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땅에서 오고 있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겨울이 있는 도시

흰 눈의 계절을 살아보지 않은

나무의 생애는 외롭지 않고 명랑하다

사계가 없는 푸름 속에서 자란 나무들

성장촉진제를 맞은 키 큰 꽃과 같이

짧은 시간 안으로 긴 삶을 펼쳐놓는다

 

겨울 한가운데 일월과 이월 사이

식물원 제3산책로 초입에서 만난

늙은 아소카나무 한그루

죽은 이들이 잠들고 싶어 하는 나무의

지붕은 둥글고 따뜻하다

주먹만한 주황 램프꽃 조등처럼

주렁주렁 피어 빗속에서도 환하다

이파리 무성한 나뭇가지엔 공원지킴이

구렁이가족도 함께 지낸다

 

생애 처음 맞이하는 따뜻한 겨울 속 이국여자

창고 방에 쌓아둔 하양을 찾는 일에 열중이다

 

우기의 한 낮, 대서양을 넘어서

적도로 숨 가쁘게 달려온 귀한 햇살

지칠 줄 모르고 피고 지는 꽃잎들

족적을 환하게 비춘다

 

멀리 오면서 두고 온 먼 땅

얼음골의 함박눈 안부

폭설 같은 폭우 속 빗방울에

숨어서 이륙중이다

 

외투 안 깊이 겨울이야기 한아름 품은 채

오고 있는 당신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이국에서 만난 사람

                                   

 

기록도 없이 사라진 마을에 대해 말하던

노파가 있었다

노파는 마치 오래전 떠난 나의 누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노파가 기억하는 가족사에 대한 일이라고는

바람이 푸근했던 골목길과 뚱뚱한 나무 한그루

있던 기와집 넓은 마당이었다

노파의 눈빛은 오래전 죽음을 경험한

사람을 닮아 있었다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마을 이야기는

노파의 입을 통해서만 전해진다고 했다

처음 간 나라에서 처음 만난 노파

죽은 나의 누이와 눈빛이 닮아 있었다

노파가 들려주던 이야기는 내 전생의 어느

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 낯선 노파와

이야기를 나누던 식물원 산책길

12월 우기 속에서 주황 꽃송이

조등처럼 주렁주렁 피어 있었다

잠시,

따스한 바람이 내 곁을 스치고

갔음을 알았을 땐

한바탕 소나기가 다녀간 후였다

 




강원도 삼척 출생

1990년 《시와 비평》 등단

시집 『푸른 징조』 등

여행산문집 『시인이 만난 인도네시아』

19회 한국해양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