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꽃그늘

 

 

  가만히 아팠다 희끗희끗 나부끼는 아픔은 희끗희끗 견디면 된다는 걸 술렁이는 그늘에 들면서 알았다, 앓았다

 

  엇박자로 날리는 눈발처럼 그렁그렁한 눈인사 속속들이 앓는 중 아닐까 도원동에는 향기에 젖은 지느러미가 있어 버둥거리면서도 찔끔찔끔 잘 산다는 걸 알았을까, 앓았을까

 

  이불도 걷어차며 잠이 드는 한 채의 병이 제 집이란 걸, 날 밝으면 바글거리며 해장하는 그늘도 있다는 걸 자잘한 꽃 씹으며 알았다, 앓았다

 

 제대로 앓은 아픔은 향기롭다던 말 지우며 아카시아 그늘의 오후가 거짓말처럼 다디달다는 걸 알았다, 앓았다

 

 

 

 파도 소리가 들리는 책장

   

 

 

  높낮이 다른 책들 키순으로 정리했더니 책장에서 파도 소리가 들린다 둥둥 떠다니는 달을 건졌는데 활어였다 성대가 없는 활어의 이야기는 유효기간이 없다 내 활활 죽고 나면 지느러미 꽁꽁 묶여 횟집 저울추처럼 파들거릴 활어

 

  움푹 패인 곳에서 건져 올린 물미역 같은 가름끈 옮겨가며 읽은 책 또 펼쳐 읽는다 당신을 읽는데 내가 젖는다 갈매기 깃털 닮은 책갈피가 할딱이는 해변, 난독의 해안선 한 권을 온전히 읽지 못하겠다 뭉툭한 눈이 삐댄 염분 탓이다

 

 비린 해초가 더듬더듬 코끝에 매달리는 시간이다 높고 낮음이 없는 저 수평선,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건 흰 구름, 그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