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펀치


 

  불쾌감을 느낀다면 그것도 부정적 측면이 아니겠는가. 긍정을 바라보면 부정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마는, 나는 왜 요즘 들어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이 눈엣가시로 보일까. 남편을 이해하고, 혹여 실수를 하더라도 인정해 주는 것이 참된 배려일 텐데. 나의 좁고, 옹졸하고, 해진 마음이 밉다.

  식구들이 다 모였다. 독립해서 나간 큰아이는 가뭄에 콩 나듯 가끔 집에 들른다. 작은아이도 알바 시간을 조정했다고 한다. 남편이 퇴근하자 모처럼 식구들이 둘러앉아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하였다. 내 딴에는 신경 써서 상을 차렸건만 덩치 큰 아이들에게는 이내 허기가 밀려왔나보다. 식사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피자 한 판이 배달되어 왔다. 먹는 것으로 정겨운 시간을 더 연장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1 1 보다는 딱, 1 이 더 맛있습니다. 공짜는 아무래도 성의가 부족하다니까요. 치즈분말도 뿌리고 핫소스도 기호에 따라 조절해서 드십시오.

  큰아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냉장고에서 존재를 잊고 있던 캔맥주가 화려한 복귀를 했다.

  “건배!

   그러나 우리 가족은 마시는 것에서는 일치를 보지 못한다. 큰아이와 나는 맥주 한 잔 정도는 입에 짝짝 붙도록 마시지만 작은아이는 한 모금 겨우 마시고 잔을 테이블에 고정시킨다. 그보다 더 심한 사람도 있다. 잔을 들었다 내렸다, 소위 지게차놀이만 하다가 아까운 술만 버린다.

  식구들이 다 알고 있는 사정이니 분위기 못 맞추는 ‘분’도 감싸 안으며 그동안의 경계를 허물어갔다. 베이컨과 새우를 듬뿍 넣은 피자 도우, 쫄깃한 식감에 행복했고 유리잔에 넘치는 하얀 포말의 부드러움에 꽉꽉 조였던 마음의 나사까지 풀었다. 사드 배치도 잊자. 청년 취업문제도 접어두자. 나이 꽉 찬 딸아이들의 결혼 얘기도 묻어두자. 블랙리스트를 굳이 들출 필요는 없으니까. 열세 살의 멍멍이 아지와 네 살의 야옹이 랑구의 재롱에 웃음꽃 만발인데.

  “뿌우우웅 ~!

  일순간 모두 당황했다. 갑자기 침투한 이 어색한 소음이라니,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 화사한 분위기를 깨트린 주범을 어떡한다? 나의 눈초리는 범인 색출 모드로 바뀌었다. 분명 표정은 경직되고 눈빛은 날카로웠을 것이다. 그 순간, 큰아이가 아주 차분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유미야, 이 상황에서 방귀를 그렇게 크게 뀌면 어떡하니? 엄마, 아빠, 죄송합니다. 제가 동생을 잘 이끌어주지 못한 탓이 큽니다. 앞으로 이런 불상사가 없도록 주의 주겠습니다.

  제 언니의 훈시에 당황한 빛이 역력하던 작은아이가 잠시 멈칫하더니 공손하게 말을 받는다.

 

 

  “미안합니다. 음식을 앞에 두고 버릇없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조심성이 없었던 점을 사과드립니다.

  일그러졌던 나의 표정은 두 아이의 대화에 쿡, 웃음이 나왔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딸들아, 엄마가 미안하구나. 내가 너희들에게 밥상머리 예절을 잘 가르치지 못한 탓이 크니까 너희들은 자책하지 말거라. 생리적인 현상이야 어찌하겠느냐. 다만 음식 앞에서는 예를 지키는 게 문화시민의 도리가 아니겠느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평온이 찾아왔다. 네 식구 분량의, 각자 두 조각씩 할당된 피자 여덟 조각은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유독 ‘한 분’이 마지막째 피자를 작은아이한테 슬며시 넘겨주는 게 아닌가. 

  나는 배가 아팠다. 이건 헛배가 불러서 아픈 게 아니었다. 혼자 웃음을 삭히느라 배를 움켜쥔 통증이었다. 주방으로 가는 척 일어서서 뒷베란다로 나가 통쾌하게 웃어 제쳤다. 그동안 밥상머리에서 염치도 좋았지, 폭주하는 오토바이 소리로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던 ‘대주’때문에 어디 한두 번 입씨름하였던가. 나중에 어려운 자리에 가서 실수를 하면 어쩌려느냐고 다그치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분명 ‘대주’의 폭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눈치 챈 딸아이들은 극적인 연기로 저희 아빠를 위기에서 구출하였던 것이다. 나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그동안 우물거렸던 말을 짧지만 간결하게 죄다 게워내었다.

  사람에게는 자신을 거울처럼 비쳐주는 타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남편은 어떤 방어도 변명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일방적인 삼모녀의 대화에 외톨이가 되었다, 아니면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들어 남편한테 쪼금 미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묵은 꽁지가 빠지고 새 꽁지깃이 새로 돋아 비상하는 듯한 이 기분을 누가 알랴. 그동안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언성을 높이고, 하 답답해서 입을 다물기도 했다. 삐치고 외면한 날이 어디 한두 번인가. 집안에서 무소불위 하는 대주에게 정면으로 맞서보았자 득이 없다. 노승발검怒蠅拔劍에 이란격석以卵擊石 일 터. 싸움은 힘으로 하는 게 아니야, 머리로 하는 거지. 봐라, 총칼 한번 휘두르지 않고 멋지게 한방 먹였지 않은가.

   밤공기가 이렇게 시원할 수가 있다니, 모처럼 속이 확 뚫린다. 2016. 9

 

노정희

계간《문장》2007년 등단

수필집 『빨간수필』『어글이』

대구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부회장, 계간《문장》편집장, 수필교실 강사, 푸드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