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2호...
   2019년 10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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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14년 1월 41호부터 2014년 10월 53호까지...
편집자
79741 2014-11-03
698 노모(老母)의 가을 외1편/공현혜 file
편집자
587 2018-11-01
노모(老母)의 가을 누런 호박 올라앉은 돌담 너머 닫힌 적 없는 대문가엔 줄기 꺾인 국화 향 넘치는데 평상에 걸터앉아 콩알 고르던 노모(老母)의 발치 어디서 왔나 도도한 낙엽 한 장 바쁜 손을 놓고 바라보다 ‘너는 갈 때도 곱구나!’ 한 숨 이다. 달 달의 애무는 낮 동안 지친 세상을 쉬게 한다 마음의 여유 없이 잠든 지붕부터 삶에 삐걱대는 주름진 골목까지 길어 올린 한숨은 등 뒤에 숨기고 가시나무에 걸려도 늪에 빠져도 젖은 사람 껴안고 신음하기에 달은 밤마다 바쁘다 제 몸 깎여 기울어도 멈추지 않는 그 품에서 누군가 또 하루를 살아서 건넌다. 공현혜/ 1965년 경남 통영 출생 . 2009현대시문학. 서정문학 시등단, 작가시선 동시등단 한국문인협회서정문학연구위원. 국제PEN경남회원. 통영문협. 경북문협. 경주문협 한국불교아동문학회. 경남아동문학회 회원. 2015년 한국서정문학 대상수상. 시집『 세상읽어주기 』외 공저 다수.  
697 창씨개명 외1편/권오윤 file
편집자
484 2018-11-01
창씨개명 다문화체험 행사장에서 그녀를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다 어색해서 고향이 어디세요? 물었다. 가시가 되었다면 미안하다. 미국 살았죠. 유포르비아 마르기나타였어요. 설악초라고 이름을 바꾸었죠. 남편 따라 왔어요. 결혼하고, 나는 한국 사람이에요. 간이 귀화절차를 밟았어요. 근데 자꾸 외국 사람이라고 해서 이름도 바꾸었어요. 푸른 잎에 보이는 하얀 꽃잎은 실은 꽃잎이 아니란다. 산수국을 닮은 그녀는 내가 모르는 웃음을 짓는다. 창씨개명 안하면 국물도 없던 때에 내가 안켄고준 쯤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해서 일인들이 자기네 편으로 받아 들였을리없는 편 가르기를 지금껏 하고 있는 나는, 혹은 우리랍시고 선을 그어놓고 우리 속에 살고 있는 나는 미안하다. 미안하다. 선 밖에 선 유포르비아 마르기나타씨. 은행 민원 구린내 난다고 오십 년 넘은 나무라도 베어달라고 떼를 쓴다.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아차, 나오는 방귀를 참느라 식겁 먹었다. 나도 이제 정년이 다 되었으니 배 속에 똥 들었다고 베어지겠네.  
696 겸손에 대하여 외1편/이선정 file
편집자
470 2018-11-01
겸손에 대하여 내게는 무척 겸손한 언니가 있지 저를 낮추다 못해 땅으로 기어드는 시선, 허리는 늘어진 ㄱ 자로 큰 키를 줄여 납작 엎드린 자세, 그것은 바람의 각도를 영리하게 계산한 그녀만의 자생법 그 언니, 소주 한 잔에 벌게진 얼굴로 세상의 부비트랩에 걸리지 않는 법을 특강한다네 ' 상대가 뻗은 촉수에 걸리면 안 돼 욕심을 숨겨 무릎을 접고 자세를 낮춰 밖이 시끄러울 땐 귀를 막아 낮은 포복으로 절대 고개 들지 마 ' 겸손한 그 언니 하늘 찌를 듯 높아가는 칭송에 승승장구 고고행진, 갈수록 부푸는 겸손은 두둥실 애드벌룬을 타고 모가지 뻣뻣한 족속들은 그새 하나 둘 부비트랩 속으로 사라지지 나? 무릎은 접었어 특강을 들어도 낮은 포복은 어려워 거품을 들키지 않고 경계를 달린다는 건, 늘 어려워 미래의 시인에게 어느 삼류 시인이 단골 커피점 주인집 딸 다섯 살짜리 계집아이 은서는 고 사슴 같은 눈을 반짝이며 시인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고 말한다 삼류 시인을 보면서도 꿈을 꾼다니 넙죽 절이라도 해야지 않은가 사과통 만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 꽃과 별만 보면서 시를 쓰거라..' 중얼거리다 방금 쓰다 만 죽음, 이별, 상처 따위를 얼른 주머니에 구겨 넣고 커피점을 나섰다 지랄맞게 바람은 불어 대고 아름다운 시인 하나가 유리창 안에 말갛게 앉아, 서걱대는 모래사막의 어둠 속으로 밀려가는 썩어빠진 시인 하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나는 아주 잠시 버티고 서서 겨우 찾아낸 별 하나를 보란 듯이 바라보며 서 있었다 이선정/황금찬시맥회 문학광장 신인상 황금찬시맥회 문학광장 정회원 대한민국 공예대전 특별상 한양예술대전 시화분과 심사위원  
695 균형 외1편/박종희 file
편집자
571 2018-10-01
균형 찢어진 바지 사이로 피가 줄줄 흘렀다.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친정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맥없이 걸어 다니던 참에 정신이 확 들었다. 넘어져 무릎에 피가 나고 손이 아팠지만 누가 볼 새라 흐트러진 매무시를 가다듬었다. 넘어지면서 손바닥에 몸을 의지하는 바람에 양손이 모두 욱신거렸다. 잠깐 사이에 왼쪽 손목이 달걀만 하게 부어올랐다. 병원에 갔더니 왼쪽 손목은 뼈가 깨지고 오른쪽 손은 인대가 늘어났다고 했다. 왼쪽 손목에 깁스하고 오른손은 손목보호대를 찼다. 왼손잡이인 나한테 깁스를 해주던 의사 선생님은 왼손에 깁스한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라고 했다. 하루아침에 양손이 묶인 내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손을 다치고 난 뒤 내 일상은 엉망이 되었다. 사소한 일에도 삐거덕거리며 잡음을 일으키는 내 손을 볼 때마다 온몸에 균형을 잃고 어린아이가 된 아버지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언제인가부터 아버지의 숟가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막, 숟가락질을 배우는 아이처럼 조마조마했다. 아버지가 숟가락으로 퍼 올린 밥은 중간쯤에서 흩어져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흘려버려 반도 못 드시는 아버지한테 밥을 떠먹여 드리려고 하면 아버지는 당신이 드시겠다고 손사래를 쳤다. 일요일이면 친정 부모님은 나란히 교회에 가셨다. 시골교회라 예배를 마치면 교회에서 점심을 먹는데 아버지는 예배가 끝나면 부리나케 집으로 오셨다. 아버지가 점심을 안 드시고 나오니 자연스레 어머니도 그냥 올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빠른 걸음으로 앞서 걷는 아버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차피 돌아가면서 준비하는 음식인데 교회에서 먹지 않고 귀찮게 밥상을 차리게 한다고 잔소리했다. 점심을 드시며 교인들 앞에서 손 떨면서 밥 먹고 싶지 않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는 순간 어머니는 목구멍에 가시가 박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남편인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하셨다. 사람의 몸에서 손만큼 장하고 기특한 역할을 하는 것이 있을까. 인간의 삶은 대부분 손이 이루어낸다. 오른손을 많이 쓰는 사람들에 비교하면 나는 왼손잡이다. 나한테 왼손은 나를 존재하게 하는 또 다른 나다. 숟가락질과 글씨 쓰는 것을 빼고 웬만한 일은 왼손을 거친다. 직장에서 왼손으로 돈 세는 나를 직원들이 신기한 듯 바라본 적도 있다. 습관이 무섭다고 50년이 넘도록 고정된 동작은 깁스한 왼손을 자주 들썩이게 했다. 옷을 입으며 단추를 잠글 때면 왼손이 선수를 쳤다. 머리를 감을 때나 세수할 때도 왼손의 동작이 빨랐다. 리모컨을 잡을 때도 누웠다가 등이 가려워도 왼손이 먼저 올라갔다. 운전대를 잡아도 왼손에 힘을 주어 통증이 심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 자꾸 왼손을 쓰는 바람에 깁스가 헐렁거렸다. 한 달이 지나 다시 병원을 찾았다. 엑스레이 사진을 들여다보던 의사 선생님이 “절대로 깁스한 손 쓰시면 안 됩니다. 이러다가는 석 달이 되어도 깁스 풀지 못하겠어요.”라고 하며 얼굴이 굳어졌다. 손이 떨리는 것은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첫 신호였나 보다. 손 떨림이 심해지면서 아버지의 삶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혈관에 피떡이 생겨 다리가 붓더니 걷는 것도 불편해졌다. 혈액순환이 안 되면서 심장도 나빠지고 신장도 투석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아버지 몸에서 균형을 잃어가는 기관들이 수시로 통증을 호소하고 질병으로 나타났다. 아버지는 집에 있는 날보다 병원에 계시는 날이 더 많아졌다. 친정 부모님은 금실이 좋았다. 어머니는 딱딱한 병원 의자에서 새우잠을 자며 아버지 걱정에 나날이 야위어갔다. 눈만 뜨면 늘 아버지 머리맡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기막히고 어이없었다. 팔순인 어머니는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당신 몸에 병균이 자라는 줄도 몰랐다. 어머니를 많이 의지했던 아버지는 한쪽 날갯죽지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맥을 놓았다. 자식이 여럿이라도 어머니 자리를 대신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까래처럼 든든하게 받들고 있던 어머니를 보낸 아버지는 중심을 잃고 허물어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는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 꼿꼿하고 단단하던 아버지의 눈 주위가 자주 붉어졌다. 거동이 어려워 누워있으니 등도 유연성을 잃었다. 잠깐 앉아있을 때도 베개를 괴지 않으면 옆으로 쓰러졌다. 뇌의 크기가 아기같이 작아진 아버지는 감기 같은 작은 질병에 걸려도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누구보다도 자존심 강하고 강건하시던 아버지가 이렇게 무너질 줄 누가 알았을까. 시든 꽃잎처럼 이울어가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이 힘겨웠다. 인생이란 이런 것인가. 아버지의 삶을 생각하면 참, 쓸쓸하다.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인디언 부족의 족장처럼 육 남매에 손자들까지 스물다섯 명을 거느린 한 일가의 족장이었다. 남한테 피해 주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셨던 아버지의 당당한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까울 것 없이 자식들한테 다 쏟아주고 빈털터리가 되어 허허로워진 아버지한테 내가 크게 일조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무거웠다. 석 달 만에 깁스 풀고 나서도 손쓰는 일이 자유롭지 못했다. 왼손을 다친 뒤 내 오른손이 바빠졌다. 덕분에 왼손은 지난하게 살아온 세월의 보상이라도 받듯 호강했다. 구정물에 손도 안 대고 화장실에 가도 할 일이 없었다. 손이 묶여 얼굴만 뵈고 오던 내가 조심스럽게 아버지 목욕을 시켜드렸다. 저무는 저녁처럼 욕심 없이 삶의 목록을 내려놓은 아버지를 옆으로 눕히고 베드에 목욕용 비닐을 깔았다. 환자복을 벗기고 따뜻한 물을 적신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머리를 감기고 말끔하게 면도까지 해드렸다. 기분이 좋으신가 보다. 깔끔한 성품이라 누구한테도 몸을 맡기지 않는 아버지가 시원하다고 한마디 하신다. 아직도 육 남매의 지문이 어지럽게 남아 있는 아버지의 등을 닦아드리는데 손끝에 닿는 느낌이 마른 나무껍질처럼 꺼칠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목이 메어 일부러 여러 번 문질렀다. 내 속을 알아채기라도 하신 걸까. 아버지는 “이제, 됐다. 고맙다. 고마워, 덕분에 아주 개운하다.”라고 하신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균형이 깨지면 몸 전체가 기운다. 무엇이든 적당히 조화를 이루어야 탈이 없다. 균형이 깨지면 삶이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작은 일에 목맬 때가 잦았다.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순조로이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늘 붙어있어 하찮게 여기던 손의 소중함을 깨달은 요즘 나는 양손을 적당히 부린다. 어느 한 손도 서운해하지 않도록 손의 마음을 읽으려 애쓴다. 원래부터 나는 왼손잡이였다는 쓸데없는 고집도 버렸다. 그러고 보면 왼손을 깁스하게 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였던 것 같다. 형평에 어긋날 정도로 왼손을 쓰는 내 몸이 균형을 맞추라고 내게 시련을 주었던 것 같다. 삶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흔들리던 아버지는 마침내 무거운 짐을 모두 내려놓으셨다. 아버지한테 가는 길에 얼굴에 와 닿는 칼바람이 매섭다. 가방에서 마스크를 꺼내는데 내게 마스크를 씌워주던 아버지의 따스한 손길이 생각나 코끝이 시큰거린다. 이제는 내가 아버지를 더 많이 그리워할 것 같다. 생전에 턱없이 아버지 쪽으로 기울던 양팔 저울이 조금이라도 수평을 이루도록 내가 아버지를 더 많이 기억해야겠다. 저무는 해를 안고 이별의식을 치르는 노을처럼 균형 잃고 휘청거리던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추억해야겠다. 이달의 수필 읽기 구성미학과 주제 전언의 떨림 1. 《한국산문》- 2018년 5월호 유 한 근 yhkpoet@hanmail.net 동어반복 하건데, 수필(essay)의 어원 속에서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도한다’는 실험수필적인 의미가 함유되어 있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수필은 영어로 ‘에세이(essay)’, 불어로는 ‘에세(essai)’로 시도(試圖)·시험(試驗)이라는 뜻이 있다. 이는 라틴어의 ‘엑시게레(exigere)'에 그 어원을 둔다. ‘엑시게레(exigere)'는 계량하다 혹은 음미하다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 어원으로 보면 에세이는 비평적 기능과 유사한 성질의 것이다. 그리고 불어에서 어원의 의미를 되새기며 시론(試論)적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수필은 자유롭다. 테마나 재제도 자유롭고 형식도 자유롭다. 상상력도 자유롭고 언어 표현도, 문장 스타일로 활달하고 자유롭다. 그래서 실험수필이라는 용어의 의미가 함유되어 있다. 이런 시각으로 이달의 수필을 보았다. 그 시각 망에 걸린 수필이 박종희의 <균형>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수필이 이른 바 실험수필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비평을 “심미적 태도의 시정”이라고 말한 엘리옷의 반해 그 개성적 국면을 탐색해 보기 위해서이다. 박종희의 <균형>은 이렇게 시작된다. “찢어진 바지 사이로 피가 줄줄 흘렀다.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친정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맥없이 걸어 다니던 참에 정신이 확 들었다. 넘어져 무릎에 피가 나고 손이 아팠지만 누가 볼 새라 흐트러진 매무시를 가다듬었다”에서 볼 수 있듯이 넘어져 왼쪽 손목이 다친 작가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이제는 내가 아버지를 더 많이 그리워할 것 같다. 생전에 턱없이 아버지 쪽으로 기울던 양팔 저울이 조금이라도 수평을 이루도록 내가 아버지를 더 많이 기억해야겠다. 저무는 해를 안고 이별의식을 치르는 노을처럼 균형 잃고 휘청거리던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추억해야겠다”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끝을 마무리한다. 이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수필은 자신의 이야기와 아버지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구조하여 아버지에 그리움과 이 수필의 테마인 ‘균형’을 미학적으로 전언한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균형이 깨지면 몸 전체가 기운다. 무엇이든 적당히 조화를 이루어야 탈이 없다. 균형이 깨지면 삶이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작은 일에 목맬 때가 잦았다.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순조로이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가 그것이다. 넘어져 다친 작가의 손목과 “아버지의 숟가락이 흔들리기 시작”된 아버지의 건강과 죽음을 일반 서사수필처럼 에피소드 위주로 전언하지 않고 구성미학을 고려하여 전언하고 있는 작가의 수필 미학은 문학 전 장르 특히 소설미학을 이해하지 못하면 가능하지 않는 미학이다. 그리고 아이러니와 알레고리의 표현구조와 유머와 해학의 수필적 특성, 그 핵을 이해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는 미학이다. 그래서 수필 <균형>은 읽는 맛이 있고 주제 전언의 힘을 느낄 수 있으며, 은근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문학은 궁극적 목표는 지적이든 정서적이든 떨림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약력: 충북수필문학회, 한국산문작가협회, 한국작가회의 회원, 충북작가회의 사무국장으로 활동 중 저서: 수필집 가리개 수상: 시흥문학상, 매월당 문학상,경북문학대전, 등대문학상 수상 등, 다수 수상 충청매일에 수필 연재, 현 청주시 1인 1책 펴내기 강사, 세종시 주민센터 수필 창작 강사  
694 중원에서의 해후 외1편/김학천 file
편집자
763 2018-10-01
중원에서의 해후 초나라와 한나라가 천하를 다투던 기반(棋盤) 중원(中原)의 어느 한 모퉁이에서 거창한 초하(楚河)와 한계(漢界)를 사이두고 우리는 기약없이 만난다 당신은 대안(對岸)에 서있는데 바람에 나붓기는 긴 머리카락 사이로 형양(滎陽)의 수많은 이야기가 나름대로 넘나들면서 력사의 어느 한 단락의 사랑을 려과해낸다 리상은(李商隱)의 너무나 많은 재간을 이어받았고 류우석(劉禹錫)의 천고에 전해지는 시구를 터득하였거늘 담담한 눈길에는 당송(唐宋)의 완약한 운치가 비껴있어 전통과 현대가 융합된 경전적인 예쁨이 반짝인다 나는 오로지 묵묵히 그대를 지켜보면서 오랜 옛적의 순진함이 9월의 하늘로 탈바꿈하여 제멋대로 진주같이 령롱한 비방울을 뿌려준다고 생각해본다 맑은 렌즈는 서서히 초점을 맞추면서 경치의 깊은 배경에 따라 머나먼 창상(滄桑)을 그려보고 생긋이 웃는 한 찰나 심장이 세차게 고동치는 정경을 마음속깊이 새겨넣는다 혼 해빛아래 아득하게 보이는 먼산은 흰색으로 찬연하다 푸르른 하늘아래 성스러운 광환속에 천년의 적설은 흰빛으로 눈부시다 반만년의 고로한 전설이 반만년 한개 민족의 정신이 고스란이 하아얀 빛으로 번뜩인다 원시림속의 봇나무숲 수많은 인간속의 백의민족 티없이 깨끗한 흰색에 자아를 알게된다 봄날의 아지랑이와 여름날의 안개속에서 그리고 가을의 찬비와 겨울의 칼바람에서 보이지 않는 힘을 느껴본다 金學泉간력 중국 연변작가협회 주석 역임. 한글과 중문 시집 <봇나무숲 情結> 등 다수 출판. 제4기, 제7기 중국소수민족문학상 수상. 제 4기 한국 한민족글마당문학상 수상. 현임 중국작가협회소수민족문학위원회 위원, 중국시가학회 이사. 중국길림성연길시 거주. 메일:hakchenkim@hanmail.net  
693 백이라는 숫자 외 1편/권이영 file
편집자
719 2018-10-01
백이라는 숫자 백이라는 숫자는 얼마나 좋은 숫자이냐 그만큼 이루었고 넉넉한 여정 아흔 아홉 번의 고개를 넘으며 때로는 막막한 일 있었다 해도 때로는 뒷걸음질 쳤었다 해도 이제는 모두 지난 일로 떨쳐 버리고 백 하나, 백 둘, 백 셋, 백 넷... 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숫자이다 백이라는 숫자는 돌아서 돌아서 다시 돌아온 새해 첫날같은 숫자이다 새해 첫날에 펼쳐진 순백의 눈밭이다 모든 것 다 지워버리고 얼마든지 큰 꿈 새로 펼쳐도 되는 광대무변의 눈밭이다 백이라는 숫자는 얼마나 자랑스러운 숫자이냐 얼마나 가슴 벅찬 숫자이냐. 껌처럼 향내 난다 우리들의 꿈 감미롭다 그러나 아무리 씹어도 먹을 수 없는 꿈 도저히 밥이 될 수 없지만 그래도 자꾸만 씹게 되는 꿈 늘이면 늘일수록 늘어나서 실낱같이 자꾸만 가늘어져도 끊어지지 않는 꿈 바람을 불어넣으면 자꾸만 픙선같이 부푸는 꿈 겁없이 커지는 꿈 터지는 꿈 볼품없이 찌부러져도 다시 살아나 계속 달라붙는 우리들의 질긴 꿈 함부로 버리자 말자. ------------------------------------------------------------ 권이영 1991년 월간 <심상>으로 등단. 시집 <천천히 걷는 자유>(나남)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교류위원장 역임)  
692 역사의 종소리 외1편/강상률
편집자
742 2018-10-01
역사의 종소리 깨우침의 역사 속에 통일을 외치는 저 종소리 자유와 평화를 목 놓아 외친다 분단의 그늘에 가려 어둡게 살아 온 아픔이 화해와 신뢰를 위해 종을 울린다 동포여! 겨레여! 피로 물든 조국의 슬픈 장벽을 허물고 저 조상의 넋이 깃든 광활한 요동벌을 향해 이 땅에 한빛으로 거듭 나시라 꽃도 새도 날지 못하던 전설 같은 기억을 감추고 하얀 밤 어둠을 털고 일어나 평화의 기슭을 찾아가는 아리랑 민족의 노래마다 울려라! 역사의 종소리를...... 가슴 열었노라 온몸이 싸늘해지는 순간 평화의 가슴을 열었노라 통일의 청사진을 펴들고 칠천만 우리의 염원 담긴 그 따뜻한 가슴을 열었노라 반세기가 넘도록 굳어버린 심장 녹이는 산이 일어서는 소리 하늘이 외치는 소리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 막힌 혈관을 뚫고 길을 찾아 암벽을 허무는 물꼬 터진 판문점 길목에서 캄캄한 청자빛 하늘을 이고 화해와 대화의 가슴을 열었노라 길은 멀어도 혼돈의 밤을 지나 평화와 통일로 가는 한민족의 간절한 기원이 뜨거운 가슴을 열었노라. - 1984년 시집 『북소리 들리는 아침』발간 - 전 공군보라매 수련원 강사 - 경상북도 문학상 수상 - 주소 : 문경시 중앙로 50-9(모전동)  
691 봄날은 간다 외1편/최영 file
편집자
655 2018-10-01
봄날은 간다. 장사익이 자제요양 병원에서 무료 공연을 합니다 무대에 오르기전 와상 환자들이 있는 병실에 왔습니다. 환자마다 악수를 하더니 의식이 혼미한 환자의 귀에다 대고 <봄날은 간다>를 부릅니다. 노래를 들은 환자가 눈을 떳습니다. 그리고 미소를 짓습니다 장사익이 웃습니다. 모두가 행복합니다 장사익이 이렇게 외칩니다. "여러분 노래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기쁘게 하는 줄 몰랐습니다. 우리 다같이 불러요. 가래가 그렁그렁한 목소리로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빛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마음으로만 부르는 환자도 있습니다. 봄날이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 202 호실의 죽비 스물 다섯에 혼자 되어 70년 동안 수절했지만 마지막까지 여자이고 싶어 안개꽃 무늬 부라우스 입고, 스카프 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이 죽비가 되어 내 가슴을 탁 친다. 이십년 동안 아들의 아들들을 키우다 뇌출혈로 쓰러져 말문이 닫힌 모습도 죽비다. 살아온 날들을 더듬더듬 털어놓을 때 네, 네 그러셨어요, 로 답해주면 잇몸을 환히 드러내며 합죽하게 웃는 죽비 돌이켜보니 죽비 아닌 게 없다. 최영/ 1958년 전라북도 무주 출생 97년 신라문학 대상 대구 경북작가회 회원 현불문 회원  
690 일상의 행복 외1편/고경하 file
편집자
687 2018-10-01
일상의 행복 아침에 눈을 뜨면 부시시한 나를 보며 미소짓는 당신 모습에 행복을 느낍니다 구수한 된장국에 반찬 몇 가지 놓고 밥을 먹으며 오가는 말 속에 잔잔한 행복을 느낍니다 출근하는 당신 구두를 닦으며 잘 갔다 올게 가벼운 입 맛춤을 하고 현관문을 나서는 당신을 보며 행복을 느낍니다 아이는 학교에 가고 가족의 남아있는 흔적을 정리하며 행복을 느낍니다 저녁에는 무슨 반찬으로 사랑하는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줄까? 고민하는 나를 보며 일상의 행복을 느낍니다 가을향기 잠자리 날개 짓 하며 날아오를 때 코스모스 한들한들 정답게 이야기할 때 당신과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려본다 불면 날아갈까 놓으면 넘어질까 갈대처럼 여리고 약하다며 든든한 기둥이 되어야 한다고 부족한 나를 사랑으로 채워주는 당신은 나에겐 가을의 향기입니다 고경하/ 1965년 11월4일 광주출생 2017년 상주동학문학제 상주동학농민혁명기념문집 [우리는 하나] 특별상 [해풍에 피어나는 동백꽃이여]. 시월문학제. 웹진 문학마실. 민족작가연합 평화통일공동시집 [도보다리에서 울다 웃다] 창작詩 출품, 민족작가연합 회원.  
689 전사의 보고 외1편/김대용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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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8 2018-10-01
전사의 보고 -추모시- 조국분단 18년째 되던 1963년 5월 어느 따스한 봄날,동구밖 새색시 배웅을 뒤로하며 칠흑같은 어둠을 헤치고 잘리워진 조국의 허리를 기여히 잇겠다고 갈구리 같은 두손 불도저 같은 두발로 전선을 넘었다가 결국 철조망에 찣기고만 붉은심장 펄덕이던 젊디 젊은 이준원 전사 날개꺽인 감옥, 뒤이어 사선을 넘어온 옆방 동지에게 아기 출산 소식을 듣고 다시 두주먹 불끈쥐며 황무지땅 남녁에서 전사는 밭을 일구고 집을짓고 동지들을 묶어 내었습니다. 허리를 다쳐 지팡이에 의지한 노구를 이끌고도 2차 송환 기자 회견에 미선,효순 추모 촛불에 광우병 촛불에 탄핵에 디뚱 디뚱 가장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장기수 선생들 모을려면 이준원선생에게 연락하면 됩니다" "동네 아파트 하수구가 막혔으면 이씨에게 부탁하면됩니다" 처녀 총각 중매도, 홀로 사는 동지들 살림살이도, 한반도 정세분석도, 젊은 일꾼 교육도, 먼저간 동지들 추도사도 이준원선생에게 부탁하면 다됩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조선인민군 이준원 전사의 땡크같은 두발 두손이 지나가면 "괜찮아 괜찮아" 하며 "허허" 한번 웃으면 다 됩니다. 통일의 그날 전사 이준원 보고합니다. 종놈들의 세상 친북을 종북으로 부르고 싶으면 친일도 종일로 불러야 하고 친미도 종미로 불러야 마땅하다 멀정한 국회의원도 "종북보다 종미가 문제다"라고 했다가 9년이나 감옥살이를 하는 나라 친박은 종박으로 친이는 종이로 친노는 종노로 친문은 종문으로 친척은 종척이 되고 친구는 종구가 되고야 마는 식민지 분단조국 이놈의 나라는 종놈들의 세상이다. 김대용 민주노총 대구본부 전통일위원장 wlqrnjs21@hanmail.net  
688 가시 /김철순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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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 2018-08-31
가시 가을의 끝자락에 다시 나선 길이었습니다. 나이아가라 강물이 흐르는 기슭을 따라 걷다가 한여름 녹음에 가려서 보지 못했던 가시가 무성한 나무를 만났습니다. 나무의 팔뚝에 매달려 깃발처럼 나부끼는 노란 단풍잎 사이로 흉물스러운 가시가 드러났습니다. 나무의 두루뭉술한 허리에서 가슴까지 사방으로 뻗어 나온 무성한 가시를 보는 순간 요양원에 있는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가슴을 적시고야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치매로 고생한 어머니를 병시중하면서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그 몹쓸 병 때문에 점점 더 쇠약해져 가는 어머니의 몸이 안방 구들을 지키기 시작할 때는 자식에게조차 짐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식의 생각을 먼저 읽기라도 한 것처럼 어머니를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를 병구완하는 것은 평생 당신을 위해 고생한 아내에게 진 빚을 갚는 것이라고요. 아버지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칠 년 반을 살다가 어머니는 이승을 떠났습니다. 고향 뒷산 양지바른 언덕 중턱에 어머니를 묻고 내려올 때도 당신은 눈물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아픈 아내와 함께 하는 동안 눈물은 이미 가시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당신은 아내를 찾았습니다. 경부선 철도와 고속도로가 내려다보이고 사방으로 뻗어 나간 국도와 지방도가 보이는 그곳에 당신의 아내를 묻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쁘게 사는 자식이 달리는 차 안에서도 어머니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깊은 배려였습니다. 아내를 묻고 돌아와 여생을 혼자 살겠다며 자식의 근심을 덜어주던 아버지에겐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이 시간이 갈수록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십여 년이 넘는 세월을 외로움과 서러움 속에서 살다가 기력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어느 날 새벽, 산책길에 나서다가 집 앞에서 넘어졌습니다. 수술 후, 조금씩 거동이 불편해지자 어느 자식도 선뜻 당신을 떠안을 수 없었습니다. 서울에서의 생활이 행복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허구한 날 빈집을 지키기 일쑤였고, 공원을 찾아다니며 만난 노인들과 친구가 되어 온종일 밖에 있어야 했습니다. 팔십 중반의 노구를 이끌고 해거름 무렵에야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꼿꼿하게 몸을 세우고 자식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자식이라는 달콤하면서도 쓴 열매 앞에서 가슴이 아팠을 당신은 오히려 따뜻하고 자상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이 우선인 당신의 가슴엔 얼마나 많은 상처를 품고 있었을까요. 아들과 딸 사이의 미묘한 차별에서 오는 서운함만 늘어놓던 내가 결혼 후, 신혼여행을 마치고 친정집에 들어섰습니다. 반갑게 맞아주는 아버지의 얼굴이 그렇게 환한 적이 있었을까요. 당신 앞에 나란히 앉은 딸과 사위를 지긋한 눈길로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말없이 사위의 손을 잡더니, 셋째 딸인 ‘나’를 데려가 줘서 고맙다며 사위의 손등을 토닥였습니다. 골칫덩어리였던 과년한 딸을 혼사 시킨 안도감과 시집을 보내고도 불안한 당신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시댁에 가려고 막차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습니다. 어느새 부쩍 야윈 당신의 등은 그날따라 더 측은했습니다. 역 대기실을 빠져나왔습니다. 플랫폼엔 기차가 막 들어섰습니다. 기차에 올라타기 전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다보았습니다. 개찰구에 돌기둥처럼 서 있던 아버지가 옷소매로 눈물을 연신 찍어내고 있었습니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당신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저 역시 쏟아지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두 언니와 두 오빠를 혼사 시키면서도 활짝 웃던 당신이었으니까요. 말썽꾸러기인 셋째 딸을 떠나보내는 후련함과 미덥지 못한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아버지라는 엄청난 생의 무게로 허망한 세월 앞에서 잠시 흔들렸을까요. 세월이 흘러 이젠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나이가 훌쩍 넘었습니다. 자식을 키우는 나 또한 가슴에 박히는 가시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속수무책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식은 행복이며 아픔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자식과의 추억을 반추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자식은 가슴에 묻고픈 애틋함이기도 했습니다. 바람이 한바탕 울음을 토해냈습니다. 밤새워 비가 왔습니다. 아직도 단풍 몇 잎 붙잡고 저리도 아파하는, 가시가 무성한 나무를 뒤에 두고 떠나올 때야 알았습니다. 셋째 딸인 나는 당신이 눈을 감는 그 날까지, 평생 당신의 가슴에 품어야 하는 가시라는 것을. 아직도 사는 게 힘들면 한국에 나와 같이 살자, 하는 구순의 아버지 생각에 돌아오는 내내 목이 메었습니다. ******************* 약력 2004년 캐나다 한국일보 신춘 문예 당선 2018년 미주 한국일보 신춘 문예 당선 현재 토론토 한인 문인협회 회원 <추천의 말> 토론토에서 활동하는 김철순씨와 이현숙씨를 한국의 '문학마실'에 추천, 소개합니다. 그동안 지켜본 결과 두 사람 다 글쓰기에 대한 진지함과 잠재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았기에 토론토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코자 함입니다. 김철순씨의 수필쓰기의 능력은 이미 공인된 바도 있지만, 작품의 진지성과 육화된 체험의 글쓰기로 읽는 이에게 공감을 불러내기에 충분합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꾸준한 노력으로 정진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이제 한국에 이름을 알리고자 합니다. 이현숙씨의 역시 이곳에서 이미 인증된 바 있습니다. 그동안 무게 있는 수필을 써 왔으나 근래에 시를 창작하는데 열의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매우 조심성 있는 태도와 사려 깊은 감성으로 글쓰기에 접근하고 있음이 돋보이며, 앞으로 나올 시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2018년 8월 31일 권 천 학 (시인 ․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  
687 나의 그림은 아직도 / 이 현 숙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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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3 2018-08-31
나의 그림은 아직도 적당하게 낀 안개가 편안한 아침이다. 가시거리가 길지 않아 제한속도보다 천천히 가야 한다. 운전대를 잡고 가는 길이 여유롭다. 북쪽으로 올라가는데 부분적으로 정전되었는지 몇 군데 신호등이 점멸되어 있다. 사거리에 길게 줄을 지어 너도 한 번, 나도 한 번, 하면서 교대로 지나간다. 약속 시각은 이미 지나가고 있다. 뿌연 안개 속에 온몸이 젖어 들 것 같다. 기계적이고 허둥대는 일상적인 삶에서 오늘만큼은 풀어지고 싶다. 저 안개처럼... . 약속 장소가 가까워질수록 설렘이 일어나고 있다. 그 ‘언제 한 번’이 바로 지금이다. 토론토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친구 하나, 그리고 그 반대편인 서쪽에 사는 나와 가운데 사는 다른 친구, 비슷한 시기에 이민 와서 만난 셋이다. 사는 거리도 거리이지만 각자 생업에 매달리다 보니 서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어쩌다 하는 전화기 속의 마지막 말은 늘 ‘언제 한번 보자’는 막연한 기약이었다. 몇 번의 번복 끝에 드디어 날을 잡았다. 이른 아침에 만나 그림도 보며 지난 이야기도 하자고 했다. 는개가 내리고 있다. 미술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준비해 온 두 종류 겉옷 중에 두터운 것을 걸친다. 봄을 느끼고 싶었는데 바람이 아직 차다. 몸이 마음을 이기지 못한다. 표 파는 곳 앞에 두 여인의 모습이 어슴푸레 보인다. 창을 바라보며 도란거리는 둘의 대화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두어 발자국 뒤에서 머물 듯 서 있다. ‘늦어서 미안하다.’ ‘괜찮다.., . ’이런 인사는 우리에게 필요 없다. 가슴 저 밑에 있던 반가움이 얼굴로 올라와 있으니까. 카페에서 차 한 잔부터 하자며 자리를 옮겨 숲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앉는다. 숲은 아직 잔설이 남아있다. 그 기슭에 비스듬히 서 있는 비쩍 마른 나무들이 우리의 이야기가 궁금한가 보다. 모두 몸을 꼬아 창 쪽으로 가지를 바짝 기대고 있다. 그 가지에 눈웃음을 보낸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자기 삶의 한 토막을 연다. 다른 친구도 보여 준다. 나의 이야기를 하면 그것은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이민의 강 가운데는 망각의 늪이 있었는가 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지 아득하게 잊고 있다. 새롭고 낯선 환경에서 생존을 위한 삶만을 유지하고 있다. 늘 눈앞에 보이고 밀려오는 것들 때문에 볼 수 없었던 지난날들의 마디가 하나씩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나’였던 ‘내’가 살아가면서 주위의 환경과 상황에 따라 작아지고 희석되고 어우러져 가고 있다. 그런 얼기설기한 나의 모습이 가끔은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서글퍼지기도 한다. 저 멀리 있던 어린 날의 한 자락도 꺼내 본다. 한여름, 만삭의 몸으로 가정방문을 왔던 초등학교 담임선생님 이름을 기억해 낸다. 가파른 북선동 산허리 길을 올라오시느라 힘이 들었는지, 뒷목에서 성글 성글 맺히던 땀방울에 무안하고 어색했던 일. 개량 한복이 잘 어울리던 그분의 연세를 헤아려 본다. 중학교 가정 과목의 숙제였던 뜨개질을 늘 내 것까지 해 주었던 단짝 ‘희야’도 가슴을 치고 올라온다. 웃으면 양쪽으로 덧니가 보이던 친구, 학년이 올라가 다른 반이 되었을 때도 방과 후면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기다려 주던 친구, 보고 싶다! 주위에 가득한 안개 덕분에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다. 셋 중 누구도 그 흔한 스마트 폰조차 보는 이가 없다. 숲은 우리가 처음 앉았던 그 시간이나 지금이나 옅은 안개로 싸여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희미한 기억들을 이야기하면서, 뭉클하게 가슴 적시는 삶의 토막토막들을 쌓아 올리고 있다. ‘아 - , 살고 있었지. 그렇게 소중하게 나도 살아왔었지... .’ 과거는 흘러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연결하고 지탱하게 해 주는 길고 긴 다리였다. 산다는 것, 추억이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 내가 있다는 것은 잔잔한 감동이다. 창밖에 휘청거리며 얽혀 있던 나무들이 조금씩 허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안개가 위로 올라가는 모양이다. 처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미술관 직원이 이제 문을 닫을 시간이란다. 그림 구경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나 작품 감상을 못 한 것을 아쉬워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우리의 그림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아직 그려야 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언젠가 그리워 할 이 순간을 충실하게, 그리고 최선을 다해 그려나가야 한다.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그림을 보러 언제 한 번 다시 와야겠다고 셋이 입을 모았다 미술관을 뒤로하고 내려오다가 남겨 놓은 우리의 이야기가 못 잊혀서 뒤를 돌아다 본다. 조금 전 미술관에서 같이했던 안개가 산봉우리 중턱을 단단히 둘러싸고 있다. 우리의 마치지 못한 그림들을 잘 보관해 줄 모양이다. '언제 한 번'이 다음에 다시 올 때까지. 이현숙/토론토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2014년) <추천의 말> 토론토에서 활동하는 김철순씨와 이현숙씨를 한국의 '문학마실'에 추천, 소개합니다. 그동안 지켜본 결과 두 사람 다 글쓰기에 대한 진지함과 잠재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았기에 토론토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코자 함입니다. 김철순씨의 수필쓰기의 능력은 이미 공인된 바도 있지만, 작품의 진지성과 육화된 체험의 글쓰기로 읽는 이에게 공감을 불러내기에 충분합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꾸준한 노력으로 정진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이제 한국에 이름을 알리고자 합니다. 이현숙씨의 역시 이곳에서 이미 인증된 바 있습니다. 그동안 무게 있는 수필을 써 왔으나 근래에 시를 창작하는데 열의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매우 조심성 있는 태도와 사려 깊은 감성으로 글쓰기에 접근하고 있음이 돋보이며, 앞으로 나올 시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2018년 8월 31일 권 천 학 (시인 ․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  
686 사랑이란 외1편/차영호 file
편집자
1253 2018-08-31
사랑이란 샌들을 신고 엄지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것 그리하여 무꽁댕이 같은 발가락부터 노닥노닥 세상을 죄다 바람 들게 하는 것 감나무님 말ᄊᆞᆷ 나 같은 늠들도 살기 팍팍하면 속을 먹같이 썩혀서라도 탱글탱글 내 새끼들 영글리는 거 모르나? 정말 모르나? 사람 탈을 쓴 짐승님들아 차영호 (車榮浩) 1986년 《내륙문학》으로 작품 활동. (사)한국작가회의 회원. (사)우리시회원. 시집 『어제 내린 비를 오늘 맞는다』, 『애기앉은부채』, 『바람과 똥』 등  
685 과학할까요 외1편/조재학 file
편집자
1192 2018-08-31
과학할까요 그대 입술이 내 입술을 더듬으면 마치 초콜릿을 녹이듯 혀의 감각이 살아나요 대뇌피질에서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이 앤드로핀이 분비 되요 입술의 감각이 더 예민해져요 그대 입술의 움직임을 내 몸으로 따라가요 말할 수 없는 쾌감에 젖어들어요 계속 하고 싶은 충동에 몸이 떨려요 온 몸이 나른해져요 온 감각이 한 곳에 모여요 심장의 박동수는 130까지 올라가죠 혀가 혀를 애무하는 동안 침 속의 그대 호르몬 테스통스테론은 나에게로 옮겨지죠 9mg수분과 0.18mg의 수용성물질이 교환 되죠 0.7mg의 지방과 0.45mg의 미네랄이 교환 되죠 박테리아 수백만 마리가 교환 되죠 나의 면역력이 높아지죠 뜨거운 키스는 한번에 12Kcal를 소모시켜요 키스가 길어질수록 그대 좀더 키스를 잘 할 수 있도록 내 입주변의 키스근육은 모양을 잡아주죠 그대의 흡입력에 내 몸이 빨려들고 나는 눈을 감고 그대 혀의 움직임을 음미하고 뭉크 씨는 아직도 절규하고 있다 함께 과학 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환승 후배의 부친 문상을 다녀오다가 그 때의 호수에 가 보았네 작은 보트 한 척이 묶여서 흔들리는 기슭을 지나고 바람이 드나드는 소나무 울타리를 지나 굵은 줄기들이 제 몸을 비틀고 있는 등나무를 지나 그때 꽃이 흐드러졌던 그 나무 밑에 서네 흰 오리 서너 마리와 계절을 잊은 듯한 청둥오리 몇 마리가 호수에서 자맥질을 하고 있네 구름 몇 조각이 천천히 흘러가네 예순일곱 살의 내가 건너편에 앉은 스무 살을 물끄러미 보네 가버린 것은 보이지 않네 사라진 시간 사라진 해 사라진 바람 사라진 천둥 겨울 호수를 한 바퀴 도네 침침해진 눈을 자꾸 껌뻑거리며  
684 아버지의 흔적 외1편/권천학 file
편집자
2356 2018-08-31
아버지의 흔적 무적함대였던 등판과 막강했던 어깨가 아버지였다 힘없는 두 다리 사이, 습하고 냄새나는 아버지의 부자지를 주물럭거려가며 내가 태어난 DNA의 통로가 되어준 흔적과 씨앗주머니의 주름 사이사이를 닦는다 퀴퀴한 역사의 어두운 길을 더듬어 들어간다 초점 없는 시선으로 그윽하게 나를 들여다보시는 아버지, 부끄러움도 없다 어쩌면 아버지는 지금 생명의 시원을 찾아 바이칼 어디쯤을 고비사막의 모래언덕 어디쯤을 찾아 헤매며 원시 이전의 시간이 고여 있는 웅덩이를 응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회로의 어디쯤에서 우린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 돌아오세요! 5, 아버지의 DNA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 법이다’ 하지만 아버지, 살면서 그 성깔 못버리겠어요 아버지의 그 충고 때문에 헤깔리며 살았잖아요 그리고 아버지도 그리 사셨잖아요 아버지나 아버지의 딸인 나나 일급수 물고기로 사는 게 편하잖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아버지 살다보니 일급수에 사는 물고기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아버지 가신 곳 거기, 틀림없이 햇빛이 눈부시게 찰랑대는 일급수 바다, 맞지요?  
683 폭설暴雪 전前에 외1편/구재기 file
편집자
1337 2018-08-31
폭설暴雪 전前에 바람이 일고 한 잎, 낙엽이 진다 두 잎, 진다, 그리고 또 한 잎… 그 위에 어른하는 눈발 지나온 길 점점 묻혀가면서 보깰 틈도 없이 낙엽 한 잎, 한 잎… 진다 다시 바람 일고 낙엽 쌓일 틈도 없이 떨쳐 드날리는 눈발 *어른하다: 얼핏 한 번 나타났다가 없어지다. *보깨다: 무슨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자꾸만 쓰이어 불편하다. 시詩란 무엇인가 시詩란 무엇인가 누가 그렇게 말했던가 詩는 사람이라고… 그러나 그것은 詩를 말하고 있는 것일 뿐 詩를 생각하는 순간의 일일 뿐 詩를 詩처럼 詩를 詩같은 삶이라고 얼마나 거짓으로 살아왔는가 그러나 이런 말들은 이미 내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詩앞에서는 말[言]이 없다 말이 필요 없다 다만 詩앞에서는 말을 잃을 뿐 단 한 편의 詩를 앞에 두고 전혀 말하지 않고 있음은 詩 앞에서 詩를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 부끄러워하라, 다만 詩 앞에서 詩를 말한다는 것은 자유로운 사람의 마음 씀씀이가 행동이, 표정이 부드러워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詩를 말할 수 있는 말[言]을 멸滅할 수 있는 가장 체계적이고 완벽한 존재의 위장술僞裝術 < 구재기 약력 > • 충남 서천 출생 • 197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 시집『휘어진 가지』와 시선집『구름은 무게를 버리며 간다』등 다수 • 충남도문화상, 시예술상본상, 충남시협본상 등 수상. • 충남문인협회 회장과 충남시인협회 회장 역임 • 현재 40여년의 교직에서 물러나 <산애재蒜艾齋>에서 야생화를 가꾸며 살고 있음  
682 꽃의 무게 외1편/박경조 file
편집자
1182 2018-08-31
꽃의 무게 서른 살도 더 먹은 우리 집 목련나무 꽃샘바람도 저 혼자 받아내나 싶더니 금세 허공이다 개화와 낙화, 찰나의 무게를 담장아래 내려놓았다 겨우 봄 한철 앓다 사라진 여든 여섯 어머니, 지극한 생애인 듯 휑하다 이 느낌은 목련의 낙화만은 아니다 대를 이어 꽃 피워내느라 낡고 허술해진 여자의 일생 그 완결을 본 때문일 것, 바람에 쏠려 떨어진 저 고목의 봄날을 비질하며 종량제 봉투 가득 채워 드는 생각 피워내고 지워지면 또 다시 꽃눈 틔워 생명을 기르는 모든 본래는 어머니라는 이름, 그 무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수상한 연분홍 청량산 오르막길이 허락한 색깔일까 발길과 눈길 확 잡아당기는 저 연분홍 눈부시게 화려 하다고, 아니 수상하다고, 저 색(色)이라면 한번 수작 걸어 보고 싶다고 한 마디씩 말(言)탑을 쌓으며 오르다보니 청량사 법당이다 속된 마음 꿇어 108배도 잠깐 이상하지, 자꾸만 내 마음 끌고 가는 저 색을 두고 누굴 닮아 맹물 같다고 아니, 저리 섹시한 민낯도 있냐고 이 여자 저 남자 참견하지만 예까지 끌고 온 불온한 세상 위로하듯 작년 그 자리 다시 온 걸까, 연분홍 첩첩 내리막길 뛰던 봄바람 연달래 그 꽃잎 하르르 스치며 하는 말 누군가의 본색(本色)찿는 일이란 참 어렵더라고, 맞다, 박경조;경북 군위출생 2001년 『사람의 문학』등단, 『사람의 문학』편집위원 시집 《밥 한 봉지》 《별자리》출간  
681 노을 속으로 외1편/이승호 file
편집자
1270 2018-08-31
노을 속으로 저 연꽃밭! 우리에게 누락된 장(章장)을 세기의 장인들이 놓쳤을 리가 없다 대성당이 내게 열어 보여준 그 충만한 색깔과 쏟아져 들어오는 빛의 일렁임까지 어제의 메아리들이 돌아오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몹시 지쳤으나 내심 우리의 눈빛이 생에게 말하려는 것들 노을 속으로 세월의 저 망연자실에게로 태양과 암흑의 왕들이여 나와서 보라. 하늘 아래 어느 해인가, 그 마을에 여자 거지가 아이 하나를 데리고 나타났다 그들은 뽕나무 아래서 맴을 돌다 허겁지겁 오디 열매를 따먹기 시작했다 이 가지 저 가지를 휘어 당겨 고픈 배를 달래고 이따금 어린 거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어진 이가 있어 다음 해도 그 다음 해에도 뽕나무는 그들 차지였다 오디를 먹으면 거지가 된다더라 하늘은 이미 그 뜻을 알고도 남았다 주린 자의 양식을 빼앗지 말며 가난한 자의 좌판을 발로 걷어차지 말며. 이승호 춘천 출생. 2003년 《창작21》로 등단. 시집 《행복에게 바친 숱한 거짓말》외.  
680 오메가 외1편/안민 file
편집자
1039 2018-08-31
오메가 야훼시여, 아브라함께서 이복누이를 아내로 맞은 것[창세20:12]은 거룩한 오류입니까. 내밀한 법칙입니까. 근친과 본향의 경계는 석양 물드는 사막 능선 구간 같은 것. 아내를 매도賣渡하여 목숨을 구하고 재물을 얻은[창세12:16-19, 20;2] 유인원의 심장 쪽으로 다이아몬드 비가 내립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께서는 두 딸을 잉태[창세19:36]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초승달의 기운과 혼미한 기도가 은밀한 구원을 잉태케 한 것이지요. 지금도 소돔과 고모라는 눈물 속에서 불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아들 이삭께서도 어머니 장례식 때 질녀를 장막에 들였습니다. [창세24:67] 리비도와 안식은 어떤 애곡哀哭보다 상위의 관습법. 취한 새들이 흐린 창공을 향해 비상합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께선 외삼촌의 두 딸을 취하였고[창세29:28] 야곱의 아들 유다께옵서는 며느리 다말과 관계했습니다. [창세29:25] 믿음은 신화의 완성입니다. 아방가르드는 관계적 예술의 복원입니다. 할렐루야. 위대한 왕 다윗께서는 밧세바를 범한 뒤 그 남편을 사지로 몰아넣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는다지만, 죄의 결실이 지혜의 왕 솔로몬[사무엘하12:10]이시니 손금마다 젖과 꿀이 흘러야 합니다. 만인의 영도자인 모세께서 구스 여자를 탐한 것[민수기12:1]은 거룩한 기도이며 계시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는 언약궤 위로 야생화가 피어납니다. 그리하여 야훼시여, 당신의 말씀이 그리스에서는 철학이 되고 아메리카에선 기업이 되고 동방의 공화국에서는 찬란한 대기업이 되고 황홀한 드라마가 되었습니다. 동방의 공화국 목자들은 참으로 물질을 사랑합니다. 음지를 사모합니다. 그들은 아버지들의 아버지보다 더 빛납니다. 각본이 성서만큼 무결하고 완전합니다. 병인病因은 세계世系의 유전입니까. 구약의 언약입니까. 묵찌빠 전면전을 선포했다 아름다운 네가 돌아오면서 무엇도 하지 않을 권리를 외치며 무엇도 할 수 있는 권리를 외치며 피할 수 없는 전쟁, 공격이 개시되었다 어떤 연민도 없이 갈등도 딜레마도 없는 너 갈등도 딜레마도 많은 너 그렇다 너는 애초에 번역될 문장이 아니었다 어떤 문양이든 지문이 흘러나왔다 나는 포위되었고 * 유리는 깨어지기 위해 만들어지고 손은 무너지기 위해 태어난다 백동전은 딱 하나 너는 오빠들의 백동전을 훔쳐 피아노를 장만했다 피아노 위를 횡단했던 건 손가락이 아니라 주먹이었다 주먹이었다 쾅- 쾅- 쾅- 소리에 놀란 너 음률이 악보 뒤편으로 넘어가듯 너는 사춘기로 사춘기의 문양으로 그 성격으로 여기에 왔다 * 네가 묻는다 산산이 부서진다는 게 뭐죠? 웃자란 네 애인들이 대답한다 피아노의 손을 찾아봐 나무의 손금을 찾아봐 귀 잃은 악사의 손바닥을 들여다봐 닮았다는 건 곧 몰락 닮았다는 건 곧 침몰 늙은 네 오빠들이 도끼로 피아노를 내리찍는다 피아노의 내장들이 이빨을 들어내 놓고 웃는다 가위를 든 네가 또 묻는다 그럼 너희들의 어제는 뭐지 손목을 덜렁거리며 잘린 손목을 이어붙이며 네 애인들이 대답한다 손목 없는 바위지 몸을 버린 우직한 주먹…… 손바닥을 펴라 손금이 깨어져 버려라 손금이 깨어져 버려라 * 전쟁에 속하지 않으려는 손들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있다 그사이 패배와 승리가 밀물과 썰물처럼 드나든다 또다시 저녁은 오고 긴 평화가 시작되고 있다 숨이 막힌다 전쟁은 전쟁이 끝난 뒤 시작되는 법 규칙대로 네 애인들이 죽는다 잎사귀들도 차례대로 죽는다 죽은 네 애인들이 내 몸을 정탐한다 귀퉁이에서 패배의 눈물을 마신다 어둠의 보자기를 펼치면 그 사이로 가위 같은 비가 내린다 비는 누가 버린 눈물입니까? * 간첩은 밖에도 안에도 거주한다 자주 갈등한다 자주 망설인다 그리움도 유통 기한이 있습니까 가위바위보를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은 사상이 다른 지대입니다 그럼 난 누가 버린 폐기물입니까 영혼을 꺼내 말려야 한다고 간첩이 자주 속삭인다 정말이지 세상은 네 손처럼 의아하고 다수이며 나는 한 번도 다수에 속하지 않았다 룰을 배운다는 건 자기를 지우는 여정이라며 네 애인들이 울먹거린다 화분 잎사귀에서도 안개가 흐르고 서랍 속엔 길 잃은 손들이 그득하다 프로필 . 본명 안병호, 경남 김해 출생 . 2010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 . 2018년 부산문화재단 지역문화특성화지원사업 수혜 .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 현재 부산작가회의 회원  
679 둘이 모여 하나 외1편/박일아 file
편집자
1200 2018-08-31
둘이 모여 하나 하얀 눈사람 동글 둥글 둘이 모여 하나가 된 눈사람 겉과 속이 모두 하얀 항상 변함없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닌 하나가 되는 세상 살고 싶다 벼꽃 바람만 스쳐도 간지럼 타는 벼꽃 바람이 전해준 사랑에 부끄러워 나날이 고개 더 숙인 벼 약력 ; 2009년『사람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하루치의 무게』 대구 경북 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