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배, 수평선을 건너다 




작은 바람이 분다
작은 키스가 실려온다
작은 샘이 출렁이고
작은 그리움을 낳는 시간이
작은 항아리를 이고 온다
작은 새댁은
작은 새벽에 깨어
작은 오줌을 싸고
작은 콩을 넣은
작은 밥을 짓는다
작은 사랑방에 차린 밥상을
작은 거지들이 둘러앉아
작은 슬픔으로 한 숟갈 떠서 먹는데
작은 새 한 마리
작은 햇빛을 모아 찍! 똥을 갈기고 날아간다
작은 소리는 감미롭다
작은 귀가
작은 음표로 받아적은
작은 하루
작은 거지의 작은 딸이
작은 배고픔을 찍어
작은 동화를 쓴다
작은 동화의
작은 주인공은

오늘!
지금!
너와 나!

작아서 금세 사라질 것들에게 첫사랑의 옷을 입혔다
첫사랑은 작고 갑자기 태어난다
첫사랑은 작고 갑자기 황홀하다
첫사랑의 배가 수평선을 건너간다
작은 등대가 깜박거린다
작은 불안이
작은 눈을 찡긋 윙크한다

작아지고 작아지는 생, 화안하다!

 



입동, 은행나무

 

 

빗살무늬 토기를 살짝 건드리며

노래하던 은행나무가 말했어요

내 이파리는 오줌방울이야

메마른 대지를 가만히 적셔주고 싶어

 

부엉이 눈빛으로 레일 위를 빠르게 굴러오는

겨울이 어둠을 톡톡 두드리며 걸어올 때

철로 아래엔 레드 카펫이 펼쳐지네요

머리칼 붉은 여행객들은 배낭을 맨 채로 잠이 들었어요

언제나 캄캄 밤이었던 열세 살 소녀의 가슴 속 소설책이

오줌에 젖어 녹아내려요

끝없는 이야기, 밤마다!

어둠의 옷을 벗기네요

 

은행나무가 더 투명해진 눈빛으로 말했어요

내 오줌방울은 뼛속까지 내려가서 쓴

노란 잉큿빛 시야

“뼛속의 만남만이 디엔에이를 바꿀 수 있단다”

골수이식을 마친 후 파르랗게 수염을 쓰다듬던 아버지가 말했어요

너는 나의 뼈, 나는 너의 이슬방울,

나머지는 뮤즈의 살(), 우연이나 순수

 

드디어 야생고양이가 된 은행나무 이파리가

갸릉 갈갈 으스대는 마을 골목길

오줌에 젖은 시가 은행이파리 연필 되어 춤추고 쓰러지고

하늘엔 열일곱 소녀의 가슴속 달이

흰 눈을 꿈꾸듯 창백하게 환한

 

 

 

이민숙 약력

 

1998년 《사람의 깊이》에 ‘가족’외 5편의 시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나비 그리는 여자』『동그라미, 기어이 동그랗다』등이 있음. 여수 샘뿔인문학연구소에서 책읽기, 문학아카데미 프로그램 운영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