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4호...
   2019년 12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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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14년 1월 41호부터 2014년 10월 53호까지...
편집자
82836 2014-11-03
26 첼로 켜는 고슈 / 미야자와 겐지
편집자
5675 2010-07-08
내가 좋아하는 소설 ‘첼로 켜는 고슈’는 착한 동물 친구들의 도움으로 연주 실력을 높여 마침내 자신의 음악세계를 갖게 되는 첼로 연주자 이야기다. 살림살이도 궁색하고 가족도 없는 고슈는 연주 실력마저 형편없다. 지휘자에게 꾸중을 듣고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온 고슈. 그는 밤늦도록 첼로연습을 하는데 난데없이 고양이 한 마리가 찾아온다. 그때부터 고슈에게는 마법이 일어난다. 어른이 되어 동화를 읽는 사람들이 남몰래 바라는 바로 그것, 따뜻한 마법이 일어난다. 이 동화를 쓴 작가는 미야자와 겐지(1896~1933)다. 일본의 국민 작가로 불릴 만큼 일본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는 시인이며 동화 작가이다. ‘은하 철도의 밤’ ‘주문이 많은 음식점’ ‘쌍둥이별’ 등 100여 편이 넘는 동화를 썼다. 겐지의 작품은 국내 TV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됐던 일본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와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의 애니매이션 ‘첼로리트 고슈’로 만들어진 바 있다. (안지숙, 소설가) 첼로 켜는 고슈 고슈는 마을 극단의 첼로 켜는 연주자였습니다. 하지만 실력이 별로라는 평판이 나 있었죠. 솔직히 별로인 정도가 아니라 동료 연주자들 가운데 가장 형편없었기 때문에 지휘자들한테 늘 꾸지람을 들었답니다. 오후에 다들 연습실에 둘러앉아, 이번 마을 음악회에서 연주할 제6 교향곡을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트럼펫이 열심히 노래하고 있습니다. 바이올린은 두 줄기 바람처럼 울고 있고요. 클라리넷도 보-보 하고 거들어 줍니다. 고슈는 입을 꾹 다물고 눈을 접시만하게 뜨고는 열심히 악보를 들여다보며 첼로를 켜고 있었습니다. 느닷없이 지휘자가 손뼉을 짝 쳤습니다. 다들 연주를 멈추고 조용해졌습니다. 지휘자가 호통을 쳤습니다. ˝첼로가 늦었잖아. 띠리리, 띠리리, 여기서부터 다시, 자!˝ 모두들 조금 앞으로 돌아가 다시 연주했습니다. 고슈는 얼굴이 벌개져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방금 지적당한 곳을 간신히 넘어갔습니다. 휴우 하고 안심하면서 다음 부분을 연주하고 있는데, 지휘자가 다시 손뼉을 짝 쳤습니다. ˝첼로, 줄이 안 맞잖아! 정말 미치겠군. 이봐, 내가 자네한테 도레미파까지 가르쳐 줘야겠나?˝ 사람들은 멋쩍은 듯 괜히 자기 악보를 들여다보거나 악기를 만지작거렸습니다. 고슈는 허둥지둥 첼로 줄을 맞추었습니다. 사실은 고슈도 잘못했지만, 첼로가 워낙 고물이었던 것입니다. ˝앞 소절부터 다시. 자!˝ 다시 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고슈도 입을 앙다물고 열심히 첼로를 켰습니다. 이번에는 꽤 오랫동안 연주가 이어졌습니다. 마음을 푹 놓고 있는데, 지휘자가 또다시 손뼉을 짝 쳤습니다. ´또야!´하고 고슈는 가슴이 철렁했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슈는 아까 다른 사람들이 그랬듯이 괜히 악보를 들여다보며 뭔가 생각하는 척했습니다. ˝그럼, 바로 다음 부분부터. 자!˝ ´자!´하고 연주를 시작하자마자, 별안간 지휘자가 발을 쿵쿵 구르며 호통쳤습니다. ˝안 돼! 도대체 엉망진창이야, 엉망진창! 이 부분은 곡의 심장이나 마찬가지야. 그런데 이렇게 거칠고 매끄럽지 못해서야 되겠나! 이봐, 연주회는 이제 열흘밖에 남지 않았어. 음악을 한다는 우리가 대장장이나 설탕 가게 일꾼들보다 못하다면, 도대체 우리 체면이 뭐가 되겠나? 그리고 고슈, 자넨 정말 문제야! 표정이 아예 없어. 분노고 기쁨이고 하나도 표현하지 못하잖아! 게다가 다른 악기와 호흡이 전혀 안 맞는단 말일세. 항상 자네 혼자 신발끈을 질질 끌며 뒤꽁무니를 따라오는 것 같다구. 그러면 곤란해. 제발 좀 잘해 줘. 우리 ´샛별 음악단´이 자네 하나 때문에 나쁜 평가를 받는다면, 다른 사람들한테 미안하지 않겠나? 자, 오늘 연습은 여기서 마치고, 이따가 여섯 시 정각에 극장 대기실로 오게.˝ 연주자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담뱃불을 붙이거나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고슈는 허름한 상자 같은 첼로를 껴안고 벽 쪽으로 돌아앉아, 입을 비죽이며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하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고 방금 전에 연습한 부분을 처음부터 조용히 다시 연주했습니다. 그 날 밤 느지막이, 고슈는 커다란 검은 짐을 둘러메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이라고 해 보았자, 마을 변두리 강가에 있는 무너진 물방앗간일 뿐입니다. 고슈는 이 물방앗간에 혼자 살면서, 아침나절에는 방앗간 주위의 작은 텃밭에서 토마토 가지를 자르거나 양배추 벌레를 잡다가 오후가 되면 극장으로 나가곤 했습니다. 고슈는 집 안으로 들어가 불을 켜고 검을 짐을 풀었습니다. 낮에 지휘자에게 함께 야단맞던, 그 거칠고 무딘 첼로였습니다. 고슈는 첼로를 마룻바닥에 살며시 내려놓고는, 갑자기 선반에서 컵을 꺼내 양동이의 물을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그리고는 머리를 한 번 흔들고 나서 의자에 앉아, 낮에 연습한 곡을 호랑이처럼 힘차게 켜기 시작했습니다. 악보를 넘기면서 켜다가는 곰곰이 생각하고 나서 다시 켜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지잉지잉 열심히 연주했습니다. 밤은 벌써 이슥해졌습니다. 이제 고슈는 자기가 첼로를 켜고 있는지조차 헷갈렸습니다. 얼굴은 새빨개지고 눈에는 핏발이 선 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요. 그 때 누군가가 뒷문을 톡톡 두드렸습니다. ˝호슈냐?˝ 고슈는 멍하니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지금까지 대여섯 번쯤 마주친 커다란 얼룩고양이였습니다. 얼룩고양이는 고슈의 밭에서 딴 설익은 토마토를 끙끙대며 들고 와 고슈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아이고, 힘들어라. 이거 나르는 것도 제법 힘드네.˝ ˝뭐라고?˝ 고슈가 묻자, 얼룩고양이가 말했습니다. ˝이거 선물이에요. 드세요.˝ 그 순간 고슈는 낮부터 꾹꾹 눌러 왔던 울화통을 한꺼번에 터뜨렸습니다. ˝누가 너한테 토마토 가져 오랬어? 네까짓 녀석이 가져온 걸 내가 먹을 것 같아? 게다가 그 토마토는 우리 밭에서 난 거잖아. 뭐야, 아직 익지도 않은 것을 따다니! 지금까지 토마토 줄기를 갉아먹고 망쳐 놓은 녀석이 바로 너지? 썩 꺼져, 이놈의 고양이야!˝ 그러자 고양이는 어깨를 둥글게 말아 구부리고는 실눈을 뜨고 싱글거리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렇게 화내시면 몸에 안 좋아요. 그보다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해 주시면 어때요. 들어 드릴 테니까.˝ ˝건방진 녀석! 감히 고양이 주제에.˝ 철로 연주자는 화가 나서 이놈의 고양이를 어떻게 혼내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자요, 부담 갖지 마시고 어서요! 저는 선생님의 음악을 듣지 않으면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답니다.˝ ˝저, 저, 저, 건방진 녀석 같으니!˝ 고슈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지휘자처럼 발을 쿵쿵 구르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좋아, 켜 주마.˝ 고슈는 무슨 속셈인지 문을 잠그고 창문도 몽땅 닫고는 불까지 껐습니다. 그러자 음력 스무 날을 넘긴 달빛이 방안으로 고요히 흘러 들어왔습니다. ˝뭘 들려 달라고?˝ ˝트로이메라이요. 낭만파 음악가 슈만이 작곡한.˝ 고양이는 입가를 핥고는 짐짓 점잖게 말했습니다. ˝그래, 토로이메라이가 이런 거냐?˝ 첼로 연주자는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손수건을 쭉 찢어서 자기 귀를 틀어막았습니다. 그리고는 폭풍 같은 기세로 ´인도의 호랑이 사냥´이라는 곡을 켜기 시작했습니다. 고양이는 고개를 갸웃하고 한동안 귀를 기울이다가, 갑자기 눈을 깜박거리더니 문 쪽으로 홱 물러섰습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쿵! 하고 문으로 몸을 날렸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고양이는 ´아뿔싸,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구나.´ 하는 듯이 허둥대며 눈과 이마에서 불꽃을 파박파박 내뿜었습니다. 수염과 코에서도 불꽃이 번쩍 번쩍 튀었습니다. 고양이는 금방이라도 재채기를 할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도저히 못 견디겠는지 종종걸음치기 시작했습니다. 고슈는 아주 재미가 붙어서 점점 신나게 첼로를 켰습니다. ˝선생님, 이제 됐어요! 됐다구요. 제발 부탁이니, 그만 하세요! 앞으로 다시는 선생님 음악에 참견하지 않을게요.˝ ˝조용히 해! 지금부터 호랑이를 붙잡는 부분이야.˝ 고양이는 고통에 못 이겨 펄쩍펄쩍 뛰어다니다가는 벽에 찰싹 붙기도 했습니다. 벽에서 몸을 떼면 한동안 그 자리가 파랗게 빛이 났습니다. 마침내 고양이는 고슈의 주위를 풍차처럼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고슈도 어지러워져서 ˝이제 그만 용서해 주마.˝ 하고 겨우 연주를 멈추었습니다. 그러자 고양이도 멀쩡한 얼굴로, ˝선생님, 오늘 밤 연주는 좀 이상했어요.˝ 하고 대꾸했습니다. 철로 연주자는 다시 울화통이 치밀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잎담배를 꺼내 물고는, 성냥 하나를 들고 물었습니다. ˝어떠냐? 몸은 괜찮아? 혀를 내밀어 봐.˝ 고양이는 고슈를 놀리듯 길고 뾰족한 혀를 쏘옥 내밀었습니다. ˝하아, 좀 까칠까칠해졌구나.˝ 첼로 연주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갑자기 고양이 혀에다 성냥을 치익 그어 담뱃불을 붙였습니다. 고양이는 까무러치게 놀라 혀를 풍차처럼 홱홱 돌리며, 문으로 가서 머리를 쿵 박고 비틀비틀 돌아왔다가 또다시 쿵 박고, 비틀비틀 돌아왔다가 또다시 쿵 박고, 비틀비틀 길을 찾으려고 애썼습니다. 고슈는 한참 재미있게 구경하다가, ˝이제 내보내 주마. 다시는 오지 마, 이 멍청한 녀석아.˝ 첼로 연주자는 문을 열어 주고, 억새풀 사이를 바람처럼 달려가는 고양이를 바라보면서 싱긋 웃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겨우 마음이 가벼워진 듯 곤히 잠들었습니다. 이튿날 밤에도 고슈는 검은 첼로 꾸러미를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물을 벌컥벌컥 마신 다음, 지난밤처럼 부지런히 첼로를 켜기 시작했죠. 어느새 열두 시가 지나고, 한 시도 지나고, 두 시도 지났지만, 고슈는 여전히 첼로를 켜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몇 시인지도 알 수 없고 첼로를 켜고 있는지 어떤지도 가물가물할 즈음, 누군가가 천장을 똑똑 두드렸습니다. ˝고양이 너구나. 아직도 혼이 덜 났니?˝ 고슈가 소리치자, 갑자기 천장 구멍에서 호도독 소리가 나더니 잿빛 새 한 마리가 내려왔습니다. 마루에 앉은 것을 보니 뻐꾸기였습니다. ˝뭐야, 이젠 새까지 찾아오는군. 무슨 일이지?˝ 고슈가 묻자, 뻐꾸기는 새침하게 대답했습니다. ˝음악을 배우고 싶어요.˝ 고슈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음악이라고? 네 노래는 기껏해야 뻐꾹, 뻐꾹뿐이잖아.˝ 그러자 뻐꾸기는 아주 진지하게 ˝네, 그래요. 하지만 그게 어려운 거라고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어렵기는 뭐가 어렵다는 거야. 너희들은 귀가 따갑도록 울어대잖아.˝ ˝그런데 그게 어렵다고요. 예를 들어 뻐꾹 하고 우는 것과 빠꾹 하고 우는 건 듣기에도 많이 다르잖아요?˝ ˝다르긴 뭐가 달라.˝ ˝그럼, 당신이 모르는 거예요. 우리 뻐꾸기는 뻐꾹 하고 만 번을 울어도 그 만 번이 저마다 다른걸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게 잘 알면 나한테 올 것도 없잖아?˝ ˝하지만 저는 도레미파를 정확하게 노래하고 싶어요.˝ ˝쳇, 도레미파 좋아하네.˝ ˝음, 외국에 나가기 전에 꼭 배워야 해요.˝ ˝외국은 무슨 외국!˝ ˝선생님, 제발 도레미파를 가르쳐 주세요. 선생님 하시는 대로 따라서 노래할게요.˝ ˝에이, 귀찮아. 그럼 딱 세 번만 켜 줄 테니까, 얼른 돌아가야 한다.˝ 고슈는 첼로를 집어 들고 끼잉끼잉 줄을 맞추고 나서,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켰습니다. 그러자 뻐꾸기는 허겁지겁 날개를 파닥였습니다. ˝틀렸어요, 틀렸어! 그게 아니에요.˝ ˝까다롭기는. 그럼 네가 해 봐.˝ ˝이거예요.˝ 뻐꾸기는 몸을 앞으로 수그리고 잠시 자세를 잡더니, ˝뻐꾹.˝하고 울었습니다. ˝뭐야, 그게 도레미파야? 그렇다면 너희들한테는 도레미파나 제6교향곡이나 다 똑같겠군.˝ ˝그건 달라요.˝ ˝어떻게 다른데?˝ ˝어려운 것은, 이걸 많이많이 계속하는 거예요.˝ ˝바로 이런 거지?˝ 첼로 연주자는 다시 첼로를 쥐고, 뻐꾹뻐꾹뻐꾹뻐꾹 하고 켰습니다. 그러자 뻐꾸기는 아주 기뻐하며, 뻐꾹뻐꾹뻐꾹 하고 끼어들었습니다. 몸을 잔뜩 수그리고 끝도 없이 소리쳤죠. 고슈는 마침내 손이 아파서, ˝이봐, 이제 그만 하자고.˝ 하면서 손을 멈추었습니다. 그러자 뻐꾸기는 서운한 듯 눈을 치뜨고는 뻐꾹뻐꾹 하고 소리 높여 울다가 가까스로 ˝…… 뻐꾹뻐꾹뻑뻑뻑.˝ 하고 그쳤습니다. 고슈는 화가 치밀어서 ˝이봐, 뻐꾸기. 이제 볼일 끝났으면 냉큼 돌아가!˝하고 쏘아붙였습니다. ˝제발 한 번만 더 켜 주세요. 당신 솜씨는 좋긴 하지만, 어딘가 틀린 것 같거든요.˝ ˝뭐야, 네가 날 가르치겠다는 거야? 썩 꺼지지 못해!˝ ˝제발 딱 한 번만 더 켜 주세요.˝ 뻐꾸기는 고개를 까딱까딱 조아렸습니다. ˝그럼 이번이 마지막이다.˝ 고슈는 활을 쥐었습니다. 뻐꾸기는 ˝꾹.˝하고 숨을 쉬고는, ˝그럼 되도록 길게 해 주세요.˝ 하더니 다시 한 번 고개를 조아렸습니다. ˝못 말리겠군.˝ 고슈는 쓴웃음을 지으며 첼로를 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뻐꾸기는 다시 진지해져서 몸을 숙이고는 ˝뻐꾹뻐꾹뻐꾹.˝하고 아주 아주 열심히 소리쳤습니다. 고슈는 처음에는 짜증스러웠지만, 한참 켜다 보니 어쩐지 새의 음이 진짜 도레미파 하고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뻐꾸기가 더 잘하는 것 같았습니다. ˝에이, 이런 멍청한 짓을 계속하다가는 내가 새가 되어 버리겠군.˝ 하면서 고슈는 연주를 뚝 그쳤습니다. 그러자 뻐꾸기는 머리를 세차게 얻어맞은 듯 비틀거리더니, 다시 아까처럼 ˝뻐꾹뻐꾹뻑뻑뻑.˝하고 울음을 그쳤습니다. 그리고는 원망스러운 듯 고슈를 쳐다보며 따졌습니다. ˝왜 그만두는 거예요? 아무리 줏대 없는 뻐꾸기라지만, 우리는 목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소리친다고요.˝ ˝뭐야, 건방지게! 이따위 바보 같은 짓을 언제까지 하란 말이냐? 이제 그만 나가. 봐, 날이 샜잖아.˝ 하고 고슈는 창을 가리켰습니다. 동쪽 하늘이 아련한 은빛으로 물들고, 시꺼먼 구름이 북쪽으로 둥둥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해님이 떠오를 때까지만이라도요. 딱 한 번만. 잠깐이면 돼요.˝ 뻐꾸기는 다시 고개를 조아렸습니다. ˝시끄러워. 잘난 척하기는! 이 멍텅구리 새야, 썩 꺼지지 않으면 털을 뽑아서 아침밥으로 먹어 버리겠다.˝ 고슈는 발을 쿵 굴렀습니다. 뻐꾸기는 깜짝 놀라 창으로 푸드득 날아갔지만 유리창에 머리를 꽝 부딪고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어휴, 유리창에. 이 바보.˝ 고슈는 얼른 일어나 창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원래 이 창문은 아무 때고 쓱 열리는 창문이 아니었습니다. 고슈가 창틀을 붙잡고 덜컹덜컹 흔들어 대는 사이에, 뻐꾸기는 다시 한 번 날아올랐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유리창에 세차게 부딪혀 바닥에 나동그라졌습니다. 보니까 부리께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곧 열어 줄 테니까, 좀 기다려.˝ 고슈가 겨우 6센티미터쯤 창문을 열었을 때, 뻐꾸기는 다시 일어나 이번에는 기어이 나가고야 말겠다는 듯이 창 너머 동쪽 하늘을 지그시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있는 힘을 다해 푸드득 날아올랐습니다. 물론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훨씬 심하게 유리창에 부딪쳤습니다. 뻐꾸기는 바닥에 떨어진 채 한동안 꼼짝도 못했습니다. 고슈는 뻐꾸기를 붙잡아 창으로 날려 보내 주려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뻐꾸기는 별안간 눈을 번쩍 뜨고 잽싸게 피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유리창으로 달려들었습니다. 고슈는 엉겁결에 창문을 걷어찼습니다. 유리 두세 장이 와장창 깨지고, 창틀이 통째로 나가떨어졌습니다. 그 텅 빈 창 너머로 뻐꾸기는 화살처럼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끝없이, 끝없이 날아가 곧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고슈는 잠시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밖을 내다보다가, 그대로 쓰러지듯 방구석에 엎어져 곤히 잠들었습니다. 다음날에도 고슈는 밤늦도록 첼로를 켜다가 지쳐서 물을 한 컵 마셨습니다. 그 때 또다시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오늘밤에는 누가 찾아오더라도 어젯밤의 뻐꾸기처럼 겁을 줘서 일찌감치 쫓아 보내야지, 마음먹고 컵을 든 채 기다리고 있는데 문이 빠끔 열리더니 아기 너구리 한 마리가 들어왔습니다. 고슈는 문을 좀더 열어 두고 발을 쿵 구르며, ˝요 너구리 녀석! 너는 너구리 된장국이라는 걸 아느냐?˝ 하고 소리쳤습니다. 아기 너구리는 멍한 얼굴로 바닥에 다소곳이 앉아 도대체 무슨 소리냐는 듯이 한참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하더니, ˝너구리 된장국, 나 몰라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고슈는 그 얼굴을 보고 저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나왔지만,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그럼 가르쳐 주마. 너구리 된장국이란 너 같은 너구리를 양배추와 소금을 넣어 푹푹 삶아서 내가 먹을 수 있게 만든 거다.˝ 하고 말했습니다. 아기 너구리는 다시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하지만 우리 아빠가요, 고슈 씨는 하나도 안 무서운 분이니까 가서 배우라고 했는걸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고슈도 마침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뭘 배우라고 했는데? 나는 바쁘단다. 그리고 졸려.˝ 아기 너구리는 갑자기 기운이 나는 듯 한 발을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나는 작은북을 맡고 있거든요. 아빠가 첼로 소리에 맞춰 보고 오랬어요.˝ ˝작은북이 어디 있다고 그러니?˝ ˝여기요.˝ 아기 너구리는 등 뒤에서 나무때기 두 개를 고슈 앞에 내밀었습니다. ˝그걸로 뭘 어쩌겠다고?˝ ˝아저씨, ´유쾌한 마차꾼´을 연주해 주세요.˝ ˝유쾌한 마차꾼? 그건 재즈냐?˝ ˝예, 이게 악보예요.˝ 아기 너구리는 다시 등 뒤에서 악보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고슈는 악보를 받아 쥐고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흐음, 이상한 곡인걸. 좋아, 켜 주지. 너는 작은북을 치겠다고?˝ 고슈는 아기 너구리가 어떻게 하나 싶어 힐끔힐끔 곁눈질을 하면서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아기 너구리는 나무때기로 첼로의 아래 부분을 통통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솜씨가 어찌나 좋은지, 첼로를 켜면서도 고슈는 이거 재미있구먼 하고 생각했답니다. 연주가 끝나자, 아기 너구리는 한동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겨우 생각났다는 듯 말했습니다. ˝아저씨는 두 번째 줄을 켤 때 이상하게 늦어요. 어쩐지 내가 걸려 넘어지는 것처럼 들리거든요.˝ 고슈는 깜짝 놀랐습니다. 확실히 그 줄은 어제부터 아무리 빨리 켜도 한 박자쯤 더디게 소리가 나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 그럴지도 몰라. 이 첼로는 고물이거든.˝ 하고 고슈는 우울하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너구리는 안 됐다는 표정으로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했습니다. ˝어디가 안 좋은 걸까. 한 번 더 켜 주실래요?˝ ˝좋아. 켜고말고.˝ 고슈는 첼로를 켜기 시작했습니다. 아기 너구리는 아까처럼 첼로의 아래 부분을 통통 두드리며 이따금 첼로에 귀를 바짝 갖다 댔습니다. 그리고 곡이 끝났을 무렵, 동쪽 하늘이 어슴푸레 밝아 왔습니다. ˝아, 날이 밝았네. 정말 고마웠어요.˝ 아기 너구리는 부리나케 악보와 나무때기를 등에 지고 테이프로 단단히 붙이고는, 절을 두어 번 하더니 휭하니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고슈는 얼이 빠져서 깨어진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쐬고 있다가, 마을 극장으로 가기 전에 기운을 차리려고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밤에도 고슈는 밤새 첼로를 켜다가 새벽녘에 악기를 쥔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습니다. 또다시 누군가가 문을 똑똑 두드렸습니다. 들릴 듯 말 듯 나지막한 소리였지만 고슈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들어와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문틈으로 들어온 것은 들쥐였습니다. 들쥐는 아주 조그만 아기 쥐를 데리고 고슈 앞으로 쫄랑쫄랑 걸어왔습니다. 아기 들쥐는 겨우 지우개만했기 때문에 고슈는 무심결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들쥐는 무엇 때문에 웃나 싶어서 두리번거리며 고슈 앞에 서더니, 푸른 밤톨 하나를 놓고 꾸벅 절을 했습니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몹시 아파요. 부디 자비를 베풀어 낫게 해 주십시오.˝ ˝내가 무슨 의사인 줄 알아?˝ 고슈는 불끈해서 퉁명스레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엄마 들쥐는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있다가 다시 용기를 내어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건 거짓말이죠. 선생님은 날마다 모두의 병을 말끔히 고쳐 주셨잖아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선생님 덕분에 토끼 어머니의 병도 나았고, 너구리네 아버지 병도 나았고, 짓궂은 수리부엉이까지 나았어요. 그런데 우리 애 병은 고쳐 주시지 않겠다니, 너무 매정하시군요.˝ ˝이봐, 이봐, 그건 오해야. 나는 수리부엉이의 병을 고쳐 준 적이 없어. 물론 아기 너구리는 어젯밤에 악사 시늉을 하긴 했지만. 하하하.˝ 고슈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아기 들쥐를 내려다보며 웃었습니다. 그러자 엄마 들쥐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아, 불쌍한 우리 아기! 병에 걸리려면 좀더 일찍 걸릴 것이지. 방금 전까지 그렇게 첼로를 지잉지잉 켜더니, 우리 애가 병에 걸리자마자 소리를 딱 멈추고 이렇게 부탁하는데도 안 된다니! 아이고, 불쌍한 내 새끼.˝ 고슈는 깜짝 놀라 소리쳤습니다. ˝뭐라고, 내가 첼로를 켜서 수리부엉이하고 토끼 병이 나았다고?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들쥐는 한 손으로 눈을 비비며 말했습니다. ˝네, 이 근처 사는 동물들은 병에 걸리면 다들 선생님네 마루 밑에 들어가 병을 치료한답니다.˝ ˝그럼 낫는단 말이야?˝ ˝네. 온몸의 피가 잘 통하고 기분이 좋아져서 금방 나은 경우도 있고, 집으로 돌아간 뒤에 나은 경우도 있죠.˝ ˝오호라, 그래? 내 첼로 소리가 웅웅 울리면 마치 안마를 해주듯이 너희들의 병을 고쳐 준단 말이지? 좋아, 알았어. 해 보지.˝ 고슈는 줄을 끼이끼이 맞추고 나서, 아기 들쥐를 첼로 구멍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저도 함께 들어가겠어요. 병원에서는 다들 그렇게 하니까요.˝ 엄마 들쥐는 부득부득 첼로에 매달렸습니다. ˝너도 들어가겠다고?˝ 첼로 연주자는 엄마 들쥐를 첼로 구멍 속에 집어넣어 주려고 했지만, 얼굴이 반밖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얘야, 괜찮니? 엄마가 가르쳐 준 대로, 떨어질 때 발을 모아서 잘 떨어졌어?˝ ˝네, 잘 떨어졌어요.˝ 아기 들쥐는 첼로 안에서 모기처럼 가느다란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괜찮구먼. 그러니까 우는 소리 하지 마.˝ 고슈는 엄마 들쥐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활을 들고 광시곡 같은 것을 지잉지잉 가앙가앙 연주했습니다. 엄마 들쥐가 자못 걱정스럽게 듣고 있다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이제 됐어요. 아이를 꺼내 주세요.˝ ˝뭐야, 이걸로 끝이야?˝ 고슈는 첼로를 앞으로 기울여 구멍 앞에 손을 대고 기다렸습니다. 곧 아기 들쥐가 나왔습니다. 고슈는 잠자코 들쥐를 내려 주었습니다. ˝어떠니? 기분은 좋아?˝ 아기 들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눈을 꼭 감은 채 바들바들 떨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뛰어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아아, 나았다!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엄마 들쥐도 덩달아 뛰어다니다가, 고슈에게 연거푸 절을 하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열 번쯤 되뇌었습니다. 고슈는 왠지 들쥐가 사랑스러워져서, ˝얘, 너희들 빵은 먹니?˝ 하고 물었습니다. 들쥐는 깜짝 놀라서 힐끔힐끔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했습니다. ˝아니오. 저어, 빵이란 건 밀가루를 반죽하거나 얇게 펴서 만든 거죠? 부드럽게 부풀어 있어 맛있기는 하지만, 저희는 이 집 선반에는 얼씬거린 적도 없고, 또 이렇게 신세를 지고 어떻게 그것을 가져갈 수 있겠어요?˝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냐. 그냥 먹느냐고 물어 본 거야. 그럼 먹는 거지? 잠깐 기다려. 배 아픈 아이한테 줄 테니까.˝ 고슈는 첼로를 바닥에 내려놓고, 선반에서 빵을 한 웅큼 뜯어 들쥐 앞에 놓았습니다. 그러자 들쥐는 꼭 바보처럼 울다가 웃다가 절을 하다가는, 빵 조각을 소중히 물고 아기를 앞장세워 밖으로 나갔습니다. ˝휴우, 들쥐와 이야기하는 것도 꽤 고단하군.˝ 고슈는 침대에 풀썩 쓰러져 쿨쿨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엿새째 밤이 되었습니다. 샛별 음악단 사람들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저마다 악기를 들고 극장 무대 뒤에 있는 대기실로 줄줄이 퇴장했습니다. 제6교향곡 연주를 훌륭히 마친 것입니다. 청중석에서는 아직도 박수소리가 폭풍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지휘자는 박수 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연주자들 사이를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고 있었지만, 속마음은 기쁨으로 가득했답니다. 연주자들은 담뱃불을 붙이거나 악기를 상자에 넣고 있었죠. 시간이 지날수록 박수소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큼직한 하얀 리본을 가슴에 단 사회자가 대기실로 들어왔습니다. ˝앙코르를 해 달라는데, 짧은 곡이라도 좋으니 한 곡 들려주실 수 없겠습니까?˝ 그러자 지휘자가 정색을 하고 대답했습니다. ˝안 됩니다. 이런 대연주 뒤에는 어떤 곡을 연주해도 우린 성에 차지 않습니다.˝ ˝그럼 지휘자님께서 잠깐 나오셔서 인사라도 해 주십시오.˝ ˝안 돼요. 이봐, 고슈. 자네가 나가서 한 곡 연주하게.˝ ˝제가요?˝ 고슈는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그래, 자네 말이야. 고슈.˝ 제1바이올린 연주자가 불쑥 고개를 쳐들고 말했습니다. ˝자아, 나가 보게.˝ 지휘자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모두들 고슈한테 첼로를 떠안기면서 문을 열고 무대로 떠밀렸습니다. 고슈가 낡은 첼로를 안고 쭈뼛쭈뼛 무대로 나오자, 사람들은 ´드디어 나왔다´ 하고 한결 요란스레 박수를 쳤습니다. 와아 하고 고함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람을 이렇게 바보 만들어도 되는 거야? 좋아, 두고 보자. 인도의 호랑이 사냥을 켜 줄 테다.´ 고슈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무대 한가운데에 섰습니다. 그리고는 예전에 고양이가 찾아왔을 때처럼 성난 코끼리 같은 기세로 호랑이 사냥을 연주했습니다. 청중은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고슈는 거침없이 첼로를 켰습니다. 고양이가 괴로워서 불꽃을 팍팍 튀기던 부분도 지났습니다. 문에 몸을 쿵쿵 부딪치던 부분도 지났습니다. 곡이 끝나자, 고슈는 청중석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마치 그 때의 고양이처럼 잽싸게 첼로를 안고 대기실로 물러났습니다. 그러자 대기실에서는 지휘자를 비롯한 모든 동료들이 불이라도 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숨을 죽인 채 앉아 있었습니다. 고슈는 ´에라 모르겠다´하는 마음으로 사람들 사이를 성큼성큼 지나 맞은편 긴 의자에 앉아 다리를 척 꼬았습니다. 그 순간 모두들 고슈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딱히 비웃는 기색은 엿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이상한 밤이야.´ 하고 고슈는 생각했습니다. 그 때 지휘자가 일어서서 말했습니다. ˝고슈, 잘했어. 뭐, 그저 그런 곡인데도 모두들 아주 진지하게 듣고 있었네. 불과 며칠 사이에 아주 좋아졌어. 열흘 전에 비하면 꼭 젖먹이와 병사 같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어. 안 그런가, 고슈?˝ 동료들도 너나없이 다가와 ˝잘했어.˝ 하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응, 이것도 다 몸이 건강한 덕분이야. 보통 사람이라면 죽었을 걸세.˝ 그 날 밤 느지막이, 고슈는 자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물을 벌컥벌컥 마셨죠. 그러고 나서 창을 활짝 열고 언젠가 뻐꾸기가 날아갔던 먼 하늘을 바라보며, ˝아, 뻐꾸기야. 그 때는 미안했어. 나는 화를 낸 게 아니었단다.˝ 하고 말했답니다.  
25 프라하의 봄
편집자
3851 2010-07-01
주목! 이 문학단체 망설이다가 저희 카페 <프라하의 봄>을 소개하게 되니 기분이 묘하네요. 사실 저희는 카페를 키우거나 광고하기 위한 노력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저희는 ‘아트앤스터디 - www.artnstudy.com’ 라는 싸이트의 소설강좌에서 처음 만나 3년간 함께 지냈고, 그 강좌가 문을 닫음에 따라 당시의 동료들이 자발적으로 카페를 만들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처음 저희가 ‘아트앤스터디’에서 만난 것이 2004년이고 <프라하의 봄>을 만든 것이 2007년이므로, 이제 6년쯤 된 젊다기보다는 다소 앳된(?)모임이네요. 지금 막 살펴보니 전체 회원이 54인이며, 이 중 준회원 26인을 제외하면, 정회원 이상이 28인이네요. 이 중에서도 활동한지 오래된 8분을 빼면 현재 활동 중인 회원은 20인 내외입니다. 다른 웬만한 카페의 회원이 수백 명에서 수십만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저희 모임은 지나치게 아담하달 수 있겠네요. 하지만 저희는 여전히 저희 모임을 키우거나 광고할 마음이 별로 없습니다. 저희는 Daum의 우수카페로 선정되는 데 관심이 없고 인터넷에서 쉬이 검색되도록 애쓰지도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저희 모임에선 함께 소설문학을 지향하기 위한 어떤 특별한 규정 같은 것을 내세우지도 않습니다. 저희 카페에서 당신은, 일정기간 이내에 소설 한 편을 제출하라는 강요를 받지 않으며, 내키지 않을 때 다른 분의 작품에 대하여 품평을 하지 않아도 되며, 또한 매일 출석체크를 해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단지 당신의 마음이 허락할 때 어떤 게시판에서 어떤 얘기든 자유롭게 하실 수 있으며, 분량이나 장르와 상관없이 어떤 글이든 게시할 수 있고, 당신의 작품에 대한 다른 분들의 독후감을 들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요구한다면, 혹은 다른 분들의 요청을 당신이 허락한다면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형태로 당신의 글에 대한 합평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모두가 자유롭게 스스로 행하는 것이며, 저희 소설모임에 오셔서 소설과 관련이 없는, 산행이나 낚시, 자전거나 여행, 또는 시와 영화에 관한 얘기만 하셔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저희들은 당신이 이미 중견 작가이든 이제 막 문학에 뜻을 둔 분이든 관계없이 어떤 선입견도 갖지 않고 평등하게 만나고 대화합니다. 다른 카페와 마찬가지로 저희 모임에도, 처음 이곳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다가 떠나는 분들도 있으며 거꾸로 여기에 오신지 얼마 안 되는 분들도 있습니다. 주로 알음알음으로 오시는 편이고 가끔 스스로 우연히 오시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저희는 새로 오시는 분이 자기소개나 인사 혹은 등업을 요청하는 게시판을 따로 운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저희 카페가 소극적이거나 배타적인 모임은 아니므로 관심이 생긴다면 스스로 오셔서 자기 방식대로 활동하시면 됩니다. 어쩌면 이 모임은, 모든 분에게는 아니겠지만, 지금 이 글을 읽는 바로 당신의 삶에 정말로 소중한 공간이 될지도 모릅니다. 저희가 그랬듯 당신의 삶이 이 카페를 중심으로 다시 흐를지도 모를 일입니다. 굳이 저희가 스스로 저희 카페를 표현한다면, 아마도, 소설을 매개로 삶의 일부를 함께 나누는 작은 놀이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소: http://cafe.daum.net/springprague  
24 아내의 여행/고창근
편집자
3635 2010-06-30
10.07월 2호 소설 아내의 여행 아내는 여행을 떠났다. 떠나기 하루 전 아내가 3박 4일로 여행을 하겠다고 말했을 때 내게 동의를 구하는 것도 더구나 허락을 받는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고개만 주억거렸다. 하지만 내심 아내가 여행이라도 떠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도 했기에 속마음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내에겐 뭔가 변화가 필요한 시기이기도 했다. 큰아들에 이어 작은아들까지 원불교로 출가하게 되자 아내는 도무지 사는 의욕이 없었다. 저러다 큰 병이라도 나지, 싶었다. 아내는 그렇게 여행을 떠났고 그 후 나는 이상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렇다고 꼭 집어 이거다 싶은 것은 없었고, 막연히 다가오는 불안감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간혹 아무 이유 없이 머릿결이 쭈뼛 솟아오르고 그러면 나는 이내 아내를 떠올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일요일인 오늘 점심 무렵에도 그랬다. 집안에 아무도 없다는 홀가분한 마음에 느지막이 일어나 잠옷 차림으로 밥을 푸는데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머릿결이 쭈뼛 서는 것이었다. 그건 일종의 그리움이었고 불안감이었다. 단순한 아내의 부재 때문이 아니었다. 이제야 아내가 여행을 떠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리움이라니. 아내는 어제 떠났기도 했거니와 아내가 자릴 비운다고 해서 그리움을 느낄 나이도 아니었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웬.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마치 몸에 묻은 먼지를 털듯 가볍게 몸을 움찔했다. 하지만 그 불안감은 나에게 완전히 떨어지지 않고 불시에 나를 습격하곤 했다. 이상한 점은 있었다. 예전에는 아내는 무슨 일이 있어 집을 비운다거나 하면 꼭 곰국을 끓여놓던지 아님 밑반찬을 넉넉히 해 놓고 갔었는데 이번엔 아무런 준비도 없이 홀연히 떠난 점이었다. 두 아들의 출가 후 정신이 없어 그러려니 했지만 기분이 영 개운한 것은 아니었다. 마침 일요일이라 점심을 먹고 난 뒤에도 나는 잠옷 차림 그대로 거실을 뒹굴었다. 평소 같으면 아내와 씨름하며 잠을 청했을 텐데 이상하게도 아내가 없으니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누운 채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문득 애들이 거처하던 방에 들어가 본 적도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6시에 집을 나서고 밤 11시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고 휴일엔 그동안 밀린 잠에 곯아떨어지니 집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큰아들이 쓰던 다용도실 옆방 문을 열었다. 평소에 내가 하숙생 같다는 아내의 말은 차지하고서라도 두 아들이 출가한 후에도 두 방을 아들들이 쓰던 그대로 놔두겠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역시 큰아들의 방은 예전에 쓰던 그대로였다. 순간, 나는 예의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불안감을 느꼈고 잠시 문손잡이를 잡고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심호흡을 하고 방을 찬찬히 들러보았다. 정면으로 보이는 벽에 붙어 있는 책상과 책상 오른쪽의 책장은 예전 그대로 있었고 책장속의 책이 빠져 나간 자리가 좀 비어 있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책상위의 스탠드등도 그 자리에 서 있었고 책장 옆의 일인용 소파 또한 그대로였다. 소파 옆의 스탠드 옷걸이와 벽걸이 옷걸이만이 휑하니 비어 있었다. 출가하기 전 간사 근무나 대학 다닐 때 가끔 집에 들르면 자기도 했지만 방은 사용하고 있던 것처럼 깨끗했다. 아마도 아내는 며칠마다 방을 청소했던 게 틀림없었다. 가끔 아내와 난 그런 소소한 문제로 다투기도 했다. 나는 방을 깨끗하게 치우기를 원했고 아들에 집착이 강한 아내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버텼다. 아내는 아들의 출가가 자신의 몸 일부분이 떨어져 나간 느낌이라고 했다. 나는 방을 나와 작은아들 방으로 갔다. 작은아들 방은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고등학교 때 쓰던 과목별 수능 문제집이 그대로 책장에 꽂혀 있었다. 책상이랑 책장도 예전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었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일인용 침대 옆에 있는 옷걸이에 아들의 옷이 걸린 게 아니라 아내의 옷이 걸려 있다는 점이었다. 침대에는 작은아들이 덮던 이불이 깔려 있었다. 마치 방금 전까지 작은아들이 누워 있었던 듯 했다. 물론 지금은 아내가 쓰고 있었다. 아내는 큰아들이 출가한 후에는 큰아들 방에서 가끔 자더니 작은아들이 출가 후에는 작은아들 방에서 몇 번 잠을 자다 아예 그대로 눌러앉았다. 나의 불만스런 기미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쓸쓸한 웃음으로 대신했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내가 여행을 떠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전에도 내가 몇 번이나 권하던 것이었다. 바람이라도 쐬고 오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바램이었다. 나는 손바닥으로 침대위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집어 들었다. 짙은 검은색 직모였다. 염색 좀 하고 파마도 좀 해봐. 내 목소리가 귀에서 웅웅거렸다. 아들들이 출가 전에는 항상 밝던 얼굴이 출가 후에는 짙은 어둠의 그늘이 가실 날이 없을 때 어느 날 아침 한 말이었다. 60살 가까운 나이에 아직도 생머리를 하고 있다는 게 왠지 가슴을 아리게 했다. 그때였다. 또다시 예의 그리움과 불안감이 덮쳐왔다. 머리카락을 들고 있던 손이 떨렸다. 이게 마지막이지 싶었다. 다시는 아내를 못 볼 것 같다는 방정맞을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여행에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참담한 생각이 들었다. 거실로 나와서도 여전히 가슴은 쿵닥쿵닥 뛰었다. 실체가 없는 불안감에 나는 어이없어 하면서도 두 다리에 힘이 스르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전화를 해 볼까. 나는 방으로 들어가 휴대폰을 들고 망설였다. 잘 여행하고 있는지, 어디 몸 아픈 데는 없는지 정도는 물어볼 수 있지 않느냐고 내 스스로 타일렀다. 아내가 여행을 떠난 후 여태껏 전화 한 통 없었다는 생각까지 미치자 나는 더욱 더 초조해졌다. 예전 같으면 아내는 몇 번이나 전화를 했을 터였다. 밥은 안 굶고 잘 먹고 있느냐는 둥 미안한 목소리로 그렇게 안부를 물었을 터인데 어제 새벽에 집을 떠난 후 지금껏 전화 한 통 없었다. 나는 휴대폰 폴더를 열었다가 닫았길 여러 번 반복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내가 어디를 여행하고 있는 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단지 여행한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아내는 어디로 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나는 묻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내가 어디 먼데라도 가면 꼬치꼬치 캐물었고 나 또한 상세하게 일러 주었듯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근데 아내의 여행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니. 혼자 갔는지. 누구랑 동행했는지. 여행사를 통해 갔는지. 바다로 갔는지 산으로 갔는지. 기가 막혔다. 나는 부리나케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따지거나 화를 낼 작정은 아니었다. 그냥 여행 잘 하고 있는지, 어딘지만 물어 보려고 했다. 반야바라밀다심경관자제보살행심바라밀다…… 어이없게도 아내의 휴대폰 벨소리인 반야심경이 작은아들의 방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내 귀를 의심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반야심경 벨소리는 책상서랍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서랍을 열었다. 하얀색의 휴대폰은 나 여기 있소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음. 나는 가벼운 신음소리를 뱉으며 휴대폰 폴더를 닫았다.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거실로 나와 한동안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이제 누구한테 물어보지? 좀 더 시간을 갖고 냉정하게 생각하자 싶었다. 눈을 감았다. 휴대폰을 일부러 가져가지 않은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 실수로 가져가지 않았다면 먼저 연락이라도 했을 것이 아닌가. 갑자기 아들 생각이 났다.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아이들이 출가를 한 후 아내와 달리 나는 예상보다 크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본인들이 너무 좋아서 선택한 일이고 속세에 있는 것보다는 몸과 마음이 더 편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미칠 듯이 보고 싶다니. 아들들에게 전화를 할까 싶어 휴대폰 폴더를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출가한 아들들은 조심스러웠다. 큰아들은 교무로서 부산 동래 교당에 보좌교무로 있고 작은아들은 부교무로서 전주교당 보좌교무로 있었다. 출가를 했다고 해서 본가와 인연을 끊는 게 아니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전화가 왔다. 결혼을 한 큰아들은 일 년에 한두 번은 집에 다녀갔고 결혼을 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는 둘째아들은 전화는 자주 왔지만 집에는 잘 다녀가지 않았다. 하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쪽에서 전화를 하지 않는 게 도리이다 싶어 전화를 먼저 하지는 않았다.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작은아들에게 문자를 넣을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큰아들보다는 작은아들이 만만했다. 단축번호 3번을 누르고 문자를 넣었다. 시간 나면 전화해. 아버지 합장. 아무래도 일요일 오후라 오전 법회가 끝나면 오후엔 시간이 있을 것 같았지만 전화 걸기가 껄끄러웠다. 전화는 금방 왔다. 대뜸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빠의 문자는 처음 받아봤다고 웃으며 내 무안한 마음을 헤아려 주었다. 어느 교도와 사십구재 문제로 상담하고 있는데 바쁘긴 하지만 통화할 시간은 있다고 했다. 나는 빨리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심호흡을 했다. “혹 네 엄마한테 연락 있었니?” “어머니요? 어머니한테 무슨 일이 있어요?” 작은아들은 대뜸 제 어머니 걱정을 했다. 큰아들이 출가할 때보다 작은아들이 출가할 때 더 유난을 떨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일은 무슨. 그냥 엄마가 너한테 전화했었냐 싶어서 그렇지.” “전화 안 왔어요. 어머니 집에 안 계셔요?” 작은아들은 무슨 눈치를 챘는지 걱정스럽게 물었다. 나는 아무 일 없다고 했다. 나는 그쯤에서 아쉬움을 접고 전화를 끊었다. 큰아들한테 전화를 해 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차피 작은아들한테 전화하지 않았다면 그 쪽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고 괜히 분란만 일으킬 것 같았다. 이제는 아내한테서 전화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가슴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어요. 아내는 큰아들이 교무가 되겠다고 했다면서 천정을 막연히 바라보며 한 말이었다. 큰아들이 고1 겨울 방학 때였다. 교무? 나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지라 어이없다는 생각을 했다. 큰아들은 미대를 가기 위해 학교에서 전 학년이 다하는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따로 미술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글쎄 애가 말하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니까. 아내는 팔을 베고 반대편으로 돌아누웠다. 미대는 안 가고? 왜?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비록 난 바쁘다는 핑계로 원불교를 다니지 않지만 교무의 생활은 대충 알고 있었다. 글쎄 모르겠어요. 아내는 돌아누운 채 나지막이 말했다. 마음이 심란해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그때 나는 치기어린 호기심에서 그랬으리라 생각하곤 깊이 마음에 두지 않았고 하루를 끝낸 피로로 곧장 잠이 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내는 찬성도 반대도 할 수 없는 어정쩡한 상태였던 것 같았다. 원불교 교무란 결혼은 하지만 스님에 가까운 성직자였다. 결혼을 하더라도 사가(私家)라는, 아내가 있는 집에는 일주일에 한번밖에 가지 못했다. 또한 가족이 있다 하여 가정생활을 꾸릴만한 봉급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용금이라 하여 60여만 원을 받는 게 고작이었다. 그나마 결혼을 하지 않는 교무는 30여만 원을 받는 것에 비하면 많이 받는 셈이었다. 그러니 교무 부인인 정토가 전적으로 경제생활을 해야 했고 교무는 그냥 교당에서 설법하며 혼자 생활하는 것이었다. 또한 6년마다 교당을 옮기니 평생을 가정과 멀리 떨어져 살아야 했다. 신앙과 함께 수행을 강조하는 종교라 교무는 선을 통한 수행을 많이 했다. 교무 자체로 봐서는 수행만 정진할 수 있어 가정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게 좋을지 몰랐다. 그 주인가 아님 그 다음 주인가 아들을 방으로 불렀다. 미술학원은 다니니? 곧장 교무 얘기를 꺼내기 무엇해서 미술학원부터 애길 꺼냈다. 미술학원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다니고 있던 거였다. 지금은 안 다녀요. 아들은 단호하게 말했다. 중차대한 인생의 진로를 아비와 상의 한마디 없이 결정하다니,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마음 굳힌 거냐?” “예.” “쉬운 길은 아닐 텐데.” “보람 있는 길이잖아요.” 아들의 말에는 확신이 있었다. “어떻게 해서 교무 되려고 마음먹은 거니?” 아들은 원불교를 다닌 지도 2여 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아내의 친구 소개로 아내와 두 아이들은 원불교에 다니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토요일 오후 학생 법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참석했고 일요일 오전의 일반 법회에도 참석하였다. 아무래도 전생에 부처님하고 무슨 인연이 있는 것 같다고 교당 교도들이 말한다고 아내가 말했다. 교무가 되는 길은 쉽지 않았다.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에 합격하고도 2년 동안 간사 근무를 마쳐야 대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간사 근무는 원불교 교당이나 복지기관 등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먹고 자며 교무들로부터 공부를 배우는 생활인데 한마디로 신앙심을 키우는 과정이었다. “우선 교무님들의 당당한 모습이 보기 좋고요. 얼굴을 한번 보세요. 교무님들의 얼굴이 얼마나 밝은지요. 티끌하나 없잖아요. 얼굴은 살아온 세월을 보여준다는데 교무님들의 삶이 좋다는 뜻 아니겠어요? 일반 사람들의 얼굴과는 많이 비교되잖아요.” 신앙적으로 아직 미진한 아들은 단지 교무의 생활을 동경하고 있었다. 저렇게 살아야지 싶다고 했다. 또한 큰아들은 이미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나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있었다. 대학 과정도 자유분방한 일반 대학과 달리 철저하게 계획되고 통제되는 생활로 신앙심을 키우고 수행을 하는 과정으로 짜여 있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들은 이미 확고하게 마음을 굳힌 것 같았다. 나 또한 아들의 진로에 반대하거나 하는 결코 그런 입장은 아니었다. 요즘처럼 취직도 잘 안 되는 세상에 평생 먹고 사는 걱정도 없겠다는 안일한 생각도 들었고, 물질욕이나 승진 그런 것에 목을 매느니 세속의 일을 초월하여 평생 수행하며 일반인들에게 설법하며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길이 결코 평범한, 쉬운 길이 아니었기에 좀 더 생각해 보자고 했다. 고2의 큰아들은 학과 공부보다는 원불교 교전을 읽고 토요일엔 어린이 법회에 보조 교사로 참여하며 더 열심히 다녔다. “아들 뜻에 따라야겠어요.” 아내는 그해 겨울이 다가올 무렵 결심을 굳힌 듯 했다. 교당에 열심히 다니기도 했지만 주임교무와 상의한 결과 아들은 성직자의 길로 가기에 모든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 조건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뭔가 아들을 원불교에 빼앗긴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아내는 굳이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처음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는 아내는 웃으며 아들의 진로 선택을 축하해 주었다. 교당에서 아들의 서원(誓願) 행사가 있었다. 교무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정식으로 서원을 세우고 법신불사은님께 봉고한다고 했다. 서원 행사라 해서 큰 행사는 아니고 일원상 앞으로 다가가 교무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주위에 밝히고 절을 네 번하는 것이었다. 교무의 간곡한 부탁으로 그날은 나도 교당에 갔었다. 주임교무는 나에게 큰일을 하셨다고 했고 설법을 통해 집안의 영광이라고 했지만 크게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는 무척 기뻐했고 떡과 과일을 준비했다. 아들이 기뻐하고 우선 아내가 흡족해 하니 마음이 안심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큰아들은 고3 겨울 방학이 되자마자 부산 교구청으로 간사 근무를 위해 떠났다. 간사근무를 한다고 해서 출가한 것은 아니었다. 간사 근무 2년을 마치고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고 교무고시를 통과해야만 했다. 그러면 정식으로 출가식을 하고 부교무가 되어 교당이나 원불교 소속 복지기관 등에 발령 받아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론 출가했을 때보다 간사 근무 때가 오히려 제약이 많이 따랐다. 준 성직자나 다름없었기에 출가한 것이나 진배없었다. 큰아들이 서원을 세운 날 중학교 1학년인 작은아들이 제 형을 따라 덩달아 교무가 되겠다고 했을 때 그냥 웃으며 그래 그래라, 했다. 제 나이에 알면서 말하겠냐 싶었다. 하지만 작은아들은 고3이 되도록 큰 갈등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꿈같은 시절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작은아들까지 교무가 되면 서운하지 않겠냐고 했지만 정말이지 그때는 서운한 감정은 들지 않았고 오히려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두 아들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이제 부모 걱정 끼치지 않고 저희끼리 잘 살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강했다. 부모의 몫을 다 했다는 안도감까지 들 정도였다. 이틀째가 되었지만 아내한테는 전화가 없었다. 모레면 이제 집으로 온다는 점 때문에 나는 자포자기 한 심정으로 아내를 기다렸다. 퇴근을 정시에 하고 집으로 왔다. 아내가 없는 집은 썰렁했다. 생소한 느낌이었다. 마치 남의 집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직장에 다니지 않아 퇴근 때마다 반갑게 맞아 주었던 아내의 자리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라면으로 저녁 끼니를 때우고 텔레비전을 켰지만 평소에 보지 않던 터라 관심을 끌 만한 프로는 없었다. 텔레비전을 껐다. 갑자기 삶의 의욕이 떨어진 것 같았다. 아들들이 모두 떠나고 아내조차 자릴 비우니 이렇게 외롭다니, 생각해보니 코웃음 칠 일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 집은 내가 태어난 집이었다. 이제껏 이 집에서 이런 외로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이 집은 내가 태어나기 2년 전에 아버지가 지었으니 나와 함께 살아온 셈이었다. 대학 다닐 때와 군대 갔을 때 몇 년 집을 떠났을 뿐 내 생과 함께 해온 집이었다. 또한 아이 둘이 태어난 집이기도 했다. 그동안 몇 번의 수리는 했지만 골격은 그대로였다. 이런 집에서 생경한 느낌을 받다니. 참 어이없는 일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출가하기 전까지는 아이들이 커서 이 집에 살 줄 알았다. 아니 그렇게 되길 바랐다. 내가 태어나서 쭉 이 집에서 자랐듯 아이들이 그렇게 살 길 바랐는지도 몰랐다. 나는 냉장고로 가 캔맥주를 가지고 와 뚜껑을 땄다. 두 번 벌컥 마시니 동이 났다. 명치께가 싸하니 신호가 왔다. 또다시 냉장고로 가서 캔맥주를 가지고 왔다. 집에서 혼자 마시는 건 처음이었다. 아내도 이런 생경한 느낌을 받았을까. 손꼽아 보니 아내도 이 집에서 30여 년을 살아온 셈이었다. 아내는 큰 욕심도 야망도 없는 사람이었다. 집에서도 없는 듯 있는 사람이었다. 없으면 불편하고 있으면 있구나 싶은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당신도 뭔가 취미 생활을 해보라고 권했지만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다고 했다. 애들이 다 나가면 당신 혼자 어떻게 살려고. 뭔가 취미 생활을 하든지 특기를 살리든지 해야지 원. 내게 퉁바리맞아도 아내는 손사래를 쳤다. 이대로가 좋다고 했다. 이만하면 좋은데 일부러 무슨 취미네 특기를 살리네 하느냐고 했다. 아내는 천생 청소하고 요리하는 전형적인 주부였다. 추억거리를 만들어야 해. 아내는 작은아들이 대학에 합격했을 때 과도한 애정 표현을 하였다. 큰아들이 대학을 합격하고 간사근무를 떠났을 때만 해도 덤덤하게 받아들이던 아내였다. 밑으로 작은아들이 있었기 때문일까. 큰아들이 원불교학과에 합격했을 때에는 레스토랑에 가서 큰아들이 좋아하는 돈가스를 먹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작은아들이 합격했을 때는 달랐다. 우선 교당 대각전의 일원상 앞에 있는 경상을 새 것으로 교체했다. 가죽나무로 만든 경상은 헌공함이 딸려 있는 고급이었다. 주임교무에겐 따로 법복을 사 입으라고 돈봉투를 드리기도 했고 교도들에겐 법회 후 식당으로 초대해 점심을 대접하기도 했다. 아이가 학생회 출신이라 학생회 학생들에게도 따로 점심을 사 주었다. 너무 돈 많이 쓰는 거 아냐 나는 아내의 행동에 염려를 드러냈다. 대학 다닐 때 돈도 하나도 안 들잖아. 용돈은 교무님이 주시고. 또. 또? 큰애땐 후회되더라고. 아무것도 안 해서. 교무님께 점심밖에 안 샀잖아. 이젠 아들 둘을 원불교에 희사(喜捨)했는데 좀 더 교무님이랑 교당에 잘 해야지. 아내는 들떠서 말했다. 하지만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내는 필요이상으로 마음이 들떠 있었던 것 같았다. 뭔가 어디에 정신이 빼앗겼던 것 같았다. 그때 아내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내는 작은아들에게도 한우전문식당에 데려가서 배불리 고기를 사주었고 틈틈이 질릴 정도로 집에서도 고기 요리를 해 주었다. 간사가면 어디 고기라도 제대로 먹겠어? 교무님들 식사야 풀밖에 안 나올 텐데. 그때 이미 아내의 불안한 마음을 헤아려야 했을까. 간사 가는 날은 달력에 빨간 표시를 해 놓았다. 뭔가 아내의 얼굴엔 초조한 기색이 언뜻언뜻 드러났다. 하지만 아내는 교당에 더 열심히 다녔다. 사람들이 교무 엄마라고 할 텐데 열심히 안 다니면 뭐라 하겠어, 라며 일요일의 정기 법회 뿐 아니라 좌선과 독경을 위주로 하던 화요일의 선방, 목요일의 교리 반에도 열심히 다녔다. 교당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집에서도 틈틈이 500배를 하고 좌선과 독경을 열심히 하는 것 같았다. 무릎과 허리가 평소 좋지 않았는데 하루에 500배씩 하고부터는 무릎 관절이 많이 나아졌다고 좋아하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나에게도 일요일 아침에 잠만 자지 말고 교당에 다니라고 강권하곤 했다. 남들 눈에 보기 안 좋다는 거였다. 아들 둘이나 교무가 됐는데. 아내는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교당일이나 집안일이나 더 적극적이고 열심히 하려고 했다.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이라고. 사람을 비롯한 모든 사물을 부처라고 여겨야 하고 일을 할 때에는 불공드리듯이 해야 한다고. 아내는 실제로 살아가는 일을 불공드리듯 살아가는 듯 했다. 원불교에 열심히 다닐수록 아내의 얼굴엔 평온한 미소가 항상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내는 작은아들이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합격을 하고 나자 조금씩 초조한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았다. 고2겨울 방학 때 서원을 세웠을 때만 해도 기쁜 감정을 굳이 숨기지 않았던 모습과 다른 점이 많았다. 그러다가 작은아들이 막상 간사근무를 떠나고 나니 마음이 크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주임교무는 자식을 놓아주는 연습을 하라고 했다. 큰일을 하기 위해선 사사로운 감정을 버려야 한다고. 아내는 선선히 동의했다. 큰아들 때 이미 겪은 일이었고 각오한 일이었다. 이제 더욱 열심히 살아야지. 건강도 챙기고. 이제 자식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 살아야지. 아내는 그동안 못 챙긴 건강도 챙기고 여행도 자주 다니자고 했다. 당장 워킹화와 트레이닝복을 나와 커플로 샀다. 자식 둘이 그냥 떠난 게 아니라 출가나 다름없는 길로 갔고 나중에 출가를 할 것이니 교무 말처럼 미리미리 아들들에게 미련을 버리고 우리 부부의 생활을 더 충만하게 해야겠다고 했다. 하지만 왜 서운한 감정이 없었겠는가. 아내는 저녁을 먹다가도 밥은 잘 먹고 있으려나, 하며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고 나 또한 갑작스런 아들들의 그리움에 묵묵히 밥을 떠먹었다. 그렇지만 참기 힘들다거나 그런 정도는 아니었다. 활기찬 생활을 하자고 했지만 큰아들이 떠난 때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큰아들이 떠났을 때는 집에 작은아들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작은아들이 떠났을 때는 그야말로 집이 휑하니 빈 것 같았다. 나는 되도록 퇴근을 일찍 했다. 밤에는 커플트레이닝복을 입고 공원으로 산책을 가기도 했고 일요일엔 교당에 나갔다. 모두 아내를 위한 것이었다. 일요일 오후엔 주로 가까운 산에라도 갔는데 산에서 만나는 아는 사람들은 신혼으로 돌아왔다고 놀렸다. 밤에 신랑이 잘 해주가봐. 진수 엄마 얼굴이 확 피었어. 어떤 이의 농담에 아내는 얼굴이 붉히기도 했다. 아내는 작은아들이 집을 떠난 초기에는 나름대로 열심히 한 덕택에 아들들의 빈자리를 이겨가고 있었다. 아내는 매사에 적극적으로 행동한 것처럼 잠자리에서도 적극적이었다. 나보다도 아내 쪽에서 먼저 요구해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작은아들이 간사 근무를 무사히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고 대학원을 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아내와 나는 생활을 잘 보냈다. 하지만 정식으로 출가를 하고 2년째 되던 해에 결혼까지 하자 눈물짓는 일이 잦아졌다. 결혼을 하자 큰아들이 그랬듯 작은아들도 집으로 오지 않고 아내인 정토가 있는 사가(私家)로 일주일에 한 번씩 다녀갔다. 어쩌면 큰아들 때 이미 겪은 일이라 좀 더 나아질 듯도 하건만 아내는 공허감을 못 이겨했다. 어쩌다 아들에게 전화라도 오면 삼십 분이고 한 시간이고 전화기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오히려 무안해 전화를 그만 끊으라고 독촉하기도 했다. 전화를 한 날은 그나마 생기를 찾은 날이었다. 일요일 오후에 전주나 부산까지 아들을 만나러 가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며느리의 눈치가 보여 오래 있을 수도 없었다. 아들은 일요일 오후와 월요일에 잠깐 사가에 있을 뿐 멀리 떨어진 교당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그나마 둘이 있는 시간을 뺏는 것 같아 눈치가 보였다. 아내는 점점 좌선에도 500배에도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하물며 절을 하면서도 정신을 놓는데……. 아내는 좌선에도 정신집중이 안 된다고 했다. 어떨 땐 하루에 1000배를 하기도 했는데 마치 자기 자신의 몸을 혹사시킴으로서 고통을 잊으려 하는 것 같아 곁에서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아내는 점점 작은아들이 거처하던 방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어쩌다 큰아들 방에서도 잠을 잤지만 점점 작은아들 방에서 잠을 자는 횟수가 늘어났다. 안방으로 잘 건너오지 않았다. 나는 안방에서 혼자 자는 날이 많아졌다. 그것이 아내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일이라면 괜찮다고 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기도 했다. 그러다 아내는 여행을 떠났다. 점점 작은아들 방에서 자는 횟수가 늘어나는가 싶더니 아예 그 방에서 둥지를 틀 때였다. 아내는 방에서 잘 나오지 않으려 했다. 아내는 집에 돌아오기로 한 예정일이 하루가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이틀 전 KT에 집전화에 착신번호 서비스를 신청하여 집으로 걸려오는 모든 전화를 내 휴대폰으로 오도록 해 놓았지만 낯선 전화번호는 뜨지 않았다. 또 하루가 흘렀다. 나는 무기력했다. 아내를 찾을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 예정일에서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실종신고나 가출신고를 할 수도 없었다. 하려면야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는 아내의 의도적인 행위에 자꾸 의심이 갔다. 그러니까 아내는 무슨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는 말이다. 애초에 여행 자체가 없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가출한 것이다. 그러니까 고의로 가출한 것이 아닐까. 나는 작은아들의 방에 들어갔다. 무슨 물증을 찾으려 한 것이 아니었다. 아내가 하루 종일 처박혀 나오려 하지 않았던 방이기에, 그냥 아내가 그리워서 방에 들어온 것이었다. 나는 침대에 앉아 팔짱을 꼈다. 지금 어디에 있을까. 외로워서 어디를 헤매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아내는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을까. 500배를 하고 1000배를 해도, 몇 시간씩 좌선을 하고 독경을 해도 결국은 그 외로움을 이기지 못 했구나. 교전을 들고 웃으며 열심히 교당을 다니던 아내의 모습이 무슨 고행을 하는 것처럼 애처롭게 느껴졌다. 생각해 볼수록 가슴을 칠 일이었다. 갑자기 불안감이 몰려왔다. 소름이 돋으면서 피가 정수리로 몰려들었다. 숨이 가빠 왔다. 땀이 삐질 났다. 여보. 나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내도 아들이 출가한 후 이런 느낌이었을까. 세상에 홀로 남겨진 느낌.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느낌이라더니. 바지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혹 걸려온 전화를 받지 못 할까봐 집에 와서도 항상 바지에 넣고 다녔고 진동으로 하지 않고 벨소리로 해 놓았다. 나는 얼른 꺼내 액정화면을 바라보았다. 모르는 번호였다. 054로 시작하는 번호였다. 휴대폰을 귀에 댔을 때 멀리서 왁자지껄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혹 이혜영씨 댁인가요?” 굵직한 남자의 사무적인 목소리였다. 나는 얼른 그렇다고, 내 아내라고 했다. “그러니까 주민등록번호가 오이공구이칠에……” “예, 맞습니다. 맞다니까요. 근데 어딥니까. 거기.”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아, 찾았구만. 여기요. 김천경찰서인데요.” “김천이요?” 나는 낯선 지명에 잠시 멍해졌다. 어디 지구 끝 먼 나라의 지명처럼 느껴졌다. “거기가 어디죠?” “경북입니다. 경북 김천. 이혜영씨 집에 안계시죠? 지금.” “여행을 떠났는데 아직 안 들어왔습니다. 근데 왜 그러시죠? 무슨 일이 있나요?” “실종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직지사에서 실종 됐다고 여행사가 실종 신고를 했는데 연고자를 찾을 수가 있어야지요.” “실종이요? 혼자요? 거긴 왜 갔는데요? 아직도 못 찾았단 말입니까?” “못 찾았으니까 전화한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주위에 좀 찾아보시고 혹 연락되면 이 번호로 전화주세요. 저희들도 찾는 데까지 찾아볼게요. 저는 여인구입니다.” “혹 무슨 여행사인지 알 수 있습니까?” 나는 끊으려는 경찰관의 말을 낚아챘다. 세한여행사요. 담당자가…… 적으세요. 임천수. 공일공에 이칠칠팔에 …… 전화번호를 적는 손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여행사 직원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다. 여행사 직원은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여행은 아내의 말처럼 3박4일이 맞았다. 밀양 표충사에서 1박, 대구 동화사에서 1박, 김천 직지사에서 1박하는 주로 불교 신자들이 가는 여행이었다고 했다. 실종된 날은 김천 직지사에 1박한 아침이었다고 했다. 직지사에 도착해 대웅전에서 108배를 하고 저녁을 먹고 주지 스님께 설법 들을 때까지는 여행객들과 함께 있었다고 했다. 그날 배정된 방에 함께 들어가는 것을 본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아침에 식사를 하는 데 아내가 보이질 않더라는 것이었다. 근데 이상하다고 여행사 직원은 말했다. 여행 신청서에 적힌 모든 게 이름만 빼고 다르게 적었다는 것이었다. 주소랑 주민등록번호, 심지어 집 전화까지 다르게 적어 할 수 없이 집으로 연락 못 하고 가까운 경찰서로 신고를 했다는 것이었다. 실종 되고 나서 여행보험에 든 서류를 보고서야 정확한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를 알 수 있었노라고, 찾느라 다른 여행객들조차 제대로 마지막 여행을 못 했다고 했다. 거듭 미안하다는 여행사 직원의 말을 자르며 나는 전화를 끊었다. 애초에 품었던 불길한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나는 침대에 엎드려 누웠다. 아내의 향긋한 냄새가 났다. 아내의 무릎을 베고 누우면 나던 냄새였다. 애초부터 아내는 자신이 완벽하게 실종되기를 바랐고 또한 아무도 찾지 못 할 곳으로 가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일 김천에 가더라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어디로 간 걸까. 나는 애벌레처럼 등을 한껏 꾸부렸다. 고창근 sgamm@hanmail.net 소설집 <소도(蘇塗)>  
23 (독자 투고)임종 외 1편 최기종
편집자
4123 2010-06-30
10.07월 2호 시 임종 최기종 봄날에 병상에서 어머니가 새로 태어나고 계셨다. 동쪽으로 머리를 두시고 쪽머리 곱게 단장하시고 껍질에서 깨어나려고 참꽃되려고 몸살하고 계셨다. 꽃잎 지는 오후였다. 아직도 창문 너머 봄꿈이 푸르른 데 어머니는 이제 탄생의 환희를 염려하는지 호흡이 가파라지면서 지독한 산고를 견디고 계셨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이 유다를 낳고 연줄이 연줄을 낳고 이제 어머니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당신의 당신을 낳고 계셨다. 물거품처럼 어머니가 새로 태어나고 계셨다. 눈에 밟히며 꾸르럭거리는 소화불량처럼 뱃속에서 도무지 나오지 않는 당신의 당신이 아주 천천히 연줄을 끊어내고 계셨다 날아가는 것은 모두 당신이었다. 새는 날아서 서쪽으로 멀어져서 천중에서 외롭게 한 점이 된다. 당신, 새가 되어서 도솔천 너머로 간다지만 당신의 내음새, 웃음, 목소리는 아직 여기 있어 이목구비 어디든지 당신이 튀어 나오고 말씨에도 숨결에도 살결에도 당신이 느껴지고 위에서도 장에서도 혈관에서도 당신이 움직거린다. 당신, 안식을 찾아서 이승과 저승 사이 날아다니지만 하룻밤 지새울 둥지 하나 마련해 주지 못한다. 그렇게 보내지 못하는 정리定離로 날파리 하나 손바닥으로 잡았더니 그게 바로 당신이었다. 날아가는 것은 모두 당신이었다. ***** 1956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다. <만경강> 동인, <목포작가회의> 활동. 교문창 회원시집『대통령 얼굴이 또 바뀌면』에 작품 발표<1992년> 시집『나무 위의 여자』, 『만다라화』  
22 월행/송기원 고창근 4611 2010-06-28
내가 좋아하는 소설 어느 평론가에 의해 ‘너무나 단편스런’ ‘너무나 정물적인’소설이란 소리를 들은 작품이다. 이보다 더 단편스럽게 잘 쓴 단편소설은 없다는 말일 게다. 예술적인 측면이나 내용적인 측면에서나 뛰어난 작품이다. 군더더기 없고 정확한 문장(마치 詩에 있어 일물일어설을 연상시킨다.)아름다운 문장 단선적인 구성... 그야말로 단편소설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내용은 한국전쟁으로 인한 민족사적 비극을 그리고 있다. 송기원 송기원은 1947년 전라남도 보성과 벌교 사이에 있는 조성 장터에서 태어났다. 생부와 의부, 두 사람의 아버지를 둔 그는 이곳의 똘마니들와 역전 여관의 어린 갈보들와 어울려 가학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애비 없는 아이를 낳았다는 자책과 숱한 수모를 받으면서도 그를 대학까지 보냈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한 그는 군에 입대하여 월남전에 참가하게 된다. 졸업 후 1974년 단편 소설 「경외성서(經外聖書)」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동시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회복기의 노래」가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등단하였다. 그러나 1975년부터 1990년까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과 `민중교육지사건` 등으로 5년에 한 번씩 감옥을 들락거린다. 1979년 첫 소설집 『월행(月行)』을 내고 자전적 소설을 쓰기 시작한 송기원은 소설집 『다시 월문리에서』, 『인도로 간 예수』와 장편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 『청산』, 『여자에 관한 명상』을 펴냈다. 시집으로는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마음속 붉은 꽃잎』이 있다. 1983년에는 제2회 신동엽창작기금을 수혜 받기도 했으며, 1993년에는 「아름다운 얼굴」로 제24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현재는 단학에 입문하여 공주 계룡산 갑사 산자락으로 들어가 도를 닦으며 글을 쓰고 있다. 신간도서 - 또 하나의 나 수상작 - 아름다운 얼굴 - 1993년 제2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대표작 - 인도로 간 예수 - 다시 월문리에서 -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 그외 주요작품 - 청산 - 안으로의 여행 - 여자에 관한 명상 - 다섯개의 겨울노트 - 나를 움직인 그 한마디 - 배소의 꽃 - 고려원소설문고 096 월행 구름 사이로 달이 빠져나오자 반짝, 개천이 드러났다. 살얼음이 낀 개천은 달빛을 받아 무슨 시체처럼 차갑게 반짝거리며 아래쪽 미류나무 숲으로 사행(蛇行)의 긴 꼬리를 감추고 있었다. 바로 그 미류나무숲 언저리로부터 한 사내가 개천 둑에 모습을 나타내었다. 사내는 등에 누군가를 업고 있었는데, 외투로 보자기를 씌워서 멀리서 보면 흡사 곱사등같은 모습이었다. 사내는 그런 모습으로 깊게 눌러쓴 벙거지 속의 눈빛을 세워 사방을 휘둘러보며 천천히 개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왔다. 개천의 양켠으로는 추수가 끝난 논밭들이 을씨년스럽게 버려져 있었는데, 개천의 위쪽에서 복풍이 몰릴 때마다 어디선가 마른 수수깡 소리가 들릴 때마다 사내는 흠칫 놀라서 걸음을 멈추곤 했다. 개천을 가로지른 신작로의 다리를 넘어서자 사내는 벙거지를 벗고 이마의 땀을 훔쳤다. 사내는 무심결에 달을 쳐다보았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만월이 구름 사이를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반백(半白)의 구레나룻으로 뒤덮인 사내의 얼굴에 어떤 음영이 서리는가 싶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깊은 주름살이 패이고 군데군데 칼자국이 있어서 꿈틀대는 짙은 눈썹과 함께 사내의 얼굴은, 그가 막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을 쉽게 알려주고 있었다. 문득 사내의 곱사등이 꿈틀대더니 뜻밖에 어린아이의 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부지, 아직도 멀었어?" 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사내의 표정이 대뜸 밝아졌다. "아녀, 아녀. 저어기 불빛이 뵈쟈? 거겨" 사내가 손을 들어 개천의 위쪽 병풍처럼 잇달은 연봉(連峯)들의 산자락 한켠, 몇 낱 불빛들을 가리키자. "어디? 어디" 조막손이 사내의 낡은 외투를 헤집고, 거기에서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의 얼굴이 빠끔이 삐져나왔다. "저기가 아부지 고향이지?" 사내는 아이의 별스럽지 않은 질문이 그러나 몹시 대견한 모양이었다. 사내는, 허허, 녀석 신통두 허지, 숫제 얼굴 가득찬 주름살로 웃었다. "하문. 그렇구말구. 저기가 바로 아부지 고향이여" 사내는 따뜻한 시선으로 아이와 함께 오랜 동안 마을의 불빛을 바라 보았다. 개천은 마을 뒤 골짜기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을을 감싸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골짜기를 한실 골짜기라고 불렀고, 거기에서 시작된 개천을 한실 꼬랑이라고 불렀고, 그 마을을 한실 마을이라고 불렀다. 바로 그 한실 마을이 사내의 고향이었다. 사내의 조부의 조부 때부터 자작일촌을 이루어 내려온 마을. 큰 제사 때면 너나 할것없이 저마다 흰두루마기를 내어 입고 종가댁 등불 아래 모여 신명(神明)께 축문을 드려 온 마을. 제사가 끝나면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들었던 훌륭한 선친들의 이야기를 또다시 들려준 마을. 해마다 정초엔 가가호호를 돌며 한 해 액풀이를 하는 꽹과리패들로 극성스러운 마을. 사내가 한실마을로부터 도망친 것도 훌쩍 이십 몇 년이 넘어 버린 것이었다. 개천을 벗어나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 아래 다다랐을 때, 사내는 문득 심한 기침 끝에 피를 토해냈다. 죄업이다, 라고 사내는 자조했다. 이 마을이 폐촌이 되어 버린 것처럼 자신의 병 또한 죄업이다, 라고 사내는 두 손 가득히 피를 받으며 자조했다. 허허, 사내는 벌겋게 웃으며, 우는 아이를 달래어 놓고 개천으로 내려갔다. 살얼음을 깼을 때, 사내는 수면에서 피묻은 얼굴과 함께 달을 보았다. 달과 사내의 피묻은 얼굴이 한데 어울려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게 흔들리는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사내는 어쩌면 자신의 삶도 그렇게 조악(粗惡)힌 것만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물을 집어올리려는 사내의 두 손이 떨려왔다. 달과 어울린 피묻은 얼굴이 수면에서 울고 있었다. 마을로 들어서자 개들이 맨 처음 사내를 발견했다. 처음에 어쩌다 사내를 발견한 한 마리의 개가 으르렁거리더니 곧이어 개들의 울부짖음은 마을 전체에 퍼져서, 고즈넉하던 작은 마을은 온통 개들의 울음소리로 가득차 버렸다. "원, 개새끼들이라니" 사내는 가볍게 투정을 하며, 그러나 어쩐지 개들의 컹컹대는 소리도 정답게 여겨져서 혼자 미소를 띠었다. 퇴락한 초가와 낮은 토담을 지나치며 사내는 선잠이 깬 마을 사람들의 밭은기침 소리를 마치 개들의 그것처럼 여길 수 있었다. 이윽고 낯익은 집 앞에 섰을 때, 사내는 문득 자랑스러운 마음이 되어 등에 있는 아이를 토닥거렸다. "자, 이게 아부지 집이다" "이렇게 큰 집이 다 아부지 집이란 말이야?" "하문, 이게 다 아부지 집이지" "이제 우리는 여기서 살 거야?" "하문, 여기서 살지" "학교에도 다니고?" "하문, 낼부텀 당장에 학교에 댕겨야제" 사내는 아이와 수작을 하며 대문을 두드렸다. 대문을 두드리며 사내는 기둥에 붙어 있는 입춘대길(立春大吉)을 보았다. 그을음이 끼고 색이 바래어 있었지만 사내는 그것이 누구의 글씨체인 줄 알 수가 있었다. 대문간의 어둠 속에서 사내의 얼굴이 환해져 왔다. "살아 계셨구먼. 용케도 아직꺼정 살아 계셨구먼……" 사내가 소리내어 중얼거렸다. 대문을 두드린 지 한참만에 낯선 청년이 사내를 맞이했다. 청년은 눈을 비비며 문간을 막아서, "뉘슈?" 사내에게 퉁명스럽게 말을 건네왔다. "여기에 이용만이란 분이 안 계시는지……" 청년은 이제 확연히 잠이 깬 눈빛으로 사내의 형색을 위아래로 살펴보며 대답을 머뭇거렸다. 사내가 다급하게 다시 물었다. "안 계신가?" "제 할아버진데, 어떻게 오셨수?" "……" 여전히 대문을 막아서서 잔뜩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훑어보고 있는 청년에게 무어라고 대꾸를 해야 할지 몰라 사내가 우물쭈물 말을 고르고 있을 때, "대식아, 밖에 뉘라도 왔냐?" 안에서 천식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낯선 분이 할아버님을 찾는데요?" "어허, 밤늦게 어느 분이 날 찾는단 말여" 사내는 청년을 제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사랑채의 캄캄한 방문 앞에서 사내가 머리를 조아렸다. "아부님 저, 저, 갑득이올습니다" "뭬, 뭬라구?" 방문이 화들짝 열렸다. "가, 갑득이올습니다" "갑득이라구?" 방안의 캄캄한 어둠으로부터 노인이 문줄을 잡고 끄응 상반신을 밖으로 내밀었다. 허연 상투머리와 수염이 사뭇 떨리고 있었다. 그렇게 몸을 떨며 노인이 침침한 눈을 들어 달빛을 받고 서 있는 사내를 한참 동안 올려다보았다. 노인이 그르륵그르륵 가래가 끓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니가 갑득이라고?" "예, 가, 갑득이올습니다" 사내가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리자 노인이 사내로부터 고개를 돌려버렸다. "우리 집안엔 그런 사람 띴다" 사내가 당황하여 한 발짝 더 노인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아, 아부님" "아, 가, 갑득이는 동난 때 발, 발써 죽은 사람여" 노인은 다시 방안의 캄캄한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겨 버렸다. 방안에서 심한 기침이 쏟아져 나왔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길 듯이 쿨룩거리는 노인의 기침은 마치 캄캄한 방 자체가 기침이라도 하듯이 선뜻하고 요란스러웠다. 사내가 얼굴이 납빛이 되어 정신을 잃고 서 있는데, 청년이 말을 건넸다. "저어, 큰아버님. 좀 전엔 죄송했읍니다. 잠결이라 미처 알아뵙지 못하고……. 우선 제 방으로라도 드시지요" 사내가 빛을 잃은 시선으로 청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중얼거리듯 입술을 달싹였다. "니가 을득이 아들이냐?" 청년이 고개를 떨구었다. "예" 사내는 청년으로부터 고개를 돌려 중천에 휘영청 밝은 달을 향하며 지나는 말처럼 넌지시, "니도 날 원망하겠구먼" 얼결에 말을 받은 청년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스쳤다. "뭘요. 다 지나간 일인데요" 사내는 여전히 달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청년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구천엘 가서도 니 애비 만날 면목이 없을껴" 청년이 힐끗 사내의 얼굴을 훔쳐보았을 때, 청년은 달빛에 음각처럼 드러난 깊은 주름살과 몇 개의 흉한 칼자국을 보았다. 그것이 이상하게도 청년의 눈에 아프게 와 박히는 것이었다. 청년은 자꾸 씀벅거리는 눈을 어쩔 수가 없었다. "어디 그것이 큰아버님 탓이겠읍니까? 다 시절이 흉했기 때문이지요" 청년이 마치 그 시절을 살아 본 사람처럼 말했고, 사내는 그런 청년의 말을 못 들은 체했다. "니 애비가 총살당하던 날 밤에 난 저쪽 골에 숨어 있었제. 물론 확성기로 떠드는 소리도 듣고 있었제. 자술 허면 니 애빌 살려 준다고 말여. 그래도 난 못 나갔던 겨. 결코 목숨이 아까운 것은 아녔어. 그 당시 나넌 눈깔이 뒤집혀 있었응께. 복수를 하겄다고 말여. 허허" 사내가 몸을 흔들며 침통하게 웃었다. 그러자 여태껏 잠자코 있던 아이가 사내의 등에서 칭얼대기 시작했다. "아부지 추워. 추워 죽겠어. 빨리 방에 들어가" 그러자 사내보다도 먼저 청년이 아이의 말을 받았다. "아이구, 이 정신 좀 봐. 큰아버님, 어서 방으로 들어갑시다. 자, 우선 아이를 제게 주시고요 "아녀, 괜찮어" 사내는 그러면서도 등에서 아이를 내렸다. 아이는 잔뜩 웅숭그린 채 낯선 동네의 낯선 청년을 흘끔거리더니 사내에게 바싹 붙어서서 옷자락을 잡고 놓지 않았다. 아이가 조그맣게 말했다. "아부지 오줌 눌래, 오줌" 사내가 아이를 뒤켠으로 데려갔다. "자, 아무데나 누부러" 아이가 바지를 내리고 고추를 내밀자 곧 이어 작은 포물선을 그리며 오줌줄기가 뿜어져 나와 울타리의 마른 나뭇가지들을 바스락거렸다. 아이가 사내를 돌아보았다. "아부지, 나 오줌 세지?" "넥키놈,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녀" 사내가 아이의 머리에 알밤을 먹였다. 그렇게 알밤을 먹이는 사내의 표정에서 이미 조금 전의 침통한 빛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씨이, 아부지가 맨날 그래놓고 뭐" 아이가 투덜거렸다. 아이의 바지를 추스르면서 사내의 입에서 한숨처럼 중얼거림이 새어나왔다. "허어, 어쩌다 늘그막에 요런 것이 생겨가지고……. 허어, 내 이눔을 두고 곱게 눈이 감겨질지 몰라" 뒤켠에서 나온 사내가 청년의 권유대로 토방에 신발을 벗고 있을 때, 사랑채에서 노인이 다시 방 밖으로 상반신을 내밀었다. "태식이 게 있느냐" "예" "뫼시고 건너오너라. 이 방도 불도 좀 밝히구……" 청년이 성냥을 켜 석유 램프에 불을 당기자 노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주름살투성이의 눈언저리에 흥건히 젖어 있는 물기를 노인은 감추지 않고 있었다. 사내가 방으로 들어서자 노인이 쯧쯧 혀를 차며 혼잣말을 했다. "내 요즘 그렇지 않아도 죽은 메늘아기가 자꾸 꿈자리에 뵈 심사가 어지럽더니만……" 사내는 노인의 중얼거림을 귓전으로 흘려 버리고,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아이에게 말했다. "민수야, 할아부지께 인살 드려야제" 아이가 방바닥에 엎드려 넙죽 절을 하자 노인이 턱으로 아이를 가리켰다. "걘 뉜가?" 사내가 겸연쩍다는 듯이 반백의 상고머리를 갈퀴손으로 긁적거렸다. "자식놈입니다. 늦처를 봤더니만 글쎄……" 노인은 알 만하다는 듯이 고개를 몇 번 주억거리더니, "걔 에민?" 여전히 머리를 긁적거리는 사내에게 다시 물었다. "너무 나이 차이가 졌지요. 술집에서 알게 됐는디. 작부치곤 생긴 것도 참허구, 존 일 궂은 일 다 겪은 년이어서 소갈머리도 꽤 있어 뵈, 몇 년 전부터 살림이란 걸 시작했지요. 이 녀석을 난 뒤로는 그 년이 꽤 살림맛을 안 듯싶더니만 얼마 전에 어떤 젊은 놈과 정분이 났던 모양이어라우. 소문을 듣고두 모른 채 덮어 零는디 끝내 도망을 치구 말았수. 그래서……" 사내가 내친 김에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보였으나 노인이 팔을 휘둘러 사내를 제지했다. 노인이 청년에게 말했다. "태식아, 손불 깨워가지고 밤참 좀 짓도록 해라. 먼 길 오느라고 허기졌을텐디" "밥생각 없어라우. 그만두도록 허슈" "아니다. 짓도록 해라. 그리고 태식이 닌 내 부를 때까지 니 방에 가 있거라." 청년이 나가자 노인이 정면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짓물린 눈꺼풀 속에서 뜻밖에 형형한 눈빛이 나타났다. "니놈만 아니었어도 우리 집안은 이토록 망하지는 안했을 것이여. 니 놈이 도망간 후로도 니놈 대신에 집안 장정들이 ?이나 죽어나간 줄 아냐?" 램프의 그을음이 그림자가 되어 노인의 얼굴 위에서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림자 속에서 주름살들이 실룩거렸다. "뻔뻔도 하제. 무슨 염치로 다시 이 땅을 밟을 생각이 났단 말이냐" 방안은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들이 무거운 침묵에 가슴을 짓눌리고 있을 때, 아이가 가볍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추위에 떨다가 몸이 녹자 졸음에 겨웠던 모양으로, 아이는 어느새 사내 곁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노인의 시선이 아이의 얼굴에 가 닿고, 그렇게 한참 동안 아이의 자는 양을 보고 있더니, "애빌 빼닮았구먼. 일루 펜하게 눕혀라" 자신이 깔고 있던 요의 한 귀를 비켜 주었다. 사내가 아이를 안아 눕히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사내가 아이에게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못 올 덴지 알지만 어린 것이 너무 불쌍해서……. 아부님, 전 아무래도 오래 못 갈 것 같습니다" 사내의 말에 노인이 벌컥 역정을 냈다. "그렇게 많은 목숨을 잡아묵고도 오래 못 살어" 그러자 사내가 처음으로 자신의 일을 변명했다. "미쳤지요. 지가 미쳤지요. 세상에 지 여편네가 그런 꼴을 당하고도 안 미칠 놈 있답디여" 사내의 눈에 핏발이 서는 듯했다. 노인도 지지 않았다. "그런 꼴을 당한 놈이 어디 니놈 혼자뿐이었다냐. 피했으면 되는 거여. 눈 꾹 감고 피해 살았으면 되는 거여. 우리 조상님들은 다 그렇게 이 마을을 지켜 온 거여" 노인과 사내가 격양해서 다투고 있을 때 방문 밖에서 젊은 아낙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님, 진지상 차렸는디요" "들여보내라" 젊은 아낙네가 밥상을 들여왔다. 노인이 말했다. "묵어라. 묵구 나서 나허구 갈 데가 있다" "……?" 사내가 노인을 건네다보자 노인은 아랑곳없이 의관을 챙겼다. 흐트러진 머리칼을 모아 다시 상투를 꼽고, 갓을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었다. 사내가 시늉만으로 상을 물렸다. 노인이 먼저 일어섰다. "자, 가보자" 노인과 사내가 방문을 나서자 청년이 놀란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이 밤중에 어디를 가시려고 이러십니까?" "이 밤 안으로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그렇다면 저도 따라가겠읍니다" 노인이 손을 저어 청년을 물리쳤다. "일 없다. 닌 따라올 곳이 못돼" 그들은 한실 골짜기로 접어들었다. 인기척에 놀란 밤새들이 푸드득, 숲 사이를 날아다녔다. 골짜기가 깊어짐에 따라 달빛도 스며들지 않았다. 둘은 길을 더듬으며 자칫 넘어지곤 했다. 사내가 말했다. "지가 앞장서지라우" 사내는 노인이 한실 골짜기로 접어들 때부터 여렴풋이 행선지를 짐작하고 있었다. 노인이 선선히 사내에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골짜기를 타고 올라 산등성이에 이르렀을 때에는 둘다 그르륵, 그르륵, 가래를 끓이고 있었다. 노인이 사내를 불렀다. "쉬었다 가자" 노인이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끓는 가래를 뱉어내었다. 사내 역시 노인에게서 떨어져 앉아 피 섞인 가래를 뱉어내었다. 노인이 사내를 힐끗거렸다. "무슨 병이냐?" 사내는 구태여 숨기지 않았다. "폐병인 모양이우" 노인이 물끄러미 사내를 건네다보며 가래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 눈에 흑이 들어가기 전에 니놈을 이곳으로 끌고 오다니, 신명께서 도우셨다.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 사내가 일어서서 골짜기 아래를 눈으로 더듬었다. 골짜기에서부터 부챗살처럼 펼쳐나간 벌판에는 가득히 달빛이 내려앉고 있었다. 달빛, 달빛뿐이었다. 그 달빛에 사내는 어쩐지 눈이 시렸다. 사내는 마른 눈을 비비고 또 비비며 달빛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달빛 속에서 흰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몰려가고 있었다. 사내의 귀에 가득히 꽹과리 소리가 밀물져 들어왔다. 사내는 바로 사내가 선 자리에 뼈를 묻히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 그만 가보자" 노인이 이번엔 앞장을 섰다. 등성이의 가르마길을 타고 오르자 산 중턱쯤에서부터 숲이 끊기고 벌거벗은 민둥산이 나타났다. 갑자기 산바람이 세차게 몰아쳐서 그들을 허위적거리게 했다. 노인이 두루마기 자락을 움켜잡고 바람 속에 서서 민둥산을 훑어보았다. "버렸어. 산두 그때 다 버렸어. 포탄으루 맥이란 맥은 다 끊어 버리구…… 다아 니눔들 때문이여" 사내도 노인의 시선을 따라 민둥산의 곳곳에 움푹움푹 패여 있는 포탄자욱들을 보았다. 새삼스럽게 사내의 귀에는 쾅쾅 터쳐나던 포탄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사내가 마치 그것들을 털어버리려는 듯 머리를 흔들며 빨리 말했다. "가지라우" 민둥산을 가로질러 다음 골짜기에 이르자 기울기가 비교적 완만한 평지가 나왔다. 노인이 멈추어 섰다. "여기여" 노인이 사내를 돌아보았다. "그래도 맥이 다치지 않은 데라군 이 산에서 여기뿐여" 사내는 평지의 진솔 사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봉분들을 보았다. 사내가 얼굴에 두려운 기색을 떠올리며 봉분들에서 눈을 돌렸다. "사죄해라. 이게 다 니놈 때문에 생기신 원혼들이여" "……" 사내가 머뭇거리자 노인이 날카로운 음성으로 재촉했다. "아, 뭘 해? 빨리 엎드려 잘못을 빌지 않구" 사내가 가까운 봉분 앞에서 이배를 올리고 무릎을 꿇자, 노인이 뒤에서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게 을득이여" 사내는 노인의 떨리는 음성을 듣는 순간, 가슴 속 저 밑바닥에서부터 무언가 뜨거운 것들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회오도, 분노도, 슬픔도 아닌 어떤 형언키 어려운 것들이 저 골짜기 아래 가득한 만공(滿空)의 달빛처럼 사내를 부풀리는 것이었다. 사내의 얼굴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져 내려 마른 풀잎을 적셨다. 사내가 하나하나 봉분을 옮겨가며 무릎을 꿇을 때마다 노인은 뒤에서, 그게 당숙 둘째 자제여, 그게 사촌형님 손자여, 그게 뉘여, 사내에게 일일이 소개를 했고, 그럴 때마다 사내는 잠깐씩 얼굴들을 떠올리곤 했다. 맨 끝에 있는 봉분에 이르러 사내가 이배를 하고 무릎을 꿇었을 때, 노인이 사내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건……. 니놈에 처여" 사내가 눈을 들어 봉분을 바라보았다. 문득 사내의 시선에 아내의 시체가 비쳐왔다. 발가벗은 채, 사타구니 사이에 단도를 꽂고 나자빠진 모습이었다. 만혼의 아내가 처음 가졌던 아랫배 부분이 유난히 불러 보였었다. 사내의 입술을 뚫고 기어코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봉분을 옮길 때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비롯하여 차츰 차오르던 어떤 것들이 급기야 거센 분류가 되어 밖으로 터져나오는 것이었다. 사내는 두 손으로 아내의 시체를 파며 울었다. 노인이 길게 탄식을 했다. "허어, 아무리 인종이 막돼먹은 세상이라지만……" 낫으로 인종의 뒤통수를 찍으면서도 사내는 아내의 시체를 떠올렸었고, 공사판에서 함마를 휘두르면서도, 도살을 하면서도, 도망친 계집년을 찾으면서도, 막소주를 들이켜면서도 사내는 아내의 시체를 떠올렸었다. 사내가 일어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노인이 재촉을 했다. "뭘 꾸물거리는 겨. 빨리 일어서지 못허구" 사내가 울음이 멎지 않은 음성으로 노인에게 말을 건넸다. "또, 또…… 있단 말이우?" "있다" 노인은 다른 봉분들과는 달리 외따로 떨어져 있는, 그래서 사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한 봉분으로 사내를 데려갔다. 사내가 봉분 앞에서 엎드리려 하자, 노인이 만류했다. "그건 사죄헐 필요 띴다" "……?" "그건 니놈이여" "……예?" 노인이 차가운 시선으로 힐끗 사내를 쳐다보았다. "아, 우린 죄다 니놈을 죽은 사람으로 치부했으닝께. 설사 니놈이 살아 있는 걸 알았다손 치더라두 어떻게 니놈두 없이 다른 원혼들을 묻는단 말이여?" 노인을 바라보는 사내의 표정에 일순 애매한 표정이 스치자 노인이 사내의 표정을 피했다. "니놈은 호적에도 띴다. 사망신고를 했어. 살어남은 사람은 살어야허닝께……" 사내가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쿨룩, 쿨룩, 쿠루욱…… 온몸의 가래를 훑어올리는 듯한 심한 기침 끝에 사내는 한 웅큼의 피를 토해냈다. 노인이 부욱, 두루마기 자락을 찢어 사내에게 내밀었다. "닦어라" 사내가 잠자코 두루마기 자락을 받아 얼굴과 손의 피를 씻었다. 흰 두루마기 자락에 핏빛이 선명하게 묻어났다. 문득 사내의 두 눈에 달과 함께 수면에서 흔들리던 피묻은 얼굴이 어른거렸다. 사내가 말했다. "아부님, 전 인제 아무 데도 못 가겠수" 노인이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 니놈은 이 마을에서 살지 못할 놈여" "아무래도 죽을 목숨이우" "죽드라도 타쳐에 가서 죽어라" "아부님" 사내가 노인 앞에 엎드렸다. 노인이 백랍 같은 표정으로 그런 사내를 떼치고 일어섰다. "이 길루 곧장 떠나가라. 자식놈은 내가 맡으마" 노인과 사내가 마을 입구 정자나무 아래 다다랐을 때에는 달이 톱날같은 연봉에 걸려 있었다. 사내가 노인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아부지 그럼……" 사내가 말끝을 맺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노인이 손을 저었다. "어서 가" 사내가 몸을 돌려 비칠비칠 걷기 시작했다. 저만큼 떨어질 즈음에 노인이 사내의 등을 향해 외쳤다. "죽게 되믄 연락해라. 내 니놈 뒷수습은 해줄 테닝께" 이윽고 노인은 앞이 침침해지면서 사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노인이 선 자리에서 나무토막처럼 푹 쓰러졌다. 달이 졌다.  
21 입적2 외1편/김세형
편집자
3965 2010-06-24
10.07월 2호 시 입적 2 -법정 스님의 입적에 부쳐- 김세형 죽음이 티 없이 맑다 남아 있는 것이라곤 일체 미진도 없다 한 티끌이 온 우주를 머금고 있다고는 하나 그에겐 한 티끌도 남아있질 않다 삶이 티 없이 맑았으니 죽음 또한 티 없이 맑다 청정법구다 아니, 청정 하늘이다 입적을 뒤적거리지 마라 입적은 있었으나 흔적은 없다 흔적이 없는데 사리인들 남아있겠느냐 그의 흔적을 찾지 마라 그는 본래 온 바도 간 바도 없는 卍行이었나니 그를 찾는 자 제 자신을 잃으리라 간 밤 호수에 빠진 달을 보고 컹, 컹, 개처럼 짖지 마라 고개 들어 청정 하늘이나 올려다보라 네가 거기 있지 않느냐 어느 주례사 김 세형 피고 두 사람의 죄목은 사랑! 두 사람의 사랑의 죄가 심히 막중하여 두 사람의 자유를 영원히 박탈하지 않을 수 없음! 피고 두 사람을 종신형에 처함! 부디 두 사람은 사랑의 감옥 안에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딴 짓 하지 말고 착실히 모범수로 살아갈 것! 때때로 지지고 볶고 살아갈지라도 탈옥은 아예 꿈도 꾸지 말 것! 만약 수형 생활을 착실히 해나가다 서로가 못 견디게 지겨워져 돌이킬 수 없이 서로를 혐오하게 되면 두 사람은 즉각 감옥 안에서 석방된다는 점에 유의할 것! 종신토록 함께 살아가려면 두 사람은 사랑의 감옥 안에서 서로 쉼 없이 사랑의 죄악을 저지를 것! 약력-2005년 《불교문예》봄호로 등단 저서-『모래인어』『사라진 얼굴』 이메일-poemdream@hanmail.net  
20 다자이 오사무의 <직소>와 박상륭의 <아겔다마>
주진
6161 2010-06-21
내가 좋아하는 소설 <직소>와 <아겔다마>는 유다에 관한 소설이다. 같이 읽으면 더 흥미로울 듯하여 한자리에 놓아본다. <직소>는 유다가 예수를 은 삼십에 팔아넘기는 과정을 그린 것이고 <아겔다마>는 예수를 팔아넘긴 이후의 상황이다. 파렴치한과 배신자의 대명사로 불리는 유다의 심리가 이 두 소설 속에서 변명이라도 하듯이 생생하다. <직소>에서 유다는 예수에 대한 애증, 질투, 번민, 욕망 들로 가득하다. 이중적이고 탐욕스럽고 나약하고 비열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간적일 수밖에 없다. 예수를 위한 또 다른 속죄양인 것이다. 우리 모두 누구나 유다가 될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아겔다마>에서는, 예수를 팔아넘기고 돌아온 유다는 막달라 마리아의 아랫도리를 생각하다 자신을 돌봐주는 노파를 추행한다. 유다는 은 삼십을 받으러온 예수에게 노파의 수의값으로 줘버렸다며 억지를 부린다. 그러다 그는 예수에게 은 삼십을 거두어달라며 숨을 거둔다. 은 삼십은 예수의 목숨값이자 유다 자신의 목숨값인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1909~1948)는 일본현대문학의 대표작가로 제1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네 번의 자살 시도 끝에 결국 39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작품으로 <사양> <인간실격> <만년> <옛이야기>등이 있다. 박상륭(1940~ )은 1963년 사상계에 <아겔다마>로 등단했다. <열명길> <죽음의 한 연구> <칠조어론> <산해기> 등의 작품집이 있다. 그의 소설은 대부분 삶과 죽음의 근원을 다양한 종교, 철학, 동서고금의 신화 등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직소  예, 예. 차분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사람을 살려두어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의 원수입니다. 예, 모든 것을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있는 곳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산산조각 내어 죽여주십시오. 그 사람은 제 스승입니다. 주인입니다. 하지만 저와 동갑입니다. 서른넷입니다. 저는 그 사람보다 불과 두 달 늦게 태어났을 뿐입니다. 대단한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런 큰 차별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저를 얼마나 짓궂게 부려먹었는지요, 얼마나 조롱당했는지요. 아아, 이젠 족합니다. 참을 만큼 참아왔습니다. 화를 낼 때에 화를 낼 수 없다면 살아가는 보람도 없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얼마나 남모르게 그 사람을 감싸왔는지 모릅니다. 아니, 그 사람은 알고 있습니다. 분명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그 사람은 저를 짓궂게 경멸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오만합니다. 제게 신세를 많이 졌기에, 그게 스스로 느끼기에 안타까운 것입니다. 그 사람은 멍청할 정도로 자아도취가 심합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는 사실을, 무슨, 자신의 큰 단점인 것처럼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 사람은 뭐든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안달입니다. 어리석은 말입니다. 세상은 그런 게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굽실굽실해야만 하며, 그렇게 해서 한 걸음 한 걸음 고생해가며 사람들을 밟고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아무 것도 못합니다. 제 눈에는 새파란 애송이에 불과합니다. 만약 제가 없었다면 그 사람은 벌써 이미 예전에 그 무능하고 멍청한 제자들과 어딘가에서 굶어죽었음이 분명합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그래요. 그것 보세요. 제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야고보, 요한, 안드레, 도마, 얼간이들이 모여 어슬렁어슬렁 그 사람을 따라다니며, 소름끼치는 달콤한 아부나 떨면서 천국이 어쨌다는 둥 바보 같은 걸 정말로 믿으며 열광하여, 그 천국이 가까이 왔다면 저놈들은 모두 우의정이나 좌의정이라도 되려는 건지. 멍청한 놈들입니다. 그 날도 역시 빵도 없어 어쩔 줄을 몰라 할 때, 제가 그 사람에게 설교를 시키고는 군중으로부터 몰래 헌금을 받아내어, 또한 동네 부자한테서 물건들을 걷어 들여가며 묵을 곳까지 마련해주고 먹을 것과 입을 것까지 빈틈없이 준비해줬더니, 그 사람은 고사하고 멍청한 제자들마저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습니다. 고맙다고 말하기는커녕 그 사람은 저의 이처럼 나날이 계속되는 고생을 모르는 척하고 언제나 말도 안 되는 주문을 하여,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 물고기 밖에 없을 때조차도 눈앞에 있는 군중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라는 둥 억지를 부리기에 간신히 사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저는 그 사람이 하는 기적을 도와주는, 위험한 마술의 조수를 지금까지 몇 번이고 해왔습니다. 저는 이래봬도 절대 인색한 놈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저는 대단한 호사가입니다. 저는 그 사람을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어린아이처럼 욕심이 없고, 제가 하루하루 빵을 얻기 위해 돈을 열심히 모아도, 곧 그것들을 한 푼도 안 남기고 헛되게 써버리고 말이죠. 하지만 저는 그것을 억울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인 것입니다. 저는 본래 가난한 상인이었으나 그래도 '정신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제가 고생해가며 모아놓은 자그마한 돈들을 아무리 어이없이 낭비해도 저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습니다만, 그렇다면 제게 가끔 부드러운 말 한마디 건네주어도 될 듯싶은데도 그 사람은 항상 짓궂게 굽니다.  한 번, 그 사람이 봄날에 해변을 걸으며 문득 제 이름을 부르고는 “네게도 신세를 많이 진다. 너의 쓸쓸함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항상 성난 표정을 짓고 있으면 안 된다. 쓸쓸할 때에 쓸쓸한 표정을 짓는 일은 위선자나 하는 일이다. 쓸쓸함을 사람들이 알아보도록 더욱 어두운 안색을 하고 있을 뿐이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너는 쓸쓸할 때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며 깨끗하게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는 미소를 지어야 한다. 모르겠는가. 쓸쓸함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네 진실된 아버지만이 알아주시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느냐. 안 그런가? 쓸쓸함은 누구에게나 있다.” 라고 말씀해 주셔서, 저는 소리를 내어 엉엉 울어버리고 싶어, 아뇨, 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알아주시지 않더라도 단지 당신 한 사람만이 알아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다른 제자들이 아무리 깊이 당신을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사랑합니다.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베드로나 야고보 같은 이들은 그저 당신을 따라 다니며 무언가 좋은 일이라도 있을까 하고, 그런 것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만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을 따라다녀 봤자 얻을 것도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당신 곁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당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저도 곧바로 죽겠습니다.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저는 항상 혼자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멍청한 제자들 곁을 떠나, 또한 하늘에 계신 아버지 말씀 같은 것을 가르치지 말고, 소박한 백성의 하나로 어머님이신 마리아님과 저, 이 셋이서 조용히 한 평생 오랫동안 살아가는 일입니다. 제 마을에는 아직 제 작은 집이 남아있습니다. 나이든 아버지와 어머니도 계십니다. 매우 넓은 복숭아밭도 있습니다. 봄, 지금쯤은 복숭아꽃이 펴서 경치가 훌륭합니다. 평생 편히 살아가실 수 있습니다. 제가 항상 곁에 있으면서 모시고자 합니다. 좋은 부인을 맞이하십시오.  제가 그렇게 말씀드리자 그 사람은 살며시 웃으시며, “베드로나 시몬은 어부다. 아름다운 복숭아밭도 없다. 야고보도 요한도 가난한 어부이다. 그들에게는 그런, 평생을 안락하게 지낼만한 땅이 어디에도 없다.” 라고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는 다시 해변을 조용히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만, 전에도 후에도 그 사람과 편안히 말을 나눌 수 있었던 건 그때 한 번 뿐이며, 그 이후에는 절대 제게 마음을 열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 사람이 죽으면 저도 함께 죽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제 것입니다. 그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어야 한다면, 건네주기 전에 제가 그 사람을 죽여 드리겠습니다. 아버지를 버리고 어머니를 버리고, 태어난 땅을 버리고 저는 오늘까지 그 사람을 따라 걸어왔습니다. 저는 천국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믿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부활도 믿지 않습니다. 왜 그 사람이 이스라엘의 왕이란 말입니까. 멍청한 제자들은 그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믿고,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라는 것을 그 사람으로부터 전해 듣고는 흔희작약(欣喜雀躍)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실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그 사람은 약속했으나 이 세상은 결코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말하는 것, 하나부터 열까지 엉터리입니다. 저는 전혀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사람의 아름다움만은 믿고 있습니다. 그토록 아름다운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 사람의 아름다움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 뿐입니다. 저는 아무런 보수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따라 걸으며, 천국이 가까웠고, 그 때 가서는 훌륭히 우의정이나 좌의정이 되고자 하는 생각도, 그런 천박한 욕심도 없습니다. 저는 그저 그 사람 곁을 떠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그저 그 사람 곁에서,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그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으로 좋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사람이 설교하는 것을 멈추고 저와 단둘이서 평생 오랫동안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아아아, 그렇게만 된다면! 저는 얼마나 행복할까요. 저는 지금 이 현세의 기쁨만을 믿습니다. 다음 세상의 심판 같은 것을 저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저의 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애정을 왜 받아주시지 않는지요. 아아, 그 사람을 죽여주십시오. 나으리. 저는 그 사람이 있는 곳을 알고 있습니다. 안내해드리지요. 그 사람은 저를 능욕하고 증오하고 있습니다. 저는 미움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나 제자들의 빵을 마련하고 하루하루 굶주림으로부터 견디어내고 있는데도 왜 저를 그토록 짓궂게 경멸하는지요. 들어주십시오. 엿새 전 일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베다니에 있는 시몬 집에서 식사를 하고 계실 때, 그 마을에 사는 마르다 녀석의 누이동생인 마리아가 나드 향유를 가득 채운 석고로 된 통을 그 사람 머리 위에 확 퍼부어 발까지 적시고는, 그래놓고서도 사과하기는커녕 차분히 앉고서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그 사람의 젖은 두 발을 정성껏 닦아주었으며, 향유 냄새가 집안에 가득 차고 매우 기이한 분위기였기에 저는 왠지 매우 화가 나서, ‘실례되는 짓을 하지 말라!’ 고 그 계집에게 소리쳤습니다. 이걸 보게, 이처럼 옷이 젖어버리지 않았느냐, 더구나 이렇게 비싼 기름을 퍼붓다니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어쩌면 너는 그리도 어리석은가. 이 정도 기름이라면 삼백 데나리온이나 하지 않겠느냐, 이 기름을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더라면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아까운 짓을 하면 곤란해, 라며 저는 한참 혼을 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저를 노려보며 “이 여자를 괴롭게 하지 말라. 이 여자는 내게 매우 좋은 일을 한 것이다. 가난한 자들에게 돈을 주는 일은, 너희들은 지금부터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냐. 내게는 더 이상 대접을 할 수 없게 되리라. 그 이유는 말하지 않겠다. 이 여자만은 알고 있다.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 지낼 준비를 위함이다. 너희들도 잘 기억해두어라.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나의 짧은 일생을 전할 곳에서는 반드시 이 여자가 오늘 행한 일도 기념하여 전해지리라.” 라고 말을 맺었을 때에 그 사람의 창백한 볼은 어느 정도 상기되어 붉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여느 때와 같은 과장된 연극이라 생각하고 태연하게 흘러들을 수 있었으나, 그것보다도 그 때 그 사람 목소리에, 그리고 그 사람 눈빛에 지금까지 없었던 기이한 것이 느껴져, 저는 순간 당황하여, 나아가 그 사람의 살며시 붉어진 볼과 약간 눈물이 고인 눈을 잠시 보고는 문득 알아차린 것이 있었습니다. 아아, 말도 안 됩니다, 입에 담는 것조차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 사람은, 이런 가난한 시골여자에게 사랑, 은 아니지만, 설마 그런 일은 절대 없겠으나, 하지만 위험한, 그것과 닮은 이상한 감정을 가진 것이 아닐까. 그처럼 위대한 사람이, 한낱 무지한 시골여자에게 한순간이라도 특수한 사랑을 느꼈다면, 그건 일대 실수이자 돌이킬 수 없는 큰 추문. 저는 사람의 치욕적인 감정을 선천적으로 잘 알아차립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런 점을 저질적인 후각이라고 여겨져 싫어합니다만, 한번 슬쩍 보기만 해도 사람의 약점을 남김없이 가려내고 마는 예민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리 약간이라고 해도 그 배우지 못한 시골여자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는 것은 역시 틀림없습니다. 제 눈이 잘못 봤을 리가 없습니다. 분명 그렇습니다. 아아, 참을 수가 없습니다.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 사람도 이런 꼴을 보이기 시작하면 이제 끝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추태의 극치라고 여겨졌습니다. 그 사람은 지금까지 여성들이 아무리 사모해도 항상 아름답고 물처럼 고요했습니다.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끝입니다. 갈 데까지 간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은 아직 젊은 나이이며, 그 정도는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말할지는 모르지만, 그렇다면 저도 동갑입니다. 더구나 그 사람보다 두 달 늦게 태어났습니다. 젊음에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인내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 하나만 바라보고 이토록 어느 여자에게도 마음이 동한 적은 없습니다.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는 언니 마르다가 몸집이 좋고 소처럼 크며 성격도 거칠고 성급할 줄밖에 모르는, 전혀 장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골여자인데 반해, 그녀는 전혀 달라 몸집도 가냘프고 피부는 투명할 정도로 창백하여 손발도 통통하며 작고, 마치 호수처럼 깊고 맑은 큰 눈이 항상 꿈꾸듯 멍하니 멀리를 바라보는 듯하며, 마을에서는 모두가 이상하게 느낄 정도로 품위 있는 여자였습니다. 저도 생각했습니다. 읍내에 나갔을 때 흰 비단이라도 몰래 사다 주려고 했습니다. 아아, 이제 더 이상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저는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요. 그렇습니다. 저는 안타까운 겁니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발을 동동 구를 정도로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젊다면 저도 젊습니다. 저는 재능도 있으며 집도, 밭도 있는 훌륭한 청년입니다. 그래도 저는 그 사람을 위해 제 특권을 모두 버려왔습니다. 속았습니다. 그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나으리. 그 사람은 제 여자를 빼앗아갔습니다. 아니, 아닙니다! 그 여자가 저로부터 그 사람을 빼앗은 것입니다. 아아, 그것도 아닙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모두 엉터리입니다. 한 마디도 믿지 말아 주십시오.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터무니없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 경박스러운 사실 같은 건 전혀 없습니다. 추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안타깝습니다. 가슴을 쥐어뜯고 싶을 정도로 안타까웠단 말씀입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아, 질투란 어쩌면 이토록 괴롭고도 사악한 감정일까요. 제가 이토록 목숨을 버릴 정도로 그 사람을 사모하고, 오늘까지 모셔왔는데도 제게는 단 한마디 부드러운 말씀을 건네주지도 않은 채, 오히려 저런 미천한 시골여자에 대해 얼굴을 상기시켜가며 감싸주고 말입니다. 아아, 역시 그 사람은 무기력합니다. 갈 데까지 갔습니다. 이제 그 사람한테는 가망이 없습니다.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냥 사람일뿐입니다. 죽어도 아쉬울 건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문득 끔찍한 일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악마가 씌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때 이후로 그 사람을 아예 제 손으로 죽여 버리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는 죽임을 당할 분이 틀림없습니다. 또한 그 사람도 억지로 자신이 죽임을 당하려는 것처럼 종종 보일 때도 있습니다. 제 손으로 죽입니다. 다른 사람 손으로 죽임을 당하게 하기 싫습니다. 그 사람을 죽이고 저도 죽습니다. 나으리, 눈물을 보여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 예, 이제 울지 않겠습니다. 예, 예. 차분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다음 날, 저희들은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예루살렘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대군중, 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그 사람을 따랐으며, 이윽고 예루살렘 성이 가까워지자 그 사람은 한 마리 늙은 당나귀를 길가에서 발견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그것을 타고서, 이는 바로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라는 예언대로라며 밝은 표정으로 가르쳤으나, 저는 혼자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리도 딱한 몰골입니까. 기다리고 기다린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이것이 그 다윗 자손의 모습이었는가. 그 사람이 평생 동안 염원했던 모습이란, 이 늙은 나귀를 타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딱한 모습이었는가. 저는 더 이상 연민 외에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실로 비참한, 멍청한 삼류연극이라도 보고 있는 듯하여, 아아, 이제 이 사람도 다 살았다. 하루를 살면 하루를 산만큼 경박한 추태를 보일 뿐이다. 꽃은 지기 전이라야 꽃이다. 아름다울 때 잘라야만 한다. 그 사람을 가장 사랑하고 있는 건 나다. 아무리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아도 좋다. 하루라도 빨리 그 사람을 죽여야 한다며, 저는 드디어 이처럼 가슴 아픈 결심을 굳힐 따름이었습니다. 군중은 시시각각 그 수가 늘어나고, 그 사람이 지나가는 길 위에 빨강, 파랑, 노랑, 가지각색으로 그들의 옷을 던졌으며, 어떤 이는 종려가지를 가져와 그 가는 길에 깔고는 환호를 지르며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며 좌우로부터 휘어 감듯이 몰려오더니, 나아가서는 파도처럼 나귀와 그 사람을 붙잡고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고 열광하며 노래하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나 요한, 바돌로매, 그밖에 다른 제자들은 멍청하게도 이미 천국을 눈앞에서 본 것처럼, 마치 개선하는 장군 곁을 따르는 것처럼 기뻐 날뛰고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 껴안으면서 눈물 젖은 입맞춤을 하고, 고지식한 베드로는 요한을 끌어안으며 큰 소리로 엉엉 울어대는 판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저도 그 제자들과 함께 여러 난관을 뚫고 포교를 위해 걸어온 고난의 세월이 머리에 떠올라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렇게 그 사람은 성전으로 들어가 당나귀에서 내리고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끈을 줍고서 그것을 휘두르며 성전에서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고, 소와 양도 그 끈으로 만든 채찍을 들고서 전부 성전에서 쫓아내고는 성전 안에 있는 많은 상인에게 말하기를 “모두 썩 나가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며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 온화한 분이 이처럼 술주정뱅이처럼 부질없이 난리를 피운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신이 나갔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놀라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에게 묻자, 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너희들, 이 성전을 헐어버려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워 주리라”고 하기에, 과연 우직한 제자들도 너무나도 어이없는 말을 듣고서 믿어지지 않는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그 사람의 유치한 허세임이 분명하다. 그 사람의 신앙으로써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래도 그렇지, 끈으로 된 채찍을 휘두르며 힘없는 상인들을 쫓아내다니, 참으로 딱한 허세입니다. 기껏 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저항이란 이 정도 뿐입니까. 비둘기파는 이의 의자를 걷어찰 정도입니까, 하며 저는 비웃으며 물어보려고까지 했습니다. 이미 이 사람은 안 됩니다. 자포자기인 상태입니다. 자중자애(自重自愛)를 잊어버렸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우치기 시작한 듯하여, 더 이상 체면이 깎이기 전에 일부러 제사장에게 잡혀 이 세상과 작별을 고하고 싶었겠지요. 저는 그것을 떠올렸을 때 분명 그 사람을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런 허영심에 가득 찬 도련님을 지금까지 일편단심 사랑해온 제 어리석음도 쉽사리 웃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이윽고 그 사람은 성전에 모인 군중들을 앞에 두고 지금까지 했던 말 중 가장 심하고, 오만무례한 폭언을 닥치는 대로 소리쳤습니다. 그렇습니다. 분명 자포자기입니다. 저는 그 모습이 추잡하게까지 비쳐졌습니다. 죽고 싶어 안달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外飾)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外飾)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흉내 내는 것조차 불결합니다. 큰일 날 소리를 하는 놈이다. 그 사람은 돌았습니다. 또한 그 외에도 기근이 있다는 둥, 지진이 일어난다는 둥,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고, 땅에는 사람 시체가 넘쳐나며 그것을 쪼아 먹는 독수리가 모인다는 둥, 사람들은 그 때 통곡하며 이를 갈 것이라는 둥, 실로 터무니없는 폭언을 서슴지 않는 것입니다. 어쩌면 저렇게도 사려 깊지 않은 말들을 늘어놓는 것일까요. 잘난 척 하는 것도 한도가 있습니다. 자기 주제도 모르고 말입니다. 속 편한 소리를 합니다. 이미 그 사람 죄는 피할 수 없습니다. 분명 십자가. 이제 확실합니다.  제사장이나 장로들이 대제사장 가야바의 관정(官廷)에 몰래 모여 그 사람을 죽이는 일에 대해 결의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것을 어제 동네 장사꾼으로부터 들었습니다. 만약 군중들 눈앞에서 그 사람을 사로잡으면, 어쩌면 군중이 폭동을 일으킬지도 모르므로 그 사람과 제자들만이 있는 곳을 발견하여 신고한 자에게는 은 삼십을 준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어차피 죽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의해 잡히기 전에 내가 하자. 이것이 오늘까지 저의, 그 사람에게 바친 일편단심 애정에 대한 마지막 인사말입니다. 제 의무입니다. 내가 그 사람을 팔아버리자. 가슴 아픈 처지입니다. 누가 제 꾸준한 사랑의 행위를 정당하게 이해해 줄까요. 아니,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제 사랑은 순수한 사랑입니다. 사람들이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 천박한 사랑이 결코 아닙니다. 저는 영원히 그 사람으로부터 증오를 받겠지요. 하지만 이 순수한 사랑 앞에서는 어떠한 형벌도, 어떠한 지옥의 노여움도 문제되지 않습니다. 저는 저의 사는 방식대로 일관성 있게 살아가렵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굳게 결심했습니다. 저는 몰래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유월절 당일이었습니다. 저희들 스승과 제자 열 세 명은 동산 위 낡은 요릿집의 침침한 이층을 빌려 명절 연회를 열기로 하였습니다. 모두 식탁에 앉아 막 잔치를 시작하려던 참에 그 사람이 겉옷을 벗었습니다. 저희들은 대체 무엇을 하려는가 하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탁상 위에 있던 물통을 들고서는, 그 물통 안에 든 물을 구석에 있던 작은 대야에 붓고서, 흰 수건을 가져다가 자신의 허리에 두르고 대야의 물로 제자들의 발을 차례차례 씻어주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넋을 잃고는 우왕좌왕할 뿐이었으나, 저는 왠지 그 사람의 숨겨진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은 쓸쓸했던 것입니다. 극도로 마음이 쇠약해져서 이제는 완고하고 무지한 제자들에게까지 의지하고 싶은 심정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불쌍하게도 그 사람은 자신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저는 갑자기 강력한 오열이 목구멍을 뚫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갑자기 그를 끌어안고 함께 울고 싶어졌습니다. 아아, 불쌍하게도, 당신이 죄를 지은 건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은 항상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항상 옳았습니다. 당신은 항상 가난한 자의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언제나 빛을 발할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당신은 분명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저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저는 당신을 팔려고 근래 이삼일 동안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싫습니다. 당신을 팔다니, 무슨 그런 당치도 않은 생각을 했던지요. 안심해주세요. 지금부터는 오백의 관리, 천의 군대가 온다 해도 당신의 몸에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합니다. 놈들은 당신을 노리고 있습니다. 위험합니다. 지금 당장 여기서 도망칩시다. 베드로도 오라, 야고보도 오라, 요한도 오라, 모두 오라, 우리의 선한 주를 지키고 평생 오래도록 살자며, 마음속으로부터 사랑의 말이, 말로는 하지 못했으나 가슴속에서부터 끓어올라왔습니다. 그날 그때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일종의 숭고한 영감에 감명을 받아 뜨거운 회개의 눈물이 은혜롭게 볼을 따라 흘러, 이윽고 그 사람은 제 발도 조용히 정성껏 씻어주고, 허리에 둘렀던 수건으로 부드럽게 닦아주어, 아아, 그 때의 촉감이란. 그렇습니다. 저는 그 때 천국을 보았는지도 모릅니다. 저 다음에 빌립의 발을, 그 다음에 안드레의 발을, 그리고 다음에 베드로의 발을 씻어주는 차례였으나, 베드로는 그처럼 우직한 자였으므로 수상한 마음을 숨겨둘 수가 없어, 주여, 당신은 왜 제 발 같은 것을 씻으려 하십니까, 하고 다소 불만스럽게 입술을 내밀며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하고 은유적으로 말한 뒤에 베드로 발밑에 앉았으나 베드로는 기꺼이 거절하며, 아뇨, 안됩니다. 영원히 제 발 같은 것을 씻으시면 안 됩니다. 너무도 황송합니다, 라며 그 발을 오므렸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조금 큰 목소리로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하며, 매우 강하게 말씀을 하시기에, 베드로는 허둥지둥 대며 아아, 잘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제 발만이 아니라 손과 머리도 마음껏 씻어 주십시오, 하고 머리를 깊이 숙여가며 부탁을 드리기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으며, 다른 제자들도 몰래 미소를 지어, 어딘지 모르게 방안이 밝아진 듯했습니다.  그 사람도 조금 웃으며 “베드로야, 발만 씻으면 이제 그것으로 네 온몸은 깨끗해졌다. 아아, 너뿐 아니라 야고보도 요한도 모두 흠 없는 깨끗한 몸이 된 것이다. 그러나,” 라고 말을 하려다가 문득 허리를 펴고 순간 고통을 참는 듯이 매우 슬픈 눈을 하시고는, 곧 그 눈을 세게 감더니, 감은 채로 말했습니다. “모두가 깨끗하면 좋으련만.” 저는 놀랐습니다. 당했다! 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을 팔려던, 불과 몇 분전까지의 어두운 마음을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때는 아니었습니다. 절대 나는 아니었어! 나는 깨끗했었습니다. 내 마음은 변해있었습니다. 아아, 그 사람은 그걸 모릅니다. 그걸 몰라! 아니, 아닙니다! 하고 목구멍까지 나오려던 절규를 저는 침을 삼키는 약하고 비굴한 마음을 삼켜버렸습니다. 말할 수 없습니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으니, 저는 역시 깨끗해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는, 나약하게 긍정하는 마음이 고개를 들더니 점점 그 비굴한 반성이 추악하고 흑암처럼 부풀어 올라 저의 오장육부를 휘몰아쳐, 반대로 점차 분노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에이, 안되겠다. 나는 안 된다. 그 사람에게 철저히 경멸당하고 있다. 팔자. 팔자. 그 사람을 죽이자. 그리고 나도 함께 죽는 것이다, 하고 전부터 마음먹었던 결의가 다시금 눈을 떠, 완전히 복수의 악귀가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내 마음이 두 세 번이나 뒤집히며 변화한 대동란은 모르는 듯, 이윽고 윗도리를 입고 복장을 바로 하여 편안히 자리에 앉으시며 실로 창백한 얼굴로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주라 또는 선생이라 하니 너희 말이 옳다. 나는 너희들의 주 또는 선생임에도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사이좋게 발을 씻도록 해야 한다. 내가 너희들과 언제까지나 함께 있을 수가 없으므로 이번 기회에 본을 보인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여야 한다. 스승은 반드시 제자보다 크니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잊지 않도록 하라.” 매우 우울한 말투로 소리 없이 식사를 시작하고, 문득 “너희들 중 한 명이 나를 판다.”며 고개를 숙여 신음하는 듯 흐느끼는 것과도 같은 괴로운 목소리로 말했기에 제자들 모두 크게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 사람 주변에 모여 각각 주여, 저입니까, 주여, 그건 저를 말씀하십니까, 하고 난리를 치고, 그 사람은 죽는 사람처럼 슬며시 고개를 흔들고는 “내가 지금 그 사람에게 한 조각 빵을 주노라. 그 사람은 매우 불행한 사람이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고 의외로 분명한 어투로 말한 다음 한 조각 빵을 들고 팔을 뻗은 후, 망설임 없이 제 입에 갖다 댔습니다. 저는 이미 마음을 정한 상태였습니다. 수치스러워하기 보다는 증오했습니다. 이제 와서 하는 그의 행동을 증오했습니다. 이처럼 모든 제자들 앞에서 공연히 모욕을 주는 것이 그 사람이 하는 지금까지의 복수입니다.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불과 물의 숙명이 나와 저놈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개가 고양이에게 주듯 한 조각의 빵을 내 입에 갖다 대고는, 그것은 그 놈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복수였던가요. 흥. 어리석은 놈 같으니라고. 나으리, 녀석은 지금 제게,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곧바로 식당에서 뛰쳐나와 어둠 속을 그저 달리고는 지금 이곳에 왔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이처럼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 사람을 벌하여 주십시오. 어떻게 하든 마음대로 벌하여 주십시오. 잡아 몽둥이로 쳐서 벌거벗겨 죽이시죠. 이제, 이제 더 이상 저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저건, 나쁜 놈입니다. 못된 사람입니다. 저를 지금까지 그토록 괴롭혔습니다. 하하하하, 젠장할. 그 사람은 지금 기드론 시내 끝 겟세마네 동산에 있습니다. 이제 그 이층에서 있었던 만찬도 끝났으며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지금쯤은 분명 하늘에 기도를 드리고 있을 시간입니다. 제자들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지금 가시면 아무런 어려움 없이 그를 잡을 수 있습니다. 아아, 새들이 울어 시끄럽군요. 오늘밤은 왜 이토록 새들의 울음소리가 귀에 거슬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리로 달려오는 도중에도 숲 속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습니다. 밤에 지저귀는 새는 보기 드뭅니다. 저는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으로 그 새들의 정체를 한 번 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멈추어 서서 고개를 기울이고는 나뭇가지 사이를 보았습니다. 아아, 저는 지금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나으리, 준비는 되셨습니까. 아아, 즐겁습니다. 기분이 좋군요. 오늘밤은 제게도 마지막 밤입니다. 나으리, 나으리, 오늘밤 이제부터 저와 그 사람이 훌륭히 어깨를 나란히 선 광경을 잘 보아두십시오. 저는 오늘밤 보라는 듯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겠습니다. 그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비하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그 사람과 동갑입니다. 같은, 훌륭한 젊은이입니다. 아아, 새 소리가 시끄럽군요. 너무도 귀에 거슬려 시끄럽습니다. 왜 이토록 새들이 소란을 피우는 것일까요. 지지배배, 지지배배 무슨 소란을 떠는 것일까요. 아니, 그 돈은? 제게 주시는 건가요? 저, 제게 은 삼십. 그렇군요, 하하하하. 아니, 사양하겠습니다. 얻어맞기 전에 그 손을 치우십시오. 돈이 좋아 고소한 것이 아닙니다. 손 치워! 아니, 죄송합니다. 받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상인이었습니다. 돈 때문에 저는 우아한 그 사람으로부터 항상 경멸을 당해왔었지요. 받겠습니다. 저는 어차피 상인입니다. 미움을 받고 있는 금전으로써 그 사람에게 훌륭히 복수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게 가장 어울리는 복수 수단입니다. 꼴좋다! 은 삼십으로 녀석은 팔립니다. 저는 전혀 울지 않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조금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예, 나으리. 저는 거짓말만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돈이 갖고 싶어 그 사람을 따라다녔습니다. 오오, 분명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제게 전혀 돈을 벌게 해주지 않는다고 오늘 확신했기에 상인답게 재빨리 돌아선 것입니다. 돈. 세상은 돈뿐입니다. 은 삼십. 매우 훌륭합니다. 받겠습니다. 저는 그저 상인일 따름입니다. 갖고 싶어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예, 예. 늦었군요. 제 이름은 상인인 유다. 헷헤. 가룟 유다라고 합니다. 아겔다마 (힌놈의 골짜기의 동남 예루살렘과 골짜기 맞은편 후미지고 나그네의 발걸음이 여간해선 머물지 않는 한곳에 오래되고 볼품없는 움막집이 한 채 있었는데, 그 움막집의 사립문 한쪽 기둥에 ‘가롯 유다’라는 문패가 걸려 있었다. 그 문패도 그 움막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영고와 성쇠, 봄바람 가을비에 시달리고 또 썩고 곰팡이가 피어 있어,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것은 그리스 문자로 씌어져 있었다.) 그날 밤엔-서력 기원 삼십년 니산달 열닷새 금요일-가롯 유다는 전에 없이 지치고 쇠약해져서 비틀 쓰러질 듯이 하고 돌아왔다. 길은 그날 오후에 억수로 쏟아진 소나기로 진구렁창이었다. 그러나 유다는 그런 건 개의치도 않은 듯이 그의 바짓가랑이는 흙투성이었다. 그는쫓긴 토끼마냥 불안스러워했고, 서두르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전의 상냥스러움은 찾아볼 수도 없이 퉁명스럽고 변태적인 침울한 사람으로 변해져 있었다. 광포와, 신음과, 이빨 부딪치는 소리는 앓는 수고양이를 연상시켰다. 그에게는 다만 예순다섯이나 되는 노파가 한 사람 있었을 뿐이었는데, 그녀가 촛불을 켜들고 유다 방으로 들어갔을 때도 유다는 진정되지 않은 듯이 맨바닥에 엎드려 기묘한 신음을 쥐어짜대고 있었다. 책상 위엔 언제나처럼 선지자 스가랴의 팸플릿이 반만쯤 펼쳐진 채 먼지를 덮어쓰고 있었고, 그 펼쳐진 갈피 위엔 펜이 녹슬은 펜대가 여전히 놓여져 있었다. 유다가 들어오고 하나 달라진 것은, 한번도 다음 장은 넘겨보지도 않은 것 같은 그 갈피 위에 함부로 던져놓은 듯한 한 꾸러미가 독사처럼 도사리고 있는 그것이었다. 노파는 조심해서 책상 위에다 촛불을 세워놓고 유다의 흙묻은 바지를 벗겨주려 했으나, 발길질을 해서 실패했다. 하는 수 없이 흙투성이 위에다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래도 이빨을 덜덜 떠는 걸 그치지 않았고, 신음도 더욱 심해졌다. 노파는 촛불 빛을 통해 한동안이나 유다를 지켜보고 서 있다가 슬며시 문을 열고 나와 버렸다. 무언지 자기로서는 이해할 수도, 그렇다고 같이 걱정해줄 수도 없는 것 같은 어떤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습기 섞인 어둠 저쪽 하늘에서 몇 별이 고향의 이야기를 속삭여주고 있다는 외에 그날 낮에 어떤 물결이 어떻게 격류지어갔는지에 대해선 조금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무언지 어제 저녁의 이맘때쯤의 느낌과 오늘은 약간 달라진 듯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는 했다. 뭐 그것은 제 육시쯤으로부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고, 제 구시쯤엔 천둥과 지진이 일어났다는 그런 변괴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도 마음 밑바닥으로부 이전에는 가져보지 못했던 어떤 것들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젊은 날에 지녔던 소박하고도 서러운 꿈같은 것이기도 했고 또 어떻게는 이보다도 더 나이 많은 날에 느끼게 되리라고 짐작되는 그러한 것이었다. 그런 것은 나이 서른을 넘으면서부터는 모르고 살아왔다. 막연하고 멍하게, 그리고 소박하게만 살았다. 행복도 몰랐고 불행도 몰랐다. 세월은 그녀에게 젖이 샘솟는 유방을 주었고, 또 그것을 빼앗았다. 그녀의 고향은 사마리아였는데, 그녀의 남편은 본 지방(예루살렘)사람으로, 힌놈의 골짜기 동남 예루살렘과 골짜기 맞은편의 한 구릉을 등진 곳에서 질그릇 굽는 것에 종사하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나이가 육십이 넘었으면서도 충직한 열심당이었으며, 또한 자기의 일에 싫증을 내지 않고 열심스럽고 조용하게 해치우던 늙은이였다. 열심당의 당원으로서 그를 아는 사람치고 그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지만 특히 유다는 누구보다 그를 따랐다. 그도 유다를 특별히 다정히 생각한 듯 했었다. 서로가 그렇게 생각한 데는 같은 노선 같은 운명에 처해 있다는 그런 이유뿐만은 아니었다. 당수 바라바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두 사람은 동지 이상의 친애의 정을 느꼈던 것이다. 사실 유다 쪽에선 아버지나 어머니의 얼굴도 기억할 수도 없는 채 가롯 땅으로부터 각 곳을 쓸쓸한 심정으로 진전하던 차에 갈릴리 포구에서 자기 또래의 한 푸른 눈의 사내를 만나 그로부터 위로를 얻고 또 그를 추종하였으나, 그 사람은 유다의 지상적인 갈증을 흡족히 해갈시켜주지 못하였으므로 유다의 가슴 밑바닥엔 언제나 외로움이 깊게 자리잡고 있었는데, -바라바를 알게 된 것은 이 당시였다-그것도 이 늙은 부부들에 의해 잊을 수 있는 것을 감사하였고, 또 노인 부부들 쪽에서도 옛날에 아들이 하나 있었으나, 집시패들이 스쳐지나간 뒤 종적이 묘연해 시름겹고 적적함이 더욱 뼈저리던 참이라, 자연히 서로들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라바들이 이 집을 드나들기 시작한 것도 오 년째나 되고 있었다. 삼 년 전에는 그렇게 충직하던 토기장이 영감도 로마 병사의 화살에 죽임을 당하긴 했지만, 그 후에도 여전히 바라바들은 필요할 때면 이곳을 이용하곤 했었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서 불행한 토기장이 미망인의 생활은 최저나마 보장되었다. 주로 유다의 노력이 컸다. 유다의 생활도 물론 그녀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유다는 적어도 그녀 한 사람에게만이라고 하더라고 상냥스럽고 인정이 많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렇던 유다가 오늘밤엔 사람이 여간 달라져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도 반달 가량이나 밖에서 지나다가 돌아온 날에 그렇다는 것은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전엔 언제나 몇 푼의 돈 꾸러미를 마루에다 던지곤 자기 이마에 가벼운 입맞춤을 했던 것이 아닌가. 그녀는 그렇게 훌륭하던 젊은이가 변해져 돌아온 것을 슬프게 생각했다. 그때 유다의 방으로부터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어중간한 모습을 하곤 습기 속에서 점점 더 적막해가는 밤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계속해서 다시 한번 노파를 부르는 날카로운 음성이 들여왔다. 그 소리는 흐느낌에 섞여 목구멍이 찢어지면서 나오는 소리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흡사 저 이탈리아식 주테가의 무한의 깊이로부터 울려와 닿는 것처럼 가라앉고 가련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억양에는 짙은 증오가 내포되어, 붉은 목소리로 느껴졌다. “여, 여요요, 할멈” 이전의 호칭과는 달랐다. 그전엔 어머니라고 불렀었다. 그녀는 잠깐 복잡한 생각에 잠겼던 것으로부터 깨어나서, 언제나처럼 머뭇거리면서. 그러면서도 아들 방에라도 들어가는 어머니같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이 찌그덕 소리를 냈다. “제발 좀 소리를 내지 않고 열 수는 없소? 고막이 찢어질 듯해. 제기랄.” 유다는 아까의 태도를 고침이 없이 신경질을 부렸다. 그러나 유다 자신도 문을 여닫을 때는 언제나 그런 소리가 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도 안 왔었소?” 유다는 희미한 목소리로 그러나 퉁명스러이 물었다. “참, 어떤 이가 왔다 갔지유. 저쪽 창턱에 추녀 그늘이 닿을 때 쯤이었어유.” 저쪽 창턱이란 동편쪽 벽의 중간쯤에 구멍처럼 뚫어놓은 곳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었다. 아마도 오전 열시쯤 되었을 때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거 왜. 눈이 갈색인 사람 말이유. 꼭 씨름판에나 찾아다니는 것 같은…….” 그제야 유다는 싸안았던 팔을 풀고 무서운 눈으로 노파를 쳐다보면서, “그래? 그럴 줄 알았어. 바라바였어. 바라바. 예수 바라바” 유다는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 이름을 음미하듯 했다. 그러나 어떤 의미가 있어 되뇌이는 것 같지는 않았고, 군것질하는 따위로 들렸다. 유다의 주먹엔 자기의 머리칼이 한움큼이나 쥐어져 있었다. 유다의 가슴속에 의미가 표출된 희생들이었다. 유다는 다시 또 발광하기 시작했다. 머리칼은 무언의 공모로서 그의 발광에 헌신적인 동조를 했고, 목구멍은 개구쟁이 녀석이 긁는 하프 소리로 유다를 고무했다. 사마리아 여인은 유다의 충혈된 사팔뜨기 눈이 자기를 무섭게 노려보면서 말하던 얼굴을 상기하곤 몸서리쳤다. 그래도 그냥 서서 유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유다의 눈은, 오른쪽은 갈색으로 똑바로 보는데, 왼쪽이 사시였다. 그런데 유다의 왼쪽 눈은 보통의 사팔뜨기와는 달라서 참으로 이상했다. 오른쪽이 갈색인 데 비해 왼쪽은 하늘색 바탕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이것은 위를 향해 시선을 보내는 눈이었다. 좀 문학적인 소질이 있다는 마태가 그 눈을 ‘기도하는 사튀로스’라고 표현한 뒤부터는 짓궂은 사람들은 유다를 부를 때면 흔히 마태의 ‘그럴듯한 표현’을 애써 사용했다. 얼마 동안인가가 그 방의 희미한 촛불 그늘 밑으로 흘러가고 난 뒤, 유다의 목구멍에선 흐느낌이 가래 끓지도 않았고, 더 발광하지도 않았다. 유다는 그렇다고 해서 잠이 든 것도 아니고, 생각을 그만둔 것도 아니었다. 엉뚱하게도 그는, 구레네 사람 시몬이 얼떨결에 고역을 당하게 된 것이라든가, 또는 처참한 표정으로 몸매에는 관심도 없이 십자가를 뒤쫓아가던 막달라 마리아의 치맛자락을, 한 로마 병정이 창 끝으로 들쳐보면서 게걸거리던 것 같은 작은 사건들을 눈을 감고 그렸다. “너의 샛서방하곤 며칠 밤이나 잤누? 나하곤 어때? 히히힛” 유다는 그 모든 광경을 가까운 언덕에서 보았는데, 로마 병정이 말한 ‘샛서방’이란, 기진해서 걸어가는 예수를 가리켰던 것이다. 사실을 말하면, 그때 유다는 예수를 얼마나 경멸했는지 모른다. 자기의 십자가도 감당치 못하는 사내가 ‘무거운 짐 진 자는 다 내게로 오라’는 것은 우스운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론 막달라 마리아의 아랫도리가 얼마나 욕심이 났는지 모른다. 팽팽하고 물큰해 보이는 두 가랑이가 창 끝에 의해 들쳐나 보였을 때, 유다는 참을 수 없어 숨을 헐떡이었던 것이다. 그전에도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항상 체모가 단정하였으므로, 얼굴의 아름다움밖에는 별달리 생각지 않았었다. 그 얼굴의 아름다움도, 예수와 가까이 하고부턴 범할 수 없는 고요함을 지니고 있어서 오히려 식을 정도라고 단념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그 병사의 야유는, 먼 곳의 여인을, 피부가 좋고, 매캐한 자취가 있고, 따스하고 물큰한, 자기 마을 샘각의 아낙으로 느끼게 해준 것이다. 사실 그녀로 말하면, 왕년엔 이름난 무희로, 총독의 시의 요셉의 사랑을 받았는가 하면 총독의 조카인 진위대 대장 가이우스 풀라커스 짝사랑의 여인이었다. 노파는 그제서야 깡마른 손을 뻗쳐 문을 밀고 나오려 했다. 그녀는 유다가 잠든 줄로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유다는 무슨 생각에선지 광포한 짐승보다도 더 날쌔게 뛰쳐 일어나 노파를 쓰러뜨렸다. 참으로 민첩하고 사나운 동작이었다. 유다의 신음은 아까와는 달리 발정된 짐승 우는 소리로 변했다. 눈은 찌푸러져 동공은 거의 보이지도 않았고, 헤벌린 입술 사이론 이빨 갈아대는 소리가 으드득 으드득하고 새어나왔다. 노파가 정신을 차릴 수도 없는 빠른 사이에 노파의 치마가 찢겼다. 다음엔 속옷 찢기는 소리가 그 방의 벽에 살점처럼 튀겼다. 노파는 있는 힘을 다해 발을 구르고 꼬집고 고함을 질러 반항해보았지만, 끝내는 오른편 팔을 분질려 기절하고 말았다. 유다는 이번엔 자기의 바짓가락을 찢었다. 가랑이에 붙었던 흙이 부스스 떨어졌다. 그리하여 그는 짐승의 한계에서도 더 아래쪽 길을 처벅처벅 걸어댔다. 그 거리에서는 누구나 몽유병자가 되는 것이다. 촛불은 켜둔 그대로 타고 있었다. 노파가 깨어났을 땐 날이 희끄무레 밝아올 무렵이었다. 유다는 책상 위에 엎드려 무엇을 열심히 쓰고 있었는데 두 개 째의 초도 반이나 더 닳았다. 노파는 팔이 쑤시는 통증으로 깨어나선 자기가 어떻게 하여 이렇게 되었던 것인가를 한참이나 생각했다. 유다가, 노파가 깨어났다는 것을 알고 게다가 그녀가 흐느끼고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자기가 썼던 모두를 다시 불태워버리고 난 뒤에 그리고도 조금 더 지나서였다. 노파는 흐느낌 이상으론 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흐느낌으로나 풀어보려는 듯이 집요하게 흐느낌에 매달리고만 있었다. “할멈, 제발 어서 집을 나가시오. 죽여놓기 전에, 죽여버리기 전에 말야.” 유다는 밤 사이에 귀신같이 변해진 핼쑥하고 기력없는 얼굴로 희미한 미소까지 띠면서 ‘죽이기 전에’만을 반복했다. 노파는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고, 또 견딜 수 없는 분노와 치욕으로 목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는 것 같았다. 그저 흐느끼면서 이를 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날이 밝기 전에, 자 어서 나가주시오. 제발 나 혼자 두어주시오. 우라질, 빨리 나가지 못해.?” 하고 괴롭게 외쳐댔다. “자, 받아라. 은 삼십 세겔이다 몸값이다. 몸값이야.” 유다는 스가랴의 팸플릿 위에 있던 꾸러미를 노파의 가슴팍에다 거칠게 던졌다. 그리고 유다가 다 탄 초 동강이의 불을 끄려 할 때, 그 사마리아 여인은 유다가 보는 앞에서 자기의 혀를 콱 깨물었다. 촛불도 꺼졌다. 새벽빛이 방안에 넘쳤다 그리고 잠시 후, 초 동강이의 심지가 굳어질 때쯤엔 그 노파도 운명했다. 눈은 뜬 채였다. 그 뜬눈 속에도 새벽의 어슴푸레함은 사양없이 파고들었다. 2 유다는 사흘을 두 번씩이나 보내기까지도 자리에서 한 번도 일어나질 않았다. 그 동안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던 것이다. 몸부림도 그렇게 심하게는 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하기야 처음 자리에 들었을 땐 노파를 등진 쪽으로 누웠었는데, 나중엔 죽은 노파 쪽을 향해 누워 있었던 걸로 보아서 몸을 두 번쯤 뒤쳤으리란 건 추측할 수 있었다. 그 외에 그 방안의 풍경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유다가 눈을 뜬 것은,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한 날로부터 엿새가 지난 두 번째 안식일 새벽, 닭이 세 홰를 울고 목을 움츠릴 때쯤이었다 .유다는 누군가 자기를 깨우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잠으로부터 서서히 깨어나던 참이었다. 그러나 그 깊은 수면 속을 헤엄치고 건너온 피로로 해서 어떤 것을 인식하기에는 얼마쯤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점차, 흐릿하게라고는 하여도 의식이 돌아오자, 그는 누군가가 자기의 이마를 짚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눈을 감고라도 그 손은 희고 가냘프며 그리고 부드럽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왠지 얼음장처럼 차고, 바닥에 가시라도 찔렸던 흔적이라도 있는 손처럼 느껴졌다. 그 느낌은 오관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그의 깊숙한 곳에 잠자고 있던 혼의 촉수로써 닿아진 것이었다. 유다는 그순간 무의식적으로 외쳤다. “랍비여, 당신의 손이니다.” 그러나 말이 혀끝에서 방울져 떨어지지는 못했고, 그저 탄 입술만 두어 번 움직였을 뿐이었다. 큰 나무 꼭대기의 마른 잎이 떨어져 땅에 와 닿을 만큼은 어느 쪽에서도 말이 없었다. 그 시간은 천년의 적막이 한 마른 잎에 축적되었다가 날라져내리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 무던히도 긴 시간을 유다의 이마 위의 손은 한결같이 부드러웠다. “랍비여, 당신은 아버지 같으니이다.” 결국은 유다가 참을 수 없어 진실되게 그러면서도 분노를 섞어 이렇게 외쳤다. “…….” 그러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도대체 당신은 무엇 때문에 나에게 오셨습니까?” 유다는 깊은 사념에 잠기면서 꺼질 듯이 뇌까렸다. “…….” “무엇을 나에게 더 원하십니까?” “…….” “나는 당신의 아버지가 내 몫으로 지워준 십자가를 훌륭히 졌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약간의 비겁만을 제외하면 훌륭했습니다. 그것으로 당신과 나와의 일은 끝난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제 또 나를 괴롭히려 하시오?” 이 말이 끝나자마자 자기 이마를 어루만지던 손이 잠깐 동안 바르르 떠는 것을 유다는 느꼈다. 그래서 유다는 눈을 번쩍 뜨고 자기 앞을 똑똑히 쳐다보았다. 유다의 눈은 승리에 넘쳐 있었다. 눈앞에는 하늘보다도 넓게 보이는 두 개의 파란 눈이 유다를 지켜보고 있었다. 웃음도 없고, 다정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미워하는 눈도 아닌, 의미가 바래지고 빛이 없는 눈이었다. 그 눈 속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포도주 담그는 사람이라고 해도 한 방울의 즙도 짜낼 수 없는 듯했다. 그 눈속엔 무(無)가 있었고, 휴지(休止)가 있었고, 그리고 그것은 불멸 자체이기도 했다. 그러나 유다는 그런 눈을 원하진 않았다. 증오든, 사랑이든, 그 어느 쪽의 의미를 담은 눈을 원했다. 유다로서는 그 눈을 견딜 수가 없었다. 유다는 다시 한번 패배했다. 유다는 있는 힘을 다해 발악적으로 일어나려고 했다. 유다의 손은 가냘프게 떨리고, 얼굴은 진땀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그리고 유다의 몸은 똥과 오줌으로 뭉개져 있었다. 유다는 그러나 몸을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쌕쌕거리는 목구멍으로 몇 마디의 말을 각혈할 수 있을 정도였다. “대체 무엇 때문에 다시 나를 찾느냐 말이오. 대체 무엇 때문에?” “…….” “당신은 저주받아 마땅합니다. 쌍십자가라도 당신에겐 오히려 부족했을 정도였소. 그래요. 부족했고 말고요. 로마 율법이란 건 엉뚱한 판결을 좋아한단 말야. 당신 같은 이는 십자가 대신 지하 감옥이 더 적당했을 것인데, 당신의 그 푸른 눈이 멀고 고름이 나고, 그 희디흰 손에 문둥병이 돋고, 그리고 당신의 그 냉정이 광란으로 변하고, 그리하여 골고다 언덕에 던져버려졌더라면, 당신이 참으로 메시야인지 아닌지가 판명되었을 것이오. 메시아라고 했더라도 지상적인 것에 굴복하였을 것인데…….” “…….” “아마도 당신은 배고픈 거지 계집애처럼 ‘엘리 엘리’나 찾다가 말았을 거요. 대체 무엇 때문에 나에게 왔습니까?”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유다는 더욱 지쳐서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땀도, 오줌도, 똥도 더는 분비되지 않았다. 커다랗게 뜬 사팔뜨기 눈만이 분노와 번민으로 이글거리며 많은 의미를 담고 위를 쳐다보며 숨가쁜 발음을 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때에야 저 아스라한 높이로부터. “서른 세 개의 은을 받아가기 위해서니라.” 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것이라면, 저…….” 유다는 더듬거렸다. 그러다간 갑자기 빠른 말씨로, “저 사마리아 노파의 속치마 값으로 지불되어버렸소.” “그러나 나는 그것을 받아야만 하느니라.” 다시 저 아스라이 높은 곳으로부터 건조하기만한 음성이 들려왔다. “제기랄, 이제 와서 당신은 노예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할 셈인가? 아니면 나를 유대인의 왕을 삼을 생각인가?” 유다가 ‘노예’라고 말한 것은 출애굽기 이십일장 삼십이절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었는데, 은 삼십은 노예의 대가였던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의 왕’이라고 한 의미는 왕의 백성에 대한 절대권을 강조하자는 의미도 되지만, 그보다 예수 당신이 노예가 아닌 이상 어떻게 유다 자기가 사고 팔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유다는 빙그레 웃기까지 했다. 물론 비웃음이었다. “나는 한 노예를 판 돈으로 한 나그네 여인의 수의 값을 장만했어. 그것은 나그네의 것이다.” ‘나그네’란 유대인, 또는 개종자로서 예루살렘에 와 있는 자를 말하며, 이방인을 포함시켜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받아가야만 하느니라.” “랍비여,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내가 당신에게 행한 일이 무엇입니까? 당신이 나를 번뇌케 합니다. 당신은 병자를 돌보는 의사가 아닙니까. 제발 혼자 있도록 해주십쇼. 혼자 있도록 두어달란 말이오.” “나는 서른 세겔의 은을 받아야만 하느니라.” “제기랄, 이제 와서 당신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걸 증명할 셈인가? 이 지상의 왕이라고? 그리하여 이 몸뚱이 하나 누일 곳마저 빼앗을 셈이오? 은 삼십은 저 노파의 수의 값으로 지불되었다는 말이오. 물론 이 집까지도 내 것이 된 거요. 당신은 이것까지도 뺏지 못해 안달이 났구려. 나에게 당신이 어떻게 했지요? 어떻게 했느냐 말요.” 유다는 피골이 상접한 손을 모아 쥐었지만, 엿새나 굶은 몸뚱이에선 힘이 나질 않았다. 그러니까 성만찬 때-그 달 열나흘 목요일-빵 한 조각과 포도주 한 모금을 맛본 뒤, 아직껏 아무것도 목구멍에 넘기질 않았던 것이다. “당신은 나를 배반했었소. 그리곤 나로 하여금 당신을 배반하도록 충동시켰소. 당신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하고 말하였소. 그러나 내가 어떻게 가장 존경했었던 당신을 배반할 생각을 꿈엔들 가져볼 수 있었겠습니까? 존경하지도 않으면서 덩달아 추종하는 그런 사내도 있을 줄 알았습니까? 하기야 존경과 ‘미혹’은 거리가 멀지요. 나도 그 미혹된 사람들 중의 하나였을 테니까요. 나는 결국 당신에게서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하여튼 당신은 왕이 아니고, 미혹자라는 걸 맨 처음으로 안 것은 나였소. 그것도 당신이 일깨워준 덕분이었지만, 하필 당신은 왜 나를 택했는지 지금도 그것이 의문이오. 하기야, 당신은 언제까지나 당신을 지속하기에는 너무도 벅참을 느꼈을지도 모르지요. 서른셋의 나이로서는 너무나 피곤을 잘 느꼈고, 침묵이 많았습니다. 자, 이제는 제발 떠나주시오. 난 신경이 이상해졌습니다. 배반자들끼리만의 회합이란 언제나 숨막힐 듯하다는 것을 알겠지요? 이제 우리의 거래는 끝났습니다. 당신의 시인적인 기질이 당신을 비극적인 인물로 만들긴 했지만, 하여튼 선지자 이사야에 의한 당신의 자기 도취는 만족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당신을 두른 두터운 껍질이 벗겨지고, 가난하고 비참한 한 알몸뚱이가 나타나긴 할 거요만……. 어찌 되었든 내 수중엔 서른 세겔의 은이 굴러 왔습니다. 그것은 이제 내 것도 당신 것도 아니게 되었습니다만.” “나는 내 것을 받으려 하느니라.” 유다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너무 많이 말했고, 너무 지쳤고, 굶주렸다. 뿐만이 아니라, 그와 이야기하는 중에 자기의 영혼이 저장해두었던 기름을 모두 빼앗긴 듯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견딜 수 없게 되어 눈을 감아버렸다. 그때 동창이 훤히 밝아오고 있었다. 유다가 기력을 다해 다시 눈을 떠보았을 땐, 자기를 바라보던 눈도, 이마 위의 손도, 목소리라고 느꼈던 어떤 음향도 어느 사이엔지 없어진 때였다. 유다는 그것을 알곤 미미하게 웃었다. 승리나 패배를 초월한 것이었다. “아깐 확실히 신경이 이상했었어. 신경과 나와의 사이엔 상당한 거리가 있는지도 몰라.” 그땐 유다의 눈도 서서히 변해가던 중이었다. 의미가 하나씩 하나씩 바래버렸던 것이다. 유다는 불현듯 생각난 듯이 기력을 다해 노파의 몸뚱이를 살펴보았다. 피가 그녀의 옷과 살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다음 순간 유다는 약간 경련을 일으켰다. 그녀에게서 아까 보았던 것과 흡사한 두 눈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몇 올이 머리칼이 눈자위로 늘어져 있었다. 그 눈은 아무 의미도 기력도 없는 죽음의 강 건너편 저쪽 마을 사람의 눈-그것은 투명하긴 했지만 끝간데 모를 심연을 가진 눈, 그러면서도 폐쇄되어버린 눈, 유다는 또 한번 웃는 것 같지도 않게 웃었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동쪽 창턱에 아침이 감빛으로 밝아져오는 것을, 그 창의 찢어진 구멍을 통해서 푸른 하늘이 엿보이는 것을 무슨 구원이나처럼 바라보았다. 밖에선 참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니산달-사월-의 명랑한 아침을 찬양하는 듯했다. 유다는 그 모든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상상했다. “참 즐거운 아침이 시작되는가본데. 숨쉬고, 느낀다는 것은 참 즐거워.” 유다는 빙그레 웃었다. 어떤 승리감 같은 것을 느낀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얼마나 즐거운가, 이 지상의 이 고요한 아침은…….” 하지만 형언할 수 없는 오뇌와 갈등과 피로, 그리고 엿새 동안이나 굶은 그로서는 더 이상 버티어낼 수가 없었다. 점점 의식이 희미해져가는 것을 스스로도 느꼈다.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지옥이었어. 그래도 나는 회피하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단념도 하지 않았어……. 나는 이 지옥을 제법 잘 영위했던 사람이란 걸 자부할 수 있을 것 같다. 암, 그렇고말고.” 유다는 희미해져 가는 의식으로 상념에 잠기면서 자기가 모아온 ‘꿀과 의미’에서 몇 방울의 정수를 걸러내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무엇이든 똑똑히 보아두었어. 나는 이제 비방을 받아도 좋고 욕지거리를 받아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나의 지옥도 끝이 났을 거야. 나는 지금 물밀 듯한 행복 속에 누워 있는 것 같다. 하여튼 무엇이든 끝까지 똑똑히 보아두어야지. 물론이지.” 날이 완전히 밝아졌다. 힌놈의 골짜기의 등성이로 아침 햇살이 춤추며 찾아들었다. “랍비여, 진정으로 원하신다면, 삼십 세겔의 은을 거두어주십쇼. 이제는 거두어주십쇼.” 그로부터 스무닷새나 지난 해질녘에, 욥바 항에 살고 있는 한 구두쇠 장사치가 예루살렘까지 행상왔다. 그곳에서 하룻밤쯤 묵을 생각으로 들렀었는데, 거기서 그는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는 마을을 찾아 고갯길을 어슬렁어슬렁 넘다가 우연히 그 집을 발견하고 들렀던 것이다. 거기서 그는 한 노파가 옷이 갈기갈기 찢겨 하반신을 전부 드러내고 죽어 있는 것을 보았고, 또 한 사내가 죽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사내 역시 바짓가랑이가 짖겨 하반신을 노출하고 있었는데, 웃옷의 단추가 모두 열려 거의 알몸뚱이나 같았다고 한다. “처음엔 큰 구데기인지 몸뚱이인지 구별할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 하여튼 구데기 뭉치가 그 사내의 배때기에서 술에라도 취한 듯이 꾸물거렸으니까요. 그런데도 그 사내는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물론 바짓가랑이가 찢어진 그 사이로 그 해괴스러운 고깃덩이가 나와 있었는데, 그놈이 그 노파의 가랑이를 보고 뭐라고 이야길 했던 게지요? 하기야 노파의 가랑이는 피투성이였지만 말예요.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우스워서 숨이 넘어가게 웃겠어요. 그 사람 웃다가 숨을 못 돌린 거 같습네다. ……창잔지 그건지 구별이 잘 되진 않았지만……. 나는 그냥 쏜살같이 도망쳐 나온 걸요.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게 되어 본 방언에 그곳을 이르되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어느 때 누구의 손으로 된 것인지는 몰라도 그 움막집 사립문 한쪽 기둥에 ‘가롯 유다’라는 문패가 걸리게 되었다.)  
19 순대 먹는 여자 외 1편/권형하
편집자
4529 2010-06-18
10.07월 2호 시 순대 먹는 여자 아이에게 사탕 물리고 풍선 하나 들리고 가슴이 토굴 같아 토막 낸 순대를 먹다가 노을도 소금으로 찍어 산마루에 걸어본다. 어둠이 쑥쑥 자라나 목을 빼는 가로등 손마다 휘저어보면 핏기 없는 달로 뜬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배웅한 그 사람일까. 어떤 길이라도 밟아보면 힘이 되던 것이 집 가까이 다가오면 어깨 짚어주는 전신주 잡아본 아이 손목만 빠져나가는 바람 한 채. 만월 십이월 달 속으로 여자가 누워있다 양수가 다 부풀어 산달이 된 만삭으로 핏줄이 아기 핏줄이 나뭇가지로 어린다. 이 산골 산동네에 얼마 만에 경사이랴 산자락마다 깔아놓은 곱고 고운 보료를 사내가 숨도 가쁘게 방문을 열고 있다. 권형하 시집 「새는 날면서도 노래한다(1990)」, 「바다집(1997)」,「꿈꾸는 섬(2005)」. 경북문학상 수상(2005).  
18 유무우거(有無寓居)/신대원
편집자
3816 2010-06-16
10.07월 2호 수필 <유무우거(有無寓居)> 신대원 뒷산자락에 솔바람 일고 아랫마을 누구네 집에서 저녁 태우는 연기 모락모락 피어나면, 가끔씩 난 ‘그리움’이라는 말마디를 떠올린다. 어린 시절 고향마을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전기도, 전화도 없었던 고향집엔 이렇듯이 오늘처럼 마른나무로 저녁을 태우고 호롱에 석유를 부어 온 밤을 밝혔었다. 그럴 즈음 마을에는 온통 모깃불 타는 향내가 동구 밖 어귀 당산나무 가지를 흔들어대고, 놀란 소쩍새의 구슬픈 하소연은 하염없이 이승의 하늘을 날기도 했었지. 그러면 소쩍새 울음소리에 잠이 깬 별들은 우수수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고. <유무우거(有無寓居)>- 얼마 전 파르스름한 문종이에 작은 붓으로 먹물을 묻혀 적어 두었다가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 문설주 위에 떡하니 붙여놓은 글귀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서로 깃들어 산다는 뜻이다. 이미 사라져버려 없는 것들이 기억으로 되살아나 비로소 있는 것이 되기도 하고, 언제까지나 있어야만 해야 할 것들은 어느 순간 사라져버려 없는 것이 되고 마는 현실이다. 우리들의 현실은 언제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고, 있음과 없음이 서로 뒤엉켜 사는 시간이고 공간이지. 어쩌면 ‘유무우거’라는 말은 인간살이의 이상(理想)이고 꿈인지도 모르겠다. 이상이고 꿈이라면 그것은 풀어야 할 수수께끼이고 풀지 못할 신비(神秘)일 것이다. 수수께끼이고 신비라면 그것은 그저 동경(憧憬)할 수밖에 없는 ‘그리움’이 아닐까? 사람들은 있기를 바라면서 있는 것들은 없애버리고 그 자리에 없는 것을 다시 초대 하려고 애를 쓴다. 하늘의 계획하심에 따라 흐르고 있는 낙동강의 물길을 가로막고, 가로막은 물길을 한줌도 안 되는 인간이 다시 흐르게 한단다.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용쓰지 않아도 좋을 것을 굳이 용쓰는 까닭이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어쩌면 모두 참으로 똑똑한 멍청인지도 모를 일이다. 없는 것과 있는 것이 서로 기대어 사는 시간이며 공간은 우리의 의지와는 별개다. 어린 시절의 고향마을과 지금 내가 사는 마을이 함께 있는 건 내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그리움’이라는 ‘신비’가 내 곁에서, 내 속에서 나를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 아니더냐? 문학과 과학이 만나고, 겉과 속이 함께 살며, 무늬(文)와 바탕(質)이 공존하고, 움직임과 고요함이 어울려 있어야 비로소 사람이 산다고 할 수 있지 않더냐? 공자는 이를 두고 ‘문질빈빈(文質彬彬)’이라고 했다. 대동(大同)의 세상,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상이 곧 있는 놈과 없는 놈이 거기에 함께 깃들어 사는 거지. 그건 신비이고, 동경이고, 수수께끼이며, 그리움이며, 이 그리움이 끝에 가서는 희망으로 되는 게지. 우리는 모두 가슴 속에 저마다의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 그리움이 없다면 눈물 흘릴 일도 없고, 견디어내는 인내도 없어지고, 빙그레 미소 짓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더 이상 사람이라 할 수 없지. 사람은 그리움이 있어야 사람이다. 거기에는 있음과 없음이 서로 깃들어 살고, 기억과 현실이 공존하게 되며, 슬픔과 기쁨을 함께 할 수 있고, 사랑을 나누고, 정의와 평화를 일구고, 마침내 참 행복을 꿈꾸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솔숲에 바람 인다. 그리움이 짙어지면 질수록 바람은 더욱 나의 오감(五感)을 두드려댄다. 아랫마을에 피어오르던 연기도 멈추고, 떨어지던 별자리마다엔 오색(五色)의 그리움이 찬란하다. 그 찬란한 그리움들이 살아서 이승의 하늘을 흐른다. 흘러서 딱딱하게 굳고 바삭 마른 사내의 가슴에 강물로 스며들어 상념(想念)의 시간이 되고 공간이 된다. 이럴 땐 누구라도 그리워지는 법이지. 없는 이라도 찾아오면 가난한 술잔이라도 기울이고 싶다. 돌아오는 길, 문설주 상단에 어설프게 적어 놓은 <유무우거>라는 글귀가 유난히도 반짝인다. 반짝이는 건 아마도 그리워하는 이의 그리움일 것이다. 신대원 (천주교신부, 들문학회원)  
17 얼바우 박치대를 기리며/위초하
편집자
2974 2010-06-12
얼바우 박치대를 기리며 1. 박치대의 생애 박치대는『지크미』,『밀도살꾼』,『토종』,『잡종』,『고삐』,『21세기』등 초기엔 토속적인 단편들을 통해 농민들의 피폐해가는 모습을 지근거리에서 천착해왔다. 아울러 도시화가 가속화되는 과정에서 소외되고 밀려난 우리 이웃의 문제와 사회적 갈등을 차분한 문체로 펼쳐 호평을 받았다. 이외에도 『기류』,『아 백두여』,『올가미 상․하』,『부평초 상․하』,『대역 상․하』,『철쭉으로 피어나리』등의 장편소설을 썼다. 정의롭지만 역사의 변방에 짓눌려 고통 받고 사람들과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가는 사람들의 삶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대역 상․하』는 일본의 천황과 황태자를 폭살하려다 일경에 체포돼 재판을 받아 사형선고를 받은 독립 운동가이자 사상가, 아나키스트였던 박열의 생을 다룬 장편소설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으며『철쭉으로 피어나리』는 박치대가 마지막으로 남긴 소설이다. 박치대는 1946년 예천 금당실에서 2남 2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박노문으로 금당실의 함양 박씨 문중의 문장 노릇을 하는 지역의 몇 안 되는 마지막 선비였다. 따라서 박치대는 어렸을 때부터 한학과 신학문을 두루 배우며 자랐다. 6․3사태 때 현실에 대한 절망감으로 낙향을 시도 대학을 중퇴하게 되었다. 가정을 꾸린 뒤에는 중등학교 영어과 자격 검정 시험에 합격하여 영어 교사가 되었다. 그 뒤 문경여중과 예천여중으로 와서 근무하다가 정년퇴임을 몇 달 앞두고 2009년 2월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2. 박치대의 문필활동 박치대의 문필활동을 살펴보면 예천의 ‘한내글모임’의 초창기 멤버로서 좌장 역할을 하였고 가까운 문학 단체나 먼 곳의 문학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하였다. ‘대구․경북민족문학회’와 그 후신인 ‘경북․민족문학작가회의’의 회원으로서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였다. 중앙 문단보다는 지역 문학 활성화에 심혈을 쏟았던 것은 박치대가 늘 한내와 고향을 변방이 아닌 자신의 중심에 두고 지키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문학의 상업성을 거부하였다. ‘민족’, ‘역사’, ‘민중’, ‘의리’ 등이 그의 문학을 대변하는 화두였고 스케일이 크고 웅장하였다. 특히 아나키스트이며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박열 의사’와 관련된 내용을 소재로 하여 상상력을 펼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의 만주와 중앙아시아에서 고난을 겪는 민족의 운명과 독립운동을 천착하기도 했다. 그는 박열의 삶을 작품화하기 위해 문중사람들과 그의 행적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 외 자료는 국회도서관에서 자료를 많이 열람한 것이라 이야기한 바가 있다. 소설 『아 백두여』의 마지막에 붙인 ‘쓰고 나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만주는 내 마음의 고향이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어려서부터 ‘만주’라는 이름을 자주 들으며 자라 왔다. 콩밭을 매는 할머니를 따라 들에 나가 있노라면 쉴 참에 할머니는 혼자말로 중얼거리시곤 했다. “만주 고모가 있었으면 너를 업고 다닐 텐데.” 누님이 없었던 나는 고모님들의 등에 업혀 마을을 다니곤 했다. 친고모, 종고모 합쳐서 대여섯씩 모여 앉으면 반드시 만주 고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해심이 있고 마음이 넓은 만주 고모가 있었더라면 집안의 분위기가 한결 좋았을 거라는 식의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니까 어릴 때 나는 광주 , 부산, 대구, 서울 등의 이름보다는 만주라는 이름을 훨씬 자주 들었다. 고모님들이 살던 곳을 고향이라 생각했다면, 만주 고모님이 살던 곳을 제2의 고향이라고 느꼈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을 지도 모른다. 조금 더 자라서는 아버지가 만주에 다녀오신 이야기를 들었다. 길림, 장춘, 하얼빈, 목단강 등을 거쳐 돌아다녔다는 이야기는 삼국지를 읽으면서 중국 대륙을 무대로 활약하던 군웅 호걸들의 이야기만큼이나 내 어린 가슴에 박혀 들어 왔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역사라는 것을 배우면서 나는 만주에 대한 것이라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고, 그 뒤로도 만주에 관한 자료라면 무턱대고 모아 두곤 하였다. 그러다가 그 모든 것을 어떤 형태로든 나타내고 싶은 충동이 나이를 먹으면서 크게 일어났다. 그것이 이렇게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할까. 그런데 막상 책으로 묶어져 나온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앞선다. 내 서투른 솜씨로 얼마나 내 마음을 그려낼 수 있을까? 광활한 만주 천지에서 나타나거나 숨겨진 무수한 역사의 숨결을 어떻게 감히 내가 접근해 볼 수 있을까. 이제까지 만주에 관한 자료라 해 봐야 단편적이고 한 쪽 부분밖에 나타난 것이 없다고 하겠다. 다른 한 쪽 부분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금지되거나 특수한 집단에게만 독점되어 왔다. 그러한 가운데 1930년대의 격변기를 무대로 하여 이 글을 썼다. 무력 항일 투쟁의 역사에서 민족 세력과 공산 세력의 알력이 가장 극심했던 그 시기를 무대에 올렸다는 것이 지나친 욕심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될 수 있는 한 어떤 편에 치우치지 않고 공평한 입장에서 필을 잡았다는 것은 장담할 수 있다. 아무쪼록 많은 뜻있는 분들의 꾸중과 채찍질이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을 만주 고모님의 영전에 바치고 싶다. 올 여름에 세상을 떠나신 만주 고모님! 지금 만주 길림에 살고 있는 고종 형제 이장춘, 광춘의 앞길에 신의 보살핌이 있기를 빈다. 1989년 10월 박치대 3. 작품 속에 나타난 반제국주의자 박열 “민중은 우리혁명의 대본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무기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을 잡고 끊임없는 폭력, 암살, 파괴, 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생활에 불합리한 일체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하지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수탈하지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 할지니라” 이 글은 단재 신채호가 1923년 1월 <조선혁명선언>에 남긴 글이다. 당시 ‘문화운동’을 부르짖는 인사들을 향하여 “문화는 산업과 문물의 발달한 총적(總積)을 가리키는 명사니 경제약탈의 제도 하에서 생존권이 박탈된 민족은 그 종족의 보전도 의문이거든, 하물며 문화발전의 가망이 있으랴”며 일갈한 신채호는 구체적인 폭거를 다음과 같이 열거 했다. 1. 조선총독 및 각 관공리 2. 일본천황 및 각 관공리 3. 정찰꾼, 매국노 4. 적의 일체 시설물 (위의 4가지를 폭력, 암살, 파괴, 폭동의 목적물로 열거) 소설 『대역 상․하』(월드컴미디어;2000년 10월15일) 는 수난의 민족사에 자긍심을 일깨워 줄 수 있는 통쾌하고 매력적인 한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소설로 다시 되살려 놓은 것이다. 박열을 흔히 아나키스트로 규정한다. ‘아나키즘’은 국가의 존립 자체를 거부한다는 측면에서 ‘무정부주의’로 해석하거나 국가가 없는 혼란 상태를 일컫는 말로 생각하지만 ‘아나키즘’의 본질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박열이 소속했던 ‘의열단’ 조직의 경우 무력적인 충돌을 통해 반제 운동을 전개하려 했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폭력에 우선권을 부여하였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반제국주의’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일제 식민 통치 35년은 우리 민족사에 나라를 빼앗긴 고통 못지않게 수많은 지식인들을 친일 변절자로 만든 뼈아픈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더 큰 아픔은, 변절의 역사가 8ㆍ15광복으로도 끝나지 않고 그 후 5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잔재들이 남아 역사의 진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제 식민지 시절을 돌이켜보면 독립지사도 많았고 애국지사도 적지 않았지만, 박열(朴烈) 열사만큼 당시 일본의 지식인들까지도 감동시킨 매력적인 독립운동가도 흔치 않았다. 일본의 천황과 황태자를 폭살(暴殺)하려다 일본 경찰에 체포된 박열은 일본제국의 대배심원 법정에 서면서, “나 박열이 법정에 서는 것은 피고로서가 아니라 조선민족을 대표해서다. 따라서 재판관이 일본 천황을 대변하여 법의(法衣)를 입고 나오니, 나 박열은 조선의 전통예복을 입겠다”. 는 주장을 관철시켜, 사모관대(紗帽冠帶)에 부채까지 들고 재판을 받은 그 기개와 당당함은 지금도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박열 열사는 행동하는 독립운동가라 하기에는 정치․경제․철학․문학 등에 두루 통달한 뛰어난 지식인이었으며, 고뇌하는 지식인이라 하기에는 행동하는 혁명가였다. 그는 일본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기에는 너무나 휴머니스트였으며, 휴머니스트의 우유부단함을 연상하기엔 너무나 단호한 역사의 심판자였다. 박치대는 이러한 박열의 정신을 그려내고자 수십 년간의 자료수집과 각고의 집필로 만든 소설이며 작가의 다른 어떤 작품보다 많은 애정과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이다. 박치대는 박열을 통해 여느 독립운동가와는 달리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평등, 인권이란 사상적 바탕 위에서 우리 민족의 독립은 물론, 천황제의 허상을 무너뜨림으로써 일본 사회내부의 혁명적 변혁까지 기대했던 사상가를 그려내고 있다 실제로. 그의 정치철학과 조국의 미래, 민족이 가야할 길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 <신조선혁명론新朝鮮革命論>(일어판)을 읽어보면, 박열 열사가 단순히 행동만 앞세운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준비된 민족지도자였음을 알 수 있다. 1923년부터 1925년에 걸친 총 20여 회의 조사과정에서 박열 선생은 일왕을 폭살하기 위해 폭탄을 구입하려 했다고 당당히 밝혔다. 그리고 사형 판결이 나자 “재판장, 수고했네. 내 육체야 자네들 맘대로 죽이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라고 일갈하며, 불굴의 정신을 표출하기도 했다. 이후 무기형으로 감형되었지만 일제 패망 이후에도 ‘대역사범’이라는 이유로 석방되지 못하다가 1945년 10월 27일에야 풀려나게 된다. 해가 바뀌고 박열은 무척 바쁘게 움직였다. 일월에 신조선건설동맹이 결성되어 박열이 위원장으로, 이강훈이 부위원장으로 뽑혔다. 삼월에는 옛 동지들과 후원회의 도움으로 간다구에 있는 공회당에서 가네코 후미코 추도회를 개최하였고, 김구의 부탁으로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세 의사의 유해를 발굴 본국으로 송환하여 칠월에 반장 행사를 하였다. 시월에는 재일조선거류민단을 창단하여 단장이 되었고, 십이월에는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던 길에 도쿄에 들른 이승만과 회담을 하는 등, 여러 가지 큰일들을 치러내느라고 제대로 쉴 날이 없었다. 22년이 넘는 형무소 생활을 하다가 나온 사람으로 믿기 어려운 활동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박열에게 제2의 인생을 열어준 일이 있었으니, 바로 장의숙 이라는 여인을 만나게 된 것이다. 장의숙은 도쿄여자 대학에 다니면서 국제신문에 근무하던 여인인데, 박열 석방 1주년을 맞이하여 박열에 대한 특집을 내려고 그를 면담하러 찾아갔던 것이 인연이 되어 주위 사람들의 권유에 따라 박열과 결혼(1946년 재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박열과는 열여섯 살이나 차이가 났다. 이처럼 남다른 사랑과 투쟁의 길은 길었다. 4. 민족과 국가를 넘어선 동지 가네코 후미코 가네코가 옥중에서 죽은 날이 오면 박열은 하루 종일 바깥출입을 하지 않은 채 방에 들어앉아 묵상에 잠겨드는데, 그럴 때면 장의숙도 그 날 하루를 엄숙한 가운데 추모하는 마음으로 보냈다. 가네코의 정신에서 체 게바라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체 게바라가 다른 혁명가들과 다른 존재로 생각되는 것은 그가 언제나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혁명의 최일선에서 행동했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가 미국과 라틴 아메리카의 관계 속에 그 실상을 깨닫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던 것처럼 가네코도 천황제와 제국주의의 실상 속에서 식민지 조선인의 고통을 직접 겪고 이해한 것이 그녀를 혁명의 일선으로 나가게 만든 이유가 됐다. 더군다나 일본 여성과 함께 조선 남성이 범행을 공모했다는 사실은 식민 지배자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비참한 삶을 직접 목격한 체 게바라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든 것처럼 가네코도 박열과 함께 천황을 폭살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첩경이라고 본 것이다. 체 게바라에게 카스트로라는 동지가 있었다면 박열에게 가네코가 있었다. 가네코의 불우한 환경은 곧 국적이나 성별을 뛰어넘어 인간성 회복이라는 화두를 던졌고 이는 박열의 정신과도 통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체 게바라의 혁명정신과도 일맥상통했다고 볼 수 있다. 가네코는 충분히 만국의 혁명가의 기질을 드러낸 셈이다. 박치대는 앞으로 남은 일은 가네코 후미코도 대한민국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힘쓰자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민족과 국가의 틀을 벗어나 인류정의의 실현을 위하여 힘겹게 싸웠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박치대의 생각이었다. 당시 식민지하에서 민족성을 통제하는 정치적, 사회적 억압적인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 항일운동의 한 몫을 담당했던 아나키스트들은 해방 뒤 분단체제가 되면서 이승만과 김일성, 두 정권 모두에서 배척받았던 인물들이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박열이다. 1949년 9월에 박열은 일본에서의 모든 활동을 청산하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6.25전쟁이 일어나게 되자 박열은 북으로 가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인간의 참 자유를 찾자는 이상으로 일생을 바쳐 싸웠던 그의 높은 뜻도 남북 분단의 벽에 가려져 빛을 잃어 갔다. 사반세기의 세월 속에 이름조차 잊혀져가던 박열이 1974년 1월 17일 사망했다. 평화통일촉진협의회의 회장직을 수행하던 중 죽음을 맞은 박열은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평양의 애국열사릉에 묻히게 되었다. 명동 YMCA 대강당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이은상의 추도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오늘 우리들이 의사의 영전에 추도의 제전을 바치는 것은 한갓 의사의 영혼을 위로해 드리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요, 실로 의사의 정신과 기백과 이상을 계승, 실천할 것을 다시금 다짐하는데 참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의사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민족의 통일 염원과 인류 평화의 큰 목적을 향하여 한 걸음 전진할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시옵소서.” 라고 이은상은 절절한 추도사를 낭독했다. 그는 곧바로 복원 되지 못하고 15년의 세월이 더 흘러서 1989년 3. 1절에 가서야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 받게 되었다. ‘’체 게바라는 인간불행이 불의不義 때문이라고 보았고 간디는 진리(생명의 실상)에 대한 무지無知 때문이라고 보았다. ‘체 게바라’는 불의의 대상을 공격 제거의 대상으로 삼았고, 간디는 무지와 탐욕의 병을 치유하여 변화하고 공존해야 할 대상으로 삼았다. 가네코는 목적을 위해 분노, 증오, 음모, 술수가 정당하다고 보았다. 국가나 인종이 전혀 문제될 게 없었던 셈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가네코는 박열보다 더 진일보한 생각을 가진 여성이었다. 가네코를 독립유공자로 추대하려는 박치대의 생각이 미처 열매를 맺기도 전에 급작스러운 사망을 접한 나로서는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의 명복을 다시 빈다.(위초하. 시인)  
16 하마터면 말할 뻔 했다 외1편/조재학
편집자
4188 2010-06-12
10.07월 2호 시 하마터면 말할 뻔 했다 달이 돋았다 황금실로 수놓은 달이 검푸른 하늘에 돋았다 저 병풍 한 폭 그대에게 보내도 좋겠다 꽃이 진다 꽃진 자리가 붉다 바람의 울음은 거세고 우는 소리 천지에 가득한데 누군가 슬픔처럼 노란 달맞이꽃 속으로 가고 있다 맞장구 치다 머리카락 올올이 일어서고 겉옷이 깃발처럼 나부끼는 날 강바람을 안고 선 나무에 시화(詩畵)를 걸었다 ‘꽃이 필 때부터 꽃이 질 때까지’ 란 부제를 단 입간판도 세우고 ‘벚꽃 시화전’ 이라 현수막도 걸었다 시화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어깨 춤 들썩인다 흘끔거리며 가는 사람 아예 서서 읽어보는 사람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 어린 꽃송이 몇 피워 든 가지가 덩달아 몸을 흔든다 벚꽃 피는 때에 벚꽃을 보는 건 벚꽃들의 시화전을 보는 것 한 꿈이 다른 꿈에게 제 꿈을 보여 주는 것 맞장구 치듯 봄이 불어와 머리카락 올올이 일어서게 하고 마음을 펄럭이게 하는 것 오고 가는 것들 다 즐거움으로 펄럭이게 하는 것 생각느니 저 꽃나무 아래 정자 하나 짓고 ‘시와 꽃이 있는 주막’이라 이름하고 밤이 흥건히 젖도록 사는 일 ** 조재학 jaek5621@hanmail.net 시집 <굴참나무의 사랑이야기><강 저 너머>  
15 김영하의 [오빠가 돌아왔다} [2]
이홍사
7887 2010-06-11
내가 좋아하는 소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오빠가 돌아왔다}의 전문을 찾을 수가 없네요 하여 작품은 싣지 못하고 (제 독수리 타이핑 속도가 늦은 관계로) 김영하 소설 [오빠가 돌아왔다]의 서평을 간단히 소개합니다 1인칭 전지적시점으로 씌어진 화자는 여중생이다 썩 괜찮은(?) 오빠가 주정뱅이 아버지를 밧줄로 묶어놓고 집을 나간지 3년만에 애인을 하나 꿰차고 돌아와 속칭 콩가루 집안에 살아가는 과정을 리얼하게 그려냈다. 아버지는 애인을 아들을 성매매범으로 고발하고 그러는 아버지를 아들은 들어가서 줘패고...... 함바식당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어머니가 아들이 들고 들어온 애인을 자신이 하는 식당으로 데려가 일을 시키고 삼류층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을 역동적인 상상력과 유려한 문체로 군더더기 없는 서사를 풍자와 해학적으로 그린 소설인데 이 웹진에 들어오는 분들이라면 안 읽은 독자가 없으리라 생각하며 제가 심심할 적이면 문체와 서사과정의 전환을 필사 해보고 싶을 정도로 잘 읽은 소설이다 전문을 싣지 못하는 점을 아쉽게 생각하며 혹 못 읽은 독자가 있다면 찾아서 읽어보시길 바라며 내가 좋아하는 소설에 숙제를 간단히 마침니다 사실 요즘 제 개인적인 사정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을 뒤적일 실정이 아님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다음에는 정성과 각고의 노력이 보이는 평을 소개할 것을 약속합니다  
14 꽃무릇 외1편/정숙
편집자
4676 2010-06-11
10.07월 2호 시 꽃무릇 -------아름다운 법문 58 주황빛 나비 몇 마리 모여 잎도 없이 바람에 흔들리더니 어제 저녁 비바람에 빈 허물만 꽃 대궁을 지키고 있다 보름 달빛은 보이지 않고 소쩍새 울음만 ‘꺼이꺼이’ 하룻밤 새 날아가 버린 그 꽃나비의 행방을 누구에게 물어보고 있는가 매듭을 위해 ---아름다운 법문 54 사람의 매듭은 무덤이라고 어느 노시인이 말했던가 더듬더듬 꽃 한 송이 피워가면서 조심스레 세상을 건너가는 나팔꽃들을 보면 식물들의 매듭은 꽃이 아닐까 고단한 삶, 잠시 한 숨 쉬면서 간절히 하늘 한번 쳐다보다가 매듭 하나 지은 뒤 건너가고 사람도 콧김 열불나게 살아가면서 세월의 마디마다 곱든 밉든 꽃을 피우기도 하는데 저 나팔꽃 송이처럼 아름다운 매듭 묶으며 짧은 한 생을 길게 늘이며 출렁이는 흔들다리 건너는 이도 있던데 시인 [정 숙 ] (jungsook48@hanmail.net) 경산 자인 출생 경북대 문리대 국어 국문학과 졸업 1991년 계간지<시와시학>으로 신인상 등단. <신처용가> <위기의 꽃> <불의 눈빛> <영상시집><바람다비제> 시집<DVD> 출간 우수도서선정 [바람다비제] 현대시 박물관에서 제정한 제1회 ‘님’ 우수상 수상 대구문학아카데미 현대시 창작반 강의 인터넷 포엠토피아 '포엠스쿨 정 숙반 강의' http://poetjs48.ivyro.net/ 010-9992-3317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궁전맨션 2동 406호 [706-010]  
13 (독자 투고)억새2 외2편/이성준
편집자
4005 2010-06-10
10.07월 2호 시 억새 2 백제 여인네의 하얀 치마가 바람이 날린다 정복자 당나라 놈들에게 몸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짜릿한 죽음을 택한 백제 여인들의 하얀 영혼이 가을을 수놓는다 시간이 갈수록 되살아나는 치욕 패망한 나라의 역사는 어차피 쉰 밥그릇 곰팡이가 슬도록 내버려둔다지만 남편 잃고 자식 잃고 아비 잃고…… 남자의 씨를 말려버린 전쟁에서 정복자의 먼 말발굽소리보다 먼저 백마강에 몸을 던진 하얀 영혼들이 삼천궁녀, 의자왕의 눈요깃감으로 날조된다 해도 억울할 것도 없지만 천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침묵의 역사가 서러워 진실을 말한다 해도 곧이듣지 않을 현실이 무서워 드넓은 가을 하늘을 향해 하얀 웃음 흘리며 소복(素服)의 춤을 춘다 죽은 역사를 추모하기 위해 패망한 백제가 바람 속에서 일어선다 안경을 닦으며 세상은 늘 그 자리에 있었는데…… 변덕스런 다초점 안경의 농간에 흔들리기 시작한 세상은 멀어져갔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만큼이나 눈 감을 줄 모르는 안경알은 먼지며 빗물이며 손때까지 묻어 개기름 번들거리는 얼굴만큼이나 탄력을 잃고 세상은 늘 그 자리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멀리한 세상은 흐린 기억만큼이나 아득하기만 하여 폐허의 잡초들 속에 파묻혀버렸다 이제 뼈마저 찾을 수 없는 무덤 속 주인 없는 영혼처럼 하얗게 늙어가는 안경닦이를 찾아내어 아직은 마르지 않은 찌든 입김으로나마 세상을 향해 소리 없는 대화를 시작한다 안경을 닦으며 세상을 향한 마지막 나의 창 안경이라도 깨끗이 닦을밖에 안경알이 맑아질수록 흐려 보이는 세상일지라도 억새 3 하얀 평복으로 뒤주 속에 갇힌 사도세자의 영혼 아버지 영조와 장인 홍봉한의 눈을 피해 수원성 마른 들판에 섰다 아내에게마저 배반당하고 물 한 모금 없이 한여름 여드레를 견딘 강인함으로 인왕산을 바라보며 하얗게 웃는다 14년 동안 눈물에 잠긴 관 속에서 빌고 빌었던 아들이 드디어 용상에 오르고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이 말 한마디에 하얗게 얼었던 노론들은 지금도 어디에선가 작당을 하며 웃고 있으리니 아들마저 재위 24년만에 독살당한 250년의 눈 먼 세월이 그렇게 흘러가는가 죽은 사람에게 인자하고 넉넉하듯 역사도 후하게 장사지내 버릴 것인가 자신의 흰 옷 위에 새 역사를 쓰라고 사도세자의 하얀 영혼이 수원성 남문 위에 억새로 깃발로 소리친다 이성준 1962년 제주 조천 출생 시인, 문학박사 2006년에 시와창작 신인상(시부분)을 수상했고 시집 <억새의 노래>, <못난 아비의 노래>를 출간했고 작가회의 회원  
12 시골뜨기 부처 [1]
관리자
4849 2010-06-08
내가 좋아하는 소설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잘나가는 인생을 살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몇 가지 있다. 개중 하나가 이른바 소수자로 산다는 것, 그들이 처한 삶이다. 어딜 가나 ‘일반’에 소속되는 이들도 대강 감은 잡을 수 있으실 거다. 소수자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이른바 동성애자, 장애자, 불법체류자, 외모가 너무 받쳐주지 않는 여자 혹은 키가 너무 작은 남자로 산다는 것에 대해. 그 삶의 이면이 어떨지. 「시골뜨기 부처」는 인도 이민2세인 영국 청년의 성장소설인데 소수자의 삶을 밀도 있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을 낸 출판사(열음사)에서 근무했던 모씨는, ‘참 재미있고 괜찮은 책인데 너무 안 팔려서 창고에 한가득 쌓여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출판편집부에서 거론하는 참으로 아까운 책이라는 게 바로 이런 책을 두고 하는 말이겠다. 작가 하니프 쿠레이시(Hanif Kureishi)도 이민2세다. 1954년 파키스탄 이주민을 부모로 영국에서 태어나 런던의 킹스 칼리지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동성 간의 사랑을 통해 이민족 간의 벽을 허무는 장면을 연출했던 영화,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1984)의 시나리오 작가이다.「시골뜨기 부처」가 전하는 메시지 역시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주인공 이름은 카림 아미르. 아버지는 인도 귀족이고 어머니는 영국 중산층 출신이다. 계층과 문화가 다른 두 사람을 부모로 태어난 카림의 시점으로 소설은 진행된다. 귀족 출신인 아버지는 현실적으로 지극히 무능한데, 에바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에바에겐 찰리라는 아들이 있으며 카림은 잘생긴 찰리와의 관계에서 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인간관계가 복잡하게 얽힌다. 성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사람과 사회를 접하면서 혼란을 느끼던 카림이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지 보여주는 소설인데, 읽다보면 스스로의 정체성을 되짚어보게 될 거라 본다. 결혼과 취업으로 이주민이 늘어나는 이 시대를 비추고 있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한다. <책 속 밑줄 긋기> 나는 재미있는 사람과 착한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왜 그런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을 수는 없을까 생각해 보았다. 사람들이 같이 있고 싶어 하는 재미있는 부류의 사람들은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과 같이 있으면 무미건조하거나 반복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모든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나는 에바가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즉 자밀라를 어떻게 생각하고, 그녀가 샹제와 결혼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다. 나는 에바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에바는 분명히 속물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엇을 보거나 어떤 음악을 듣거나 어떤 장소에 가게 되면, 에바가 어떤 방식으로 그 대상을 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기 전까지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하나의 관점에서 사물을 인식하고, 그 사이의 상관관계를 찾아냈다. 착하기는 하지만 재미없는 사람에게 어떤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묻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어머니처럼 착하고 유순한 사람들은 사랑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종국에 가서 모든 을 차지하는 사람들은 에바처럼 재미있는 사람이다. 아버지를 차지한 것처럼 말이다.(본문 159쪽) (안지숙)  
11 양말에 구멍이 났다 외 1편/박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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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7 2010-06-01
10.06월 창간호 시 양말에 구멍이 났다  지렁이가 땅속에 살듯  늘 밑에서만 살았다. 옥죄는 가죽이나 질긴 고무 고얀 화학재질의 깁 속에 갇혀  영어囹圄의 세월을 보냈다. 잘못 내닫은 발길의 끝  닭똥냄새는 안개처럼 자욱하고  벗겨져 내동댕이처졌다. 꽈배기처럼 뒤틀려 시원한 날 몇 날이나 있었던가  낮은 대로 임하라는 그 분의 말씀을  한 시도 잊은 적이 없는데 눌리고 짓밟히면서도  보자기로 감싸듯 지켜왔는데  양말에 구멍이 났다.  이제야 맨살이 보였다. 동그랗게 하늘이 보였다.      길은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비는 오래된 사랑을 불러온다. 푸른 잎들 사이로 분홍빛 꽃잎을 내미는 봉선화처럼 소리 없이 지난날들이 피어난다.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달렸던 융단 같은 풀밭 길 싸락눈이 살짝 깔린 초겨울,산촌의 찻집에서 마신 커피향 늦은 밤 잘 익은 감빛 포장마차의 소주 발목을 덮었던 산 속의 눈길 어느 날 문득 생활에 눌려 두고 온 우산을 생각하고 유월에 피는 선홍빛 석류꽃에 눈을 멈춘다. 생각이 머문다는 것은 저울추가 기울듯 가벼운 오늘이 어디론가 쏠리고 있다는 것 우리는 잊고 벗어나기 위해 아니 그리움으로 돌아가기 위해 한적한 옛길을 간다. 바닷가에서 온 젊은 소설가를 만난 산 속 주막 붉은 햇살을 얼굴에 받으며 겨울나무들이 기도하듯 팔 벌려 서 있는 산길을 연다. 보호수로 지정된 묵은 나무가 선 마을이나 오랜 침묵의 물이 담긴 저수지가 있는 골짜기를 돌아 빗속에 회상의 길을 간다. 눈에 남았던 석상은 간 곳이 없고 이정표도 세월에 덮여 보이지 않는다. 길은 지난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묵은 사랑의 그리움만 남길 뿐이다. 박찬선  sun631@paran.com 시집<돌담쌓기><상주>외 다수     
10 작가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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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6 2010-06-01
주목! 이 문학단체 작가지망생 카페는 99년 12월 26일에 창설된 이후,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과 만남의 장으로써의 역할에 충실해왔습니다. 2010년 현재, 10여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회원은 꾸준히 늘어 16000명을 넘어서게 되었고, 여전히 많은 분들이 카페에 가입을 하고 계신 상태입니다. 카페는 기본적으로 순수문학을 공부하고 창작하는 과정을 돕는 것을 카페의 주된 활동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작가를 지망하는 분들만 카페에 가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카페에는 문학을 창작하고자하는 분들을 위한 어드바이스 및 정보공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질문 & 답변 게시판과, 각종 문학 공모전 소식과 문학관련 소식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공모전 & 문학소식, 서로서로 좋은 책을 소개하기위한 추천도서 게시판을 운영하고 있고, 이외에도 좀 더 본격적으로 본인의 습작을 게재하고 어드바이스를 받을 수 있는 시, 소설, 수필, 시나리오 등의 게시판과 좀 더 심화된 토론을 갈무리하여 게재하기위한 합평 게시판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온라인 토론만으로는 분석이 어렵다고 생각되는 글들은 오프라인 합평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순수문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바른 언어습관을 습득하는 일이라 여기기 때문에, 대부분의 세대문학카페와는 달리 작가지망생 카페에서는 카페 내 통신체 및 이모티콘 사용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 카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언어는 변하는 것이고,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언어란 생활의 기능적인 편리성이 아닌 그 고유의 음운체계를 기준으로 변화할 때 변용이 아닌 발전적인 흐름을 띠게 된다는 것이 카페에서 생각하는 언어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입니다. 더불어 순수문학을 통한 정식 등단을 꿈꾸는 지망생이라면 올바른 맞춤법과 언어습관은 당연히 갖춰야할 부분일 것입니다. 카페에서 이모티콘과 통신체를 규제하는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입니다. 이런 규제들로 인해 카페가 다소 엄격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카페가 꼭 반드시 지켜야할 규칙에 의해서만 운영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카페를 만들어 온 것은 회원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회원 분들의 의견에 의해 카페는 계속해서 끊임없이 변화해왔고, 그 변화는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중입니다. 십 수 년이 지났음에도 카페가 여전히 활기차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카페라는 인터넷 공간을 사랑하고 끊임없이 비판의식을 가지고 카페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기위해 노력하신 여러 회원 분들의 열정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카페의 규칙과 규정들은 회원 분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정립된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운영방침은 얼마든지 변화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본인의 습작을 게재하고 평가를 바라면서 타인의 소설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회원이나 스스로에게 필요한 지식이나 자료에 대한 도움만을 기대하고 카페에 가입하는 회원은 카페가 생긴 이래, 어떤 사람도 반갑게 여긴 적이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카페는 문학을 공유하기 위한 공간이고, 문학의 공유란 단지 자신을 위한 글을 쓰는 것이나 스스로에게 필요한 것만을 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들만 아니라면, 카페는 누구나 부담 없이 들러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주소: http://cafe.daum.net/write  
9 배준표 <내 안의 또 다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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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0 2010-05-31
<내 안의 또 다른 나> 배준표 , 작은 씨앗 2010.3.24 ‘나’는 누구인가. 어떤 삶을 사는 ‘나’인가. 남이 보는 ‘나’. 남에게 보이기 위해 사는 ‘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나’로 살아가지 않을런지.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 떠나는 심리 치유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네 번의 이혼, 동거를 반복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며 격게 되었던 유년기의 심적 고통, 극심한 정신적 질환을 겪으며 잃어버린 십대 시절, 정신질환 치료기간, 정신질환을 자가 치료 후 꿈을 가지고 이스라엘로 떠난 배경, 그리고 심각한 식이장애로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해 있었던 아내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진실한 사랑을 찾아 가는…’이라고 작가의 말에서 하고 있다. 작가는 어릴 때의 불우한 환경으로 인해 학교의 퇴학과 자퇴, 가출, 자살 기도, 정신 치료 등을 겪으며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 무엇이 ‘나’를 이렇게 살도록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그래서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글로 적는다. 결국 ‘나’는 ‘… 세상의 아름다운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만을 보는데 주력을 한다는 것, 감정을 스스로 억압하며 내 마음의 요구보다는 남들의 비위를 맞추며 산다는 것, 남들 앞에서 보여질 내 모습에 지나치게 예민하다는 것…’ 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하여 작가는 자신의 문제를 이기기 위해 거꾸로 살기로 한다. ‘… 이제는 전과는 반대로 세상의 아름다운 면만을 보려고 노력하고, 내 감정을 스스로 존중하며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남들의 눈치보다는 내 마음의 요구를 더욱 들어주고, 남들 앞에서 보여질 나를 생각하기 보다는 내가 나를 스스로 어떻게 보느냐에 생각을 집중하고…’ 작가는 이렇게 하여 서서히 자신의 정신질환을 극복한다. 작가가 자신의 병을 극복한 것은 결국 ‘나’를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남이 나를 보는 ‘나’가 아닌 원래의 ‘나’를 보고 존중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남이 보는 ‘나’는 어떤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남들과 비교해 자기를 비하하고 자학하는, 그래서 탐욕심에 가득찬, 그런 ‘나’가 아니겠는가. 그럼 원래의 ‘나’는 무엇인가. 때어날 때의 때가 묻지 않은 그 순진무구의 인간, 자신의 존재감을 존중하는,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 자체가 극락이요 천국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인간은 살아가면서 남과 비교하고 사회의 물질적 욕망에 빠져 원래의 ‘나’를 잃어버리고 남이 보이는 ‘나’, 오직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다른 사람의 관점에 좌우되는, 그런 ‘나’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원래의 ‘나’를 회복해야한다. 그래야 자신을 존중하고 남을 존중한다. 흉악범들을 봐도 불우한 환경 때문에 성격이 비뚤어지고 사회에 적개심을 품어 끔직한 일을 저지른다. 모두가 잘못된 환경(가정환경, 사회환경)으로 인해 원래의 ‘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에세이라서 인간의 심리를 심층적으로 파헤치기 못 한 점은 아쉽다. 프로이드의 이드 자아, 초자아 론이나, 융의 그림자 이론을 바탕으로 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그런 이론 없이 오직 원래의 ‘나’를 찾은 작가는 위대하고 그만큼 이 책은 유익하다. 고창근 sgamm@hanmail.net 소설집 <소도(蘇塗)>  
8 타인의 얼굴/한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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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2 2010-05-31
내가 좋아하는 소설 한수산의 <타인의 얼굴>은 1991년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으로 죽음을 통해 살아있는 삶을 성찰하는 소설이다. 대학교 때의 은사의 부음 소식을 들으며 소설은 시작된다. 일본에 살고 있는 ‘나’혹은 ‘그’ (시점이 ‘그’와 ‘나’로 혼용된다.)는 스승의 부음 소식을 듣고 그동안의 스승에 대한 회상에 빠진다. 스승은 암에 걸렸다는 모교수의 전화를 받고 병동에 들려 스승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본다. -이미 노오랗게 물들어 있는 선생님의 눈을 나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병이 저렇게 만든 것일까. 검고 컸던 선생님의 눈. 우리는 이다지도 무력한 가. 우리가 무엇을 이룩하겠다고. 무엇을 남기겠다고 매일을 고단하게 살았단 말인가.- 라는 ‘나’에게 마지막으로 스승은, “끊임없이 싸워. 정상적인 자아와 병든 자아가 이십사 시간을 싸워. 이게 나야. 내가, 두 개의 내가 살아 있어. 내가 나를, 정상적인 자아가 병든 자아를 두 시간만 재워놓자. 그러면서 잠이 들어. 여덟 시에 깨우자. 그러면서 살아. 병든 자아를 달래서 약을 먹이고, 병든 자아에게 사정해 가며 물도 몇 모금 먹고 ” 라고 말한다. 부음 소식을 들은 나는 결국, -아니, 가지 않겠어. 병든 자아와 정상적인 자아가 아냐. 수없이 많은 내가 내 속에 있어. 그의 죽음을 지켜보며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자아와 싸웠던가. 때로는 두려웠던 나. 때로는 슬펐던 나. 그의 무너져가는 몸을 보며, 건강에 조심해야지 하고 쥐가 천장을 갉아대듯 속삭인 나도 있었어. 라고 생각하며 문상을 가지 않는다. 한수산 1946년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하남리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가 근무지를 옮길 때마다 이사를 다녀 어린 시절 한곳에 오래 머물러 살지 못하였다. 춘천고등학교와 경희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6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고,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4월의 끝》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였다. 1973년에는 《한국일보》 장편소설 현상공모에 《해빙기의 아침》이 가작으로 입선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소설 《해빙기의 아침》(1973), 《부초》(1977), 《4월의 끝》(1978), 《바다로 간 목마》(1978), 《욕망의 거리》(1981), 《밤에서 밤으로》(1984), 《거리의 악사》(1986), 《모래 위의 집》(1991), 《벚꽃도 사쿠라도 봄이면 핀다》(1995), 《말 탄 자는 지나가다》(1998) 등과 수필집 《젊은 나그네》(1978), 《저녁에는 그대여 아침을 꿈꾸어라》(1986), 《이 세상의 모든 아침》(1996), 산문집 《단순하게 조금 느리게》(2000) 등이 있다. 타인의 얼굴 차들은 밤에만 와서 섰다. 자디잔 자갈이 깔린 그 주차장으로 차들은 밤이면 쥐처럼 모여 들었다. 주인은 차의 문을 잠그고 잠을 자러 갔다. 낮의 주차장은 언제나 비어 있었다. 백여 대의 차가 들어설 공간에 남아 있는 것은 손가락으로 셀 정도였다. 아침이면 그들은, 식후의 담배를 피워 물고 마치 남의 차를 몰래 훔쳐 달아나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비가 내린다. 텅 빈 주차장에 빗발이 쏟아지고 있었다. 주차장 건너편의 숲은 어두웠다. 비에 젖고 있는 검은 숲은 음모 같았다. 가야 하지 않을까.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가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 말에 대답을 할 사람을 그는 자신의 속에 가지고 있지 못했다. 공항까지 두 시간, 거기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두 시간, 서울은 거기에 있었다. 서울은 거리가 아니라 시간의 저편에 있었다. 빗물이 주차장에 남아 있는 차들의 차체를 번들거리게 하며 흘러내렸다. 주차장 입구의 자동판매기도 비에 젖은 모습이다. 그 위에 대형 광고판의 여자도 비를 맞고 있다. 예약을 하자. 그의 안에서 누군가가 그렇게 속삭였다. 비를 맞고 있는 광고판 속의 여자를 바라보던 그가 말했다. 정확하게 석 달이야. 이건 지켜진 약속이야. 너는 이 모든 것을 예상하고 여기까지 왔었다. 이제 서울로 돌아가서 무엇을 어쩌겠다는 것이냐. 전화가 온 것은 이른 아침이었다. 빗소리에 섞여서 그는 아내가 받는 전화소리를 들었었다. 최명하 교수가 돌아가셨대요. 아내가 와서 그 말을 전했을 때, 그는 아 하고 짧게 비명을 질렀다. 처음에 그것은 놀라움 때문이었다. 갑작스런 소식이 그의 이제 막 잠이 깨려는 의식을 흔들어 놓았다. 놀라움은 슬픔으로 변했다가 다시 놀아움이 되었다. 석 달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석 달로 예견되었던 삶이었다. 최 교수님의 남은 시간은.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정확했다. 서울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하지 못한 채 그는 일어나서 욕실로 갔고, 머리를 감았다. 다른 날과 다름없이 아침을 먹었고,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는 숲과 그 앞의 텅 빈 주차장을 내다보며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담배연기를 뱉어내면서, 이것으로 나는 내 예정된 삶에서 오 분쯤 빨리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창문에 커튼을 치고 돌아선 그는 천천히 책상 위를 치우기 시작했다. 그는 아주 천천히 책들을 정리해서 책꽂이의 제자리에 꽂았고 연필들을 연필꽂이에 꽂았고 종이들을 가지런히 해서 한옆에 밀어놓았으며 재떨이를 가져다 물기를 닦았다. 그때 그의 안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이건 죽음이군. 그에게 물었다. "무엇이." "이 책상. 깨끗이 정리된 책상. 이건 죽음이야." "그게 삶이지. 정리된 책상에는 네가 없어. 네가 걷는 시간도 거기에는 가라앉아 있을 뿐이야. 그게 죽음이야." "정리된 삶이 죽음이라니. 죽음이란 삶의 진행에서, 그 움직임이 멈추는 거야. 아무도 그 무엇도 정리하지 못해." 그는 이마를 짚으며, 서울에 갈 때 있을 수 있는 일들을 헤아려 보았다. 조문 눈물 지나가버린 날들의 아쉬움. 죽은 사람에 대한 기억들. 자기에게 맞게 변형된 추억을 하나씩 꺼내들고 나누는 속삭임들. 숨길 수 없이, 그 얼굴과 얼굴들에 드러나 기름처럼 번져가고 있을 안도감들. 아,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야. 나는 아직 죽지 않았거든. 그 안의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죽음은 우편물 집배원이 아니다. 주소와 이름을 들고 찾아오지 않는다. 예정된 순서, 치러야 할 고통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누구나 다 그렇다. 깨끗이 정리된 책상을 손바닥으로 짚고 그는 일어섰다. 그는 그때 서울에는 가지 않을 것이며 조의 전보를 치는 일마저도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주 큰 것이, 그에게서 사라져갔다. 따뜻했던 움집 같은 것, 새들이 날아가 웅크리는 것 같은 것이. 이제 내가 다시 내 젊은 날로 돌아갈 수 없듯이, 나는 다시 그런 사람을 내 시간 안에서 갖지 못하리라. 돌아서서 그는 집을 나서기 위해 현관으로 갔다. 세 개의 우산이 거기 있었다. 물방울 무늬가 있는 푸른 우산, 검정 우산, 그리고 비닐우산이었다. 그는 어떤 우산을 쓸까 잠시 생각했다. 바람이 불고 있으니까 비닐우산을 써서는 안 되겠지. 구두를 신으며 그는 집안을 돌아보았다. 그는 거기에서 자신이 놓아두고 나가는 다른 자기를 보았다. 그래, 잘했어. 바람이 부는 날은 비닐우산을 쓰지말고, 길을 건널 때는 조심하고, 이런 날은 누구와도 약속 같은 건 안하는 게 좋아. 그가 다가와 그의 등을 쳤다. 보라구. 이 세상은 여전히 처녀지야.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어. 수도꼭지를 왼쪽으로 돌리면 물이 나오는 것도 여전하다구. 태초의 그날처럼 땅 위에는 삶이 가득하다는 걸 잊지 마. 하루하루는 아침 우유처럼 싱싱해. 영혼의 빛나는 발견 혹은 존재의 형식에 대한 이해, 그런 말들이 내 젊은날의 노트에는 있다. 어떤 모습으로 살아 있어야 하는가를 나는 존재의 형식이라는 말로 썻으리라.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그 영혼의 걸음걸이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찾고 싶어했으리라. 그 어떤 길목에서 나는 최명하 교수를 만났었다. 그러나 내가 대학에서 배운 것이 무엇인가를 뒤돌아볼 때 나는 언제나 우울했다. 거기에는 물론 나의 불성실도 얼마간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낭비였다고, 대학 사 년이라는 시간을 내가 그렇게 말해버리는 이유는 그 기간 동안 대학의 도움으로 어떤 모습으로든 발전이라는 것을 겪지 못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믿음은 내가 그때 다른 학생들은 이미 다 떠나버렸을 대학이라는 제도에 대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반증이 된다. 그렇다, 그것은 낭비였다. 덧없이 시간을 흘려버린, 아니 아무것도 흐르지 않고 머물러 썩어간 정체였다. 그 수렁에서 내가 최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러므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누구나, <애너밸 리>의 주인공처럼 자신의 사랑은 특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특별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모든 사랑은 다 개인에게 특별한 것이고 그러므로 그것은 결국 일반적인 것이거늘. 나는 아직도 그 목소리의 부드러움까지도 잊지 않으며 기억한다. 문과대학 이층에 있던 강의실이었다. 높낮이가 거의 없는, 어느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로 최 교수는 오후 강의를 하고 있었다. " 헤밍웨이는 한 번도 실패를 겪지 않은 작가다. 그러나 토머스 울프는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거기에 도전했었다. 위대한 실패라는 면에서 울프는 헤밍웨이보다 위대하다. 이 말은 동시대의 작가 가운데서 누가 위대한 미국 작가냐는 말에 대한 윌리엄 포크너의 대답이었다." 미국 문학사 시간이었다. 미국의 작가들 가운데는 유난히 알콜 중독이 많은데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런 말을 곁들이다가 최 교수는 말했었다. "나는 이 세상을 둘로 나누라면 토머스 울프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고 싶다." 그 말은 나에게 하나의 영혼의 울림으로 다가왔었다. 흑판과 책상과 교수라는 그것만으로 대학교육이 시작되고 끝이 나던 그 무렵의 학교에서, 나는 그만큼 목말라 있었는지도 모른다. 토머스 울프라는 그물을 들고, 인류를 둘로 나누다니. 낭만주의 가 영국에서 어떻게 태동했는가를 들려주던 시간도 내 기억속에는 살아 있다. 꿀벌이 잉잉거리는 어느 봄날의 들판처럼 그것은 아직도 나에게 푸르다. 낭만이라니. 우리가 흔히 한자어를 쓸 때의 그 낭만이라는 말. 어딘가 미숙하고 비합리적이며 정서에 얽매이고 비과학적이며 충동적인 행위의 냄새가 그 한자에는 있다. 그는 로맨티시즘의 건축을 이야기 했고 신비주의를 말했고 반합리성과 반고전주의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워즈워드의 시는 우리는 읽었다. 그 시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최 교수는 흑판에 Plain Living, High Thinking이라고 썻다. 그것은, 공자였고 맹자였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산 영어참고서 첫 장에, 소년들이여 희망을 가져라 하고 쓰여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른 가. 평범한 생활, 고아한 사고. 아니면 생활은 평범하게 이상은 드높게 . 그런 말로 옮겨질 그런 경구를, 그 워즈워드의 말을 나는 하품을 하며 바라보았다. 그것은 입시생이 책상 앞에 <인내>라고 써붙이거나 시골에서 통신강좌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누군가가 <성공>이라고 써붙이는 말과 다를 게 없었다. 플레인 리빙. 하이 싱킹. 강의를 듣고 있는 어떤 녀석이 일기책 앞장에 저 말을 적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아직도 일기라는 것을 적는 녀석이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강의실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일기를 매일 밤 적으며 보낼 녀석은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이 말을, 내 동생의 모자를 통해서 배웠다." 갑작스런 최 교수의 말이 나에게 날아와 낚싯바늘처럼 꽂혔다. 워즈워드를 동생의 모자를 통해서 배우다니. "군에 가 있던 동생이 첫 휴가를 나왔을 때였다. 그때는 다 가난할 때였다. 나라도 가난했고 군대도 가난했다." 다 가난했다는 최 교수의 말에 나는 동의했다. 나도 가난했었고 우리 아버지도 가난했었다. 내 어린시절의 동네사람들도 다 가난했었다. 그때는 워즈워드도 가난했을지도 모른다. "아마 아는 학생은 알겠지만, 이라는 것이 있었다. 사람을 긁게 만드는 그 이라는 작은 벌레 말이다. DDT라는 것이 그 이를 죽이기 위해 요즘의 항생제만큼이나 유용한 약품이었을 시절의 이야기다. 군대에서 휴가를 온 동생에게 목욕을 하라고 옷을 갈아입히다 보니, 그 애의 옷이 옷이 아니었어. 속옷을 보니 거의 실밥자국이 보이지 않게 이가 가득하지 않겠냐. 이가 이렇게 꾄 옷을 입고 지내야 할 정도의생활이라면, 그 애의 군대생활이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에 생각이 미치자 거의 분노 같은 게 치밀어 오르는 거였다. 차마 빨아서 입히기에도 어렵게 때묻고 이투성이인 속옷을 버리고 나서, 나는 그 애가 쓰고 온 모자를 들여다보았다. 까맣게 대가 묻은 그 모자 안쪽에 희미하게 써 있는 말이 있었다. 그것이 이 말, 플레인 리빙, 하이 싱킹이었다." 그리고 나서 최교수는 강의를 끝냈다. 나는 가슴속을 헤집고 무언가 덩어리 같은 것이 목을 아프게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꼇다. 이와 세상을 나누는 이분법으로 나에게 문학을 가르친 사람. 나무도 날아다닌다. 그날 아침 전화를 받았을 때 그는 창 밖에서 너울거리고 있는 오동나무잎을 내다보고 있었다. 아침햇빛이 그 위에 얹혀서 빛나고 있었는데 그 빛은 가을날처럼 가벼워 보였다. "네, 그렇습니다. 접니다." 낯선 목소리에 그렇게 대답을 하면서 그는 그 오동나무가 이제 여름을 지나고나면 자신의키만큼은 자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동나무는 풀처럼 자랐었다. 처음 그 나무가 집 마당으로 날아왔을 때,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몰랐었다. 모든 풀과 나무는 흙에서 자랐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이 풀이 아니면 나무일 것이라고 믿었다. 그것은 무엇에 의해서 옮겨 심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무릎 높이로 자라오른 나무가 잎을 틔우기 시작했을 때에야 그는 그것이 오동나무인 줄 알았고, 오동나무의 열매도 민들레꽃처럼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날아가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그것을 자르거나 뽑아내지 않고 기르리라 다짐했었다. 그런 결심의 바닥에는, 나무도 날아다니는구나 하는 작은 놀라움이 있었다. "절 아실까 모르겠어요. 대학에서 중급영어를 가르치던 박인희예요." 그녀가 그가 다녔던 대학과 자신이 그곳 대학의 교수라면서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그녀가 서른은 넘었을 것이며, 사회생활이라고 흔히 말하는 집안일이 아닌 세상 밖의 일에 꽤 단련되어 있으며, 자신을 아주 잘 알고 있다고 그는 느꼈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저물어 가는 봄날, 이제 이글거리며 다가올 여름날을 준비하며 나뭇잎 위에서 너울거리고 있는 햇빛이 갑자기 자디잔 빛의 조각들이 되어 부서져내렸다. 갑자기 모든 빛이 자디잘게 부서져서 떨어져내리고 그 자리가 아무런 색깔도 부피도 느껴지지 않는 공간으로 남는 것을 그는 보았다. "아 이제 생가나세요? 네, 저예요. 그동안 소식은 듣고 있었어요. 전 남편 따라 외국에 나갔다 오고 그러느라 주욱 학교에만 있지 못했어요. 실은 알려드릴 일이 있어서 전화했는데 이런 얘기를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최명하 교수님 아시지요? 물론 잘 아시는 사이인 거야 나도 알지만요 혹 교수님 소식 듣고 계시나 모르겠네요." 박인희 교수의 목소리로 듣는 최명하라는 이름이 갑자기 그의 가슴속에서 징소리같이 두웅하고 울렸다. 비로소 하나씩 선명해지는 것이 있었다. 그랬다, 박인희 교수는 모교의 교수였고 그는 한 학기 그녀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중급영어라는 교과목의 그 강좌는 영미 작가들의 단편을 읽는 시간이었다. 그녀의 남편이 외교관이었다는 것, 강의를 하던 무렵의 그녀는 매우 젊었다는 것, 그리고 몇 번인가 최명하 교수가 있는 자리에서 만난 일이 있지 않았던가 하는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최명하. 그는 그 이름을 입속으로 되뇌며 물었다. "무슨 소식인가요?" "그러셨군요. 모르시지 않나 생각했어요." 최명하라는 이름. 따뜻하게 아주 따뜻하게 달구어진 돌처럼 언제나 가슴속에 포개져 있던 이름. 그러나 그는 그분을 만난 지 또 해를 넘기고 있었다. "입원하신 건 아시지요?" "입원을 하셨습니까? 언제요?" 그렇게 해서 박 교수는 그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지난해에도 입원을 했었고 큰 수술을 받았으며. 그동안 많이 아프셨다는 이야기들을 그녀는 그가 알고 있지 못하다는 걸 확인해가는 방법으로 그에게 알려 주었다. "수술하신거 모르시죠? 지난해 입원하셨던 거 모르시죠?" 그녀가 말했다. "오늘부터 항암치료에 들어가세요." "항암 이라면?" "네. 지난해 받으신 수술이 암이셨어요." 갑자기 방안의 무엇인가가 솨아 소리를 내며 그의 머리와 어깨에 쏟아져내리는 것 같았다. 그것은 부끄러움이었다. 그 모든 것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선생님을 스쳐갔구나. 아니다. 그 모든 것을 모른 채 나는 어딘가로 도망쳐 있었구나. 이제 창 밖에는 햇빛이 없었다. 그것은 다만 희고 텅 빈 공간일 뿐이었다. "오늘부터 항암치료를 들어가시는데, 교수님이 참 보고 싶어하세요. 어제 저녁 병원엘 갔는데도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다른 분들이 소식을 알리겠지 하다가 전화하는 거예요." 차갑고 투명한 얼음 하나가 그의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지난달이었다. 그는 왜 내가 이글을 지금 쓰고 있나 하는 절박함에 의구심을 숨기지 못하면서 최명하 교수에 대한 글을 썼었다. 그것은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써나가고 있던 연재 에세이였다. 그 산문에서 다루고 있는 시간의 순서로도, 그가 가지고 있던 전체적인 구성으로도 그때는 최명하 교수의 이야기가 나올 순서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도 모를 이상한 힘에 이끌리어 두 회에 걸쳐 최 교수의 이야기를 썼었다. 살아온 이야기가 끝나면 마지막 부분에 가서 그동안 만났던 사람의 이야기를 쓰겠다는 것이 그 산문의 구성이었다. 이제 그 산문은 자신이 자란 자연과 사회라는 환경의 이야기가 끝나고 시간 속에서 그의 날들이 어떻게 굴절되었나를 다루고 있었으므로, 사람의 이야기를 하기에는 아직 몇 회 후가 되어야 했을 텐데도 그는 최명하 교수의 이야기를 썼던 것이다. 그리고 그 두회분의 끝부분이 실린 잡지가 나온 게 십여 일 전이었다. 그걸 가지고, 부끄러움으로 머리를 긁으며라도 선생님을 뵈러 가야지. 그때 내가 드릴 수 있는 말이란, 죄송합니다 선생님, 그런 말밖에 더 있으랴. 항암 이라니. 이 소식이 그 스스로도 알 수 없던 절박함에 대한 대답이란 말인가. "시간 있으시면, 한 번 찾아가보세요. 교수님이 좋아할 거예요." 박인희씨의 그런 말이 그에게는 들려오지 않았다. 한 번 찾아간다는 표현이 용납될 수 없는 부피를 가지고 최명하라는 이름으로 그를 내리 눌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가 살아오면서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크고 부드러운 사랑이었기 때문이었다. "병실은요, 신관이에요. 응급실 있는 쪽을 지나서 가면 있는 E동인데 7층이에요." 손에 잡히는 대로 읽고 있던 잡지의 표지에 병실 번호를 적었다. 그는 중얼거리고 있었다. "바로 가 뵙겠습니다." 창 밖에는 유리관 저편처럼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속에서 나뭇잎이 너울거리고 있었다. 햇빛은 어디로 갔는가. 문득 그는 배반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누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떠오른 말이었다. 무언가 엄청난, 회복될 수 없는 배반이 그에게서 자라 있었다. 나무 하나가 내 뜰에 와 뿌리를 내려 잎을 틔우며 자라듯이 하나의 사랑이 그렇게 왔고 그와 같은 높이와 굵기를 가지면서 배반이라고 뉘우쳐져야 할 나무 하나가 또 그렇게 자랐던 것이 아닌가. 두 개의 나무가 창 밖에서 너울거리는 오동나무 옆에 우뚝우뚝 자리를 잡았다. 그는 아무것도 내다볼 수 없었다. "병명은 뭔가요? 어디가 아프신 건가요?" 나는 물었었다. "암이에요. 췌장암. 그런데 그 주위로까지 번졌다고 해요." 아, 하느님. 나는 누군가라도 부르고 싶었다. 누군가가 가까이에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두세 달 전부터 아프시기 시작했어요. 수술 후에는 괜찮으셨죠. 학회에서 세미나도 준비하시고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고통이 시작된 게, 한달 전부터는 진통제를 쓰기 시작할 정도로 심해지셨어요. 수술 끝나고나서 회복이 되시니까 좀 쉬셔야 하는데 무리를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암세포가 임파선으로 번졌다는 얘기에요." 주치의를 만났던 이야기를 박 교수는 알아 들을 수 없는 의학용어를 섞어가며 말했었다. 항암치료라는 게 뭔가. 암은 잘라내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아는 암의 전부였다. "투약을 시작하면 혼수상태가 되기도 하고. 머리카락이 다 빠지는 사람도 있고 그래요. 그걸 이겨내야 되는데 의사 이야기로는 교수님 경우는 오십 대 오십이라고 해요." "못 이겨내시면요? 그건 의사가 아니라 몸이 해내야 할 일 아닙니까." "결국은 몸이 의지죠. 삼 개월이래요. 한계가. 항암치료가 효과가 없을 때 사실 수 있는 건 삼 개월이란 이야기지요. 그러면서도 의사는 오십 대 오십이라고 해요." 그 순간 나는 누군가를 향해서 욕을 퍼붓고 있었다. 이건 게임도 아니다. 이런 식의 반칙이 어디 있느냐. 적어도 그것이 무엇이든, 준비하고 정리하고 치러낼 시간은 주어야 하는 거 아니냐. 세상에는 재기한다는 말 까지도 있지 않느냐. "베토벤 좋아하시는 거 아시죠.? 선생님이." 박 교수가 갑자기 그렇게 물었다. 삼 개월이 남아 있는데, 겨우 삼 개월인데 베토벤이라니. "선생님이 그러세요. 베토벤을 들을 수 있고, 울 수도 있는, 그렇게 맑은 정신으로 죽고 싶다고 말이에요. 선생님도 이젠 자신에 대해서 아시는 거 같아요. 암이라는 건 알리지 않았었거든요, 전번 수술에서도 말이에요." 나는 그를 부를 수 있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는 나에게 어떤 무형의 것이었다.그를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사람들의 관계란 대개 일반적이고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다. 일반적이란 거기에 특별한 의미, 그 만남을 위한 어떤 의식적인 자아도 끼어 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학생과 선생으로 이루어지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학생인 내가 그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고 있던 그를 만났다는 데에는 아무런 특수성이 없다. 우연이란 것도 그렇다. 우리의 만남이란 더 없이 흔한 그런 것이었다. 그는 한 학기가 거의 다 지나갈 때까지 나의 얼굴과 이름을 하나로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그만큼 그의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의 눈만이 아니다. 나는 누구에게나 그랬었다. 나는 그를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교수님. 그러나 나는 이 호칭에 한번도 개인적인 애정을 가져본 일이 없다. 그것은 하나의 직업을 의미할 뿐이다. 그리고 대학사회에서 그것은 때때로 직위로 통용된다. 강사 다음의 조교수 다음의 조교수 다음의 부교수 다음에 있는 대학선생의 자리. 어디서부터 사람들은 그의 직업과 인격을 동일시하기 시작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을 가늠하는 자는 무엇일까. 수위라든가 청소원이라든가하는 직업만이 아니다. 조각가라든가 성악가같이 그 직업에 성을 붙여서 들어가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그들의 직업에 성을 붙여서 부르지 않는다. 김 수위, 박 청소원, 정 조각가, 최 성악가라고 부르는 것을 나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약속도 예의도 아니다. 어딘가에서부터 그것은 깨어지고, 사람들은 불러댄다. 김 변호사님, 최 목사님, 조 기자님. 그를 최 교수님이라고 부를 때. 나는 그의 성 뒤에 오는 교수라는 명사가 직업을 말하는 것인지 직위를 일컫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를 그렇게 부를 때마다, 그것이 그에게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가르친다는 일이 그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에게 어떤 변혁이나 성장을 가져다 주는 힘을 잃어버려가던, 그가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대는 그런 시대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에게 그 말을 묻지 않았었다. 그도 그렇게 믿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원의 영어시간이나 별로 다를 게 없는 대학 영문과에서, 그는 영미시와 문학사를 가르치는 교수였고 나는 학생이었다. 그는 열정적으로 가르쳤고 나는 열등한 학생이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다감했으나 나는 학회실이나 연구실에 찾아가 본 기억도 없다. 그는 여럿속에 함께 있었고, 나는 혼자였다. 어쩌다 나는 생각하곤 했다. 저분은 누구를 가르치며 있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고. 그는 너무도 다면체였다. 그는 선이나 면 혹은 형태에 대해 선험적일 정도의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소리에 얼마나 강했던가. 그는 호앙 미로의 그림을 음악으로 이야기 했고,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형태로 말하곤 했었다. 그는 슬픔을 웃음으로 환치시키는 미다스의 손을 가졌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기쁨을 말할 때면 언제나 가슴이 눅눅해지곤 했었다. 그가 했던 영문학사 백이십 분 강의는 마치 써가지고 온 원고를 읽듯 정연했었다. 그가 종교를 가질 수 없으리라고 나는 한때 생각했었다. 그는 너무나 만화가였고 건축가였고 귀가 열려 있는 음악 애호가였고 화가였고 때로는 전방 부대의소대장이었고 혁명가였고 파계한 수도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어떻게 종교를 가질 수 있으랴. 종교는 단순성이거늘. 내가 그에게 묻지 못한 것 가운데 하나가 또 있다. 그는아마 연애라는 것을 해보지 못했으리라는 것이다. 그것도 내가 그렇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저 시정의 연애라는 것-조금의 거짓과 조금의 소유욕과 조금의 무책임과 조금의 자기기만과 조금의 욕정과 조금의 보상심리가 겹쳐져서 만들어내는 진실이란 이름의 거대한 수렁, 어떻게 그가 그런 곳에 빠져들 수 있었으랴. 그는 어떻게도 자신을 내던질 수 없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는 아마도 종교를 가졌으리라, 누구보다도 뜨겁고 견고하게. 그는 참혹한 연애에도 스스로 족쇄를 채웠었으리라. 그는 아마 스스로 죽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끝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를 부를 이름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말하고 느끼고 주장하고 슬퍼하면서 용서하고 나누어 주고 함께 하면서 기쁨을 아는-밥을 먹고 걷고 손을 잡으며 사는 그 사람을, 인체의 한기관과 기관이 불가해의 신비로 묶여져서 그의 행위를 만들어 내는, 그 인간을 각 기관으로 제각각 떼어 놓는다면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어렸을 때 읽었던 슈바이처에게 찾아와 말했다. 저는 삼겹살이 아픈 데다가 어쩐지 제 양지머리에도 병이 든 거 같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푸줏간의 고기처럼 말했었다. 우리 핏속의 소금기는 바다의 소금기와 그 짜기가 같다고 한다. 그러나 피는 바닷물일 수 없다. 강의실에서였다. 오월이었고 아직 푸르기보다는 더 많은 갈색으로 뒤덮여 있는 잔디밭에서 학생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 노랫소리가 가늘게 강의실 안으로 새어들었다. 우리는 T.S 엘리어트의 시를 읽고 있었다. 그것은 읽는 것이 아니라 관찰이었고 해부였다. 우리는 그 시를, 허파와 간과 심줄과 늑골을 각각 끄집어 내어 무게를 달고 색깔을 들여다보고 어떤 기능을 가지는가를 관찰하고 있었다. 영시 해부학 교실은 지루했고 졸음이 우리들의 메스를 든 손을 감싸고 있었다. 창 밖에 모여 앉아 노래를 하고 있는 녀석들을 저주하며, 차라리 나는 그들이 더 좀 크게 노래하기를 바랬다. 우리들의 메스를 든 손이 잠이 깰 정도로. 그때 그가 말했다. "나는 최소한 하루에 두 개 이상 사과를 먹는다." 그의 느닷없는 말에 나는 엘리어트를 자르고 있던 메스를 든 채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시의 주인공은, 결국 <나는 인생을 커피 스푼으로 되질해왔노라>하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저런 세상일로 허비한 자신의 시간을, 커피 스푼으로 설탕이나 뜨는 걸로 이야기하고 있거든," 사과라는 말과 커피 스푼으로 되질한 인생 사이에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인가. 어느 성급한 녀석이 있어, 사과가 그래서 어떻게 되었다는 겁니까 하고 묻지도 않았고, 교수님은 무슨 사과를 좋아하시는데요. 국광인가요 후지인가요 하고 실없이 묻지도 않았다. "내가 하루에 두 개씩 사과를 먹었다면, 보자, 나는 도대체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사과를 먹어치웠다는 얘기가 되지? 이 주인공이 커피 스푼질이나 하며 일생을 보냈다면 아마 나는 사과나 씹으며 보냈노라 해야 하겠지." 나는 웃었다. 사과나 씹으며 보낸 인생, 그가 그렇게 어석어석 씹어삼켰을 몇 트럭의 사과. 사과. 사과. 강의실 뒤쪽 창가에서 내가 킬킬거렸고 이어서 많은 여학생과 몇 명의 남학생이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종로 5가에서 인삼방사를 하는 집 아들인 옆의 녀석이 내게 물었다. "왜 웃니? 사과가 어쨌다는 건데?" 창 밖의 기타소리가 사라지고 우리들이 다시 엘리어트의 허파와 심장과 발톱가지를 도려내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가 말했다. "강의를 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면, 킬킬거리며 따라 웃는 학생이 있고, 조금있다가 웃는 학생이 있고 나중에 옆의 녀석에게 물어보고 웃는 학생이 있어." 나는 그를 향해 킬킬거리면서 그렇게 돌 하나씩 놓아 징검다리를 만들어갔을 것이다. 던져놓은 돌들이 다리가 되고 다음에는 물을 막으며 길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함께 잠을 잘 수는 없다. 얼마나 오래 지속되느냐 하는 시간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함께 할 수 있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걷고 함께 웃을 수 있다. 사랑도 함께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잠들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섬이다. 물위에 홀로 솟아오른 땅의 이름 그것이 섬이다. 우리는 혼자다. 그 무엇도 함께 할 수 있지만 잠이 들 때는 각자로 돌아가 혼자여야 한다. 하나의 섬에서 다른 섬으로 가기 위해서는 뱃길이 필요하다. 섬은 움직일 수 없다. 배가 그들을 이어준다. 그러나 그 길은 물 위의 길이다. 지도에만 있는 길을 배는 오고간다. 이내 사라지고 마는 물 위의 길, 뱃길은 그러므로 시간 속에서 아무런 영속성을 가지지 못한다. 그 학기, 엘리어트의 해부학 교실이 끝나던 때였다. 우리는 이글거리는 여름을 창 안팎에 놓고 시험을 치렀다. 이제 교실 밖의 잔디는 충분히 푸르게 변해 있었다. 엘리어트의 시를 살갗과 근육과 뼈와 내장으로 갈라낸 녀석들이 하나 둘 시험지를 내고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나도 무딘 메스에 엉긴 피를 닦아내고 나서 시험지를 들고 교탁 앞으로 나아갔다. 강의실에는 반쯤의 학생들이 남아 있었다. 나는 B를 바라면서 C여도 좋을 시험지를 교탁 위에 놓았다. 그때 그가 물었다. "너, 그 수산이라는 이름은 누가 지었냐?" "할아버지가 지어주셨습니다." "너희 할아버지가 좀 무식했냐?" "아, 아뇨." "거짓말 마, 임마. 얼마나 무식했으면 그렇게 쉬운 한자만 갖다 붙였겠냐." 밖은 여름이었다. 드문드문 교정을 걷고 있는 사람들은 그림자와 같았다. 햇빛이 모든 것을 불태우고 난 자리에 남아 있는 불티 같았다. 나는 웃었다. 세상의 원칙이란 질서를 위한 약속일 뿐이다. 세로의 형태가 가로의 꼴로 바뀔 때 필요한 것은 원칙이 아니다. 두 곳에 적용될 수 있는 질서일 뿐이다. 나는 웃었다. 내 이름을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니. 사학과의 조교 하나가 더위에 땀을 흘리며 내 옆을 지나갔다. 나를 돌아보는 그의 얼굴이 말하고 있었다. 자식이 더위를 먹었나. 웃기는. 그렇게 해서 그는 내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들어왔다. 그는 휴식이었고 종교였고 나에게서 권력이 되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추악하지 않은 권력이었다. 때때로 그리고 그 후의 오랜 시간에 걸쳐서 나는 그에게 안겨 쉬었으며 그로부터 엄정한 계율의 질책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힘이었다. 한강을 건넌 차가 청량리로 들어섰을 때 그는 시계를 보았다. 11시였다. 종합병원의 까다로운 면회시간을 생각하면서도 그는 차를 빨리 몰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차라리 시간이 늦어져서 면회시간에 대지 못해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그의 두려움을 조금 부축했다. 이런 식으로의 참담한 만남을 치러내야 한다 해도 최 교수를 만난다는 것은 기쁨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그는 집을 나오기는 했었다. 그리고 그는 기뻤다. 그것은 최 교수의 병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그와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데 대한 기쁨이었다. 은사와의 오랜 헤어짐 끝에 그를 만나러 찾아간다는 것이 그 은사의 병보다도 기쁘게 다가오는 데 대해 그도 처음에는 놀랐었다. 그러나 차가 한강을 건너가서 청량리로 진입하기 위해 차선마저 헝클어져 있는 혼잡 속으로 들어섰을 때 그는 이미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세 개의 염려와 일곱 개의 기쁨으로 집을 나왔다면 한강을 건너며 그것은 여섯 개의 고통과 네 개의 간절함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항암이란 말도 또한 그렇게 달라져 있었다. 그는 항암제의 그 항자를 너무 믿었던 아침을 떠올렸다. 암에 저항하는 내성을 기르는 치료라면, 그런 치료가 시작되었다면 그것은 이미 아이라는 것에 그만큼 지배되어 있다는 뜻이 아닌가. 지난해의 큰 수술이라는 것만 해도 그랬다. 한번의 수술이 도려낼 수 없었던 운명이란 무엇인가. 수술이란 매매나 이혼이나 합격같은 용어가 아니었던가. 그것은 다시 돌이키거나 이의가 없는 일회성의 완결은 아니었던가. 어떤 운명이 수술의 폐허를 헤집고 다시 씨를 뿌렸는가. 그의 육체는 그다지도 기름졌던가. 이제 교수님은 돌아가신다는 말인가. 클랙슨이 다급하게 울리면서 바로 위에서 그 순간 쇳소리를 내며 누군가가 소리쳤다. "운전 똑똑히 해, 이 새끼야." 그는 놀라 브레이크를 밟으며 목소리의 사내를 쳐다보았다. 그는 트럭 운전수였다. 그가 눌러쓴 모자 밑으로 길고 더러운 머리카락이 내려와 귀를 덮고 있는 것을 그는 보았다. 그가 미안하다고 손을 저어 보였다. 트럭운전수는 재판정의 판사처럼 높은 곳에서 그를 내려다보며 만화 속의 악한 같은 얼굴을 했다. 차선을 바로 잡으며 그는 손으로 얼굴을 닦았다. 눈에 익은 거리가 또 그만큼 낯설게 늘어난 건물들과 함께 다가서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그는 이곳에 와보는 일이 헤아리기도 어렵게 오래 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를 졸업하고난 후 몇번, 그나마 최근에는 이쪽으로 와볼 일이 없던 그였다. 최 교수는 모교의 부속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것이다. 학교 정문이 가까워졌을 때 그는 길가에 세우져 있는 몇 대의 전경 호송차량을 보았다. 학교에서 오늘 시위가 있을 모양이구나. 길이 막히기 전에 병원을 빠져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정문 옆을 돌아 대학병원 주차장에 차를 세울 때쯤에 그는 또 달라져 있었다. 여섯 개의 고통과 네 개의 간절함은 이제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은 일곱 개의 고통과 세 개의 절망 같은 것이었다. 그는 마치 무슨 민원사항을 가지고 관공서를 찾아온 사람처럼 화를 내면서 병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시위로 하여 길이 막혀도, 그가 병원에 하루종일 갇혀 있어도, 면회시간이 지나서 저녁까지 기다려도 좋다는 식으로 조금씩 자신을 포기해갔다. 신관을 찾아가며 그는 소아과 앞을 지나쳤다. 그는 그곳이 산부인과가 아닌데도, 사람은 결국 병원에서 죽기도 하고 태어나기도 하는구나 하고 소리없이 중얼거렸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의 옆에는 정형외과에 입원해 있는 게 분명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석고붕대를 한 다리를 대포처럼 앞으로 치켜들고 있었다. 뒤에 서 있는 그의 아내는 몹시 지쳐 보였는데도 환자인 그는 머리를 깨끗이 감아 가리마를 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그는 대포의 뒤를 따라가 듯 다리를 치켜든 환자를 다라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 안에서였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음을 알았다. 병원 앞에 오면, 문병객을 위한 물건들을 파는 상점들이 있게 마련이므로 그는 거기서 과일이든 꽃이든 사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는 서둘러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5층에서 엘리베이터는 멎었다. 시위 때문이었어. 골목에 진을 치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차가 막히거나 병원진입로가 봉쇄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엉망이 되어 버린거야. 그는 묵묵히 구두 끝을 내려다보며 5층복도에 서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최 교수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가 진료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 환자들을 보면 어쩐지 저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환자로 태어난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그것은 노인을 보면 그들은 처음부터 노인으로 태어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장례식엘 가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거기서 죽음은 사라진다. 죽은 사람은 지금 자기만의 특수한 체험을 치르는 중일 뿐이다. 문상을 온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아무것도 실감하지 못한다. 그는 늘 그랬었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의문이 열렸다. 과일을 사러 가는 일도 최 교수를 만나는 일도 그는 다 포기하고 싶었다. 자기가 느끼고 있는 슬픔이나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미묘한 상실감도 그리고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모르게 와서 자신을 내리누르기 시작한 운명의 손길, 최 교수와 자신을 얽어 맨 그 줄마저도 그는 다 포기하고 싶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3.2.1. 그건 숫자에 불이 들어왔다 나가면서 엘리베이터는 내려갔다. 간호원 둘이 뒷굽이 넓은 구둣발소리를 울리며 그의 뒤를 지나쳐 갔다. 목소리만 남았다. "어머, 얘는 등산가서 만난 남자를 뭐 시내에서 또 만나는게 뭐가 이상하다고 그러니." 한쪽 팔에 링게르 바늘을 꽂은 채 최 교수는 병상 옆에 놓여 있는 사물함의 서랍을 열었다. 그가 꺼내드는 담배를 나는 놀라며 바라보았다. "괜찮으세요? 피우셔도?" "여기 누워서 담배 피우는 자유도 없으면 어떻게 하냐. 자네도 피워." 나는 선생님께 라이터를 켜 불을 붙여드렸다. 담배를 끊는 거야 얼마나 쉬운 일이냐, 나는 평생 담배를 수백 번도 더 끊었다. 그런 유쾌한 말을 한 흡연론자의 말을 들려준 이도 선생님이었다. 조금 여위긴 했지만 그것은 그분이 입고 있는 환자 가운 때문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선생님은 여전했다. 오히려 그의 조금 마른 듯한 얼굴이 보기좋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선생님은 쓰러져 있는 사람이 아니라 조금 쉬고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병은 어디에 숨어 있는가. 나는 선생님의 병이 눈에 보이지 않는 악마, 유혹의 탈을 쓴 속삭임처럼 생각되었다. "그래 박 교수가 전화를 했어? 그런 짓들 하지 말라고 했는데." "교수님이 절 보고 싶어한다기에 왔지요." 나는 아주 작아져서 조그맣게 웃었다. 벌레 하나씩을 눈 위에 붙여 놓은 것 같은 그의 짙고 두터운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치 연기의 맛을 보듯이 그는 조금씩 연기를 빨아들이며 담배를 피웠다. "그래, 며칠 전에는 김선영이가 전화를 했어. 네가 내 이야길 쓴 게 있다면서 말야. 그래서 뭐라고 썼드냐고 물었지. 옛날 자기 얘기도 거기 들어 있다더군. 자기를 미모의 신인이라고 썼다기에 그건 한 아무개가 잘봤다 그랬지. 그리곤 또, 글을 쓰는 거보다는 물장사로 나가는게 더 낫겠다고 썼다기에, 그것도 진실인 거 같다고 했지. 김선영이 말이 재미있어. 그때 자네 말처럼 물장사나 나갔으면 좋았을걸, 이제 애가 둘이나 있는 여편네가 됐으니 어쩌느냐더라." 김선영은 대학 후배인 소설가였다. 언제나 최 교수님 댁에서 작은 모임이 있었고 그때 나는 몹시 취해서 그 후배에게 물장사 운운하는 망발을 했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쓰면서 그 삽화를 곁들였는데 김선영이 그것을 읽어본 모양이다. "그 전화를 받고 내가 그랬지. 한수산이도 이제 큰일났구나. 내 이야기까지 써서 글로 팔아먹고 있으니, 아마 그녀석이 상상력의 고갈이 왔나보다." 나는 선생님의 팔로 끊임없이 떨어져 들어가고 있는 링게르 병의 방울들을 바라보면서, 네 그런가 봅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 상상력의 고갈이라는 게 작가들에게 자꾸 술을 마시게 만들지. 너는 어떻냐 요즘?" "많이 마십니다." "청탁불문, 소주 양주 아직도 그렇게 마시니?" "상상력의 고갈인가 봅니다." "그만 마셔라 이제. 할 일이 늘 많나 보던데." "헤밍웨이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상상력의 고갈이 술을 마시게 하지는 않지만, 지나친 술은 상상력에 장애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런 얘기를 했거든요." 우리는 아무도 병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링게르가 다해가고 있었다. 담배를 서랍에 집어 넣으며 선생님이 중얼거렸다. "야단맞을라." 선생님이 인터폰을 눌러 간호원을 불렀을 때야, 나는 야단맞는 다는 말이 간호원을 두고 한 말임을 알았다. 다 맞은 주사를 거두고 새로운 링게르를 꽂아놓고 간호원이 나갔을 때 최 교수가 말했다. "난 평생 제복 입은 사람이 무섭더라. 간호원도 그래. 그 옷에서 이상한 힘이 나와. 그게, 옷이 아니라 상징이거든." 선생님은 마치 이 병상 위에서의 시간들을 즐기고 있는 표정이었다. 간호원이 무섭다는 말도 그랬다. 주사를 갈아 끼우던 간호원이, 아프시죠? 하고 덤덤히 물었을 때도 선생님은, 간호원들이 저마다 들어와서 아프죠? 아프죠? 해대니까 안아프다가도 참 이 주사가 아픈 주사라지 하게 돼요, 하며 길게 말했었다. 그것마저도, 선생님은 지금 이 시간을 즐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게 했다. 나는 들고 간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그것은 내가 쓰고 있던 긴 소설의 세 번째 권이었다. 나는 그것을 아홉 권으로 계획하고 있었고, 이제 그 세 번째 권이 책으로 나왔던 것이다. 집에서 서명을 해가지고 온 책을 받아든 선생님에게 내가 말했다. "세 번째 권이 마악 나왔습니다." 책을 넘겨보며 최 교수가 클클거리며 길게 웃었다. 장난꾸러기 같은 웃음이었다. "그래 고맙네. 네가 보내준 두 권은 읽었지. 야 그러고보니까 너도 참 촌놈이더구나. 그렇게 지독한 산골에서 살았냐?" 그 소설의 이야기는 강원도의 내설악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삶의 터전으로 볼 때 도시는 도금된 곳이야. 원형이 아니지. 인간 존재랄까 혹은 삶의 방식의 원형이 오히려 시골에 오래 남아 있어. 그래서 그것이 뛰어난 소재가 될 수도 있는 거지. 포크너의 요크나파 토파 컨트리라는 것도 그런 존재의 원형이거든." 그때 손님들이 우르르 병실로 들어왔다. 두 여자분과 최 교수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 중의 여자분이 대뜸 말했다. "사람이 왜 이래. 또 들어와 누워 있어. 나이값을 해야지." 병실 뒤쪽에 서서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끔 창 밖을 내다 보았다. 칠 층의 높이 때문에 창 밖으로는 건물의 지붕 몇 개가 바라보일 뿐이었다. 그들이 이제 막 공항에 내려 병원으로 왔으며, 여자분 중의 한 분이 최 교수 누이라는 그런 것들이 이야기 속에 드러났다. 집에 가서 짐이나 우선 풀고 좀 씻고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들이 나갔을 때였다. 봄날의 안개처럼 가슴 밑바닥을 기어나와 깔리는 것이 있었다. 미국에서 누님이 날아올 정도로 선생님의 병은 지금 무겁다는 새삼스런 깨달음이었다. 마술사의 손에 홀리듯 나는 최 교수의 그 유쾌함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누이가 병실을 나가자, 최 교수는 다시 한 대의 담배를 꺼내물었고 나는 또 라이터를 켜 불을 붙였다. 그가 여전히 즐거운 얼굴로 말했다. "내 누님이야. 미국에서 삼십 년을 있는데도 저렇다니까. 전혀 미국에 사는 사람 같지가 않아. 나보다도 더 한국사람이야." 선생님이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지난해에 아주 큰 수술을 했어. 다 잘라냈지. 난 아파본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인데 췌장 위 다 잘라내서 여기 아무것도 없는 상태야. 의학이 자르고 떼어내는 건 잘하는데. 살아나는 건 의학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몫이야. 그런데 왜 이렇게 회복이 안 되나 모르겠어." 물이 한 방울씩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선생님의 혈관 속으로 끊임없이 떨어지고 있는 링게르액이 목소리가 되어 새어나오는 것도 같았다. "다시 입원을 하면서 주치의를 만나 물었어. 수술이 뭐가 잘못되었던거냐. 의사 이야기는, 수술은 퍼펙트했다는 거야. 퍼펙트했는데 왜 다시 입원을 해야 하느냐." 선생님의 담배를 받아 나는 주스를 담았던 종이컵에 껏다. "다시 입원은 했는데 간호원들이 자꾸, 주사가 아플 거라고 하는 거야. 주사는 원래 아픈 건데 뭘 그러냐며 있었는데, 오늘부터 맞는 건 많이 힘들 거라고까지 해. 그래서 병원의 실장하는 친구에게 여기서 전화를 했어. 야, 그 내가 내일부터 맞는 주사가 많이 아프다면서?힘들다던데 무슨 주사인데들 그러냐? 그런데 이 친구가 쉽게 대답을 하는 거야. 아프지, 힘들지, 항암제니까." 어제, 그러니까 어제 겨우 선생님은 자신의 병이 암이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것도 친구가 무심하게 내던진 말을 통해서였다. 나는 선생님의 눈을 마주볼 수가 없었다. "암이었다니. 그걸 알고 나니까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어. 2시에 잠이 깼는데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어." 쓸쓸함이란 무엇인가. 고독인가. 절대의 고독. 아니면 비애의 감정인가. 고통도 쓸쓸하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쓸쓸함의 고통.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아닐 것이다. 그 모든 것을 합쳐놓은 것보다 더 드넓은 심상, 지금의 이 쓸쓸함이란 말은, 자기에게 남아 있는 시간, 자기 삶의 예정된 진행을 눈치챈 사람의 가슴이 아닐까. 비로소 홀로 있음을 안 사람의 마음의 들판.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주 유쾌하게 다가왔다. "여기서 내려다보면, 이 건물 맨 밑이 응급실이고 그 옆이 영안실이야, 그게 보여. 여기가 칠층이니까 십층쯤 올라가서 거기서 뛰어내리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바로 그 앞이 응급실이고 옆은 영안실이니까, 순서대로 운반하기도 쉬울 테고 그런 생각을 하는데도 그렇게 쓸쓸한 거야." 강물이 출렁거리고 있다. 햇빛이 그 위에서 부서진다. 물빛은 푸르지도 검지도 않다. 강 건너편에서 공사를 하고 있는 대형 중장비들이 움직임도 없이 움직이고 있다. 주차장을 걸어나온 그는 선착장 건물로 다가갔다. 유람선 회사에서 틀어대는 음악이 귀에 따갑다. 왜 여길 왔지? 그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그 말을, 어떻게 여길 왔지? 하고 바꾸어본다. 선착장 건물 삼층으로 그는 걸어 올라갔다. 강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주스 한 잔과 커피 한 잔을 샀다. 커피를 마시고 싶었고 목이 말랐으나 물이 없었다. 햇빛을 등지고 앉아 그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그때, 여의도까지 가는 배가 출항하겠다는 안내방송이 따귀를 때리듯 다가왔다. 여자의 목소리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면서 감사합니다를 외쳐댔다. 삶은 감사하는 나날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오늘 나에게는 감사할 일이 없다. 그의 손에서 다 마신 종이 주스컵이 구겨져 나갔다. 담배도 안 피우셨는데 입원하시면서 피우시는 거예요. 최 교수의 둘째 아들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렇게 말했었다. 아주 불안해 하세요. 자주 좀 와 주세요. 아무데도 아버지를 닮아 보이지 않는 얼굴로 아들은 또 말했었다. 그에게 주소와 전화번호를 따로 적어주면서 그는 말했었다. 위암도 그렇고 췌장암도 그렇고 몹시 아프실 텐데, 가족이 힘을 내셔야 합니다. 그는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그말을 했던 그 태연한 얼굴의 사내가 탁자 맞은편의 빈 비닐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일어섰고, 사내는 사라졌다. 그는 다시 한 컵의 주스를 사들고 와 자리에 앉았다. 아홉 권까지 써야 할 책입니다. 이제 겨우 세 권이 끝났습니다. 빨리 건강해지셔서, 지켜봐주셔야지요. 병실에서 그렇게 중얼거렸던 자신을 그는 또 떠올렸다. 앞자리에 그 사내가 앉아 있었다. 햇빛이 탁자 위에 만들고 있는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그는 중얼거렸다. 넌 계꾼이야. 계꾼이 낙찰계 일 년짜리 끝나면 한 해가 간다고 말하듯 너는 책 숫자를 가지고 세월을 계산하는 거냐. 앞자리의 사내는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삶. 그는 소리내어 그 말을 중얼거렸다. 삶. 배가 떠나가고 있었다. 여의도로 향해 가는 유람선이었다. 배 위의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뱃전에 서서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드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선착장 매표소와 주차장에 늘어선 차들이 햇빛 속에 정물화 같았다. 선착장으로 내려오는 계단에서 젊은 남녀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강을 등지고 선 여자를 향해 삼각대 위의 카메라 셔터를 누른 남자가 뛰어왔다. 잠시 아무 움직임도 없이 남녀는 서 있었다. 사진이 찍혔는가, 여자가 남자의 팔을 잡으며 깡충깡충 뛰었다. 아무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속에서 그들의웃는 모습이 햇빛에 부서져 갔다. 그가 중얼거렸다. 이제 누가 있어, 나에게 가르치고, 감화를 주고, 아낌을 받으랴. 그는 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꺼냈다. 눈물을 가리기 위해 그는 그것을 썼다. 선생님의 아픔에 동참할 그 무엇도 자신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이제 혼자가 되어가는 것도 자신임을 그는 알았다. 갑자기 닥쳐온 죽음에 대한 실감조차 그것이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을 내일에 던져진 갑작스런 공포라는 것도 그는 알았다. 그는 울었다. 덧없이, 덧없이 울었다. 인도 여행에서였다. 옛 왕조의 자취는 델리의 성벽에 남아 있었다. 땅을 지배한 권력은, 어디에서나 같다. 하늘을 향해 구조물을 올린다. 웅장한 대리석의 성벽을 걸으며 생각했었다.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이런 무위한 행위에 빠져드는 것인가. 불멸의 그 무엇을 찾아가는 삶들의 무위-부나비가 불을 찾아 날아들어서 제 몸을 태우며 죽어가듯, 우리들 또한 그런 허무의 불에 우리들의 시간을 태워가는 것인가. 그 성벽을 거닐다가 붉은 대리석이 삭아서 작은 모래알로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었다. 풍화였다. 바람이 불자 대리석 성벽에서 자디잔 모래들이 흘러내렸다. 삭아서 모래가 되어 흘러내리는 대리석, 그 붉은 가루들. 최 교수를 찾아갈 때마다 나는 인도에서 만났던 그 거대한 성벽의 풍화를 떠올렸다. 그의 쇠약을 확인하며 나는 그의 몸에서 떠나가고 있는 영육의 모래알을, 그 풍화를 보아야 했다. 하루는 다리에서 하루는 팔에서 그렇게 우리를 살아 있게 하던 그 무엇이 떠나가고 있었다. 항암제 투여가 끝나면 그는 집으로 퇴원을 했다. 박인희 교수에게 이따금 전화를 해서, 선생님의 안부를 물었다. 나는 차츰 그의 병이 두려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찾아갔을 때도 나는 그분의 병이 어디쯤 와 있는가를 묻지 못했다. 자신의 병이나 치료과정에 대해 말하지 않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암세포가 임파선으로 들어가 있는 상태래요." 박 교수에게서 그런 말을 전해들으면서도, 나는 그 말이 의미하는 게 어떤 상태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배가 부르다든가 속이 메슥거린다든가 아니면 가슴이 저린다든가 하는 어떤 종류의 느낌도 그 말에는 들어 있지 않았다. 암이라고 하는 것도 세포였던가 싶었고 임파선이란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열차 이름 같았다. "방사선 치료를 안 받으시겠다고 하세요. 의지가 점점 약해지시는 거 같애요." 박 교수가 목이 잠겨서 전화를 해왔을 때도 나는 그의 말에서, 선생님이 겪고 있을 어떤아픔이나 떨림도 느끼지 못했다. 다만 이 며칠 동안에 그에게서 또 무엇인가가 무너져내렸구나 하는 암울함이 가슴에 무겁게 내려 앉았다. "다같은 암환자들 아니겠어요. 방사선 치료를 받기 위해 와 있는 사람들 말예요. 그 사람들을 보면서, 저게 어떻게 사람이냐 원숭이들 같지 않으냐, 그런 말씀을 하세요. 저런 꼴로 살고 싶지 않다고도 하시고요," 주르륵 주르륵 바람이 불 때마다 흘러내리던 대리석 성벽, 선생님의 피부가 머리카락이 손톱이 그렇게 부서져서 선생님의 몸에서 흘러 내리는 것 같았다. 감정을 통제하느라 꿈틀거리듯 움직이던 선생님의 검은 눈썹이 눈앞에 어른거렸다.선생님이 탄 말이 내 앞에 와 무릎이 꺾이며 팍팍 쓰러져가는 것 같았다. 말들은 그렇게 끊임없이 달려와서 쓰러져갔다. 엘리베이터를 내려 아파트의 초인종을 누르려다가 그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괜찮아 괜찮아. 그는 누구에게인지 알 수 없이 중얼거렸다. 들고 온 과일 바구니가 어쩐지 선생님에게 욕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잘 익어 싱싱한 과일이었다. 그러나 잘 읽어 싱싱하다는 과일의 상태는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그것을 먹을 수 없는 사람에게 썩은 것과 떫은 것과 싱싱한 것이 무슨 차이가 있으랴.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아들이었다. 집 안은 조용했다. 응접실 소파에 앉아 어느새 눈에 익은 벽의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굵은 선으로 가을산을 그린 유화였다. 안에서 아들의 목소리가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이 웅얼웅얼 들리고 나서 최 교수가 밖으로 나왔다. 가운을 입은, 깨끗한 모습이었다. 원숭이처럼 그렇게 되어 하던 말이 언뜻 떠올랐지만, 최 교수의 모습은 단정했다. 어쩌다 동물원에 갈 때마다 참 야비한 얼굴을 한 동물이구나 하고 늘 같은 생각을 갖게 하곤 하던 원숭이와는 전연 먼 모습이었다. 많이 수척해 있긴 했지만 눈에는 여전히 빛이 있었다. "바쁠 텐데 ." 그런 말로 인사를 건네고 나서 최 교수는 아들에게 말했다. "나 담배 좀 갖다다오." 그가 자신의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놓았다. 약한 걸 피우느라 최교수가 낮게 중얼거리고나서, 아들이 가지고 온 양담배 켄트를 꺼내 불을 붙였다. 드시는 건 어떠세요. 요전에 전화 드렸더니 식사를 하러 나가셨다고 하던데요. 병원에는 한 주일에 한 번 가신다고요. 그는 모래가 뿌려지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먹고 싶기도 한데 소화가 돼야지. 냉면이 먹고 싶어서 나갔었어. 병원에 가고 오는 시간이 힘들어, 차 안에 앉아 있기가. 문득 어느 쪽이 환자이고 어느 쪽이 문병을 온 사람인지 모르게 서로의 목소리가 뒤바뀌어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최 교수는 그렇게 담담했다. 초인종이 울린 건 그때였다. 아들이 문을 열자,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원에서 왔는데요." 아들이 돌아와 그런 말을 했다. 그의 등뒤에 커다란 화분을 든 사내가 둘이 보였다. 아주 커다란, 거의내 키에 가까운 소철을 그들은 무겁게 들고 서 있었다. 화분이 놓일 자리를 가르쳐 주고나서 최 교수가 말했다. "조금 이쪽으로 돌려놓지. 아, 그래요, 그게 좋구만." 커다란 화분이, 푸른 잎을 내뻗으며 응접실과 현관사이에 놓여졌다. 화원에서 온 사람들이 돌아가고 나자 최 교수가 말했다. "풀도 이따금 병원엘 보내야 해. 잎이 자구 안 좋아지길래 화원엘 보냈었지. 한 두 달 보냈더니 아주 좋아져서 왔군." 십 년쯤 자라면 저런 크기가 될까. 풀을 길러본 적이 없는 그는 우람한 소철의 나이를 헤아려 보면서, 최 교수보다는 소철 쪽에 눈길을 보냈다. 지금 왜 풀이 그에게 필요할까. 병은, 그의 병은 그와는 무관한 어딘가를 지나가고 있는 건가. 나는 지금 저 풀이 최 교수보다도 오래 살 거라고 믿고 있지 않은가. "아버지, 전화 왔어요. 이사장님이신데요." 아들이 건네주는 송수화기를 받은 최 교수가 느릿느릿 말했다. "나 아직 안 죽었다 그래. 아무렴 너보다야 오래 살아야지. 나쁜 짓을 해도 네가 나보다 더했을 테고, 일을 해도 네가 나보다 더 많이 했을 테니 순서를 봐도 그렇지 않냐." 최 교수가 낮은 소리로 웃었다. 소철은 물기를 머금은 듯 푸른 빛이다. 그는 갑자기 무어라 표현할 길 없는 배반감을 느낀다. 이 분이 지금 병과 친해지고 있는 건가. 병과의 싸움이 아니라 병과 무언가 은밀히 속삭이고 있는 건가. 전화를 끝낸 최 교수가 그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아는지 모르겠는데 이번에 내가 잘못 만났어." "네? 누굴 만나셨는데요?" "누가 아니고, 내 몸 말일세. 내가 이번에 잘못 만났어." 최 교수는 자신의 병을, 만났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하. 그가 앉은 자세를 바로했다. "지난해 수술을 할 때였어. 내가 암이라는 걸 다들 알았으니까, 나한테 와서 울고, 기도하고 그랬는데 나는 이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내가 정신을 차려서, 그 빚을 갚아야 하지 않나 싶고 ." 최 교수가 말끝을 흐렸다. 잠시 후 그는 표정을 밝게 하며,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고생한 걸로 말하면야 난 지금 죽어도 돼. 남이 칠십 팔십까지 할 고생을 난 버얼써 다 했으니까. 고생의 양으로 보자면 그런데 사람 빚을 갚아야 할 게 많아." 그리고 그가 웃었다. "오혜령이라고 하든가 그 여자.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할까봐. 기도하고 일어나서 비추든가 그것도 하고." 최 교수에게 인사를 하고 나올 때도 그가 가지고 간 과일 바구니는 현관 한 옆에 놓여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그는 천천히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최 교수는 어디에 있는 건가.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이제 죽어도 좋을 정도로 그가 겪은 고생 속에 있는가. 소철을 화원에 보내 싱싱하게 살려내는 그가 최 교수인가. 사람들에게 빚이 많아서 더 살아야 한다는 그는 또 누구인가. 일어나서 비추어야 겠다는 그가 최교수인가. 내가 사가지고 간 그 과일 바구니의 상대는 최 교수가 아니었던가. 임파선에 암세포가 들어가 있다는 사람, 곧 다른 환자나 똑같이 원숭이처럼 변해갈 사람은 어디에도 없는 것인가. 아파트를 나섰다. 경비원이 수돗가에서 자루 끝에 달린 걸레를 빨고 있었다. 그는 뜻없이 중얼거렸다. 저것도 삶이다. 그러나, 그 후의 하루하루는 붕괴였다. 사람의 삶에는 어떤 모습의 가설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그것을 확인하는 하루하루가 그에게서 흘러갔다. 한번의 삶, 한 번의 평생은 그러므로 그에게 쓰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삶은 모아나가는 것도 쌓아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몫으로 받아 가지고 있던 것을 하나씩 써나가는 나날이었다. 단 한 번의 평생을 살 뿐이라는 것을, 그토록 절실히 느껴가면서도 그는 붉은 도장으로 경고라고 찍힌 쪽지를 들고 민방위훈련을 받으러 갔고, 자동판매기의 커피를 맛없다고 중얼거리며 마셨고, 아내는 왜 점점 살이 찌는가 무심히 생각했다. 달그락거리며 부엌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점심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눈앞이 흐려져 와서 나는 묵묵히 선생님의 맨 발을 내려다보았다. 무너졌다. 그런 말을 나는 그 맨발에서 보고 있었다. 발톱 옆으로 하얗게 가루가 묻은 듯이 흰 것이 드러나 보이는 선생님의 맨발은 가늘게 야위어 있었다. 발가락 위에 나 있는 털마저, 그럴 리 없겠는데도, 바싹 여윈 듯 싶었다. "좀 누우세요. 앉아 계시면 더 힘드시잖아요." 요 위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는 선생님에게 내가 말했다. 그가 이마를 찡그리며 말했다. "어떤 포즈를 해도 편하지가 않아. 편한 포즈가 없어."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 유머많은 여전하시구나 싶었다. 이런 것을 이성이라는 말로 불러도 되겠지. 어떤 포즈도 편하지 않다니. "사람들은 나에게 투병을 하라고들 해. 투병을 하라는데 난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무엇과 싸우라는 거야. 투병 그래서 내가 3,4년을 더 산다고 해봐. 그게 무어야 그래서 어떻다는 거야.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 아무것도 할 수가없는데, 싸우라니 ." 갑작스럽다고나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선생님은 무너져 있었다. 그의 육신이 그랬다. 그는 응접실로 나오지도 못하고 안방에 딸린 침구 위에서 나를 맞았다. 전번에 찾아오려고 했을 때, 병원에 가고 안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두 주일이 지나 있었다. "그렇겠지. 막 살아왔다면, 그렇게 아무렇게나 살아왔다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무슨짓이든 하겠지. 그러나 난 그렇지가 못하잖아. 그렇게 막 살지도 못했잖아." 얼음 조각을 하듯 그렇게 사셨을 것이다. 깨뜨리면 잘못 부수면 회복이 안 되는 것으로 사신 시간들일 것이다. 선생님의 시간. "폭력적인 생각이 자꾸 들곤 해. 뛰어내릴까. 그래서라도 죽는 게 낫지 않나. 딱 죽는 약이 있으면 먹을까도 싶고. 이런 폭력적인 생각을 또 고쳐. 내가 이래선 안 된다, 안 된다 하고." 왜 그런 약한 생각을 하세요. 나는 겨우 그렇게 중얼거리려다가 목이 아프게 누르며 그 말을 참았다. 아무것도 선생님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것을 나는 가지고 있지 못했다. " 죽음이 화려하게 까지 느껴지기도 해. 그게 두렵지가 않아. 이상하지. 전에 할아버지 무덤에 가 앉아 있을 때 생각이 나. 그때, 그 융단같이 푸른 잔디를 보며 앉았노라면 그렇게 좋고 평화스러울 수가 없었어. 내가 이제 여길 내려가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고, 얼마나 많은 나쁜 짓을 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속이며 살아갈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곤 했었지. 물론 살아가며, 순간순간의 기쁨이야 있겠지. 그러나 ." 이미 노오랗게 물들어 있는 선생님의 눈을 나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병이 저렇게 만든 것일까. 검고 컸던 선생님의 눈. 우리는 이다지도 무력한 가. 우리가 무엇을 이룩하겠다고. 무엇을 남기겠다고 매일을 고단하게 살았단 말인가. 메마른 입술을 적시며 선생님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길이 커튼이 열려진 창에 가 멎었다. 텅 빈 하늘이 거기 가득했다. "끊임없이 싸워. 정상적인 자아와 병든 자아가 이십사 시간을 싸워.이게 나야. 내가, 두 개의 내가 살아 있어. 내가 나를, 정상적인 자아가 병든 자아를 두 시간만 재워놓자. 그러면서 잠이 들어. 여덟 시에 깨우자. 그러면서 살아. 병든 자아를 달래서 약을 먹이고, 병든 자아에게 사정해 가며 물도 몇 모금 먹고 그때, 왜 그 생각이 떠올랐을까. 그것은 내가 본 처음이자 마지막 한번의 선생님이었다. 그때 선생님은 대학의 보직을 맡고 있었다. 마침 약속이 있어서 학교 본관의 처장실로 찾아갔을 때였다. 그때 다른 단과대학의 학장을 했던 원로 교수 하나가, 최명하 너 이놈 하고 고함을 치며 처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었다. 그는 아마 선생님보다 스무 해는 나이가 위였을게다. 그를 향해서 그때 선생님이 소리쳤다. 학자라는 게 나이 값도 못하고! 당신하고 할 이야기 없으니 당장 나가! 놀라서 집무실 한 구석에 나는 서 있었고, 선생님은 그 노교수의 등을 밀어 밖으로 내몰았다. 문을 닫아걸며 선생님이 내뱉듯 말했다. 무슨 부정입학생 명단을 수첩에 적어 가지고 합격을 시키자니! 그걸 내가 못한다고 잘랐더니 저 주책이야! 그때는 마침 대학입시철이었다. 그처럼 격렬하고 단호했던 선생님의 모습이 갑자기 왜 떠오르는 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때의 그 선생님, 또 다른 선생님의 자아를 생각했던 것일까. 메마른 발을, 여윈 발을 당겨 앉은 자세를 바꾸며 그때 선생님이 중얼거렸다. "황 교수. 그 사람이 뭔데 나보다 이십 년을 더 살아. 말이나 되는 소리야. 나보다 이십 년을 더 살다니." 황 교수. 그 분은 선생님과는 가까웠던 국문과 교수였고, 원로 소설가 였다. "오늘 비행기는 전연 예약이 안 되네요. 그냥 비행장으로 나가보실래요. 좌석이 있으면 탈 수도 있을 테니까요." 아내의 그런 말을 들으며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아니, 가지 않겠어. 병든 자아와 정상적인 자아가 아냐. 수없이 많은 내가 내 속에 있어. 그의 죽음을 지켜보며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자아와 싸웠던가. 때로는 두려웠던 나. 때로는 슬펐던 나. 그의 무너져가는 몸을 보며, 건강에 조심해야지 하고 쥐가 천장을 갉아대듯 속삭인 나도 있었어. 그는 새로 빤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맸다. 비뚤어진 매듭을 거울속으로 바라보며 다시 맬까 어쩔까를 그는 잠시 생각했다. 그는 양복을 걸치며, 넥타이를 고치지도 다시 매지도 않을 또 하나의 자신에게 말했다. 두 시의 약속을 미룰걸 그랬어.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기 위해 구두를 그는 오늘 저녁에는 술을 마시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많이 마시지는 마. 밖으로 나섰다. 바람이 빗발을 뿌려 그의 구두를 젖게 했다. 그는 우산을 바람 쪽으로 기울이며 걸음을 빨리 했다. 비는 모래알같이 뿌려댔다. 골목에는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사막 같았다. 비를 맞고 있는 집과 나무와 아스팔트 포장이 된 골목을 바라보았다. 사막. 순간 그는 자신 속에 아무도 살아 있지 않다고 느꼈다. 어떤 모습의 그도. 고창근 sgamm@hanmail.net 소설집 <소도(蘇塗)>  
7 월인(月印) 외1편/김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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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0 2010-05-29
10.06월 창간호 시 월인(月印) 개봉되지 않는 날이 길어질수록 절명을 꿈꾸는 밤은 깊어 그래, 저기쯤이면 될 수도 있겠다 작정하고 찾아 간 곳 땅과 바다의 경계에 선 순간 허공으로 한 뼘만 솟구치면 되리라는 속내를 알아차렸다는 듯 꽝, 내 몸뚱어리에 찍히는 달빛 전해들은 풍문엔 모든 무게들의 소리까지 삼켜 주었다는 바다여 난 왜 안 된다는 거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수천수만 동백의 모가지를 베어 간다는 해풍이여 왜 나는 안 된다는 것이냐 천개 만개 몸을 나투어 土末을 지키는 달 깊고 검은 바다를 잠그는 달 꽝, 꽝, 꽝, 꽝 다시 내 몸을 잠그는 달 접견하다 서울 사는 오모 시인이 부처님 오신 날 즈음해서 ‘부처님의 자비가 가득하길 기원합니다.’라는 문구가 들어 있는 안부를 전자 우편으로 보내 왔다 첨부해서, 아내와 함께 도봉산 산행 길에 들렀던 관음암에서 찍었다는 사진 한 장도 보내 왔다 설명글에 섬돌위에 놓여 있는, 했는데 섬돌은 보이지 않고 나란히 계신 흰 고무신 한 켤레 닳고 닳아서 찢어진 뒤꿈치를 이제는 사라진 일거리인 이불호청 꿰맬 때난 쓰는 굵은 흰 무명실로 꽁꽁 꿰맨 고무신 한 켤레 나도 모르게 두 손 가슴에 모우고 모니터를 향해 꾸벅 절했다 김은령 er803@hanmail.net 시집 <통조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