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 볼

 

 

안민

 

 

국경도시

위로 궤도를 이탈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 몸은 욕망과

순수만이 혼재되었을 뿐이었다. 구원

없이 작곡된 레퀴엠처럼. 내상을 입고

피 흘리는 눈동자 곁, 흰 꽃들이 수북하

게 피어 있었다. 계절을 지운 식물의 비밀

에 관해 염려하지 않았다. 이국의 음률로

채색된 불빛들, 좌표를 잃은 것도 그곳에

흘러든 것도 포즈에 불과했다. 허공의

, 밀폐 내부의 또 다른 밀폐. 기억

하고 있었지만, 기억을 잃어버린

처음이 적주赤酒 속에 담겨

일렁거렸다

 

 

한 번도 의지로 겨울을 설계한 적 없어요.

 

월경한 이들에 의해 엎질러진 풍경, 다친 꽃은 여전히 줄기 속을 흐르며

욕망했지만 태엽은 통증을 감고 있었고 눈보라는 그치지 않았고

 

 

음악이 다 풀리면 태엽이 멈춰야 했지만 그녀는 금세 녹아버릴 눈꽃 모양 위태했다. 흐린 날 눈빛처럼 아득하던 적주赤酒. 유리에 부딪히는 눈을 바라보다 고독도 모아 태우면 저렇게 흩날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갈빗대 사이에 박힌 고드름. 음률이 와류를 일으켰지만 침묵은 계속되었고 투시되지 못한 불빛만이 국경을 건너고 있었다. 엎질러진 사연은 증발하지 않는다는 지문이 심장 근처를 스쳐갔는데… 새벽녘, 나는 유체처럼 외부였다. 문득 돌아본 저편, 힘없이 흔들리는 손이 보였다. 인적 하나 없는 희뿌연 원형 속에서

 

 

 

 

알레그로55b

 

 

 

다 단조 91. 01. 어느 구간

눈 펑펑 내리는 흐린 허공에 짓눌려 나는 죽었

 

다 단조 02. 00. 어느 구간

차가운 스모그 알갱이에 뒤엉켜 나는 또 죽었

 

다 단조 16. 05. 어느 구간

아무도 없는 새벽 공터, 음률의 삼각 날을 맞고 흰 피를 뿌리며 나는 다시 죽어야만 했고

독하게 끊었던 담배를 독하게 다시 피웠

다 아- 쿵쿵쿵 함몰하는구나 나는, 그랬

 

다 난 세 번이나 죽었으므로 유령이

다 아- 이히히히

 

당신은 유령이 웃는 걸 본 적 있는가? 웃음을 생선회 썰듯 썰면 지난 시간이 보일 거다 이히히히 그래에, 펄럭대는구나 하양이다 검정이다 음통이

다 아- 내 웃음은 고음처럼 히득거리고 히히 헉헉 히히 헉헉거리

다 아- 나는 퇴고도 되지 못한

채 모든 음표를 죄다 잃었다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사막 바깥은 오로지

자신의 내면이듯

기억과 또 어떤 기억과 회상하기 싫은 기억과 온몸으로 떨쳐내려는 기억의 바깥이 나의

내부이다

나는 밀려오는 기억을 태우고 또 태워버리지만 나는 이히히히 유령이기에 기억에 매몰되어 기억에 감금되어 기억을 횡단해야

하고

모든 통각이 우수수 피는 곳에 던져져야

하고

 

발바닥

더 이상 그림자를 키우지 않아야 한다

이히히히

흐느적거리는 내 몸은 그림자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생도 뭐도 더는 나에게 어떤 수작도 부리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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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 본명 안병호

. 경남 김해 출생

. 2010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

. 부산 작가회의 회원

 

. e-메일: dominiko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