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책에 관한 단상

 

  젊어서는 다른 일을 하다가 나이 들어 뒤늦게 서점을 하게 된 친구가 있다. 워낙 책을 좋아하니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내가 교직에 있었으니 관련이 있긴 했지만 퇴직 후에 둘 사이가 더 가까워진 데는 까닭이 있다.

  책을 사더라도 현직에 있을 때는 그 친구 서점을 이용하지 않고 오히려 인터넷 서점에 거래를 했었다. 그런데 퇴직 후에는 인터넷 서점에 자주 들어가지 않으니 비밀번호를 잊어서 로그인도 안 되고 해서 이 친구에게 주문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친구도 나와 같이 전후의 베이비붐 세대이니 당연히 종이 책에 대한 향수가 있다. 다만 서점을 시작하기 전에 복사기 회사에 근무했던 경력이 있어서 나보다 전자책이나 디지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도 굳이 사연을 찾는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어쩌면 종이 책을 다루는 서점이 사양길을 걷게 되어 이 친구가 한가한 시간이 많은 것을 내가 아니까, 퇴직 후에 자주 들르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4학년 때라고 기억하고 있다. 두 살 아래 동생과 방에서 씨름을 하다가 내 다리 뼈에 금이 갔던 모양이다. 동네 병원에 가서 기브스를 했다. 1960년대 중반이었던 그 때는 의술과 의료장비가 요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해서 치료기간이 오래 걸렸다. 두 달 동안 학교에 못 가고 집에 혼자 누워 있는 동안에 심심해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처음에는 동네 집집마다 책을 빌려오다가 학교 도서관, 만화 가게, 나중에는 아버지께서 헌책방에 다니면서 위인전기집이나 더 어려운 책도 사다 주신 것 같다. 물론 요즘처럼 제대로 독서지도를 받았다면 독후감도 쓰고 했을 터인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머리 속에 남아있는 것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 개월 후에 기적이 일어났다. 어머니 등에 업혀가거나 아버지 자전거에 실려서 학교에 다시 갔을 때 경상북도 전체에서 같은 학년끼리 경쟁하는 일제고사가 있었다. 평균 점수 89점으로 전교 2등을 한 것이다. 한 학급에 60명 이상이니 남학생 다섯 반, 여힉생 다섯 반, 10 학급이면 600명이 넘는데 말이다. 사실 내가 다치기 전에는 성적이 우리 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에 불과했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 때 담임 선생님께서 우리 집에 오셔서 아버지께 “아이가 전교 2등을 했으니 막걸리 한 말 내셔야죠?” 오래 전에 돌아가시고 지금은 계시지 않지만 그 때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은 “내 아이 평소 성적을 내가 아는데 이건 소가 뒤로 걷다가 뒷발에 쥐 잡은 격이니 막걸리 못 내겠소.” 다시 담임 선생님께서 “아니, 컨닝한 것도 아닌데 윷으로 가나 모로 가나 서울만 가면 안 되능교?” 하셔서 아버지께서는 결국 막걸리 한 말 내고 한 턱 쏘신 걸로 기억된다.

 

  나도 한때는 서점을 경영하고 싶었다. ‘서점을 하면 책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겠지?’ 물론 어림없는 소리라는 걸 이젠 알았다. 지금 서점을 하고 있는 친구가 책을 읽는 시간이 늘어난 걸 보면 장사가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시간이 있을 때 자주 들르는 편인데 손님이 없다면서 주 5일제 근무하고 토요일은 문을 닫을까 생각 중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적어도 당분간은 멀리 가버린 사건이 생겼다.

  내가 서점을 방문한 그 날도 토요일이었다. 아직 시간이 이른데 문상을 가기 위해 일찍 문 닫을 준비를 하다가 건물 벽 틈으로 물이 새는 것을 보았다. 3년 전에도 주말에 2층에서 수도가 얼어 터져 월요일 출근해보니 서점 전체가 물바다가 된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옆집 수도 계량기가 얼어 터졌다고 한다. 이걸 못보고 그냥 갔더라면 그 날의 악몽이 재현될 상황이다. 상수도 사업국에 신고를 하니 올 겨울 극심한 한파로 이런 신고가 밀려 내일이라야 보수공사를 하러 올 수 있다고 했다. 사정을 자세히 말했더니 바로 출동해서 새지만 않도록 임시조처를 취해주고 갔단다.

 

  내일은 일요일이지만 보수공사를 제대로 하는지 확인하러 와야 한다. 신경이 쓰여 마음 놓고 쉬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 잠인들 제대로 잘 수 있겠는가? 책읽기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책을 팔아야 생활을 할 수 있는 서점을 경영한다면 이렇게 편히 책을 읽기는 어려운 법이다.

 

  책읽기를 좋아한 것도 상당한 이유가 되겠지만 평생을 국어교사로 근무하고 퇴직을 하니 집에 쌓인 책이 엄청나다. 물론 욕심 때문에 사 두었더라도 읽지 못하고 꽂아둔 채 먼지만 앉은 책이 수두룩하다. 게다가 스스로는 제대로 글도 쓰지 않으면서 가입한 문인 단체에서 낸 기관지나 동인지, 그리고 소속된 시인과 작가들이 보내준 책들이 다 읽지도 못한 채 쌓여있다.

  더욱이 오랫동안 이사를 다니지 않아서 포화상태인 책들을 이제는 어느 정도 처분해야 새로운 공간이 생긴다. 자주 쓰지 않는 물건은 버려야 한다. 필요할 때 새로 사는 한이 있더라도 버려야 한다. 책은 더욱 그렇다. 읽고 싶지만 책이 없는 사람에게 주거나 도서관에 기증하면 간단한 일이지만 혹여 급히 찾아볼 일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 때문에 책을 쉽게 버리지도 못한다.

  사실은 그것도 인터넷 검색하면 간단히 해결된다고 우리말 큰 사전이나 원색대백과사전 종류는 이미 다 버렸다. 책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내게 딸이 권한 책은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이었다. 이 책을 사서 읽은 후에 내가 내린 결론은 버리지 않는 한 정리하기 어렵다. 그런데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겨야 하는가의 문제가 정말 어렵다. 책을 버리기 위해 다시 책을 한 권 사서 우리 집 책은 또 한 권이 늘어난 것이다. 이런 현실에 놓인 내게 딸은 이렇게 말했다.

  “책을 손에 들고 가슴에 울림이 오지 않는 책이나 한 달 이내에 꼭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책은 다 버리세요.

  실제로 책을 읽고 그 내용을 다 잊어버리고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면 안 읽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또한 읽을 때는 공감했다 하더라도 그대로 실천하지 못한다면 별로 효율성은 없는 셈이다. 더욱이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는 말처럼 너무 많은 책을 읽은 사람들 중에 우유부단(優柔不斷)한 분들이 많다거나 지식인의 나약함을 지적하는 사람도 많다. 오히려 책을 읽지 않아서 단순노동을 생업(生業)으로 선택한 사람들 중에서 소신이 뚜렷하고 간단명료(簡單明瞭)한 행동철학을 가진 사람이 많다. 지식(知識)보다는 지혜(智惠)가 필요한 대목이다.

  이제 눈도 침침하고 집중력도 떨어져 책읽기도 쉽지 않다. 어떤 분들은 귀가 둘이고 입이 하나니 말하는 것보다 듣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고 한다. 더욱이 이가 상했다는 것은 젊을 때 이가 튼튼할 때보다 음식을 덜 먹으라는 것이고 눈이 어두워졌다는 것은 그만큼 덜 보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의 혜택을 받아서 이를 치료하고, 덜 움직이면서도 많이 먹으니 배만 나온다. 그 뿐인가, 읽어도 실천하지 않으면서 필자는 아직도 부지런히 책을 사 모으고 있다.

  “직업도 없이 연금으로 사는 사람이 무슨 책을 그렇게 사다 날라요? 꼭 봐야 할 책이 있으면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면 되지 않아요?

  등 뒤에서 들려오는 집사람의 목소리다.

 

김불출 ; 본명 김우출.

1987년 ‘영주문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

1997년 ‘작지만 큰 이야기(고래출판사)’ 공저.

1999년 ‘월간 문학세계’ 수필 신인상 당선.

한국작가회의 대구·경북지회 회원

계간 영주문화 편집위원

E메일: k8211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