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저문 아버지의 등에

어둠이 내리네

닳고 닳은 시간들이 눈처럼 쌓이네

그리워라 그 호통소리

무거운 짐도 거뜬히 들어올리던 어깨는

세찬바람에 메말라갔네

 

양식을 위하여

두려움도 슬픔도 뚫어버리던

당찬 발길

쏟아지는 피로도 밤이면 꿈결에 사그라져

자욱한 새벽을 열어제쳤네

 

가족을 위하여 스스로를

생의 거친 바람에 방패로 삼고

소나기에 우산으로 삼았네

 

한 생을 꿈꾸며

나날을 벼르고 깎아 닦아주신 길

내가 걸어가네

얼얼하게 닮아가네

 

 

 

 

 은사시나무 어머니

 

 

그녀는 은사시나무를 닮았어요

비탈에서 스스로 단련시키고

봄빛에 부풀어오르는 꿈을 쟁이며

날마다 바람에 몸 씻는 나무를 닮았어요

 

지친 새가 쉬어가는 어깨

부서지기 쉬운 구름이 앉았다 가고

방랑자를 팔 벌려 반겨주는

은사시나무

 

외로워도 꿋꿋하게

운명의 시퍼런 칼바람이 위협해도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험난한 파도에도

두 팔 벌리고 담담히 견뎌내며

환하게 야위어가는

나의 어머니

 

어머니는

은사시나무를 닮았어요

 

 

 

 

권순자

1986 《포항문학》에 「사루비아」외 2편으로 작품 활동 시작, 2003 《심상》신인상 수상. 시집으로 『우목횟집』,『검은 늪』,『낭만적인 악수』,『붉은 꽃에 대한 명상』,『순례자』,『천개의 눈물』등이 있고, Mother's Dawn(『검은 늪』의 영역시집)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