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게

 

 

덩어리 언니, 엄마가 병원 데려다준다고 빨리 나오래. 방문 밖에서 미니가 소리를 질렀다. 잠은, 아까부터 깨어있었다. 나는 몸을 뒤집어 방바닥에 엎드렸다. 묵직한 몸이 배를 눌렀다. 잠시 그대로 있다가 팔과 다리를 번쩍 들어 버르적거렸다. 한번 그래보고 싶었다. 팔꿈치와 무릎이 헐렁한 느낌이었다. 한바탕 버르적거리고 일어나 거울 앞으로 갔다. 오른쪽 목에 검푸른 멍이 보였다. 살이 쪄서 둥그스름한 어깻부들기에도 붉은 멍이 선명했다. 어제 차가 한 바퀴 돌 때 부딪친 자리였다.  

어제 아침, 내가 오피스텔을 계약했다고 하자 지니는 집들이선물을 사주겠다고 했다. 지니는 나를 끌고 집을 나섰다. 잠깐만 있어봐, 아빠한테 차키 얻어올게. 지니가 길모퉁이에 있는 기장활어횟집으로 달려갔다. 카운터에 삼촌이 앉아있는 게 보였다. 나는 머플러로 얼굴을 가리고 큰길로 내려갔다.  

여기까지 오는 데 지니의 도움이 컸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면접에서 자꾸 미끄러지는 내게 지니가 대학선배를 소개했다. 사람들이 몰라봐서 그렇지, 얘 진짜 실력 괜찮아요. 지니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나를 소개했다. 지니의 대학선배는 초짜인 내게 사보 일러스트와 인디자인 작업을 맡겨주었다. 일이 손에 익으면서 몇 군데 다른 출판사와도 연결이 됐다. 나는 누끼 따는 작업도 마다않고 하루 열네 시간씩 일했다. 오피스텔 전세금을 마련하는 데 4년이 걸렸다.

내가 오피스텔 전세금을 모으는 동안 지니는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지니는 한 달 전 임용고시에 최종합격을 했다. 그날 지니는 나를 붙잡고 펄쩍펄쩍 뛰다가 친구들을 만난다며 나갔다. 지니가 외출을 하고 혼자 남게 되자 마음이 심란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마감이 급한 쇼핑몰 밑그림을 그리다 말고 태블릿 펜을 던져버렸다. 결국 나는 의자를 뒤로 물리고 일어섰다. 내 방이 부엌방이어서 문을 열면 바로 주방이었다. 방문 옆에 냉장고가 있었다. 냉장고에서 반찬통을 있는 대로 꺼냈다. 배가 고픈 건 아니었다. 어쩌면 고픈 것도 같았다. 주걱으로 밥통에 남은 밥을 양푼에 퍼담았다. 나이 들면서 많이 나아졌는데, 마음이 불안할 때면 예전 버릇이 나왔다. 임용고시 축하선물로 사두었던 장지갑은 아직 내 책상서랍에 들어있었다.  

지니가 횟집 뒤편에서 차를 몰아 내려왔다. 나는 운전석에 앉은 지니를 보며 헤벌쭉 웃었다. 임용고시 합격 파티는 친구들과 했지만, 지니 곁에 앉는 사람은 나였다. 고장이 났는지 뻑뻑한 안전벨트를 당겨서 채우자 불룩한 뱃살이 눌려 숨쉬기가 불편했다. 매고 있는 시늉만 해. 지니가 차를 출발시키면서 말했다. 나는 벨트를 풀고 창을 내렸다. 지니가 라디오를 켰다.

이것 봐. 나는 휴대폰에 담아놓은 오피스텔 사진을 지니에게 내밀었다. 거실이 방처럼 분리돼 있어서 두 사람이 쓰기에 좋은 구조야. 방은 너 혼자 써. 난 거실에서 작업하고 잠도 소파에서 자면 돼. 음악소리가 시끄러워 나는 고함을 질러댔다. 지니가 웃음을 터트렸다.

지니가 웃으면서 차를 사차선 도로로 올리는데 바퀴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요란했다. 이거 왜 이래. 지니가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는 순간 쾅, 소리와 함께 차체가 튀었다. 빛줄기가 눈을 때렸고 앞이 캄캄해졌다. 클랙슨이 사방에서 울렸다. 이봐요.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요, 괜찮아요? 움직일 수 있겠어요? 누가 내 어깨를 흔들었다. 주변이 흐릿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차가 부딪치면서 충격으로 문이 열렸던지, 내 몸이 차 밖으로 널브러지듯 나와 있었다. 나는 눈을 끔벅이며 정신을 수습했다. 부서진 공중전화 부스에 차 앞 범퍼가 들어가 있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집으로 가자 마루에 앉아있던 숙모가 달려왔다. 어디 안 다쳤니? 의사는 뭐라던? 지니는 숙모에게 자동차 키를 넘겼다. 차가 한쪽으로 좀 쏠렸어. 새침하게 말하고,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지니는 제 방으로 들어갔다. 지니가 들어가고 딸깍, 문 잠그는 소리가 났다. 저럴 때 나는 서운했다.

내가 삼촌 집에 처음 왔을 때부터 그랬다. 지니는 스케치북이며 데생연필 같은 것을 챙겨주며 살갑게 굴다가 기분이 틀어지면 쌩하고 돌아섰다. 지니가 쌩하고 돌아서면 나는 마치 그 자리에 없는 사람 같았다. 자신이 매정하게 굴고 있다는 것을 몰랐으므로, 내가 상처받는 것을 몰랐으므로, 지니의 매정함은 무심함에 가까웠다. 그 무심함이 밉고, 부러웠다. 무심하다는 게 어떤 건지 나는 알고 있었다.

바다에 나갔다 오는 아버지의 배에는 몸통에서 떨어져 나온 청게의 발이 흩어져 있었다. 아버지가 갑판을 정리하고 그물을 거두어 내린 뒤에도 청게의 끊어진 발이 갑판 위에서 벌벌 움직였다. 그물망태기에서 용케 빠져나온 청게들은 벌벌 움직이는 발들을 타넘으며 뱃전으로 기어올랐다. 무심하다는 것은 그런 거였다.

 

저 독뫼 끄트머리하고 낙동강 하구가 이 마을 앞에서 바다하고 만난다. 그래서 여기를 독뫼마을이라고 안하나. 이삿짐을 싣고 달리는 용달차에서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아버지 무릎에 앉아 있었다. 저거는 수심신호대다. 자리를 잘못 찾아 꽂아놓은 신호등처럼 바다 한가운데 서있는 기둥을 가리키며 아버지가 계속해서 말했다. 기둥 옆에 작대기들이 튀어나온 거 보이나? 저 작대기 개수로 물때를 짚는다. 야광페인트를 칠해놔서 밤에는 등대 역할도 한다. 아버지는 기분이 좋고 홀가분해 보였다. 옆에 앉은 엄마는 창밖으로 눈길을 둔 채 조용했다. 용달차에 탄 뒤로 엄마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낙동강 하구에 내리쬐는 땡볕으로 갯둑과 포구가 달궈진 여름 한낮이었다.

아버지는 기장 청강리에 식당을 차렸다가 망했다. 식당을 차린 지 얼마 안 돼 주변에 있던 노후아파트가 철거되면서 동네주민이 빠져나갔다. 군청 직원들은 점심을 구내식당에서 해결했고, 퇴근 후에는 자가용과 부산행 직행버스를 타고 사라졌다. 아버지는 식당을 정리하고, 청게를 대주던 아저씨한테서 배를 샀다. 청게잡이가 그렇게 좋으면 자기가 하지, 당신한테 배를 팔까. 엄마가 목소리를 높이면 아버지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독뫼마을에서 아버지와 둘이 살았다. 엄마는 선착장에서 회와 소주를 팔다가 기장으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엄마가 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나는 엄마가 장사를 하던 선착장에서 놀았다. 선착장에서 놀고 있으면 회와 소주를 파는 좌판 이모들이 멍게꼭다리를 손에 쥐여 주었다. 나는 멍게꼭다리를 씹으며 공기받기를 하다가 선착장 끝으로 달려가곤 했다. 선착장에서는 수문과 배수 펌프장과 독뫼가 한눈에 보였다. 어부아저씨들이 내던진 전어와 웅어 새끼를 차지하려고 날아다니는 갈매기들도 보였다. 푸른빛이 군데군데 섞인 주황 노을이 독뫼산 물그림자에 스며들 즈음, 마을의 배들이 돌아왔다.

아버지는 수심신호대에 붙은 작대기가 세 개가 되면 배를 타고 나가 그물을 던졌다. 작대기가 다섯 개쯤 보일 때 다시 배를 타고 나가 청게가 걸려든 그물을 끌어올렸다. 새벽 물때에 바다로 나가 그물을 던지던 아버지가 죽고, 몇 년째 소식을 끊었던 엄마가 집으로 왔다. 엄마는 장례를 치르고 수협 아저씨들을 만나면서 바쁘게 보냈다. 사흘 뒤 엄마는 나를 외할머니한테 맡기고 다시 떠났다.

나는 엄마가 사놓고 간 새 옷을 입고 새 운동화를 신고 외할머니와 함께 기차를 탔다. 내가 안고 있는 가방에는 엄마가 사준 24색 크레파스가 들어있었다. 삼촌집에 가면 시키는 대로 해라. 먹여주고 재워주고 학교도 보내줄 거다. 열차를 타고 오면서 외할머니는 열 번쯤 같은 말을 했다. 나는 심하게 멀미를 했고, 삼촌집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토했다. 삼촌과 숙모, 내 또래 여자애 둘이 마루에 앉아 있었다. 나는 토사물을 내려다보며 비죽비죽 울었다. 괜찮아. 울지 마. 두 여자 아이 가운데 머리를 길게 기른 아이가 마당으로 내려왔다. 나는 지니야. 너랑 같은 5학년. 나는 입가에 묻은 것을 닦고 지니를 보았다. 지니가 생긋 웃으며 내 손목을 잡았다. 나는 지니를 따라 마루로 올라갔다.

 

삼촌집으로 온 다음날 숙모가 전학수속을 했다. 교무실에서 만난 선생님을 따라 5학년 7반 교실로 갔다. 교실 안에 지니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인사를 하자 아이들이 경상도 억양을 흉내 내며 떠들었다. 종례가 끝난 뒤 아이들이 나를 불렀다. 나는 아이들을 따라 운동장을 가로질러 갔다. 타라. 우리가 돌려줄게. 원판 가장자리를 따라 쇠막대를 드문드문 박아놓은 뺑뺑이 앞에서 아이들이 말했다. 타고 싶지 않았다. 웃는 표정들이 수상했다. 어서 타라니까. 아이들 중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원판에 올라서자 아이들이 쇠막대를 나눠 잡고 돌리기 시작했다. 금세 속도가 붙었다. 어지러웠다. 멀미가 났다. 내 몸이 쇠막대 사이로 튀어나가 담장에 패대기쳐지는 모습이 눈앞을 스쳤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만해! 비명을 지르다 왼손을 놓쳤다. 동시에 왼발이 미끄러지면서 몸이 붕 떴다. 시소와 늑목과 철봉과 장미넝쿨이 휙휙 지나가더니 시커먼 벽이 눈앞을 덮쳤다.

죽었나 살았나.

아이들이 둘러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피도 안 나는데 엄살 떨지 마. 누군가 겁먹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땅바닥에 누운 채 꼼짝하지 않았다.

일어나.

땅바닥에 누운 채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버지는 죽었는데……. 꿈인가. 아닌데. 분명 아버지 목소린데, 생각하며 눈을 떴다. 나는 방파제에 누워있었다. 얼른 일어나거라. 그러다 청게한테 물린다. 아버지가 말했다. 청게는 여기 들어있는데 내가 와 물리노. 나는 그물망태기를 발로 차는 시늉을 했다. 어디 보자. 아버지가 손질하던 그물을 놓고 소주잔을 기울이는 아저씨들한테 가서 당근을 얻어왔다. 봐라. 아버지가 그물망태기를 툭툭 건드렸다. , 하는 사이, 그물망태기 새로 집게발이 나와서 당근 끄트머리를 싹둑 잘랐다. 나는 움찔 손가락을 오므렸다. 니 아나. 아버지가 물었다. 뭐를? 나는 아버지가 구멍 난 그물을 손질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청게가 니같이 쪼맨한 아이를 붙잡으면 바다로 끌고 가는 거. 나는 벌떡 일어나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말도 안 된다. 내 말을 못들은 척 무연히 바다를 바라보던 아버지가 말했다. 청게가 깊은 바다로 가는 길인데, 만약에 니가 청게한테 붙잡히면 어떻게 되겠노. 나는 입을 벌린 채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해를 등지고 선 채 아버지는 그늘 같은 주름을 접으며 웃었다. 오늘은 바람이 없어서 청게가 바다로 내려가지는 않겠다. 아버지가 중얼거렸다.

아버지는 그해 청게잡이 철이 끝날 무렵 죽었다. 그물코에 걸려 넘어지면서 뱃전에 머리를 부딪쳤고, 바다로 떨어졌다. 허참, 사람이 우째 어이없이 죽노. 아버지의 죽음을 놓고 동네 사람들이 혀를 찼다. 아버지처럼, 나도 운동장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채 죽고 싶었다. 아니, 아버지처럼 나도 바다로 가고 싶었다. 아버지는 사실은 죽은 게 아니라 청게를 따라 바다로 갔다. 마을에서 어린 청게들을 방류하면 깊은 바다에서 자란 뒤에 낙동강 하구로 돌아온다고 아버지가 가르쳐주었다. 낙동강 하구에서 짝짓기를 하고, 개펄과 모랫바닥에서 살이 단단해진 청게들은 다시 수심신호대를 지나 바다로 돌아간다고 했다.

뺑뺑이판에서 떨어졌던 날 저녁, 피아노 레슨을 마치고 온 지니가 내 방으로 왔다. 다친 데가 어디야? 많이 아파? 잠깐만 있어봐. 지니가 도로 나가더니 약상자를 들고 왔다. 아프겠다. 지니는 살이 벗겨져 불긋불긋한 무릎을 보며 울상을 지었다. 오른쪽 뺨과 손목에도 피딱지가 앉아있었다. 약을 적신 면봉을 갖다 대자 땅바닥에 쓸린 상처가 따가웠다. 길게 기른 머리를 귀 뒤로 야무지게 넘기고 입김을 호호 불던 지니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생긋 웃었다. 이제 안 아프지? 나는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숙였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왔다. 지니가 두 팔을 벌려 내 어깨를 안아주었다. 네가 와서 너무 좋아. 어디 가지 말고 우리집에서 같이 사는 거다. 지니의 입김에 귀가 간질간질했다. 나는 눈물을 훔치면서 웃었다.

 

 

지니는 아침부터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숙모와 함께 병원에 갔다. 어제 갔던 병원이었다. 딱히 아픈 데는 없었다. 멀미를 할 때처럼 속이 메슥거렸고, 몸과 마음이 붕 떠서 뭔가 못 견디겠다는 느낌이었다. 의사는 목과 어깨, 등으로 번져있는 멍을 꼼꼼히 살폈다. 멍이라는 게 피가 죽어서 그런 것인데 색이 노래지다가 없어질 것이라고, 다른 이상은 없다고 했다.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숙모가 얼굴을 폈다.

지니는 밤이 다 되어 내 방으로 왔다. 병원에 같이 가줘야 되는데, 미안해. 나는 등을 돌려 누웠다. 그동안 내가 임용 되려고 고생한 거 너도 알잖아. 어제 사고로 문제라도 생길까봐 걱정돼서 한숨도 못 잤어. 나는 손가락을 구부려 이 사이에 물었다. 지그시 힘을 주자 손가락 끝에서부터 팔꿈치로 파닥파닥 통증이 올라왔다.

여기가 파랗다.  

지니가 내 등 뒤에 누워 어깨를 쓰다듬었다. 멍은 금방 없어지잖아. 며칠 있으면 표도 안 날거야. 지니한테서 술 냄새가 났다. 지니한테서 나는 술 냄새는 삼촌한테서 나는 술 냄새처럼 역하지 않았다. 지니가 내 등에 글자를 썼다. ... 파닥거리던 통증이 차차 가라앉았다. 나는 잇새에 물고 있던 손가락을 빼고 돌아누웠다. 다음 주에 오피스텔 잔금 치를 거야. 나랑 같이 가. 지니가 내 어깨를 짚고 일어나 앉았다. 어쩌지, 내일 동유럽으로 여행 가는데. 임용 합격되면 배낭여행 가자고 친구랑 약속 했거든. 너한테 말했는데 기억 안나?

지니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우리 둘이서 여행을 가자고 한 적은 있었다. 오래 전이었다. 지니는 세계여행이 꿈이라고 했다. 공부하다가 졸리면 내 방으로 쫓아와서 베르사유궁전과 오로라와 갠지스강과 마추픽추에 대해 인터넷에서 긁어온 내용으로 수다를 떨었다. 나중에 우리 같이 살면서 세계 여러 나라를 다 가보자. 둘이서만 살면 되게 재밌을 거야. 지니의 말에 나는 벌쭉벌쭉 웃었다. 나는 지니에게 어리숙하고 천진하게 보이는 데 온 에너지를 썼다. 우리 순둥이. 지니는 그럴 때마다 곰 인형을 안 듯 나를 껴안았다. 지니가 안아줄 때면 부끄럽고, 슬프고, 외롭고, 고마웠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로는 종종 소공원을 갔다 오곤 했다.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비탈길을 10분쯤 걸어 오르면 운동기구가 놓인 소공원이 있었다. 우리는 냉장고에서 꺼내온 캔맥주와 새우깡을 놓고 벤치에 앉아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마을은 오징어 배들이 불 밝힌 밤바다 같았다. 불빛이 어두워지는 마을 저편으로 홍제천이 흘렀다.  

저건 수심신호대 같다. 수심신호대는 바다에 서있는 기둥인데 수심도 알려주고 등대 역할도 해. 나는 마을 한가운데 솟은 교회 탑을 가리키며 말했다. 서울에서는 바다 보려면 인천이나 강릉까지 가야 돼. 우리 외갓집이 강릉에 있잖아. 알지? 지니가 말했다. 그럼, 알지. 강릉인 거. 방학 때마다 숙모랑 미니랑 같이 거기 가잖아. 탓하는 것처럼 들릴까봐 나는 속으로 말했다.

지니는 외갓집으로 가면 사나흘쯤 지나서 돌아왔다. 삼촌은 식당 때문에 같이 가지 않았다. 나는 혼자 집을 지켰다. 저녁 먹은 설거지를 끝내고 부엌과 마루에 불을 끄고 나면 그때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대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얼굴이 차가워지면서 몸이 뻣뻣해졌다. 악몽을 꿀까 봐 잠드는 게 무서웠다. 잠이 들려고 하면 차갑고 비린내를 풍기는 손이 들어왔다. 옆구리에, 가슴에, 다리에 꾸무럭거리는 손이 달라붙었다.

 

씨발, 싫다고! 비명이 튀어나오는 입을 내 손으로 틀어막았다. 닥닥닥 사정없이 떨리는 잇새에 손가락을 넣고 콱 깨물었다. 이빨에 찍힌 통증이 비명을 막았다. 악몽에 갇혀 죽는 것보다 비명을 질러 악몽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더 무서웠다. 내가 왜 손톱과 손마디를 물어뜯는지, 피멍이 들도록 손목을 꾹꾹 무는지 지니는 몰랐다. 지니는 아무것도 몰랐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은 내 손목에 새겨진 피멍이 지니에게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일까, 서운해지는 마음도 꿀꺽 삼키면 그만이었다.

지니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학원수업을 받느라 늘 지쳐 있었다. 식탁에서 지니가 말을 걸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먹는 데 집중했다. 밥과 국을 먹고, 생선토막과 소시지와 김치를 먹고, 마늘장아찌 같은 밑반찬까지 긁어먹었다. 말이 하고 싶을 때도 먹었고, 말이 하고 싶지 않을 때도 먹었다. 먹는 만큼 살이 쪘고, 살이 찌는 만큼 마음이 무뎌졌다. 삼촌은 먹을 걸 입안에 밀어 넣는 내 모습을 못 봐주겠는지 눈길을 돌렸다. 살 것 같았다. 나는 더 많이, 뭐든지 삼킬 수 있었다.

저러다 우리까지 먹어 치우겠다. 숙모의 농담에 지니와 미니가 웃음을 터트렸다. 나를 두고 던지는 농담에 지니가 웃을 때는 상처에 소금을 뿌린 듯 마음이 쓰렸다. 마음이 쓰릴 때마다 뱃속에 똬리를 튼 덩어리가 딴딴해졌다. 뱃속에서 딴딴하고 묵직해진 덩어리는 청게의 집게발처럼 날카로운 모서리로 나를 찔렀다.  

지니와 함께 소공원 벤치에 앉아 서로의 꿈을 나눌 때 나는 청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청게를 잡다가 바다로 내려간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뱃속에 뭉쳐져 있는 덩어리가 말랑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아버지는 청게를 따라 간 거지. 어린 청게를 방류하면 바다로 내려가거든. 깊고 멀고 너른 심해바다로 간대. 내 말에 지니가 까르르 웃었다. 청게가 어떻게 심해바다까지 내려가니. 헤엄을 치지도 못하는데. 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진짜야. 내가 봤어. 지니가 맥주캔을 비우고 벤치에서 일어섰다. 어떡해. 우리 너무 오래 있었다. 빨리 가서 공부하자. 지니가 내 팔을 잡아 일으켰다.

그때처럼,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못했는데, 등 뒤에 누워있던 지니가 일어나 앉았다. 다음엔 우리 둘이서 가자. 동유럽에도 가고 파리에도 가자. 그럼 되잖아. 지니가 내 볼살을 가볍게 잡았다가 놓았다. 내일 못보고 갈지 몰라. 새벽 일찍 공항 가야 하거든. 나는 일어서는 지니의 손목을 붙잡았다. , 놀래라. 지니가 손목을 잡힌 채 약간 신경질적으로 웃었다. 나는 지니의 손목을 잡은 채 몸을 일으켜 앉았다. 다음에 언제? 우리 둘이서 언제 동유럽에 가고 언제 파리에 가? 내 목에서 뻑뻑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지니에게 그런 식으로 물은 적이 전에는 없었다. 따지듯 묻고 나자 분하고 서러운 어떤 감정이 물꼬를 튼 듯 솟구쳤다.

그런 표정 좀 짓지 마. 이거 놓고. 지니가 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힘을 주어 풀었다. 몸통에서 떨어진 청게의 발처럼 손이 무릎 위로 떨어졌다. 올 때 선물 사올게. 미술관 책자 같은 거 괜찮지? 나는 팔을 늘어뜨린 채 말했다. 이사는, 네가 여행에서 돌아오면 하자.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쇳가루를 삼킨 듯 목이 갑갑했다. 지니가 나가고, 나는 거울 앞으로 가서 입을 벌렸다. 불빛의 각도에 맞춰 고개를 한쪽으로 꺾은 채 목구멍을 살폈다. 목젖 뒤로 퍼런 녹 같은 게 끼어있었다.

 

 

보름쯤 지나자 온몸에 퍼런 멍이 번졌다. 의사는 골수검사니 뭐니 몇 가지 검사를 하고는 혈소판감소증이라는 진단을 내놓았다. 사소한 자극에도 멍이 새로 들 수 있으니 되도록 움직이지 말고, 햇볕에 나가는 것도 삼가라고 했다. 햇볕이 피부조직을 손상시켜 멍이 잘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행히 내 경우 혈소판감소증이 바이러스에 감염돼서 생긴 것 같으니 휴식만 잘 취하면 차차 나아질 거라고 했다.

의사의 처방대로 나는 바깥출입을 삼가고 종일 방에서 누워 지냈다. 저 언니 보면 이상하게 기분 나빠. 오피스텔 구했다면서 왜 이사 안 가. 방에 누워있으면 주방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식탁 치우는 소리가 나고, 숙모가 식반을 들고 왔다. 내가 식탁에서 자꾸 국을 엎고 그릇을 떨어트리자 숙모가 식반에 밥을 차려 갖다 주었다. 어째 멍이 없어지질 않냐. 차차 나아질 거라더니. 내가 몸을 일으키자 숙모가 등을 받쳐주었다.

나는 식반을 잡았다가 도로 밀쳐놓았다. 얼마 전부터 나는 눈앞에 먹을 것이 있어도 입에 집어넣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았다. 입맛 없어도 먹어. 식당도 바쁜데 내가 떠먹여줘야겠니. 요즘 같아서는 손이 열이라도 모자란다. 나는 숙모의 말을 자르고 물었다. 지니는요? 아직 아무 연락이 없어요? 이미 수십 번쯤 나는 지니에 대해 물었다. 물으면서, 혹시 전화가 왔는데 나한테 알려주지 않는 건지 숙모의 표정을 살폈다. 올 때 되면 알아서 오겠지. 지니는 놔두고 네 몸이나 신경 써라. 숙모가 내 턱밑으로 식반을 밀어놓고 일어섰다.

나는 주의를 기울여 식반에 놓인 젓가락을 잡았다. 방안에서만 지내서 그런가, 갈수록 몸을 움직이는 게 부자연스러웠다. 움직일 때마다 관절에서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났고, 손과 발이 따로 놀았다. 팔다리와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게 아니라 힘 조절이 안 됐다. 거기다 엄지손가락의 관절이 부어오르면서 쇠공처럼 두툼해지는 바람에 젓가락질 같은 섬세한 동작을 하는 데 애를 먹었다.

녹이 쓴 것처럼 온몸이 퍼레지고, 관절이 덜거덕거리는 것 말고도 내 몸에 일어난 변화는 또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살이 붙기 시작해 80킬로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었던 몸에서 비곗살이 빠져나갔다. 세 겹 네 겹으로 접히던 뱃살과 옆구리와 어깨에 시루떡처럼 얹혀있던 살집이 사라졌다. 질긴 살가죽이 뼈를 감싸면서 팔다리와 등과 어깨가 막대아교처럼 딴딴해졌다. 뱃속에서 쿡쿡 쑤셔대던 덩어리가 물렁살을 뚫고 나와 전신을 덮어쓴 것 같았다.

살갗이 아교처럼 딴딴하고 끈끈해진 탓인지 날씨가 더워지면서 몸 구석구석이 가려웠다. 한 번 가렵기 시작하면 어깻죽지와 등이, 손목 발목이, 잇몸이 다 미치게 가렵고 근질근질했다. 엄지손가락의 관절이 두툼해지면서 집게발처럼 변한 팔을 반대쪽 겨드랑이 밑으로 넣으면 옆구리와 등의 절반을 긁을 수 있었다. 긁다 보면 딱딱한 피부에서 뭔가 오톨도톨한 것이 만져졌다. 돌기를 긁어낼 만큼 손가락에 힘을 주어 박박 긁어도 가려움이 사라지지 않았다. 근질거림은 살갗이 아니라 몸 안쪽에서 돋아나오는 것 같았다. 몸통 속의 근질거림끼리 부딪치게 하면 시원해질까 싶어 나는 발작하듯 몸을 꿈틀꿈틀 움직였다.

으으, 보기 흉해.  

몸을 뒤집어가며 꿈틀거리는데 미니가 토하는 시늉을 했다. 좀 전까지 식탁에서 쩝쩝거리던 삼촌과 숙모, 미니가 문간에 서있었다. 삼촌과 숙모는 질린 표정이었다. 숙모가 방문을 닫았다. 흉한가. 보기에. 내가. 말들이 두서없이 머릿속에서 흩어졌다. 끈적끈적한 땀이 목으로 흘러내렸다. 더운 숨을 내쉬면서도 나는 문을 열지 않았다. 갑갑해도 닫아놓는 게 마음이 편했다. 덜거덕거리는 소리를 내고 싶지 않아 방안에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종일 이부자리 위에 엎드려 있었다. 등이 딱딱해지면서 누워있는 것보다 엎드려 있는 자세가 편했다.

온몸을 긁고 뒤집느라 잠을 설쳤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아침 일어나니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가려운 데도 없고, 기분이 한결 상쾌했다. 관절이 제자리를 잡았는지 덜거덕거리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나는 거울 앞으로 기어갔다. 벽에 기대어 둔 거울 속에서 청동색의 껍데기를 등에 진 청게가 쇠망치 같은 집게발로 자세를 잡고 있었다.

 

 

냄새가 나서 못살겠다. 너도 우리 눈치 보느라 갇혀 지내는 것보다 혼자 문간방을 쓰는 게 편할 거다. 숙모가 마당에 서서 손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나는 마루에 엎드려 숙모의 말을 들었다. 마당에서 반사되는 여름햇살에 몹시 눈이 부셨다. 식당에서 갖고 온 밀차를 마루 밑에 대놓고 삼촌과 숙모가 양쪽에서 내 등껍데기를 붙잡았다. 청동색의 등껍데기는 며칠새 더 두껍고 더 단단해져 웬만한 충격에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혼자 걸어가겠다고 했는데, 숙모가 밀차를 고집했다. 휘뚝휘뚝 걷다 자빠지면 뒷감당을 누가 하느냐고 짜증을 냈다.

굳이 밀차를 못 탈 것도 없어 다리를 마루 밑으로 하나씩 내렸다. 밀차에 집게발을 걸치고 올라서는 순간, 바퀴가 미끄러지면서 다른 쪽 집게발을 쳤다. 불에 덴 듯 화끈한 통증이 덮쳐왔다. 그 바람에 중심을 잡으려고 버르적거리던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밀차의 상판 귀퉁이에 가슴을 처박았다. 아이고, 괜찮으냐? 조심을 하지. 숙모가 우는 소리를 냈다. 나는 수선을 떨기 싫어 밀차에 얌전히 엎드렸다. 밀차가 부서지는 소리를 내며 마당을 가로질렀다.

비어있던 문간방으로 옮겨온 뒤로 나는 좀 시무룩해지긴 했지만 더 슬프거나 비참하지는 않았다. 몸에 붙어있던 비곗덩어리가 떨어져 나가면서 감정의 거품도 꺼졌는지 웬만해서는 분하거나 서운한 감정이 일지 않았다. 몸의 고통마저 사소하게 느껴졌다. 오른쪽 집게발이 목각인형의 다리처럼 흔들거리고, 밀차 귀퉁이에 다친 가슴에서 푸르스름한 진액이 흘러나왔지만 내버려두었다.

문간방에서 지낸 지 두어 달쯤 지났을 무렵, 지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닫이문을 열자 쌀쌀한 바람이 들어왔다. 마당 건너 집안에서 지니와 숙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니는 발령을 받았고, 원룸이나 오피스텔을 구해 따로 나가서 살고 싶어 했다. 말소리가 다 들리는 건 아닌데, 집안에서 오가는 어떤 대화는 거의 감지할 수 있었다. 식당공사를 하는 바람에 여유가 없다는 숙모에게 지니는 내가 모아놓은 전세금을 들먹였다. 가서 말해 봐요. 나중에 은행이자보다 높게 쳐서 돌려준다고 하면 되잖아. 숙모가 지니에게 직접 가서 말하라고, 졸음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가면 또 들러붙을 거란 말이야. , 쟤 좀 그래. 스토커 같다니까. 지니의 목소리에는 배낭을 메고 먼 곳을 여행하고 온 피로의 냄새가 배어있지 않았다.

나는 지니에 대해 예전처럼 오래 생각하지는 않았다. 가끔 지니가 마당을 건너와 쪽마루에 식반을 내려놓고 갔다. 나는 지니를 부르지 않았다. 지니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하루 중 대부분을 귀퉁이가 떠들린 장판과 구석구석 죽어있는 벌레들을 보며 엎드려 있거나 잠을 잤다. 몸을 뒤척이던 잠결에 흔들거리던 집게발이 떨어져 나갔다. 진액으로 짓무른 가슴께에서는 고름 냄새가 나고 구더기가 슬었다. 구더기는 살을 뚫고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종종 사지를 뒤틀리게 하는 이물감과 무슨 비애 같은 것이 뱃속을 관통했다. 통증으로 정신이 아득해질 때면 선박엔진이 돌아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 하는 소리의 진동이 방바닥과 벽을 타고 다리로, 배로, 가슴으로 전해졌다.

사람들 말소리, 웃음소리가 엔진소리에 섞여 날아들었다. 곰팡이로 얼룩진 벽이 물때가 바뀔 때의 바다처럼 일렁거렸다. 바다 위로 발갛게 해가 떠올랐다. 부신 눈을 찌푸리자 수심신호대를 지나가는 청게 떼가 보였다. 바다에서 자란 뒤 강 하구로 돌아와 개펄과 모랫바닥에서 살을 찌운 청게들이 다시 바다로 돌아가고 있는 거였다. 청게의 기억 속으로 어떤 사람이 들어섰다.

 

방파제에서 엉킨 그물을 풀고, 바다에서 걸려 나온 찌꺼기를 빼내던 남자, 저렇게 손질한 그물을 던지다 발이 걸린 남자가 있었지. 뱃전에 머리를 부딪치고 바다로 떨어진 남자는 청게 떼를 따라갔어. 청게 떼를 따라 가는 남자를 떠올리자 마음이 붉고 서글퍼졌다.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벽을 쳐다보다가 그쪽으로 몸을 옮겨갔다. 톱니 같은 게 솟아난 왼쪽 집게다리를 들어 아래쪽 벽을 쳤다. 틈이 벌어져 있던 아래쪽에 주먹만 한 구멍이 생겼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벽 아래쪽에 생긴 구멍으로 골목을 내다보며 오후를 보냈다. 여자애들 몇이 골목을 들락거렸다. 담배를 피우며 떠들던 여자애들이 몰려가고, 헌옷 수거함 뒤에서 작은 머리통이 삐져나왔다. 갈색 고양이였다. 쓰레기봉투를 노리고 살금살금 다가가는 고양이를 보자 꾸르륵 허기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파지를 모으는 늙은 여자는 매일 저녁 가로등이 들어오는 시간에 나타났다. 밤이 깊어지면 여자애들이 담배를 피우던 자리에 누군가 오줌을 누고 갔다. 술 냄새와 오줌 지린내가 벽의 구멍을 통해 새어 들어왔다. 취객들의 발걸음 소리가 지나가고, 깜박 잠이 들렸는데 문이 열렸다.  

방안의 어둠 속에서 삼촌이 옆구리를 더듬었다. 차갑고 비릿한 손이 달라붙은 살가죽이 길게 벌어졌다. 목구멍에서 녹을 긁는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뭐라는 거냐. , 뭐라는 거냐. 삼촌이 헐떡였다. 눈과 귀와 입으로 비린내를 흘려 넣으며 삼촌의 몸이 반쯤 들어왔을 때 길게 벌어졌던 상처가 꽃봉오리처럼 오므라졌다. 아교풀처럼 끈끈한 살가죽이 오므라들면서 삼촌을 눌렀다. 조금씩, 더 단단히 눌러 마침내 삼촌이 뭉텅 잘렸다. 피가 퍽, 쏟아졌다. 잘리고 남은 몸통이 힘줄에 달린 채 덜렁거렸다. 방안의 날벌레들이 들러붙기 전에 피칠갑된 상처 주둥이가 덜렁거리는 몸을 훌떡 삼켰다.

삼촌을 삼켜 없애는 동안 집은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것처럼 조용했다. 오래 전 청게의 몸이 되어 미니를 삼키고, 숙모마저 삼켜 없앴던 건지 기억이 흐릿했다.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지니가 마당을 가로질러 다박다박 걸어왔던 것도 같았다. 지니는 선물을 내밀며 삐친 내 마음을 달랬을 것이다. 그게 뭐였더라. 미술관 책자였나. 지니가 책자를 안고 서있던 모습이 기억 속에서 돋아났다. 내가 지니를 향해 말을 걸었다.

보기에 좀 그렇지? 놀라지 말고, 들어와.

방문을 열고 머뭇거리던 지니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오랜만에 보니 반갑다. 나는 진심이었다. 지니가 내 얼굴을 뜯어보고 나서 말했다. 그동안 일이 좀 있었어. 프라하에서 아는 선배를 만났는데 몇 달만 가게 일을 도우면서 있어 달라더라. 그 선배, 선물가게를 했거든. 발령 날 때까지 외국에서 살아보는 것도 재밌겠다 싶은 거야. 네가 이런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돌아오는 건데. 마음이 너무 안 좋다. 많이 힘들지? 지니는 말을 쏟아내면서도 나하고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처음엔 불편했는데 이제 익숙해져서 괜찮아. 이제 너도 왔고.  

지니가 내 등껍데기에 손을 얹었다.  

저번에 얻으려고 했던 오피스텔 있잖아. 그 근처에 비슷한 오피스텔이 나왔더라. 네 공인인증서 비번 그대로던데, 그 돈으로 계약하자. 네 이름으로 할게. 괜찮지?

나는 지니를 보려고 턱을 들었다. 지니가 내 등껍데기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생김새가 이상하게 변해버린 애완동물을 보듯 지니는 나를 골똘히 봤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나를 애완동물로 보든, 스토커로 보든, 오천만 원짜리 통장으로 보든 상관없었다. 나는 집게발을 들어 지니의 손목을 붙잡았다.

왜 이래. 이거 놔.

 

소리를 지르며 일어서던 지니가 손목을 잡힌 채 방바닥에 넘어졌다. 버둥거리는 지니한테서 달큼한 냄새가 났다. 나를 안아준 말랑한 팔을, 내 상처에 약을 발라준 다정한 손을, 둘이 살면서 여행을 같이 다니자고 말할 때 생긋거리던 얼굴을 삼켰다. 다정하다가 매정하고 매정하다가 다정한 엄마처럼, 내게서 등을 돌렸던 몸통을 온전히 삼키고 나서 지니에게 대답했다. 그럼, 괜찮아. 나는 늘 괜찮다고 했잖아.

나는 괜찮았다. 미니를 삼키고, 숙모를 삼키고, 삼촌을 토막 내어 삼키는 건, 역겹지만 치러야 할 일이었다. 지니를 삼킬 때는 이제 겨우 한 몸이 되어 살겠구나, 생각했다. 뱃속에서 영양소로 변해갈 지니의 몸을 생각하면 웃음이 삐져나왔다. 흥분이 가라앉고 나자 속이 좀 메스꺼웠다. 근육과 뼈와 힘줄이 새로 맞물린 데다 집어삼킬 수 있는 건 다 집어넣은 뱃속이 곤죽이 된 모양이었다.

마당은 비어있고, 집안에 인기척이 없는데 웽, 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방안으로 흘러들었다. 나는 가로등 불빛이 흘러드는 벽의 구멍을 지켜보다가 남은 집게발로 중심을 잡고 일어섰다. 몸은, 시멘트를 발라놓은 듯 단단하고 묵직했다. 벽 쪽으로 등을 돌리고 서서 뱃전에서 뛰어내리듯 몸을 내던졌다. 방패 같은 등껍데기가 벽을 칠 때마다 선착장에 묶어놓은 선외기 보트들이 맞부딪칠 때처럼 턱턱 소리가 났다. 금이 가있던 벽에서 흙부스러기가 쏟아지고 굴이 뚫리듯 큰 구멍이 생겼다. , 하는 소리가 사라졌다. 밤의 정적을 가르며 고양이 울음소리가 날아왔다.

흙먼지가 가라앉고, 골목 끝 저만치 수심신호대가 보였다. 갯비린내 나는 바닷바람이 먼저 불어왔다. 네가 있어서 너무 좋아. 속살거리는 소리가 바람에 실려 따라왔다. 잠시,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끼며 그 자리에 서있던 나는 골목으로 터덕터덕 걸어 들어갔다. 한쪽 집게발이 떨어져 나가긴 했어도 걸을 만했다. 야광페인트를 칠한 수심신호대의 빛이 바다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믿기로 했다.

방패처럼 껴입었던 등껍데기와 몸통에서 떨어진 집게발은 방안에 남겨져 죽은 벌레들과 함께 바스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