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불식간에

 

     

 

내가 문득 고개를 돌려보면

오랫동안 쓰지 않던 그 무언가가

이제 낡고 기다리다 지치거나 혹은 너무 닳아서

이제는 대답하지 않고 돌아 앉아있다.

 

녹슬지 않는 쇠란 얼마나 비정한가,

산소와 만나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부스러져가다가

닦고 기름치고 살펴주지 않으면

그저 흙으로 돌아가는

저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것들과 같이

 

그저 모르는 사이에

하나씩, 세상과 나와 물건들은

그 사이에 세월과 산소와 무심을 벗 삼아서

어느새 툭, 하고 썩거나 부스러져 간다.

 

, 저 녹슬지 않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것들은 다 무엇인가

 

모든 것은 부지불식간에

부지불식으로 되어 가는데.




소리

 


나는 당신이 내게 사랑해 라고 말을 하려는 눈빛을 봅니다.

눈을 보고, 그 소리는 나중에 듣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그렇게 더듬이를 세우고 있지 않을 때는

당신의 말이 내 귀를 때려도 들리지 않습니다.

 

나는 먼 별에서 당신을 봅니다.

당신은 내 별을 향해

, , ...라고 말을 합니다.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

당신의 소리가 내 귀에 도착했을 때,

말한 당신도, 듣는 내게도 그 소리는 갈 곳을 잃습니다.

 

낡은 녹음테이프 속에서 풀려나오는 아이들 웃음처럼

오래 전에 보았지만

너무 오래 기다린 사랑의 말이

우리 사이에 떠돌아 다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