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배고파서 안 되겠어.

과자를 챙겨오지 못한 불찰에 화가 치밀었다. 근무 중에는 물론 퇴근 후의 비상식량이었는데 서두르다 깜박했던 것이다. 노란 치즈크림을 품고 있는 그것이 자꾸만 아른거려 입 안 가득 침이 고였다.

정우가 급히 차를 세운 곳은 집을 불과 이백여 미터 앞둔 중학교 정문 근처였다. 종종 그래왔듯이 단골 분식집에 들어가 대충 요기를 할 작정이었다. 도저히 아내가 기다리고 있을 식탁 앞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허기에는 늘 고통이 뒤따랐다. 이번만은 사력을 다해 견뎌내고자 스스로를 다그쳤다. 신혼의 아내에게 미안했던 마음을 오늘만큼은 덜어내고 싶었다. 기필코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앉아 오랜 만에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내리라. 다짐과는 달리 온몸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극도의 배고픔이었다. 이내 쓰리고 쑤시는 통증으로 변해갔다.

조금만 참으면 아내가 차려주는 저녁밥과 마주할 수 있었지만 또 한계에 이르고 만 것이다. 어질어질하고 팔다리가 후들거려 기운을 차릴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언제 괴성을 지르며 폭발할지 몰라 똥끝이 다 탔다.

퇴근길 분식집 출입은 꽤 오래 지속돼온 일과였다. 학창시절 하굣길 역시 그랬다는 고백에 아내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눈치였다. 실은 어쩔 수 없는 남편의 성격 탓에 포기를 해버린 결과일지 모른다. 연애시절보다 더 비만해져 백 킬로그램을 훌쩍 넘긴 정우는 먹는 일에 간섭을 하면 흥분하기 일쑤였다.

“아줌마, 참치김밥 두 줄 빨리요.

가장 빠르게 나오는 김밥의 주문은 이미 자연스러운 일이 돼버렸다.

잠시 후 김밥이 오자 손으로 두 개를 덥석 집었다. 그것을 우적우적 씹으며 한손으로 젓가락을 챙기고 다른 손으로는 어묵국물을 그릇째 들어 마셨다. 단 한 번 체하거나 소화불량에 걸린 적 없다는 사실이 새삼 뿌듯하게 여겨졌다.  

정신없이 김밥을 해치운 정우의 입가에 시물시물 미소가 묻어났다. 반배부른, 그래서 약간 아쉬운 상태였지만 안도감이 나머지를 채워주었다. 그래서일까, 다급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은근히 경쟁의식 아래 서로 곁눈질을 하고 있는 입사동기의 이죽대던 입이 먼저 스쳤다.

“배고픈 게 그렇게 참기 힘들어? 당장의 욕구충족이 불행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잖아. 거울에 비친 몸을 좀 봐. 이제 막 결혼도 한 사람이 그게 무슨 무책임한 자기관리야. 지난번 검진 때 당뇨에 고혈압에 고지혈증까지 삼관왕으로 장난 아니었다며. 그런데도 왜 근무시간에 몰래 빠져나가 군것질을 하고 서랍에 숨겨놓고 야금거리느냐고. 화장실에 앉아서까지 핸드폰으로 인터넷 개인방송 먹방인가를 본다며. 허, 결국 정신력 문제 아니겠어?

걱정으로 포장했지만 속에 든 비아냥거림이 선명히 보였다. 그런 상태로 저와 경쟁이나 되겠느냐는 조소가 숨겨져 있으리라. 그 은밀한 속내를 내비치듯 언젠가 회식자리에서 취기 앞세워 건네 온 말이 있었다.

 

“넌 주변 사람들이 아니라 너 자신 때문에 패배할 거야. 가장 회복하기 힘든 패배. 만약 감당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얼마든지 내키는 대로 살라고. 근데 말이야, 방종이 지나치면 젊은 육체를 늙게 만든다는 말이 있거든. 여섯 살이나 어린 와이프는 어쩔 겨?

그 대목에서 주먹을 날려주려다 겨우 주머니에 감췄다. 사실 정우도 정상궤도에서 벗어난 식습관으로 몸 관리가 엉망이라는 점을 모르지 않았다. 어린 시절 원하면 언제든지 먹을거리가 앞에 놓여졌다. 그것들을 만끽하는 외아들에게서 부모의 흐뭇함은 커져갔다. 나중에는 부모의 기쁨을 위해서라도 식탐을 부리다보니 일상으로 굳어지고 말았다.

어김없이 두 시간 간격으로 찾아오는 심한 공복감에 지치고 짜증이 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폐를 끼친 일은 없지 않은가. 과자와 빵을 사달라고 손 벌린 적도 없다. 순전히 자력으로 조달하여 해결하고 있는데 왜 눈에 쌍심지를 켜는지 분통이 터졌다. 정말 위기가 닥친다면 그때 관리하면 되지 않겠는가.

정우는 어차피 먹자고 사는 인생, 승진과 출세도 식후경이라며 쩝 입맛을 다셨다. 입구 쪽에 마주앉아있는 두 사람도 비로소 눈에 띄었다. 허기를 부여잡고 들어올 때는 미처 몰랐는데, 일흔 살이 넘었을 할머니 앞에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추레한 차림의 사내가 속 빈 배낭처럼 앉아있었다.

차츰 그들이 조성해 놓은 어색한 풍경이 거슬렸다. 사내만 허겁지겁 먹어대고 있었다. 김밥은 물론 방금 앞에 놓인 라면마저 독식하는 모습에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허, 나보다 더한 인간이네. 어머니뻘 되는 노인네를 앞에 두고 혼자 걸신 든 것처럼 굴다니!

정우는 식식거리며 그를 향해 경멸의 눈초리를 보냈다.

순간 기다리고 있을 아내가 떠올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라면의 유혹을 이겨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얼큰한 국물에 적신 김밥의 별미가 뒷덜미를 잡았어도 과감히 뿌리치고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휴대전화를 꺼내 식탁의 상황점검만은 빼놓지 않았다.

“나 지금 집 앞인데 곧바로 밥 먹을 수 있지?

그 소리에 사내가 흠칫하며 정우의 불룩한 배를 힐끔거렸다. 할머니가 말없이 단무지 접시를 밀어주자 자세를 고쳐 잡으면서도 떨떨한 표정을 쉽게 못 벗었다.

아내 대답에 반색한 정우가 눈으로 재빨리 사내의 라면그릇에서 한 젓가락 건져냈을 때였다.  

“국물도 마시면서 들어요. 그러다 체하면 어쩌려고.

할머니의 말투가 예사롭지 않게 들려왔다.

“네. 그나저나 또 저 혼자만···.

 

두 사람의 대화가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지갑을 꺼내려던 정우는 머춤한 채 그들의 대화에 귀를 주었다.

“난 집에 가서 대충 한술 뜨면 되니 염려 말아요. 하루 한두 끼가 전부일 텐데 매번 이런 바깥음식이라 미안해요. 집에 식구가 없고 일을 다니느라 마땅한 반찬 하나 해놓지 못하는 통에.

“무슨 말씀이세요. 늘 제가 죄송하고 고맙죠. 덕분에 다음 주면 다시 일을 나갈 수 있게 됐어요. 월급 타면 그땐 제가 대접해 드릴 게요. 이웃에 산다는 인연으로 그동안 굶지 않게 해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다친 몸 추스르며 잘 버텨왔어요. 나쁜 길로 가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기다린 덕분에 다시 일을 하게 됐으니 천만다행이에요.

밖으로 나온 정우는 잠시 길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서서 걸음을 떼지 못했다. 처음 경험하는 전율에 시달렸다. 가슴에서 출발한 떨림 하나가 순식간에 온몸으로 번져나갔다. 갑자기 들이마신 겨울 찬바람 탓만은 아닌 듯싶었다. 명치 쪽이 둔해지면서 무언가 턱 하고 걸리는 느낌이 뒤따랐다. 차를 세워놓은 곳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그 부위를 연신 쓸어내렸다.

“꺼억, 꺼억···.

예사롭지 않은 트림이 이어졌다. 참치의 비릿함이 다른 날과는 달리 역겹게 치밀었다. 김밥의 밥알들마저 일제히 날카로운 쇳조각이 되어 위벽을 온통 난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당장 숨이 멎을 듯 답답함이 심해졌다. 차 문을 열려던 정우가 휘청거렸다. 차창에 비친 얼굴이 낯설었다. 정신을 차리려고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여전히 흐리멍덩한 제 모습을 보던 정우의 입에서 신음 같은 한마디가 새어나왔다.

“너···.*  

 

 

이원준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1991년 《현대시세계》로 등단한 시인, 소설가.

《흔들림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한 모습이다》 《김오랑》 《김구》

《이상》 《권정생》 《노먼 베순》 《넬슨 만델라》

《정약용의 편지》 《조선왕들의 속마음》 《누가 조선의 영의정인가》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