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아나운서의 폭설 경보라는 말마저 얼어붙어 있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길이 먼저 사라지고

사람과 사람의 길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하루 이틀 쉬면 좋겠다는 말도 녹아들지 못하고 쌓여있다

그만 그치라는 말이 창밖 나무에 걸려 있다 뚝 떨어진다

쩍 쩍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들이 흰 살결을 드러낸다

대부분의 가난은 쌓인 눈보다 더 희겠다

독설 아닌 독설에 자꾸 미끄러지는 사람들

허한 고개를 넘고 있다

싸리비도 눈가래도 모두 손을 놓았다

눈밭에 발자국을 심는 드문드문 아이들과 멍멍이가 보인다

하늘에서 하시는 일이다

족히 삼 일은 마음을 비워야 한다


성호에게



수많은 별이 성호를 긋는다

저 별은 너에게 저 별은 나에게 성호를 긋는다

밥상 위에서 숟가락 젓가락질 중이다

엄지에 모인 손가락 네 개가 성호다

해는 뜨고 지며 동서남북 성호를 긋는다

동방은 동서남북을 긋고

서방에서는 서동북남을 긋는다

늦은 밤까지 우리는 빌딩 속 알알이 누군가를 위해 성호를 긋는다

휴일에도

너는 자를 찾고 너는 자를 찾고 너는 십자가를 찾는다

의미 없으며 빛나지 않는 개똥벌레가 있을까

성호가 아름답게 빛나는 이유는

두 손 모아 을 만들어 기도하기 때문이다



정동재 /

별이소년@hanmail.net

2012애지로 등단, 시집 하늘을 만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