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표정 


 

 

늦은 아침에서야 사내는

옆지기 한하늘이 밤새

안녕을 고했음을 알았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사내는 어떤 슬픔의 표정도

그릴 수가 없었다.

 

희번덕이는 뱀들은 사내를 향해

혀와 손을 널름거렸지만

장례가 끝날 때까지

잊은 표정은 살아오지 않았다.

 

두고두고

 

상처는 덧났다.

슬픔의 표정을 앗겼던 사내는

더 긴 밤

자주 고요의 늪에 곤두박였다.

 

어이가 없구나, 시간이여!

아무에게도 사내는 그 상처를

들키지 않았다.

 

 

 

 

새하얀 것들

  

 

출근길, 터널을 벗어나자

먼 곳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청명인데, 눈이라니

저 눈은 청명 이전에도 내리고 있었지.

 

바람이 불고,

창문으로 돌진하며 시야를 가리는 것은

먼지다. 눈 같구나.

길이 두꺼워진다. 흐릿하구나.

 

, 가을은 사라졌다.

주기도 없는 남은 계절이 꾸준히 오고 간다.

번갈아서 와도 오는 건 여름이 아니니

당연히 겨울은 없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나는 아직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눈의 고장에 가지 못했다.

이 눈의 고장에 가고 싶다.

겨울이 없어도 눈은 내릴런지, 내려 쌓일런지……

 

그런데 그곳은 어디였을까.

스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였을까.

히로시마, 나가사키,

아님 더 가까운?

 

먼 곳에서 먼지눈이 내리고 있었다.

흰 가림막을 씌워 하얗던 세계

나는 투명한 짐승이 침입하는 공포에 질려

창문 밖을 못 보고 떨고 있었지.

 

이 섬을 벗어나고 싶다.

피난길처럼 보이는 출근길

 

기웃거리며 머뭇거리는 사이에도 쉴 새 없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쌓이는 새하얀 것들

 

이 섬은 내 피부를 숨기기에는 너무 좁다.

피난을 끝낼 수 있는 안식처는 있을까.

먼 곳에서 먼지눈이 점점 더 속도를 올리며

길을 바짝 조여오고 있다.

 

*  시에 시 : 황인찬〈이 모든 일 이전에 겨울이 있었다〉

* 소설에 시 : 가와바타 야스나리《설국》

 

 

  


남 태 식

2003년『리토피아』 등단,  시집『망상가들의 마을』외, 김구용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