이를 두었다. "우리 반을 배반했기 때문야." 은수가 맞장구를 쳤다. "그래 영래 말이 옳다. 짜식이 배반자야." 서부영화에 많이 나오는 씩씩하고 멋진 얘기 같았으므로 교실의 이곳저곳에서 낱말 외우기나 하는 듯 아이들의 "배반자, 배반자" 하는 중얼거림이 퍼져나갔다. 그들은 으쓱해진 느낌이었고 앞에 적발되어 꿇어앉은 이 새로운 적(敵)을 새삼스럽게 관찰했다. 영래가 아이들을 휘둘러보고 나서, "누구든지 고자질을 하거나 쑤군대두 좋다. 치만, 우리 반 애들 중엔 내게 그런 걸 알려주는 좋은 친구들이 많으니까...... 이런 간신 같은 짓을 못할 거야." 토요일 방과 후에 우리는 남아서 오목내 패들과의 축구시합을 구경해야만 되었다. 물론 연습시간이 잦았던 우리 선수가 이겼다. 아이들은 그날 유쾌한 오락시간과 선수들이 보여준 무용(武勇)에 의해서 열이 올라 노래를 부르며 돌아갔다. 나는 제분회사의 뒷문으로 해서 철길을 따라 군대 피복창을 가로질러 공장의 벽돌담 아래로 나서는 지름길을 다녔는데, 그날은 피복창 입구에 가시철망이 쳐져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우리 학교 본관건물이 있는 시가지쪽으로 빙 돌아서 가야만 했다. 행길을 건너려고 차가 뜸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 학교 교무실이 어느 쪽에 있느냐고 누가 말을 걸어왔다. 여학생 교복을 입은 아주 예쁜 누나였다. 학교 교무실은 부대가 들어선 본관건물 옆의 빈 터에 지어진 기다란 반달형 퀸셋에 있었으므로 거기를 손가락질해 보여주었다. "어린이 고맙습니다." 하며 그이가 공손히 절을 했으며 나는 웃을 때 보여준 그의 희고 고운 치아와 깊숙해 뵈는 속 쌍꺼풀 때문에 가슴이 뻐근하게 아플 지경이었다. 다음날, 학교에 가니까 아이들이 술렁대고 있었다. 여자선생이 오게 되었다며 방금 메뚜기랑 같이 제과점에 얘기하러 갔다는 것이다. 나는 공연히 어제 본 그 누나가 아닐까 하는 기대로써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온다, 와." 언제나 파수를 보는 아이가 호들갑을 떨며 창고 교실로 뛰어들어왔다. 메뚜기가 훨씬 앞서서 들어오고, 한참이나 지루하게 기다린 느낌 뒤에 여선생이 들어왔으며 그이는 약간 수줍어하듯 보였다. 입구에 어깨를 동그랗게 움츠리고 섰는 분은 역시 어제의 그 누나였다. 나는 나를 알리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매일같이 아무 생각없이 들었던 영래의 "차렷" 구령소리가 그날따라 나를 수치에 떨게 만들 줄은 몰랐다. 나는 "경례"에 따라 머리를 숙이면서 처음으로 굴욕감을 느껴야 했다. 메뚜기가 그이에게 좀더 앞으로 나오시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에 또, 이번에 사범학교 졸업반에 계시는 여러 선생님들이 교생실습을 나오셨다. 내가 교장선생님께 간청해서 상급학년에서는 우리 반만이 그 모범학급으로 뽑혀 모셔오게 된 것이다." 메뚜기는 이어서 교생 선생님의 성함과, 일주일의 반쯤을 그분이 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마 메뚜기가 게으른 자기의 수업 공백을 메워보려는 게 틀림없었다. 누군가 "교생이 뭐야. 선생하군 다른가......" 하자마자 그이는 청아하고 똑똑한 발음으로 "네 다릅니다. 여러분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처럼 나도 선생님되는 공부를 하러 온 것입니다. 닭이 알을 품으면 뭐가 되지요?" 엉뚱한 질문에 아이들이 불규칙하게 "병아리요." "병아리는 커서 뭐가 되나요?" 아이들은 이번에는 일제히 "닭이요." "옳습니다. 저는 말하자면 병아리 선생님인 셈이죠. 호호호." 아이들이 와 하고 웃었으며 메뚜기도 껄껄 웃었다. 나는 병아리 선생님이 나오시는 학교에 가는 일이 한편으로는 즐거웠으나, 학급 분위기가 나를 전보다 더욱더 부끄럽게 만들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특히 토요일 방과 후는 지겨웠다. 영래가 아이들을 오목내 다리 밑의 모래펄로 집합시켜서는 축구시합을 응원하도록 하는 거였다. 반을 위한 단체행동이었으므로 혼자 빠져나가게 되면 혼이 날 게 두려웠다. 아마 일주일 동안의 벌청소 당번을 지명받기가 십상이었을 게다. 아이들의 불평 불만이 은연중에 조금씩 무르익어가게 되었던 것은 자칭 기율부장이라는 임종하와 총무 박은수의 횡포 때문이었다. 은수가 선수 유니폼과 병아리 선생님에 대한 '성의의 표시'를 구입한다며 학급비를 거두었고, 종하는 아이들을 매로써 징계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또한 영래와 귀가 방향이 같은 기지촌 애들 몇명까지 덩달아 으쓱거리게 되었다. 그들 중 하나라도 반애와 싸움을 하게 되면 권투시합 십회전을 시켜놓고 죽 둘러서서 구경하다가 불리해질 경우 몰매를 놓는 거였다. 기지촌에 사는 가난한 그애들은 다른 애들의 점심 도시락을 빼앗아 먹는 일도 있었다. 그애들이 영래의 지시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른 애들을 꼬박꼬박 일어바쳤기 때문에 반 애들 모두가 우선 그애들 비위를 상하지 않게 하려고 조심했다. 나는 영래를 마음속에서도 찬양하는 아이들이 이젠 거의 없다는 걸 알았다. 새로 오신 교생선생님은 무엇이나 열성을 다해 가르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어느 때는 우리가 모르는 어려운 얘기까지 꺼내어 학과의 분명치 않은 곳을 밝혀 주려고 했었다. 우리 실력을 향상시켜주느라고 벼락시험도 자주 치렀다. 나는 그 무렵에 밤 서너시까지 과외공부로 시달렸던 때였으므로 다른 애들과 현격한 차이로 거의 만점을 맞곤 해서 그이의 주의를 끌 수가 있었으나, 그이는 나를 영래나 그쪽 떨거지 놈들과 하나도 구별 없이 대할 뿐이었다. 나는 야속했다. 한번은 선생님이 청소감독을 끝내고 돌아가는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가만가만 뒤쫓아 가본 적도 있었다. 멀리서 앞서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은 아직 어른이 아니었다. 키가 작아 어른들 틈에 끼니까 우리와 동년배의 소녀처럼 보였다. 내가 일부러 다른 델 보면서 선생님을 질러갔다가 뒤돌아보고 인사를 했더니, 그이는 내 손을 잡으며 반가워했었다. "김수남, 왜 이제 집에 가지요?"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저...... 친구 집에 들렀다가 늦었어요." "집에서 걱정하실 텐데요. 다음에 그런 일이 있으면 미리 말씀드려야 합니다." 나는 선생님이 시내로 들어가는 전차를 타야 할 역전 네거리 앞 종점까지 함께 걸었다. 말없이 걷던 그이가 "김수남 어린이는 이번 시험에도 성적이 아주 뛰어나더군요" 말했으므로 나는 얼굴이 새빨개졌고 얼떨결에 "반장은 어때요, 선생님?" 하며 내 속마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이영래...... 어린이 말인가요?" 그이는 뭔가 곰곰 생각해보는 듯한 표정이다가 "어떻게 생각해요, 김수남 어린이는 혼자서 살 수 있나요?" 물어왔다. 나는 동생 없이 엄마 없이, 누구보다도 선생님이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고 혼자서는 못 산다고 대답했다. 그이가 말했다. "혼자서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사람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면 여럿이서 고쳐줘야 해요. 그냥 모른 체하면 모두 다 함께 나쁜 사람들입니다. 더구나 공부를 잘 한다거나 집안 형편이 좋은 학생은 그렇지 못한 다른 친구들께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는 무슨 얘기인지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선생님께서 나를 책망하고 있다는 느낌이어서 풀이 죽어버렸던 것이다. 며칠 후에 선생님은 처음으로 우리에게 노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이는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책을 펴지도 않고 몹시 슬퍼 뵈는 얼굴로 말했던 거였다. "어른들이 제일 나쁜 점은 자기 잘못을 애써 감추려 하는 그것입니다. 천박한 속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겉으로만 번지르르하게 내세우는 건, 스스로 자신이 없기 때문이에요. 나는 여러분들이 이 혼란한 시기에 이런 창고에서 책상도 없이 공부할망정 마음씨와 배우려는 자세가 소박하고 고울 줄로만 여겨왔습니다. 여러분은 못된 어른들의 본을 받아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선생님은 선생님다워야 하며 어른은 어른다워야 하고, 어린이는 어린이다워야 합니다. 어제 방과 후에 학급대표들을 돌려보내고 나는 참으로 슬펐습니다. 물론 그것이 학급 전체의 뜻이 아니었기를 나는 믿으려 합니다." 나중에 알게 된 건 선생님이 영래네 패들의 '성의 표시' 때문에 화가 났다는 것이다. 저 깡패 같은 더러운 자식들이 내 선생님께 허벅지까지 올라가는 외제 나일론 스타킹을 드렸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불같이 성이 치밀어올라 잠들기 전에는 그 녀석들에게 수십 번씩 욕을 되풀이 퍼붓고야 마음이 가라앉곤 했다. 한번은 기지촌 아이들 중의 하나가 양조장 집 아들의 도시락을 빼앗아 먹고 있는 것을 선생님이 우연히 알아채게 되었다. "어린이는 왜 점심을 안 싸오지, 배고프지 않아요?" 울먹울먹하며 그애는 연방 빼앗아간 쪽을 바라보았고, 그놈은 입가에 손가락을 대며 주먹을 쥐어 흔들어 보였다. "자 이리 와 나하구 같이 먹어요." 빼앗긴 아이가 수줍어하며 가까스로 말했다. "선생님...... 싫어요. 진짜는 저, 도시락을 가져왔어요." "그런데 왜 안 먹을까, 몸이 아픈가요?" "아니에요......." 선생님이 웃음을 방긋 머금고 말했다. "아 착한 어린이군요. 누구를 위해 주었군요, 그렇죠?" 그애가 더욱 울상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이 재빨리 말했다. "네 좋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이렇게 서로 돕는 정다운 행동에 마음이 한없이 기뻐요." 남의 도시락을 앞에 놓고 있던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아마 나보다도 여러분이 학급 친구의 사정을 훨씬 더 잘 알고 있겠지요. 도시락을 못 가져오는 어린이가 몇 사람 더 있을 줄로 압니다. 내일부터 누구든지 그런 친구의 도시락을 함께 싸올 어린이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너무 무리를 하지 말고, 어머님께 여쭤봐서 허락을 얻으면 말이에요." 나는 영래랑 어울려서 으쓱대던 그애들이 미웠지만, 내 아름다운 선생님의 말씀을 언제라도 거역할 수가 없었으므로 어머니에게 여쭈어보았다. 어머니가 처음엔 걱정을 했다. "글쎄 너두 딱하구나. 난리통이라 살기 힘든 세월인데, 하루이틀도 아니고 매일 어떻게 둘씩이나 싸달란 말이냐." 내가 그럼 저녁마다 조금씩 먹으면 되잖느냐 졸라댔고, 나중에 아버지가 돌아와 얘길 듣고는 유쾌하게 응낙했다. "좋은 일이다. 선생님이나 급우들을 실망시켜선 안 되지. 중요한 건 네가 도움을 받는 친구보다 훙륭하다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또 있어. 조금치도 그 친구께 전과 달리 대하지 말고, 당연한 것으로 받도록 노력해라." 나는 일찌감치 학교에 가서 그애의 자리에다 도시락을 갖다 두었고, 노트를 찢어 "변또는 나중에 돌려줘. 김수남."이라고 써두었다. 그런 다음부터 도시락을 빼앗기거나 누가 점심을 굶는 일이 없어졌다. 나는 그쪽에서 쑥스럽게 내미는 도시락을 아무 말없이 슬쩍 받아넣어 갖고 돌아오곤 했었다. 석환이도 동일이도 서로 내색은 않고 있었지만, 선생님을 무척 좋아하고 있는 눈치였으며 점심을 둘씩 준비해 오는 게 뻔했다. 기지촌에 사는 세 아이들은 한결 양순해졌고 적의를 갖고 대하던 우리에게도 욕을 넣지 않고 말을 건네오곤 하였다. 아이들이란 참으로 단순한지라 전과 달리 서로를 알게 되어 집을 방문하기도 하며 친해질 수가 있었다. 그애들은 차츰 급우들을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동열이를 배반자로 몰아세웠듯이 영래는 자치회 때에 눈에 난 아이들을 앞으로 불러내서는 벌을 가했다. 신발주머니를 까먹고 안 가져왔던 애들은 벌 청소를, 청소가 불량했던 분단은 몽땅 손들고 오리걸음으로 걷게 한다거나, 전반원이 참가하여 다른 반 애들과 붙었던 시계불알 땅뺏기에서 빠졌던 애들은 코 잡고 맴돌기 오십 번을 시키는 식이었다. 아이들은 이젠 그런 일에 전처럼 열광하지도 않았고 시들해 있었으며 전보다는 오히려 서로가 화목해진 편이었다. 모두들 축구라거나 땅뺏기에 이겨야 한다는 핑계로 마구 다루는데 휩쓸리고프지 않았다. 애들이 앞에 나가서 코끼리 맴돌기를 하고 있을 때, 자치회를 위하여 자리를 피해주었던 선생님이 눈을 휘둥그래 뜨며 놀랐다. "뭘 하구 있는 거예요?" 아이들은 입을 꾹 다물었고 영래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벌을 주고 있습니다." "무슨 벌을?" "얘들이 단체행동에서 빠지려구 합니다." "단체행동이라니......." "얘들 때문에 우리가 졌어요. 우리 반의 명예를 위해서 전부 놀이에 참가할 작정이었습니다." "네, 그런가요. 언제 그 놀이를 해보자구 여럿이서 의논을 했었나요?" 선생님의 한결같이 부드러운 질문에 영래가 대들 듯이 거칠게 대답했다. "아뇨, 하나마나죠. 우리 반을 위해서 나는 모두 참가해야 된다구 생각했습니다." "물론 여럿이 하는 일에 마음이 모두 맞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각자의 의견도 묻지 않고 혼자의 생각만 주장해서는 절대로 무슨 일에서건 이길 수 없을 거예요. 급장은 책임이 중할수록 누구에게 불만이 없는가를 살피고, 있다면 그 불만이 자기가 저지른 어떤 잘못 때문이 아닌가 스스로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마음을 모으겠다는 핑계로 제 잘못을 감추려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자치회 때의 일로 영래와 종하 은수 그애들은 선생님을 점점 미워하게 되었고, 자기네와 별로 나이 차이가 많지 않은 소녀라고 눌러보려 했던 것이다. 그애들은 병아리 선생님에 관한 음탕한 욕지거리를 지껄이거나 그이가 돌아서서 칠판에 글씨를 쓸 때 일어나 쑥떡을 먹이며 이상스런 몸짓을 하는 거였다. 나는 이 공공연한 모독에 의한 아이들의 수치심이 점차로 깊이 만연되어가고 있었던 상태를 전혀 느끼지도 못했었다. 어느 산수시간에 뒷자리 아이로부터 내게까지 작게 접은 종이조각이 건네져 왔으며, 펴보고 나서 나는 드디어 더이상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결심했다. 종이조각에는 "본 다음에 앞으로 돌릴 것. 임종하."라고 씌어 있고 밑에다 그이에 관한 욕설에 곁들여 변소에서도 간혹 볼 수 있는 추잡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림을 책갈피에 끼워넣고 시간이 끝나기를 애가 달아 기다렸다. 그동안 나는 별의별 무서운 공상에 시달렸다. 나는 얻어터진다. 머리가 깨어져 다 죽게 된다. 그이가 나를 업고 간다. 몇 날 몇 달을 끝없이 간다. 시간이 끝나고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뒤에서 종하가 대견한 짓이라도 해냈다는 듯이 "얘들아 그 쪽지 어디까지 갔는지 이쪽으루 다시 돌려라" 하며 떠들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겁내지 않으려 애쓰면서 말했다. "내가 가졌다 왜. 정말 너 이 따위 장난만 하기냐?" 종하와 은수가 얼굴을 마주보더니 어이없다는 듯 낄낄 웃어댔다. "그게 니 깔치니?" "구경했으면 고맙다구 그럴 게지, 이 새끼가......." 나도 지지 않고 말했다. "너의들 사과 안하면 그냥 안 둔다." 그에게로 가서 종이조각을 내밀어 주었다. "사과해, 너는 선생님을 욕보인 나쁜 놈이다." "그래 병아리 선생님은 좋은 분이야"하고 석환이가 잇달아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자 이걸 네 손으로 찢어버려." "이 새끼가...... 맞아볼래?" 종하가 내 멱살을 잡아 앞뒤로 흔들다가 바닥에 쓰러뜨렸다. 은수와 영래가 "밟아버려, 밟아."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아이들이 뒤로 한꺼번에 몰려들어 제각기 떠들었다. "너희들이 잘못이다," "우리는 병아리 선생님을 좋아한다." "그분은 훌륭한 사람이야." 기가 죽어 지내던 장판석이도 종하를 내게서 떼어 밀치면서 말했다. "애들 때리면 재미 적다."은수와 종하는 아직도 영래의 행동을 기다리며 씨근거렸다. 아이들이 사방에서 한마디씩 했다. "학급비를 거둬다 우리한텐 알리지두 않고 맘대로 쓴 건 잘못이다." "요전에 동열이를 때린 것두 잘못이라구 생각한다." "한번도 자치회에서 물어보지도 않구 혼자 맘대로 한 건 더욱 잘못이다." 영래는 자기가 반 아이들에게서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는 걸 알았는지 얼굴이 샛노랗게 질려있었다 "너희들 반장에게...... 이러기냐?" "너는 반장 자격이 없어." "그만둬라." 나는 종하에게 종이쪽지를 내밀었다. 종하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는 듯이 영래를 바라보자 그애는 의외로 나약해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찢어, 임마." 종하가 그걸 찢었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내게 사과 안 할테냐?" 아이들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그래 사과하란 말야, 짜식들아." "사과 안 하면 몰매를 놓아서 쫓아내라." 종하가 아주 비굴하게 들릴까말까한 음성으로 말했다. "미안하다." 우리는 모두가 그애들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풀이 죽은 걸 보고서 어리둥절해질 지경이었다. 나의 들끓던 수치감은 그때에 꽉 몰려 있던 오줌이 방광을 비집고 쏟아져 나올 때처럼 외부로 터져나갔고, 가벼운 몸서리를 흠칫 느꼈던 것이었다. 나는 노깡 속의 어둠을 생생히 기억하구 있다. 선생님과 헤어지기 며칠 전에 어머니에게 졸라서 그분을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었지. 그날 나는 부끄러워하면서 내 악몽의 비밀을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은 말했어. "애써보지도 않고 덮어놓고 무서워만 하면 비굴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겁쟁이가 되어 끝내 무서움에서 놓여날 수가 없는 거예요." 나는 그 뒤 몇 번이나 벼른 끝에 모험을 감행하게 되었고, 노깡 속에 다시 한번 들어갔더랬지. 나는 그 속의 뼈다귀가 개뼈, 소뼈, 사람 뼈다귀인지 몰랐지만 어쨌든 아무렇지 않게 길을 들였던 것이다. 나는 그이가 어린이들끼리의 일들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모르거나 모른 체했었는지 아직도 알 수 없구나. 다만 아이들이 존경하는 그이가 옆에 계시니까 욕스럽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스스로 깨달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여럿이 윤리적인 무관심으로 해서 정의가 밟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거야. 걸인 한 사람이 이 겨울에 얼어 죽어도 그것은 우리의 탓이어야 한다. 너는 저 깊고 수많은 안방들 속의 사생활 뒤에 음울하게 숨어 있는 우리를 상상해보구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생활에서 오는 피로의 일반화 때문인지, 저녁의 이 도시엔 쓸쓸한 찬바람만이 지나간다. 그이가 봄과 함께 오셨으면 좋겠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어, 그이가 오는 걸 재빨리 알진 못하겠으나, 얼음이 녹아 시냇물이 노래하고 먼 산이 가까워 올 때에 우리가 느끼듯이 그이는 은연중에 올 것이다. 그분에 대한 자각이 왔을 때 아직 가망은 있는 게 아니겠니. 너의 몸 송두리째가 그이에의 자각이 되어라. 형은 이제부터 그이를 그리는 뉘우침이 되리라. 우리는 너를 항상 기억하고 있으며, 너는 우리에게서 소외되어버린 자가 절대로 아니니까 말야. 끝 (고창근)  
27 내용없는 명성황후의 집념은 공허하다 /안지숙
편집자
3477 2010-07-08
내용없는 명성황후의 집념은 공허하다 강동수 소설 <제국익문사1, 2> 실천문학사 | 2010.05.25 "자넨…… 생각을 잘못했어. 자네의 길은 옳은 길이 아니었어. 일찍이 고균의 뜻은 장했으나 갑신년의 거사가 오히려 나라의 화를 자초했던 것처럼 자네의 길은…… 조선의 망국을 앞당기는 길일뿐이었네. 자네는…… 그렇다면 내가 가는 길이 과연 조선의 국체를 보존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테지. 그건 나도 모르겠네. 자네가 실패했던 것처럼…… 아마…… 나도 실패하겠지. 하지만…… 자네는 최악의 길을 선택했네. 자네는…… 자네의 죄를…… 스스로 짊어지고 가야 하네." - '제국익문사'2권, 280~281쪽 죽어가는 우범선에게 총을 겨눈 채 건네는 장동화의 말은 그들 두 사람의 운명에 대한 자조어린 고백이다. 강동수의 소설 <제국익문사>는 장동화가 걷는 '근황의 길'과 우범선이 걷는 '개화의 길'을 대치해 놓고, 두 사람을 잇는 이인경을 전면에 내세워 구한말의 역사를 재조명해 낸다. 두 권짜리 두툼한 장편소설이 분량 면에서 얼핏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는데, 일단 첫 장을 열고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구한말의 역사적 상황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하고 추리기법을 원용해 전개하는 스토리는 인물의 동선과 사건 전개에 박진감을 불어넣어 소설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한다. 근황의 길과 개화의 길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 이인경은 대한제국의 비밀첩보기관인 '제국익문사' 요원으로 조선과 일본과 상해를 배경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활극을 펼쳐보인다. 이 활극을 제대로 따라잡기 위해선 이인경이라는 인물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인경은 명성왕후 시해범인 이주회의 아들로 아버지가 처형당한 뒤 장동화에게 맡겨진다. 이인경은 스승인 장동화를 아버지처럼 믿고 의지하면서 제국익문사의 핵심요원으로 성장한다. 장동화는 고균 김옥균 밑에서 이주회 우범선과 함께 개혁을 꿈꾸었던 인물로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난 뒤 근황의 길을 선택한다. 이때 뜻을 함께했던 우범선은 기록에 따르면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다가 일본으로 피신한 뒤 조선 자객에게 피살된다. 소설은 이 대목에서 팩션의 묘미를 발휘한다. 작가는 세계적인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의 아버지이기도 한 우범선을 소설 속에서 다시 살려낸다. 즉 제국익문사의 활약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소설무대에서 우범선은 끝까지 개화의 길을 고집하는 혁명가로 부활하는 것이다. 우범선은 일본세력을 이용해 왕정을 폐하고 독립적인 공화정을 수립하려는 목표에 일생을 건다. 혁명가로 살아온 그의 생애는 일본 망명생활 틈틈이 써나간 회고록을 통해 전말이 밝혀진다. 그 회고록에는 일본에 빌붙은 국모시해범으로 알려진 우범선의 갈등과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왕비가 지키려는 나라에는 마땅히 있어야 할 그 어떤 내용이 결락돼 있었다. 무엇을 위해, 어떤 나라를 만들기 위해 그녀는 권력에 그토록 집착하는가. 내용이 없는 왕비의 집념은 내게 공허해 보였다. 왕비가 지키려던 나라의 무내용을 나는 견딜 수 없었다. 왕실의 안녕과 합중공화. 그것은 처음부터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그 두 개의 정치적 목표 사이에 거대한 심연이 놓여있었다. - '제국익문사'2권, 12~13쪽 이제 나는 국적이 되었다.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정수리에서 등판으로 얼음처럼 차가운 냉기가 찌르르 흘러내리는 듯했다. 나는 다시 중얼거렸다. '나는 이제 국적이다. 나는 신하로서 군사를 이끌고 지엄한 궁궐을 범했다. 임금이 머무는 지밀이 외적의 발길에 짓밟히도록 방조한, 아니 외적의 칼날에 지존한 왕비의 목숨을 던져준 자다. 나는 이 지상에 말이 남아있는 한 그 어떤 욕으로도 다할 수 없는 극악한 역도로 손가락질당할 것이다. 글이 사라지지 않는 한 만대에 걸쳐 오늘의 내 행적이 전해지고 전해질 것이다.' - '제국익문사'2권, 28쪽 이제 나는 국적이 되었다! 육성이 들려오는 듯한 회고록에는 정치 망명객의 쓰라린 심정이 그대로 묻어난다. 어쩌면 이 회고록이야말로 작가가 소설 <제국익문사>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역사 이면의 진실은 아닐지……. 명성황후로 대표되는 수구당, 과연 올바른 노선 밟았나? 이에 대해 작가 강동수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대한 민족적 분노는 당연한 것이지만 명성황후로 대표되는 수구당이 과연 올바른 노선을 밟았는가를 따져보는 것 역시 이와 별개로 필요한 일"이라면서 "소설 속의 우범선은 한 개인이면서 동시에 작가의 상상 속에서 당대 개화당의 이념이 뭉뚱그려져 육화된 인물인데, 그를 통해 개화당이 추구한 정치적 이념의 지형도와 그 한계를 짚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우범선은 일본에 머물면서 박영효를 비롯한 개화세력을 모아 공화제 정부를 세우려는 거사를 도모하는데, 이를 저지할 임무를 띠고 찾아가는 인물이 바로 그의 옛 동지의 아들인 이인경이다. 우범선은 자신을 찾아온 이인경의 정체를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척하며 회고록을 건네준다. 때문에 인경에게 지령을 내리는 장동화의 근황의 길과 우범선이 꿈꾸는 개화의 길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채 대비되어 드러나고, 그들이 선택한 길에 대한 판단의 몫은 독자에게 맡겨진다. 우연인지 기획인지 아무튼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나온 소설 <제국익문사>는 베일에 가려졌던 구한말의 첩보기관을 현실 속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대단히 주목할 만하다. 소설가 조정래는 <제국익문사>에 대해 "박제된 역사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 장쾌한 서사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애국과 매국 사이에서의 갈등을 다루는 균형 잡힌 시선에 신뢰가 간다"며 "가히 경술국치 100년 만에 나온 '대한제국 멸망사'로 읽힐 만하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당초 작가는 우장춘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국모를 시해한 부친에 대한 원죄의식을 그리려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 조센진이라는 놀림을 받으며 자랐던 우장춘 박사의 내면을 투영시킨 인물 이인경이 보여주는 인간적 매력은 심상치 않다. 특히 우범선의 딸 아사코와의 만남과 사랑, 이별을 그린 장면들은 자칫 거대담론으로 흐를 법한 소설 전편에 애틋한 감성을 얹어놓는다. 또한 장동화 우범선 등이 스스로 선택한 삶에 대해 취하는 치열함, 고독한 결단은 소설에 또 다른 매력을 더하고 있다. 저자 강동수 1961년 1월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94년『세계일보』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돼 등단했다. 저서로 소설집『몽유 시인을 위한 변명』, 시사산문집『가납사니의 따따부따』가 있다. 제20회 봉생문화상 문학부문을 수상했다. 현재『국제신문』논설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 안지숙, 소설가  
26 첼로 켜는 고슈 / 미야자와 겐지
편집자
5563 2010-07-08
내가 좋아하는 소설 ‘첼로 켜는 고슈’는 착한 동물 친구들의 도움으로 연주 실력을 높여 마침내 자신의 음악세계를 갖게 되는 첼로 연주자 이야기다. 살림살이도 궁색하고 가족도 없는 고슈는 연주 실력마저 형편없다. 지휘자에게 꾸중을 듣고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온 고슈. 그는 밤늦도록 첼로연습을 하는데 난데없이 고양이 한 마리가 찾아온다. 그때부터 고슈에게는 마법이 일어난다. 어른이 되어 동화를 읽는 사람들이 남몰래 바라는 바로 그것, 따뜻한 마법이 일어난다. 이 동화를 쓴 작가는 미야자와 겐지(1896~1933)다. 일본의 국민 작가로 불릴 만큼 일본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는 시인이며 동화 작가이다. ‘은하 철도의 밤’ ‘주문이 많은 음식점’ ‘쌍둥이별’ 등 100여 편이 넘는 동화를 썼다. 겐지의 작품은 국내 TV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됐던 일본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와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의 애니매이션 ‘첼로리트 고슈’로 만들어진 바 있다. (안지숙, 소설가) 첼로 켜는 고슈 고슈는 마을 극단의 첼로 켜는 연주자였습니다. 하지만 실력이 별로라는 평판이 나 있었죠. 솔직히 별로인 정도가 아니라 동료 연주자들 가운데 가장 형편없었기 때문에 지휘자들한테 늘 꾸지람을 들었답니다. 오후에 다들 연습실에 둘러앉아, 이번 마을 음악회에서 연주할 제6 교향곡을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트럼펫이 열심히 노래하고 있습니다. 바이올린은 두 줄기 바람처럼 울고 있고요. 클라리넷도 보-보 하고 거들어 줍니다. 고슈는 입을 꾹 다물고 눈을 접시만하게 뜨고는 열심히 악보를 들여다보며 첼로를 켜고 있었습니다. 느닷없이 지휘자가 손뼉을 짝 쳤습니다. 다들 연주를 멈추고 조용해졌습니다. 지휘자가 호통을 쳤습니다. ˝첼로가 늦었잖아. 띠리리, 띠리리, 여기서부터 다시, 자!˝ 모두들 조금 앞으로 돌아가 다시 연주했습니다. 고슈는 얼굴이 벌개져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방금 지적당한 곳을 간신히 넘어갔습니다. 휴우 하고 안심하면서 다음 부분을 연주하고 있는데, 지휘자가 다시 손뼉을 짝 쳤습니다. ˝첼로, 줄이 안 맞잖아! 정말 미치겠군. 이봐, 내가 자네한테 도레미파까지 가르쳐 줘야겠나?˝ 사람들은 멋쩍은 듯 괜히 자기 악보를 들여다보거나 악기를 만지작거렸습니다. 고슈는 허둥지둥 첼로 줄을 맞추었습니다. 사실은 고슈도 잘못했지만, 첼로가 워낙 고물이었던 것입니다. ˝앞 소절부터 다시. 자!˝ 다시 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고슈도 입을 앙다물고 열심히 첼로를 켰습니다. 이번에는 꽤 오랫동안 연주가 이어졌습니다. 마음을 푹 놓고 있는데, 지휘자가 또다시 손뼉을 짝 쳤습니다. ´또야!´하고 고슈는 가슴이 철렁했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슈는 아까 다른 사람들이 그랬듯이 괜히 악보를 들여다보며 뭔가 생각하는 척했습니다. ˝그럼, 바로 다음 부분부터. 자!˝ ´자!´하고 연주를 시작하자마자, 별안간 지휘자가 발을 쿵쿵 구르며 호통쳤습니다. ˝안 돼! 도대체 엉망진창이야, 엉망진창! 이 부분은 곡의 심장이나 마찬가지야. 그런데 이렇게 거칠고 매끄럽지 못해서야 되겠나! 이봐, 연주회는 이제 열흘밖에 남지 않았어. 음악을 한다는 우리가 대장장이나 설탕 가게 일꾼들보다 못하다면, 도대체 우리 체면이 뭐가 되겠나? 그리고 고슈, 자넨 정말 문제야! 표정이 아예 없어. 분노고 기쁨이고 하나도 표현하지 못하잖아! 게다가 다른 악기와 호흡이 전혀 안 맞는단 말일세. 항상 자네 혼자 신발끈을 질질 끌며 뒤꽁무니를 따라오는 것 같다구. 그러면 곤란해. 제발 좀 잘해 줘. 우리 ´샛별 음악단´이 자네 하나 때문에 나쁜 평가를 받는다면, 다른 사람들한테 미안하지 않겠나? 자, 오늘 연습은 여기서 마치고, 이따가 여섯 시 정각에 극장 대기실로 오게.˝ 연주자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담뱃불을 붙이거나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고슈는 허름한 상자 같은 첼로를 껴안고 벽 쪽으로 돌아앉아, 입을 비죽이며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하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고 방금 전에 연습한 부분을 처음부터 조용히 다시 연주했습니다. 그 날 밤 느지막이, 고슈는 커다란 검은 짐을 둘러메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이라고 해 보았자, 마을 변두리 강가에 있는 무너진 물방앗간일 뿐입니다. 고슈는 이 물방앗간에 혼자 살면서, 아침나절에는 방앗간 주위의 작은 텃밭에서 토마토 가지를 자르거나 양배추 벌레를 잡다가 오후가 되면 극장으로 나가곤 했습니다. 고슈는 집 안으로 들어가 불을 켜고 검을 짐을 풀었습니다. 낮에 지휘자에게 함께 야단맞던, 그 거칠고 무딘 첼로였습니다. 고슈는 첼로를 마룻바닥에 살며시 내려놓고는, 갑자기 선반에서 컵을 꺼내 양동이의 물을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그리고는 머리를 한 번 흔들고 나서 의자에 앉아, 낮에 연습한 곡을 호랑이처럼 힘차게 켜기 시작했습니다. 악보를 넘기면서 켜다가는 곰곰이 생각하고 나서 다시 켜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지잉지잉 열심히 연주했습니다. 밤은 벌써 이슥해졌습니다. 이제 고슈는 자기가 첼로를 켜고 있는지조차 헷갈렸습니다. 얼굴은 새빨개지고 눈에는 핏발이 선 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요. 그 때 누군가가 뒷문을 톡톡 두드렸습니다. ˝호슈냐?˝ 고슈는 멍하니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지금까지 대여섯 번쯤 마주친 커다란 얼룩고양이였습니다. 얼룩고양이는 고슈의 밭에서 딴 설익은 토마토를 끙끙대며 들고 와 고슈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아이고, 힘들어라. 이거 나르는 것도 제법 힘드네.˝ ˝뭐라고?˝ 고슈가 묻자, 얼룩고양이가 말했습니다. ˝이거 선물이에요. 드세요.˝ 그 순간 고슈는 낮부터 꾹꾹 눌러 왔던 울화통을 한꺼번에 터뜨렸습니다. ˝누가 너한테 토마토 가져 오랬어? 네까짓 녀석이 가져온 걸 내가 먹을 것 같아? 게다가 그 토마토는 우리 밭에서 난 거잖아. 뭐야, 아직 익지도 않은 것을 따다니! 지금까지 토마토 줄기를 갉아먹고 망쳐 놓은 녀석이 바로 너지? 썩 꺼져, 이놈의 고양이야!˝ 그러자 고양이는 어깨를 둥글게 말아 구부리고는 실눈을 뜨고 싱글거리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렇게 화내시면 몸에 안 좋아요. 그보다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해 주시면 어때요. 들어 드릴 테니까.˝ ˝건방진 녀석! 감히 고양이 주제에.˝ 철로 연주자는 화가 나서 이놈의 고양이를 어떻게 혼내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자요, 부담 갖지 마시고 어서요! 저는 선생님의 음악을 듣지 않으면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답니다.˝ ˝저, 저, 저, 건방진 녀석 같으니!˝ 고슈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지휘자처럼 발을 쿵쿵 구르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좋아, 켜 주마.˝ 고슈는 무슨 속셈인지 문을 잠그고 창문도 몽땅 닫고는 불까지 껐습니다. 그러자 음력 스무 날을 넘긴 달빛이 방안으로 고요히 흘러 들어왔습니다. ˝뭘 들려 달라고?˝ ˝트로이메라이요. 낭만파 음악가 슈만이 작곡한.˝ 고양이는 입가를 핥고는 짐짓 점잖게 말했습니다. ˝그래, 토로이메라이가 이런 거냐?˝ 첼로 연주자는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손수건을 쭉 찢어서 자기 귀를 틀어막았습니다. 그리고는 폭풍 같은 기세로 ´인도의 호랑이 사냥´이라는 곡을 켜기 시작했습니다. 고양이는 고개를 갸웃하고 한동안 귀를 기울이다가, 갑자기 눈을 깜박거리더니 문 쪽으로 홱 물러섰습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쿵! 하고 문으로 몸을 날렸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고양이는 ´아뿔싸,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구나.´ 하는 듯이 허둥대며 눈과 이마에서 불꽃을 파박파박 내뿜었습니다. 수염과 코에서도 불꽃이 번쩍 번쩍 튀었습니다. 고양이는 금방이라도 재채기를 할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도저히 못 견디겠는지 종종걸음치기 시작했습니다. 고슈는 아주 재미가 붙어서 점점 신나게 첼로를 켰습니다. ˝선생님, 이제 됐어요! 됐다구요. 제발 부탁이니, 그만 하세요! 앞으로 다시는 선생님 음악에 참견하지 않을게요.˝ ˝조용히 해! 지금부터 호랑이를 붙잡는 부분이야.˝ 고양이는 고통에 못 이겨 펄쩍펄쩍 뛰어다니다가는 벽에 찰싹 붙기도 했습니다. 벽에서 몸을 떼면 한동안 그 자리가 파랗게 빛이 났습니다. 마침내 고양이는 고슈의 주위를 풍차처럼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고슈도 어지러워져서 ˝이제 그만 용서해 주마.˝ 하고 겨우 연주를 멈추었습니다. 그러자 고양이도 멀쩡한 얼굴로, ˝선생님, 오늘 밤 연주는 좀 이상했어요.˝ 하고 대꾸했습니다. 철로 연주자는 다시 울화통이 치밀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잎담배를 꺼내 물고는, 성냥 하나를 들고 물었습니다. ˝어떠냐? 몸은 괜찮아? 혀를 내밀어 봐.˝ 고양이는 고슈를 놀리듯 길고 뾰족한 혀를 쏘옥 내밀었습니다. ˝하아, 좀 까칠까칠해졌구나.˝ 첼로 연주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갑자기 고양이 혀에다 성냥을 치익 그어 담뱃불을 붙였습니다. 고양이는 까무러치게 놀라 혀를 풍차처럼 홱홱 돌리며, 문으로 가서 머리를 쿵 박고 비틀비틀 돌아왔다가 또다시 쿵 박고, 비틀비틀 돌아왔다가 또다시 쿵 박고, 비틀비틀 길을 찾으려고 애썼습니다. 고슈는 한참 재미있게 구경하다가, ˝이제 내보내 주마. 다시는 오지 마, 이 멍청한 녀석아.˝ 첼로 연주자는 문을 열어 주고, 억새풀 사이를 바람처럼 달려가는 고양이를 바라보면서 싱긋 웃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겨우 마음이 가벼워진 듯 곤히 잠들었습니다. 이튿날 밤에도 고슈는 검은 첼로 꾸러미를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물을 벌컥벌컥 마신 다음, 지난밤처럼 부지런히 첼로를 켜기 시작했죠. 어느새 열두 시가 지나고, 한 시도 지나고, 두 시도 지났지만, 고슈는 여전히 첼로를 켜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몇 시인지도 알 수 없고 첼로를 켜고 있는지 어떤지도 가물가물할 즈음, 누군가가 천장을 똑똑 두드렸습니다. ˝고양이 너구나. 아직도 혼이 덜 났니?˝ 고슈가 소리치자, 갑자기 천장 구멍에서 호도독 소리가 나더니 잿빛 새 한 마리가 내려왔습니다. 마루에 앉은 것을 보니 뻐꾸기였습니다. ˝뭐야, 이젠 새까지 찾아오는군. 무슨 일이지?˝ 고슈가 묻자, 뻐꾸기는 새침하게 대답했습니다. ˝음악을 배우고 싶어요.˝ 고슈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음악이라고? 네 노래는 기껏해야 뻐꾹, 뻐꾹뿐이잖아.˝ 그러자 뻐꾸기는 아주 진지하게 ˝네, 그래요. 하지만 그게 어려운 거라고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어렵기는 뭐가 어렵다는 거야. 너희들은 귀가 따갑도록 울어대잖아.˝ ˝그런데 그게 어렵다고요. 예를 들어 뻐꾹 하고 우는 것과 빠꾹 하고 우는 건 듣기에도 많이 다르잖아요?˝ ˝다르긴 뭐가 달라.˝ ˝그럼, 당신이 모르는 거예요. 우리 뻐꾸기는 뻐꾹 하고 만 번을 울어도 그 만 번이 저마다 다른걸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게 잘 알면 나한테 올 것도 없잖아?˝ ˝하지만 저는 도레미파를 정확하게 노래하고 싶어요.˝ ˝쳇, 도레미파 좋아하네.˝ ˝음, 외국에 나가기 전에 꼭 배워야 해요.˝ ˝외국은 무슨 외국!˝ ˝선생님, 제발 도레미파를 가르쳐 주세요. 선생님 하시는 대로 따라서 노래할게요.˝ ˝에이, 귀찮아. 그럼 딱 세 번만 켜 줄 테니까, 얼른 돌아가야 한다.˝ 고슈는 첼로를 집어 들고 끼잉끼잉 줄을 맞추고 나서,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켰습니다. 그러자 뻐꾸기는 허겁지겁 날개를 파닥였습니다. ˝틀렸어요, 틀렸어! 그게 아니에요.˝ ˝까다롭기는. 그럼 네가 해 봐.˝ ˝이거예요.˝ 뻐꾸기는 몸을 앞으로 수그리고 잠시 자세를 잡더니, ˝뻐꾹.˝하고 울었습니다. ˝뭐야, 그게 도레미파야? 그렇다면 너희들한테는 도레미파나 제6교향곡이나 다 똑같겠군.˝ ˝그건 달라요.˝ ˝어떻게 다른데?˝ ˝어려운 것은, 이걸 많이많이 계속하는 거예요.˝ ˝바로 이런 거지?˝ 첼로 연주자는 다시 첼로를 쥐고, 뻐꾹뻐꾹뻐꾹뻐꾹 하고 켰습니다. 그러자 뻐꾸기는 아주 기뻐하며, 뻐꾹뻐꾹뻐꾹 하고 끼어들었습니다. 몸을 잔뜩 수그리고 끝도 없이 소리쳤죠. 고슈는 마침내 손이 아파서, ˝이봐, 이제 그만 하자고.˝ 하면서 손을 멈추었습니다. 그러자 뻐꾸기는 서운한 듯 눈을 치뜨고는 뻐꾹뻐꾹 하고 소리 높여 울다가 가까스로 ˝…… 뻐꾹뻐꾹뻑뻑뻑.˝ 하고 그쳤습니다. 고슈는 화가 치밀어서 ˝이봐, 뻐꾸기. 이제 볼일 끝났으면 냉큼 돌아가!˝하고 쏘아붙였습니다. ˝제발 한 번만 더 켜 주세요. 당신 솜씨는 좋긴 하지만, 어딘가 틀린 것 같거든요.˝ ˝뭐야, 네가 날 가르치겠다는 거야? 썩 꺼지지 못해!˝ ˝제발 딱 한 번만 더 켜 주세요.˝ 뻐꾸기는 고개를 까딱까딱 조아렸습니다. ˝그럼 이번이 마지막이다.˝ 고슈는 활을 쥐었습니다. 뻐꾸기는 ˝꾹.˝하고 숨을 쉬고는, ˝그럼 되도록 길게 해 주세요.˝ 하더니 다시 한 번 고개를 조아렸습니다. ˝못 말리겠군.˝ 고슈는 쓴웃음을 지으며 첼로를 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뻐꾸기는 다시 진지해져서 몸을 숙이고는 ˝뻐꾹뻐꾹뻐꾹.˝하고 아주 아주 열심히 소리쳤습니다. 고슈는 처음에는 짜증스러웠지만, 한참 켜다 보니 어쩐지 새의 음이 진짜 도레미파 하고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뻐꾸기가 더 잘하는 것 같았습니다. ˝에이, 이런 멍청한 짓을 계속하다가는 내가 새가 되어 버리겠군.˝ 하면서 고슈는 연주를 뚝 그쳤습니다. 그러자 뻐꾸기는 머리를 세차게 얻어맞은 듯 비틀거리더니, 다시 아까처럼 ˝뻐꾹뻐꾹뻑뻑뻑.˝하고 울음을 그쳤습니다. 그리고는 원망스러운 듯 고슈를 쳐다보며 따졌습니다. ˝왜 그만두는 거예요? 아무리 줏대 없는 뻐꾸기라지만, 우리는 목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소리친다고요.˝ ˝뭐야, 건방지게! 이따위 바보 같은 짓을 언제까지 하란 말이냐? 이제 그만 나가. 봐, 날이 샜잖아.˝ 하고 고슈는 창을 가리켰습니다. 동쪽 하늘이 아련한 은빛으로 물들고, 시꺼먼 구름이 북쪽으로 둥둥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해님이 떠오를 때까지만이라도요. 딱 한 번만. 잠깐이면 돼요.˝ 뻐꾸기는 다시 고개를 조아렸습니다. ˝시끄러워. 잘난 척하기는! 이 멍텅구리 새야, 썩 꺼지지 않으면 털을 뽑아서 아침밥으로 먹어 버리겠다.˝ 고슈는 발을 쿵 굴렀습니다. 뻐꾸기는 깜짝 놀라 창으로 푸드득 날아갔지만 유리창에 머리를 꽝 부딪고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어휴, 유리창에. 이 바보.˝ 고슈는 얼른 일어나 창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원래 이 창문은 아무 때고 쓱 열리는 창문이 아니었습니다. 고슈가 창틀을 붙잡고 덜컹덜컹 흔들어 대는 사이에, 뻐꾸기는 다시 한 번 날아올랐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유리창에 세차게 부딪혀 바닥에 나동그라졌습니다. 보니까 부리께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곧 열어 줄 테니까, 좀 기다려.˝ 고슈가 겨우 6센티미터쯤 창문을 열었을 때, 뻐꾸기는 다시 일어나 이번에는 기어이 나가고야 말겠다는 듯이 창 너머 동쪽 하늘을 지그시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있는 힘을 다해 푸드득 날아올랐습니다. 물론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훨씬 심하게 유리창에 부딪쳤습니다. 뻐꾸기는 바닥에 떨어진 채 한동안 꼼짝도 못했습니다. 고슈는 뻐꾸기를 붙잡아 창으로 날려 보내 주려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뻐꾸기는 별안간 눈을 번쩍 뜨고 잽싸게 피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유리창으로 달려들었습니다. 고슈는 엉겁결에 창문을 걷어찼습니다. 유리 두세 장이 와장창 깨지고, 창틀이 통째로 나가떨어졌습니다. 그 텅 빈 창 너머로 뻐꾸기는 화살처럼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끝없이, 끝없이 날아가 곧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고슈는 잠시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밖을 내다보다가, 그대로 쓰러지듯 방구석에 엎어져 곤히 잠들었습니다. 다음날에도 고슈는 밤늦도록 첼로를 켜다가 지쳐서 물을 한 컵 마셨습니다. 그 때 또다시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오늘밤에는 누가 찾아오더라도 어젯밤의 뻐꾸기처럼 겁을 줘서 일찌감치 쫓아 보내야지, 마음먹고 컵을 든 채 기다리고 있는데 문이 빠끔 열리더니 아기 너구리 한 마리가 들어왔습니다. 고슈는 문을 좀더 열어 두고 발을 쿵 구르며, ˝요 너구리 녀석! 너는 너구리 된장국이라는 걸 아느냐?˝ 하고 소리쳤습니다. 아기 너구리는 멍한 얼굴로 바닥에 다소곳이 앉아 도대체 무슨 소리냐는 듯이 한참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하더니, ˝너구리 된장국, 나 몰라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고슈는 그 얼굴을 보고 저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나왔지만,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그럼 가르쳐 주마. 너구리 된장국이란 너 같은 너구리를 양배추와 소금을 넣어 푹푹 삶아서 내가 먹을 수 있게 만든 거다.˝ 하고 말했습니다. 아기 너구리는 다시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하지만 우리 아빠가요, 고슈 씨는 하나도 안 무서운 분이니까 가서 배우라고 했는걸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고슈도 마침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뭘 배우라고 했는데? 나는 바쁘단다. 그리고 졸려.˝ 아기 너구리는 갑자기 기운이 나는 듯 한 발을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나는 작은북을 맡고 있거든요. 아빠가 첼로 소리에 맞춰 보고 오랬어요.˝ ˝작은북이 어디 있다고 그러니?˝ ˝여기요.˝ 아기 너구리는 등 뒤에서 나무때기 두 개를 고슈 앞에 내밀었습니다. ˝그걸로 뭘 어쩌겠다고?˝ ˝아저씨, ´유쾌한 마차꾼´을 연주해 주세요.˝ ˝유쾌한 마차꾼? 그건 재즈냐?˝ ˝예, 이게 악보예요.˝ 아기 너구리는 다시 등 뒤에서 악보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고슈는 악보를 받아 쥐고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흐음, 이상한 곡인걸. 좋아, 켜 주지. 너는 작은북을 치겠다고?˝ 고슈는 아기 너구리가 어떻게 하나 싶어 힐끔힐끔 곁눈질을 하면서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아기 너구리는 나무때기로 첼로의 아래 부분을 통통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솜씨가 어찌나 좋은지, 첼로를 켜면서도 고슈는 이거 재미있구먼 하고 생각했답니다. 연주가 끝나자, 아기 너구리는 한동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겨우 생각났다는 듯 말했습니다. ˝아저씨는 두 번째 줄을 켤 때 이상하게 늦어요. 어쩐지 내가 걸려 넘어지는 것처럼 들리거든요.˝ 고슈는 깜짝 놀랐습니다. 확실히 그 줄은 어제부터 아무리 빨리 켜도 한 박자쯤 더디게 소리가 나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 그럴지도 몰라. 이 첼로는 고물이거든.˝ 하고 고슈는 우울하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너구리는 안 됐다는 표정으로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했습니다. ˝어디가 안 좋은 걸까. 한 번 더 켜 주실래요?˝ ˝좋아. 켜고말고.˝ 고슈는 첼로를 켜기 시작했습니다. 아기 너구리는 아까처럼 첼로의 아래 부분을 통통 두드리며 이따금 첼로에 귀를 바짝 갖다 댔습니다. 그리고 곡이 끝났을 무렵, 동쪽 하늘이 어슴푸레 밝아 왔습니다. ˝아, 날이 밝았네. 정말 고마웠어요.˝ 아기 너구리는 부리나케 악보와 나무때기를 등에 지고 테이프로 단단히 붙이고는, 절을 두어 번 하더니 휭하니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고슈는 얼이 빠져서 깨어진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쐬고 있다가, 마을 극장으로 가기 전에 기운을 차리려고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밤에도 고슈는 밤새 첼로를 켜다가 새벽녘에 악기를 쥔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습니다. 또다시 누군가가 문을 똑똑 두드렸습니다. 들릴 듯 말 듯 나지막한 소리였지만 고슈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들어와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문틈으로 들어온 것은 들쥐였습니다. 들쥐는 아주 조그만 아기 쥐를 데리고 고슈 앞으로 쫄랑쫄랑 걸어왔습니다. 아기 들쥐는 겨우 지우개만했기 때문에 고슈는 무심결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들쥐는 무엇 때문에 웃나 싶어서 두리번거리며 고슈 앞에 서더니, 푸른 밤톨 하나를 놓고 꾸벅 절을 했습니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몹시 아파요. 부디 자비를 베풀어 낫게 해 주십시오.˝ ˝내가 무슨 의사인 줄 알아?˝ 고슈는 불끈해서 퉁명스레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엄마 들쥐는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있다가 다시 용기를 내어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건 거짓말이죠. 선생님은 날마다 모두의 병을 말끔히 고쳐 주셨잖아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선생님 덕분에 토끼 어머니의 병도 나았고, 너구리네 아버지 병도 나았고, 짓궂은 수리부엉이까지 나았어요. 그런데 우리 애 병은 고쳐 주시지 않겠다니, 너무 매정하시군요.˝ ˝이봐, 이봐, 그건 오해야. 나는 수리부엉이의 병을 고쳐 준 적이 없어. 물론 아기 너구리는 어젯밤에 악사 시늉을 하긴 했지만. 하하하.˝ 고슈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아기 들쥐를 내려다보며 웃었습니다. 그러자 엄마 들쥐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아, 불쌍한 우리 아기! 병에 걸리려면 좀더 일찍 걸릴 것이지. 방금 전까지 그렇게 첼로를 지잉지잉 켜더니, 우리 애가 병에 걸리자마자 소리를 딱 멈추고 이렇게 부탁하는데도 안 된다니! 아이고, 불쌍한 내 새끼.˝ 고슈는 깜짝 놀라 소리쳤습니다. ˝뭐라고, 내가 첼로를 켜서 수리부엉이하고 토끼 병이 나았다고?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들쥐는 한 손으로 눈을 비비며 말했습니다. ˝네, 이 근처 사는 동물들은 병에 걸리면 다들 선생님네 마루 밑에 들어가 병을 치료한답니다.˝ ˝그럼 낫는단 말이야?˝ ˝네. 온몸의 피가 잘 통하고 기분이 좋아져서 금방 나은 경우도 있고, 집으로 돌아간 뒤에 나은 경우도 있죠.˝ ˝오호라, 그래? 내 첼로 소리가 웅웅 울리면 마치 안마를 해주듯이 너희들의 병을 고쳐 준단 말이지? 좋아, 알았어. 해 보지.˝ 고슈는 줄을 끼이끼이 맞추고 나서, 아기 들쥐를 첼로 구멍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저도 함께 들어가겠어요. 병원에서는 다들 그렇게 하니까요.˝ 엄마 들쥐는 부득부득 첼로에 매달렸습니다. ˝너도 들어가겠다고?˝ 첼로 연주자는 엄마 들쥐를 첼로 구멍 속에 집어넣어 주려고 했지만, 얼굴이 반밖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얘야, 괜찮니? 엄마가 가르쳐 준 대로, 떨어질 때 발을 모아서 잘 떨어졌어?˝ ˝네, 잘 떨어졌어요.˝ 아기 들쥐는 첼로 안에서 모기처럼 가느다란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괜찮구먼. 그러니까 우는 소리 하지 마.˝ 고슈는 엄마 들쥐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활을 들고 광시곡 같은 것을 지잉지잉 가앙가앙 연주했습니다. 엄마 들쥐가 자못 걱정스럽게 듣고 있다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이제 됐어요. 아이를 꺼내 주세요.˝ ˝뭐야, 이걸로 끝이야?˝ 고슈는 첼로를 앞으로 기울여 구멍 앞에 손을 대고 기다렸습니다. 곧 아기 들쥐가 나왔습니다. 고슈는 잠자코 들쥐를 내려 주었습니다. ˝어떠니? 기분은 좋아?˝ 아기 들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눈을 꼭 감은 채 바들바들 떨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뛰어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아아, 나았다!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엄마 들쥐도 덩달아 뛰어다니다가, 고슈에게 연거푸 절을 하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열 번쯤 되뇌었습니다. 고슈는 왠지 들쥐가 사랑스러워져서, ˝얘, 너희들 빵은 먹니?˝ 하고 물었습니다. 들쥐는 깜짝 놀라서 힐끔힐끔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했습니다. ˝아니오. 저어, 빵이란 건 밀가루를 반죽하거나 얇게 펴서 만든 거죠? 부드럽게 부풀어 있어 맛있기는 하지만, 저희는 이 집 선반에는 얼씬거린 적도 없고, 또 이렇게 신세를 지고 어떻게 그것을 가져갈 수 있겠어요?˝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냐. 그냥 먹느냐고 물어 본 거야. 그럼 먹는 거지? 잠깐 기다려. 배 아픈 아이한테 줄 테니까.˝ 고슈는 첼로를 바닥에 내려놓고, 선반에서 빵을 한 웅큼 뜯어 들쥐 앞에 놓았습니다. 그러자 들쥐는 꼭 바보처럼 울다가 웃다가 절을 하다가는, 빵 조각을 소중히 물고 아기를 앞장세워 밖으로 나갔습니다. ˝휴우, 들쥐와 이야기하는 것도 꽤 고단하군.˝ 고슈는 침대에 풀썩 쓰러져 쿨쿨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엿새째 밤이 되었습니다. 샛별 음악단 사람들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저마다 악기를 들고 극장 무대 뒤에 있는 대기실로 줄줄이 퇴장했습니다. 제6교향곡 연주를 훌륭히 마친 것입니다. 청중석에서는 아직도 박수소리가 폭풍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지휘자는 박수 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연주자들 사이를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고 있었지만, 속마음은 기쁨으로 가득했답니다. 연주자들은 담뱃불을 붙이거나 악기를 상자에 넣고 있었죠. 시간이 지날수록 박수소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큼직한 하얀 리본을 가슴에 단 사회자가 대기실로 들어왔습니다. ˝앙코르를 해 달라는데, 짧은 곡이라도 좋으니 한 곡 들려주실 수 없겠습니까?˝ 그러자 지휘자가 정색을 하고 대답했습니다. ˝안 됩니다. 이런 대연주 뒤에는 어떤 곡을 연주해도 우린 성에 차지 않습니다.˝ ˝그럼 지휘자님께서 잠깐 나오셔서 인사라도 해 주십시오.˝ ˝안 돼요. 이봐, 고슈. 자네가 나가서 한 곡 연주하게.˝ ˝제가요?˝ 고슈는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그래, 자네 말이야. 고슈.˝ 제1바이올린 연주자가 불쑥 고개를 쳐들고 말했습니다. ˝자아, 나가 보게.˝ 지휘자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모두들 고슈한테 첼로를 떠안기면서 문을 열고 무대로 떠밀렸습니다. 고슈가 낡은 첼로를 안고 쭈뼛쭈뼛 무대로 나오자, 사람들은 ´드디어 나왔다´ 하고 한결 요란스레 박수를 쳤습니다. 와아 하고 고함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람을 이렇게 바보 만들어도 되는 거야? 좋아, 두고 보자. 인도의 호랑이 사냥을 켜 줄 테다.´ 고슈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무대 한가운데에 섰습니다. 그리고는 예전에 고양이가 찾아왔을 때처럼 성난 코끼리 같은 기세로 호랑이 사냥을 연주했습니다. 청중은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고슈는 거침없이 첼로를 켰습니다. 고양이가 괴로워서 불꽃을 팍팍 튀기던 부분도 지났습니다. 문에 몸을 쿵쿵 부딪치던 부분도 지났습니다. 곡이 끝나자, 고슈는 청중석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마치 그 때의 고양이처럼 잽싸게 첼로를 안고 대기실로 물러났습니다. 그러자 대기실에서는 지휘자를 비롯한 모든 동료들이 불이라도 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숨을 죽인 채 앉아 있었습니다. 고슈는 ´에라 모르겠다´하는 마음으로 사람들 사이를 성큼성큼 지나 맞은편 긴 의자에 앉아 다리를 척 꼬았습니다. 그 순간 모두들 고슈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딱히 비웃는 기색은 엿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이상한 밤이야.´ 하고 고슈는 생각했습니다. 그 때 지휘자가 일어서서 말했습니다. ˝고슈, 잘했어. 뭐, 그저 그런 곡인데도 모두들 아주 진지하게 듣고 있었네. 불과 며칠 사이에 아주 좋아졌어. 열흘 전에 비하면 꼭 젖먹이와 병사 같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어. 안 그런가, 고슈?˝ 동료들도 너나없이 다가와 ˝잘했어.˝ 하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응, 이것도 다 몸이 건강한 덕분이야. 보통 사람이라면 죽었을 걸세.˝ 그 날 밤 느지막이, 고슈는 자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물을 벌컥벌컥 마셨죠. 그러고 나서 창을 활짝 열고 언젠가 뻐꾸기가 날아갔던 먼 하늘을 바라보며, ˝아, 뻐꾸기야. 그 때는 미안했어. 나는 화를 낸 게 아니었단다.˝ 하고 말했답니다.  
25 프라하의 봄
편집자
3795 2010-07-01
주목! 이 문학단체 망설이다가 저희 카페 <프라하의 봄>을 소개하게 되니 기분이 묘하네요. 사실 저희는 카페를 키우거나 광고하기 위한 노력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저희는 ‘아트앤스터디 - www.artnstudy.com’ 라는 싸이트의 소설강좌에서 처음 만나 3년간 함께 지냈고, 그 강좌가 문을 닫음에 따라 당시의 동료들이 자발적으로 카페를 만들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처음 저희가 ‘아트앤스터디’에서 만난 것이 2004년이고 <프라하의 봄>을 만든 것이 2007년이므로, 이제 6년쯤 된 젊다기보다는 다소 앳된(?)모임이네요. 지금 막 살펴보니 전체 회원이 54인이며, 이 중 준회원 26인을 제외하면, 정회원 이상이 28인이네요. 이 중에서도 활동한지 오래된 8분을 빼면 현재 활동 중인 회원은 20인 내외입니다. 다른 웬만한 카페의 회원이 수백 명에서 수십만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저희 모임은 지나치게 아담하달 수 있겠네요. 하지만 저희는 여전히 저희 모임을 키우거나 광고할 마음이 별로 없습니다. 저희는 Daum의 우수카페로 선정되는 데 관심이 없고 인터넷에서 쉬이 검색되도록 애쓰지도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저희 모임에선 함께 소설문학을 지향하기 위한 어떤 특별한 규정 같은 것을 내세우지도 않습니다. 저희 카페에서 당신은, 일정기간 이내에 소설 한 편을 제출하라는 강요를 받지 않으며, 내키지 않을 때 다른 분의 작품에 대하여 품평을 하지 않아도 되며, 또한 매일 출석체크를 해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단지 당신의 마음이 허락할 때 어떤 게시판에서 어떤 얘기든 자유롭게 하실 수 있으며, 분량이나 장르와 상관없이 어떤 글이든 게시할 수 있고, 당신의 작품에 대한 다른 분들의 독후감을 들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요구한다면, 혹은 다른 분들의 요청을 당신이 허락한다면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형태로 당신의 글에 대한 합평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모두가 자유롭게 스스로 행하는 것이며, 저희 소설모임에 오셔서 소설과 관련이 없는, 산행이나 낚시, 자전거나 여행, 또는 시와 영화에 관한 얘기만 하셔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저희들은 당신이 이미 중견 작가이든 이제 막 문학에 뜻을 둔 분이든 관계없이 어떤 선입견도 갖지 않고 평등하게 만나고 대화합니다. 다른 카페와 마찬가지로 저희 모임에도, 처음 이곳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다가 떠나는 분들도 있으며 거꾸로 여기에 오신지 얼마 안 되는 분들도 있습니다. 주로 알음알음으로 오시는 편이고 가끔 스스로 우연히 오시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저희는 새로 오시는 분이 자기소개나 인사 혹은 등업을 요청하는 게시판을 따로 운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저희 카페가 소극적이거나 배타적인 모임은 아니므로 관심이 생긴다면 스스로 오셔서 자기 방식대로 활동하시면 됩니다. 어쩌면 이 모임은, 모든 분에게는 아니겠지만, 지금 이 글을 읽는 바로 당신의 삶에 정말로 소중한 공간이 될지도 모릅니다. 저희가 그랬듯 당신의 삶이 이 카페를 중심으로 다시 흐를지도 모를 일입니다. 굳이 저희가 스스로 저희 카페를 표현한다면, 아마도, 소설을 매개로 삶의 일부를 함께 나누는 작은 놀이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소: http://cafe.daum.net/springprague  
24 아내의 여행/고창근
편집자
3578 2010-06-30
10.07월 2호 소설 아내의 여행 아내는 여행을 떠났다. 떠나기 하루 전 아내가 3박 4일로 여행을 하겠다고 말했을 때 내게 동의를 구하는 것도 더구나 허락을 받는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고개만 주억거렸다. 하지만 내심 아내가 여행이라도 떠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도 했기에 속마음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내에겐 뭔가 변화가 필요한 시기이기도 했다. 큰아들에 이어 작은아들까지 원불교로 출가하게 되자 아내는 도무지 사는 의욕이 없었다. 저러다 큰 병이라도 나지, 싶었다. 아내는 그렇게 여행을 떠났고 그 후 나는 이상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렇다고 꼭 집어 이거다 싶은 것은 없었고, 막연히 다가오는 불안감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간혹 아무 이유 없이 머릿결이 쭈뼛 솟아오르고 그러면 나는 이내 아내를 떠올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일요일인 오늘 점심 무렵에도 그랬다. 집안에 아무도 없다는 홀가분한 마음에 느지막이 일어나 잠옷 차림으로 밥을 푸는데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머릿결이 쭈뼛 서는 것이었다. 그건 일종의 그리움이었고 불안감이었다. 단순한 아내의 부재 때문이 아니었다. 이제야 아내가 여행을 떠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리움이라니. 아내는 어제 떠났기도 했거니와 아내가 자릴 비운다고 해서 그리움을 느낄 나이도 아니었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웬.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마치 몸에 묻은 먼지를 털듯 가볍게 몸을 움찔했다. 하지만 그 불안감은 나에게 완전히 떨어지지 않고 불시에 나를 습격하곤 했다. 이상한 점은 있었다. 예전에는 아내는 무슨 일이 있어 집을 비운다거나 하면 꼭 곰국을 끓여놓던지 아님 밑반찬을 넉넉히 해 놓고 갔었는데 이번엔 아무런 준비도 없이 홀연히 떠난 점이었다. 두 아들의 출가 후 정신이 없어 그러려니 했지만 기분이 영 개운한 것은 아니었다. 마침 일요일이라 점심을 먹고 난 뒤에도 나는 잠옷 차림 그대로 거실을 뒹굴었다. 평소 같으면 아내와 씨름하며 잠을 청했을 텐데 이상하게도 아내가 없으니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누운 채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문득 애들이 거처하던 방에 들어가 본 적도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6시에 집을 나서고 밤 11시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고 휴일엔 그동안 밀린 잠에 곯아떨어지니 집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큰아들이 쓰던 다용도실 옆방 문을 열었다. 평소에 내가 하숙생 같다는 아내의 말은 차지하고서라도 두 아들이 출가한 후에도 두 방을 아들들이 쓰던 그대로 놔두겠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역시 큰아들의 방은 예전에 쓰던 그대로였다. 순간, 나는 예의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불안감을 느꼈고 잠시 문손잡이를 잡고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심호흡을 하고 방을 찬찬히 들러보았다. 정면으로 보이는 벽에 붙어 있는 책상과 책상 오른쪽의 책장은 예전 그대로 있었고 책장속의 책이 빠져 나간 자리가 좀 비어 있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책상위의 스탠드등도 그 자리에 서 있었고 책장 옆의 일인용 소파 또한 그대로였다. 소파 옆의 스탠드 옷걸이와 벽걸이 옷걸이만이 휑하니 비어 있었다. 출가하기 전 간사 근무나 대학 다닐 때 가끔 집에 들르면 자기도 했지만 방은 사용하고 있던 것처럼 깨끗했다. 아마도 아내는 며칠마다 방을 청소했던 게 틀림없었다. 가끔 아내와 난 그런 소소한 문제로 다투기도 했다. 나는 방을 깨끗하게 치우기를 원했고 아들에 집착이 강한 아내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버텼다. 아내는 아들의 출가가 자신의 몸 일부분이 떨어져 나간 느낌이라고 했다. 나는 방을 나와 작은아들 방으로 갔다. 작은아들 방은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고등학교 때 쓰던 과목별 수능 문제집이 그대로 책장에 꽂혀 있었다. 책상이랑 책장도 예전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었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일인용 침대 옆에 있는 옷걸이에 아들의 옷이 걸린 게 아니라 아내의 옷이 걸려 있다는 점이었다. 침대에는 작은아들이 덮던 이불이 깔려 있었다. 마치 방금 전까지 작은아들이 누워 있었던 듯 했다. 물론 지금은 아내가 쓰고 있었다. 아내는 큰아들이 출가한 후에는 큰아들 방에서 가끔 자더니 작은아들이 출가 후에는 작은아들 방에서 몇 번 잠을 자다 아예 그대로 눌러앉았다. 나의 불만스런 기미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쓸쓸한 웃음으로 대신했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내가 여행을 떠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전에도 내가 몇 번이나 권하던 것이었다. 바람이라도 쐬고 오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바램이었다. 나는 손바닥으로 침대위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집어 들었다. 짙은 검은색 직모였다. 염색 좀 하고 파마도 좀 해봐. 내 목소리가 귀에서 웅웅거렸다. 아들들이 출가 전에는 항상 밝던 얼굴이 출가 후에는 짙은 어둠의 그늘이 가실 날이 없을 때 어느 날 아침 한 말이었다. 60살 가까운 나이에 아직도 생머리를 하고 있다는 게 왠지 가슴을 아리게 했다. 그때였다. 또다시 예의 그리움과 불안감이 덮쳐왔다. 머리카락을 들고 있던 손이 떨렸다. 이게 마지막이지 싶었다. 다시는 아내를 못 볼 것 같다는 방정맞을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여행에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참담한 생각이 들었다. 거실로 나와서도 여전히 가슴은 쿵닥쿵닥 뛰었다. 실체가 없는 불안감에 나는 어이없어 하면서도 두 다리에 힘이 스르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전화를 해 볼까. 나는 방으로 들어가 휴대폰을 들고 망설였다. 잘 여행하고 있는지, 어디 몸 아픈 데는 없는지 정도는 물어볼 수 있지 않느냐고 내 스스로 타일렀다. 아내가 여행을 떠난 후 여태껏 전화 한 통 없었다는 생각까지 미치자 나는 더욱 더 초조해졌다. 예전 같으면 아내는 몇 번이나 전화를 했을 터였다. 밥은 안 굶고 잘 먹고 있느냐는 둥 미안한 목소리로 그렇게 안부를 물었을 터인데 어제 새벽에 집을 떠난 후 지금껏 전화 한 통 없었다. 나는 휴대폰 폴더를 열었다가 닫았길 여러 번 반복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내가 어디를 여행하고 있는 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단지 여행한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아내는 어디로 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나는 묻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내가 어디 먼데라도 가면 꼬치꼬치 캐물었고 나 또한 상세하게 일러 주었듯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근데 아내의 여행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니. 혼자 갔는지. 누구랑 동행했는지. 여행사를 통해 갔는지. 바다로 갔는지 산으로 갔는지. 기가 막혔다. 나는 부리나케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따지거나 화를 낼 작정은 아니었다. 그냥 여행 잘 하고 있는지, 어딘지만 물어 보려고 했다. 반야바라밀다심경관자제보살행심바라밀다…… 어이없게도 아내의 휴대폰 벨소리인 반야심경이 작은아들의 방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내 귀를 의심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반야심경 벨소리는 책상서랍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서랍을 열었다. 하얀색의 휴대폰은 나 여기 있소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음. 나는 가벼운 신음소리를 뱉으며 휴대폰 폴더를 닫았다.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거실로 나와 한동안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이제 누구한테 물어보지? 좀 더 시간을 갖고 냉정하게 생각하자 싶었다. 눈을 감았다. 휴대폰을 일부러 가져가지 않은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 실수로 가져가지 않았다면 먼저 연락이라도 했을 것이 아닌가. 갑자기 아들 생각이 났다.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아이들이 출가를 한 후 아내와 달리 나는 예상보다 크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본인들이 너무 좋아서 선택한 일이고 속세에 있는 것보다는 몸과 마음이 더 편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미칠 듯이 보고 싶다니. 아들들에게 전화를 할까 싶어 휴대폰 폴더를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출가한 아들들은 조심스러웠다. 큰아들은 교무로서 부산 동래 교당에 보좌교무로 있고 작은아들은 부교무로서 전주교당 보좌교무로 있었다. 출가를 했다고 해서 본가와 인연을 끊는 게 아니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전화가 왔다. 결혼을 한 큰아들은 일 년에 한두 번은 집에 다녀갔고 결혼을 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는 둘째아들은 전화는 자주 왔지만 집에는 잘 다녀가지 않았다. 하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쪽에서 전화를 하지 않는 게 도리이다 싶어 전화를 먼저 하지는 않았다.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작은아들에게 문자를 넣을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큰아들보다는 작은아들이 만만했다. 단축번호 3번을 누르고 문자를 넣었다. 시간 나면 전화해. 아버지 합장. 아무래도 일요일 오후라 오전 법회가 끝나면 오후엔 시간이 있을 것 같았지만 전화 걸기가 껄끄러웠다. 전화는 금방 왔다. 대뜸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빠의 문자는 처음 받아봤다고 웃으며 내 무안한 마음을 헤아려 주었다. 어느 교도와 사십구재 문제로 상담하고 있는데 바쁘긴 하지만 통화할 시간은 있다고 했다. 나는 빨리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심호흡을 했다. “혹 네 엄마한테 연락 있었니?” “어머니요? 어머니한테 무슨 일이 있어요?” 작은아들은 대뜸 제 어머니 걱정을 했다. 큰아들이 출가할 때보다 작은아들이 출가할 때 더 유난을 떨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일은 무슨. 그냥 엄마가 너한테 전화했었냐 싶어서 그렇지.” “전화 안 왔어요. 어머니 집에 안 계셔요?” 작은아들은 무슨 눈치를 챘는지 걱정스럽게 물었다. 나는 아무 일 없다고 했다. 나는 그쯤에서 아쉬움을 접고 전화를 끊었다. 큰아들한테 전화를 해 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차피 작은아들한테 전화하지 않았다면 그 쪽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고 괜히 분란만 일으킬 것 같았다. 이제는 아내한테서 전화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가슴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어요. 아내는 큰아들이 교무가 되겠다고 했다면서 천정을 막연히 바라보며 한 말이었다. 큰아들이 고1 겨울 방학 때였다. 교무? 나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지라 어이없다는 생각을 했다. 큰아들은 미대를 가기 위해 학교에서 전 학년이 다하는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따로 미술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글쎄 애가 말하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니까. 아내는 팔을 베고 반대편으로 돌아누웠다. 미대는 안 가고? 왜?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비록 난 바쁘다는 핑계로 원불교를 다니지 않지만 교무의 생활은 대충 알고 있었다. 글쎄 모르겠어요. 아내는 돌아누운 채 나지막이 말했다. 마음이 심란해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그때 나는 치기어린 호기심에서 그랬으리라 생각하곤 깊이 마음에 두지 않았고 하루를 끝낸 피로로 곧장 잠이 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내는 찬성도 반대도 할 수 없는 어정쩡한 상태였던 것 같았다. 원불교 교무란 결혼은 하지만 스님에 가까운 성직자였다. 결혼을 하더라도 사가(私家)라는, 아내가 있는 집에는 일주일에 한번밖에 가지 못했다. 또한 가족이 있다 하여 가정생활을 꾸릴만한 봉급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용금이라 하여 60여만 원을 받는 게 고작이었다. 그나마 결혼을 하지 않는 교무는 30여만 원을 받는 것에 비하면 많이 받는 셈이었다. 그러니 교무 부인인 정토가 전적으로 경제생활을 해야 했고 교무는 그냥 교당에서 설법하며 혼자 생활하는 것이었다. 또한 6년마다 교당을 옮기니 평생을 가정과 멀리 떨어져 살아야 했다. 신앙과 함께 수행을 강조하는 종교라 교무는 선을 통한 수행을 많이 했다. 교무 자체로 봐서는 수행만 정진할 수 있어 가정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게 좋을지 몰랐다. 그 주인가 아님 그 다음 주인가 아들을 방으로 불렀다. 미술학원은 다니니? 곧장 교무 얘기를 꺼내기 무엇해서 미술학원부터 애길 꺼냈다. 미술학원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다니고 있던 거였다. 지금은 안 다녀요. 아들은 단호하게 말했다. 중차대한 인생의 진로를 아비와 상의 한마디 없이 결정하다니,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마음 굳힌 거냐?” “예.” “쉬운 길은 아닐 텐데.” “보람 있는 길이잖아요.” 아들의 말에는 확신이 있었다. “어떻게 해서 교무 되려고 마음먹은 거니?” 아들은 원불교를 다닌 지도 2여 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아내의 친구 소개로 아내와 두 아이들은 원불교에 다니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토요일 오후 학생 법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참석했고 일요일 오전의 일반 법회에도 참석하였다. 아무래도 전생에 부처님하고 무슨 인연이 있는 것 같다고 교당 교도들이 말한다고 아내가 말했다. 교무가 되는 길은 쉽지 않았다.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에 합격하고도 2년 동안 간사 근무를 마쳐야 대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간사 근무는 원불교 교당이나 복지기관 등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먹고 자며 교무들로부터 공부를 배우는 생활인데 한마디로 신앙심을 키우는 과정이었다. “우선 교무님들의 당당한 모습이 보기 좋고요. 얼굴을 한번 보세요. 교무님들의 얼굴이 얼마나 밝은지요. 티끌하나 없잖아요. 얼굴은 살아온 세월을 보여준다는데 교무님들의 삶이 좋다는 뜻 아니겠어요? 일반 사람들의 얼굴과는 많이 비교되잖아요.” 신앙적으로 아직 미진한 아들은 단지 교무의 생활을 동경하고 있었다. 저렇게 살아야지 싶다고 했다. 또한 큰아들은 이미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나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있었다. 대학 과정도 자유분방한 일반 대학과 달리 철저하게 계획되고 통제되는 생활로 신앙심을 키우고 수행을 하는 과정으로 짜여 있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들은 이미 확고하게 마음을 굳힌 것 같았다. 나 또한 아들의 진로에 반대하거나 하는 결코 그런 입장은 아니었다. 요즘처럼 취직도 잘 안 되는 세상에 평생 먹고 사는 걱정도 없겠다는 안일한 생각도 들었고, 물질욕이나 승진 그런 것에 목을 매느니 세속의 일을 초월하여 평생 수행하며 일반인들에게 설법하며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길이 결코 평범한, 쉬운 길이 아니었기에 좀 더 생각해 보자고 했다. 고2의 큰아들은 학과 공부보다는 원불교 교전을 읽고 토요일엔 어린이 법회에 보조 교사로 참여하며 더 열심히 다녔다. “아들 뜻에 따라야겠어요.” 아내는 그해 겨울이 다가올 무렵 결심을 굳힌 듯 했다. 교당에 열심히 다니기도 했지만 주임교무와 상의한 결과 아들은 성직자의 길로 가기에 모든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 조건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뭔가 아들을 원불교에 빼앗긴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아내는 굳이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처음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는 아내는 웃으며 아들의 진로 선택을 축하해 주었다. 교당에서 아들의 서원(誓願) 행사가 있었다. 교무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정식으로 서원을 세우고 법신불사은님께 봉고한다고 했다. 서원 행사라 해서 큰 행사는 아니고 일원상 앞으로 다가가 교무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주위에 밝히고 절을 네 번하는 것이었다. 교무의 간곡한 부탁으로 그날은 나도 교당에 갔었다. 주임교무는 나에게 큰일을 하셨다고 했고 설법을 통해 집안의 영광이라고 했지만 크게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는 무척 기뻐했고 떡과 과일을 준비했다. 아들이 기뻐하고 우선 아내가 흡족해 하니 마음이 안심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큰아들은 고3 겨울 방학이 되자마자 부산 교구청으로 간사 근무를 위해 떠났다. 간사근무를 한다고 해서 출가한 것은 아니었다. 간사 근무 2년을 마치고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고 교무고시를 통과해야만 했다. 그러면 정식으로 출가식을 하고 부교무가 되어 교당이나 원불교 소속 복지기관 등에 발령 받아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론 출가했을 때보다 간사 근무 때가 오히려 제약이 많이 따랐다. 준 성직자나 다름없었기에 출가한 것이나 진배없었다. 큰아들이 서원을 세운 날 중학교 1학년인 작은아들이 제 형을 따라 덩달아 교무가 되겠다고 했을 때 그냥 웃으며 그래 그래라, 했다. 제 나이에 알면서 말하겠냐 싶었다. 하지만 작은아들은 고3이 되도록 큰 갈등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꿈같은 시절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작은아들까지 교무가 되면 서운하지 않겠냐고 했지만 정말이지 그때는 서운한 감정은 들지 않았고 오히려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두 아들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이제 부모 걱정 끼치지 않고 저희끼리 잘 살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강했다. 부모의 몫을 다 했다는 안도감까지 들 정도였다. 이틀째가 되었지만 아내한테는 전화가 없었다. 모레면 이제 집으로 온다는 점 때문에 나는 자포자기 한 심정으로 아내를 기다렸다. 퇴근을 정시에 하고 집으로 왔다. 아내가 없는 집은 썰렁했다. 생소한 느낌이었다. 마치 남의 집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직장에 다니지 않아 퇴근 때마다 반갑게 맞아 주었던 아내의 자리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라면으로 저녁 끼니를 때우고 텔레비전을 켰지만 평소에 보지 않던 터라 관심을 끌 만한 프로는 없었다. 텔레비전을 껐다. 갑자기 삶의 의욕이 떨어진 것 같았다. 아들들이 모두 떠나고 아내조차 자릴 비우니 이렇게 외롭다니, 생각해보니 코웃음 칠 일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 집은 내가 태어난 집이었다. 이제껏 이 집에서 이런 외로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이 집은 내가 태어나기 2년 전에 아버지가 지었으니 나와 함께 살아온 셈이었다. 대학 다닐 때와 군대 갔을 때 몇 년 집을 떠났을 뿐 내 생과 함께 해온 집이었다. 또한 아이 둘이 태어난 집이기도 했다. 그동안 몇 번의 수리는 했지만 골격은 그대로였다. 이런 집에서 생경한 느낌을 받다니. 참 어이없는 일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출가하기 전까지는 아이들이 커서 이 집에 살 줄 알았다. 아니 그렇게 되길 바랐다. 내가 태어나서 쭉 이 집에서 자랐듯 아이들이 그렇게 살 길 바랐는지도 몰랐다. 나는 냉장고로 가 캔맥주를 가지고 와 뚜껑을 땄다. 두 번 벌컥 마시니 동이 났다. 명치께가 싸하니 신호가 왔다. 또다시 냉장고로 가서 캔맥주를 가지고 왔다. 집에서 혼자 마시는 건 처음이었다. 아내도 이런 생경한 느낌을 받았을까. 손꼽아 보니 아내도 이 집에서 30여 년을 살아온 셈이었다. 아내는 큰 욕심도 야망도 없는 사람이었다. 집에서도 없는 듯 있는 사람이었다. 없으면 불편하고 있으면 있구나 싶은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당신도 뭔가 취미 생활을 해보라고 권했지만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다고 했다. 애들이 다 나가면 당신 혼자 어떻게 살려고. 뭔가 취미 생활을 하든지 특기를 살리든지 해야지 원. 내게 퉁바리맞아도 아내는 손사래를 쳤다. 이대로가 좋다고 했다. 이만하면 좋은데 일부러 무슨 취미네 특기를 살리네 하느냐고 했다. 아내는 천생 청소하고 요리하는 전형적인 주부였다. 추억거리를 만들어야 해. 아내는 작은아들이 대학에 합격했을 때 과도한 애정 표현을 하였다. 큰아들이 대학을 합격하고 간사근무를 떠났을 때만 해도 덤덤하게 받아들이던 아내였다. 밑으로 작은아들이 있었기 때문일까. 큰아들이 원불교학과에 합격했을 때에는 레스토랑에 가서 큰아들이 좋아하는 돈가스를 먹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작은아들이 합격했을 때는 달랐다. 우선 교당 대각전의 일원상 앞에 있는 경상을 새 것으로 교체했다. 가죽나무로 만든 경상은 헌공함이 딸려 있는 고급이었다. 주임교무에겐 따로 법복을 사 입으라고 돈봉투를 드리기도 했고 교도들에겐 법회 후 식당으로 초대해 점심을 대접하기도 했다. 아이가 학생회 출신이라 학생회 학생들에게도 따로 점심을 사 주었다. 너무 돈 많이 쓰는 거 아냐 나는 아내의 행동에 염려를 드러냈다. 대학 다닐 때 돈도 하나도 안 들잖아. 용돈은 교무님이 주시고. 또. 또? 큰애땐 후회되더라고. 아무것도 안 해서. 교무님께 점심밖에 안 샀잖아. 이젠 아들 둘을 원불교에 희사(喜捨)했는데 좀 더 교무님이랑 교당에 잘 해야지. 아내는 들떠서 말했다. 하지만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내는 필요이상으로 마음이 들떠 있었던 것 같았다. 뭔가 어디에 정신이 빼앗겼던 것 같았다. 그때 아내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내는 작은아들에게도 한우전문식당에 데려가서 배불리 고기를 사주었고 틈틈이 질릴 정도로 집에서도 고기 요리를 해 주었다. 간사가면 어디 고기라도 제대로 먹겠어? 교무님들 식사야 풀밖에 안 나올 텐데. 그때 이미 아내의 불안한 마음을 헤아려야 했을까. 간사 가는 날은 달력에 빨간 표시를 해 놓았다. 뭔가 아내의 얼굴엔 초조한 기색이 언뜻언뜻 드러났다. 하지만 아내는 교당에 더 열심히 다녔다. 사람들이 교무 엄마라고 할 텐데 열심히 안 다니면 뭐라 하겠어, 라며 일요일의 정기 법회 뿐 아니라 좌선과 독경을 위주로 하던 화요일의 선방, 목요일의 교리 반에도 열심히 다녔다. 교당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집에서도 틈틈이 500배를 하고 좌선과 독경을 열심히 하는 것 같았다. 무릎과 허리가 평소 좋지 않았는데 하루에 500배씩 하고부터는 무릎 관절이 많이 나아졌다고 좋아하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나에게도 일요일 아침에 잠만 자지 말고 교당에 다니라고 강권하곤 했다. 남들 눈에 보기 안 좋다는 거였다. 아들 둘이나 교무가 됐는데. 아내는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교당일이나 집안일이나 더 적극적이고 열심히 하려고 했다.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이라고. 사람을 비롯한 모든 사물을 부처라고 여겨야 하고 일을 할 때에는 불공드리듯이 해야 한다고. 아내는 실제로 살아가는 일을 불공드리듯 살아가는 듯 했다. 원불교에 열심히 다닐수록 아내의 얼굴엔 평온한 미소가 항상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내는 작은아들이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합격을 하고 나자 조금씩 초조한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았다. 고2겨울 방학 때 서원을 세웠을 때만 해도 기쁜 감정을 굳이 숨기지 않았던 모습과 다른 점이 많았다. 그러다가 작은아들이 막상 간사근무를 떠나고 나니 마음이 크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주임교무는 자식을 놓아주는 연습을 하라고 했다. 큰일을 하기 위해선 사사로운 감정을 버려야 한다고. 아내는 선선히 동의했다. 큰아들 때 이미 겪은 일이었고 각오한 일이었다. 이제 더욱 열심히 살아야지. 건강도 챙기고. 이제 자식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 살아야지. 아내는 그동안 못 챙긴 건강도 챙기고 여행도 자주 다니자고 했다. 당장 워킹화와 트레이닝복을 나와 커플로 샀다. 자식 둘이 그냥 떠난 게 아니라 출가나 다름없는 길로 갔고 나중에 출가를 할 것이니 교무 말처럼 미리미리 아들들에게 미련을 버리고 우리 부부의 생활을 더 충만하게 해야겠다고 했다. 하지만 왜 서운한 감정이 없었겠는가. 아내는 저녁을 먹다가도 밥은 잘 먹고 있으려나, 하며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고 나 또한 갑작스런 아들들의 그리움에 묵묵히 밥을 떠먹었다. 그렇지만 참기 힘들다거나 그런 정도는 아니었다. 활기찬 생활을 하자고 했지만 큰아들이 떠난 때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큰아들이 떠났을 때는 집에 작은아들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작은아들이 떠났을 때는 그야말로 집이 휑하니 빈 것 같았다. 나는 되도록 퇴근을 일찍 했다. 밤에는 커플트레이닝복을 입고 공원으로 산책을 가기도 했고 일요일엔 교당에 나갔다. 모두 아내를 위한 것이었다. 일요일 오후엔 주로 가까운 산에라도 갔는데 산에서 만나는 아는 사람들은 신혼으로 돌아왔다고 놀렸다. 밤에 신랑이 잘 해주가봐. 진수 엄마 얼굴이 확 피었어. 어떤 이의 농담에 아내는 얼굴이 붉히기도 했다. 아내는 작은아들이 집을 떠난 초기에는 나름대로 열심히 한 덕택에 아들들의 빈자리를 이겨가고 있었다. 아내는 매사에 적극적으로 행동한 것처럼 잠자리에서도 적극적이었다. 나보다도 아내 쪽에서 먼저 요구해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작은아들이 간사 근무를 무사히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고 대학원을 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아내와 나는 생활을 잘 보냈다. 하지만 정식으로 출가를 하고 2년째 되던 해에 결혼까지 하자 눈물짓는 일이 잦아졌다. 결혼을 하자 큰아들이 그랬듯 작은아들도 집으로 오지 않고 아내인 정토가 있는 사가(私家)로 일주일에 한 번씩 다녀갔다. 어쩌면 큰아들 때 이미 겪은 일이라 좀 더 나아질 듯도 하건만 아내는 공허감을 못 이겨했다. 어쩌다 아들에게 전화라도 오면 삼십 분이고 한 시간이고 전화기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오히려 무안해 전화를 그만 끊으라고 독촉하기도 했다. 전화를 한 날은 그나마 생기를 찾은 날이었다. 일요일 오후에 전주나 부산까지 아들을 만나러 가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며느리의 눈치가 보여 오래 있을 수도 없었다. 아들은 일요일 오후와 월요일에 잠깐 사가에 있을 뿐 멀리 떨어진 교당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그나마 둘이 있는 시간을 뺏는 것 같아 눈치가 보였다. 아내는 점점 좌선에도 500배에도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하물며 절을 하면서도 정신을 놓는데……. 아내는 좌선에도 정신집중이 안 된다고 했다. 어떨 땐 하루에 1000배를 하기도 했는데 마치 자기 자신의 몸을 혹사시킴으로서 고통을 잊으려 하는 것 같아 곁에서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아내는 점점 작은아들이 거처하던 방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어쩌다 큰아들 방에서도 잠을 잤지만 점점 작은아들 방에서 잠을 자는 횟수가 늘어났다. 안방으로 잘 건너오지 않았다. 나는 안방에서 혼자 자는 날이 많아졌다. 그것이 아내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일이라면 괜찮다고 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기도 했다. 그러다 아내는 여행을 떠났다. 점점 작은아들 방에서 자는 횟수가 늘어나는가 싶더니 아예 그 방에서 둥지를 틀 때였다. 아내는 방에서 잘 나오지 않으려 했다. 아내는 집에 돌아오기로 한 예정일이 하루가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이틀 전 KT에 집전화에 착신번호 서비스를 신청하여 집으로 걸려오는 모든 전화를 내 휴대폰으로 오도록 해 놓았지만 낯선 전화번호는 뜨지 않았다. 또 하루가 흘렀다. 나는 무기력했다. 아내를 찾을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 예정일에서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실종신고나 가출신고를 할 수도 없었다. 하려면야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는 아내의 의도적인 행위에 자꾸 의심이 갔다. 그러니까 아내는 무슨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는 말이다. 애초에 여행 자체가 없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가출한 것이다. 그러니까 고의로 가출한 것이 아닐까. 나는 작은아들의 방에 들어갔다. 무슨 물증을 찾으려 한 것이 아니었다. 아내가 하루 종일 처박혀 나오려 하지 않았던 방이기에, 그냥 아내가 그리워서 방에 들어온 것이었다. 나는 침대에 앉아 팔짱을 꼈다. 지금 어디에 있을까. 외로워서 어디를 헤매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아내는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을까. 500배를 하고 1000배를 해도, 몇 시간씩 좌선을 하고 독경을 해도 결국은 그 외로움을 이기지 못 했구나. 교전을 들고 웃으며 열심히 교당을 다니던 아내의 모습이 무슨 고행을 하는 것처럼 애처롭게 느껴졌다. 생각해 볼수록 가슴을 칠 일이었다. 갑자기 불안감이 몰려왔다. 소름이 돋으면서 피가 정수리로 몰려들었다. 숨이 가빠 왔다. 땀이 삐질 났다. 여보. 나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내도 아들이 출가한 후 이런 느낌이었을까. 세상에 홀로 남겨진 느낌.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느낌이라더니. 바지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혹 걸려온 전화를 받지 못 할까봐 집에 와서도 항상 바지에 넣고 다녔고 진동으로 하지 않고 벨소리로 해 놓았다. 나는 얼른 꺼내 액정화면을 바라보았다. 모르는 번호였다. 054로 시작하는 번호였다. 휴대폰을 귀에 댔을 때 멀리서 왁자지껄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혹 이혜영씨 댁인가요?” 굵직한 남자의 사무적인 목소리였다. 나는 얼른 그렇다고, 내 아내라고 했다. “그러니까 주민등록번호가 오이공구이칠에……” “예, 맞습니다. 맞다니까요. 근데 어딥니까. 거기.”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아, 찾았구만. 여기요. 김천경찰서인데요.” “김천이요?” 나는 낯선 지명에 잠시 멍해졌다. 어디 지구 끝 먼 나라의 지명처럼 느껴졌다. “거기가 어디죠?” “경북입니다. 경북 김천. 이혜영씨 집에 안계시죠? 지금.” “여행을 떠났는데 아직 안 들어왔습니다. 근데 왜 그러시죠? 무슨 일이 있나요?” “실종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직지사에서 실종 됐다고 여행사가 실종 신고를 했는데 연고자를 찾을 수가 있어야지요.” “실종이요? 혼자요? 거긴 왜 갔는데요? 아직도 못 찾았단 말입니까?” “못 찾았으니까 전화한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주위에 좀 찾아보시고 혹 연락되면 이 번호로 전화주세요. 저희들도 찾는 데까지 찾아볼게요. 저는 여인구입니다.” “혹 무슨 여행사인지 알 수 있습니까?” 나는 끊으려는 경찰관의 말을 낚아챘다. 세한여행사요. 담당자가…… 적으세요. 임천수. 공일공에 이칠칠팔에 …… 전화번호를 적는 손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여행사 직원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다. 여행사 직원은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여행은 아내의 말처럼 3박4일이 맞았다. 밀양 표충사에서 1박, 대구 동화사에서 1박, 김천 직지사에서 1박하는 주로 불교 신자들이 가는 여행이었다고 했다. 실종된 날은 김천 직지사에 1박한 아침이었다고 했다. 직지사에 도착해 대웅전에서 108배를 하고 저녁을 먹고 주지 스님께 설법 들을 때까지는 여행객들과 함께 있었다고 했다. 그날 배정된 방에 함께 들어가는 것을 본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아침에 식사를 하는 데 아내가 보이질 않더라는 것이었다. 근데 이상하다고 여행사 직원은 말했다. 여행 신청서에 적힌 모든 게 이름만 빼고 다르게 적었다는 것이었다. 주소랑 주민등록번호, 심지어 집 전화까지 다르게 적어 할 수 없이 집으로 연락 못 하고 가까운 경찰서로 신고를 했다는 것이었다. 실종 되고 나서 여행보험에 든 서류를 보고서야 정확한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를 알 수 있었노라고, 찾느라 다른 여행객들조차 제대로 마지막 여행을 못 했다고 했다. 거듭 미안하다는 여행사 직원의 말을 자르며 나는 전화를 끊었다. 애초에 품었던 불길한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나는 침대에 엎드려 누웠다. 아내의 향긋한 냄새가 났다. 아내의 무릎을 베고 누우면 나던 냄새였다. 애초부터 아내는 자신이 완벽하게 실종되기를 바랐고 또한 아무도 찾지 못 할 곳으로 가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일 김천에 가더라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어디로 간 걸까. 나는 애벌레처럼 등을 한껏 꾸부렸다. 고창근 sgamm@hanmail.net 소설집 <소도(蘇塗)>  
23 (독자 투고)임종 외 1편 최기종
편집자
4053 2010-06-30
10.07월 2호 시 임종 최기종 봄날에 병상에서 어머니가 새로 태어나고 계셨다. 동쪽으로 머리를 두시고 쪽머리 곱게 단장하시고 껍질에서 깨어나려고 참꽃되려고 몸살하고 계셨다. 꽃잎 지는 오후였다. 아직도 창문 너머 봄꿈이 푸르른 데 어머니는 이제 탄생의 환희를 염려하는지 호흡이 가파라지면서 지독한 산고를 견디고 계셨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이 유다를 낳고 연줄이 연줄을 낳고 이제 어머니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당신의 당신을 낳고 계셨다. 물거품처럼 어머니가 새로 태어나고 계셨다. 눈에 밟히며 꾸르럭거리는 소화불량처럼 뱃속에서 도무지 나오지 않는 당신의 당신이 아주 천천히 연줄을 끊어내고 계셨다 날아가는 것은 모두 당신이었다. 새는 날아서 서쪽으로 멀어져서 천중에서 외롭게 한 점이 된다. 당신, 새가 되어서 도솔천 너머로 간다지만 당신의 내음새, 웃음, 목소리는 아직 여기 있어 이목구비 어디든지 당신이 튀어 나오고 말씨에도 숨결에도 살결에도 당신이 느껴지고 위에서도 장에서도 혈관에서도 당신이 움직거린다. 당신, 안식을 찾아서 이승과 저승 사이 날아다니지만 하룻밤 지새울 둥지 하나 마련해 주지 못한다. 그렇게 보내지 못하는 정리定離로 날파리 하나 손바닥으로 잡았더니 그게 바로 당신이었다. 날아가는 것은 모두 당신이었다. ***** 1956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다. <만경강> 동인, <목포작가회의> 활동. 교문창 회원시집『대통령 얼굴이 또 바뀌면』에 작품 발표<1992년> 시집『나무 위의 여자』, 『만다라화』  
22 월행/송기원 고창근 4511 2010-06-28
내가 좋아하는 소설 어느 평론가에 의해 ‘너무나 단편스런’ ‘너무나 정물적인’소설이란 소리를 들은 작품이다. 이보다 더 단편스럽게 잘 쓴 단편소설은 없다는 말일 게다. 예술적인 측면이나 내용적인 측면에서나 뛰어난 작품이다. 군더더기 없고 정확한 문장(마치 詩에 있어 일물일어설을 연상시킨다.)아름다운 문장 단선적인 구성... 그야말로 단편소설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내용은 한국전쟁으로 인한 민족사적 비극을 그리고 있다. 송기원 송기원은 1947년 전라남도 보성과 벌교 사이에 있는 조성 장터에서 태어났다. 생부와 의부, 두 사람의 아버지를 둔 그는 이곳의 똘마니들와 역전 여관의 어린 갈보들와 어울려 가학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애비 없는 아이를 낳았다는 자책과 숱한 수모를 받으면서도 그를 대학까지 보냈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한 그는 군에 입대하여 월남전에 참가하게 된다. 졸업 후 1974년 단편 소설 「경외성서(經外聖書)」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동시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회복기의 노래」가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등단하였다. 그러나 1975년부터 1990년까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과 `민중교육지사건` 등으로 5년에 한 번씩 감옥을 들락거린다. 1979년 첫 소설집 『월행(月行)』을 내고 자전적 소설을 쓰기 시작한 송기원은 소설집 『다시 월문리에서』, 『인도로 간 예수』와 장편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 『청산』, 『여자에 관한 명상』을 펴냈다. 시집으로는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마음속 붉은 꽃잎』이 있다. 1983년에는 제2회 신동엽창작기금을 수혜 받기도 했으며, 1993년에는 「아름다운 얼굴」로 제24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현재는 단학에 입문하여 공주 계룡산 갑사 산자락으로 들어가 도를 닦으며 글을 쓰고 있다. 신간도서 - 또 하나의 나 수상작 - 아름다운 얼굴 - 1993년 제2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대표작 - 인도로 간 예수 - 다시 월문리에서 -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 그외 주요작품 - 청산 - 안으로의 여행 - 여자에 관한 명상 - 다섯개의 겨울노트 - 나를 움직인 그 한마디 - 배소의 꽃 - 고려원소설문고 096 월행 구름 사이로 달이 빠져나오자 반짝, 개천이 드러났다. 살얼음이 낀 개천은 달빛을 받아 무슨 시체처럼 차갑게 반짝거리며 아래쪽 미류나무 숲으로 사행(蛇行)의 긴 꼬리를 감추고 있었다. 바로 그 미류나무숲 언저리로부터 한 사내가 개천 둑에 모습을 나타내었다. 사내는 등에 누군가를 업고 있었는데, 외투로 보자기를 씌워서 멀리서 보면 흡사 곱사등같은 모습이었다. 사내는 그런 모습으로 깊게 눌러쓴 벙거지 속의 눈빛을 세워 사방을 휘둘러보며 천천히 개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왔다. 개천의 양켠으로는 추수가 끝난 논밭들이 을씨년스럽게 버려져 있었는데, 개천의 위쪽에서 복풍이 몰릴 때마다 어디선가 마른 수수깡 소리가 들릴 때마다 사내는 흠칫 놀라서 걸음을 멈추곤 했다. 개천을 가로지른 신작로의 다리를 넘어서자 사내는 벙거지를 벗고 이마의 땀을 훔쳤다. 사내는 무심결에 달을 쳐다보았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만월이 구름 사이를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반백(半白)의 구레나룻으로 뒤덮인 사내의 얼굴에 어떤 음영이 서리는가 싶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깊은 주름살이 패이고 군데군데 칼자국이 있어서 꿈틀대는 짙은 눈썹과 함께 사내의 얼굴은, 그가 막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을 쉽게 알려주고 있었다. 문득 사내의 곱사등이 꿈틀대더니 뜻밖에 어린아이의 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부지, 아직도 멀었어?" 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사내의 표정이 대뜸 밝아졌다. "아녀, 아녀. 저어기 불빛이 뵈쟈? 거겨" 사내가 손을 들어 개천의 위쪽 병풍처럼 잇달은 연봉(連峯)들의 산자락 한켠, 몇 낱 불빛들을 가리키자. "어디? 어디" 조막손이 사내의 낡은 외투를 헤집고, 거기에서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의 얼굴이 빠끔이 삐져나왔다. "저기가 아부지 고향이지?" 사내는 아이의 별스럽지 않은 질문이 그러나 몹시 대견한 모양이었다. 사내는, 허허, 녀석 신통두 허지, 숫제 얼굴 가득찬 주름살로 웃었다. "하문. 그렇구말구. 저기가 바로 아부지 고향이여" 사내는 따뜻한 시선으로 아이와 함께 오랜 동안 마을의 불빛을 바라 보았다. 개천은 마을 뒤 골짜기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을을 감싸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골짜기를 한실 골짜기라고 불렀고, 거기에서 시작된 개천을 한실 꼬랑이라고 불렀고, 그 마을을 한실 마을이라고 불렀다. 바로 그 한실 마을이 사내의 고향이었다. 사내의 조부의 조부 때부터 자작일촌을 이루어 내려온 마을. 큰 제사 때면 너나 할것없이 저마다 흰두루마기를 내어 입고 종가댁 등불 아래 모여 신명(神明)께 축문을 드려 온 마을. 제사가 끝나면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들었던 훌륭한 선친들의 이야기를 또다시 들려준 마을. 해마다 정초엔 가가호호를 돌며 한 해 액풀이를 하는 꽹과리패들로 극성스러운 마을. 사내가 한실마을로부터 도망친 것도 훌쩍 이십 몇 년이 넘어 버린 것이었다. 개천을 벗어나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 아래 다다랐을 때, 사내는 문득 심한 기침 끝에 피를 토해냈다. 죄업이다, 라고 사내는 자조했다. 이 마을이 폐촌이 되어 버린 것처럼 자신의 병 또한 죄업이다, 라고 사내는 두 손 가득히 피를 받으며 자조했다. 허허, 사내는 벌겋게 웃으며, 우는 아이를 달래어 놓고 개천으로 내려갔다. 살얼음을 깼을 때, 사내는 수면에서 피묻은 얼굴과 함께 달을 보았다. 달과 사내의 피묻은 얼굴이 한데 어울려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게 흔들리는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사내는 어쩌면 자신의 삶도 그렇게 조악(粗惡)힌 것만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물을 집어올리려는 사내의 두 손이 떨려왔다. 달과 어울린 피묻은 얼굴이 수면에서 울고 있었다. 마을로 들어서자 개들이 맨 처음 사내를 발견했다. 처음에 어쩌다 사내를 발견한 한 마리의 개가 으르렁거리더니 곧이어 개들의 울부짖음은 마을 전체에 퍼져서, 고즈넉하던 작은 마을은 온통 개들의 울음소리로 가득차 버렸다. "원, 개새끼들이라니" 사내는 가볍게 투정을 하며, 그러나 어쩐지 개들의 컹컹대는 소리도 정답게 여겨져서 혼자 미소를 띠었다. 퇴락한 초가와 낮은 토담을 지나치며 사내는 선잠이 깬 마을 사람들의 밭은기침 소리를 마치 개들의 그것처럼 여길 수 있었다. 이윽고 낯익은 집 앞에 섰을 때, 사내는 문득 자랑스러운 마음이 되어 등에 있는 아이를 토닥거렸다. "자, 이게 아부지 집이다" "이렇게 큰 집이 다 아부지 집이란 말이야?" "하문, 이게 다 아부지 집이지" "이제 우리는 여기서 살 거야?" "하문, 여기서 살지" "학교에도 다니고?" "하문, 낼부텀 당장에 학교에 댕겨야제" 사내는 아이와 수작을 하며 대문을 두드렸다. 대문을 두드리며 사내는 기둥에 붙어 있는 입춘대길(立春大吉)을 보았다. 그을음이 끼고 색이 바래어 있었지만 사내는 그것이 누구의 글씨체인 줄 알 수가 있었다. 대문간의 어둠 속에서 사내의 얼굴이 환해져 왔다. "살아 계셨구먼. 용케도 아직꺼정 살아 계셨구먼……" 사내가 소리내어 중얼거렸다. 대문을 두드린 지 한참만에 낯선 청년이 사내를 맞이했다. 청년은 눈을 비비며 문간을 막아서, "뉘슈?" 사내에게 퉁명스럽게 말을 건네왔다. "여기에 이용만이란 분이 안 계시는지……" 청년은 이제 확연히 잠이 깬 눈빛으로 사내의 형색을 위아래로 살펴보며 대답을 머뭇거렸다. 사내가 다급하게 다시 물었다. "안 계신가?" "제 할아버진데, 어떻게 오셨수?" "……" 여전히 대문을 막아서서 잔뜩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훑어보고 있는 청년에게 무어라고 대꾸를 해야 할지 몰라 사내가 우물쭈물 말을 고르고 있을 때, "대식아, 밖에 뉘라도 왔냐?" 안에서 천식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낯선 분이 할아버님을 찾는데요?" "어허, 밤늦게 어느 분이 날 찾는단 말여" 사내는 청년을 제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사랑채의 캄캄한 방문 앞에서 사내가 머리를 조아렸다. "아부님 저, 저, 갑득이올습니다" "뭬, 뭬라구?" 방문이 화들짝 열렸다. "가, 갑득이올습니다" "갑득이라구?" 방안의 캄캄한 어둠으로부터 노인이 문줄을 잡고 끄응 상반신을 밖으로 내밀었다. 허연 상투머리와 수염이 사뭇 떨리고 있었다. 그렇게 몸을 떨며 노인이 침침한 눈을 들어 달빛을 받고 서 있는 사내를 한참 동안 올려다보았다. 노인이 그르륵그르륵 가래가 끓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니가 갑득이라고?" "예, 가, 갑득이올습니다" 사내가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리자 노인이 사내로부터 고개를 돌려버렸다. "우리 집안엔 그런 사람 띴다" 사내가 당황하여 한 발짝 더 노인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아, 아부님" "아, 가, 갑득이는 동난 때 발, 발써 죽은 사람여" 노인은 다시 방안의 캄캄한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겨 버렸다. 방안에서 심한 기침이 쏟아져 나왔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길 듯이 쿨룩거리는 노인의 기침은 마치 캄캄한 방 자체가 기침이라도 하듯이 선뜻하고 요란스러웠다. 사내가 얼굴이 납빛이 되어 정신을 잃고 서 있는데, 청년이 말을 건넸다. "저어, 큰아버님. 좀 전엔 죄송했읍니다. 잠결이라 미처 알아뵙지 못하고……. 우선 제 방으로라도 드시지요" 사내가 빛을 잃은 시선으로 청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중얼거리듯 입술을 달싹였다. "니가 을득이 아들이냐?" 청년이 고개를 떨구었다. "예" 사내는 청년으로부터 고개를 돌려 중천에 휘영청 밝은 달을 향하며 지나는 말처럼 넌지시, "니도 날 원망하겠구먼" 얼결에 말을 받은 청년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스쳤다. "뭘요. 다 지나간 일인데요" 사내는 여전히 달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청년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구천엘 가서도 니 애비 만날 면목이 없을껴" 청년이 힐끗 사내의 얼굴을 훔쳐보았을 때, 청년은 달빛에 음각처럼 드러난 깊은 주름살과 몇 개의 흉한 칼자국을 보았다. 그것이 이상하게도 청년의 눈에 아프게 와 박히는 것이었다. 청년은 자꾸 씀벅거리는 눈을 어쩔 수가 없었다. "어디 그것이 큰아버님 탓이겠읍니까? 다 시절이 흉했기 때문이지요" 청년이 마치 그 시절을 살아 본 사람처럼 말했고, 사내는 그런 청년의 말을 못 들은 체했다. "니 애비가 총살당하던 날 밤에 난 저쪽 골에 숨어 있었제. 물론 확성기로 떠드는 소리도 듣고 있었제. 자술 허면 니 애빌 살려 준다고 말여. 그래도 난 못 나갔던 겨. 결코 목숨이 아까운 것은 아녔어. 그 당시 나넌 눈깔이 뒤집혀 있었응께. 복수를 하겄다고 말여. 허허" 사내가 몸을 흔들며 침통하게 웃었다. 그러자 여태껏 잠자코 있던 아이가 사내의 등에서 칭얼대기 시작했다. "아부지 추워. 추워 죽겠어. 빨리 방에 들어가" 그러자 사내보다도 먼저 청년이 아이의 말을 받았다. "아이구, 이 정신 좀 봐. 큰아버님, 어서 방으로 들어갑시다. 자, 우선 아이를 제게 주시고요 "아녀, 괜찮어" 사내는 그러면서도 등에서 아이를 내렸다. 아이는 잔뜩 웅숭그린 채 낯선 동네의 낯선 청년을 흘끔거리더니 사내에게 바싹 붙어서서 옷자락을 잡고 놓지 않았다. 아이가 조그맣게 말했다. "아부지 오줌 눌래, 오줌" 사내가 아이를 뒤켠으로 데려갔다. "자, 아무데나 누부러" 아이가 바지를 내리고 고추를 내밀자 곧 이어 작은 포물선을 그리며 오줌줄기가 뿜어져 나와 울타리의 마른 나뭇가지들을 바스락거렸다. 아이가 사내를 돌아보았다. "아부지, 나 오줌 세지?" "넥키놈,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녀" 사내가 아이의 머리에 알밤을 먹였다. 그렇게 알밤을 먹이는 사내의 표정에서 이미 조금 전의 침통한 빛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씨이, 아부지가 맨날 그래놓고 뭐" 아이가 투덜거렸다. 아이의 바지를 추스르면서 사내의 입에서 한숨처럼 중얼거림이 새어나왔다. "허어, 어쩌다 늘그막에 요런 것이 생겨가지고……. 허어, 내 이눔을 두고 곱게 눈이 감겨질지 몰라" 뒤켠에서 나온 사내가 청년의 권유대로 토방에 신발을 벗고 있을 때, 사랑채에서 노인이 다시 방 밖으로 상반신을 내밀었다. "태식이 게 있느냐" "예" "뫼시고 건너오너라. 이 방도 불도 좀 밝히구……" 청년이 성냥을 켜 석유 램프에 불을 당기자 노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주름살투성이의 눈언저리에 흥건히 젖어 있는 물기를 노인은 감추지 않고 있었다. 사내가 방으로 들어서자 노인이 쯧쯧 혀를 차며 혼잣말을 했다. "내 요즘 그렇지 않아도 죽은 메늘아기가 자꾸 꿈자리에 뵈 심사가 어지럽더니만……" 사내는 노인의 중얼거림을 귓전으로 흘려 버리고,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아이에게 말했다. "민수야, 할아부지께 인살 드려야제" 아이가 방바닥에 엎드려 넙죽 절을 하자 노인이 턱으로 아이를 가리켰다. "걘 뉜가?" 사내가 겸연쩍다는 듯이 반백의 상고머리를 갈퀴손으로 긁적거렸다. "자식놈입니다. 늦처를 봤더니만 글쎄……" 노인은 알 만하다는 듯이 고개를 몇 번 주억거리더니, "걔 에민?" 여전히 머리를 긁적거리는 사내에게 다시 물었다. "너무 나이 차이가 졌지요. 술집에서 알게 됐는디. 작부치곤 생긴 것도 참허구, 존 일 궂은 일 다 겪은 년이어서 소갈머리도 꽤 있어 뵈, 몇 년 전부터 살림이란 걸 시작했지요. 이 녀석을 난 뒤로는 그 년이 꽤 살림맛을 안 듯싶더니만 얼마 전에 어떤 젊은 놈과 정분이 났던 모양이어라우. 소문을 듣고두 모른 채 덮어 零는디 끝내 도망을 치구 말았수. 그래서……" 사내가 내친 김에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보였으나 노인이 팔을 휘둘러 사내를 제지했다. 노인이 청년에게 말했다. "태식아, 손불 깨워가지고 밤참 좀 짓도록 해라. 먼 길 오느라고 허기졌을텐디" "밥생각 없어라우. 그만두도록 허슈" "아니다. 짓도록 해라. 그리고 태식이 닌 내 부를 때까지 니 방에 가 있거라." 청년이 나가자 노인이 정면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짓물린 눈꺼풀 속에서 뜻밖에 형형한 눈빛이 나타났다. "니놈만 아니었어도 우리 집안은 이토록 망하지는 안했을 것이여. 니 놈이 도망간 후로도 니놈 대신에 집안 장정들이 ?이나 죽어나간 줄 아냐?" 램프의 그을음이 그림자가 되어 노인의 얼굴 위에서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림자 속에서 주름살들이 실룩거렸다. "뻔뻔도 하제. 무슨 염치로 다시 이 땅을 밟을 생각이 났단 말이냐" 방안은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들이 무거운 침묵에 가슴을 짓눌리고 있을 때, 아이가 가볍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추위에 떨다가 몸이 녹자 졸음에 겨웠던 모양으로, 아이는 어느새 사내 곁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노인의 시선이 아이의 얼굴에 가 닿고, 그렇게 한참 동안 아이의 자는 양을 보고 있더니, "애빌 빼닮았구먼. 일루 펜하게 눕혀라" 자신이 깔고 있던 요의 한 귀를 비켜 주었다. 사내가 아이를 안아 눕히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사내가 아이에게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못 올 덴지 알지만 어린 것이 너무 불쌍해서……. 아부님, 전 아무래도 오래 못 갈 것 같습니다" 사내의 말에 노인이 벌컥 역정을 냈다. "그렇게 많은 목숨을 잡아묵고도 오래 못 살어" 그러자 사내가 처음으로 자신의 일을 변명했다. "미쳤지요. 지가 미쳤지요. 세상에 지 여편네가 그런 꼴을 당하고도 안 미칠 놈 있답디여" 사내의 눈에 핏발이 서는 듯했다. 노인도 지지 않았다. "그런 꼴을 당한 놈이 어디 니놈 혼자뿐이었다냐. 피했으면 되는 거여. 눈 꾹 감고 피해 살았으면 되는 거여. 우리 조상님들은 다 그렇게 이 마을을 지켜 온 거여" 노인과 사내가 격양해서 다투고 있을 때 방문 밖에서 젊은 아낙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님, 진지상 차렸는디요" "들여보내라" 젊은 아낙네가 밥상을 들여왔다. 노인이 말했다. "묵어라. 묵구 나서 나허구 갈 데가 있다" "……?" 사내가 노인을 건네다보자 노인은 아랑곳없이 의관을 챙겼다. 흐트러진 머리칼을 모아 다시 상투를 꼽고, 갓을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었다. 사내가 시늉만으로 상을 물렸다. 노인이 먼저 일어섰다. "자, 가보자" 노인과 사내가 방문을 나서자 청년이 놀란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이 밤중에 어디를 가시려고 이러십니까?" "이 밤 안으로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그렇다면 저도 따라가겠읍니다" 노인이 손을 저어 청년을 물리쳤다. "일 없다. 닌 따라올 곳이 못돼" 그들은 한실 골짜기로 접어들었다. 인기척에 놀란 밤새들이 푸드득, 숲 사이를 날아다녔다. 골짜기가 깊어짐에 따라 달빛도 스며들지 않았다. 둘은 길을 더듬으며 자칫 넘어지곤 했다. 사내가 말했다. "지가 앞장서지라우" 사내는 노인이 한실 골짜기로 접어들 때부터 여렴풋이 행선지를 짐작하고 있었다. 노인이 선선히 사내에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골짜기를 타고 올라 산등성이에 이르렀을 때에는 둘다 그르륵, 그르륵, 가래를 끓이고 있었다. 노인이 사내를 불렀다. "쉬었다 가자" 노인이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끓는 가래를 뱉어내었다. 사내 역시 노인에게서 떨어져 앉아 피 섞인 가래를 뱉어내었다. 노인이 사내를 힐끗거렸다. "무슨 병이냐?" 사내는 구태여 숨기지 않았다. "폐병인 모양이우" 노인이 물끄러미 사내를 건네다보며 가래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 눈에 흑이 들어가기 전에 니놈을 이곳으로 끌고 오다니, 신명께서 도우셨다.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 사내가 일어서서 골짜기 아래를 눈으로 더듬었다. 골짜기에서부터 부챗살처럼 펼쳐나간 벌판에는 가득히 달빛이 내려앉고 있었다. 달빛, 달빛뿐이었다. 그 달빛에 사내는 어쩐지 눈이 시렸다. 사내는 마른 눈을 비비고 또 비비며 달빛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달빛 속에서 흰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몰려가고 있었다. 사내의 귀에 가득히 꽹과리 소리가 밀물져 들어왔다. 사내는 바로 사내가 선 자리에 뼈를 묻히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 그만 가보자" 노인이 이번엔 앞장을 섰다. 등성이의 가르마길을 타고 오르자 산 중턱쯤에서부터 숲이 끊기고 벌거벗은 민둥산이 나타났다. 갑자기 산바람이 세차게 몰아쳐서 그들을 허위적거리게 했다. 노인이 두루마기 자락을 움켜잡고 바람 속에 서서 민둥산을 훑어보았다. "버렸어. 산두 그때 다 버렸어. 포탄으루 맥이란 맥은 다 끊어 버리구…… 다아 니눔들 때문이여" 사내도 노인의 시선을 따라 민둥산의 곳곳에 움푹움푹 패여 있는 포탄자욱들을 보았다. 새삼스럽게 사내의 귀에는 쾅쾅 터쳐나던 포탄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사내가 마치 그것들을 털어버리려는 듯 머리를 흔들며 빨리 말했다. "가지라우" 민둥산을 가로질러 다음 골짜기에 이르자 기울기가 비교적 완만한 평지가 나왔다. 노인이 멈추어 섰다. "여기여" 노인이 사내를 돌아보았다. "그래도 맥이 다치지 않은 데라군 이 산에서 여기뿐여" 사내는 평지의 진솔 사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봉분들을 보았다. 사내가 얼굴에 두려운 기색을 떠올리며 봉분들에서 눈을 돌렸다. "사죄해라. 이게 다 니놈 때문에 생기신 원혼들이여" "……" 사내가 머뭇거리자 노인이 날카로운 음성으로 재촉했다. "아, 뭘 해? 빨리 엎드려 잘못을 빌지 않구" 사내가 가까운 봉분 앞에서 이배를 올리고 무릎을 꿇자, 노인이 뒤에서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게 을득이여" 사내는 노인의 떨리는 음성을 듣는 순간, 가슴 속 저 밑바닥에서부터 무언가 뜨거운 것들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회오도, 분노도, 슬픔도 아닌 어떤 형언키 어려운 것들이 저 골짜기 아래 가득한 만공(滿空)의 달빛처럼 사내를 부풀리는 것이었다. 사내의 얼굴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져 내려 마른 풀잎을 적셨다. 사내가 하나하나 봉분을 옮겨가며 무릎을 꿇을 때마다 노인은 뒤에서, 그게 당숙 둘째 자제여, 그게 사촌형님 손자여, 그게 뉘여, 사내에게 일일이 소개를 했고, 그럴 때마다 사내는 잠깐씩 얼굴들을 떠올리곤 했다. 맨 끝에 있는 봉분에 이르러 사내가 이배를 하고 무릎을 꿇었을 때, 노인이 사내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건……. 니놈에 처여" 사내가 눈을 들어 봉분을 바라보았다. 문득 사내의 시선에 아내의 시체가 비쳐왔다. 발가벗은 채, 사타구니 사이에 단도를 꽂고 나자빠진 모습이었다. 만혼의 아내가 처음 가졌던 아랫배 부분이 유난히 불러 보였었다. 사내의 입술을 뚫고 기어코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봉분을 옮길 때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비롯하여 차츰 차오르던 어떤 것들이 급기야 거센 분류가 되어 밖으로 터져나오는 것이었다. 사내는 두 손으로 아내의 시체를 파며 울었다. 노인이 길게 탄식을 했다. "허어, 아무리 인종이 막돼먹은 세상이라지만……" 낫으로 인종의 뒤통수를 찍으면서도 사내는 아내의 시체를 떠올렸었고, 공사판에서 함마를 휘두르면서도, 도살을 하면서도, 도망친 계집년을 찾으면서도, 막소주를 들이켜면서도 사내는 아내의 시체를 떠올렸었다. 사내가 일어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노인이 재촉을 했다. "뭘 꾸물거리는 겨. 빨리 일어서지 못허구" 사내가 울음이 멎지 않은 음성으로 노인에게 말을 건넸다. "또, 또…… 있단 말이우?" "있다" 노인은 다른 봉분들과는 달리 외따로 떨어져 있는, 그래서 사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한 봉분으로 사내를 데려갔다. 사내가 봉분 앞에서 엎드리려 하자, 노인이 만류했다. "그건 사죄헐 필요 띴다" "……?" "그건 니놈이여" "……예?" 노인이 차가운 시선으로 힐끗 사내를 쳐다보았다. "아, 우린 죄다 니놈을 죽은 사람으로 치부했으닝께. 설사 니놈이 살아 있는 걸 알았다손 치더라두 어떻게 니놈두 없이 다른 원혼들을 묻는단 말이여?" 노인을 바라보는 사내의 표정에 일순 애매한 표정이 스치자 노인이 사내의 표정을 피했다. "니놈은 호적에도 띴다. 사망신고를 했어. 살어남은 사람은 살어야허닝께……" 사내가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쿨룩, 쿨룩, 쿠루욱…… 온몸의 가래를 훑어올리는 듯한 심한 기침 끝에 사내는 한 웅큼의 피를 토해냈다. 노인이 부욱, 두루마기 자락을 찢어 사내에게 내밀었다. "닦어라" 사내가 잠자코 두루마기 자락을 받아 얼굴과 손의 피를 씻었다. 흰 두루마기 자락에 핏빛이 선명하게 묻어났다. 문득 사내의 두 눈에 달과 함께 수면에서 흔들리던 피묻은 얼굴이 어른거렸다. 사내가 말했다. "아부님, 전 인제 아무 데도 못 가겠수" 노인이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 니놈은 이 마을에서 살지 못할 놈여" "아무래도 죽을 목숨이우" "죽드라도 타쳐에 가서 죽어라" "아부님" 사내가 노인 앞에 엎드렸다. 노인이 백랍 같은 표정으로 그런 사내를 떼치고 일어섰다. "이 길루 곧장 떠나가라. 자식놈은 내가 맡으마" 노인과 사내가 마을 입구 정자나무 아래 다다랐을 때에는 달이 톱날같은 연봉에 걸려 있었다. 사내가 노인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아부지 그럼……" 사내가 말끝을 맺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노인이 손을 저었다. "어서 가" 사내가 몸을 돌려 비칠비칠 걷기 시작했다. 저만큼 떨어질 즈음에 노인이 사내의 등을 향해 외쳤다. "죽게 되믄 연락해라. 내 니놈 뒷수습은 해줄 테닝께" 이윽고 노인은 앞이 침침해지면서 사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노인이 선 자리에서 나무토막처럼 푹 쓰러졌다. 달이 졌다.  
21 입적2 외1편/김세형
편집자
3901 2010-06-24
10.07월 2호 시 입적 2 -법정 스님의 입적에 부쳐- 김세형 죽음이 티 없이 맑다 남아 있는 것이라곤 일체 미진도 없다 한 티끌이 온 우주를 머금고 있다고는 하나 그에겐 한 티끌도 남아있질 않다 삶이 티 없이 맑았으니 죽음 또한 티 없이 맑다 청정법구다 아니, 청정 하늘이다 입적을 뒤적거리지 마라 입적은 있었으나 흔적은 없다 흔적이 없는데 사리인들 남아있겠느냐 그의 흔적을 찾지 마라 그는 본래 온 바도 간 바도 없는 卍行이었나니 그를 찾는 자 제 자신을 잃으리라 간 밤 호수에 빠진 달을 보고 컹, 컹, 개처럼 짖지 마라 고개 들어 청정 하늘이나 올려다보라 네가 거기 있지 않느냐 어느 주례사 김 세형 피고 두 사람의 죄목은 사랑! 두 사람의 사랑의 죄가 심히 막중하여 두 사람의 자유를 영원히 박탈하지 않을 수 없음! 피고 두 사람을 종신형에 처함! 부디 두 사람은 사랑의 감옥 안에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딴 짓 하지 말고 착실히 모범수로 살아갈 것! 때때로 지지고 볶고 살아갈지라도 탈옥은 아예 꿈도 꾸지 말 것! 만약 수형 생활을 착실히 해나가다 서로가 못 견디게 지겨워져 돌이킬 수 없이 서로를 혐오하게 되면 두 사람은 즉각 감옥 안에서 석방된다는 점에 유의할 것! 종신토록 함께 살아가려면 두 사람은 사랑의 감옥 안에서 서로 쉼 없이 사랑의 죄악을 저지를 것! 약력-2005년 《불교문예》봄호로 등단 저서-『모래인어』『사라진 얼굴』 이메일-poemdream@hanmail.net  
20 다자이 오사무의 <직소>와 박상륭의 <아겔다마>
주진
6052 2010-06-21
내가 좋아하는 소설 <직소>와 <아겔다마>는 유다에 관한 소설이다. 같이 읽으면 더 흥미로울 듯하여 한자리에 놓아본다. <직소>는 유다가 예수를 은 삼십에 팔아넘기는 과정을 그린 것이고 <아겔다마>는 예수를 팔아넘긴 이후의 상황이다. 파렴치한과 배신자의 대명사로 불리는 유다의 심리가 이 두 소설 속에서 변명이라도 하듯이 생생하다. <직소>에서 유다는 예수에 대한 애증, 질투, 번민, 욕망 들로 가득하다. 이중적이고 탐욕스럽고 나약하고 비열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간적일 수밖에 없다. 예수를 위한 또 다른 속죄양인 것이다. 우리 모두 누구나 유다가 될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아겔다마>에서는, 예수를 팔아넘기고 돌아온 유다는 막달라 마리아의 아랫도리를 생각하다 자신을 돌봐주는 노파를 추행한다. 유다는 은 삼십을 받으러온 예수에게 노파의 수의값으로 줘버렸다며 억지를 부린다. 그러다 그는 예수에게 은 삼십을 거두어달라며 숨을 거둔다. 은 삼십은 예수의 목숨값이자 유다 자신의 목숨값인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1909~1948)는 일본현대문학의 대표작가로 제1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네 번의 자살 시도 끝에 결국 39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작품으로 <사양> <인간실격> <만년> <옛이야기>등이 있다. 박상륭(1940~ )은 1963년 사상계에 <아겔다마>로 등단했다. <열명길> <죽음의 한 연구> <칠조어론> <산해기> 등의 작품집이 있다. 그의 소설은 대부분 삶과 죽음의 근원을 다양한 종교, 철학, 동서고금의 신화 등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직소  예, 예. 차분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사람을 살려두어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의 원수입니다. 예, 모든 것을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있는 곳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산산조각 내어 죽여주십시오. 그 사람은 제 스승입니다. 주인입니다. 하지만 저와 동갑입니다. 서른넷입니다. 저는 그 사람보다 불과 두 달 늦게 태어났을 뿐입니다. 대단한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런 큰 차별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저를 얼마나 짓궂게 부려먹었는지요, 얼마나 조롱당했는지요. 아아, 이젠 족합니다. 참을 만큼 참아왔습니다. 화를 낼 때에 화를 낼 수 없다면 살아가는 보람도 없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얼마나 남모르게 그 사람을 감싸왔는지 모릅니다. 아니, 그 사람은 알고 있습니다. 분명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그 사람은 저를 짓궂게 경멸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오만합니다. 제게 신세를 많이 졌기에, 그게 스스로 느끼기에 안타까운 것입니다. 그 사람은 멍청할 정도로 자아도취가 심합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는 사실을, 무슨, 자신의 큰 단점인 것처럼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 사람은 뭐든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안달입니다. 어리석은 말입니다. 세상은 그런 게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굽실굽실해야만 하며, 그렇게 해서 한 걸음 한 걸음 고생해가며 사람들을 밟고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아무 것도 못합니다. 제 눈에는 새파란 애송이에 불과합니다. 만약 제가 없었다면 그 사람은 벌써 이미 예전에 그 무능하고 멍청한 제자들과 어딘가에서 굶어죽었음이 분명합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그래요. 그것 보세요. 제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야고보, 요한, 안드레, 도마, 얼간이들이 모여 어슬렁어슬렁 그 사람을 따라다니며, 소름끼치는 달콤한 아부나 떨면서 천국이 어쨌다는 둥 바보 같은 걸 정말로 믿으며 열광하여, 그 천국이 가까이 왔다면 저놈들은 모두 우의정이나 좌의정이라도 되려는 건지. 멍청한 놈들입니다. 그 날도 역시 빵도 없어 어쩔 줄을 몰라 할 때, 제가 그 사람에게 설교를 시키고는 군중으로부터 몰래 헌금을 받아내어, 또한 동네 부자한테서 물건들을 걷어 들여가며 묵을 곳까지 마련해주고 먹을 것과 입을 것까지 빈틈없이 준비해줬더니, 그 사람은 고사하고 멍청한 제자들마저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습니다. 고맙다고 말하기는커녕 그 사람은 저의 이처럼 나날이 계속되는 고생을 모르는 척하고 언제나 말도 안 되는 주문을 하여,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 물고기 밖에 없을 때조차도 눈앞에 있는 군중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라는 둥 억지를 부리기에 간신히 사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저는 그 사람이 하는 기적을 도와주는, 위험한 마술의 조수를 지금까지 몇 번이고 해왔습니다. 저는 이래봬도 절대 인색한 놈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저는 대단한 호사가입니다. 저는 그 사람을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어린아이처럼 욕심이 없고, 제가 하루하루 빵을 얻기 위해 돈을 열심히 모아도, 곧 그것들을 한 푼도 안 남기고 헛되게 써버리고 말이죠. 하지만 저는 그것을 억울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인 것입니다. 저는 본래 가난한 상인이었으나 그래도 '정신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제가 고생해가며 모아놓은 자그마한 돈들을 아무리 어이없이 낭비해도 저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습니다만, 그렇다면 제게 가끔 부드러운 말 한마디 건네주어도 될 듯싶은데도 그 사람은 항상 짓궂게 굽니다.  한 번, 그 사람이 봄날에 해변을 걸으며 문득 제 이름을 부르고는 “네게도 신세를 많이 진다. 너의 쓸쓸함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항상 성난 표정을 짓고 있으면 안 된다. 쓸쓸할 때에 쓸쓸한 표정을 짓는 일은 위선자나 하는 일이다. 쓸쓸함을 사람들이 알아보도록 더욱 어두운 안색을 하고 있을 뿐이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너는 쓸쓸할 때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며 깨끗하게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는 미소를 지어야 한다. 모르겠는가. 쓸쓸함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네 진실된 아버지만이 알아주시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느냐. 안 그런가? 쓸쓸함은 누구에게나 있다.” 라고 말씀해 주셔서, 저는 소리를 내어 엉엉 울어버리고 싶어, 아뇨, 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알아주시지 않더라도 단지 당신 한 사람만이 알아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다른 제자들이 아무리 깊이 당신을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사랑합니다.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베드로나 야고보 같은 이들은 그저 당신을 따라 다니며 무언가 좋은 일이라도 있을까 하고, 그런 것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만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을 따라다녀 봤자 얻을 것도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당신 곁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당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저도 곧바로 죽겠습니다.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저는 항상 혼자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멍청한 제자들 곁을 떠나, 또한 하늘에 계신 아버지 말씀 같은 것을 가르치지 말고, 소박한 백성의 하나로 어머님이신 마리아님과 저, 이 셋이서 조용히 한 평생 오랫동안 살아가는 일입니다. 제 마을에는 아직 제 작은 집이 남아있습니다. 나이든 아버지와 어머니도 계십니다. 매우 넓은 복숭아밭도 있습니다. 봄, 지금쯤은 복숭아꽃이 펴서 경치가 훌륭합니다. 평생 편히 살아가실 수 있습니다. 제가 항상 곁에 있으면서 모시고자 합니다. 좋은 부인을 맞이하십시오.  제가 그렇게 말씀드리자 그 사람은 살며시 웃으시며, “베드로나 시몬은 어부다. 아름다운 복숭아밭도 없다. 야고보도 요한도 가난한 어부이다. 그들에게는 그런, 평생을 안락하게 지낼만한 땅이 어디에도 없다.” 라고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는 다시 해변을 조용히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만, 전에도 후에도 그 사람과 편안히 말을 나눌 수 있었던 건 그때 한 번 뿐이며, 그 이후에는 절대 제게 마음을 열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 사람이 죽으면 저도 함께 죽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제 것입니다. 그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어야 한다면, 건네주기 전에 제가 그 사람을 죽여 드리겠습니다. 아버지를 버리고 어머니를 버리고, 태어난 땅을 버리고 저는 오늘까지 그 사람을 따라 걸어왔습니다. 저는 천국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믿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부활도 믿지 않습니다. 왜 그 사람이 이스라엘의 왕이란 말입니까. 멍청한 제자들은 그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믿고,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라는 것을 그 사람으로부터 전해 듣고는 흔희작약(欣喜雀躍)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실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그 사람은 약속했으나 이 세상은 결코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말하는 것, 하나부터 열까지 엉터리입니다. 저는 전혀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사람의 아름다움만은 믿고 있습니다. 그토록 아름다운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 사람의 아름다움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 뿐입니다. 저는 아무런 보수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따라 걸으며, 천국이 가까웠고, 그 때 가서는 훌륭히 우의정이나 좌의정이 되고자 하는 생각도, 그런 천박한 욕심도 없습니다. 저는 그저 그 사람 곁을 떠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그저 그 사람 곁에서,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그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으로 좋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사람이 설교하는 것을 멈추고 저와 단둘이서 평생 오랫동안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아아아, 그렇게만 된다면! 저는 얼마나 행복할까요. 저는 지금 이 현세의 기쁨만을 믿습니다. 다음 세상의 심판 같은 것을 저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저의 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애정을 왜 받아주시지 않는지요. 아아, 그 사람을 죽여주십시오. 나으리. 저는 그 사람이 있는 곳을 알고 있습니다. 안내해드리지요. 그 사람은 저를 능욕하고 증오하고 있습니다. 저는 미움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나 제자들의 빵을 마련하고 하루하루 굶주림으로부터 견디어내고 있는데도 왜 저를 그토록 짓궂게 경멸하는지요. 들어주십시오. 엿새 전 일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베다니에 있는 시몬 집에서 식사를 하고 계실 때, 그 마을에 사는 마르다 녀석의 누이동생인 마리아가 나드 향유를 가득 채운 석고로 된 통을 그 사람 머리 위에 확 퍼부어 발까지 적시고는, 그래놓고서도 사과하기는커녕 차분히 앉고서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그 사람의 젖은 두 발을 정성껏 닦아주었으며, 향유 냄새가 집안에 가득 차고 매우 기이한 분위기였기에 저는 왠지 매우 화가 나서, ‘실례되는 짓을 하지 말라!’ 고 그 계집에게 소리쳤습니다. 이걸 보게, 이처럼 옷이 젖어버리지 않았느냐, 더구나 이렇게 비싼 기름을 퍼붓다니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어쩌면 너는 그리도 어리석은가. 이 정도 기름이라면 삼백 데나리온이나 하지 않겠느냐, 이 기름을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더라면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아까운 짓을 하면 곤란해, 라며 저는 한참 혼을 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저를 노려보며 “이 여자를 괴롭게 하지 말라. 이 여자는 내게 매우 좋은 일을 한 것이다. 가난한 자들에게 돈을 주는 일은, 너희들은 지금부터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냐. 내게는 더 이상 대접을 할 수 없게 되리라. 그 이유는 말하지 않겠다. 이 여자만은 알고 있다.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 지낼 준비를 위함이다. 너희들도 잘 기억해두어라.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나의 짧은 일생을 전할 곳에서는 반드시 이 여자가 오늘 행한 일도 기념하여 전해지리라.” 라고 말을 맺었을 때에 그 사람의 창백한 볼은 어느 정도 상기되어 붉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여느 때와 같은 과장된 연극이라 생각하고 태연하게 흘러들을 수 있었으나, 그것보다도 그 때 그 사람 목소리에, 그리고 그 사람 눈빛에 지금까지 없었던 기이한 것이 느껴져, 저는 순간 당황하여, 나아가 그 사람의 살며시 붉어진 볼과 약간 눈물이 고인 눈을 잠시 보고는 문득 알아차린 것이 있었습니다. 아아, 말도 안 됩니다, 입에 담는 것조차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 사람은, 이런 가난한 시골여자에게 사랑, 은 아니지만, 설마 그런 일은 절대 없겠으나, 하지만 위험한, 그것과 닮은 이상한 감정을 가진 것이 아닐까. 그처럼 위대한 사람이, 한낱 무지한 시골여자에게 한순간이라도 특수한 사랑을 느꼈다면, 그건 일대 실수이자 돌이킬 수 없는 큰 추문. 저는 사람의 치욕적인 감정을 선천적으로 잘 알아차립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런 점을 저질적인 후각이라고 여겨져 싫어합니다만, 한번 슬쩍 보기만 해도 사람의 약점을 남김없이 가려내고 마는 예민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리 약간이라고 해도 그 배우지 못한 시골여자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는 것은 역시 틀림없습니다. 제 눈이 잘못 봤을 리가 없습니다. 분명 그렇습니다. 아아, 참을 수가 없습니다.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 사람도 이런 꼴을 보이기 시작하면 이제 끝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추태의 극치라고 여겨졌습니다. 그 사람은 지금까지 여성들이 아무리 사모해도 항상 아름답고 물처럼 고요했습니다.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끝입니다. 갈 데까지 간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은 아직 젊은 나이이며, 그 정도는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말할지는 모르지만, 그렇다면 저도 동갑입니다. 더구나 그 사람보다 두 달 늦게 태어났습니다. 젊음에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인내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 하나만 바라보고 이토록 어느 여자에게도 마음이 동한 적은 없습니다.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는 언니 마르다가 몸집이 좋고 소처럼 크며 성격도 거칠고 성급할 줄밖에 모르는, 전혀 장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골여자인데 반해, 그녀는 전혀 달라 몸집도 가냘프고 피부는 투명할 정도로 창백하여 손발도 통통하며 작고, 마치 호수처럼 깊고 맑은 큰 눈이 항상 꿈꾸듯 멍하니 멀리를 바라보는 듯하며, 마을에서는 모두가 이상하게 느낄 정도로 품위 있는 여자였습니다. 저도 생각했습니다. 읍내에 나갔을 때 흰 비단이라도 몰래 사다 주려고 했습니다. 아아, 이제 더 이상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저는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요. 그렇습니다. 저는 안타까운 겁니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발을 동동 구를 정도로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젊다면 저도 젊습니다. 저는 재능도 있으며 집도, 밭도 있는 훌륭한 청년입니다. 그래도 저는 그 사람을 위해 제 특권을 모두 버려왔습니다. 속았습니다. 그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나으리. 그 사람은 제 여자를 빼앗아갔습니다. 아니, 아닙니다! 그 여자가 저로부터 그 사람을 빼앗은 것입니다. 아아, 그것도 아닙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모두 엉터리입니다. 한 마디도 믿지 말아 주십시오.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터무니없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 경박스러운 사실 같은 건 전혀 없습니다. 추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안타깝습니다. 가슴을 쥐어뜯고 싶을 정도로 안타까웠단 말씀입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아, 질투란 어쩌면 이토록 괴롭고도 사악한 감정일까요. 제가 이토록 목숨을 버릴 정도로 그 사람을 사모하고, 오늘까지 모셔왔는데도 제게는 단 한마디 부드러운 말씀을 건네주지도 않은 채, 오히려 저런 미천한 시골여자에 대해 얼굴을 상기시켜가며 감싸주고 말입니다. 아아, 역시 그 사람은 무기력합니다. 갈 데까지 갔습니다. 이제 그 사람한테는 가망이 없습니다.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냥 사람일뿐입니다. 죽어도 아쉬울 건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문득 끔찍한 일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악마가 씌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때 이후로 그 사람을 아예 제 손으로 죽여 버리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는 죽임을 당할 분이 틀림없습니다. 또한 그 사람도 억지로 자신이 죽임을 당하려는 것처럼 종종 보일 때도 있습니다. 제 손으로 죽입니다. 다른 사람 손으로 죽임을 당하게 하기 싫습니다. 그 사람을 죽이고 저도 죽습니다. 나으리, 눈물을 보여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 예, 이제 울지 않겠습니다. 예, 예. 차분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다음 날, 저희들은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예루살렘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대군중, 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그 사람을 따랐으며, 이윽고 예루살렘 성이 가까워지자 그 사람은 한 마리 늙은 당나귀를 길가에서 발견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그것을 타고서, 이는 바로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라는 예언대로라며 밝은 표정으로 가르쳤으나, 저는 혼자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리도 딱한 몰골입니까. 기다리고 기다린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이것이 그 다윗 자손의 모습이었는가. 그 사람이 평생 동안 염원했던 모습이란, 이 늙은 나귀를 타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딱한 모습이었는가. 저는 더 이상 연민 외에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실로 비참한, 멍청한 삼류연극이라도 보고 있는 듯하여, 아아, 이제 이 사람도 다 살았다. 하루를 살면 하루를 산만큼 경박한 추태를 보일 뿐이다. 꽃은 지기 전이라야 꽃이다. 아름다울 때 잘라야만 한다. 그 사람을 가장 사랑하고 있는 건 나다. 아무리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아도 좋다. 하루라도 빨리 그 사람을 죽여야 한다며, 저는 드디어 이처럼 가슴 아픈 결심을 굳힐 따름이었습니다. 군중은 시시각각 그 수가 늘어나고, 그 사람이 지나가는 길 위에 빨강, 파랑, 노랑, 가지각색으로 그들의 옷을 던졌으며, 어떤 이는 종려가지를 가져와 그 가는 길에 깔고는 환호를 지르며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며 좌우로부터 휘어 감듯이 몰려오더니, 나아가서는 파도처럼 나귀와 그 사람을 붙잡고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고 열광하며 노래하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나 요한, 바돌로매, 그밖에 다른 제자들은 멍청하게도 이미 천국을 눈앞에서 본 것처럼, 마치 개선하는 장군 곁을 따르는 것처럼 기뻐 날뛰고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 껴안으면서 눈물 젖은 입맞춤을 하고, 고지식한 베드로는 요한을 끌어안으며 큰 소리로 엉엉 울어대는 판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저도 그 제자들과 함께 여러 난관을 뚫고 포교를 위해 걸어온 고난의 세월이 머리에 떠올라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렇게 그 사람은 성전으로 들어가 당나귀에서 내리고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끈을 줍고서 그것을 휘두르며 성전에서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고, 소와 양도 그 끈으로 만든 채찍을 들고서 전부 성전에서 쫓아내고는 성전 안에 있는 많은 상인에게 말하기를 “모두 썩 나가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며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 온화한 분이 이처럼 술주정뱅이처럼 부질없이 난리를 피운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신이 나갔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놀라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에게 묻자, 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너희들, 이 성전을 헐어버려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워 주리라”고 하기에, 과연 우직한 제자들도 너무나도 어이없는 말을 듣고서 믿어지지 않는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그 사람의 유치한 허세임이 분명하다. 그 사람의 신앙으로써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래도 그렇지, 끈으로 된 채찍을 휘두르며 힘없는 상인들을 쫓아내다니, 참으로 딱한 허세입니다. 기껏 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저항이란 이 정도 뿐입니까. 비둘기파는 이의 의자를 걷어찰 정도입니까, 하며 저는 비웃으며 물어보려고까지 했습니다. 이미 이 사람은 안 됩니다. 자포자기인 상태입니다. 자중자애(自重自愛)를 잊어버렸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우치기 시작한 듯하여, 더 이상 체면이 깎이기 전에 일부러 제사장에게 잡혀 이 세상과 작별을 고하고 싶었겠지요. 저는 그것을 떠올렸을 때 분명 그 사람을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런 허영심에 가득 찬 도련님을 지금까지 일편단심 사랑해온 제 어리석음도 쉽사리 웃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이윽고 그 사람은 성전에 모인 군중들을 앞에 두고 지금까지 했던 말 중 가장 심하고, 오만무례한 폭언을 닥치는 대로 소리쳤습니다. 그렇습니다. 분명 자포자기입니다. 저는 그 모습이 추잡하게까지 비쳐졌습니다. 죽고 싶어 안달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外飾)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外飾)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흉내 내는 것조차 불결합니다. 큰일 날 소리를 하는 놈이다. 그 사람은 돌았습니다. 또한 그 외에도 기근이 있다는 둥, 지진이 일어난다는 둥,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고, 땅에는 사람 시체가 넘쳐나며 그것을 쪼아 먹는 독수리가 모인다는 둥, 사람들은 그 때 통곡하며 이를 갈 것이라는 둥, 실로 터무니없는 폭언을 서슴지 않는 것입니다. 어쩌면 저렇게도 사려 깊지 않은 말들을 늘어놓는 것일까요. 잘난 척 하는 것도 한도가 있습니다. 자기 주제도 모르고 말입니다. 속 편한 소리를 합니다. 이미 그 사람 죄는 피할 수 없습니다. 분명 십자가. 이제 확실합니다.  제사장이나 장로들이 대제사장 가야바의 관정(官廷)에 몰래 모여 그 사람을 죽이는 일에 대해 결의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것을 어제 동네 장사꾼으로부터 들었습니다. 만약 군중들 눈앞에서 그 사람을 사로잡으면, 어쩌면 군중이 폭동을 일으킬지도 모르므로 그 사람과 제자들만이 있는 곳을 발견하여 신고한 자에게는 은 삼십을 준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어차피 죽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의해 잡히기 전에 내가 하자. 이것이 오늘까지 저의, 그 사람에게 바친 일편단심 애정에 대한 마지막 인사말입니다. 제 의무입니다. 내가 그 사람을 팔아버리자. 가슴 아픈 처지입니다. 누가 제 꾸준한 사랑의 행위를 정당하게 이해해 줄까요. 아니,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제 사랑은 순수한 사랑입니다. 사람들이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 천박한 사랑이 결코 아닙니다. 저는 영원히 그 사람으로부터 증오를 받겠지요. 하지만 이 순수한 사랑 앞에서는 어떠한 형벌도, 어떠한 지옥의 노여움도 문제되지 않습니다. 저는 저의 사는 방식대로 일관성 있게 살아가렵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굳게 결심했습니다. 저는 몰래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유월절 당일이었습니다. 저희들 스승과 제자 열 세 명은 동산 위 낡은 요릿집의 침침한 이층을 빌려 명절 연회를 열기로 하였습니다. 모두 식탁에 앉아 막 잔치를 시작하려던 참에 그 사람이 겉옷을 벗었습니다. 저희들은 대체 무엇을 하려는가 하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탁상 위에 있던 물통을 들고서는, 그 물통 안에 든 물을 구석에 있던 작은 대야에 붓고서, 흰 수건을 가져다가 자신의 허리에 두르고 대야의 물로 제자들의 발을 차례차례 씻어주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넋을 잃고는 우왕좌왕할 뿐이었으나, 저는 왠지 그 사람의 숨겨진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은 쓸쓸했던 것입니다. 극도로 마음이 쇠약해져서 이제는 완고하고 무지한 제자들에게까지 의지하고 싶은 심정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불쌍하게도 그 사람은 자신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저는 갑자기 강력한 오열이 목구멍을 뚫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갑자기 그를 끌어안고 함께 울고 싶어졌습니다. 아아, 불쌍하게도, 당신이 죄를 지은 건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은 항상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항상 옳았습니다. 당신은 항상 가난한 자의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언제나 빛을 발할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당신은 분명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저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저는 당신을 팔려고 근래 이삼일 동안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싫습니다. 당신을 팔다니, 무슨 그런 당치도 않은 생각을 했던지요. 안심해주세요. 지금부터는 오백의 관리, 천의 군대가 온다 해도 당신의 몸에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합니다. 놈들은 당신을 노리고 있습니다. 위험합니다. 지금 당장 여기서 도망칩시다. 베드로도 오라, 야고보도 오라, 요한도 오라, 모두 오라, 우리의 선한 주를 지키고 평생 오래도록 살자며, 마음속으로부터 사랑의 말이, 말로는 하지 못했으나 가슴속에서부터 끓어올라왔습니다. 그날 그때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일종의 숭고한 영감에 감명을 받아 뜨거운 회개의 눈물이 은혜롭게 볼을 따라 흘러, 이윽고 그 사람은 제 발도 조용히 정성껏 씻어주고, 허리에 둘렀던 수건으로 부드럽게 닦아주어, 아아, 그 때의 촉감이란. 그렇습니다. 저는 그 때 천국을 보았는지도 모릅니다. 저 다음에 빌립의 발을, 그 다음에 안드레의 발을, 그리고 다음에 베드로의 발을 씻어주는 차례였으나, 베드로는 그처럼 우직한 자였으므로 수상한 마음을 숨겨둘 수가 없어, 주여, 당신은 왜 제 발 같은 것을 씻으려 하십니까, 하고 다소 불만스럽게 입술을 내밀며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하고 은유적으로 말한 뒤에 베드로 발밑에 앉았으나 베드로는 기꺼이 거절하며, 아뇨, 안됩니다. 영원히 제 발 같은 것을 씻으시면 안 됩니다. 너무도 황송합니다, 라며 그 발을 오므렸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조금 큰 목소리로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하며, 매우 강하게 말씀을 하시기에, 베드로는 허둥지둥 대며 아아, 잘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제 발만이 아니라 손과 머리도 마음껏 씻어 주십시오, 하고 머리를 깊이 숙여가며 부탁을 드리기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으며, 다른 제자들도 몰래 미소를 지어, 어딘지 모르게 방안이 밝아진 듯했습니다.  그 사람도 조금 웃으며 “베드로야, 발만 씻으면 이제 그것으로 네 온몸은 깨끗해졌다. 아아, 너뿐 아니라 야고보도 요한도 모두 흠 없는 깨끗한 몸이 된 것이다. 그러나,” 라고 말을 하려다가 문득 허리를 펴고 순간 고통을 참는 듯이 매우 슬픈 눈을 하시고는, 곧 그 눈을 세게 감더니, 감은 채로 말했습니다. “모두가 깨끗하면 좋으련만.” 저는 놀랐습니다. 당했다! 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을 팔려던, 불과 몇 분전까지의 어두운 마음을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때는 아니었습니다. 절대 나는 아니었어! 나는 깨끗했었습니다. 내 마음은 변해있었습니다. 아아, 그 사람은 그걸 모릅니다. 그걸 몰라! 아니, 아닙니다! 하고 목구멍까지 나오려던 절규를 저는 침을 삼키는 약하고 비굴한 마음을 삼켜버렸습니다. 말할 수 없습니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으니, 저는 역시 깨끗해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는, 나약하게 긍정하는 마음이 고개를 들더니 점점 그 비굴한 반성이 추악하고 흑암처럼 부풀어 올라 저의 오장육부를 휘몰아쳐, 반대로 점차 분노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에이, 안되겠다. 나는 안 된다. 그 사람에게 철저히 경멸당하고 있다. 팔자. 팔자. 그 사람을 죽이자. 그리고 나도 함께 죽는 것이다, 하고 전부터 마음먹었던 결의가 다시금 눈을 떠, 완전히 복수의 악귀가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내 마음이 두 세 번이나 뒤집히며 변화한 대동란은 모르는 듯, 이윽고 윗도리를 입고 복장을 바로 하여 편안히 자리에 앉으시며 실로 창백한 얼굴로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주라 또는 선생이라 하니 너희 말이 옳다. 나는 너희들의 주 또는 선생임에도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사이좋게 발을 씻도록 해야 한다. 내가 너희들과 언제까지나 함께 있을 수가 없으므로 이번 기회에 본을 보인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여야 한다. 스승은 반드시 제자보다 크니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잊지 않도록 하라.” 매우 우울한 말투로 소리 없이 식사를 시작하고, 문득 “너희들 중 한 명이 나를 판다.”며 고개를 숙여 신음하는 듯 흐느끼는 것과도 같은 괴로운 목소리로 말했기에 제자들 모두 크게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 사람 주변에 모여 각각 주여, 저입니까, 주여, 그건 저를 말씀하십니까, 하고 난리를 치고, 그 사람은 죽는 사람처럼 슬며시 고개를 흔들고는 “내가 지금 그 사람에게 한 조각 빵을 주노라. 그 사람은 매우 불행한 사람이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고 의외로 분명한 어투로 말한 다음 한 조각 빵을 들고 팔을 뻗은 후, 망설임 없이 제 입에 갖다 댔습니다. 저는 이미 마음을 정한 상태였습니다. 수치스러워하기 보다는 증오했습니다. 이제 와서 하는 그의 행동을 증오했습니다. 이처럼 모든 제자들 앞에서 공연히 모욕을 주는 것이 그 사람이 하는 지금까지의 복수입니다.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불과 물의 숙명이 나와 저놈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개가 고양이에게 주듯 한 조각의 빵을 내 입에 갖다 대고는, 그것은 그 놈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복수였던가요. 흥. 어리석은 놈 같으니라고. 나으리, 녀석은 지금 제게,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곧바로 식당에서 뛰쳐나와 어둠 속을 그저 달리고는 지금 이곳에 왔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이처럼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 사람을 벌하여 주십시오. 어떻게 하든 마음대로 벌하여 주십시오. 잡아 몽둥이로 쳐서 벌거벗겨 죽이시죠. 이제, 이제 더 이상 저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저건, 나쁜 놈입니다. 못된 사람입니다. 저를 지금까지 그토록 괴롭혔습니다. 하하하하, 젠장할. 그 사람은 지금 기드론 시내 끝 겟세마네 동산에 있습니다. 이제 그 이층에서 있었던 만찬도 끝났으며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지금쯤은 분명 하늘에 기도를 드리고 있을 시간입니다. 제자들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지금 가시면 아무런 어려움 없이 그를 잡을 수 있습니다. 아아, 새들이 울어 시끄럽군요. 오늘밤은 왜 이토록 새들의 울음소리가 귀에 거슬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리로 달려오는 도중에도 숲 속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습니다. 밤에 지저귀는 새는 보기 드뭅니다. 저는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으로 그 새들의 정체를 한 번 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멈추어 서서 고개를 기울이고는 나뭇가지 사이를 보았습니다. 아아, 저는 지금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나으리, 준비는 되셨습니까. 아아, 즐겁습니다. 기분이 좋군요. 오늘밤은 제게도 마지막 밤입니다. 나으리, 나으리, 오늘밤 이제부터 저와 그 사람이 훌륭히 어깨를 나란히 선 광경을 잘 보아두십시오. 저는 오늘밤 보라는 듯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겠습니다. 그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비하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그 사람과 동갑입니다. 같은, 훌륭한 젊은이입니다. 아아, 새 소리가 시끄럽군요. 너무도 귀에 거슬려 시끄럽습니다. 왜 이토록 새들이 소란을 피우는 것일까요. 지지배배, 지지배배 무슨 소란을 떠는 것일까요. 아니, 그 돈은? 제게 주시는 건가요? 저, 제게 은 삼십. 그렇군요, 하하하하. 아니, 사양하겠습니다. 얻어맞기 전에 그 손을 치우십시오. 돈이 좋아 고소한 것이 아닙니다. 손 치워! 아니, 죄송합니다. 받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상인이었습니다. 돈 때문에 저는 우아한 그 사람으로부터 항상 경멸을 당해왔었지요. 받겠습니다. 저는 어차피 상인입니다. 미움을 받고 있는 금전으로써 그 사람에게 훌륭히 복수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게 가장 어울리는 복수 수단입니다. 꼴좋다! 은 삼십으로 녀석은 팔립니다. 저는 전혀 울지 않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조금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예, 나으리. 저는 거짓말만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돈이 갖고 싶어 그 사람을 따라다녔습니다. 오오, 분명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제게 전혀 돈을 벌게 해주지 않는다고 오늘 확신했기에 상인답게 재빨리 돌아선 것입니다. 돈. 세상은 돈뿐입니다. 은 삼십. 매우 훌륭합니다. 받겠습니다. 저는 그저 상인일 따름입니다. 갖고 싶어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예, 예. 늦었군요. 제 이름은 상인인 유다. 헷헤. 가룟 유다라고 합니다. 아겔다마 (힌놈의 골짜기의 동남 예루살렘과 골짜기 맞은편 후미지고 나그네의 발걸음이 여간해선 머물지 않는 한곳에 오래되고 볼품없는 움막집이 한 채 있었는데, 그 움막집의 사립문 한쪽 기둥에 ‘가롯 유다’라는 문패가 걸려 있었다. 그 문패도 그 움막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영고와 성쇠, 봄바람 가을비에 시달리고 또 썩고 곰팡이가 피어 있어,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것은 그리스 문자로 씌어져 있었다.) 그날 밤엔-서력 기원 삼십년 니산달 열닷새 금요일-가롯 유다는 전에 없이 지치고 쇠약해져서 비틀 쓰러질 듯이 하고 돌아왔다. 길은 그날 오후에 억수로 쏟아진 소나기로 진구렁창이었다. 그러나 유다는 그런 건 개의치도 않은 듯이 그의 바짓가랑이는 흙투성이었다. 그는쫓긴 토끼마냥 불안스러워했고, 서두르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전의 상냥스러움은 찾아볼 수도 없이 퉁명스럽고 변태적인 침울한 사람으로 변해져 있었다. 광포와, 신음과, 이빨 부딪치는 소리는 앓는 수고양이를 연상시켰다. 그에게는 다만 예순다섯이나 되는 노파가 한 사람 있었을 뿐이었는데, 그녀가 촛불을 켜들고 유다 방으로 들어갔을 때도 유다는 진정되지 않은 듯이 맨바닥에 엎드려 기묘한 신음을 쥐어짜대고 있었다. 책상 위엔 언제나처럼 선지자 스가랴의 팸플릿이 반만쯤 펼쳐진 채 먼지를 덮어쓰고 있었고, 그 펼쳐진 갈피 위엔 펜이 녹슬은 펜대가 여전히 놓여져 있었다. 유다가 들어오고 하나 달라진 것은, 한번도 다음 장은 넘겨보지도 않은 것 같은 그 갈피 위에 함부로 던져놓은 듯한 한 꾸러미가 독사처럼 도사리고 있는 그것이었다. 노파는 조심해서 책상 위에다 촛불을 세워놓고 유다의 흙묻은 바지를 벗겨주려 했으나, 발길질을 해서 실패했다. 하는 수 없이 흙투성이 위에다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래도 이빨을 덜덜 떠는 걸 그치지 않았고, 신음도 더욱 심해졌다. 노파는 촛불 빛을 통해 한동안이나 유다를 지켜보고 서 있다가 슬며시 문을 열고 나와 버렸다. 무언지 자기로서는 이해할 수도, 그렇다고 같이 걱정해줄 수도 없는 것 같은 어떤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습기 섞인 어둠 저쪽 하늘에서 몇 별이 고향의 이야기를 속삭여주고 있다는 외에 그날 낮에 어떤 물결이 어떻게 격류지어갔는지에 대해선 조금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무언지 어제 저녁의 이맘때쯤의 느낌과 오늘은 약간 달라진 듯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는 했다. 뭐 그것은 제 육시쯤으로부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고, 제 구시쯤엔 천둥과 지진이 일어났다는 그런 변괴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도 마음 밑바닥으로부 이전에는 가져보지 못했던 어떤 것들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젊은 날에 지녔던 소박하고도 서러운 꿈같은 것이기도 했고 또 어떻게는 이보다도 더 나이 많은 날에 느끼게 되리라고 짐작되는 그러한 것이었다. 그런 것은 나이 서른을 넘으면서부터는 모르고 살아왔다. 막연하고 멍하게, 그리고 소박하게만 살았다. 행복도 몰랐고 불행도 몰랐다. 세월은 그녀에게 젖이 샘솟는 유방을 주었고, 또 그것을 빼앗았다. 그녀의 고향은 사마리아였는데, 그녀의 남편은 본 지방(예루살렘)사람으로, 힌놈의 골짜기 동남 예루살렘과 골짜기 맞은편의 한 구릉을 등진 곳에서 질그릇 굽는 것에 종사하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나이가 육십이 넘었으면서도 충직한 열심당이었으며, 또한 자기의 일에 싫증을 내지 않고 열심스럽고 조용하게 해치우던 늙은이였다. 열심당의 당원으로서 그를 아는 사람치고 그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지만 특히 유다는 누구보다 그를 따랐다. 그도 유다를 특별히 다정히 생각한 듯 했었다. 서로가 그렇게 생각한 데는 같은 노선 같은 운명에 처해 있다는 그런 이유뿐만은 아니었다. 당수 바라바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두 사람은 동지 이상의 친애의 정을 느꼈던 것이다. 사실 유다 쪽에선 아버지나 어머니의 얼굴도 기억할 수도 없는 채 가롯 땅으로부터 각 곳을 쓸쓸한 심정으로 진전하던 차에 갈릴리 포구에서 자기 또래의 한 푸른 눈의 사내를 만나 그로부터 위로를 얻고 또 그를 추종하였으나, 그 사람은 유다의 지상적인 갈증을 흡족히 해갈시켜주지 못하였으므로 유다의 가슴 밑바닥엔 언제나 외로움이 깊게 자리잡고 있었는데, -바라바를 알게 된 것은 이 당시였다-그것도 이 늙은 부부들에 의해 잊을 수 있는 것을 감사하였고, 또 노인 부부들 쪽에서도 옛날에 아들이 하나 있었으나, 집시패들이 스쳐지나간 뒤 종적이 묘연해 시름겹고 적적함이 더욱 뼈저리던 참이라, 자연히 서로들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라바들이 이 집을 드나들기 시작한 것도 오 년째나 되고 있었다. 삼 년 전에는 그렇게 충직하던 토기장이 영감도 로마 병사의 화살에 죽임을 당하긴 했지만, 그 후에도 여전히 바라바들은 필요할 때면 이곳을 이용하곤 했었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서 불행한 토기장이 미망인의 생활은 최저나마 보장되었다. 주로 유다의 노력이 컸다. 유다의 생활도 물론 그녀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유다는 적어도 그녀 한 사람에게만이라고 하더라고 상냥스럽고 인정이 많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렇던 유다가 오늘밤엔 사람이 여간 달라져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도 반달 가량이나 밖에서 지나다가 돌아온 날에 그렇다는 것은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전엔 언제나 몇 푼의 돈 꾸러미를 마루에다 던지곤 자기 이마에 가벼운 입맞춤을 했던 것이 아닌가. 그녀는 그렇게 훌륭하던 젊은이가 변해져 돌아온 것을 슬프게 생각했다. 그때 유다의 방으로부터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어중간한 모습을 하곤 습기 속에서 점점 더 적막해가는 밤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계속해서 다시 한번 노파를 부르는 날카로운 음성이 들여왔다. 그 소리는 흐느낌에 섞여 목구멍이 찢어지면서 나오는 소리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흡사 저 이탈리아식 주테가의 무한의 깊이로부터 울려와 닿는 것처럼 가라앉고 가련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억양에는 짙은 증오가 내포되어, 붉은 목소리로 느껴졌다. “여, 여요요, 할멈” 이전의 호칭과는 달랐다. 그전엔 어머니라고 불렀었다. 그녀는 잠깐 복잡한 생각에 잠겼던 것으로부터 깨어나서, 언제나처럼 머뭇거리면서. 그러면서도 아들 방에라도 들어가는 어머니같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이 찌그덕 소리를 냈다. “제발 좀 소리를 내지 않고 열 수는 없소? 고막이 찢어질 듯해. 제기랄.” 유다는 아까의 태도를 고침이 없이 신경질을 부렸다. 그러나 유다 자신도 문을 여닫을 때는 언제나 그런 소리가 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도 안 왔었소?” 유다는 희미한 목소리로 그러나 퉁명스러이 물었다. “참, 어떤 이가 왔다 갔지유. 저쪽 창턱에 추녀 그늘이 닿을 때 쯤이었어유.” 저쪽 창턱이란 동편쪽 벽의 중간쯤에 구멍처럼 뚫어놓은 곳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었다. 아마도 오전 열시쯤 되었을 때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거 왜. 눈이 갈색인 사람 말이유. 꼭 씨름판에나 찾아다니는 것 같은…….” 그제야 유다는 싸안았던 팔을 풀고 무서운 눈으로 노파를 쳐다보면서, “그래? 그럴 줄 알았어. 바라바였어. 바라바. 예수 바라바” 유다는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 이름을 음미하듯 했다. 그러나 어떤 의미가 있어 되뇌이는 것 같지는 않았고, 군것질하는 따위로 들렸다. 유다의 주먹엔 자기의 머리칼이 한움큼이나 쥐어져 있었다. 유다의 가슴속에 의미가 표출된 희생들이었다. 유다는 다시 또 발광하기 시작했다. 머리칼은 무언의 공모로서 그의 발광에 헌신적인 동조를 했고, 목구멍은 개구쟁이 녀석이 긁는 하프 소리로 유다를 고무했다. 사마리아 여인은 유다의 충혈된 사팔뜨기 눈이 자기를 무섭게 노려보면서 말하던 얼굴을 상기하곤 몸서리쳤다. 그래도 그냥 서서 유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유다의 눈은, 오른쪽은 갈색으로 똑바로 보는데, 왼쪽이 사시였다. 그런데 유다의 왼쪽 눈은 보통의 사팔뜨기와는 달라서 참으로 이상했다. 오른쪽이 갈색인 데 비해 왼쪽은 하늘색 바탕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이것은 위를 향해 시선을 보내는 눈이었다. 좀 문학적인 소질이 있다는 마태가 그 눈을 ‘기도하는 사튀로스’라고 표현한 뒤부터는 짓궂은 사람들은 유다를 부를 때면 흔히 마태의 ‘그럴듯한 표현’을 애써 사용했다. 얼마 동안인가가 그 방의 희미한 촛불 그늘 밑으로 흘러가고 난 뒤, 유다의 목구멍에선 흐느낌이 가래 끓지도 않았고, 더 발광하지도 않았다. 유다는 그렇다고 해서 잠이 든 것도 아니고, 생각을 그만둔 것도 아니었다. 엉뚱하게도 그는, 구레네 사람 시몬이 얼떨결에 고역을 당하게 된 것이라든가, 또는 처참한 표정으로 몸매에는 관심도 없이 십자가를 뒤쫓아가던 막달라 마리아의 치맛자락을, 한 로마 병정이 창 끝으로 들쳐보면서 게걸거리던 것 같은 작은 사건들을 눈을 감고 그렸다. “너의 샛서방하곤 며칠 밤이나 잤누? 나하곤 어때? 히히힛” 유다는 그 모든 광경을 가까운 언덕에서 보았는데, 로마 병정이 말한 ‘샛서방’이란, 기진해서 걸어가는 예수를 가리켰던 것이다. 사실을 말하면, 그때 유다는 예수를 얼마나 경멸했는지 모른다. 자기의 십자가도 감당치 못하는 사내가 ‘무거운 짐 진 자는 다 내게로 오라’는 것은 우스운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론 막달라 마리아의 아랫도리가 얼마나 욕심이 났는지 모른다. 팽팽하고 물큰해 보이는 두 가랑이가 창 끝에 의해 들쳐나 보였을 때, 유다는 참을 수 없어 숨을 헐떡이었던 것이다. 그전에도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항상 체모가 단정하였으므로, 얼굴의 아름다움밖에는 별달리 생각지 않았었다. 그 얼굴의 아름다움도, 예수와 가까이 하고부턴 범할 수 없는 고요함을 지니고 있어서 오히려 식을 정도라고 단념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그 병사의 야유는, 먼 곳의 여인을, 피부가 좋고, 매캐한 자취가 있고, 따스하고 물큰한, 자기 마을 샘각의 아낙으로 느끼게 해준 것이다. 사실 그녀로 말하면, 왕년엔 이름난 무희로, 총독의 시의 요셉의 사랑을 받았는가 하면 총독의 조카인 진위대 대장 가이우스 풀라커스 짝사랑의 여인이었다. 노파는 그제서야 깡마른 손을 뻗쳐 문을 밀고 나오려 했다. 그녀는 유다가 잠든 줄로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유다는 무슨 생각에선지 광포한 짐승보다도 더 날쌔게 뛰쳐 일어나 노파를 쓰러뜨렸다. 참으로 민첩하고 사나운 동작이었다. 유다의 신음은 아까와는 달리 발정된 짐승 우는 소리로 변했다. 눈은 찌푸러져 동공은 거의 보이지도 않았고, 헤벌린 입술 사이론 이빨 갈아대는 소리가 으드득 으드득하고 새어나왔다. 노파가 정신을 차릴 수도 없는 빠른 사이에 노파의 치마가 찢겼다. 다음엔 속옷 찢기는 소리가 그 방의 벽에 살점처럼 튀겼다. 노파는 있는 힘을 다해 발을 구르고 꼬집고 고함을 질러 반항해보았지만, 끝내는 오른편 팔을 분질려 기절하고 말았다. 유다는 이번엔 자기의 바짓가락을 찢었다. 가랑이에 붙었던 흙이 부스스 떨어졌다. 그리하여 그는 짐승의 한계에서도 더 아래쪽 길을 처벅처벅 걸어댔다. 그 거리에서는 누구나 몽유병자가 되는 것이다. 촛불은 켜둔 그대로 타고 있었다. 노파가 깨어났을 땐 날이 희끄무레 밝아올 무렵이었다. 유다는 책상 위에 엎드려 무엇을 열심히 쓰고 있었는데 두 개 째의 초도 반이나 더 닳았다. 노파는 팔이 쑤시는 통증으로 깨어나선 자기가 어떻게 하여 이렇게 되었던 것인가를 한참이나 생각했다. 유다가, 노파가 깨어났다는 것을 알고 게다가 그녀가 흐느끼고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자기가 썼던 모두를 다시 불태워버리고 난 뒤에 그리고도 조금 더 지나서였다. 노파는 흐느낌 이상으론 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흐느낌으로나 풀어보려는 듯이 집요하게 흐느낌에 매달리고만 있었다. “할멈, 제발 어서 집을 나가시오. 죽여놓기 전에, 죽여버리기 전에 말야.” 유다는 밤 사이에 귀신같이 변해진 핼쑥하고 기력없는 얼굴로 희미한 미소까지 띠면서 ‘죽이기 전에’만을 반복했다. 노파는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고, 또 견딜 수 없는 분노와 치욕으로 목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는 것 같았다. 그저 흐느끼면서 이를 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날이 밝기 전에, 자 어서 나가주시오. 제발 나 혼자 두어주시오. 우라질, 빨리 나가지 못해.?” 하고 괴롭게 외쳐댔다. “자, 받아라. 은 삼십 세겔이다 몸값이다. 몸값이야.” 유다는 스가랴의 팸플릿 위에 있던 꾸러미를 노파의 가슴팍에다 거칠게 던졌다. 그리고 유다가 다 탄 초 동강이의 불을 끄려 할 때, 그 사마리아 여인은 유다가 보는 앞에서 자기의 혀를 콱 깨물었다. 촛불도 꺼졌다. 새벽빛이 방안에 넘쳤다 그리고 잠시 후, 초 동강이의 심지가 굳어질 때쯤엔 그 노파도 운명했다. 눈은 뜬 채였다. 그 뜬눈 속에도 새벽의 어슴푸레함은 사양없이 파고들었다. 2 유다는 사흘을 두 번씩이나 보내기까지도 자리에서 한 번도 일어나질 않았다. 그 동안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던 것이다. 몸부림도 그렇게 심하게는 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하기야 처음 자리에 들었을 땐 노파를 등진 쪽으로 누웠었는데, 나중엔 죽은 노파 쪽을 향해 누워 있었던 걸로 보아서 몸을 두 번쯤 뒤쳤으리란 건 추측할 수 있었다. 그 외에 그 방안의 풍경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유다가 눈을 뜬 것은,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한 날로부터 엿새가 지난 두 번째 안식일 새벽, 닭이 세 홰를 울고 목을 움츠릴 때쯤이었다 .유다는 누군가 자기를 깨우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잠으로부터 서서히 깨어나던 참이었다. 그러나 그 깊은 수면 속을 헤엄치고 건너온 피로로 해서 어떤 것을 인식하기에는 얼마쯤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점차, 흐릿하게라고는 하여도 의식이 돌아오자, 그는 누군가가 자기의 이마를 짚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눈을 감고라도 그 손은 희고 가냘프며 그리고 부드럽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왠지 얼음장처럼 차고, 바닥에 가시라도 찔렸던 흔적이라도 있는 손처럼 느껴졌다. 그 느낌은 오관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그의 깊숙한 곳에 잠자고 있던 혼의 촉수로써 닿아진 것이었다. 유다는 그순간 무의식적으로 외쳤다. “랍비여, 당신의 손이니다.” 그러나 말이 혀끝에서 방울져 떨어지지는 못했고, 그저 탄 입술만 두어 번 움직였을 뿐이었다. 큰 나무 꼭대기의 마른 잎이 떨어져 땅에 와 닿을 만큼은 어느 쪽에서도 말이 없었다. 그 시간은 천년의 적막이 한 마른 잎에 축적되었다가 날라져내리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 무던히도 긴 시간을 유다의 이마 위의 손은 한결같이 부드러웠다. “랍비여, 당신은 아버지 같으니이다.” 결국은 유다가 참을 수 없어 진실되게 그러면서도 분노를 섞어 이렇게 외쳤다. “…….” 그러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도대체 당신은 무엇 때문에 나에게 오셨습니까?” 유다는 깊은 사념에 잠기면서 꺼질 듯이 뇌까렸다. “…….” “무엇을 나에게 더 원하십니까?” “…….” “나는 당신의 아버지가 내 몫으로 지워준 십자가를 훌륭히 졌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약간의 비겁만을 제외하면 훌륭했습니다. 그것으로 당신과 나와의 일은 끝난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제 또 나를 괴롭히려 하시오?” 이 말이 끝나자마자 자기 이마를 어루만지던 손이 잠깐 동안 바르르 떠는 것을 유다는 느꼈다. 그래서 유다는 눈을 번쩍 뜨고 자기 앞을 똑똑히 쳐다보았다. 유다의 눈은 승리에 넘쳐 있었다. 눈앞에는 하늘보다도 넓게 보이는 두 개의 파란 눈이 유다를 지켜보고 있었다. 웃음도 없고, 다정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미워하는 눈도 아닌, 의미가 바래지고 빛이 없는 눈이었다. 그 눈 속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포도주 담그는 사람이라고 해도 한 방울의 즙도 짜낼 수 없는 듯했다. 그 눈속엔 무(無)가 있었고, 휴지(休止)가 있었고, 그리고 그것은 불멸 자체이기도 했다. 그러나 유다는 그런 눈을 원하진 않았다. 증오든, 사랑이든, 그 어느 쪽의 의미를 담은 눈을 원했다. 유다로서는 그 눈을 견딜 수가 없었다. 유다는 다시 한번 패배했다. 유다는 있는 힘을 다해 발악적으로 일어나려고 했다. 유다의 손은 가냘프게 떨리고, 얼굴은 진땀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그리고 유다의 몸은 똥과 오줌으로 뭉개져 있었다. 유다는 그러나 몸을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쌕쌕거리는 목구멍으로 몇 마디의 말을 각혈할 수 있을 정도였다. “대체 무엇 때문에 다시 나를 찾느냐 말이오. 대체 무엇 때문에?” “…….” “당신은 저주받아 마땅합니다. 쌍십자가라도 당신에겐 오히려 부족했을 정도였소. 그래요. 부족했고 말고요. 로마 율법이란 건 엉뚱한 판결을 좋아한단 말야. 당신 같은 이는 십자가 대신 지하 감옥이 더 적당했을 것인데, 당신의 그 푸른 눈이 멀고 고름이 나고, 그 희디흰 손에 문둥병이 돋고, 그리고 당신의 그 냉정이 광란으로 변하고, 그리하여 골고다 언덕에 던져버려졌더라면, 당신이 참으로 메시야인지 아닌지가 판명되었을 것이오. 메시아라고 했더라도 지상적인 것에 굴복하였을 것인데…….” “…….” “아마도 당신은 배고픈 거지 계집애처럼 ‘엘리 엘리’나 찾다가 말았을 거요. 대체 무엇 때문에 나에게 왔습니까?”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유다는 더욱 지쳐서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땀도, 오줌도, 똥도 더는 분비되지 않았다. 커다랗게 뜬 사팔뜨기 눈만이 분노와 번민으로 이글거리며 많은 의미를 담고 위를 쳐다보며 숨가쁜 발음을 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때에야 저 아스라한 높이로부터. “서른 세 개의 은을 받아가기 위해서니라.” 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것이라면, 저…….” 유다는 더듬거렸다. 그러다간 갑자기 빠른 말씨로, “저 사마리아 노파의 속치마 값으로 지불되어버렸소.” “그러나 나는 그것을 받아야만 하느니라.” 다시 저 아스라이 높은 곳으로부터 건조하기만한 음성이 들려왔다. “제기랄, 이제 와서 당신은 노예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할 셈인가? 아니면 나를 유대인의 왕을 삼을 생각인가?” 유다가 ‘노예’라고 말한 것은 출애굽기 이십일장 삼십이절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었는데, 은 삼십은 노예의 대가였던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의 왕’이라고 한 의미는 왕의 백성에 대한 절대권을 강조하자는 의미도 되지만, 그보다 예수 당신이 노예가 아닌 이상 어떻게 유다 자기가 사고 팔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유다는 빙그레 웃기까지 했다. 물론 비웃음이었다. “나는 한 노예를 판 돈으로 한 나그네 여인의 수의 값을 장만했어. 그것은 나그네의 것이다.” ‘나그네’란 유대인, 또는 개종자로서 예루살렘에 와 있는 자를 말하며, 이방인을 포함시켜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받아가야만 하느니라.” “랍비여,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내가 당신에게 행한 일이 무엇입니까? 당신이 나를 번뇌케 합니다. 당신은 병자를 돌보는 의사가 아닙니까. 제발 혼자 있도록 해주십쇼. 혼자 있도록 두어달란 말이오.” “나는 서른 세겔의 은을 받아야만 하느니라.” “제기랄, 이제 와서 당신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걸 증명할 셈인가? 이 지상의 왕이라고? 그리하여 이 몸뚱이 하나 누일 곳마저 빼앗을 셈이오? 은 삼십은 저 노파의 수의 값으로 지불되었다는 말이오. 물론 이 집까지도 내 것이 된 거요. 당신은 이것까지도 뺏지 못해 안달이 났구려. 나에게 당신이 어떻게 했지요? 어떻게 했느냐 말요.” 유다는 피골이 상접한 손을 모아 쥐었지만, 엿새나 굶은 몸뚱이에선 힘이 나질 않았다. 그러니까 성만찬 때-그 달 열나흘 목요일-빵 한 조각과 포도주 한 모금을 맛본 뒤, 아직껏 아무것도 목구멍에 넘기질 않았던 것이다. “당신은 나를 배반했었소. 그리곤 나로 하여금 당신을 배반하도록 충동시켰소. 당신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하고 말하였소. 그러나 내가 어떻게 가장 존경했었던 당신을 배반할 생각을 꿈엔들 가져볼 수 있었겠습니까? 존경하지도 않으면서 덩달아 추종하는 그런 사내도 있을 줄 알았습니까? 하기야 존경과 ‘미혹’은 거리가 멀지요. 나도 그 미혹된 사람들 중의 하나였을 테니까요. 나는 결국 당신에게서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하여튼 당신은 왕이 아니고, 미혹자라는 걸 맨 처음으로 안 것은 나였소. 그것도 당신이 일깨워준 덕분이었지만, 하필 당신은 왜 나를 택했는지 지금도 그것이 의문이오. 하기야, 당신은 언제까지나 당신을 지속하기에는 너무도 벅참을 느꼈을지도 모르지요. 서른셋의 나이로서는 너무나 피곤을 잘 느꼈고, 침묵이 많았습니다. 자, 이제는 제발 떠나주시오. 난 신경이 이상해졌습니다. 배반자들끼리만의 회합이란 언제나 숨막힐 듯하다는 것을 알겠지요? 이제 우리의 거래는 끝났습니다. 당신의 시인적인 기질이 당신을 비극적인 인물로 만들긴 했지만, 하여튼 선지자 이사야에 의한 당신의 자기 도취는 만족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당신을 두른 두터운 껍질이 벗겨지고, 가난하고 비참한 한 알몸뚱이가 나타나긴 할 거요만……. 어찌 되었든 내 수중엔 서른 세겔의 은이 굴러 왔습니다. 그것은 이제 내 것도 당신 것도 아니게 되었습니다만.” “나는 내 것을 받으려 하느니라.” 유다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너무 많이 말했고, 너무 지쳤고, 굶주렸다. 뿐만이 아니라, 그와 이야기하는 중에 자기의 영혼이 저장해두었던 기름을 모두 빼앗긴 듯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견딜 수 없게 되어 눈을 감아버렸다. 그때 동창이 훤히 밝아오고 있었다. 유다가 기력을 다해 다시 눈을 떠보았을 땐, 자기를 바라보던 눈도, 이마 위의 손도, 목소리라고 느꼈던 어떤 음향도 어느 사이엔지 없어진 때였다. 유다는 그것을 알곤 미미하게 웃었다. 승리나 패배를 초월한 것이었다. “아깐 확실히 신경이 이상했었어. 신경과 나와의 사이엔 상당한 거리가 있는지도 몰라.” 그땐 유다의 눈도 서서히 변해가던 중이었다. 의미가 하나씩 하나씩 바래버렸던 것이다. 유다는 불현듯 생각난 듯이 기력을 다해 노파의 몸뚱이를 살펴보았다. 피가 그녀의 옷과 살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다음 순간 유다는 약간 경련을 일으켰다. 그녀에게서 아까 보았던 것과 흡사한 두 눈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몇 올이 머리칼이 눈자위로 늘어져 있었다. 그 눈은 아무 의미도 기력도 없는 죽음의 강 건너편 저쪽 마을 사람의 눈-그것은 투명하긴 했지만 끝간데 모를 심연을 가진 눈, 그러면서도 폐쇄되어버린 눈, 유다는 또 한번 웃는 것 같지도 않게 웃었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동쪽 창턱에 아침이 감빛으로 밝아져오는 것을, 그 창의 찢어진 구멍을 통해서 푸른 하늘이 엿보이는 것을 무슨 구원이나처럼 바라보았다. 밖에선 참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니산달-사월-의 명랑한 아침을 찬양하는 듯했다. 유다는 그 모든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상상했다. “참 즐거운 아침이 시작되는가본데. 숨쉬고, 느낀다는 것은 참 즐거워.” 유다는 빙그레 웃었다. 어떤 승리감 같은 것을 느낀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얼마나 즐거운가, 이 지상의 이 고요한 아침은…….” 하지만 형언할 수 없는 오뇌와 갈등과 피로, 그리고 엿새 동안이나 굶은 그로서는 더 이상 버티어낼 수가 없었다. 점점 의식이 희미해져가는 것을 스스로도 느꼈다.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지옥이었어. 그래도 나는 회피하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단념도 하지 않았어……. 나는 이 지옥을 제법 잘 영위했던 사람이란 걸 자부할 수 있을 것 같다. 암, 그렇고말고.” 유다는 희미해져 가는 의식으로 상념에 잠기면서 자기가 모아온 ‘꿀과 의미’에서 몇 방울의 정수를 걸러내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무엇이든 똑똑히 보아두었어. 나는 이제 비방을 받아도 좋고 욕지거리를 받아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나의 지옥도 끝이 났을 거야. 나는 지금 물밀 듯한 행복 속에 누워 있는 것 같다. 하여튼 무엇이든 끝까지 똑똑히 보아두어야지. 물론이지.” 날이 완전히 밝아졌다. 힌놈의 골짜기의 등성이로 아침 햇살이 춤추며 찾아들었다. “랍비여, 진정으로 원하신다면, 삼십 세겔의 은을 거두어주십쇼. 이제는 거두어주십쇼.” 그로부터 스무닷새나 지난 해질녘에, 욥바 항에 살고 있는 한 구두쇠 장사치가 예루살렘까지 행상왔다. 그곳에서 하룻밤쯤 묵을 생각으로 들렀었는데, 거기서 그는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는 마을을 찾아 고갯길을 어슬렁어슬렁 넘다가 우연히 그 집을 발견하고 들렀던 것이다. 거기서 그는 한 노파가 옷이 갈기갈기 찢겨 하반신을 전부 드러내고 죽어 있는 것을 보았고, 또 한 사내가 죽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사내 역시 바짓가랑이가 짖겨 하반신을 노출하고 있었는데, 웃옷의 단추가 모두 열려 거의 알몸뚱이나 같았다고 한다. “처음엔 큰 구데기인지 몸뚱이인지 구별할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 하여튼 구데기 뭉치가 그 사내의 배때기에서 술에라도 취한 듯이 꾸물거렸으니까요. 그런데도 그 사내는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물론 바짓가랑이가 찢어진 그 사이로 그 해괴스러운 고깃덩이가 나와 있었는데, 그놈이 그 노파의 가랑이를 보고 뭐라고 이야길 했던 게지요? 하기야 노파의 가랑이는 피투성이였지만 말예요.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우스워서 숨이 넘어가게 웃겠어요. 그 사람 웃다가 숨을 못 돌린 거 같습네다. ……창잔지 그건지 구별이 잘 되진 않았지만……. 나는 그냥 쏜살같이 도망쳐 나온 걸요.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게 되어 본 방언에 그곳을 이르되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어느 때 누구의 손으로 된 것인지는 몰라도 그 움막집 사립문 한쪽 기둥에 ‘가롯 유다’라는 문패가 걸리게 되었다.)  
19 순대 먹는 여자 외 1편/권형하
편집자
4465 2010-06-18
10.07월 2호 시 순대 먹는 여자 아이에게 사탕 물리고 풍선 하나 들리고 가슴이 토굴 같아 토막 낸 순대를 먹다가 노을도 소금으로 찍어 산마루에 걸어본다. 어둠이 쑥쑥 자라나 목을 빼는 가로등 손마다 휘저어보면 핏기 없는 달로 뜬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배웅한 그 사람일까. 어떤 길이라도 밟아보면 힘이 되던 것이 집 가까이 다가오면 어깨 짚어주는 전신주 잡아본 아이 손목만 빠져나가는 바람 한 채. 만월 십이월 달 속으로 여자가 누워있다 양수가 다 부풀어 산달이 된 만삭으로 핏줄이 아기 핏줄이 나뭇가지로 어린다. 이 산골 산동네에 얼마 만에 경사이랴 산자락마다 깔아놓은 곱고 고운 보료를 사내가 숨도 가쁘게 방문을 열고 있다. 권형하 시집 「새는 날면서도 노래한다(1990)」, 「바다집(1997)」,「꿈꾸는 섬(2005)」. 경북문학상 수상(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