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욕망

                                                             

그가 처음 몸에 이상을 느낀 것은 막 잠을 청할 때였다.

김장을 담근다고 며칠 동안 부산을 떨던 아내는 이미 얕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그는 하루 중 가장 기분이 좋을 때가 막 잠자리에 들어 잠을 청할 때였다. 직장에서 나름 인정을 받고 있었고 가정에서도 초등학생인 두 딸은 무탈하게 잘 크고 있었다. 아내 또한 자신과 아이들의 뒷바라지하는데 만족하고 있었기에 하루를 바쁘게 보낸 후의 잠자리는 평온 그 자체였다.

하지만 평소와 달랐다. 잠이 들지 않고 자꾸 뒤척였다.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고 머리속은 엉킨 실타래가 가득 찬 것 같았다. 그는 아마도 퇴근하다 본 성폭행현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일은 좀 일찍 집을 나가 경찰서에 가서 퇴근 무렵 본 성폭행범에 대해 얘기할 작정이었다. 파란색 파카에 청바지를 입은 성폭행범의 뒷모습이 눈에 또렷했다.

그는 그 상황을 잊어버리고 잠을 청하려고 옆으로 돌아누웠다. 그러자 아내의 얼굴이 정면으로 향했고 따뜻하고 평화로운 콧김이 얼굴을 간지렵혔다. 그는 이불속에서 손을 꺼내 아내의 얼굴을 쓰다듬으려다 아내가 깰까 싶어 도로 집어넣었다. 아내가 무척 피곤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하니 아내는 잠들어 있었다. 전에 없던 일이었지만 이해했다. 며칠 동안 김장한다고 본가에 들락거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김장은 본가에서 누나 집이랑 남동생 집까지 네 집의 김장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일도 많았다. 끝나고 나면 아내는 꼭 몸살을 앓았고 그는 매번 아내를 근사한 레스토랑에 데리고 가 와인에 좋아하는 것을 사 주었다. 아내는 무척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몸살이 확 달아난다고 환하게 웃곤 했다. 또한 어머니가 고생했다고 준 돈으로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하지만 아내는 그 돈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그나 딸들의 옷을 샀다. 그러지 말고 당신 옷 사 입으라고 지청구를 넣으면 입고 싶은 옷이 없다며 해맑게 웃곤 했다. 이틀 후에 그는 아내를 근사한 레스토랑에 데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자야겠다고 다시 눈을 감자 또다시 성폭행 상황이 또렷이 떠올랐다. 그가 그 성폭행 현장을 본 것은 부장이 주재한 회식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부서원들을 깊은 이해심으로 잘 이끌어 신뢰를 받는 부장이었다. 그 또한 차장으로서 부장의 신뢰를 듬뿍 받고 있었다. 한우고기에 소맥을 마셨는데 부서원 모두 좋은 기분으로 양껏 먹었다. 누군가 2차로 노래방에 가자는 걸 그는 마다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참이었다. 그는 노래방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 아파트 밀집지역으로 오기 위해선 공원을 거쳐야 했는데 그는 아파트로 들어오기 전 공원 벤치에 앉아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산책하거나 운동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아 느긋하게 담뱃불을 붙였다. 담배 가격이 올라간 후 언제 끊어야지 하면서도 아직 못 끊고 있었다. 근데 이상하게 담배 한 대를 다 피우고 났는데 또다시 강한 흡연 욕구가 끓어올랐고 그는 다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여 피우기 시작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전에는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기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상한 점은 회식 자리에서도 있었다. 한창 주위 부서원들과 한우고기에 술을 마시는데 갑자기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을 들어올리는 느낌이랄까. 어? 그는 자신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다들 옆 사람과 이야기하기에 바빴고 그에게 관심 갖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불쾌한 생각이 들었고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술에 취한 것은 아니었다.

두 번째 담배를 반 쯤 피웠을까. 갑자기 공원 구석에 자리한 소나무 숲에서 어떤 물체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이상하다 싶으면서 그는 그냥 피우던 담배를 마저 피우고 집으로 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또다시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는 느낌이 왔다. 순간적이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을 번쩍 들어올리는 느낌도 회식자리에서와 같았다. 그는 요즘 무리해서 몸이 허약한 탓이라며 아내에게 말해 보약이라도 한 질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담뱃불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또다시 소나무 숲에서 어떤 물체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살그머니 소나무 숲으로 걸어갔다. 소나무 숲에 가까이 갔을 때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여자의 비명소리 때문이었다. 악다구니를 쓰는 듯한 여자의 비명소리에 그는 머리카락이 곧추 서는 것 같았다. 성폭행.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이었다. 순간 무서웠다. 그냥 되돌아가려다 다시 소리가 나는 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제야 파란색 파카를 입은 사내의 탱탱한 엉덩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무릎쯤에 청바지가 걸려 있었다. 사내의 밑에는 치마가 올라가고 허연 허벅지가 드러난 여자가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온 몸에 소름이 확 끼쳤다. 그는 뒤돌아서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사내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여자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과 달리 몸은 도망치고 있었다. 도망치는 몸이 눈에 보였다. 뒤돌아가서 사내를 후려치고 여자를 구해! 가슴속에서 누군가 소리쳤지만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자신이 사는 아파트 706동 앞에 있었다. 이런. 그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이렇게 못난 놈이라니. 그는 스스로 자책하며 지금이라도 달려가 여자를 구하고 사내를 흠뻑 두들겨패고 경찰서로 데리고 가야 하나. 아님 경찰서부터 신고해야 하나. 그는 머릿속에 복잡하게 떠오르는 생각에 아파트 앞 화단에 주저 앉았다. 그는 평소에도 성매매하거나 바람 피우는 남자들을 극도로 증오했다. 어릴 때부터 장학사였던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유난히 도덕과 윤리의식이 강했다. 초등학교 때 남자 아이들이 여자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을 두고 보지 못했다. 또한 문방구에서 슬쩍 물건을 훔치는 아이들도 용서하지 못했다. 그는 그런 자신의 생활에 만족했고 평생 그렇게 살리라 마음 먹었다.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화단에 앉아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연거푸 두 대를 피운 후에야 그는 명확한 생각이 들었다. 가서 남자를 두들겨패고 여자를 구하자. 그는 굳게 결심을 하고 담배불을 꺼서 휴지통에 넣고 일어섰다. 한번 마음먹으니 다리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어?

그는 소나무 숲에 다다라 소리가 났던 곳으로 달려갔을 때 성폭행범 사내와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벌써 도망쳤구나.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뭇잎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풀잎이 옆으로 쓰러져 있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경찰에 신고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망설였다. 피곤했다.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지금 경찰에 신고하면 경찰서까지 가서 상황을 상세히 설명해야 한다. 그러면 최소한 두세 시간은 걸린다. 12시가 넘었는데. 그는 망설이다가 스마트폰을 넣고 아파트로 걷기 시작했다. 내일 아침에 신고할 작정이었다. 지금은 너무 피곤해. 그는 중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도 아내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말하면 아내 또한 겁에 질릴 것이고 신고하라고 할 것이었다. 내일 아침 좀 일찍 나가서 신고하고 회사로 갈 생각이었다. 그때 아내에게 말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밤새 비몽사몽으로 지냈는데 꿈에서 어떤 사내와 싸웠다. 어딘지 왜 싸웠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낯모르는 사내였고 무슨 일인지 그는 사내에게 무척이나 화가 나 있었다. 처음엔 주먹질을 하며 서로 엉겨붙여 뒹굴었는데 나중엔 그가 일방적으로 사내를 때렸다. 왼손으로 사내의 멱살을 잡고 오른손으로 얼굴을 수없이 강타했다. 사내는 고스란히 맞고만 있었다. 전혀 모르는 사내였기에 그는 아침에 깨어나서는 어이가 없어했다. 지금까지 그는 누구와 싸운 적이 없었고 하물며 심하게 말다툼도 하지 않았다. 근데 주먹질까지. 그것도 일방적으로 때리다니. 그는 식은 땀을 흘러 축축한 몸으로 침대위에서 뒤척였다. 몸에서 진이 모두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일어날 힘조차 없어 멍하니 천정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없는 일이었다. 밤새 누군가 싸우다니. 그것도 일방적으로 때리는 꿈이라니. 하지만 또 하나 게름칙한 게 있었다. 사내는 파란색 파카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눈에 익은 옷이라 생각했는데 그 옷은 퇴근하다 본 성폭행범의 옷과 비슷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가 평소에 산에 갈 때나 산책할 때 잘 입는 옷과 비슷했다. 그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어머. 아직 안 일어나고 뭐해요?”

아내는 몇 번이나 밖에서 불렀다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마, 땀 좀 봐. 당신 몸이 안 좋아요?”

그가 미처 대답하기 전에 아내는 놀라서 그에게 다가와 이마에 손바닥을 댔다.

“아냐. 악몽을 꾸어서.”

그는 얼버무렸고 아내는 또다시 어디 몸이 안 좋으냐고 물었다.

“오늘 회사 가지 말고 쉬는 게 어떄요?”

아내의 말에 그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하루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결근이나 병가를 낸 적이 없었다. 하물며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개근상을 놓치지 않았다.

“가야지.”

그는 끙, 신음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잠깐 현기증이 일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어제 몇 시에 들어온 거에요?”

아내는 그가 씻으러 방을 나가자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글쎄. 좀 늦은 거 같은데.”

그는 만사가 귀찮아 대충 얼버무리고 욕실로 들어갔다.

“혹 무슨 소식 못 들었어요? 어젯밤에 아파트 공원 소나무숲에서 누가 성폭행을 당했다는데.”

아내의 목소리가 문이 닫히기 전에 욕실 안으로 들어왔다. 순간 그는 또다시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러더니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이런.

그는 바늘로 쿡쿡 쑤셔대는 듯한 머리를 흔들었다. 자신의 옷과 흡사한 파란색 점퍼와 청바지를 입은 사내의 엉덩이 깐 뒷모습이 휙, 눈 앞을 지나갔다. 그는 분노와 현기증이 일어 주저앉을 뻔했다.

그는 아침을 먹지 못하고 출근을 했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데도 몸이 허공에 떠있는 것 같았다. 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주 뜨거운 물에 몸을 푹 잠그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회사 건물에 도착했다. 그때 그는 하마터면 고함을 지를 뻔했다. 회사 정문에는 경찰 둘이 한 사내를 수갑 채워 양쪽에서 팔을 잡고 연행하고 있었는데 수갑 찬 사내를 보고는 주저앉을 뻔했다. 자기 자신이었다. 아무리 눈을 감았다 다시 떠도 분명 수갑을 찬 사내는 자기 자신이었다. 감색 양복에 푸른색 와이셔츠. 불그스름한 넥타이. 모든 게 똑같았다.

이럴수가.

그는 꼼짝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이 경찰차에 오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주위에는 부장을 비롯한 부서원들과 시민들이 둘러싸고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 모두 침통한 표정이었다. 그 사람은 내가 아니라고 뛰어가려는데 수갑 찬 그가 차에 오르기 전 잠깐 그를 돌아보았고 그는 순간 얼른 외면했다.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그는 회사로 가지 못하고 경찰차가 떠난 뒤에도 한참동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겨우 스마트폰을 꺼냈다. 하지만 손에 힘이 없어 스마트폰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신음소리를 내며 허리를 굽혀 스마트폰을 겨우 집어들었다. 하지만 전화를 하려고 스마트폰을 보았을 때 액정화면은 마치 거미줄처럼 방사형으로 가느다란 선들이 뻗어 있었다. 그는 액정화면이 깨진 것에는 개의치 않고 제발 전화를 할 수 있도록 고장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며 전원 스위치를 눌렀다. 다행히 액정화면에 불은 들어왔으나 홈화면으로 있던 아내와 딸의 사진이 일그러지게 보였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개의치 않았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우선 통화목록을 누르고 부서원 이름을 찾았다. 한참 밑에 박대리의 이름이 보였다. 그는 얼른 오른손가락으로 누르는데 또다시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집어들어 몇 번이나 시도한 후에 겨우 박대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차장님 도대체 어찌된 영문입니까?”

신호음이 울리자마자 전화를 받은 박대리는 다짜고자 물었다.

“그, 그러니까. 지금 무, 무슨 이, 일이냐고.”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아니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경찰서 아닙니까?”

“아, 아니 그, 그게. 그, 그러니까.”

그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더듬거렸다. 그때 수화기 너머에서 우차장이야? 바꿔봐, 하는 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박대리 주위로 직원들이 몰려 있는 것 같았다.

“우차장,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설마 자네가 그런 건 아니겠지?”

부장은 반신반의하는 말투로 물었다.

“도, 도대체 무, 무슨 말인지 모, 모르겠…….”

그는 말하다 또다시 스마트폰을 떨어뜨렸고 바닥에 뒹군 스마트폰에서 이봐, 우차장, 우차장,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힘겹게 허리를 굽혀 스마트폰을 들어 귀로 가져갔다.

“그, 그러니까. 무, 무슨 일입니까?”

“아니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떻하냐. 그러니까 자네가 어제 성폭행한 것은 아니란 말이지? 확실하지?”

부장은 추궁하는 심문관처럼 물었다.

“예? 성, 성폭행……이요?”

그는 어이가 없었다. 성폭행이라니. 내가? 그는 크게 웃음이라도 터뜨리고 싶었다.

“그렇지? 맞지? 자네가 그럴리 있나? 분명 오해일 거야.”

부장은 여전히 의아하다는 투로 말했다.

“절, 절대 아닙니다, 절대로.”

“맞아. 자네는 그럴 사람이 아니지. 자네만큼 법을 잘 지키고 반듯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하여튼 빨리 끝내고 회사로 와.”

부장의 말에 그러면 그렇지, 차장님이 그럴 리가 있나, 하는 직원들의 소리가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왔다.

“아, 알았습니다.”

그는 전화를 끊고 나서 안도의 한숨을 지었다. 다행히 부장과 부서원들이 자신을 믿는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그는 담배를 꺼내며 앞에 있는 상가 골목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좁은 골목안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는 다급히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입으로 가져갔다. 연거푸 연기를 내뿜자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어느새 필터까지 타 들어간 담배를 바닥에 던지곤 다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 담배 또한 얼마가지 않아 금방 필터까지 타 들어갔다. 목이 칼칼했다. 솜이 목구멍에 꽉 찬 것 같았다.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또다시 담배를 꺼내던 그는 순간 아내가 알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미치자 어떤 불기둥이 머리 꼭대기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 그는 얼른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스마트폰을 꺼내 집으로 전화를 했다. 손이 덜덜 떨렸다. 골목으로 들어서던 행인이 멈칫 하더니 도로 돌아갔다.

“당신이야?”

아내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연락이 갔구나. 할 말이 없어 가만히 있자 아내가 다급히 말했다.

“당신, 맞지? 어찌 된 일이야? 아까처럼 끊지 말고 자세히 말해봐. 당신이…… 설마 아니지? 응? 말 좀 해봐.”

아내는 애원했다.

“여보. 내 말 잘 들어. 이거 뭔가 음모에 빠진 거 같아. 그러니까 정신 바짝 차려야 해.”

그는 아내에게 말을 하면서도 자신에게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모? 무슨 음모라는 거야? 아침에 당신이 출근하고 곧장 경찰이 닥쳤어. 당신 서재에 있던 컴퓨터랑 서랍에 든 노트 같은 것도 다 가져갔어. 어젯밤에 일어난 성폭행 용의자라나.”

아내는 울먹이며 말했다.

“뭐라고? 컴퓨터를?”

그는 기겁을 했다. 컴퓨터엔 여성의 누드 사진이 많았다. 취미로 사진을 찍기에 수시로 누드사진을 수집해 저장해 놓았는데 그걸 경찰이 가져갔다면 이상한 쪽으로 사태가 흘러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당신이 한 거 아니지? 응? 당신이 그럴 리가 없잖아. 얼마나 자상하고…… 나한테나 딸한테도. 근데 경찰이 당신이 그랬다고 물증이 나왔다고 그러는데 난 도저히 못 믿겠어. 참, 당신 자주 입던 옷 있지 파란색 점퍼랑 청바지도 가져갔어. 시시티비에 찍힌 거랑 같다면서.”

“음.”

그는 할 말을 잊고 신음소리를 냈다.

“당신 경찰서지? 내 곧 갈게.”

아내는 억지로 울음을 참는 듯 침을 삼키고 나서 말했다.

“아냐. 오지 마. 경찰서 아냐.”

“아니라고? 다 봤는데. 텔레비에도 나왔어. 경찰서에 있는 당신…….”

“난 아니라고. 회사 앞이야. 왜 나를 못 믿어.”

그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믿어. 당신 믿지.”

“그래. 하여튼 뭔가 잘못 됐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건지 나도 모르겠어. 그러니 마음 단단히 먹고 있어.”

그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당신 아까 전화해서는 경찰서라고 했잖아. 그러더니 바로 끊었는데.”

“내가 전화했었다고? 아냐. 잘못 걸려왔겠지. 난 당신에게 전화한 적 없어.”

그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누굴까, 아내에게 전화한 놈은. 순간 어젯밤 엉덩이를 까놓고 성폭행을 하던 놈이 떠올랐다. 맞아, 그 놈이야. 그 놈이 나한테 덤터기를 씌우고 집으로 전화한 거야, 내 목소리로 변장해서. 그는 연거푸 담배를 빨았다. 또다시 금방 필터만 남아 다시 새 담배를 꺼내물었다.

“분명히 전화했었어. 경찰서라고. 놀라지 마라고.”

“아니라니까. 참, 그리고 당신에게 미처 말 안 한 게 있는데……. 어젯밤 사실 성폭행하는 거 봤어, 퇴근하다. 그래서 경찰서에 신고하려고 했는데 너무 피곤해서 오늘 아침에 하려고 했는데.”

“당신이 봤다고?”

아내가 그의 말을 잘랐다.

“응.”

“아침에 그런 말 안 했잖아. 내가 어젯밤 성폭행 사건 일어났다고 얘기해도. 당신 설마…… .”

“뭐야. 당신 엉뚱한 거 상상하는 거 아냐?”

그는 담배연기를 내뿜다 고함을 질러 사래가 걸려 켁켁거렸다.

“당신 믿지. 하여튼 지금 경찰서로 갈게. 참, 변호사는 선임했어? 오빠한테 물으니까 변호사부터 선임하라는데.”

“뭐라고? 형님한테도 전화했다고?”

그는 어이가 없었다. 아내마저 나를 성폭행범으로 믿다니.

“아냐. 먼저 전화왔었어. 텔레비 보고.”

또다시 아내는 울먹였다.

“알았어. 하여튼 난 범인이 아니니까 그렇게 알고 경찰서도 오지마. 나 회사 앞인데 좀 알아볼게 있어.”

그는 전화를 끊었다. 자꾸 통화를 할수록 자신이 범인 된 기분이었다. 벌써 텔레비전에 나왔다니. 그는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했다. 맙소사. 그는 스마트폰을 내팽겨치려다 간신히 참고 다시 뉴스를 보았다. 어젯밤 일어난 성폭행 사건을 다루면서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경찰에서 조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이웃 사람의 증언이라며 착하고 성실한 사람인데 그럴 줄 몰랐다는 기사까지 있었다. 환장할 일이었다. 그는 담배를 물고 담벼락에 기대었다.

그는 거리로 나왔다. 회사원들이 모두 출근을 했는지 거리는 한산했다. 길이 낯설었다. 항상 사람들에게 떠밀리다시피 길을 걸었고 출근을 했는데 한산한 거리를 걸으니 다른 장소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 회사로 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집으로 갈 수도 없다. 경찰서로 가기엔 두렵다. 그는 가방을 오른쪽 옆구리에 낀 채 무작정 걸었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내가 성폭행을 했단 말인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구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었다. 하물며 미물이라도 함부로 죽이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부터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부모님 말씀 잘 듣는 모범적인 생활을 해왔다. 대학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와서도 준법정신이 강했다. 회사에서 회식 후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부른다거나 2차로 성매매 알선을 해 주는 술집으로 가는 걸 극도로 경멸했다. 지금껏 아내 외에는 누구에게도 추파를 던지지 않았다. 그런데…… 환장할 일이었다.

그는 길을 걷다 원조 해장국이란 간판이 걸린 식당으로 들어갔다. 아침을 안 먹고 나온 터라 우선 뜨끈한 국물이라도 먹으면 정신이 돌아올 것 같았다. 벽에 걸린 텔레비전은 혼자 떠들고 있었고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일단 사람들이 없으니 안심이 되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해장국을 주문했다.

“해장국은 아침에만 팔아요.”

얼굴이 수더분하게 생긴 여자가 말했다. 그는 벽에 걸린 메뉴판을 보며 그럼 설렁탕이라도 달라고 했다. 여자는 주방에다 설렁탕 하나요, 외치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보리차를 그 앞에 놓았다. 그는 보리차를 조금씩 마셨다. 뜨거운 것을 마시니 한결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던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설렁탕이 나왔다. 그는 공기밥을 전부 국에 넣고 말았다. 연거푸 떠먹으니 속에서 열이 나고 몸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천천히 드시오, 그러다 체하겠소.”

여자의 말에 그는 아랑곳않고 계속 입에 떠넣었다. 씹는다기보다는 그냥 입에 퍼 넣고 삼키는 형상이었다. 어느새 국그릇의 바닥이 보였다. 이마의 땀방울 하나가 설렁탕 그릇에 툭, 떨어졌다. 그제야 그는 휴지를 꺼내 이마를 닦았다. 기운이 좀 나는 것 같았다. 죽다가 살아난 느낌이었다. 그는 마지막 남은 국물까지 깨끗이 비운 후에야 입 주위를 물수건으로 닦으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담배가 간절했지만 조금 있다 나가서 피우기로 했다. 우선 커피믹스를 종이컵에 타왔다. 휴식 시간에 부서원들과 담배를 피우며 마시던 커피믹스와 같아 무척이나 반가웠다. 마치 몇 개월만에 마시는 것 같았다. 이제 마음에 안정을 찾았고 처음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작정이었다. 그때였다.

“저런 놈은 단박에 쥑이야 한다카께.”

여자의 쇠된 소리가 들렸다. 순간 그는 가슴이 쿵, 무너지는 것 같았다. 고개를 돌리니 여자가 텔레비전에 눈을 박고 있었다.

“저 보소. 저게 인간인가. 인간이 어째 저런 일을.”

여자는 혀를 쯧쯧, 찼다. 그는 고개를 돌려 텔레비전을 바라보았다. 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냈다. 자신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고개를 숙인 채 있는 모습이 보였다.

화면 밑에는 성폭행범 태연히 출근하다 회사 앞에서 잡히다, 라는 글자가 씌여 있었다.

죽을 죄를 졌습니다.

프래쉬가 터지고 기자들의 여러 질문에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오직 죽을 죄를 졌습니다, 죄송합니다, 란 말만 연거푸 했다.

“시상이 어째 돌아가는지. 저런 놈은 살려주면 안 된다카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쥑이야 된다카이.”

여자는 그 앞에 있는 식탁을 치울 생각은 않고 아예 의자에 앉았다.

전 그럴 사람으로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동료들에게도 잘 대해줬고 여직원들에게도 전혀 집쩍거린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퍼떡 고개를 들었다. 박대리였다. 그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구두로 바닥에 떨어진 물에 원을 빙글빙글 그렸다.

죄송합니다. 저희 직원이 그랬다는 게 믿기지가 않습니다. 어젯밤 늦게 술을 마시고 헤어졌지만 그러리라고는 전혀 몰랐습니다.

이번엔 부장이 나와 카메라 프래쉬를 받으며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 그렇소? 잉?”

“예?”

여자의 말에 그는 깜짝 놀라 고개를 여자 쪽으로 돌리려다 텔레비전을 보는 척했다.

“아, 집이나 직장에서는 그렇게 착하게 했다면서 이 무슨 해괴한 짓을 했단 말이요. 다 쇼야 쇼여, 착하다는 건. 안 그렇소?”

여자 또한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아, 예. 그럼요.”

그는 혹시 여자가 자신을 알아볼까봐 조마조마하며 말했다.

“남자들은 다 똑같다니께. 늑대여 늑대. 속에는 다 늑대가 들어있다카이.”

여자는 그의 말에 아랑곳 않고 말했다. 그는 일어섰다. 우선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게 더 급선무였다.

“여기 얼마입니까?”

그가 여러 번 말했을 때에야 여자는 느릿하게 카운터로 왔다. 팔천 원이요. 여자는 그를 보며 갸웃거렸다. 그는 재빨리 지갑에서 만 원을 꺼내 카운터에 놓고 몸을 돌렸다.

“여기 잔돈…….”

여자의 목소리가 그가 닫은 문에 걸려 허공으로 흩어졌다.

이제 어디로 가나.

그는 고개를 숙인 채 걸으며 중얼거렸다. 우선 집에 가서 푹 쉬고 싶었다. 푹 자고나면 모든 게 제대로 돌아와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발걸음을 멈췄다. 순간 분노가 일었다.

아니다. 그 놈이 누군지 알아야 한다. 도대체 왜 내 행색을 하며 그런 끔찍한 짓을 했는지 그것부터 밝혀야 한다.

그는 갑자기 뒤로 돌아 허겁지겁 경찰서로 향했다. 가서 내가 아니라고. 저 놈은 내가 아니라고 밝혀야 한다. 그는 숨을 헉헉거리며 빠르게 걸었다.

아.

순간 그의 머릿속에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다. 쪼그리고 앉아 물을 끼얹는 여자의 모습.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아직도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니. 그는 수취감에 몸을 떨었다.

그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해질 무렵 여느 때와 같이 동네 아이들과 골목길에서 놀고 있는데 한 아이가 갑자기 길에 접한 건물을 가리켰다. 그 집은 새로 이사온 젊은 부부가 사는데 길에 면한 건물은 대문과 화장실과 수도가 있는 건물이었다. 아이들은 무슨 뜻이냐는 듯 건물과 아이를 번갈아보았다. 그러자 아이는 득의양양하게 아이들 곁으로 왔다.

“시방 저 안으로 여자가 들어갔는데…… 봤대이.”

아이의 목소리 낮춘 은밀한 말에 다른 아이들은 여전히 말뜻을 꿰지 못하고 아이의 표정만 살폈다. 모두들 여자가 화장실에 간 것으로 여겼다.

“시방 목간한다니께, 목간.”

목간이라는 말에 아이들은 숨을 멈추고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면서 일제히 건물로 눈길을 돌렸다.

“내가 직접봤다니께.”

아이는 여전히 목소리를 낮춘 채 말했고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따라와. 아이는 턱짓을 했고 아이들은 떨리는 가슴을 안고 따라갔다. 흙벽돌에 시멘트를 바른 벽에 엄지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었고 아이는 눈짓을 했다. 머뭇거리던 아이들 중에 머리통 하나는 더 큰 아이가 주삣거리다 벽으로 다가가 눈을 가까이 댔다. 아이들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는 집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망설이고 있는데 머리통이 큰 아이가 얼굴이 빨개져서 하, 하, 하며 숨을 크게 내쉬며 눈을 뗐다. 처음 본 아이의 눈짓에 다른 아이가 눈을 가져갔고 여전히 얼굴이 빨개지고 호흡이 가빠져서 눈을 뗐다. 마침내 그의 차례가 왔고 그는 머뭇거렸다. 그러자 처음 본 아이가 인상을 썼다. 공범이 되어야 했다. 그래야 뒤탈이 없으니까. 그는 호기심반 주눅반으로 구멍에 눈을 가까이 댔다. 가슴이 두근거렸고 숨이 가빠왔다. 갑자기 오줌이 마려웠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눈을 뗐다. 처음 본 아이가 다시 한 번 더 구멍에 대고 안을 보더니 다른 곳으로 가라고 눈짓했다. 아이들은 슬금슬금 물러나 각자 저녁 먹으러 갔다. 가면서 한 아이가 중얼거렸다. 여자들도 거기에 터러기가 있네. 겨드랑이에도 있고. 다른 아이들은 못 들은 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그는 심하게 몸살을 앓았고 학교에 가지 않았다. 죄책감이었다. 무언가 큰죄를 지은 것 같았다. 그 상황을 떠올리면 괜히 고추가 간지럽고 오줌이 마려웠다. 엄마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한동안 마을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집에서만 지냈다. 사춘기가 되어서도 여학생들에게 무덤덤했던 게 아마도 그때의 죄책감 떄문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덕분에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이라는 곳에 갔다.

아직도 그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자신에게 또다시 놀랬다. 잊어버렸다고 여겼던 일이었다. 하지만 며칠 전에 일어난 것처럼 생생했고 가슴 역시 두근거렸다.

경찰서에 도착하자 정문에 서 있던 의경이 막아섰다. 그는 움찔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의경의 말에 그는 고개를 숙이고 수사과에 볼일이 있어 왔다고 했다. 그러자 그의 얼굴을 유심히 보던 의경은 오른쪽으로 쭉 가서 왼쪽으로 돌아가라고 하곤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휴, 한숨을 내쉬었다. 머뭇거리다 용기를 내어 내처 건물 안으로 들어가 수사과 팻말이 쓰인 사무실 앞에 섰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아 고개를 숙이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일렬로 있는 형사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조사를 받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사과란 곳에 온 그는 긴장하며 성폭행범이 어디 있는지 살폈다. 잘 눈에 띄지 않아 한 발을 안 쪽으로 집어넣고 살피는데 순간 그는 몸을 움찔했다. 안 쪽, 창문이 있고 그 옆 시계가 달려 있는 벽 쪽에서 그는 수갑을 찬 채 조사를 받고 있었다. 형사는 다그치는 모습이었고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연신 고개만 주욱거렸다.

도대체 어떤 놈인데…….

그는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저기서 고함치는 형사들의 목소리에 그는 움찔거렸다.

“그러니까, 직원들과 술을 마시고 퇴근하다 그랬다고 했는데…….”

형사의 목소리가 겨우 들리는 곳에서 그는 걸음을 멈추고 창문 밖을 보는 척했다.

“술을 많이 마셔서. 죽을 죄를 졌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그는 고개를 연신 주욱거렸다.

“그 아파트 공원에서 3년 전에도 비슷한 성폭행 사건이 있었는데 당신이 그랬죠? 순순히 부는 게 좋습니다. 피해자한테서 나온 디엔에이 받아놓은 게 있어 금방 탄로납니다.”

형사는 다 알고 있다는 듯 물었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때도 회식 끝나고 집에 오다…….”

그는 말을 멈추었고 형사가 컴퓨터를 치다가 멈추곤 추궁했다.

“집에 오다?”

“집에 오다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데…… 여자가 지나가는 걸 보고는 그만…… 아이고 죽을 죄를 졌습니다.”

“그러니까 술을 마시고 밤 늦은 시간에 여자를 보니 갑자기 욕정이 생겨 그랬단 말이지요?”

형사는 컴퓨터 자판기에 손을 가져갔다.

“저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미치겠습니다.”

그는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조사를 받던 그가 그를 쳐다보았다. 아. 분명 자신이었다. 옷도 지금 자신이 입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그는 계속 그를 바라보았다.

“왜요. 아는 사람이요?”

“아닙니다.”

지나가던 수사관이 묻자 그는 황망히 얼버무렸다. 얼른 사무실을 나왔다. 더 이상 그를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복도를 걸어나오는데 문득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목욕하는 여자를 훔쳐본 후 심한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며칠을 앓았는데 그 뒤로 가끔 꿈을 꾸었다. 꿈에 그가 아무도 몰래 그 건물로 가는 것이었다. 가서 목욕하는 여자를 볼 때도 있고 목욕을 하지 않아 못 볼 때도 있었다. 몇 살 때까지 꾸었는지 모르지만 가끔 어른이 된 그는 그게 꿈이었는지 실제였는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수갑 찬 그가 자신의 목덜미라도 잡을까 그는 빠른 걸음으로 경찰서를 나섰다.*



*** 경북 상주 출생, 소설집 『소도(蘇塗)』외 2권, 장편소설『갈대는 바람에 꺾이지 않는다』외 3권, 

장편서사시집 『아리랑 아라리요』 서양화 개인전 3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