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월간 선생 사당 지키는

 

400년 된 배롱나무

 

지나간 삶은 버팀목에 기대고

 

앞으로의 생은

 

한두 방울 떨어지는 링거병에 맡겼다

 

굽은 등으로 진분홍 꽃피우고

 

뒤뚱거리며 일 년 제사 열다섯 번 모시는

 

청리 체화당 종부

 

 

 

 

 

 저무는 새벽

 

 

바스락거리는 얼음길 밟으며

새벽 미사 가는 길

 

성에 낀 인력사무소 앞

오들오들 추운 눈들이 모여 있다

눌러쓴 모자와 마스크

반짝이는 눈동자는

쉴 새 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오늘은 방과후 교실 재계약하는 날

몇 년째 평가서 나올 때마다

학교 가는 길은 살얼음

 

자꾸 글 쓰라 카믄 방과후 끊을 거라요,

아이들 투정 한마디에도 얼마나 마음 졸였던가

 

성모님 앞에서 원망하다가

성당 환한 불빛 끌어안고 돌아서는 길

쓰레기통에 일회용 종이컵 수북한데

아직도 서성거리는 얼굴들

 

오늘은 햇살도 밀려났는지

날이 잔뜩 흐리다

 

  

 

 

권현옥

경북 문경 출생. ‘느티나무 시’동인으로 활동. kho-g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