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랄로피테쿠스

   

 

 

  불합격입니다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마트에서는 2시쯤 리치마트에서는 7시쯤 50% 반값 할인코너에 서성댄다 라면국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되도록 싼값에 쟁여둔 음식으로 버티는 일주일은 되돌이표 그렇게 몇 날 며칠 모은 돈으로 한 끼 같은 스타벅스 커피 마시는 게 숨 쉴 구멍

 

  신문스터디 자료정리 점심밥터디 면접스터디 영어토익스터디 자습 저녁밥터디 인적성스터디 자소서스터디 개인공부 개인정비, 쪼개 쓰는 시간 편히 잠들지 못하는 하루가 줄창 꼬리 물어도 낙방의 연속, 면접 트라우마 토익 스피킹 HSK 기한 만료로 리셋,

 

  모레 마감인데 원서 냈느냐 이번에도 잘 안 됐냐 묻는 말에 입만 진화한다 죄책감이 부풀어오른다 바닥에 들러붙고 싶은 날이 늘어간다 사냥본능도 도망칠 힘도 잃어버리고 울부짖는 소리는 벽을 뚫지 못한다, 오랄로피테쿠스

 

  나는야 일평생 아가리 취준생

 

 

 

 

 

*오랄로피테쿠스(ORAL-opithecus): 취준생들이 원시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빗대 입만 진화했다는 뜻으로 스스로를 가리키는 말

 

 

 

 

서울 나들이

 

 

 

27년 만에 만난 동창들과

언제 왔었나 까마득한 서울

야들아, 저 아파트 구경 좀 해 봐

 

래미안 아름답고 안전한 세상이 온다면야

e-편한 세상 마음껏 경험할 수 있다면야

푸르지오 생이 마냥 푸르를 수만 있다면야

 

왕족처럼 궁전에도 살아보고

술 좋아하니 참이슬에도 살아보고

꿈꾸는 현대연예인, 예술인에도 살아보고

 

5수 끝에 원하던 대학에 갔는데

대학 가면 제대하면 결혼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숨죽인 흐느낌 귓바퀴를 맴도는데

 

해밀마을 5단지 반도유보라메이프타운

가랑마을 10단지 동양엔파트월드메르디앙

대출금 늘어나듯 이름도 길어지고

좋은 것 다 갖다 붙이고

아파트도 앞다투어 개명하는 세상

 

그럴 수 있다면야

 

우리 아버지 의사야 우리 집은 이층집인데

우리 아버지는 내가 사달라는 건 다 사줘

입만 열만 거짓말이던 문디 가시나

 

아파트 구경하면서 나는 왜

그 가시나 자꾸만 생각나는지

 

 

 

김이숙

경북 상주 출생. 2014년 시집 『밥줄』로 등단. ‘느티나무시’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