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경주


 

1.황리단길

아직 덜 여문 단풍잎들

한 장 한 장 펼쳐 진열해놓은

작은 서점에서

푸른 빛 감도는 시집

한 권을 샀다

이제 남은 가을

그 시집과 함께 물들 일만 남았다

 

 

2.첨성대 옆 핑크뮬리

셔터를 누르면

앵글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급하게 공중에서 달려오는 주황빛 감

한낮의 느닷없는 별똥별

별똥별은 바닥에 철퍼덕, 터지고

기울어진 첨성대 어깨가

새로운 별자리 관측을 위하여

움찔거린다 사람들은

분홍억새 밭에 함부로 들어가

브이를 그리고

서로 뒷통수나 팔 하나, 다리 하나 또는

빈궁한 옆구리 한 켠씩 나누어 갖기도 한다

 

 

 

  

누군가는 더 크게 울고

 

 아로니아 십 킬로를 주문했다 혼자 먹기엔 가당찮은 양이다 씻어서 널어놓고 며칠을 벼르다 민달팽이 두 마리 나무젓가락으로 집어내고 효소를 담근다 서늘한 초가을 저녁 바람 500그램, 민달팽이 타액0.2그램, 아직 마르지 않은 물 30그램이 투명 유리병에 먼저 담긴다 간간이 미미한 한숨소리 한 줌도 딸려 들어간다 침침한 나의 눈을 밝혀줄 검은 동공 사이사이 갈색 설탕 대신 사각이는 풀벌레 소리 9킬로를 가득 채우고 뚜껑을 닫는다 유리병 안에도 밖에도 작은 벌레들 울음소리 가득 울려 퍼질 것이다 검은 아로니아는 그 울음들을 삼키고 삭이며 달콤하게 녹아내릴 것이다 짓물러진 눈으로 가을을 건너 겨울을 맞이할 것이다 그 사이 누군가는 더 크게 울고 누군가는 우리의 유리병 밖으로 영영 사라져 갈 것이다

 

 

 

 

*김진희 부산 출생. 시집 『굿바이,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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