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2호...
   2019년 10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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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14년 1월 41호부터 2014년 10월 53호까지...
편집자
79861 2014-11-03
718 일상의 행복/고경하 file
편집자
368 2019-01-31
일상의 행복 아침에 눈 뜨면 부스스한 나를 보며 미소 짓는 당신 모습 말없는 행복 느낍니다 구수한 된장국 반찬 몇 가지 놓고 밥을 먹으며 오가는 대화 공감에 은은한 행복 느낍니다 출근하는 당신 잘 갔다 올게 하고 현관을 나서는 당신 뒷모습을 보며 애절한 행복 느낍니다 다정한 당신 추억은 멀어지고 가슴에 그리움 맴돌지만 당신 흔적 정리하며 청렴한 행복 느낍니다 저녁은 무슨 반찬 너털웃음 당신에게 나의 사랑을 고백 할 까? 나의 고민 돌아보며 일상의 행복 느낍니다 고경하/ 1965년 11월4일 광주출생 2017년 상주동학문학제 상주동학농민혁명기념문집 [우리는 하나] [해풍에 피어나는 동백꽃이여] 서사시로 특별상 수여 신인등단 대구 시월문학제. 웹진 문학마실. 평화통일공동시집 [도보다리에서 울다 웃다], 대구신문 등 창작 詩 출품, 민족작가연합, 한국작가회의 대구경북지회 회원  
717 아메바 족속들 외1편/권혁재 file
편집자
501 2019-01-02
아메바 족속들 몇 번의 돌풍과 폭우가 부족마을을 덮치고 지나갔는데도 부락민들은 오히려 평온해 보였다 배가 가라앉아 젊은 전사들이 찬 바다 밑바닥에서 죽어나갔으나 몇 번 혀를 찰뿐 아무도 공분하지 않았다 족장은 마녀사냥을 나가 7일 만에 돌아와 인공눈물을 흘리며 부재를 증명하려 했다 며칠 후 씨족대표를 뽑는 선거에서 비문명접촉인들을 제치고 문명접촉인들이 전과를 무시한 채 대거 당선되었다 한번만 도와달라는 公約은 空約이 되어 부족사람들을 다시 졸개 취급하였다 씨족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명품이나 부동산, 아이들의 족집게 학원 등뿐이었다 부족의 공분보다는 맛집과 범칙금과 같은 사소한 것에 더 광분하였다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일정한 속도로 짜여 진 각본대로 잘 돌아가는 부족마을 몇 번의 돌풍과 폭우가 지나갔는데도 부락민들은 그 진원지를 캐내려 하지 않았다 오는 비만 탓하고 우산을 펼 줄 모르는 일회용 같이 속편한 족속들. A플러스 축제가 끝났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축제의 여흥에 빠져 있었다 중간고사가 이 주 후로 다가오고 교정의 은행잎은 물들기 시작했다 현실로 돌아가는 발걸음들이 빙판길을 디디는 듯 휘청거렸다 빈 강의실에서 들려오는 노교수의 자장가 같은 환청이 저녁바람을 타고 도서관을 지나 기숙사까지 따라왔다 이상은 이상의 것으로 간절히 바랬지만 현실은 현실 이하의 것으로 축제 뒤의 우리를 잔인하게 하였다 현실에서는 늘 최고라고 자부했는데 이상에서는 최악이 되어버린 우리들의 현실과 이상이 괴리된 슬픈 좌표 날이 갈수록 캠퍼스가 시들해지고 낭만을 빙자한, 청춘을 방기한 처절한 대가가 입동으로 치달았다 우리들의 야무진 기대는 기대한 만큼 실망으로 되돌아 와 가슴에 얹힌 돌덩이처럼 낙인을 찍었다 현실은 최고였지만 이상은 최악이 된 교정의 덫에 걸린 쓸쓸한 성적표. 권혁재/경기도 평택 출생 200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집 <<안경을 흘리다>> 외 다수  
716 비 갠 후 외 1편/오형근 file
편집자
525 2019-01-02
비 갠 후 윗가지에 매달려 있던, 마지막 남은 빗방울이 눈꺼풀 감기듯 떨어지자 바로 아래, 곧바로 빗방울 맞은 대추는 몇 번을 대롱대다 겨우 조용, 조용 대추는 아직 푸르네 나의 사전의료의향서 이제는 이곳에,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자식보다 눈치 빠르게 먼저 알아차려서는 상처 입은 짐승이 외딴 곳에 가서 죽듯이 (홀로) 선승禪僧이 앉은 채 육신의 옷을 벗듯이 (무념無念으로) 떨어진 과일이 아래로 굴러가듯이, 죽음의 문을 넘고 싶으니 바라오니 그대로 그냥, 그냥 죽는 그대로 오형근/1955년 서울 출생. 1978년 《시문학》주최 전국대학문예 시 당선, 1988년《불교문학》과 2004년《불교문예》로 등단. 시집 『나무껍질 속은 따뜻하다』,『환한 빈자리』, 『소가 간다』.  
715 마을길 외1편/김진희 file
편집자
504 2019-01-02
마을길 -굿 보릿대 꺾어 보리피리 부우부우- 붉은 접시꽃 지나 키 작은 송엽국 무리 지나 차 온다- 보도블럭 사이 삐죽삐죽 놀란 어린 풀들 보건소 앞 팽나무 가파른 쇠가락 쟁강쟁강 접시꽃이 예까지 따라와 온몸으로 울고 아이들 오디 먹은 검은 손 살구빛 살구 두 알 다시, 은행나무에 걸려 겨울 지나고 봄 지나고 무성한 초록 부채손들에 둘러싸여 여름 맞은 빛바랜 빨간 우산 하늘과 접신하는 접시안테나 지나 아직 마늘 찧는 칼자루처럼 콩콩 뛰고 있을 처녀 무당 생각하다보면 아이들은 벌써 운동장으로 달려가 술래잡기를 하고 죽은 개구리를 만지고 급식소 뒤편 옥수수수염은 길-어지고 12월 오르막이 지쳐 스르르 눕는다 산허리가 딸려 내려간다 오봉산 능선 성근 속눈썹이 파르르, 선다 * 부산 출생, 시집 『굿바이, 겨울』, bullaeya@hanmail.net,  
714 바다낚시 외 1편/나병서 file
편집자
627 2019-01-02
바다낚시 사실은 즐겁지않았어 바다를 보아야 될 것 같아서 따라나선 바다낚시 문득 내가 세상에서 배운 것을 깨닫게 했지 한 번도 남 속여본 적 없는 광어 우럭 게르치 노래미 펄덕이는 것들을 속인다는 것 물렁이는 미끼조차 가짜를 달고 그 펄떡이는 순수를 속이고 있었던 거야 모르겠어 -“속지말아, 제발 속지 말아...” 내가 말해주었는지 모르겠어 낚시대를 드리우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 이 것을 나는 배웠던 거야 나는 내가 역겹고 참 좆같다는 느낌이 들었어, 낚시 내내... 바다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어 세상에 흐르는 피냄새같은. 사람처럼 망치 들고 어떤 짐승이 새끼달린 희고 이쁜 어미개 머리를 내리쳤다고 하더라 맞아서 눈알이 튀어나온 어미개 짖지도 않고 비명소리도 없이 조용히 새끼에게 다가가 젖을 물리고 주저앉아 떨리는 경련을 멈추었다더라 옜적에는 사람들이 많았다더라 잘 익은 감 까치밥 남기는 동네에 창피한 일 생기면 우물 메꾸어 버리고 다같이 여름갈증 한사발씩 마시고 깊숙히 마시고 고개숙여 하늘을 보지않았다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더라 세상은 개명하여 하늘아래서 망치들고 새끼달린 생명 퉁퉁부은 젖달린 애미를 내리치는 그런 짐승들이 사람처럼 걸어다닌다더라 사람처럼... 나병서/시집; 지렁이, 똥, 붉은 죽 외 주소;경기 고양 덕양 화전동 528 화전식물원 내 nabyungseo@naver.com  
713 당간지주(幢竿支柱) 외 1편/박찬선 file
편집자
662 2018-12-01
당간지주(幢竿支柱) 마주보고 서 있는 것이, 서로 의지해서 서 있는 것이 마음의 성전이 사라졌다. 이름과 함께 깡그리 사라졌다. 화려했던 단청도, 불이문의 계단도, 두툼한 방석 자리도 신생대의 뜨거운 화석이 되었다. 속 불은 꺼지지 않고 길을 열어 간다는데 무로 돌리는 무자비함이 무섭다. 불사에 참석한 사람들의 짚신이나 거랑주머니가 삭아서 흙이 되었다. 야단법석의 진언은 깊은 잠에 빠져 진공을 이루었다. 소리가 사라진 자리의 적막. 폐허의 자리를 아름답게 가꾸는 것은 바람에 일어서는 풀이다. 심폐소생술도 응급처방도 쓸 경황이 없었다니 무심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눈은 보이지 않는 것은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빈자리가 한때 가득 찬 역사라는 것을, 개발 제한 지역이 정밀의 문화라는 것을, 귀가 어두웠다. 혁명의 깃발도 올리고 여기가 큰 도량이라고 소리보다 큰 몸짓도 하고, 흐르는 강물 같이 심경도 읊지만 듣는 이가 없다. 보아주고 새겨주는 이가 없다. 시간의 뿔이 항변하듯 견고하게 솟았는데 흑백 사진의 슬픔이 넘친다. 여러 천년 받들고 있는 것이, 하늘 향해 받들고 있는 것이 거랑 주머니* 하늘(弓)과 땅(乙)의 이치가 담긴 아(亞)자가 수놓아진 거랑 주머니 메고 떠나고 싶네. 이른 아침, 늦은 저녁 이 마을 저 마을 낯익은 얼굴 만나 손 덥석 잡고 인간이 하늘이라는 통문 전하며 떠돌아다니고 싶네. 동수나무를 보면 손 모아 경배하고 큰 바위를 만나도 묵념을 올리며 길 가의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가 모두 다 사랑스럽네. 셈이 닿지 않는 영겁의 시간 속에서 지금 이곳에서 두루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너와 내가 다름없이 하나 된 기쁨이려니 풋풋하고 변치 않는 생명으로 살아있음은 해 뜨는 빛의 공부를 할 수 있음은 길을 내듯 모시는 일, 맥을 짚는 일이려니 냇물을 만나면 검어져야 맑아지는 이치를 익히고 바람을 만나면 열 석자 주문*을 실어 보내고 풀꽃을 만나면 풀꽃 속으로 들어 향기로운 잠을 청하며 꿈속의 우복동*을 품고 살아야겠네. 목마른 새벽 덜렁 거랑주머니 매고 떠나고 싶네. 아름다운 산하 오르고 내리며 만나는 사람마다 한울님의 얼굴이라고 거룩한 길상이라고 극구 칭찬하며 경배해야겠네. 빨갛고 노랗고 하얀 상생의 둥근 원이 그려진 거랑주머니에 물과 구름, 바다와 달, 푸른 숲*을 가득 담아 물과 구름의 시 ,바다와 달의 시, 새들이 사는 숲의 시 이런 자연의시, 동녘의 시, 빛의 시를 한 편 한 편 꼭꼭 심어주고 싶네. *상주시 은척면 동학교당에 전해오는 70×32cm 크기의 휴대용 대(垈)로 신호 및 당호, 공문이나 편지, 통문 등을 수발하는데 사용했다. 바탕은 청색, 대 중앙에 적색, 황색, 백색의 원 안에 아(亞)자가 새겨져 있다.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상주에 전해오는 이상향, 유토피아 *水雲 최제우, 海月 최시형, 靑林 김주희의 호에서 따옴. 약력: 경북 상주 출생. 197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돌담 쌓기」외. 상주, 동학, 낙동강 연작시를 쓰고 있음.  
712 말랑젤리 결투 외1편/김요아킴 file
편집자
505 2018-12-01
말랑젤리 결투 결투가 시작된다 흑백 필름으로 인화되는 토요일 밤 멀리서 구해온 아버지의 말랑젤리는 어린 우리들을 건맨으로 만들었다 꼭 황야와 석양이 반복되며 화면 가득 금괴를 약탈하는 악당들의 거친 태클처럼 포장지는 뜯겨진다 허연 설탕가루를 휘파람같이 날리며 등장하는 서부의 총잡이 한 개를 더 탈취하려는 막내의 아우성은 황급히 도망가는 마차의 바퀴소리로 기억된다 결투는 이미 주인공의 눈빛에서 읽혀진다 전광석화같이 표적으로 쏘아올린 총알들 정확하게 단맛으로 변해 갔고 쓰러진 검은 그림자들은 빈 봉지의 바스락거림으로 남는다 유창한 영어발음으로 엔딩자막을 차례로 호명하는 아버지의 목소리 그 판정에 불복하며 엎드린 한 인디언을 닮은 동생의 신음이 천천히 오버랩 된다 실험의 추억 형은 비글이다 입 안엔 옥시콘틴 냄새가 났다 예전의 반항기는 실종되고 축축한 눈망울만이 까맣게 묻어났다 타액 같은 눈곱은 ‘매번’을 상기하며 희뿌연 새벽을 견인했다 기계의 굉음은 귓딱지에 붙어 이내 방음상태다 ‘똑같이’란 동작이 우리 속에서 희생의 제의로 의심 없이 행해졌다 땀에 부풀은 꿈은 고통에 비례하며 짧게 깎여 나갔다 광기에 찬 주사바늘은 생을 마취시켰고 형은 여전히 비글이어야 했다 자본의 논리는 단 한 번의 오작동 없이 다음 공정으로 진행되었다 물지도 울지도 못한 그는, 결국 절망의 B등급에서 풀려났다 이미 안락사가 예정되어 버려질 운명을 아슬히 비켜간 것이다 그 대가는 왼쪽 다리의 깁스로 몇 달간을 덩그렇게 치러내야 했다 그리고 형은 그때 그 기억들을, 지금 한 자 한 자 목발로 오려내고 있는 중이다 *옥시콘틴: 암환자나 만성통증환자의 통증을 치료하는 진통제. -------------------------------------------------------- 김요아킴 1969년 경남 마산 출생. 2003년 계간 <시의나라>와 2010년 계간 <문학청춘> 제1회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가야산 호랑이』『어느 시낭송』『왼손잡이 투수』『행복한 목욕탕『그녀의 시모노세끼항』, 산문집『야구, 21개의 생을 말하다』. 한국작가회의와 부산작가회의 회원. 부산 경원고 교사. 메일: kjhchds2hanmail.net  
711 바보 가로등 외1편/최순섭 file
편집자
508 2018-12-01
바보 가로등 고개 떨구고 오래 아래만 쳐다보고 있다 강마른 얼굴은 시름에 잠겨 종일 거기 서있다 누구를 기다리는 가 눈을 감고 낮에는 꿈쩍 않다가 캄캄한 밤이 오자 오가는 발소리에 귀 쫑긋 세워 왕눈 치켜뜨고 먼 길까지 환히 밝히고 서있다 날 새는 줄 모르고 이따금 지나가는 연인들 등 기대고 속삭이는 말 조용히 엿듣고 있다 그러다 그들이 웃으면 따라 웃고 그들이 울면 따라 울고 날 새는 줄 모르는 바보가 거기 서있다 에어쇼(airshow) 열애 중 붉은 고추잠자리 한 쌍이 어마어마 넓은 쪽빛 바다를 끌고 오고 있다 한 몸이 되어 잡아당기는 팽팽한 사랑이다 최순섭_대전광역시출생. 1978년『시밭』동인으로 작품활동시작. 시집 『말똥,말똥』등이 있음. 현재 환경신문 에코데일리문화부장, 경기대,동국대,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출강, 한국가톨릭독서아카데미 상임위원.  
710 봄 청계리 외1편/김만수 file
편집자
511 2018-12-01
봄 청계리 연두 창을 열고 오세요 당신을 위한 나루는 아득히 열려있고 충만한 침묵의 시간들이 겨울 숲을 건넌 배를 밀어 올립니다 이 캄캄하고 차가운 문 안쪽에 서서 물질들이 어떻게 혼자만의 시간을 견디는지 그 시간들이 얼마나 막막한 지 들어다 보았습니다 문이 살며시 열리고 어둠을 밀며 드는 빛살들의 입자가 물질들에 깊이 스미고 저들의 음울한 습생들이 휘발되어 버리는 하여 쳐지고 지친 침묵의 시간을 벗을 그 어느 날을 당신의 푸른 소매에서 봅니다 쉰 늦은 눈길 건너는 바람 발자국 소리 봅니다 그 떨림의 왼쪽으로 타오르는 언덕이 있고 거기에 스며드는 그대 목소리 붉고 따숩습니다 세상은 온통 차가운 얼음 행성 당신은 솜양지 꽃잎 흔드는 따스한 숨소리로 다가옵니다 마른 상수리나무 숲 시린 꼭지마다 한 촉씩 불을 켜며 옵니다 오래 닫힌 문틈으로 더 쓸어내릴 것도 없는 숲정이 하얗게 부풀어 오르는 2월 조금 남은 겨울의 죽 그릇에 온기를 채우며 젖은 한 쪽 어깨를 가만히 건내옵니다 사랑하는 일의 힘겨움을 아는 까닭이겠지요 눈시울 붉게 출렁이며 가는 저녁 새들을 보고 어제는 또 울었습니다 김만수: 포항 생. 1987년&lt;실천문학&gt;으로 작품활동 시작 한국작가회의 . 포항문학 회원 . 해양문학상 장시&lt;송정리의 봄&gt; 시집&lt;소리내기&gt;&lt;햇빛은 굴절되어도 따뜻하다&gt;&lt;오래 휘어진 기억&gt; &lt;종이눈썹&gt;&lt;산내통신&gt;&lt;  
709 잘못 든 길에서 두 번째로 죽다 외1편/정선호 file
편집자
508 2018-12-01
잘못 든 길에서 두 번째로 죽다 칠흑 같은 밤에 고속도로에서 나가야 할 나들목 지나쳐 다음 나들목으로 나와 들녘이 있는 국도를 달렸다 잘못 든 길은 언제나 지루하고 화나는 일이었으나 길가의 꽃과 작물들은 내게 정신 차려 전생같이 역주행하지 말고 순리대로 살라고 일렀다 세상도 바뀌었으니 다른 사람들과 다투거나 화내지 말고 편안하게 살다가 제 명을 다하고 저승에 가라 타일렀다 나는 수십 년 전 잘못 든 길에서 역주행하여 한차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났다 저승에서 옥황상제는 내 역주행의 여정을 알고는 다시 태어남을 허락했었다 또한 다시 잘못 든 길에서 마주칠지도 모를 모든 생명들에게 다시 역주행하지 못하게 길을 안내하라고 일렀다 하지만 다시 태어난 내게 세상은 여전히 호의적이지 않았고 순응하고 살아야함을 강요했으며 작은 실수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번 생에서도 잘못 든 길에서 내 많은 의지와 생각들이 죽었다 문자는 역사의 길이다 - 문자 문명전을 관람하다 전시장엔 붓을 든 이천년전 다호리*) 주민들과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들이 뒤섞여 북적였다 다호리 주민들은 목판에 글씨를 써 전시장 벽에 붙였으며 후손들이 적은 글씨를 읽으며 문자의 발전함에 감탄과 칭찬을 했다 다호리 주민들은 붓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으며 죽은 자의 무덤에 붓을 넣었다 죽은 자들은 저승에서 이승의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냈으며 후손들은 무덤에서 붓을 가져오고 한지를 만들어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기록했다 붓으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음을 알렸으며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고 태조가 즉위함을 공포했다 조선이 창건되었음도 알렸으며 대한제국이 외세에 굴복해 한일합방이 되었음도 알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졌으며 해방이 되었고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워졌음을 알렸다 붓은 역사의 길에서 모든 사람들을 웃고 울게 하였고 대성통곡하게도 하였다 *. 경남 창원시 북면 다호리. 철기 시대의 유물이 다수 발굴되었음 정선호/충남 서천 출생, 200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내 몸 속의 지구』『세온도를 그리다』『번함공원에서 점을 보다』가 있다.  
708 시집이 안 팔린다 외1편/권숙월 file
편집자
537 2018-12-01
시집이 안 팔린다 “시집 찾는 사람이 선생님밖에 없어요” 단골 서점 주인 말에 뒤통수가 가렵다 내가 주문한 시집은 한 권 더 들여놔 보지만 몇 달이고 등만 보이다 사라진다 서점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발길 붙드는 시집 코너, 한쪽 구석으로 밀려난 지 오래이다 신문에 매일 같이 시가 소개되고 인터넷에 수없이 시를 띄우는데 왜일까 국수 한 그릇 값이면 시집이 한 권인데 왜 눈을 돌리지 않을까 열세 권 시집을 낸 시골 시인의 3쇄 4쇄는 전설이 되었다 시집을 팔리게 할 나의 궁리를 서점 주인이 누른다 “시보다 더 시 같은 산문, 시집보다 더 시집 같은 산문집은 많이 팔려요” 생각 좀 해 봐요 음식 솜씨 없는 사람들의 단골 어록이 있다 건강한 사람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지만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이와 반대라는 것, 맛이 있느니 없느니 투정부린다는 것이다 상투적인 비유가 식상하다 그럴까 정말 그럴까 같은 메뉴라도 어떤 식당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나 어떤 식당은 파리 날리지 않던가 예외도 있겠지만 여기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음식에 입맛을 맞추라 할 것이 아니라 입맛에 음식을 맞추어야 한다 손님을 무시하면 간판 내리는 날이 올 수 있다 경북 김천 출생. 1979년 『시문학』 통해 등단. 김천문학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김천지부장, 한국문인협회 경상북도지회장 등 역임. 한국문인협회 이사. 김천문화원과 백수문학관에서 시 창작 강의. 시집 『하늘 입』 『가둔 말』 『민들레 방점』 등 13권 상재. 시문학상, 경북도문화상, 경북예술상, 김천시문화상 등 수상.  
707 하루를 연다 외1편/허남기 file
편집자
509 2018-12-01
하루를 연다 밝은 눈길이 붉게 제 몫을 즐기는 순간 구겨진 삶들이 주름을 편다 새벽을 여는 훤한 빛을 천렵한 하늘의 형상을 닮은 붉고 푸른 날이 하루를 펼친다 늘 싱그러운 자세로 갈증을 풀어 주는 밝음이 한 줄기 실루엣을 등지고 바람과 구름의 층을 열어 자연을 마블링한다 빛의 명도를 앞세운 목마른 속세의 보폭을 넓혀 훤한 발길을 멈추게 하면 새벽 날개짓하는 첫걸음이 허물을 벗어 또 하루를 연다 주산지에서 누군가 천년을 점쳐 물속으로 긴 그림자를 그려 넣었을 꺼야 그 갸륵한 풀어헤침은 신이 주신 안식처일지도 몰라 먼저와 기다리는 님이 있을 거야 그것은 푸르름을 삼킨 가랑잎이었어 풋기 털어버린 낯익은 고목이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을 가을 동화로 스케치하며 만끽한 풍경으로 숨 쉬는 중일 거야 물기를 털어내는 수제비가 물안개 자욱한 호수를 걸으며 가을을 빚어낸 데칼코마니로 곱게 비친 자기 모습에 물빛을 만끽하고 있어 그 모습은 우리들의 희열이었어 *주산지:국립공원 청송주왕산내에 있는 저수지 허남기:경북 영천 출생/<문장21>등단<문학광장>신인상/ 경북문협 회원/영천문협 편집국장/ < 문학광장>시분과 심사위원.편집위원. 영남지부장/시에문학회 회원/시객의 뜰 문학회 기회국장  
706 매미 외1편 / 채 형 복 file
편집자
525 2018-12-01
매미 아부지, 아부지, 아이고 아부지이~ 왜 나를 낳으셨나요 어머니, 어머니, 아이고 어머니이~ 배고파요, 밥 주세요 맴 매에~ㅁ 맴맴맴 울고 싶어 울게, 실컷 울게 내버려 둬 삶이 서러워 그냥 서러워서 그래 녹음 짙은 그늘에 숨은 지옥 같은 여름이여, 이제 안녕 옆구리 후리는 초가을 바람이 서늘하네요 마른기침 쿨럭이며 나는 떠나갑니다 우리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기를 모르겠다 매일 나를 찾으려 집을 나서지만 금세 길 잃어버리니 길치는 지독한 난독증을 닮았다 평생 책을 읽어도 한 줄의 삶도 이해하지 못하니 두 눈 뜨고 길을 걷지만 갈 곳을 잃는 거나 글은 알지만 뜻을 모르는 거나 피차일반이다 오십 년을 헤매도 나를 찾지 못하고 손수레 가득 책을 읽어도 나를 알 수 없으니 모르겠다, 아무 것도 모르겠다 그늘을 만나야 빛은 비로소 안식을 얻는다고 하던데 한낮의 태양처럼 빛나던 젊음, 서늘한 죽음의 그늘을 만나야 마음 편히 쉴 수 있으려나 나는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이대로 살아도 좋지 않을까 봄이 오면 물 흐르고 꽃 피어나듯이 ---------------- 채형복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경작가회의 회원. 펴낸 시집으로 <바람이 시의 목을 베고>(2017년 상반기 세종도서 문학나눔 시부문 선정), <칼을 갈아도 날이 서질 않고>(2018.8)를 비롯 여러 권이 있다.  
705 내가 그리워 한 사람아 외1편/박규해 file
편집자
460 2018-12-01
내가 그리워 한 사람아 가슴을 저미는 듯 파란 그리움 보고픔은 늘 가슴에 남아 지난날의 추억을 곱씹으며 그 때 그 시절이 그리워 늘 보고파지네. 가끔 나를 즐겁게 하고 그 웃는 모습에 따스한 말 건네주며 항상 용기를 부어 주는 그리운 얼굴 아마도 지금쯤은 백발이 성성하여 아니 노년이 되었을 가 눈에 떠오르는 얼굴은 아직도 환한 그 모습은 청춘인데 만나고픈 마음뿐이네. 내가 그를 그리워하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 앞장서서 남의 일을 내일처럼 처리하며 따뜻한 말만 건네주든 그때 그 모습 다시 그리워지네. 떠나는 하루를 보니 우리는 백년도 못살면서 사노라면 언쟁을 벌리고 아옹다옹하며 살고 있지요 편안하고 안이한 생각을 하면 좋은 것 같지만 사람은 움직여야 살맛이 나지요 이렇게 살아가며 때로는 즐겁게 행복하게 지내는 시간은 짧지만 삶의 버거움은 늘 긴 시간으로 그리고 열심히 살려고 하는 마음으로 백발이 되도록 살았지만 이제는 언제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갈지는 모르지만 사는 동안 행복감 맛보며 사는 것이 요즘 시대라 하겠지요. 노년이 되면 친구와 즐거운 시간으로 보내야 한다고 봅니다. 어차피 한 줌의 흙이 되니 말입니다  
704 서울스런 것들 외1편/최기종 file
편집자
569 2018-11-01
서울스런 것들 서울에 가면 호흡이 빨라진다. 나도 모르게 끌려서 나도 모르게 떠밀려서 발걸음이 빨라진다. 어디든 가야한다. 무엇이든 사야한다. 서울에 가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문이란 문 닫혀서 길이란 길 늘어져서 입술들이 붉어진다. 바퀴들만 공회전한다. 마천루만 올라간다. 서울에 가면 나 홀로 우뚝해진다. 공원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어쩌다 술자리에서도 덩그러니 지지 않는 섬 하나 내가 단단해진다. 내가 바퀴가 되어야 한다. 횟배 배가 아파서 뒤척였다 과식해서 그런지 바로 누워도 불편하고 모로 누워도 불편하다 소화제를 먹었다 이젠 괜찮겠지 밤바다 잔잔해지겠지 길게 잠을 청했다 그런데 갈수록 뒤틀어댄다 배가 풍랑을 만났는지 이리저리 흔들린다 회충이 고고를 추는지 호랑가시 용코로 백혔는지 배가 뒤집어지고 난리다 배가 표류한다 침몰한다 선장은 죽었는지 내뺐는지 해경은 어디서 무얼하는지 아이들이 이리 몰리고 저리 뒹글고 유리창에 붙어서 애원통이다 그런데 그렇게 아프던 배 하나도 아프지 않다 와이퍼 지나간 차창처럼 깨끗해졌다 최기종 1956년 전북 부안 출생, 1992년 교육문예창작회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나무 위의 여자』, 『만다라화』, 『슬픔아 놀자』외, 목포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 전남민예총 이사장  
703 발 이야기 외1편/남태식 file
편집자
574 2018-11-01
발 이야기 출근길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랫집 중1 사내아이 손에 들린 신발 밑창의 숫자를 보다가 와! 260! 속으로 되뇐다. 내 발 크기는 240에서 250 구둣가게에서 탐나는 이미지를 만나도 발이 작아서인가 자주 재고가 없었다. 240에서 50까지 있는 대로 주세요. 무슨 발이 그래요. 중1 때 펄벅의 『대지』에서 전족을 읽었다. 댓돌의 신발을 정리하면서 어머니는 할머니의 큰 발 험담을 했다. 아담한 발을 가져야지 큰 발이 싫었던 나는 운동화 끈을 꽉 조이고 다녔다. 올 겨울에 구두를 맞추러 갔다가 내 발이 짝짝이라는 것 제대로 알았다. 여러 번 맞춤한 이미지를 맞춰 신는 동안에도 늘 한 발이 헐렁하거나 빡빡했지만 두 발을 한꺼번에 잴 생각은 안했다. 이번에는 번갈아 쟀다. 왼발은 245 오른발은 250 거의 대부분이 짝발이지만 사장님은 차이가 꽤 크네요. 이번에는 어느 발에 맞출까요. 각각 만들어 주세요. 처음으로 두 발이 딱 맞는 신을 신었다. 헐렁하지도 빡빡하지도 않으니 좌우 발가락들의 호흡이 편안해졌다. 좌우 걸음이 반듯해졌다. 가정의 완성 식사를 준비하고 집을 청소하고 빨래를 하는 일상적 노동을 무시하고서는 온전한 가정을 이룰 수 없다. 남자와 여자를 떠나서 남편과 아내를 떠나서 맞벌이와 홑벌이를 떠나서 거시와 미시를 떠나서 크고 작음도 없고 많고 적음도 없고 분별과 구별 없이 차별은 더더구나 없이 가정은 여럿, 결혼은 그 중 하나의 시작 따로 또 같이 같이 또 따로 함께 하면서 각자 각자 하면서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집을 청소하고 빨래를 하는 일상적 노동에서 온전한 가정은 완성된다. * 약력 남 태 식 2003년『리토피아』 등단, 시집『망상가들의 마을』외, 김구용시문학상 수상 외  
702 당신의 붉은 금빛가루 날리네요 외 1편 /권순자 file
편집자
550 2018-11-01
당신의 붉은 금빛가루 날리네요 당신의 세계에 붉은 쇳가루 반짝이는 구월 구절초 피는 길을 나는 걸어가요 고단한 꽃을 쇳가루로 당신이 빚어내는 동안 나는 노래를 부른답니다 제철소 당신 귓가로 흘러들어 졸음에 겨운 밤 시간을 당신의 귀를 밝힐 노래를 불러요 길고 지루한 터널을 천천히 쇳가루 붉게 반짝이는 당신 가슴을 씻을 노래를 불러요 이 길에는 코스모스 한들거리며 어둔 저녁 길을 훑고 있네요 해오라기 홀로 눈부신 하얀 날게 퍼득이며 바다 위를 날고 있어요 도대체 어디서 날아왔을까요 헤매다가 하늘 길을 잃어버린 걸까요 방랑하다가 사랑하는 가족을 놓친 걸꺼요 작은 바위에 내려앉아 물끄러미 바닷물 속을 들여다보고 있네요 어찌하여 이 바다로 흘러왔는지 왔던 길을 추적하는 중일까요 갈매기 한 마리 낯선 하얀 새 곁에 조심스레 고개 주억거리며 날개 접고 앉아 있네요 검게 물들어가는 밤바다 해오라기 날개 쫘악 펴고 비상하는 군요 달빛 타고 흰 날개 더 부시게 빛내며 다시 방랑길 떠나가네요 고되고 외로운 길 나아가네요 햇살이 당신 얼굴에 나리네요 금빛가루 흩날리는 당신은 이제 낮에 잠드는군요 환한 낮이 당신을 위해 깜깜한 밤이 되어줘야 하는군요 두꺼운 검정커튼을 파도처럼 드리우고 숙면의 안대를 하고서 깜깜한 밤을 대낮에 호출하는군요 해오라기 날개처럼 자유롭고 편안한 꿈을 호출하는군요 가을, 그냥 있으라 저기 흩날리는 잎들 허공에 온몸으로 문장을 써대고 기억을 앞질러 흘러가는 시간의 바퀴 허물어져 구름을 닮아간다 물결을 동경하던 발과 손이 멈추지 않고 바람의 깃을 따라 풀렁거려온 동안 바람을 거부하지 않고 바람에 닳아 파도에 저항하지 않고 짜디짜게 젖어 잠시 머무는 머뭇거리는 가을 놓쳐버리는 물결 희미해져가는 파도의 하얀 포말 부스러기들 점점이 바람을 삼킨다 권순자 1986년 《포항문학》에 「사루비아」외 2편으로 작품 활동 시작, 2003년 《심상》신인상 수상. 시집으로 『우목횟집』,『검은 늪』,『낭만적인 악수』,『붉은 꽃에 대한 명상』,『순례자』,『천개의 눈물』등이 있고, 『Mother's Dawn』(『검은 늪』의 영역시집)이 있음.  
701 송광사 외1편/김인구 file
편집자
525 2018-11-01
송광사 불일암, 무소유길을 걷는다. 후박나무 그늘 아래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법정의 뒤안길 푸르른 하늘은 푸르른 하늘을 쏟아내고 뭉게구름은 뭉게구름을 따라 돌아가지. 순연의 초록은 흐드러지는 초록으로 남아 느릿, 느릿 바람도 뒤짐 지고 걷는 불일암. 첫사랑 지나간 것들은 모두 추억이라는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앉아 가을볕 드나드는 담벼락에 기대 앉아 발장난을 했다 어젯밤 우리 집 옥상에 잘못 착지한 UFO도 한동안 담벼락에 서서 그랬다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했던 그도 그랬다 외로움에 갇힌 나도 그랬다 제 안으로 길을 내고 지나간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워했다 경계를 만든 신의 오해처럼 외로운 우리 모두는 그랬다. 전북 남원출생. 1991년 <시와 의식> 여름호에 <비, 여자> 외 2편을 발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 다시 꽃으로 태어나는 너에게> <신림동 연가> < 아름다운 비밀> <굿바이, 자화상>(2014년 세종 우수도서 선정) 외 다수의 공저가 있다.  
700 입추 외1편 / 신순말 file
편집자
580 2018-11-01
입추 한 보시기 그늘을 손 모아 드립니다 한 접시 매미소리 소매에 넣으시고 소낙비 한 사발 뜨니 마른 목을 축이십시오 폭염의 여름 지나 가을 문에 섭니다 주어도 받아도 주고 받음 잊어버리니 합장한 두 손 가득히 바람소리 지나갑니다 고장 난 길 무릎뼈가 고장나 수술했다던 친구 병상에 누워서도 추석 걱정을 한다 한 번쯤 성묘만 가도 되지 않으냐 해도 환자일 땐 다 잊어버려라 해도 삼십 년 넘게 차려온 제상이며 차례상 외며느리라서 오로지 제 몫의 책임이란다 산 조상이 죽을 판인데 죽은 조상 대수더냐고 막나가는 이야기를 해보아도 들리지 않는 눈치 아들 조상만 있고 딸의 조상은 없는 이 땅은 딸 같다 해도 며느리는 여벌일 뿐인데 딸이 되려 애쓰지 마라, 스스로를 가두지 마라 외어도 보았지만 헛염불이다 병원에 누워서도 제사상 걱정을 하는 그렇게 길을 들이고 길이 든 길 신순말: 상주들문학 회원.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 시집 [단단한 슬픔]  
699 별리의 애가 (낙화암에서)외1편/청향 임소형 file
편집자
620 2018-11-01
별리의 애가 (낙화암에서) 무엇을 망각한다는 것은 참 아픈 일이다 잊힌 세월이 그렇고 스러져간 곧은 절개가 그렇다 초저녁 푸른 강을 붉게 물들였던 저녁놀 목청 높여 울어 젖히던 소쩍새의 눈물 밤 뻐꾸기의 구슬픈 울음이 시퍼런 강을 따라 점멸하듯 망각의 피리를 불면 문득 저 잊혀져 간 슬프디슬픈 심연 속 핏빛 고독 끌어안고 뒹굴던 자맥질로 퍼 올린 슬픔의 넋 그 날의 한 맺힌 어느 한 생의 통곡이 무작정 상경하여 하루의 끝에 머무는 찬란한 노을 빛 되어 애련의 전설 바위에 무릅꿇고 절멸한 세월의 기억을 거슬러 하염없이 흐느끼고 흐느껴 운다 세월을 덮고 누운 여물지 않고 떠도는 잿빛 영혼의 숨결 바람이 처처로 이 부는 어느 가을 한 날 지워지지 않는 세월 속을 걸어와 축축하게 젖어오는 응축된 감정선을 되새김질하면 다시 또 슬프도록 명명한 망각의 피리를 불어 젖히는 푸른강물 출렁일 별리의 애가였을 그 기억 속으로 역리 계절을 망각한 겨울비가 추적추적 가을비 소리를 내는 날 윙윙 우는 바람 소리 젖히고 먼지낀 망막을 씻듯 딩동 날아온 잘 지내냐는 멍한 여운의 메시지 순간 쿵 내려앉는 심장 무한 반복의 작동으로 심장의 펌프질은 압력을 가하고 주체할 수 없는 박동수에 밤잠을 강탈당하는 가여운 심로였다 검게 색칠한 부재중의 푯말에도 고조되고 격양된 목소리로 연신 깍깍 반갑다를 외치는 까치 붉은 정맥주사를 주입한 펄펄 살아 뛰는 맥박 제치고 사계절 요람에 들지 않는 파릇히 곧추세운 상록수 이파리 보쌈 강한 생명력 과시하며 존재의 위력 주입하느라 버거웠던 하룻길의 고단함 놓지 못한 미련이었을까 차곡차곡 절인 애증 깍깍 소리치는 까치소리에 우듬지 떠나지 못한 새 마냥 접어둔 기억 펼치며 답신하는 이 기막힌 숨가쁜 웃음소리 어쩌면 퍽퍽한 세월 무뎌진 가슴 간지럽히는 딸랑이 소리일지도 현기증 나는 어지러운 세상 잠시나마 신선한 산소 흡입하는 청량제 일지도 모르는 일 차라리 이쯤에서 가출한 세월의 기억 불러들여 서리태 넣어 정성껏 지은 따끈한 밥 하얀 생선 살 발라 배 불리 먹이고픈 포근한 인정 하나 뽑아 들자 거역할 수 없는 인연의 고리 반가운 까치의 울음처럼 마지막까지 기억하고 갈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