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나무 울타리 속의 사랑 



1.

“간다.”

언니의 책가방이 탱자나무 울타리 위를 휙 날아와 내 앞에 떨어졌다. 길바닥에 패대기쳐진 책가방을 챙겨 뒤를 돌아보자 하늘에서 휙 날아와 내 뒤에 사뿐히 서는 사람은 호랑나비였다. 두 갈래 땋은 머리는 어깨에 찰랑거렸고, 칼라에 청색 띠를 두른 세라복 윗도리에 180도 퍼진 청색 교복 치마를 입은 언니는 장골 키 두 배는 되는 탱자나무 울타리를 장대 하나만 있으면 가볍게 휙휙 뛰어 넘었다.

교복 밑에 하얀 체육복 바지를 입은 언니는 땅에 발을 딛자마자 체육복 바지를 벗어 책가방 안에 쑤셔 넣으며 소리 쳤다.

“이 굼벵아, 빨리 뛰라니까 뭐해?”

언니는 내 손을 낚아채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탱자울타리를 뒤돌아봤다. 한껏 구부러졌던 장대가 탱자울타리를 치며 튕겨나가 마당에 떨어졌다. 우당탕 떨어지는 소리가 경쾌하고 맑았다.

대문을 열고 나온 아버지는 커다란 몽둥이를 손에 들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참새들이 일제히 조잘대기 시작하자 탱자 가시 사이에 핀 상아빛 탱자 꽃이 저희들끼리 낄낄거리며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2.

우리 집은 사방이 탱자나무 울타리로 둘러쳐져 있었다. 삼천 평이 넘는 산비탈은 벚나무, 소나무, 목련나무, 은행나무, 사철나무, 장미, 소철 등 크고 작은, 흔하고, 귀한 관상수가 빼곡하게 심어져 있었다. 그 넓은 나무숲을 가꾸는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늘 일군들과 밭 매고, 거름 내는 일로 하루를 열고, 하루를 닫았다. 아버지는 뭘 하는 사람이었을까? 까짓 말단 공무원이었다. 공무원은 번드레한 겉치레고, 정작 하는 일은 새 여자 바꾸어가며 새 살림 차리기였다.

지금도 언니와 동갑나기 딸이 있는 과수댁과 눈이 맞아 한 살림 차렸다는 소문이다. 아버지는 여자가 생기면 아예 집에 발걸음도 하지 않다가 돈이 궁하면 집으로 기어들었다. 나무를 판다거나, 땅 문서 한 장 손에 쥘 때까지 우리 집 가장 노릇을 했다.

어제 저녁에 집에 온 아버지는 밤새도록 어머니를 달달 볶았다. 그 삼천 평 중에 백 평이라도 팔자는 소리였다. 어머니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대답하지 않았다. 그 삼천 평은 아버지 혼자 맘대로 처리할 수 있는 땅이 아니었다. 외할아버지께서 당신의 고명딸에게 넘겨 준 재산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S시에서 집을 몇 채나 가졌던 재산가의 아들이었고, 어머니 역시 C시에서 내 노라 하는 재산가의 딸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정략결혼을 했다.

어머니의 꿈은 피아니스트였다. 어머니는 그 꿈을 접고 스무 살 꽃띠에 시집을 왔다. 어머니는 시집오면서 자신의 손때가 묻은 피아노를 싣고 왔다. 아버지의 눈 밖에 난 것은 어쩌면 그 피아노 때문은 아니었을까. 지금도 ‘솔베이지의 노래’를 멋들어지게 부르며 피아노를 치는 어머니를 보면 슬픔이 울컥 치밀곤 한다. 어머니는 나이 오십이 넘어도 여전히 꿈을 꾸었다. 책과 피아노 밖에 몰랐던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열등의식을 느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버지는 책보다 노는 쪽으로 발달했으니 얌전하게 책 속에 빠져 있거나 피아노를 치고 있는 아내가 부담스러웠을지 모른다.

어려서 아버지가 없는 날은 어머니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우리는 곧잘 노래를 부르며 행복했다. 우리 집 딸들은 다들 피아노를 잘 친다. 어머니의 개인지도 덕이다.

어쨌든, 고생이라곤 모르던 어머니가 시집 와서 고생길로 접어든 것은 아버지의 바람기였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아내에게 마음을 붙이지 못했던가 보다. 더구나 장남이었던 아버지는 대를 이을 고추를 원했지만 우리는 줄줄이 조개만 달고 태어났다. 그것도 연년 생으로 5공주가 된 것이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 했듯이 아버지의 바람기는 대를 이을 아들을 얻자는데 있었다. 여자가 바뀔 때마다 재산은 줄어들었고, 살림에 대해선 아예 관심도 두지 않는 아버지 덕에 다섯 채가 넘던 기와집은 막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남의 것이 되어버렸고, 전세방으로 나 앉게 된 딸의 처지를 불쌍히 여긴 외할아버지는 S시 외각에 있는 다랑이 삼천 평을 사서 아담한 가정집과 창고 한 채, 다랑이마다 관상수를 심어 우리 가족을 옮겨 살게 해 주셨다.

덕분에 어머니의 뽀얗고 길던 손가락은 대나무 뿌리처럼 굵고 튼실한 농부의 손이 되었다.

그 손으로 피아노를 치며 속울음을 삼키던 어머니를 본 적이 많다.

그러나 아버지의 바람기는 갈수록 도가 지나쳤고, 우리가 어릴 때는 어머니께 손찌검도 예사로 했다. 아버지는 봉급을 받아도 생활비를 내 놓을 줄 몰랐다. 오입질하기에도 모자랐으니 어머니는 딸 다섯 먹이고 입히기 위해 외갓집에 의탁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돈을 몰랐다. 어려서부터 쓸 줄만 알았지 벌 줄은 모르고 자랐으니 그 씀씀이가 헤플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아버지는 학교 다닐 때도 공부보다 연애질 하는 것으로 농땡이 상을 받고도 남음이 있었다. 할머니는 아버지대신 학교에 기부금을 왕창왕창 냈다고 했다. 아버지는 돈으로 졸업장을 받은 셈이다. S시의 농림보통 전문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대에 갔다 온 아버지는 잠시 동안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했다. 집에 돈만 축내고 빈둥거리자니 돈도 궁했고, 연애 사업도 어려웠다. 아버지는 괜찮은 직장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공무원이 제일 나은 직업 같았다. 검사, 판사, 등 사자 붙은 직업이 최고였지만 공무원이란 직업도 여자들에겐 인기 만점이었다. 아버지는 머리 나쁜 부잣집 아들이란 딱지를 뗄 욕심으로 공무원 시험에 매달렸다. 운이 좋았던지 5급, 지금 9급에 해당하는 말단 공무원 시험에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그 시절 공무원이라면 대학 감투가 부럽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우리 아들이 과거에 급제 했다’고 돼지를 몇 마리나 잡아 동네잔치를 걸판지게 벌릴 정도였다.

그러나 문제는 마음에도 없는 장가를 들면서였다. ‘내 인생의 목표는 멋진 연애를 하면서 인생을 만끽하는 거다.’ 하면서 총각시절을 보낼 작정으로 꿈에 부풀었던 스물 네 살의 아버지, 공무원 발령을 받자마자 할아버지는 사주단자를 신부 집에 보냈다.

“오래 전부터 니한테는 정혼자가 있었다. 인자 평생 묵고 살 직장도 잡았으니 내가 안심하고 니 혼인을 서두르기로 했다. 그라고, 아무래도 내가 올해를 못 넘길상 싶다. 니 장개 드는 것 보고 죽을란다. 만약 니가 장개를 못 들겠다모 내가 가진 재산을 전부 사회에 기부하겠다.”

결국 아버지는 결혼을 했다.

할아버지는 거짓말처럼 이듬해 돌아가시고 그 많은 재산이 고스란히 아버지 몫이 되었다. 아버지는 간덩이가 부어 버렸다. 집에 마누라가 있거나 말거나 신나게 총각 행세를 하면서 밖으로 나돌았다.

아버지의 그 헤픈 씀씀이에 할머니는 집 한 채가 남의 손에 넘어갈 때마다 속을 태우더니

“니가 아들을 못 낳아 준께 저 것이 밖으로만 도는 기라.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거늘. 쯧쯧 그래 가지고 남정네 건사 하긴 진작에 걸렀다. 나도 인자 아들 없는 셈 치고 살란다. 연락도 하지 말고, 찾지도 말거라. 내 몫 챙겨 갖고 절에 의탁해 살든가 할란다. 이런 저런 꼬라지 인자 안 보고 살고 싶다. 너거는 너거 알아서 살거라.”

하시면서 할머니는 자기 몫의 재산을 챙겨 떠나버렸다. 소문에는 영감 얻어 갔다지만 꼭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일 년에 한두 번 명절 때면 집에 들리곤 하는데 늘 염주를 주렁주렁 걸고, 회색 법복 차림이니 아무래도 절에 의탁하여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집을 떠나자 완전 자유방임이 되었다. 간섭할 사람이 아무도 없자 아예 두 살림 하는 것을 숨기지도 않았다. 젊은 여자랑 살림을 차리고 살다가 여자가 떨어지거나 돈이 떨어지거나, 아버지 자신이 여자가 싫어질 때면 잠시 집으로 들어왔다. 그러다가 다시 새로운 여자 꿰 차고 나갔다. 어머니는 그 때마다 딸 하나를 더 안아야 했다. 어쩌자고 한숨만 쉬면서 그런 아버지를 말릴 생각도 않는지 기가 막힐 따름이다.

내가 아는 아버지의 여자만 해도 열 손가락이 다 찰 지경인데도 이상한 것은 그렇게 여러 여자를 거느려도 아들을 얻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어떤 여자든 아들만 낳았다 하면 어머니와 당장 이혼하고 새 장가 들겠다고 호언하는 아버지건만 어찌된 셈인지 아들을 낳았다고 찾아오는 여자는 없었다.

딸 때문에 울화병을 앓던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 어머니 앞으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집과 삼천 평 밭을 절대로 아버지가 손을 댈 수 없도록 했다. 외삼촌의 동의가 있기 전엔 팔 수 없는 물건으로 묶어 둔 것이었다. 그러니 아버지도 어쩔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애가 탔다. 그 삼천 평은 돈 덩어리였다. S도시가 커 가면서 도시 인근에 있는 산비탈은 전원주택지로 인기가 높아졌다. 우리 집 인근이 알짜배기 주택지로 부각되자 부동산업자들이 눈독을 들였다. 우리 집은 전원주택이나 전망 좋은 아파트를 지을 장소로는 적격이었다. 앞이 확 터인 전망뿐이 아니다. 멀리 도도하게 흐르는 푸른 강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하룻밤 자고나면 땅값이 눈뭉치처럼 불어났다.

아버지는 돈이 필요했다. 나이 오십 줄에 앉자 돈이 없으면 여자도 오래 붙어 있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젊은 여자든, 늙은 여자든, 돈, 돈, 돈이면 만사형통이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어머니를 구워삶아 그 노른자위 땅을 팔아 자기 잇속을 챙겨야 했다.

그러나 수십 년을 당해 온 어머니도 만만찮았다. 젊어서야 어떻게든 아버지 마음을 돌려보려고 시키는 대로 꼬박꼬박 했지만 ‘저 화상 저 병은 다리에 힘이 빠져야 없어질 병이니 고칠 재간이 없는 기라.’ 하시면서 체념한 후로는 아버지가 어떤 사탕발림을 해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땅이 아니잖소. 구야한테 물어보소.’ 하면서 슬쩍 외삼촌 핑계를 댈 뿐이다. 아버지가 아무리 화를 내도 나사가 풀린 여자처럼, 그저 사람 좋은 얼굴로 웃기만 할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고, 화도 내지 않았다.

그래도 아버지가 온 날은 어머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어머니는 우리들을 아래채 창고 방으로 내몰았다. 위채는 어머니와 아버지 차지가 되었다. 우리 역시 눈이 빛났다. 공부벌레인 막내만 빼고는 대환영이었다. 우리는 화투짝을 돌렸다. 막내는 언니들 틈에서 숙제도 못한다면서 부엌방에 떨어졌다가도 슬그머니 우리 사이에 끼어들곤 했다.

일단 우리끼리 모이면 신바람이 났다. 더 좋은 것은 옆방에서 밤새도록 끙끙대는 어머니의 신음 소리를 듣지 않는 것이었다.

아래채 창고는 일꾼들을 위해 만든 방이었다. 방 하나에 농기계를 넣어 두는 창고가 딸린 집으로 밭 가운데 있었다. 일꾼들이 옷을 갈아입고, 간단하게 몸을 씻을 수 있는 방으로 만든 것이었지만 우리들의 놀이방이기도 했다.

“엄마가 몇 번째 까무러치디?”

둘째 언니는 짓궂게 물었다.

중학생인 막내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눈을 흘겼다.

“괜찮아, 너도 그 정도는 알만한 나이잖아. 그런데. 너희들 신기하지 않니? 저치가 젊은 년한테 진을 다 빼서 힘도 없을 텐데. 녹용이라도 마시고 왔나? 그런데 말이야. 신기한 건 우리 엄마야, 이젠 늙은 여우라니까. 전에는 저치 자고 가면 통장 째 내 줬잖아. 그런데. 며칠을 구슬려도 안 넘어가니 저치의 속이 탈 수밖에.”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패나 돌려 엉가.”

불쌍한 아버지, 언니와 동생들이 냉대하는 아버지지만 나는 그 아버지를 볼 때마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젊어서 고생 모르고 살던 사람이 어쩌다 저 지경이 됐는지. 아내와 딸들에게 대우 받지 못하고 자신의 집보다 떠내기처럼 이 여자, 저 여자 집으로 전전하다가 돈이 궁해지면 어쩔 수 없이 돌아와 헛기침 하면서 눈치 보는 아버지.

아버지도 속이 탈 것이다. 아버지의 여자는 자꾸만 돈 가져오라 조를 테지, 직장에선 명퇴를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은근히 압력을 가하지. 퇴직금은 이미 대출 받아 바닥이 났지. 나 외에는 딸들이 아버지 취급도 하지 않는 집으로 돌아오기는 죽기보다 싫을 것이고, 어쨌든 늙은 아내보다 탱탱한 삼십 대 과부의 살맛이 더 좋을 테니.

그렇지만 돈줄을 쥐고 있는 사람은 본처라 아버지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아니 어떻게든 아내를 구워삶아 돈을 챙겨 가야 첩이 알랑방귀를 뀌며 콧소리를 낼 수 있고 밥상이 달라진다. 그러니 인두겁을 쓴 인간이라 해도 어쩌겠는가. 본처에게 돌아와 아내를 구워삶으려고 안간힘을 쓸 수밖에.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면 일단 엄마를 잠자리에서 잡았다. 그래도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폭력으로 나갔다. 폭력도 당사자가 피해버리면 딸들에게 풀었다. 이제 딸들조차 그가 오면 상대를 하지 않았다. 피해버렸다. 아버지는 어머니께 딸 자식들 교육을 잘못 시켰다고 난동을 부리지만 어머니는 묵묵부답이었다. 딸들이 머리가 굵어지면서 그 집에 아버지 자리는 없었다.

특히 아버지 성질을 그대로 물러 받은 언니가 둘째였다. 언니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았다. 절대로. 처치였다. 당신이었다. 왜 우리 집에 오느냐고 당신 집 아니니 발걸음 하면 도둑으로 신고 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것도 둘째 언니였다. 언니는 어려서부터 태권도를 배웠다. 여고생일 때 사범 자격증을 땄다. 이미 태권도로 단련된 주먹이니 아버지께 호락호락 당하지도 않았다. 단지 어머니 때문에 참았다. 아버지는 둘째 언니를 겁내면서 어머니께 하던 폭력을 멈추었다.

“당신 한 번만 더 우리 엄마에게 손찌검 했다가는 병신 될 줄 알아.”

그랬다. 둘째 언니가 중학교 3학 년 때였지 싶다. 그날도 아버지는 오랜만에 찾아와 어머니께 저금통장 내 주지 않는다고 손찌검을 했다. 언니의 2단 발차기가 바로 들어가 아버지의 턱을 강타했던 것이다. 그 후로 언니가 있는 앞에서는 절대로 어머니께 손찌검을 하지 못했다. 대신 어머니께 폭언을 하는 것이었다. 말끝마다 ‘애비도 모르는 딸년들’이라며 아비를 아비로 대우해 주지 않는 것은 어머니 탓이라고 했다. 또한 둘 째 언니에게 태권도 가르쳤다고 야단치는 것이었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부터 난다더니 그 짝이라며 도장에 못 나가게 하라고 야단쳤지만 그럴수록 언니의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은 더 강하고 집요했다. 아버지가 오신 날은 보란 듯이 태권 도복을 입고 마당가에서 으랏차차! 하면서 운동을 했다. 그런 언니를 보며 아버지는 ‘에미가 지 남편을 우습게 보니 가시나들도 저 모양이이라’고 어머니를 몰아세웠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오신 날은 도복 입고 마당에서 운동을 못하게 했지만 소용없었다. 보란 듯이 장대를 짚고 어른 키 보다 높은 탱자나무 울타리를 멋지게 뛰어넘었다.

이번에도 아버지는 밤새도록 어머니를 녹이려고 애썼지만 어머니는 넘어가지 않았다. 아침이 밝았다. 자기 뜻이 관철되지 않자 아버지는 어머니를 방에서 못 나가게 붙잡고 앉아 딸들을 걸고 넘어졌다. 딸들이 아비를 본척만척 하니 집에 들어오려다가 도로 나간다는 것이었다. 당신이 밖으로 도는 것은 모두 어머니와 딸들 때문이라 했다. 특히 둘째 언니 때문이라 했다. 아버지를 팬 불효막심한 년이라는 것이다. 부엌방에서 아침을 먹던 둘째언니가 그 소리를 들었다. 언니는 당장 안방 문을 열어 젖혔다.

“아저씨, 인자 고마 당신 집에나 가이소. 출근 해야지 예. 그래야 그 여자가 밥이라도 줄 거 아닙니까?”

“아니 저것이. 또?”

아버지는 언니에게 옆에 있던 담배 재떨이를 날렸다. 날렵하게 피한 언니는 피식 웃으며

“눈에 멍 자국 또 만들어서 출근 하실라고 예?”

“저 저것이 말하는 본새 보소. 이기 다 니 년 탓이다.”

아버지는 옆에 있는 어머니께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쳤다.

“이봐요. 아저씨, 존 말 할 때 가시죠. 내 봉이 우는데.”

언니는 잽싸게 축담 옆에 챙겨 두었던 대나무 봉을 들고 왔다. 여차하면 한 대 갈기겠다는 뜻으로 대나무 봉을 만지작거리며 아버지의 거동을 살폈다.

“이녀러 가시나가 애비한테 몽디를 디밀어? 내가 참자 참자했지만 갈수록 가관이네. 오데 애비한테 말끝마다 아저씨라니. 내가 너거 학교 교장 선생님 찾아가서 애비에미도 모르는 천하에 망나니 겉은 년이니께 퇴학시키라고 할 끼다.”

“누구 맘대로? 지 얼굴에 똥 묻히는 짓도 인자 서슴지 않겠다 이 말이지?”

“나도 동장 찾아가서 김 아무개가 이런 사람인데 모가지 안 자르냐고 하냐고. 학교 가서 그 년 머리끄덩이에 불을 확 싸질러버리던가 중대가리 만들어 놓고 너거 집에 있는 그 아저씨 때문이다. 함서 반쯤 죽도록 패 놓던가. 도장 머스마들 불러서 걸레 맹글어 놓던가 하모 우짤 긴교?”

빙글빙글 웃으면서 아버지의 속을 뒤집는 것에 선수인 언니는 그래도 장골인 아버지께 잡혔다 하면 힘을 못 쓴다는 것을 아니까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복장거리를 시켰다. “가시나를 조따우로 갈카 놓고. 당신은 집에서 뭐 하는 사람이야? 학교 당장 때려치우고 시집이나 보내. 옛날 같으면 시집가서 아 에미가 되고도 남을 년을.”

아버지의 화살은 다시 어머니에게 쏟아졌다.

“아저씨, 우리 옴마한테 또 손댔다가는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자 가시죠. 미칭개이 아저씨.” “뭐라꼬? 저것이 죽을라꼬 환장을 했나. 뭐? 지 애비보고 미칭게이? 이 년아, 가서 문 짱가라. 저 가시나 버릇을 좀 고쳐 봐야 것다.”

아버지는 옆에 앉은 어머니를 향해 손을 올렸다. 뺨이라도 한 대 올려 부칠 참이었지만

“우리 옴마한테 손찌검만 해 봐라. 무슨 꼴 나는지.” 언니의 차가운 한 마디에 아버지는 얼이 빠진 얼굴로 들어 올렸던 손을 내렸다.

“옴마, 내 학교 갔다가 그년 집에 들어가 난리굿판을 맹글어 놓고 올게 예. 학교 가다가 경찰서에 들려 가정 폭력범으로 이 아저씨 고발하고 갈낑께네 혹 주먹질 하모 맞고 있을소. 감옥에다 확 차 넣어삐낑께네.”

언니가 눈짓을 했다. 나는 슬그머니 가방을 챙겼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오늘 내가 저 년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쳐놔야겠다.”

아버지도 단단히 화가 나셨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면서 소매를 걷어 올리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

“당신도 퍼뜩 출근하소. 숙아, 니도 아부지한테 그라모 못 쓴다. 잘못 했다고 빌고 너거들 퍼뜩 가거라. 머 하노? 학교 늦을라.”

애가 탄 어머니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나는 슬그머니 내 가방만 챙겨 현관문을 열고나오며 이런 저런 꼴 안 보고 혼자 지낼 수 있는 큰 언니가 한없이 부러웠다. 큰 언니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 외삼촌이 경영하는 공장의 경리로 취직하여 C시로 떠나고 없었다.

동생들은 눈치껏 아침을 챙겨 먹고 이미 학교에 가고 없었다.

나는 대문 앞에서 언니가 나오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집안에서 언니의 악 쓰는 소리가 들리고, 아버지의 고함소리가 탱자울타리를 넘었다. 오금이 저렸다. 나는 원래 겁이 많았다. 둘째 언니처럼 당당하고 싶지만 모두 나를 보면 바람 불면 날아갈까 겁난다는 이야기를 했다. 여고 2학년이면서 덩치는 초등학생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나에 비해 둘째 언니는 큰 편이었다.

여고 3학년인 언니는 몸매도 잘 빠진데다 얼굴도 이국적으로 생겼다. 곱상한 어머니와 선이 굵은 아버지의 잘 생긴 부분만 닮은 것 같았다. 성격도 똑 부러지고, 활달해서 언니를 보면 잘 익은 알밤 같았다. 언니는 초등학교 때부터 태권도로 단련된 몸이라 날렵했고, 2단 발차기는 태권도 도장의 남학생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아이고오!”

집안에서 갑자기 아버지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언니가 또 일 저질렀구나 싶어 뒷걸음치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의 고함소리가 울타리를 넘어오고, 언니의 말대꾸도 골을 울렸다.

“저것이 또 애비를 쳐? 이년 잡히기만 해 봐라. 다리 몽뎅이를 분질러 놓을 끼다.”

“옴마, 학교 댕겨 오겠습니다. 저 아저씨한테 맞았는지 난중에 확인할 끼다. 우리 옴마 한대라도 팼다간 당신, 감옥 갈 줄 알아라. 다시는 우리 집에 얼씬도 하지 말란 말이야.”

우탕탕!

언니의 뜀박질 소리가 들리더니 탱자나무 울타리 안에서 언니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간다.”

언니의 책가방이 탱자나무 울타리 위를 휙 날아와 내 앞에 떨어졌다. 길바닥에 패대기쳐진 책가방을 챙겨 뒤를 돌아보자 하늘에서 휙 날아와 내 뒤에 사뿐히 서는 사람은 호랑나비였다. 두 갈래 땋은 머리는 어깨에 찰랑거렸고, 칼라에 청색 띠를 두른 세라복 윗도리에 180도 퍼진 청색 교복 치마를 입은 언니는 장골 키 두 배는 되는 탱자나무 울타리를 장대 하나만 있으면 가볍게 휙휙 뛰어 넘었다.

교복 밑에 하얀 체육복 바지를 입은 언니는 땅에 발을 딛자마자 체육복 바지를 벗어 책가방 안에 쑤셔 넣으며 소리 쳤다.

“이 굼벵아, 빨리 뛰라니까 뭐해?”

언니는 내 손을 낚아채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탱자울타리를 뒤돌아봤다. 한껏 구부러졌던 장대가 탱자울타리를 치며 튕겨나가 마당에 우탕탕 떨어지는 소리 경쾌하고 맑았다.

대문을 열고 나온 아버지는 커다란 몽둥이를 손에 잡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참새들이 일제히 조잘대기 시작하자 탱자 가시 사이에 핀 상아빛 탱자 꽃이 저희들끼리 낄낄거리며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3.

한참을 달리다가 골목으로 꺾여 내려가는 아랫녘에 서서 우리 집을 돌아봤다.

아버지는 아직도 넋이 나간 표정으로 대문간에 서 계셨다.

“바보야, 또 넋 빠졌어? 들고 뛰어. 지각이란 말이야. 저 영감탱이 약발 받았다니까.”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딸에게 혼이 난 아버지가 풀 죽은 모습으로 대문간에 서 있었다.

“엉가, 제발 아부지한테 너무 그라지 마라.”

“내가 좀 심하긴 했지? 안 그래야지 하다가도 옴마한테 와서 하는 걸 보면 속이 확 뒤집힌다니까.”

“엉가가 하는 걸 보모 아부지랑 똑 같애. 닮았단 말이야.” “나도 알아. 그러니 더 속상해. 곱게 좀 늙어주면 어디가 덧나나? 이젠 정신 좀 차리고 집으로 들어오면 좀 좋아. 또 돈 뜯어 나갈 궁리하니 더 밉지.”

“아부지 소리도 안하면서, 집에 들어 오모 받아줄 끼가?”

“당근이지. 하는 거 봐서 아부지, 아부지 함서 애교도 살살 부려 볼 텐데. 우리도 좀 아부지 사랑 받으며 살 날 있었으면 좋겠다. 니도 그렇제?”

“아부지 보고 엉가가 그렇게 말해 보라모. 이번에 보이께 아부지도 많이 늙었더라. 남자들은 늙으모 집에 들어오고 싶어진다매. 엉가가 좀 살갑게 굴어봐라. 맘 고쳐 묵을지 모르잖아.”

“몰라. 그나저나 굼벵이 니 땜에 또 지각이다.”

우리는 서로 손을 꼭 잡고 산비탈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멀리 푸른 강에서 물안개가 살살 피어올랐다. 오늘 하루가 참 따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