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만남

-널문리 주막마을에서

 

 

 

굳게 닫힌 빗장문이, 마악

열리는 순간이다

 

한 발 한 발 내닫는 발자국의 보폭만큼

서로의 마음 속 앙금도 지워져간다

 

65년간 봉인된 금기의 역사, 날선 이데올로기는

피의 이끌림 앞에 속절없이 녹고 있다

 

반도를 가르던 무서운 광풍과 살육의 좌표는

DMZ로 기록되어 오늘을 기다렸다

 

만나야 할 이유와 간절함은

애타는 마음으로 당위처럼 찾아왔다

 

한때는 스스럼없이 남북으로 오가던 나그네들이

한 잔의 술잔으로 여독을 풀던 이곳,

 

서로 명명된 다른 주소들 앞에

‘마침내’는 이제 고유어로 자리잡아야한다

 

맞잡은 두 손의 손금사이로, 아슬하게

버텨온 유전자의 뜨거움이 북받치고 있다

 

초대받지 못한 이 땅의 무수한 영혼들이

둥글게 모여앉아 기억해야 할 이곳,

 

2018427, 이날은 바로

스스로 문을 열어젖히고 담장을 허물어야 할 첫날이다

 

 

* 널문리 주막마을은 ‘판문점’의 옛 이름임.




 

행복을 시도하다

-목욕탕에서

 

 

 

고향에 돌아와 누운 날은

이른 아침이었다

 

인적이 뜸한 돌난간에 모로 누워

망막을 향해 사정없이 달려드는

산이 뒷배경으로 추억되었다

 

자궁 속의 온도와 똑같은 물이

벌거벗은 몸의 원형질을

되살려 놓은 동안, 벌써

강산이 두 번 바뀐 시간들은

거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서린 유리창에 내려앉은 정물들

불혹不惑의 꿈속에서

몇 번의 변형으로 나타났지만,

사라진 골목, 번듯한 양옥집과

넓어진 아스팔트가

꿈보다도 더 낯설게 다가왔지만,

 

학이 춤추는 봉우리가 털어낸

초로草露는 여전히 개울을 이뤄

낡은 바다로 향하고

첫사랑 계집애를 두고 다퉜던

소나무엔 아직 동무의 그림자가 깊다

 

훌쩍 커버린 마음에 박힌 옹이를

다시 찾을 단내 나는 여유는, 이미

주차장에 정박한 자가용이 대신하고 있다

 

다음에 고향을 또 슬쩍 만지작할 날도

이른 아침일 것이다

 

김요아킴

1969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경북대 사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2003년 계간《시의나라》와 2010년 계간《문학청춘》제1회 신인상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가야산 호랑이』『어느 시낭송』『왼손잡이 투수』『행복한 목욕탕』『그녀의 시모노세끼항』과 산문집『야구, 21개의 생을 말하다』가 있다. 한국작가회의와 부산작가회의 회원이며, 현재 부산 경원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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