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되어갔다

 

오늘은 세월호 4주기

소셜 네트워크 광장마다 노란 리본꽃이 만발했다

다가가지 못하는 사이버 공간에서

세월호를 그만 우려먹으라는 남자와

그에 대항하여 몸을 떨며 덤벼드는 내 페친이 있었다

남자는 누구의 아비이고 페친은 아비가 된 적이 없는 떠꺼머리다

 

그날

바짝 마른 안구 때문에 안과 대기실 TV로 봤다

수백 명의 아이를 수장시키고도 물결에 편히 기댄 세월호

아이구 소리를 냈을 뿐 마른 눈물샘은 아이들 인신공양에도

물기 한 방울 내주지 않았고 유명 영화의 한 장면처럼 봤다

 

다음 날 일터에서 검은 끈으로 검은 리본을 만들다가

다시 노란 끈으로 노란 리본을 접어

일터 사람들에게 선물인 듯 나눠주고

장신구처럼 내 가슴에도 노란리본 하나 달았다

 

나는 오랫동안 시를 썼는데

무얼 썼던가

세월호는 아득한 이야기처럼 흘려보냈고

눈물샘을 막은 돌덩이도 여전했다

 

오늘은 세월호 4주기

세월호 때문에 악을 쓰며 싸우는 페친을

무심히 지켜보다가 밥을 먹었다, 순간

솟구치는 맑은 물줄기

4년이나 파 내려가던 암반이 트였다

  

내 친구의 아이

내 조카

내 새끼

으으으

넘어가지 않는 밥을 물고 한참을

이마를 식탁에 처박고

으으으, 나는 그렇게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갔다

 

 

 

 

연변에서 오신 할머니

 

고드름이 주렴을 내린

소한의 아침

자동차 바퀴가 눈 속에 오솔길을 냈다

저 끝 집의 할머니

유모차에 종이박스 몇 장 싣고

꺾인 몸도 반은 싣고

어긋지는 한 발을 끌며 오솔길을 간다

 

중국에서 왔다는 할머니

우리말이 유창하니 조선족이지

붉은 댕기 휘날리며 아비 등에 업혀서

이 땅을 떠나던 때도 이런 날이었을까

젖과 꿀이 흐르는 데를 찾아서 간 그곳

 

그곳은 어땠나요.소설처럼*

귀틀집에 우짖으며 달려드는 눈보라를

구멍 난 흙투성이 삼베 바지저고리로 막아내고

땅 주인이 빚을 갚으라고 머리채를 잡던가요

딸을 빼앗기는 사람도 있었나요

그런 날은 겨죽을 먹고 살던 이 땅이 그리웠나요

 

 

죽기 전에 꼭 오고 싶었을 조국이라는 이곳

이제는 경제대국이라는데

이 조국의 겨울은 왜 아직 이리 춥고 아득한가

영하 십도가 넘는 빙판길을 폐지 몇 장 실은

유모차에 의지해 미끄러질 듯 미끄러질 듯

혹한의 아침 눈길을 가는 할머니

 

*최서해의 홍염

 

김재순 : 경북 상주출생.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 시집⌜복숭아 꽃밭은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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