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휴게소에서

 

 

 뜨끈한 잔치국수가 울렁이는 속을 달래주었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하늘의 젖꼭지를 물고 단비를 빨아대는 갈증 남해바다가 아직도 속에서 출렁이고 있었다

 

- 나무 이름이 뭐죠?

-황금편백입니다, 햇빛에 금색으로 빛나요, 교목이죠

-, 아니 저기 나무 말씀 하시는구나

갸우뚱하는 나를 보고 그는 말을 고친다

-종려나무입니다

종려나무

교목보다 주목받는 나무

 

작고 오래된 학교다 그리고

화단이 깊은 학교다

화단 사이 옥수수가 자라고 고추이랑이 있는 학교다

화단을 파보면 오래된 책상이나 낡은 생활기록부 같은 것들이

뿌리와 뒤엉켜 있을 같은 학교다 또한,

어디에도 바다의 흔적은 없으나

바다를 빼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같은 학교다

학교에서 머리 밑과 등줄기에

끈적한 땀이 배어나오도록 강의를 한다

그럴 듯하게, 과장되게......

그럴수록 얕은 뿌리가 발밑에서 덜렁거린다

하늘 높이 우뚝 솟은 종려나무처럼 나는 낯설고 매혹적이고 싶은 걸까

빗줄기는 굵어지고

 

다시 종려나무가 궁금해졌다

맞는 종려나무

후두둑, 후두둑 빗줄기를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먼저 두드려 맞는 종려나무,

머리가 먼저 비를 맞아도 깊은 뿌리에

 

기댈 수밖에 없는 종려나무가

오래 나를 따라와

밤늦은 휴게소가 괜스레 술렁인다

 

 

 

텃밭에 다녀오다

-소설 ‘소년이 온다’에 기대어

 

 

텃밭에 갔다 돌아오는 저녁,

한낮 열기에 지친 화제천은 벌써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산그늘이 섞여 어둑해지고 있었다

아마 꿈결에 오래 그리던 강에 도착할 것이다

바스락바스락바스락바, 스락

흙을 떠나온 부추, 깻잎, 고추, 가지, 오이는

할말이 많아진 모양이다 나는

속에서 번성하는 낱말들을 물끄러미

본다 주변 무성하게 자란 풀들이 길을

지워 장화 신은 발이 허둥대었던 것이다

말들은 마음의 길을 지우고 입으로

나오는 길조차 지워버려 졸지에

나는 벙어리가 되었다

 

강동호 축산

오늘 읽은 소설 인물과 같은 이름

여섯 푸르른 나이에 광주에서 희생된 이름

간판일 뿐인데 가슴이 쓰리다

도시가 도축장이었던 때가 있었다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여린 채소를 싸고 있는 얇고 투명한 비닐봉지 같은 것이 아닐까

푸르른 육신을 온전히 감싸고 향기를 기억하는,

바람을 만나 바스락바스락 말을 건네는,

 

가위로 오려낸 종이짝처럼 붙어 일렁이는 촛불

불어도 불어도 꺼지지 않는 이름들 위로

어둠이

검은 흙을 뿌리고

고구마꽃이 나란히 밝힌 다리를 건너자

 

세상은 마침내 어둠 속이다 속이다

부추, 깻잎, 고추, 가지, 오이는 집에 알고

조용하다

별빛으로 다독여진 밭흙에 발을 묻고

오늘밤 나는 얕은 잠에 것이다

잠결에라도 찰랑찰랑 강에 가닿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김진희 1969 부산 출생. 시집『굿바이,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