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07호...
   2019년 05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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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02 (안민 시인)자선 대표작 10편 file
편집자
98 2019-04-20
게헨나 - 한 지옥에서 다른 지옥으로 건너는 게 죽음일 거라고 오늘 밤 기록한다. 1 풍 맞은 아버지에겐 방문 밖이었고 나에겐 방문 안이었다. 2 오 년 동안 S와 갈 데까지 다 갔다. 그해 봄, S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는 2년 뒤 가을비 구질구질 내리던 날 유부녀로 나타났다. 나는 그 봄부터 그 가을까지 밥 먹고 똥 누고 잠자고 생물학에만 충실했다. 머잖아 설악산 가을이 쓰러졌고 쓰러짐을 배경으로 모르는 여자랑 사진을 박았다. 나는 벌레도 어쩌지 못할 위인이지만 간혹 아내 목을 조르는 상상을 하곤 한다. 3 권 반장이 윤 반장 아내와 야반도주를 놨다. 권 반장은 허리 아래에 지옥 한 개를 더 건축한 것이고 윤 반장은 머리에다 지옥늬 도면을 옮겨 놓은 셈이다. 권 반장 아내는 농약을 마셨지만 죽지 않았다. 그녀는 오늘도 생지옥을 허우적거릴 것이다. 혹 지옥탈출에 성공했더라도 그녀는 믿음의 딸이므로 자살=지옥의 등식에 의해 그 결과 값은 같게 된다. 4 장미꽃도 지옥에서 왔다. 타오르는 불덩이를 온몸으로 밀어내며 죽음을 게워낸다. 당신도 이 지옥을 건너가면 저 지옥에서 장미나 영산홍을 게워낼 수 있다. 잘하면 미친 꽃도 게워낼 수 있다. 꽃을 함부로 꺾는 것은 무의식 안에서 지옥이 꿈틀대기 때문이다. 5 죽지 않고 혀만 자른 오대수를 위해 울어주곤 했다. 그는 지옥을 향해 나비처럼 가볍게 날았어야 옳았는데 나비 대신 괴물이 되었다. 어떤 경우엔 유황불 펄펄 끓는 게헨나도 구원일 수 있다. 오이디푸스는 신에게 구원을 받았지만 오대수는 벌레에게도 구원받지 못했다. (흑흑) 나와 나의 분인分人과 겨울에 갇히던 공포는 나에게서부터 시작되었고 내 뿌리 끝에는 눈동자가 있었다 윤리에 감금된 눈동자가 떨릴 때 일곱 개의 눈동자 속으로 어둠이 밀려들었다 어머니를 아내로 삼는 파사국과 다섯 형제든 여섯 형제든 공동으로 한 명의 아내만 삼는 사율국에서도 태양이 쓰러지고 겨울이 스며들었다 토화라국과 계빈국과 범인국에서도 그러했다 그즈음 나는 내 분인과 설산을 넘고 있었다 분인은 피에타에 등장한 남자이기도 올드보이 안쪽의 외로운 타자이기도 소설 『서드』속의 주인공이기도 하였다 아, 피에타 아바타 아미타불의 날들이여 그러므로 나는 하나에서 출발하여 여러 개로 설산을 넘었고 눈이 펑펑 내렸고 아내는 둘이 되었다가 넷이 되기도 했는데 서로의 목에 밧줄을 걸었고 흰 피가 결빙되고 있었다 다시 밤눈이 내리자 아내는 두 개의 화분으로 놓여 자라기 시작했다 아내의 숫자만큼 나의 분인은 인수분해 되지 못했다 일억 광년 거리의 어느 행성에서 또 다른 나의 분인이 눈물을 흘렸고 애인의 남자는 두 번만 등장하기로 했는데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꽃은 각본이 없었고 아이의 퇴화는 빨랐다 마침내 아내는 하나만 남았고 애인은 손가락 숫자만큼 되었다 하지만 나의 분인은 계산되지 않았다 흰 피가 허공에서 내렸고 그믐 무렵 하나 남은 아내마저 희미해져 갔다 서른두 개의 지옥에서 나의 분인은 계속 잉태되었고 공포는 나에게서 오고 있었다 그건 눈동자뿌리에서부터였고 뿌리들, 시원은 구멍들이었다 사건지평선까지의 거리 - 내가 속한 별은 어두운 구석이고 네 혈액형은 람다(,Λ) 가을을 지워도 여전히 가을, 너는 손가락마다 우물을 지닌 바람, 우물이 흔들릴 때마다 비가 내린다 비의 표면에 맺히는 별빛들, 나는 늘 흘러가고 너는 비 내리는 요일에만 온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바람은 여전히 우울증을 앓는다 먹빛 일기에도 금세 들키는 표정처럼 우울은 화이트홀까지 계속될 테지만 그곳은 천체 망원경으로도 관찰된 바 없다 그러나 소멸 안쪽에서도 움찔대며 태어나는 입자들, 흘러가는 나는 사건지평선에 근접해 있다 그것은 우울한 비에 노출되었기 때문 오늘, 바람이라 명명하는 네 전생은 흐린 나무, 별빛을 모으면서 결빙되었다가 해동되었다가 부서지면서 바람이 된 너, 기억 속의 천문학자들 또한 그들의 별에선 나무였다 나보다 한발 앞서 사건지평선에 도달한 그들, 몸속으로 비가 샌다 어떠한 절망도 중력보다 무겁다 저 너머의 별에선 왕비와 병사가 참수당하는 게 보인다 불륜을 목격한 나무의 목에 걸리는 밧줄, 중력에 동의한 그들, 비는 무겁게 내리고 새는 음악을 작곡하고 누군가는 우주에서 가장 어두운 섹스를 꿈꾸고 네 혈액형이 내 눈동자에 번진다 사건지평선에 도달할 시간은 어제 내린 비와 내일 내릴 비만큼의 거리 어제 - 하나의 절망이 가고 하나의 절망이 흘러오던 잠들지 못한 어둠마다 폭우가 쏟아졌다 비는 포말이 되어 끓었고 그러한 어둠 저편, 사자死者가 버린 눈알 속에서 내 어린 날, 눈물 흘러가는 게 보였다 말보다 울음을 먼저 배웠던 게 금번 생에서의 가장 큰 실패, 한 번 흐느낄 적마다 누군가의 손에 끌려 먼 대륙의 우기에 다시 또 다녀와야 했다 띄워 보낸 종이배 행방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어둠론 회색 알갱이들이 흐르고 있다 불면의 눈동자 위로 천천히 떠가는 알갱이와 알갱이, 이것을 길의 입자라고 부르자 그리고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길을 뼈라고 부르자 길 밖의 길은 몸 안쪽에 있다 고독한 자는 길을 잃었을 때 지도를 구하는 대신 어두운 거리에서 제 뼈의 냄새를 찾아 헤맨다 그렇게 서성이다 길이 되는 사람들, 이들을 낭인이라고 부르자 시한부 길을 눈치챈 이가 울고 있다 무거운 음률이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한편에선 눈을 도둑맞은 여자가 해머로 피아노를 부순다 이러한 풍경을 아방가르드라 부르자 결빙된 동물의 잔해처럼 부스러진 시간이 혼미하다 아방가르드 혹은 난해한 미로를 몸이라고 부르자 길이 엉켜버리거나 무너진 이들은 미로의 심정으로 제 몸을 데리고 녹슨 십자가를 찾는다 이들을 병인病人이라고 부르자 계단 난간에서 말기 병인이 무너진 길을 흘리고 있다 눈에서 입에서 귀에서 길이 흘러나온다 흘러나와 흩어져 날린다 이 모든 미로와 피아노와 난간의 표정을 장막이라고 부르자 장막이 펄럭이는 지금, 당신도 흘리고 있다 회색 입자들을 눈; 무너진 길을 버리는 배출구 [비슷한 말: 입, 귀] 밤; 아방가르드 혹은 미로의 유전자 풀(pool) 어둠; 복수複數의 회색 알갱이 [같은 말: 길(뼈)의 입자들] 바라나시 겅가 겅가로 떠나지 못한 나날이었다 눈보라가 쓸쓸하게 치고 있었다 겅가 겅가 겅가의 강江가 그 강가로 난 떠날 거야 되뇌며 겅가 강가를 그리다가 그림이 되질 않아 찢어버리고 겅가 강가의 유연한 곡선을 닮은 붉은 나신을 그리던 밤이었다 문밖에는 어둠이 강가처럼 질척거렸고 캔버스 안 나신이 완성될 즈음이었다 초대한 적도 없는 젊은 사두가 내 방문 앞에 당도했다 그러고는 뱀을 부리듯 나신 한 구를 그림 안으로 운구하였다 그림 밖에선 눈보라가 여전히 흩날렸고 그림 안에선 검은 잎들이 무성해지려 하였다 사두의 눈동자가 나신을 향해 풀어지자 나신의 중심에선 강이 흘렀다 사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시신을 내려놓고 화장을 시작했다 아, 화장되는 시신은 흘러간 내 몸이었다 그림밖엔 눈보라가 쳤으므로 나는 뜨거워졌다 식기를 반복하며 졸았는데 졸음 틈새 그토록 원하던 겅가 겅가 겅가의 강가 그 강가에 내가 놓여 있었다 미래의 내 주검이었고 모든 주검은 다 내 몸이었다 다시 살아나지 않도록 다시 임종을 맞지 않도록 사두는 주검을 버닝가트에 차곡차곡 쌓았다 바라나시 겅가 겅가 희뿌연 강가에서 내 육신은 어제까지 죽은 사람 오늘 임종을 맞게 될 사람 그리고 다시는 임종이 없을 사람이었다 화장용 속옷을 걸친 주검을 람람싸드야헤- 람람싸드야헤- 주문이 넝쿨 모양 칭칭 감았다 눈썹 끝에선 나비가 팔랑거렸고 연기가 눈보라처럼 너울거렸다 하지만 아무도 울지 않았다 생과 사가 그림 같았다 사막 의 풍경 등허리로 어둠이 내리면 희뿌연 바람이 불어온다 등을 눕힐 때마다 살갗에 붙은 모래 알갱이 송곳처럼 파고든다 오랫동안 무덤을 짊어지고 사막을 건넜기에 등은 점점 휘어진다 등짝에 저장된 기억을 불러내면 눈빛 깊은 낙타가 흘러나왔다가 모래처럼 무너져 내린다 나는 표정 없이 앞으로만 걷는 동물이다 그러므로 멈춘다는 건 해 질 무렵, 사막의 능선에서 휘파람을 부는 것과 같다 다쉬테 사막, 석양을 배경으로 시아 무슬림이 사체를 짊어지고 메카로 향하던 모습을 본 적 있다 점처럼 작아지던 사내의 등은 적요한 문양을 풀어냈다 그때도 누군가의 휘파람 소리에 낙타가 무너져 내리며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아버지도 등 후면으로만 무늬를 남겼는데 변곡선, 까만 점이 될 때까지 가 본 적 없는 대륙의 사막을 횡단하면서도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시아 무슬림 성자 이맘 레자처럼, 이승의 끝 날까지 낙타도 대상도 없이 등에 짐을 짊어지고 모래를 밟을 때, 새들은 휘파람을 작곡했고 나는 아버지 뒤편에서 새를 사육했다 등 앞쪽의 계절은 모래 폭풍 중이었으며 어둠은 짙었다 아버지의 후면이 아닌 전면의 문양을 입관 때야 겨우 볼 수 있었는데 사막 경계 부근에 다다라서인지 참으로 고적했다 모래시계 그러니까 이건 난해한 스토리다 시간이 감금된다는 것, 지평선이 허물어진다는 것, 아무리 버둥거려도 네 안에선 꽃이 피지 않는다 믿기지 않겠지만 네 운명은 사막을 견디는 것, 주위를 돌아봐도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데 너는 수북했겠지 전생에선 낙타와 은빛 여우가 네 심장에 고독 같은 족적을 남겼겠지 뿌옇게 흩날리는 허구들, 그건 너인 동시에 나였다 그즈음 거대한 언덕이 또 다른 너와 나로 분열되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 불가해한 지대에서 바람의 몸을 빌려 이곳에 갇혔다 그리고 윤회, 이제 더는 세포분열이 없을 것인가 그러나 네가 속한 이곳도 블랙홀, 네 원적에선 아직도 푸른 두건을 두른 자들이 몸을 횡단하겠지만 이곳에선 알몸의 안구들이 네 몸을 횡단한다 너는 죄명도 없이 유죄다 눈들이 헉헉거리며 너를 가늠한다 어떤 눈은 탈레반처럼 날카롭다 어떤 눈은 대상처럼 탐욕적이다 그들의 눈 또한 주르륵 흘러내린다 폭염과 침묵 속에서 흘러라 흘러, 삭막한 육신이여, 너는 사막을 허물어 나의 무덤을 짓는다 이젠 내 차례다 내 몸을 뒤집어 네 무덤을 지어주마 눈들이 주목하고 있다 우리의 난장을, 소멸을, 이해할 수 없는 순환을 천칭좌-Zubenelgenubi . 그대는 밤을 깊숙하게 짚어보며 자신의 별자리로 떠나본 적 있는가? . 내 문장이 길게 풀어지는 것은 어느 날 문득 내 별자리가 한없이 그리워질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 짧은 멜랑콜리만 ‘시’라고 예단하는 당신은 여기까지만 읽어도 밤에 당도할 것이다 - 1 나는 적도 부근 어둠에서 왔다 한 때는 전갈자리의 집게발이기도 했지만, 늦가을 귀퉁이에 추락하여 겨울을 저울질하며 겨울을 불러들이는 게 내 운명이었다 시원에서부터 내가 습득한 것은 울음이었는데 그것은 남색으로 흐르는 강물을 별 속에 풀어 넣기 위함이었다 할머니와 아버지와 어머니의 별자리가 모두 달랐으므로 불화에 익숙해지는 것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고 허기는 술렁댔다 오랫동안 진창을 독학했고 진창은 사방에 널려져 있었다 그 외의 시간엔 잠들었다 잠은 허기를 속이고 지도를 저장하는 장치이므로 - 2 할머니는 별자리를 귀신만큼 정확하게 짚어냈다 동짓달 한천에선 어린 별들이 우후죽순으로 자라났다 다시 바람에 실려갔다 그 무렵, 노인과 아이들이 자주 지워졌고 어둠이 내리면 할머니는 장독대에 당신의 영혼을 수장시켜 놓고 주술을 풀었는데, 그런 행위는 별빛을 박제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속한 구약舊約은 할머니였고 장독대는 가계의 이교였다 애초부터 신약新約은 나의 문명이 아니었기에 즐겼던 예술은 종이비행기를 접는 것이었다 비행기를 접을 때는 말을 지워야 했다 날개에서 묻어져 나오는 균형을 수신하기 위한 예의는 묵언이므로 때가 오면 팽팽한 균형 위에 내 흐린 영혼을 싣고 본향을 향해 이륙할 거라는 게 나의 신앙이었다 진창의 날들 안에서 날개를 접고 있으면 헛배가 부풀던 별자리… 그 속에서 내 사랑이 늙어가고 별의 호흡이 북풍으로 변이되어 숲으로 몰렸다 이에 대해 진술을 하는 것은 회색 고양이와 소녀의 이야기만큼 진부하므로 더는 진술하지 않기로 하겠다 문을 닫아도 영하의 산기슭, 그 무렵까지 지구별 주민증을 열한 번 옮겼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노동판에서 얼었다 녹기를 반복했지만, 별자리 계산은 世系 밖의 일이었다 밤에 아버지 곁에 누우면 죽은 식물 냄새가 흘렀고 어둠을 사랑한 여신은 늘 귓속에 거주했다 바람 우는 밤이면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귀를 앓았고 이불 속은 섣달그믐보다 더 캄캄했으며 몸통은 잠들고 동공은 새벽까지 불면이었다 내 눈의 충혈은 그때의 습성에 다름 아니다 이 사실을 금세 눈치채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뒷걸음질 치면서 눈동자에 젖은 바람이 번진다 아버지는 자주 집을 비웠는데 어느 밤, 예고 없이 흐린 주소로 이적했다 아버지의 눈을 감기기 전, 마지막 바라본 눈동자엔 별자리가 실종되고 없었다 좀 더 일찍 알았어야 했지만 그림자의 손가락은 길었고 - 3 이주한 곳은 늘 검은 허공에 닿은 곳, 신의 은총이라 여겼으므로 교회당 옆에서 돌탑을 쌓으며 염불을 찬송했다 친구들이 산 아래 상급학교로 진학을 해도 나는 저 높은 곳만 향했는데… 그즈음 강물이 사막을 건너기 위해 별 속으로 스며든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동생의 구슬이 반복적으로 없어졌고, 내 별자리 또한 우주 구석까지 흘러갔다 돌아오곤 했다 동생은 물빛자리였기에 언젠가 수몰될 터였다 동생이 바닷가에 위치한 결핵요양원으로 떠난 후부터 문방구에서 야광별을 훔쳐와 앉은뱅이책상 밑에 붙였다 동네 형들에게 길을 물을 수는 있었어도 구원에 대해서는 침묵했기에 불을 끄고 책상 아래로 기어들면 동생의 별이 귀뚜라미와 함께 희미하게 울었다 귀속으로 흩어져 날리던 빗물, 어떤 날은 동생의 별자리가 나를 관찰하다 나의 폐에 수상한 색깔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러다 어떤 별은 낡아졌고 또 어떤 별은 추락했고 지구별은 진화를 멈추지 않았으므로 진화와 진화 사이에서 늙은 아이들이 무표정하게 결빙되었고 - 4 별을 그리는 여자들을 만났다 그녀들 눈 속에도 별자리가 거주했다 나는 그것들을 만지작만지작하였다 나뭇잎이 빠르게 시들었고 - 5 병실이 성지였던 날들도 있었다 밖이 안쪽보다 아늑해 보였지만 실은 밖도 안도 경계였다 흰 가운은 규칙적으로 성지순례를 나와 선교하곤 했다 겨울밤 달빛이 푸르른 남빛은 마치 밤에 사파이어가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당신을 고백할 때 푸른색 별을 선물한다면 당신의 시간에 대한 진실성을 우주에 그대로 전달할 수 있으며 순수한 병을 앓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제우스와 여신과 바다의 신이 내포한 병증에 대한 관계이며 완전성입니다 물병자리나 물고기자리를 병실에서 만난 적은 없다 그들의 신화는 성지 밖에 존재했으므로 아프로디테만 탐구했다 시와 음악과 미술은 그것의 변종이었기에 병실 벽면에 음악을 판각했고 - 6 지구별이 다시 겨울에 진입했다 얼마 전, 제 별자리로 돌아간 누군가는 새벽녘까지 술을 퍼마시고는 도로 난간을 향해 빛처럼 질주했다 한다 천체 밖으로의 탈출 같은, 우연한 사고 같은, 혹은 음모 같은 것들이 함께 몰려다녔지만 건네받은 희미한 웃음과 건네준 모호함만이 기억으로 명명되었다 그것도 순간에 지나지 않을 테지만… 밤 허공, 보이는 별과 보이지 않는 별에 아름다운 눈이 펑펑 쏟아진다 겨울에 몇 번 더 당도하면 내 별자리는 좀 더 가까워질 것이다 우주가 설계한 우연에서는 점점 멀어져 가겠지만 신전은 무너지고 또 세워지게 마련 별자리는 기억을 먹고 운항하기에 나는 기억되지 못할 테고 비어秘語 혹은 비어悲語 - 1 2053년 그리고 12월 같은 혹은 그랬으면 하는 흐린 밤, 나는 적는다 몰락에 관하여 그대와 나에 관하여 더불어 기다란 고통에 관하여 이마의 왼편에서 질주해 온 기차가 바람을 찢으며 지나간다 유령의 옆모습처럼 그때의 상황은 불가해한 일이었다 검은 고양이가 제 별을 뱉어내며 날아올랐고 그대는 고독과 불안의 정체도 모른 채, 검은 기차들 옆을 서성거렸다 그러고 시장에서 가지를 고르듯 기차를 골랐다 기차는 대개의 여자에게 소용되는 용품… 하지만 기차 없이 생을 마감한 이들도 있다 가령, 처녀인 채 지워진 나의 막내 이모가 그랬고 목을 매고 떠나간 어느 독재국의 외동딸도 그러했다 그대가 고른 기차는 분별없이 달리는 중이다 셀 수 없을 만큼 목침을 밟고 왔던가? 폭주와 음주와 굉음과 비명과 폭발과 폭탄, 그 사이와 사이에서 그대는 겨울 억새처럼 흔들리겠지 낡은 간이역 지붕처럼 힘없이 주저앉겠지 이 밤도 뿌연 분진을 날리며 기차는 난폭하게 그대 허리 아래를 지나고 있다 - 2 기차가 그대를 통과했으므로 그대는 어쩔 수 없이 기차의 운명에 속해 있다 계절 변경선을 통과하는 저녁, 그대는 돌이킬 수 없는 시발역을 추억하기도 한다 그러나 추억은 후회를 포장한 실체에 불과한 것 돌이킬 수 없다는 것에서부터 탈선은 스멀스멀 자라난다 누구나 기차를 버리거나 기차에서 뛰어내릴 꿈을 품고 있다 하지만 동공을 덴 새와 심장을 다친 사슴과 제 눈을 찌른 여자의 부음을 접하고도 달리는 기차에서 이탈한다는 건 참으로 두려운 예술이다 더욱이 황토물 붉게 흐르는 철교 위에서라면… 누구는 이런 상황을 운명의 장난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돌이킬 수 없는 숙명이라고도 하고 하나밖에 없는 내 누이는 「코미디야, 코미디!」라며 울부짖기도 한다 「나, 이제 돌아갈래!」와 같은 문장은 순결하지만, 그것은 기차 밖에서도 암담한 빛깔이다 ‘돌아갈래’ 라는 말은 ‘돌아버리겠다’ 의 또 다른 은유이다 도저히 돌아갈 수 없으므로 뇌내腦內의 화폭에 혼란한 색깔을 칠하는 이들이 있다 몰락을 숭배하는 이들은 그 황량한 구역에서 어떤 획책을 건져내기도 한다 하지만 기차는 무지개가 흘러가는 거나 무지개가 다음 계절까지 생존하는 거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까닭에, 기차는 무지개를 0.59g 혹은 3.87분의 허상으로 여긴다 대개의 기차들은 외형적으로는 도덕을 아버지로 섬기며 참으로 윤리적이다 0.59g 혹은 3.87분의 예술을 분석하는 과학자와 무지개를 올려보며 야음을 모색하는 시인이 빨강과 주황의 경계에서 서로의 멱살을 잡은 채 울고 있다 - 3 기차가 잠시 방심하거나 비틀거리며 달릴 때, 그대는 첫 번째 애인을 태웠다 누구는 이러한 행동을 인공 비행으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그대는 절실했다 불온하지 않은 예술이 없듯 기차의 내부는 지옥이면서 침대이기도 하고 아름다운 여자가 경험한 내밀한 구간과 닮았기도 하다 나는 과연 몇 번째인가, 궁금하지만 그러한 의문은 적색과 녹색의 분별만큼 사소한 일이다 「눈동자가 적록색약을 앓는 줄 알았는데 색맹으로 판명되었다」 어딘가에 유폐된다는 건 결국 갈 데까지 가봐야 한다는 상징이다 나는 자주 유폐되었다 기차를 동경하는 이의 관점에서 유폐는 매혹적이거나 은밀함이 될 수도 있겠지만, 유폐의 실체는 내내 폭우가 내리는 섬 같은 것이다 비를 맞으며 섬이 둥둥 떠간다 세상의 모든 섬이 흘러간다 어둡고도 흐린 가슴을 향해 기차는 멈추지 않는다 기차에 유폐되면 불구를 앓는다는 걸 나는 몇 가지 학습으로 잘 알고 있다 나도 한때는 기차였고 구름 안쪽을 달리길 기도한 적도 있었으니… 「그러나 나는 그다지 명료하지 않았고 아이처럼 왜소했음을 고백한다」그러므로 나 또한 윤리적이었다 기차의 내부에서 윤리적이지 않다는 건 폭약을 가슴에 품고 시가를 피우는 거에 다름 아니다 기차의 속성을 잘 몰랐고 윤리와 타협하지 않을 때였다 메테르를 닮은 여자였다 그녀는 주인 있는 여자였고 도덕은 기차와 연루되어 있었다 두 번 혹은 세 번의 밤이었을까? 그 짧았던 구간, 우린 다음 역을 계산치 않고 최선을 다해 밀착하고 밀착했다 하지만 나는 모든 걸 버리고 뛰어내려야만 했다 가을 깊어지던 쓸쓸한 24시였다 인간의 거죽을 벗겨내고 싶던 밤이었다 나의 불구는 아마 이때부터 시작되었을 터였다 하여, 나는 어떤 것에도 쉽게 흥분하지 않고 무엇에도 쉽게 발기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에 잠기면 심장 가까운 곳에서 빗물이 샌다 나의 신앙은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예외는 존재하게 마련이고 그것은 선로의 함정이다 함정으로 추락할 화성火聲은 화요일에 당도하게 될 것이다 결국 화성의 무덤은 함정이고 나의 무덤은 화요일 밤이다 지금 나는 기차의 내부에서 기차를 망각하기 위해 명상을 한다 하지만 기차는 더욱 또렷해지고 불면은 짙어진다 기차의 전면과 후면이 구분되질 않고 눈 안에선 안개가 자욱하게 흐른다 - 4 그대는 어떨지 몰라도 나는 설국열차를 경험한 적 없다 하지만 그것엔 동의한다 그뿐만 아니라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대는 몇 번째 칸인지 알 수 없고 나 또한 어디에 속해 있는지 알 수 없다 단지 계절 지나가는 지대에서 한 번 또는 두 번 조우한다 이것은 암묵이고 규칙이지만 코 없는 인디언 부족의 축제만큼 위태하다 시인은 위험한 짐승이다 시인은 불행한 악기다 세상은 상징과 음표를 노리는 사냥꾼으로 득실댄다 상징과 음표가 어두운 길을 빠져나간다 사냥꾼은 언제나 자기의 소유가 존재하는 줄 믿고 있다 도덕적인 자가 자신을 담고 있는 구덩이가 자신의 소유인 것으로 착각한다 윤리적인 자가 자신의 물건을 품고 있는 동굴이 저를 주인으로 섬길 것으로 믿는다 그대와 나를 가둔 기차처럼… 음률은 대체로 기차의 내면에 속한다 음률은 예술을 위해 어느 구간에선 천천히 죽어가고 어느 구간에선 빛의 속도만큼 빠르게 흐느낀다 오늘 밤에도 원치 않는 기차가 그대의 내부에 들어서고 있을지 모른다 그대는 신음을 흘릴지, 아니면 몸부림을 칠지, 이도 저도 아니면 그저 찬밥처럼 밋밋할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나 또한 한 마리 짐승에 불과하기에 추적추적 비 내리는 밤이면 터널을 찾아 헤맨다 그 터널이 불온한 구멍이든, 사연이 있든 혹은 없든,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느끼고 있는 순간이 나를 망각하는 구간일 테니… - 5 기차를 의식하지 않는 구간 또한 터널이다 내가 기차였던 기억이나 혹은 기차의 내부에 유폐되어 있다거나 변형되고 있다는 명제를 잊는 그 아득한 순간, 캄캄함은 중요 부위의 감각만을 깨어나게 한다 대개의 인간은 지나온 터널 개수를 세지 못한다 내가 처음 터널을 경험한 것은 1998년 겨울의 일이다 내가 터널을 헤아릴 수 있다는 사실에 얼굴이 붉어진다 그러한 기억이 나를 몰락하지 않고 깨어 있게 한다 몰락하지 않고 그럭저럭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에 나는 또 얼굴이 붉어지고 그대의 공간엔 새들이 추락하고 - 6 객차의 문을 몇 개 통과하면 하얀 병실 칸이 있었다 그곳에서 첫사랑 K와 이십 대 초반 S와 이십 대 중반의 O를 보았다 그리고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닿는 M도 보았다 여전히 혼란했고 여전히 슬프도록 황홀했다 그녀들은 시차를 두고 기차를 구매했을 것이다 보기에 그럴듯할 만큼 길고 탄성 또한 적당했을 것이었다 그녀들은 떠나면서 누구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기에 내 사춘기와 청춘은 시차 없이 무너졌다 그런데 그녀들은 왜 모두 그곳에 머물고 있었던 걸까? 「내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의사는 아무 말 없이 내 머리칼을 잘라주었다 몇 줌의 기억이 싹둑싹둑 검정 빛깔로 바닥에 떨어졌다 눈물이 그렁그렁 피어났지만 나는 다시 나의 객차로 회귀해야만 했다」 내가 위험하다는 것을 아무리 느껴도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십 분에 열 개비의 담배를 피운다 풀들의 영혼이 차창 밖으로 빠르게 빠져나간다 나는 나에게서 멀어지는 영혼을 바라보며 탄식한다 큰 새의 날개를 잡고 허공을 날아본 경험이 있다면 나의 표정에 동참할 것이다 삼백육십오 그리고 또다시 삼백육십오의 두 번이면 우울증이 10g이라도 치료될 수 있을까? 2053년 그리고 12월이 오면 기차는 기차가 아닐 거란 생각에 나는 어제를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기차가 북회귀선을 통과해 기억의 좌측을 달리고 있다 나는 윤리를 증오한다고 외쳤지만, 비겁하게 윤리와 타협하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윤리는 기차의 속도만큼 퇴화하고 내 몸뚱이는 박물관을 닮아간다 내가 누군가를 경외해야 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윤리와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상사와 비서, 매혹적인 앵커와 위대한 학자 그리고 몇몇 시인과 방랑자는 철저히 윤리적이었다 최소한 낮에는 그랬다 - 7 나는 레일 주위를 방황하며 목적지를 분석하고 조정하는 이가 분명 신일 거로 여겼다 나도 그대도 목적지를 모른다 레일이 교차하는 지점 혹은 변곡점 어느 구간에서 숱한 기차가 의도하지 않은 생경한 곳으로 향한다 이 기차도 내 의지나 그대의 의지대로 조절되지 않는다 물론 기차의 목적대로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차만의 착각이다 오류는 그러한 지점에서 발화한다 저녁이 내리는 구간을 지날 때마다 기차는 광폭해지지만, 그것은 나의 잘못도 그대의 잘못도 아니다 우리가 속한 기차는 파업과도 무관하다 그저 그렇게 진창으로 설계되었으니… 폭설이 쏟아진다 그대가 견디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든다 기차 안은 밖보다 시리다 영하의 겨울에 컨테이너 내부를 경험하였다면 망한다는 거에 동의할 것이다 온몸이 서서히 망해간다 나는 내식대로 망해야 한다 산산이 부서질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러니까 눈꽃은 부서져 다시 눈으로 돌아간다 날개가 산산이 부서질 때 나비는 눈 부신 햇살로 돌아간다 밖에서의 날들이 그리워질 때면 독주를 마신다 빙산의 일부처럼 꽝꽝 얼어붙은 독주를 녹이기 위해선 고혹적인 여배우를 떠올리며 지퍼를 내린다 지퍼는 궁색하거나 초라하다 성에가 뜨겁게 끼고 끝도 없이 펼쳐진 지퍼를 닫으며 기차는 달린다 나는 열려 하고 기차는 계속 닫으려 한다 이 또한 코미디일 것이며 그대와 나는 이러한 관성에 속해 있고 그것은 영원히 풀 수 없는 함수 같은 거다 여하튼 나는 결빙되는 중이다 동태처럼 얼어붙은 내 몸을 만지게 된다면 누구든 열화를 입을 것이다 나의 비밀은 생각하는 것보다 허망하다 얼어붙은 허구를 해체하려다 식칼이 해체되는 상황을 관찰한 적 있다 그러니 부디 조심하시길… 나는 이러한 편지를 고독에 적셔두었다가 밤마다 띄워 보낸다 - 8 500년 전 즈음이면서 500년 후 즈음이면 좋을 것 같은 밤, 나는 끊임없이 적는다 나에 대하여 그리고 그대의 여행에 대하여 나는 왜 그대의 여행에 포위됐을까 그건 운명의 문제가 아니라 절망의 문제였다 다시 강조한다면 몰락과 우울과 기차의 문제였으며 또한 January 31.999…의 문제였다 겨울이 한 페이지씩 파란 얼굴을 넘기며 지나간다 생경한 얼굴이 나를 관찰하며 예언한다 「당신의 동공에 유언처럼 낙엽이 쌓이게 될 것입니다」 지금, 그대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가장 멀리에 있고 우리가 토론한 적 있는 기차가 스쳐 지나간다 그 속엔 누구도 탑승하지 않았다 파란 음표와 녹색 휘파람 그리고 오래전 유년의 목소리만 가득하다 아, 그것은 기차가 아니라 하모니카와 플롯이었다 인도와 페르시아 대륙을 거쳐 북해로 향하는… 「인도를 설계하였습니까? 페르시아를 명상하였습니까? 나는 나의 객실을 해석하기도 버겁습니다 나는 속도를 느끼기도 벅찹니다 변곡점과 소실점에 대해 더는 밤을 지새우고 싶지 않습니다 기적 소리의 간격을 통계적 기법으로 분석해 주십시오 그래도 수긍하기 힘들겠습니다」 - 9 철로는 제 몸보다 수천 배 무거운 몸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나는 내가 무겁다 사실 내가 무거워진 것은 이천 년 하고도 십 년이 지났을 때부터였다 나는 나를 팔아 시를 장만했다 내다 팔 것 없는 나를 팔수록 나는 점점 원통 기차의 쇳덩이처럼 무거워졌다 내가 구매하여 자랑스럽게 전시한 시는 정말이지 걸레였다 「중독은 무겁다」 중독된 이들이 적막을 풀어내며 흘러다녔다 중독된 이들이 철로 변을 서성거렸다 어머니는 철로를 건너 공장엘 갔고 어둑해지면 철로를 건너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의 발은 기찻길 목침 위에서 언제나 무거워지곤 했다 어머니는 애초에 기차를 믿지 않았다 아니 기차를 저주했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기차를 경계해야 한다 스스로 기차가 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짓이다」 어머니의 유언이었다 결핵 앓던 동생은 기적 소리만 들려도 귀를 틀어막고 얼굴을 무릎에 묻었다 나는 모든 게 적막했다 기차도 철로도 땡땡땡 어지럽게 울리던 노란 종소리도… 하지만 기차를 동경하여 제 그림자를 철로 변에 누이고는 동공을 고요하게 풀어내는 짐승들도 있었다 그들은 몸도 영혼도 다 중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 10 기차는 마구 흔들리며 달리지만, 나는 달팽이보다 느리다 지구별이 빛의 속도로 달리지만, 그대가 나에게 닿는 건 유계처럼 멀듯 젖은 음악이 지나간다 음악이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안에 흐르는 나의 소문은 누구에게나 다 방영된다 나는 진실만을 말할 것을 맹세하곤 했다 거짓말을 두 번째 들키면 누구를 막론하고 내 영역에서 지워지곤 했다 그러한 사실에 모든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거짓말을 증오한다」 라고 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에 가깝다 나는 거짓으로 왔고 정말이지 진실로 살았고 거짓을 덮고 죽어가게 될 것이다 더는 미사곡이 나를 편곡할 수 없다 더는 고해가 나를 취급할 수 없다 까닭에 나는 냉담 중이다 나는 기차를 속였다, 고 고백하고 싶다 하지만 그대와 나는 기차의 내부에 속해 있다 「죄송합니다 속여서」 「나의 뺨을 휘갈겨 주십시오」 기차 안, 기차 안, 기차 안, 기차를 속인 게, 정말이지 기가 찬다 나 자신에게도 그렇다 발버둥을 쳐도 기차 안, 기차 안, 기차 안이고 오늘은 40년 혹은 50년 후 같은 마지막 12월 밤이다 이 밤 난 낡기를 염원한다 부재를 염원한다 몰락을 염원한다 더불어 그날을 염원한다 「그날은… 그대가 나의 세계입니다 아무 내용이 없을지라도」 그렇게 염원은 끝없이 계속되겠지만 그날, 나는 존재하기라도 할 것인지… 아무튼 기차는 위험하게 달리고 나는 거짓으로 왔고 진실로 살았고 거짓을 덮고 떠나게 될 것이다 심장엔 어떤 영혼도 없이  
101 (안민 시인)나의 문학관 및 약력
편집자
91 2019-04-20
나의 문학관 1. 문학을 접하게 된 계기와 배경 문학을 접하게 된 계기는 삼십 대에 중한 병을 앓은 적이 있다. 그때, 병실 문밖까지 죽음이 와 서성이는 거 같았다. 지나간 날들은 한 줌 바람 같았고 남은 생의 그 문양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과거의 기억을 에세이나 시의 형식에 의지하여 기록하고 싶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문학과 동행을 하고 있다. 2. 종교와 인생관 내 작품에는 가톨릭과 불교, 무속 더불어 이슬람 문화적인 내용이 혼재되어있다. 나의 종교는 가톨릭이다. 하지만 어떤 종교에도 편견이 없다. 종중의 종손이기에 천도재나 무속 등의 제의를 종종 접하기에 불교나 무속과도 친숙하다. 또한 회사 업무 때문에 중동지역 출장이 잦아 이슬람교에도 관심이 많았다. 종교란 질병과 죽음 그리고 사후 세계 등 인간에게 있어 가장 근원적 문제에 관한 것을 다룬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도 결국 인간과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귀결되기에 종교와 비슷한 접점이 있다. 하여 종교에 대해 사유를 하다가 그것이 모티브가 되어 창작하는 경우가 꽤 있다. 인생관은 다소 비관적인 편이다. 세상에 나올 때 어머니가 산고를 겪지만 태아는 몇 배 더한 고통을 경험한다고 한다. 죽음은 또 어떤가. 과거 몸이 아팠을 때 2인실에서 말기 암 환자와 한 달 정도를 함께 지낸 적이 있다. 그는 밤마다 고통으로 몸부림을 쳤다. 세상에 나와 저렇게 가야 하는 게 인간의 생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 한편이 시리도록 먹먹했다. 태어남과 죽음이 시련이니 어쩌면 인간의 생은 구할이 슬픔과 고통일지도 모를 일이다. 3. 문학과 우주 나는 시에서 우주를 다루기도 한다. 사건 지평선, 블랙홀, 빅뱅 이론과 같은 천체우주적인 이론을 차용 그것을 모티브로 한 시다. 어릴 적 강변 방천 둑이나 산복도로 밤하늘에선 무수한 별들이 붉고 푸른 빛을 뿌리며 흘러 다녔다. 별들은 어떻게 생성되고 소멸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청소년기를 지나고부터는 우주와 관련된 책들을 자주 접했다. 빅뱅이론에 의하면 천지의 물질은 약 140억 년 전에 한 점에서 폭발, 팽창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결국 별과 풀꽃과 돌멩이와 사람까지도 만물의 시원은 동일하다. 수십억 년 전 해변의 조개가 진화하여 창공을 나는 새가 되고 바다에서부터 뭍으로 올라온 원형 생물이 인간으로 진화된 것이다. 이런 우주의 신비를 시 속에 담아보고 싶었다. 졸시 「사건지평선까지의 거리」란 시가 있다. 사건지평선은 블랙홀의 경계면이다. 내가 경험한 사랑은 5차 함수 같은 거였다. 나 자신이 어리석고 무지한 탓이기도 하지만 여하튼 사랑은 힘들었고 실패로 끝났다. 다중우주 해석에 의하면 우주는 우리가 선택하는 순간 여러 개로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무한개의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주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또 숱한 우주를 선택하는 행위를 한다. 그중 사랑은 극단적 우주를 선택하는 것이다. 즉 블랙홀에 스스로 빠져들기 위한 행위가 사랑이다. 사랑의 선택은 자신을 블랙홀의 경계인 사건지평선에 옮겨 놓는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4. 시론과 분인(分人)들 시를 창작할 때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한다. 먼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문장을 창조하는 것과 그러면서도 완전한 문장을 만든 것을 목표로 한다. 예컨대, 고독에 대해 서술할 때 “고독하다”는 문장은 “지독하게 쓸쓸하다”라는 문장보다 불완전하다. 내가 아는 어느 선배의 말인데 “누군가 내게 손을 내밀면 나는 심장을 꺼내주겠다”고 했다. 나는 이 진술이 고독을 표현한 세상에 없는 완전한 문장에 가까울 거로 생각한다. 시는 혁명 같은 거다. 그런 의미에서 앞의 내용과 더불어 나의 졸시 「시안」은 시론인 셈이다. 시안은 시의 혁명을 위해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시와 관련해서 아직 갈 길이 멀고 해야 할 공부도 많다는 것을 잘 안다. 시의 본질은 오늘이 어제와 달라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혁명적으로 다르면 더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나는 시안에 진입하지 못했고 시안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시안의 혁명을 꿈꿀 것이다. 내 작품에서 ‘분인’이란 시어도 종종 등장한다. 그것은 ‘내 안의 내가 너무 많다’ 는 의미이다. 타인이 본 나, 내가 생각하는 나, 아니면 무의식의 나, 어떤 내가 정말 나일까, 라는 의문이 자주 든다.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의심하다가 또 부정하다가 어떤 계기에 의해 평행우주론을 접하고는 모든 ‘나’의 존재가 ‘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상상인 것 같으면서 과학이다. 나는 평행우주론에 동의하는 편이다. 우리가 속한 우주를 벗어나면 또 다른 우주의 어느 별에서 동일한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 평행우주론이다. 그러니 일억 광년 거리의 어느 행성에서 또 다른 나의 분인이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5. 무의식의 흐름 때때로 장시를 쓴다. 첫 시집에 「비어秘語 혹은 비어悲語」, 「제례의 구간」, 「시안」 등은 발표 당시보다 반으로 줄인 것이다. 무의식의 흐름을 따라 순식간에 써 내려간 시들이다. 가령「비어秘語 혹은 비어悲語」는 무의식에 몸을 맡겨 둔 여행 같은 것이다. 메타포는 무수히 존재한다. 남성성이기도 하고 음악이기도 사랑과 미움이기도 확장된 우주이기도 하다. 운항하는 우주 그 속에서 아픔과 상처를 배경으로 한, 사랑과 이별의 서사이다. 한편으로는 지나간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의지와 상관없이 모호한 운명에 의해 흘러간다. 그러면서 어떤 구간에선 사랑을 하고 또 어떤 구간에선 미워하며 갈등한다. 기차에 오르는 순간 우리는 기차의 속도만큼 빠르게 낡아간다. 기차의 내부는 아름다운 지옥이기도 황량한 천국이기도 하다. 더불어 그 시공간 속에는 불편한 규칙과 윤리의 힘도 존재한다. 어쩔 수 없이 그것에 순종하려는 또는 이탈하려는 행위가 생의 과정일 것이다. 6. 소멸과 생성과 윤회 그리고 게헨나 어릴 적부터 소멸과 생성, 윤회 등에 관심이 많았다. 「사막의 풍경」과 「모래시계」 등의 시는 그런 사유에서 생성된 시이다. 나는 시를 생산할 때 인간 내면과 외면에 복잡하게 얽힌 시간의 흐름을 투시해보려고 노력을 한다. 현재가 육신을 구성하고 그것은 일견 완전해 보이지만 또한 순간적으로 소멸해버릴 불완전한 존재이다. 4차원 시공간 속의 윤회, 그것은 우주가 존재하고 시간의 흐름이 계속되는 한 반복될 것이다. 불가해한 시간에 갇힌 우리는 그 속에서 생로병사를 겪는다. 그것은 사막을 견디는 것이며 낙타와 은빛 여우가 심장에 고독 같은 족적을 남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 몸을 뒤집으면 타인의 무덤이 되기도 하고 천년 후의 또 다른 나의 무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세상을 하직했다. 할머니가 종부이기에 문중의 대소사까지 챙기다 보니 기울어져 가는 가세가 더욱 기울게 되었다. 할머니는 명문 집안 출신이다. 전 국회의원 박찬종씨의 아버지가 할머니 남동생이다. 그런데 어머니 친정도 꽤 저명한 집안이었다. 두 분 자신이 그런 배경이 있기 때문에 자존심과 성정이 강해 갈등이 심했다. 거기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세상을 떠돌다 병을 얻어 집으로 왔고 설상가상으로 동생마저 폐결핵으로 요양원으로 가게 되었다. 아픔, 고통, 죽음 이런 게 내가 지나온 구간이다. 산복도로 산동네 단칸방, 병을 앓던 아버지, 노동을 해야만 했던 어머니, 가난하다고 사귀던 여자의 부모로부터 결혼을 거부당했던 불행한 연애, 가난의 극복과 남보다 빠른 출세를 위해 병이 나도록 일에 목을 맸던 생활 등등, 지나온 시간이 참으로 고단했다. 어떻게 보면 나의 첫 작품집 제목처럼 내 생의 은유가 ‘게헨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나이가 들고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극한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삶을 완성해나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극과 극은 통한다. 지난한 고통의 과정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게헨나’가 구원이며 안식일 수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그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사실 ‘게헨나’는 도처에 존재하지만 그것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구원일 수도 있을 것이다. 탈무드에서도 게헨나를 정화의 장소로 보며, 이곳을 거친 후에는 더 큰 고통이 없다고 한다. 7. 맺는말 밤하늘 흐르는 수억만 개의 별들도 길 위의 나무도 돌멩이도 최초에 동일한 시원에서 출발했기에 생각해보면 우주 삼라만상 모든 게 우리의 형제이며 근친이다. 그저 우리는 잠깐 동안 나와 너라는 개체로 몸을 입고 그 몸의 일부인 뇌 신경세포들의 신비한 활동으로 슬픔도 아름다움도 느끼고 생각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제의 독재자 아들이 오늘 민주투사일 수도 오늘 범죄자의 아들이 내일은 부처일 수도 있다. 또한 나의 원수가 타인의 사랑일 수도 있고 타인의 원수가 내게는 백합보다 순결한 성자일 수도 있다. 나는 한 없이 미흡한 존재이지만 그런 이치를 잊지 않으려 한다. 더불어 이생을 마감하고 또 다른 유전자 풀로 이동을 하는 그 순간까지 인간과 물상에 대해 애정을 지니고 그것을 시에 담아내려 한다. 프로필 . 본명 안병호, 경남 김해 출생 . 2010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 .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 제 18회 부산작가상 수상 . 시집 『게헨나』 현대시기획선 . 현재 부산작가회의 회원 메일 dominiko8@hjanmail.net  
100 (임소형 시인) 자선 대표작 10편 file
편집자
185 2019-01-14
묵석의 사기 진작 보드라운 잔털의 기둥에서 혼혼한 씨물이 흘러 나옵니다 후각과 비강을 태우는 뜨거운 화염 혼침해진 그녀는 긴 기둥속으로 몸을 숨깁니다 씨물은 그녀만의 소유가 아닙니다 이미 공중 부양중인 새의 부리 벌떼의 흡착판이 쉴 새없이 수액을 탐닉하는 저들의 사냥 터 왼종일 푸르르 깃털이 날립니다 앵앵 사이렌 소리가 요란합니다 언제나 사냥꾼이 지나간 길목에는 수두를 앓고 생긴 상처처럼 표적이 남지요 이 표적은 합방도 없이 수정이 이루어진 참으로 해괴하고 망측한 것이라 뿔을 달고 나옵니다 풀이 달려서 인지 갈대도 쑥덕쑥덕 머리를 흔들고 갈참나무도 바스락 바스락 몸을 비틉니다 새로운 개체로 변이된 유전자의 변형이라면 정성적 [定性的] 변이인지 자연적 변이인지 야릇하기 짝이 없습니다만 돌연변이라 해도 생명의 잉태는 경이롭고 숭고해서 축복해야 합니다 푸서리에서도 초라하지 않은 행색 삐쩍 마른 볼품없는 몰골이 아닌걸 보면 분명 방화범은 훌륭한 유전자를 지녔을 겁니다 카랑카랑한 금속 목소리 살인적 초열에도 혼절치 않고 쾌미의 노래, 춤추는 녹의로 포릉포릉 양수를 불려 오동통 살이 오른 가시 달을 해산합니다 그 옛날 토끼가 방아를 찧던 동화속 달을 소환하면 이처럼 토실토실 크고 야물었을까요? 가시 달을 연결하면 수 만 볼트 전류가 흐르는 초대형 트리가 되는데요 트리는 성관 [盛觀] 을 에워싸고 성벽에 방호막을 칩니다 독거미도 오르다 감전되는 무시무시한 방호벽이지요 방호벽에서 폭죽이 터지면 어미 새도 고단한 날개를 접고 뭇 벌의 흡착판도 뱅그르르 해 그림자를 따라 맴돌다 소리없는 목 울음 울며 무덤 속으로 사라집니다 하찮은 생이라 얕보지 마세요 인류의 진화답게 생존 염색체를 배양 불멸의 유전인자를 생산하는 고고한 족보입니다 그러니 빠드득 양수가 터지는 격렬한 진동에 놀라지도 마세요 감지되는 균열은 변이를 마친 유전자의 숨비소리니까요 볼모의 땅에 뿌리내려 불멸하는 만대불후작의 탄생이니 고귀하게 생각하셔야 해요 천년을 거슬러 하얀 꽃잎 흐트러진 그루터기로 거듭 나 가난한 자의 주린 배를 채우고 곤고한 이의 쉼터가 되는 우주의 중심,땅꽂이를 간지르며 환생하는 천년을 사는 돌이랍니다 겨울 밤 저무는 창가에서 별이 뜨기를 기다린다 별이 뜨면 꿈을 꾸는 사람아 자박자박 젖어드는 폐부를 찢는듯한 육중한 고독에 호젓이 눈시울 붉히지 마라 숭숭 구멍 뚫려 서걱이는 가슴에도 갈맷빛 파도의 추억은 푸르게 푸르게 자라나 짙 푸른 별로 뜬다 외로워 마라 총총한 순백의 별자리도 회색 낯빛의 흐느낌으로 모로 누워 숭덩숭덩 목 울음 삼키며 뼈 아픈 그리움의 노래를 불렀다 벌목으로 황폐해진 벌판 날 선 그림자 세워 울부짖는 동야의 거친 숨소리도 알고보면 홀로 선 외로움을 감추려는 고도의 위장술이다 그러니 교묘한 전술에 추포당하여 오열하지 마라 곰팡이 처럼 피어나는 고독에 모혈하지마라 한 줌 두 줌 먹빛 고독의 별을 따 묵향의 향기로 개명하면 따스하고 섬세한 살빛 동야가 소환되어 반짝이는 별의 향기 살빛 향기 품은 별이 우수수 쏟아져 내리리니 사람 냄새가 그리우면 나는 장으로 간다 입담좋은 그녀의 구변에 시장통이 요란하다 키 158cm 몸무게 70kg 불룩한 배를 스캔하면 영락없는 임신 5개월 365일 5개월인 그녀의 배는 장날마다 만삭 콩나물 두부 깻잎장아찌 고추절임 저가의 경매에도 그녀의 전대는 입을 활짝 벌리고 다섯 살 짜리 손녀도 얼굴 색 변한다는 천원짜리 지폐를 날름날름 잘도 집어 삼킨다 인심좋은 녀편네 풋나물 팔듯 천원짜리 두 장이면 듬뿍듬뿍 덩치만큼 후한 덤에 봉다리는 토하기 직전인데 더 달라 입 벌리는 밉상맞은 아낙들 " 마트가서 사. 천원짜리 덤 자꾸 손 내밀면 엄마 인생 서글퍼 " 건넨 봉지 낚아채며 암팡진 속사포로 조크를 날린다 좌판은 박장대소, 배꼽빠져 실신하기 직전이다 인기 폭발인 그녀의 구변에는 현란한 가위질의 엿장수도 울고 갈 판 사람 냄새 풀풀나는 어런더런 북새통 좌판에서 할머니는 꽃순이 나는 웃순이 오늘 그녀의 배는 얼마큼 불러올까 사람 냄새 그리운 날 만삯인 그녀를 만나러 나는 일산 장으로 간다 노을 이보게 술 한잔하세 어허 어쩌나 나는 이미 거나하게 취한 걸 활활 타는 내 모습 보이지 않는가 소살 대는 바람과 한 잔 낮아지는 나무와 또 한 잔 무너진 자존감에 가슴 뜯는 친구 위로하며 한 잔 두 잔 휘휘 저었더니 이리 취해버렸다네 취한 내 모습 좋아 보이지 않은가 불혹의 나이에 골 깊이 패인 훈장 아닌 옹이를 미간에 박아놓은 저 친군 발바닥에도 옹이가 박혔다더군 자네는 무슨 하소연을 하고 싶은 겐가 인생사 별거 없다네 그저 흐르는 물처럼 흘러 흘러 가면 되는 거라네 나를 보게나 먹구름에 가려 잔뜩 찡그렸다가 바람에 숨어 펑펑 울기도 하잖는가 오늘처럼 이리 취하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나 산수유 연가 내 일찍이 널 사랑한다 한 적 없으나 척박한 땅 봄의 전령으로 화사하게 피어나 하늘하늘 꽃물들이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천상의 선물일까 유혹의 날개를 단 황금 빛 고운 화관은 소살대는 바람속 비집고 영원불변의 사랑으로 아낌없이 아낌없이 순정의 속살틔워 세월 내내 흐드러지게 점점이 불 밝히는 봄 밤의 점등식 노숙자를 연대하다 모란역 2번 출구 앞 인도를 점령한 무허가 가옥 어느 생의 행각일까 낡은 매트리스에는 세상과 단절된 유배 자의 고독이 흐른다 금싸라기 땅을 점령 제약 없이 경계 없이 새삼 부러울 것 없는 풍요의 행적에도 화해할 수 없는 빈곤한 희망 허무한 절망이 옆구리 터진 베옷을 입고 누워있다 어느 누군들 절망의 허파를 이식하고 싶었을까 마는 고독한 유배 자의 새우등에서 야윈 기억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내린다 가끔은 곰팡이 핀 절망을 씻고 밤하늘의 별을 세며 별빛에 누운 기록 하나쯤은 훔쳐내 보기도 했음 직한 남루한 홈리스니스 기울어지는 나의 모습이었다가 너의 모습이었다가 무언의 공허를 유발하는 처연한 자화상에 시린 통증의 바람 몰아 친다 이 순간은 노을빛마저 섧다 늦더위가 남았다지만 이불을 끌어다 당기는 잠결의 반사적 행동 양식[行動樣式] 차디 찬 냉소의 시선을 쪼개어 온기를 포갠다 재활의 압박붕대를 칭칭 동여매어 곧추세우고픈 모호한 연민이다 대나무는 세찬 비바람에도 탄성을 유지하려 속통을 비우고 죽순은 퍼붓는 장맛비에도 파란 순을 내민다 는데 곰팡이 핀 운명의 지팡이에 선뜻 길을 내어 주지만 않았던 들 한 뼘 높이도 안 되는 낮은 세상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가치 없는 무형의 존재로 전락하진 않았을 터 그의 이력이 담긴 내용물이 빵빵한 검정 비닐봉지 먹다 남긴 소주 반병 그리고 이미 바닥을 비운 빈 병들이 세상 속에 널브러져 두런두런 아찔할 정도로 소란하다 여름 바다...추억을 말하다 하얀 모래 위에 남겨진 수많은 발자국처럼 우리의 추억도 그렇다 하늘과 바다 넘지 못할 경계의 끄트머리에서 갈맷빛 파도는 검은 기침을 뱉어내고 하얗게 부서진다 서러워 말아라 가슴을 짓누르는 기억의 단상(斷想)이 굽이굽이 바닷길을 돌아 나오면 푸른 청춘의 빛으로 뜨겁게 뜨겁게 포옹하던 바다야 소금기에 절인 솟구치는 그리움 토하며 환한 동살로 피어나라 은모래 빛 빛나는 해변 밤바다를 밝히는 찬란한 불꽃처럼 가슴에 꽃 등불 켜고 살다가 살다가 문득 외로워지면 백옥 빛 향기로 유희하며 에메랄드빛 빛깔로 속삭이던 바다야 모래 위에 떨군 추억을 밟으러 그리움 좇아가리니 꿈으로 피어난 사랑아 잠들지 말고 있어라 그윽한 목련 꽃 우려낸 그 날의 향기 찻잔에 담아 나 그대 입술 적시는 꽃물로 출렁일 테니 논골담 길 동해의 젖줄 하늘 아래 일번지 동트는 마을 파아란 하늘 머리에 이고 낮달이 슬퍼 보여도 울지 않는다 옹기종기 주린 슬픔 감추고 오르고 내린 비탈진 언덕길 얼마나 뛰어야 할까 헐떡이는 숨 몰아쉬는 숨 가쁜 여정 오징어잡이 명태잡이 떠난 배 손꼽아 기다리다 시퍼렇게 멍든 가슴 바닷물로 채우고 절멸한 뱃고동 소리 담벼락에 새겼다 고인돌 탯줄 끊고 한 생을 살다간 웅장한 족적 선사에서부터 영원으로 암각을 따라 흐른다 풍우에도 흔들림 없이 지축 흔들어 깨우는 째깍째깍 수 억 만년 이어온 장구한 태엽 소리 고고한 달빛의 유연함 잉태하고 낭랑한 의식으로 합장한 영생으로의 염원 승천하여 안식하는 불멸의 굄돌이 되었다. 혼자만의 알람 (pieta) 별일 없냐, 간밤에 꿈자리가 사납더라 안위를 빙자한 그녀의 수화 문자는 등덩쿨에 휘감겨져 몸살을 앓은 그리움이 둥덩거린다 신발장에 놓인 가지런한 신발들의 수를 세어보다가 ' 밥은 먹고 다니려나 ' 허공에 흘린 독백에 목이 메었을 게다 살아온 숫자만큼의 공허한 바람이 버적거리는 지푸라기로 더듬더듬 활자를 키우고 " 무심한 것 밥은 먹고 다니냐 " 안부를 묻는다 손수건 흔드는 짧은 입맞춤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젖은 속눈썹을 본다 지근지근 모래알을 씹다가 나비의 날개로 팔랑거리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텅빈 우주에서 밤이 새도록 울었으리라 ''사랑하는 우리 엄니 오래 사셔 '' 나부시 귀엣말 너불이면 다섯 손가락 마디마다 붉은 핏물 우려내 수많은 지문이 찍혔을 휴지통에 버려진 활자들 나열하여 음각을 새긴다 그 래 그 러 마 초저녁 선 잠결에도 행여 변방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 놓칠까 귀마개 벗고 당나귀 귀 창에 걸어둔다.  
99 (임소형 시인)나의 문학관
편집자
185 2019-01-14
나의 문학관 어린 시절 문학도가 되겠다는 꿈을 꾼 적이 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박목월 시인의 물새알 산새알 신석정 시인의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에 영향을 받고 성장하면서 한용운님의 님의 침묵 서정주님의 국화 옆에서를 가슴에 품고 감출 수 있는 문학에의 불을 지폈다 백일장 대회를 휩쓸고 시화전을 열면서 꿈에 부풀었다 입시를 앞두고 신후신장염을 앓으면서 전공을 바꾸어 교사가 되고 꿈을 접었다 곤고한 생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가슴에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불꽃을 재울 수 없어 지천명을 지나며 다시 펜을 들었다 시를 쓴다는 건 내가 살아가는 이유였고 살고 싶은 이유였다 지난 해 2018년 3월 봉놋방 동인들과 함께 펴낸 꽃이되어 바람이 되어 작가 에필로그 란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방심을 흘리고 과오를 범한 점 점 마다 속수무책 파리한 별이 떳다 나의 생은 끝났다 생각했을 때 문득 글이 쓰고 싶었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찬연이 빛나는 별도 각혈의 작위없이 빛나지 않았을 터 별을 잃어버린 누군가의 가슴에 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 화르르 안기고 싶다 」 시는 내게있어 별이다 별은 저절로 빛나지 않는다 무리를 이루어 영롱한 빛을 비추기에 찬연한 것이다 나의 문학은 외롭지 않길 바란다 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 출판 후 사실 나는 붓을 꺽었다 가장 아름다워야 할 인연이 가장 초라하고 추악하게 변질된 서글픈 배신감 때문이었다 7인의 봉놋방 식구들이 없었다면 이름없이 기억없이 수장되었을 청향 임소형 2019년 신년을 맞이 하면서 경상 일보 신춘 문예 시 부문 당선 작 광고 김길전 울컥 눈물이 났다 시인이 되고 나서 맨토가 되어주신 김길전 허남기 시인님 존경하는 김길전 시인님의 신춘 문예 당선 소식은 마치 나의 당선마냥 기뻣고 벅찼다 다시 펜을 잡기까지 일년의 시간 봉놋방 식구들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나는 영원히 펜을 들지 않았을 것이다 뵌 적은 없지만 힘이 되어주신 문학마실 고창근 편집장님께도 진정 감사함을 전하며 앞으로 남은 세월 뜻 맞는 글쟁이들과 가슴 훑는 따스한 시를 짓겠다 ◆임소형 (경북 상주출생 서울 거주) 문학광장 55기 시부문 신인 문학상 / 한국문협 종로 문인협회 회원 /시에 문학회 회원 / 전북대 사범대 졸업 / 중등교사 역임 공저: 한국대표시선 3,4,5 2018,3.봉놋방 엔솔로지 꽃이되어 바람이 되어  
98 (김설희 시인)자선 대표작 10편 file
편집자
208 2018-11-12
산이 건너오다 속을 다 비운 산이 어디 먼데를 돌아 제자리로 왔다 그가 흘린 것들이 무엇인지 어디를 돌아 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당신의 가랑이를 슬쩍 지나간 바람 같은 것 당신의 정수리에 그림자를 드리우다 간 구름 같은 것 교통사고 현장에서 누군가의 피를 밟고 지나간 발자국 같은 것 그런 시간들이 그의 속이었을까 세상 감옥을 벗어난 물렁한 산 하나가 누워있다 산맥 같았던 핏줄이 얇은 살가죽을 겨우 들고 있다 가죽의 파랑사이 흙냄새가 물씬 솟아난다 헐거워진 아랫도리에서 계곡 물소리가 찔찔거린다 속을 다 버린 산에는 슬픈 새소리마저 사라졌다 벌거숭이, 누가 어디를 만져도 부끄러움이 없다 헐렁한 산은 이제 눈을 감고 지나온 대지에 깊숙이 뿌리박을 것이다 그리고 산은 다시 산으로 건너갈 것이다 어느 연주회 손가락 지문이 건반을 부지런히 건너다닌다 지문의 흔적 따라 운율처럼 돋는 소리 눌린 건반들 웃음이 자지러진다 울음이 까무러친다 저렇게 기절하는 것들 한 땀 한 땀 잇대가며 생의 긴 끈을 만들다 웃는다 운다 음악은 끊임없이 연주되고... 꽁지 가지에 앉고서도 저렇게 꽁지를 흔드는 것은 새로 앉은 가지의 무게를 재는 것일까 가고자 하는 다른 방향을 재는 것일까 몸의 가장자리 그러나 몸의 중심 어둠 한 벌 털어내고 햇살자리에 앉는 순간 바닥을 가리키는 꽁지 드디어 흔들리는 가지와 새가 균형을 잡는다 꼬리를 아래로 늘어뜨린다는 것은 비로소 평안해진다는 것인가 그 자리에서 한참 가장자리를 털다가 하늘 한 번 보고 다시 꽁지를 아래로 내리는 새 견고한 유리 호텔 온탕에서 유리 밖을 본다 먹구름이 하늘을 덮은 채 어디론가 떠간다 시커먼 바람에 소나무 대나무 가지 채 흔들린다 대나무 밑에 작은 풀들도 몸서리친다 비마저 뜀박질이다 초롱꽃도 불안한 종소리를 낸다 구름이 검은 한 바람은 멎지 않는다 유리 밖의 일이다 아니 유리 안의 일이다 수증기가 낮게 피고 늘어지게 피로를 푸는 사람들이 눈을 감고 있다 물속은 봄날처럼 늘 푸근하다 눈은 감을수록 이기적이다 차가운 비가 서로 엇갈리거나 마주치거나 구름이 어디로 흐르거나 사라지거나 낮은 풀들이 소문 쪽으로 눕거나 쓰러지거나 감은 눈을 뜨고 싶어 하지 않는다 쏠리는 바람은 빨간 파란 녹색 현수막을 흔든다 00당 00당들도 같이 능청거린다 저 먹구름이 언제쯤 벗어나려는지 바람은 언제쯤 잦아질지 감은 눈은 언제쯤 뜨려는지 곧 선거일이 다가온다는데 냉장고 수리하는 날 지상의 코드 하나를 물고 날마다 속을 휘저었어 온 몸은 뜨거운데 뭔가 허전했어 김치 된장 마늘 배추 무... 거침없이 먹었어 먹을수록 훈기는 감돌지 않고 오히려 차가워져 막 벌어지려는 장미꽃처럼 뜨겁게 불타오르고 싶어 뜨거워지고 싶어 막무가내 차게 하는 것이 탯줄 같은 끈 하나를 잡고 있는 이유일까 시린 손으로 무의 성질 병속 내용물 수박의 질량... 어루만지던 시간이 얼마인가 전신인 냉매가 사라지고 구리선마저 삭는 줄도 모르고 허공에서 탯줄이 어디 있는 줄도 모르는 잎 하나가 끊어진 거미줄 한 올을 잡고 달랑거린다 공중이다 사방이 바람이다 어느 틈 기척만으로도 움츠러지는 바싹 오그린 몸이 매달려 있긴 땅이 멀다 하늘도 구름도 아득히 멀다 삶 한 장이 보일 듯 말 듯 한 오라기를 부여잡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깊이 흔들리는 허공 저 허공을 할퀴는 것이 내 놓지 못한 목숨일까 가느다란 숨을 죄는 바람일까 언제 녹아내릴지 모르는 한 생이 어지럼증 뱀딸기에 나비 한 마리 앉았다 그 사이에 새소리 눌려 있다 바람분다 뺌딸기와 새소리와 나비가 함께 흔들린다 와와 무밥 칼에 베인 자국들을 잘 안쳐야 해 냄비바닥이 안 보이도록 층층 눕혀야 해 방어의 첫 방법은 앞으로 다가 올 불길의 높이와 세기를 재는 일 그리고는 식은 밥을 상처 한가운데 가만히 얹어야 해 한 톨의 밥알도 바닥에 닿지 않도록 그러면 밑의 것이 위의 것의 머슴이 되지 아래서 받쳐주거나 밖으로 밀려나거나 하는 동안 아랫것들은 감정(憾情)의 충돌이 잦지 바닥을 경계라 해도 될까 불길에 칼자국들이 뜨다 가라앉다 남은 물을 죄다 짜서 맞서는 동안 불길은 그치지 않고 검게 탄 무는 제 속을 새까맣게 토해놓지 도마뱀의 잘린 꼬리같은 냄새를 풍기며 한 고을을 뒤덮지 그 때쯤이면 식은 밥도 냄새로 범벅이 되지 사실 무의 감정(感情)은 예리한 칼날에 몸이 잘릴 때부터지 감정은 경계가 없다 라고 냄새가 흘림체로 온 마을을 휘갈기며 돌아다니고 있어 가시 끝도 자라면 둥글어진다 꽃 진 자리가 가시 끝이다 계단 끝에 걸쳐진, 막 시작한 아이의 걸음같은 배꼽 하나 맺힌다 무시로 바람이 다녀가는데 배꼽이 커진다 이따금 비가 놀다 가고 해의 콧노래가 자박거리는데 떨어진 꽃을 찾아가는 길처럼 부푼다 그럴수록 탯줄과 멀어진다 멀어진다는 것은 자란다는 것 자란다는 것은 장벽이 많아진다는 말인가 보호해야 할 것들이 늘어난다는 말인가 커진 배꼽의 기원을 생각하는데 황금빛 탱자 향이 부르터 올라 가시 끝이 그만 둥글어진다 가장 가벼운 날 찻물을 끓여요 찬물이 끓는점을 찾아 가는 동안 화장실을 거처 뒷문으로 들어오는 가을을 잠깐 만나고 돌아온 사이 탁자위에 얹어 둔 가방이 사라졌어요 악어가 끈덕지게 물고 있던 볼펜 두 자루 카드 두 장이 든 지갑 해 넘긴 수첩 한권 올해 수첩 한권 자동차 면허증 단발머리사진 주민번호 시집 한권 안경 선글라스 USB 두 개 ...... 악어 한 마리가 나에게서 멀어졌는데 달아오른 물이 화끈거리고 뜨거운 수증기를 뿜는 주전자는 덜컹거리고 녹차를 기다리던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없는 가방을 찾는데 닫힌 문마다 끓는 물소리처럼 들썩거리고 나의 눈과 손 나의 재산 나의 역사가 나를 두고 나를 벗어났는데 차(茶) 대신 가방을 들고 나간 앞니 하나 빠졌던 사나이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어디까지 나를 데리고 갈까 내가 지배해온 악어 한 마리가 나를 떠난 날 나를 그물처럼 옭아매고 있었던 악어 한 마리 에서 내가 벗어난 날  
97 (김설희 시인)나의 문학관 및 약력
편집자
207 2018-11-12
나의 문학관 막상 나의 문학관을 생각하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 어릴 때는 그냥 이것저것 읽었고 글쓰기를 마음에 둔적은 없었지만 늘 긁적인 기억이 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서 내 속에 뭐가 움찍거렸다 도서관에 가고 시공부 모임에 들고 회원들과 공부하고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이십 년 전의 일이다 그때는 모든 것이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귀한 모습들로만 보였다 그냥 보이는 그대로 아름다운 모습만 썼다 긁적이는 것들이 서정적인 시들이었다 그걸 시라고 생각했었다 글을 쓰기 위해 만나는 그 날이 제일 좋았고 오로지 나만의 시간임에 틀림없었다 그렇게 시를 쓰며 평범하게 살아가다가 문득 큰 병마가 찾아왔다 난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신을 잃고 현대의술에 몸을 맡겼다 바다를 건너갔다가 다시 돌아왔는데 내가 달라졌다 시각이 달라졌고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졌고 숨 쉬는 방법도 공부했다 그때부터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고 한자리에 오래 머물러 그 자리를 샅샅이 살피는 일에 시간을 소비했다 그러면서 시를 전과 다르게 쓰게 되었다 그 전에는 그냥 그림처럼 내가 본 사물의 앞부분을 묘사했다면 지금은 앞보다 뒷면 측면 또 그 속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사물의 안 보이는 속을 더듬어보고 측면이 하는 얘길 살피게 되고 뒷면의 숨은 것을 찾아보게 되었다 사물이 하고자 하는 말을 내가 대신 받아 적고 또 사물을 빌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한다 사물의 어느 것을 보아도 생로병사로 이뤄져있고 언젠가는 가게 되는 길이 정해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내는 아무것도 아닌 그저 먼지 한 톨에 불과하다는 우리 인간들이 아옹거리는 세계에 버티고 있는 우리를 쓰게 되었다 아무리 이 우주에서 용을 쓰고 악을 쓰고 선을 베풀고 살아도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먼지 한 톨이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희망적이지 못하거나 슬프거나 가라앉거나 눅눅한 날씨같은 시들이 많다 이따금 내 시가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앞으로 좀 더 쉽게 써서 독자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 그러나 내 틀이 쉽게 바뀔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좀 더 깊은 시를 쓰고 싶다 김설희/ 이메일 seal0308@hanmail.net 시집 「산이 건너오다」  
96 (허남기 시인)자선 대표작 10편 file
편집자
454 2018-10-11
가을을 부르고 있다 처마 밑 흑백 사진 액자 속으로 붉은 치마자락이 펄럭이고 있다 그늘을 접어버린 추색 마블링은 노랗게 익은 탱자나무 사이로 시큼한 향기의 가을을 부르고 햇살을 비비며 술술 익어가는 퇴색된 신록의 섬섬옥수 손길같은 푸른잎을 삼키며 가을을 뱉어낸다 풀벌레의 울음을 타는 충만한 색깔과 겸손함으로 바람개비를 돌리며 내 마음도 익고 가을도 익어간다 할머니 할머니는 6.25때 피난 가신 분이다 이엉 섶짝 무우 구덩이에 궤종시계 숨겨눟고 쌀 몇 되박 봇짐 짊어지고 머리에 쟁개비*이고 가셨다 메카시즘에 연루 될까봐 한숨 쉬시며 소달구지는 소리나서 안된다고 발소리 죽여 맨발로 가셨다 *쟁개비:무쇠나 양은 따위로 만든 작은 냄비 새책 받는 날 잠못이루는 밤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것이 눈 꺼풀인데 그리 무겁지않다 내일이면 새책 받는 날이기에 책 꺼풀은 뭘로하지 황지로 할까 비닐로 할까 헌책은 동생이 딱지를 만드네 다쓴 공책으로 해도 될터인데 날이 밝자 마자 일찍 학교 가야지 새책 받으러 시작이 반이거든 물수제비 물길을 뚫어 홀가분히 마음을 비운다 날개를 접은 바람들이 모색한 동그라미의 실체가 빙그르르 물 위를 걷는다 휑하니 나이테의 그리며 궤적을 소멸시킨 순간의 느낌이 황홀하다 그 물결의 마루에서 쾌감을 맛보는 찰나 뭇사람의 마음을 꽤뚫는 성찰의 순간이 아낌없이 스친다 5월 햇살을 잉태한 초록이 온다 빛깔로 소묘된 바람이 불면 새벽 이슬 머금은 오월의 눈빛이 목이 긴 사슴처럼 영롱하다 이것은 실로 아름답고 싱그러운 눈길이다 오월의 초록 행렬을 시샘하는 바람을 곁들인 물상들의 재롱이 치렁하다 뱁새의 휘파람 소리에 격정을 추스리지 못한 오월의 제 모습은 가눌 수 없는 물결로 실록을 물들인다 봄날 따뜻한 햇살로 구워낸 연두가 아름답습니다 겨우내 앓은 산통으로 파릇파릇 새싹을 피워 낸 아름다운 묵은지 맛으로 봄을 삭힙니다 초록빛 가득히 청 보리밭 거닐듯 한없이 마음이 풋풋합니다 가도 가도 환한 웃음이 가득한 봄날은 늘 날개짓이 푸릅니다 봄길 봄은 늘 뺍쟁이*가 누운자리를 밟고 지나간다 떼지어 수북히 누운 만병 통치로 가는 그 길은 가깝기도한 먼길이다 비탈길이거나 오솔길이거나 밟혀 수모를 격은 만큼 맛이나 효능도 발자국의 내력 만큼이나 훤하다 원초적 웃음이 열린 닳아 빠진 고샅길이 사퉁팔달이다 그래서 그들은 일정한 너비를 가진 입맞춤한 길이 싫다 그 길이 내길이 아닐지라도 물흐르듯 정도(正道)이고 싶다 *뺍쟁이:질경이의 방언 강자의 법칙 우리 마을 양계장 손자놈이 샘통을 부린다 눈깔 사탕 한 봉지로 대장 노릇 할때 장난감 나무총으로 동무들을 난사한다 동네 개구장이들이 나 뒹군다 한 놈도 살아 남지 못한다 움직이는 놈은 사탕이 없다 무서운 강자의 법칙이다 반상회 공평한 세상이 손짓하는 날 예수도 재림하고 석가도 강림한다 밝은 세상의 이웃들이 반상회 모이는 날 성인군자 다 모였다 자유 평등을 외치며 세상사 의논하려고 고리타분한 공회당이 아닌 마당놀이 세상으로 모여 소통하며 노래한다 필연적(必然的) 늘 푸른 도우미들의 아우성 하늘을 향해 광합성을 하는 그들에게서 나는 그늘을 가졌다 초록의 향기 너머로 시시각각 빛과 바람의 연주로 반드시 분주한 자활을 진행중이다 한결 내심 여여한 물상들이 몸체를 분해하여 읍소시킨 후 그들과 서로 팔로우를 시작한다 이것은 군유 (群有)의 도출과 필연적 섭리의 뿌듯함이며 현실을 반영(反映)한 창출이다  
95 (허남기 시인)나의 문학관 및 약력
편집자
366 2018-10-11
나의 문학관 문학은 행복을 추구하는 예술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삶의 의미이자 목적이며, 인간 존재의 완전한 목표이자 지향해야할 지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시를 쓴다는 그 자체가 자신의 존재를 밝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나를 표현해 내는 날개 짓 이기도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답기 만하던 어릴 적 시각은 참으로 깨끗하기도 합니다 시(詩라)는 멋진 창작 예술이 참으로 기쁘게 느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또 비우고 참다운 삶의 즐거움과 가치를 느낄 때 그 모든 것이 아름다울 뿐입니다 -시는 마음의 그림이다- 나의 분신과 같은 것, 제대로 실현이 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고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입니다 김삿갓과 같은 풍류는 아닐지라도 그 자체가 행복을 가져다주는 참 좋은 것임을 알고 많이 웃고 즐기며 마음을 비우고 유유자적하는 것이 나의 문학관이라 감히 말씀드립니다 행복을 찾기 위한 예술 행위는 끝이 없는 법, 그 출구를 마련하기위해 예술과 문학의 매력에 이끌려 공통분모를 찾으려 노력하는 글쟁이가 되려고 합니다 항상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공부하는 마음씨 좋은 시골의 이웃 아저씨가 되기 위해 오늘도 질주하렵니다 말년의 행복과 내일의 터전, ‘채약산 산방’을 위해 술잔과 감히 문학의 교감을 나누며... 허남기:경북 영천 출생<문장21>등단 <문학광장> 신인상 한국 문협 경북지회 회원/영천문협 편집국장/시에문학회회원 <문학광장>시분과 심사위원.편집위원.영남지부장 시객의 뜰 문학회 기획국장  
94 (박은주 시인) 자선 대표작 10편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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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 2018-08-10
향기 사람이 꼭 똑똑해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모르는 게 얼마나 많으냐 셈은 느려도 헤아릴 줄 알고 걸음이 느려도 가면 되지 사람이 꼭 말을 잘해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말 다 못하는 게 얼마나 많으냐 이 말은 아끼고 저 말은 버릴 줄 알면 되지 사람이 꼭 잘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울려 가는 길에 길이 있듯 서로 통하면 되지 웃을 때 웃고 울어야 할 때 울 줄 알면 되지 때로는 변덕과 상처로 폐 끼치며 그렇게 살면 되지 서로 그러면 되지 씨앗이 저를 잃지 않는 소명을 다하듯 내가 그저 나로 사는 일이나 그대가 그대로 사는 일 어디, 그만한 향기 있으리 낙하落下 나뭇잎이 지고 있다 지지 않으려, 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며 돌아갈 곳 없는 나뭇잎이 지고 있다 나무는 벌써 가지를 털고 흔적을 지우는데 아직은 낙엽이 아니라고 아직은 그럴 일이 아니라고 돌아갈 곳 없는 나뭇잎이 몸부림치고 있다 푸른 날의 명예도 시간을 되돌릴 순 없어 부귀와 권세도 시간을 되돌릴 순 없어 누구나 돌아가고 싶은 시간들이 피는 나뭇잎 같고 누구나 돌려놓고 싶은 시간들이 지는 나뭇잎 같네 그러나 시간은 굴절을 모르고 과거는 멈춰버린 기억일 뿐 어제는 푸르게 웃고 있던 이파리 오늘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허공을 헤매고 있다 귀하고 아득하고 깊은 무너져 내린 흙더미 속에서도 싹을 틔우는 씨앗 누가 그의 숨, 소리 들었는가 어느 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에 그 숨, 소리 누가 들었는가 깊이가 깊이를 더해 깊어지는 그 일을 누가 아는 가 창밖에 나뭇잎은 흔들리는데 늙은 어미를 놓지 못해 마지막 숨줄을 잡고 있는 병상에 저 젊은 목숨 하나 누가 그의 숨, 소리 들었는가 그 아득한 숨, 소리 누가 들었는가 창밖에 나뭇잎은 지고 있는데 아득여 슬픈 그 숨, 소리 어미의 눈물로 줄인 키의 길이 속에도 살고 있어 굽어버린 등뼈의 곡선 따라 흐르다가 닳아버린 무릎 위에 피고 있네 네가 쉬는 숨 내가 받고 내가 쉬는 숨 네가 받으며 그 아득한 숨, 소리 숨줄로 주고받는데 무엇이 이보다 더 귀할까 무엇이 이보다 더 깊을까 결핍 -욕망에 대하여 꽃이 필 때 꽃나무가 핀 듯 눈이 속았다 나무 이파리가 흔들릴 때 나무가 흔들리는 듯 눈이 속았다 그러나 누가 누구를 속인 일은 없었다 제철 아닌 꽃에 마음 주고제철 아닌 과일로 허기를 달래려 했다 그러나 애당초 무엇이 무엇을 채울 수는 없었다 잡힐듯, 잡힐듯, 잡히지 않는 결여와 좌절의 간극에서 눈이 멀었을 뿐 무엇이 무엇을 어떻게 한 일은 없었다 다만 꽃이 피었다 지고 바람이 부는 동안 혼돈의 허기가 그 자리에 있었을 뿐 결핍2 -허무에 대하여 못 잊을 사람도 없고 지켜야할 맹세도 없는데 쓸쓸함이 물길처럼 드나드는 동그라미 하나 어느 날은 눈물 속을 걷고 어느 날은 공허 속을 걷네 때로는 슬픔 같고 때로는 바람 같아 젖었다가 흔들리다가 하는 동그라미 하나 어느 날은 불길에 꿰이고 어느 날은 서리에 꿰이네 바람이 물길처럼 드나드는 동그라미 하나 아무것도 머물지 못하는 동그라미 하나 영원히 빠지지 않는 마법의 반지가 되어 숙명처럼 가슴을 꿰고 있는 동그라미 하나 그, 동그라미 하나, 어쩌지 못해 나방은 죽을 줄 알면서도 불로 뛰어들고 사람은 사랑에 기대려, 기대려 하네 외로운 눈 산수유 열매가 떨어진다며 부음나무 이파리들이 소곤대는데 꽃술을 여미던 개망초 강아지풀과 눈을 맞춘다 호박넝쿨이 잎을 더 넓혔다고 부추가 꽃대를 올렸다고 텃밭에 사는 풀들이 사각사각 떠들고 있다 세상에 살 때 몰랐다 소리가 없이도 소리를 내는 것들이 서로 닿아 소리가 되는 걸 꼼짝도 않던 고구마 이파리들이 발자국 소리에 사라지는 황구렁이 뒤에서 터줏대감 오랜만에 몸을 말리러 나온 거라며 늘어진 가지나무 이파리와 말을 섞는다 하늘가에 파란 구름 도랑가에 물풀들 서로 닿아 흐르는데 바람에 스치운 박하 향기 서로 만나 구르는데 벌 두 마리 공중에서 꽉, 껴안고 있다 윙윙, 서로를 보듬고 있다 사람의 눈동자에도 외로움이 산다는 걸 그 외로움 사이로 망막이 빚어내는 눈의 그리움은 작고 여리고 가늘며 투명한 것들 다 볼 수 있다는 걸 세상에 살 때 몰랐다 눈물을 읽다 눈물은 그냥 눈물이 아니다 말 대신에 쏟아 놓는 말 마음 대신에 쏟아 놓는 마음이다 눈물은 그냥 흐르는 게 아니다 울고 난 뒤 허기가 붙잡고 있는 삶의 의지가 눈물을 따라 나오는 것이다 인생은 눈물 속에 길을 숨겨 놓고 딴청을 피우지만 발이 제 발을 밟으며 걸어갈 때 눈물은 저의 냄새를 저으며 길을 터주는 것 그러나 길은 선명한 것이 아니므로 눈물은 가벼운 것이 아니므로 눈물을 읽어야 한다 한량없는 사람의 사연을 읽듯 무량한 세월의 고해를 읽듯 운다는 건 그냥 우는 게 아니다 옷을 입고도 발가벗는 일이다 고유한 그루터기가 살아 있는 그 길을 따라가 보면 눈물에는 숨이 붙어 있다 눈물에는 길이 숨어 산다 밭에서 호미를 잃어버렸다 비가 온 다음날 이었다 밭에서 호미가 사라져버린 건 나도 그렇게 어디론가 가고 싶었다 누군가 손을 내밀 때마다 흔들리며 멀리 가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꽃 피우는 풀들의 이름 없는 시간처럼 몸살을 앓듯 꿈을 앓았다 그러나 세월이 그 많은 수레바퀴를 굴려가는 동안 어디로도 가지 못한 채로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그런 사이에 비가 내렸다 비 사이에서 풀을 메고 난 후 호미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없다 나무 밑동을 만나다 만약 내가 그 길을 걸으며 나무 밑동의 숨소리 듣지 못했다면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앉아있는 몸뚱어리 날아간 나무 밑동을 무심히 지나쳤다면 그 깡깡 말라붙은 나무 밑동에서 푸르게 걸어 나와 웃고 있는 어린 이파리는 보지 못 했으리 그 이파리 오래된 어무이 부엌에서 밤을 재우고 새벽을 열어 길어 올리던 아침처럼 눈부신 걸 몰랐으리 수없이 쓰러져간 세월의 가슴, 가슴이 하나의 멍울로 돋아 멍울, 멍울 포진을 이룬 슬픈 나무 밑동에 대하여 베이다, 쓰러지다, 잃다, 숨죽이다의 동사로 바뀐 일생 다시 바로잡아 나무의 키를 뻗어보려는 용기를 알지 못 했으리 만약 내가 목석처럼 그 길을 지나갔다면 지독한 뚝심으로 버텨 낸 재생의 시간을 품었던 나무 밑동의 뜨거움을 알지 못 했으리 길섶 오둑한 곳에 바람에 흔들리는 잡초가 나무 밑동에 기대어 듣던 어린 이파리 숨 쉬는 소리 아, 들을 수 없었으리 연탄불을 갈다가 -대구참여연대 벗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에 마음 아파하던 오규섭 대장 어머니 때문에 가슴 아프다며 시를 써 달라던 근식 오빠 밥은 적게 먹고 일만 많이 하는 것 같은 채원이와 강금수 생각해보니 모두 빼빼 말라 밥을 많이 먹었으면 싶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세상사에 사람을 위하여 세상에 투쟁하는 그들 그늘진 곳을 밝히는 촛불들이다 우리가 마음 놓고 일 하고 밥 먹고 차 마시는 것 함께 꿈을 꾸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그대들 덕분이다 언제 한 번 연탄불에 고등어 굽고 구수하게 숭늉 끓여 따끈한 밥상 한 번 차려 주고 싶다 연탄불에 고구마 올려놓고 나면 느껴져 오는 이 달달함 숟가락 위에 얹어 주고 싶다  
93 (박은주 시인)문학관 및 약력
편집자
443 2018-08-10
문학관 사람은 누구나 말과 행동으로 자신을 다 표현할 수 없다. 시는 그 표현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언어로 표현해 내는 것이다. 나의 사상과 내 삶의 이야기와 내가 살아가는 시대의 현실에 대하여 이야기 하며 또한 미래의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 하여야 한다. 그것이 곧 시의 생명이고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삶은 성찰 없이 발전할 수 없고 내 삶의 성찰과 시대에 대한 나의 성찰은 곧 나의 시다. 박은주/대구 출생 2007년 아람문학 등단 시집『귀하고 아득하고 깊은』  
92 (문해청 시인)자선 대표작 15편 file
편집자
711 2018-05-15
1.[어머니에 대한 시인의 기억] 대구 남구청 민원실 호적계에서 어느 날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했지만 나를 낳은 어머니의 생년월일도 주민번호도 없었다. 2007년 6월 27일 호주제 폐지 시행일을 기점으로 이 전에 돌아가신 사람은 생년월일, 주민번호는 알 수 없다했다 몇 년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가셨지만 나의 두 눈에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나의 생모가 언제 돌아 가셨는지? 너무 궁금했지만 이제 나의 눈물은 마르고 없었다. 자연과 인간을 존엄 존귀하게 참 된 사랑의 감성과 감흥 세상을 꿰뚫는 통찰력으로 촌철살인의 時창작을 말하면서 태양을 먹는 사막의 나그네처럼 사랑의 목마른 갈증을 풀지 못하고 야자수, 오아시스를 찾는 중생처럼 어머니에 대한 시인의 기억은 과거에 머물고 있었다. 나를 낳은 어머니는 어릴 적 세상을 떠나가셨다 했던 아버지의 말씀만 믿고 살았다 청년, 성인이 되어 결혼하고 어디에 살아 계신다는 소식에 어느 날 이재용 남구청장의 조언으로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 생모 김계연을 찾았고 만났지만 이복남동생과 살던 모습 볼 때 그 땐 정말 너무 서먹서먹했다. 어머니는 7월 무더위에 냉수에 밥을 말아서 새우젓갈 한 젓가락 된장에 풋고추 찍어먹던 그 가련한 모습을 볼 때 가슴 철렁거리는 찡한 마음은 1994년 7월 총파업 당시 긴급체포로 구속 되어 1년 쯤 감옥 살고 나온 상신브레이크해고노동자로 자주 오가지 못했던 것이 변명 일 수밖에 없겠지만 하루하루 포장마차 하면서 밤낮 가정생활 쪼들렸던 그 시절 어머니에 대한 시인의 기억은 빛바랜 낙엽 잊혀 진 추억이 되었다 2.[미8군 봉덕동아이들] 미8군 봉덕동아이들은 어린 시절 볼거리가 많았다 가끔 미군장갑차를 보고 미군지프차에 군용트럭을 보며 때때로 정찰기가 날고 코브라잠자리비행기가 날아가는 미8군 봉덕동은 참 요란했다 어린 시절 미8군 담장 따라 이중철조망 담장 길을 따라 파리한 눈빛에 까만 얼굴로 얼룩무늬 개구리군복을 입고 군홧발 딱딱한 소리 내며 까만 얼굴의 하얀 이빨로 쫑알쫑알 거리는 미군을 보면 미8군 봉덕동아이들은 "깜디" "코쟁이" "양키"라고 외치고 놀려 댄다 둥그런 눈빛의 놀란 얼굴 까만 얼굴의 성난 이빨로 쫑알쫑알 거리고 씩씩대며 시커먼 양키손이 달려와 때리면 미8군 봉덕동아이들은 "깜디" "코쟁이" "양키"라고 외치고 연탄재를 굴리며 짱돌을 던졌다 토끼눈빛으로 놀라서 겁먹은 얼굴로 달아나는 미군을 보고 "만세" "만세"하며 좋아했던 그 시절 지금도 생각이 난다 아득하게 세월은 흐르고 흘러 미8군 봉덕동아이들은 이제 청년노동자가 되었다 매일 같이 야근을 마치고 통근버스에 지친 몸을 실고 미8군 캠프워크 미8군 캠프헨리를 지나 갈 때면 아직도 미제사탕을 빨고 미제껌을 씹고 걸어가는 미8군 담장 길 너머 대구시 남구 봉덕동, 대명동의 미국이고 "깜디" "코쟁이" "양키"의 미군땅이다 어찌해서 남구만 그러하랴 "이천동" "대봉동" 중구에서 동구 동촌 "K2공군기지" 경북 왜관 "캠프캐럴"까지 우리가 사는 마을은 살기 좋은 방방곳곳마다 양키치외법권지역으로 양키군바리가 양주 마시고 양담배연기를 내품는 이중철조망 군사경계지역이고 이 땅의 민간인출입금지구역이다 오늘도 야근을 마치고 생산의 지친 몸은 통근버스에 졸며 미8군 캠프워크 미8군 캠프헨리를 지나갈 때면 어린 시절 함께 놀았던 미8군 봉덕동아이들이 생각난다 미8군 봉덕동아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자기 가정을 지키며 살고 있을까 어린 시절 미8군 봉덕동아이들처럼 "캄디" "코쟁이" "양키"라고 외치고 미군을 놀려대며 살고 있을까 자기 일터나 마을에서 시커먼 양키손이 달려와 때리면 연탄재를 굴리고 짱돌을 던지며 "깜디" "코쟁이" "양키"라고 외치고 토끼눈빛으로 놀라 겁먹은 얼굴로 달아나는 미군을 보고 "만세" "만세" 하며 좋아했던 어린 시절 미8군 봉덕동아이들처럼 미8군 봉덕동아이들은 지금도 그렇게 잘 살아가고 있을까 3.[이천동 골목길] 중학생 청소년시절 옆구리에 신문을 끼고 이 골목 저 골목 내달리며 새벽을 깨우던 기억 저 편 두부나 맛있는 어묵 사려 따끈한 두부나 비지 사려 딸랑 딸랑 종소리처럼 아낙네 두 바퀴 작은 손수레 조그만 냉장통을 싣고 놋쇠 종을 흔드는 소리 예나 지금이나 딸랑딸랑 맑게 들려 와도 대봉동 미8군 캠프헨리 이중철조망 담장 따라 이천동 미8군 이중담장 길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건만 미8군 이중담장 길 따라 오늘도 돌아가는 출근 길 가버린 청춘의 내 발걸음은 왜? 이리도 무거운 건가 4.[빈 터에서] 미8군 캠프워크 관제탑을 돌아 빛바랜 붉은 벽돌 부서진 블록담장 30여 년 잡초만 무성한 빈 터에서 나의 발길은 홀로 머무르고 있다 미군병사 수화신호 깃발을 따라 코브라헬기 수송헬기 푸다다 딱딱 정찰기 웅 웅 웅 귀전에 맴돌고 미8군부대 이중철조망 담장 아래 어느 날인가 회사예배당에 모여 아리아악기주식회사노조를 창립했다 안기부개입, 교섭거부, 노조불인정 사장 자택 월담하여 양주병을 깨고 이중회계장부 빼앗은 노동탄압사건 돼지사장배가 찢어졌던 그날의 기억 첫 직장 노동자 삶의 필름은 돌고 1977년 유신독재 칼날바람은 불어 노조위원장 3년 간부 2년 감옥살이 부서진 붉은 벽돌 허름한 블록담장 노조간부 형들의 순결했던 그 투쟁 꺾어도 쉼 없이 벽을 타고 오르는 다섯 손가락담쟁이 넓은 잎사귀처럼 오늘도 밤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다 5.[조선의 어머니] 무명 학도병 의병 눈물인지 노동 현장 노동자의 넋인지 분단조국 통일열사 영혼인지 찬바람에 꽃봉오리 떨어지고 산짐승처럼 울던 4월의 밤 꿈 많은 검정교복 고등학생 친구 아버지는 죽임 당했다 언제부터 학교선생을 그만두고 대구시 팔공산 기슭에 살며 꿀벌을 동지 삼고 살려했지만 조선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조작간첩사건쇠사슬에 묶여 박정희독재 사형장이슬 되었다 뼈와 살이 으스러져 부서지고 전기고문에 검게 맨살이 터지고 피고름 피멍든 고문자국 감추려고 시신까지 탈취한 추악한 유신독재 죽음을 통곡하던 친구의 가족들 어머니의 한은 구십 평생 남았다 암울한 세상 가슴에 흘린 눈물 강단진 마음을 된장찌개 담아 고봉밥 차려주던 친구의 어머니 인혁당재건위사건 슬픈 눈물은 지금도 쉼 없이 흘러내리지만 우리의 어머니 조선의 어머니 분단 철조망을 걷는 그 날까지 참 된 삶의 그 길로 함께 가요 6.[대덕산을 내려오며] 경북 김천시 무실마을 아버지는 종손으로 태어났고 일제식민지 강제징집을 반대했던 할아버지 문경석은 청년들을 모아서 북만주로 갔고 일본경찰이 집안을 풍지박살 냈다 만주초등학교 여름방학 어느 날 아버지 문덕희는 고향에서 올라온 고모를 따라 친구가 보고파서 남녘땅 왔다가 삼팔선철조망 가로막힌 생이별로 다시는 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했고 조선반도 분단의 고아가 되었다 일제식민지 시기 와세다대학 유학을 다녀와서 김천시청 고급 간부를 했던 사촌친척집 문간방 살며 논밭농사를 아무리 지어도 머슴처럼 중학교 보내지 않아 분단고아로 상처가 깊었던 날 가끔씩 내게 말씀 할 때면 검정교복 중학시절 나는 찡한 눈물만 가슴에 담았다 앞산 대덕산을 내려오며 조선반도 휴전선철조망너머 그리운 할아버지 생각하면 부모 자식을 찢어 놓아 눈물 피고름 상처 맺힌 83년 세월 가련한 아버지 대구시 남구청 호적에는 지금도 할아버지 문경석이 호주로 있어 아버지 가슴에 대못을 박아 놓고 이별의 눈물로 살아왔던 세월 이제 참된 자주평화통일 그 날 우리끼리 만나 하나로 살아가고 싶다 7.[미8군 캠프워크 담장 따라] 앞산 대덕산을 내려오며 미8군 캠프워크 담장 따라 그 길을 걸으며 철조망 분단가시 가슴에 품고 미군부대 보초병이 지키는 사거리 신호등에서 질긴 시간을 갉아 먹고 있다 앞산공원을 내려 와서 마을로 가는 길이 여기 뿐 인가? 꼴 보기도 싫은 양키미군 미8군 캠프워크 담장 따라 이리 갈 까? 저리 갈 까? 좌로 가면 대명성당 우로 가면 보훈청 좌측도 아니고 우측도 아니다 미8군 캠프워크 담장 따라 우리의 갈 길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 지? 바로 건너가는 마을은 자주평화통일로 살맛나는 좌우가 하나 되고 북남이 하나 되는 그 길인가? 내 일생 한 생명을 걸고 미8군 캠프워크 담장 따라 그 길을 돌아 돌아가며 파아란 하늘 새털구름 품고 간다 8.[깡통] 길을 가다 울적하면 찌그러진 깡통을 차보라 세치 혀라고 빈말만 지껄이는 깡통도 자기 갈 길을 알아서 차이는 대로 굴러가는데 길을 가다 답답하면 주먹 쥔 두 손을 펴보아라 손가락뼈 마디마디 억센 군살 노동의 힘도 자기 갈 길 모르면 일터는 피땀 절은 죽음이다 9.[미8군 민들레] 미8군 이중담장 아래 피어나는 작은 민들레야 혹독한 겨울을 이기고 너는 잘도 피어나는 구나 미8군 송수탱크 아래 봉덕동 이천동 대봉동은 대구시 남구를 갈라놓은 이중철조망 분단의 땅 미8군 이중담장 따라 피어나는 작은 민들레야 참으로 고운 너는 참혹한 더위에도 칼바람 추위에도 참 올곧게 피어나는구나 미8군 담장 60년 세월 환갑 지난 육신 시들어도 밟히고 뜯겨도 다시 살아나는 질기고 강한 작은 민들레야 민초의 한을 품고 사시사철 깊이 뿌리 내리는 너의 강철 깡다구로 진정 진솔하게 피어나는구나 미8군 이중담장 아래 피어나는 작은 민들레야 캠프워크 골프장 지나 캠프헨리 미군장교 숙소 너머 이중담장 이중철조망 없는 우리 땅 식민지 남녘하늘에서 분단조국의 북녘하늘까지 너의 곱고 하얀 씨앗으로 수천 만 생명의 꽃이 피는 꿈을 오늘도 나는 꿈꾸고 있구나 10.[길 따라 돌아간다] 하루 종일 굶주리며 폐수 쏟아지는 도랑길 넘어 이 공장 저 공장 두리번거리며 전봇대에 붙은 구인 광고지 살피며 길 따라 돌아간다 공장 담벼락 구멍가게에서 라면으로 허기진 배 채우며 이 거리 저 거리 잿빛 어둠이 올 때까지 길 따라 돌아간다 눈치 보면서 빵 한 조각 물 한 모금 마시고 물량걱정 불량걱정 생산라인 따라 내 푸르던 청춘도 길 따라 돌아간다 찌르렁 벨소리와 함께 잔업은 끝나고 공단거리 종종 걸음으로 찌들린 자취방까지 홀어머니, 누이동생 기다리는 단칸 셋방살이 슬레이트집까지 길 따라 돌아간다 너도 없이 나도 없이 모두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공장도 시골도 사회도 나라도 세상살이 모든 것이 길 따라 돌아간다 그러나 돌아가지 않는 것이 있다 노동자의 일손이 내일을 약속하며 끊임없이 돌아가도 사장의 썩어가는 머리는 건강한 생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저임금의 단맛이 언제부터 언제부터 쐐기를 박아 버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너희가 자본의 족쇄 채운다해도 자본가 죽음의 길 따라 가지는 않겠다 어느 누가 외면해도 노동자의 길 따라 내일의 밝은 희망 약속 할 민주노조 공단 길 따라 길 따라 돌아간다 11.[비정규직노동자] 나는 비정규직노동자 사람들은 나를 보고 사회적 약자라고 사회 양극화의 말단에서 우리가 살아간다고 말한다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늙은 어르신과 부모에게 버려진 고아들 길거리의 노숙자와 법외 사랑하는 동성애자들 몸을 파는 자갈마당 매춘부와 정신과 신체 휠체어 장애인들 최저 생활 보호대상자와 일자리 잃어 방황하는 실업자 산업재해자와 장터의 노점상인들 찬비가 오는 날에 새벽신문배달원 아저씨와 새벽우유배달원 아줌마 골프장 캐디와 조경기사 학습지배달원과 학습지선생들 야간에 질주하는 택시노동자 덤프트럭, 레미콘 화물차량노동자는 노동 3권 노동기본권도 없는 개별사업자 사장의 껍데기에 특수고용직노동자로 이 땅에 살아가는 비정규직노동자 달동네 철거촌 세입자를 쫓아내는 비정상적인 집행관이 통하고 국민을 책임지지 않는 정부 3D 업종에 일하는 동남아 외국인노동자들은 기름때 낀 돈을 벌어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이 땅 오늘도 섬유공장의 열기 속에 3교대 주야간 맞교대근무로 마음도 육체도 생활고에 지쳐가고 가녀린 아내는 4대 보험도 없는 소사장제 개별사업자로 특수고용직노동자로 일하는 공장 이 땅에 살아남은 노동자는 850만이 아니라 1500만 노동자 모두가 비정규직노동자로 보이는 세상 국민이 일하다 병이 나고 다쳐도 무상의료 안되고 배워야하는 아픔과 상처까지 갈아 먹어도 무상교육이 없는 귀가해서 잠자야 할 집에서 임대료, 공과금 걱정 때문에 모두 살아 갈 무상주택이 그리운 나라 무능하고 책임지지 않는 정부가 민중의 삶을 참혹하게 하는 현실 백성을 무시하고 죽이는 정치로 아직까지도 사기집단의 정당정치가 판치는데 반민족 반민중의 섞은 뿌리박은 반동이 백성의 민중항쟁의 저항에도 무너지지 않고 수구보수골통의 힘만 믿고 버티고 있는데 비정규직노동자가 변혁적 노동자관점으로 사회를 보고 역사적 유물론사관으로 생각하고 아무리 세상을 보고 인간과 사물을 판단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한반도 분단의 남녘에서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다 12.[우리들 맞잡은 손] 돈내기수당에 굶주린 빈창자는 겨울바람에 유리가루 채우고 귓가는 차가워도 어께 활짝 펴고 홍합국물 소주 한 잔에 생산현장 하루 툭툭 털어낸다 하루종일 2,500개 3,000개를 찍어도 "생산라인 개수 부족하다" 조장은 울상 짓고 100짝, 200짝 씩 상자에 담아내도 "좀 더 해라" 보채는 반장 그 목소리 짜증난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1년, 2년 세월은 흘러 자동차라이트 제품생산에 온 몸은 지쳐 가는데 금형가다 유리제품 찍고 용접불꽃 튕겨 봐도 1,800도 유리가루 녹는 열기 두 뺨은 달아올라 핏기어린 눈동자 붉은 얼굴은 아려온다 희뿌연 안개처럼 화공약품 분말은 날려 머리카락 올마다 콧구멍 목구멍 서걱대고 남 몰래 물 마셔도 입안은 타는데 화공약품 유리가루 1,800도 넘어가고 붉은 도가니 24시간 눈물처럼 녹아 흐른다 이마에 흐르는 땀 두 눈에 흘러들고 수백, 수천 번 씩 제품을 찍어내는 반복되는 성형작업 근무교대 하고 나면 소금 낀 온 몸 속옷까지 다리를 감아 수돗물로 몇 번 씩 마른 가슴 씻어내도 유리공장 6년 동안 소금 땀 절은 삶 한 달 두 달을 못 가 이리 저리 찢어지고 번들거리는 불길에 떨어진 작업복처럼 금형기계 깔린 엄지손가락 으깨진 뼈마디 욕쟁이 이과장 불량소리 유리램프처럼 깨어지고 오늘도 검은 세단승용차 썩은 금오강변을 따라 비개 낀 뱃살 사장을 싣고 어디론가 달려간다 "사원을 가족처럼" 정문 표어는 떨어져 흙바람에 구겨져 이리저리 뒹구는데 퀴퀴한 쓰레기 매스꺼운 배기가스 여기 저기 구멍 난 장갑 까만 마스크로 파고들지만 우리들 맞잡은 손 굳은 살 주먹으로 분노의 입김 내품으며 우리들 노동세상 위해 1,800도 유리도가니 불길로 함께 이 길을 걸어가야 한다 13.[우리의 한 길] 세상을 바꾸는 우리의 한 길 자주와 평화로 가는 길이어라 우리의 가슴이 찢어져 슬퍼도 우리는 참된 한길을 가야하리 우리끼리 자주로 가는 그 길 천둥번개 치고 폭풍우 몰아쳐도 분단의 장벽 철조망 걷어내고 우리는 참된 삶을 살아가리라 변혁을 꿈꾸는 우리의 한 길 해방의 주인이 되는 길이어라 우리의 발바닥 갈라져 아파도 우리는 참된 한길을 가야하리 우리끼리 해방으로 가는 그 길 칼날바람 불어 눈보라 휘몰아도 굴종의 족쇄 쇠사슬 끊어내고 우리는 참된 삶을 살아가리라 14.[들불] 구미 상모동 금오산능선에 붉은 노을 빛깔로 물들면 새봄을 열어가는 농부의 손 논두렁마다 불꽃 지피우면 논두렁 밭두렁 새 까마게 타고 붉은 불길 세찬바람 휘몰아가고 썩어 곪아가는 세상 모든 것들 껍데기 쭉정이까지 싹쓸이하듯이 맑은 눈빛 농부의 꿈과 희망은 참 노동의 영근 열매를 꿈꾸고 새봄 새날 품고 사르는 들불처럼 차디찬 어둠을 활활 태우고 있다 15.[장미의 가시 사랑] 장미의 가시처럼 날카로운 가시로 세상에 탐하는 모든 것을 경계하는 사랑이라면 아침 이슬 꽃잎에 맺히는 장미의 가시처럼 자기 흠을 알고 허물을 벗는 고통으로 가슴 깊은 곳에 흐르는 눈물의 성찰이라면 장미의 가시처럼 날카로운 가시로 자신을 찌르는 아픔을 참듯이 이 땅의 평화를 위해 모든 것을 용서하는 사랑이고 싶다  
91 (문해청 시인) 약력 및 문학관
편집자
762 2018-05-15
작가약력 1961년 대구 봉덕동 출생 1988년 ~ 1991년 대구노동자문학회 “글바다” 회장 역임 노동자문예교실개최, 노동자투쟁현장의 집단창작, 시낭송, 규찰 등 연대지원 1991년 전국노동자문학회『너를 만나고 싶다』 노동詩 등단(개마고원출판사 1991년) 1992년 계간 『실천문학』 가을호 특집 [길 따라 돌아간다] 노동詩 특선등단(실천문학사) 1991년 6월부터 민족작가회의대경지회 회원(시인) 1994년 대구지역 계간문예지『사람의 문학』창간호에 [미8군 봉덕동아이들] 출품한 후 2018년까지 창작詩를 계속해서 발표함 2007년~2009년 노동현장 문예지『일터에서』노동詩 출품 2013년 이 달의 좋은 詩 {대구신문} [깡통] [빈터에서] 등 추천 됨 현재 1991년 6월(민족작가회의대경지회) ~ 2018년 한국작가회의대구경북지회 회원(시인) 2018년 3월 10일 창립 ~ 민족작가연합 회원(시인) 2014년 ~ 2018넌 분단과 통일詩 동인 2017년 ~ 2018년 햇살재가요양센터 대표 / 이동목욕차량운수노동자 2. 동인시집 및 개인시집 : 동인시집 (대구노동자문학회 “글바다” 1집) 『한라에서 백두까지 4689』 (계대학원사 1990년) 동인시집 (대구노동자문학회 “글바다” 2집) 『우리들 맞잡은 손』 (계대학원사 1991년) 동인시집 전국노동자문학회동인 『너를 만나고 싶다』 (개마고원출판사 1991년) 개인시집 『긴 바늘은 6에 있고 짧은 바늘은 12에』 (도서출판 두엄 2012년) 동인시집 『미8군 민들레』 (분단과 통일詩 2014년) 동인시집 『붉은 안경을 벗어라』 (분단과 통일詩 2017년) 3. 사회운동 / 노동운동 경력 : 1977년 아리아악기노동조합 조합원(1970년 말 대구지역 민주노조운동사 기록) 1986년~1988년 계산성당청년연합회, 가톨릭민주청년회, 계산섹션 가톨릭노동청년회(JOC) 회장 1988년 이조유리노동조합준비 중 부도, 대구노동청, 상업은행(평리동지점)점거농성 1988년~1991년 전국노동자문학회 대구노동자문학회 ‘글바다’ 준비위원장, 회장 노동자문예교실개최, 노동자투쟁현장에서 집단창작, 시낭송, 규찰 등 연대지원 부산대학교 영남권노동자대회 민주화운동 집회시위로 요추상해, 시신경망막기능손상 함 1991년~1994년 7월 9일 총파업 중 긴급구속 상신브레이크(주) 편집부, 대의원, 민주노조위원장후보로 출마 조직부장활동 중에 폭행사건 후 해고 당함. 해고자원직복직투쟁 총파업을 주동하다 구속(10개월) 되었음 (김대중민주정부 사면복권 후 부산 집회시위상해사건, 대구 상신브레이크부당해고총파업구소사건을 노무현민주정부 행자부 민주화운동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로 민주화운동자로 인정받음) 1996년 6월~ 1997년 7월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교선부장 2000년 3월~ 2004년 3월 청구교통노동조합 조직부장, 부당해고복직, 민주택시위원장선거출마 2004년 6월 ~ 2006년 9월 민주노총공공운수노동조합 화물연대대경본부 조직부장 활동을 하며 광주 하남공단 삼성전자투쟁지원 2006년~2007년 경북대학교병원 시설과 근무하며 폭력근절, 고용승계보장, 비정규직노조설립준비와 투쟁을 주동하며 천막농성을 했음 2009년 ~ 2013년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대구평통사) 2013년 6월 ~ 2018년 5월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회원 2013년~2018년 현재 : 강원도 홍천군 사회복지법인한울복지재단(현재, 남향복지재단) 솔치요양마을(남향원) 장애인상습폭행근절, 장애인폭행직원사퇴, 공공비정규직노조활동으로 부당해고 되어 강원지방노동위원회에서 3차례 부당해고 인정을 받았지만 사회복지법인 남향복지재단(대표이사 민동기)에서 원직복직 및 임금상당액을 계속 상습적 의도적 해태하여 현재까지 부당해고사건을 서면합의로 화해하지 못하고 대구법률구조공단 선임 변호사를 통한 민사재판을 진행하고 있음 [나의 문학관] [일터에서 노동하며 詩를 쓰는 동지에게] - 민족시인 문해청 -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내가 처음 문학을 좋아했던 계기는 참 단순하고 순수했던 것 같다. 1981년~1983년 육군생활하며 고향친구 편지 한통에 몇 줄을 쓰지 않고 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런 내가 1983년 9월 22일 육군 50사단에 병장만기전역신고 후 남구 봉덕동에서 성서 죽전동 논밭 예비군훈련소 아래 이사한 부모님의 시골 촌집을 찾았을 때 광경은 향수처럼 밀려왔다. 촌집마당에 황소가 음 메 울고 뒷간에 흑돼지가 꿀 꿀 거리고 장닭, 암탉이 몰려 다리며 꼬 꼬 오 꼭 꼭 거리는 풍경에 예비군들은 12칸 방안에 꽉 차 있는 광경에 깜짝 놀랐다. 옛날 촌집에서 소고기국밥장사하며 12칸 방안, 나무평상으로 날라주던 이모와 여동생의 모습에 마치 낮 선 땅에 여행 온 것 같은 기억을 돌아보면 지금은 아련할 뿐이다. 원래 건축업을 했던 아버지는 어떤 욕심인지? 장사를 하며 수성구 중동 아파트를 지었지만 건설회사가 부도를 냈고 그로 인한 후유증으로 가게, 식당 딸린 촌집, 황소, 흑돼지, 장닭, 암탉 다 팔아서 아파트공사를 했던 일꾼들 임금을 정리하고 성서 감삼동에서 새롭게 고래고기식당을 열었다. 그 당시 기울어진 가정에 도움이 되려고 연탄불에 적쇠로 고래고기를 꿉고 장사를 도왔으며 1983년 겨울 리어커로 포장마차를 제작해서 성당동 주공아파트사거리에서 국화빵, 땽콩빵장사를 했지만 귀갓길에 화덕이 가열 되어 포장마차를 불태운 일도 있었다. 1984년 봄이 되어 공공기관취업하기 위해 학원을 꾸준하게 다녔지만 성서 죽전동 연지무도장 현대자동차운전교습소상가에서 돼지국밥식당을 하던 어머니께서 건강이 좋지 않아 학원 다니며 임시로 맞춤구두 영업한 돈으로 달서 두류동에서 자취방을 얻어 생활하며 학원을 다니기 좋다는 이유로 유리공장을 다녔다. 유리공장은 출근시간이 빠르기는 했지만 돈내기식으로 일하고 수당을 개다시로 줌으로 퇴근이 빨라서 학원을 다닐 시간이 좋아 다니게 되었다. 현장 일을 하며 바가지로 몇 바가지 물을 마시고 소금 땀 낀 땀을 흘리는 일을 하고 학원을 가지 않는 날에는 두류공원에서 친구들과 막걸리 한 잔에 둘러 앉아 손뼉을 치며 노래하며 놀았다 1984년 여름 어느 날 퇴근 후에 고래고기식당에 들렸더니 어머니의 건강이 많이 좋지 않다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계산성당을 다니며 쾌유을 위해 기도했고 매일 일기로 글쓰기를 하고 성찰하며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던 그 시기가 나에게는 노동문학 글쓰기의 첫 출발이 되었다. 1976년 7월 17일 대구 대봉성당에서 세례명 시몬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1985년 봄날 유리공장동료를 통해 가톨릭노동사목을 알았고 노동한문을 배우는 보람과 다양한 현장사람들과 어울리는 즐거움으로 노동현실을 알게 되었고 생산공장의 노동을 노동자 삶의 글쓰기로 표현하였던 것이 두 번째 계기가 되었다. 1987년 전국적 사회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전태일문학상” 시상식 있던 서울 성문 밖 교회에서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문예대중운동으로 민주노동조합운동에 기여하는 사회변혁운동을 함께 할 수 있다는 확신을 하였다 또한 노동현장노동자와 노동자글쓰기운동과 노동자문예운동을 함께 할 것을 결심한 것이 세 번째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그 당시 자주 민주 통일 노동해방세상 청년의 꿈을 필명으로 "해청"을 사용했던 열정과 진실한 마음으로 변함없이 한 길을 걸어가고 싶다. 그리고 글쓰기를 통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사물과 인간의 상황과 사건의 핵심과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과 진실, 통찰력, 분별력으로 민중적 역사관, 민족적 철학관으로 먼저 詩창작자의 자세를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일기나 습작을 통해서 글의 핵심씨앗을 틀어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시기였다 첫째 자신은 이 넓은 우주와 세상에서 내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흘러가는 건지? 둘째 나는 사회공동체에서 어떤 존재이고 내가 살아가는 노동자의 삶은 어디에 중심과 뿌리를 두고 있는지? 이 시대 노동자 삶의 본질은 무엇이고 자신은 어떤 본분은 갖고 살아 갈 것인가? 셋째 인간과 사물의 주객관적 상황과 사건의 문제는 무엇이며 詩창작을 통한 강단지고 유연하며 냉철하고 분별력 있는 실천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넷째 자신은 詩창작자의 자세로 관찰의 깊이와 사고의 무게는 어떻게 설정하고 유연함을 상상을 통하여 그림을 그리고 형상화의 구도를 설정하며 詩창작의 내용으로 체화시켜 나갈 것인가? 이런 다양한 물음을 자신에게 던지고 자신 스스로 답변을 연습장에 적었고 그런 느낌과 형상을 상상하며 습작활동을 하고 글쓰기를 꾸준하게 하였다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문화를 통해 문학을 살펴보면 오늘 날 입시경쟁 논술강화 논문논리 확대 인터넷 정보문화와 행정문서의 숲에 살고 있고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은 무비판의 인기영합주의 정치 경제 상업주의 문화 교육 예술에서 장기 중독현상에 빠져있다 그러한 다수사람은 국어와 문학의 학사, 석사처럼 독서, 글쓰기의 상당한 이해력, 능력을 지니고 있고 국가의 교육평균화 정부정책이 무관하게 상식과 원칙의 지식인에서 비전문인까지 탁월한 언어문화 정보문화를 향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현제 시점에서 지난 불투명한 회색역사를 돌아보면 중화사대주의 친일식민지 친미식민지 매판매국주의관점으로 건강한 정신은 마취되고 퇴색되어 허구적 문학관에 족쇄와 사슬로 묶이게 되었다 현실의 모순적 상황은 과거 일제식민지에서 비롯된 친일매국정치경제문화가 청산 되지 않았고 친일친미정치권력과 야합하고 독재정권에 타협하고 빌붙어 자기 목숨과 밥을 구걸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정치사회의 비판적 작가정신이 죽은 시를 쓰는 작가의 공개 활동이 점점 확대 되었다. 더구나 친일친미식민지파쇼정권 반북전쟁주의 독재정권의 음성적인 지원과 병든 글쓰기의 어용문인모임의 생산과 어용출판사와 국우반동 조중동언론출현으로 지속성이 유지되었다. 또 한 과거 정치권력의 반민족반민중적 반동역사의 연장선은 현재진행형으로 강대국 신자유주의 정치경제적 침략과 전쟁주의 반북주의 문학사관으로 족쇄가 채워지고 어용문학관의 쇠사슬과 포승줄로 지금도 묶여 있는 것이다. 한 편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주변 주객관적 이유로 죽은 글을 쓰는 작가는 근대적 자본주의 상업주의 인기주의 문학으로 영합한 문단과 언론을 통하여 확대 재생산되는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시창작의 자기실현을 통하여 작자의 자기집단을 성찰하고 반성하며 자기성숙과 철학적 가치성으로 건강한 사회공동체 집단과 계급계층의 차이와 차별성에 기초하고 획일성을 배재하며 다양성을 인정하는 비판적 작가정신으로 각성과 감동을 체험하고 대안을 제시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진솔한 삶을 기초로 건강한 시를 창작하는 작가로 존엄한 가치를 누리려면 자기수련과 단련을 통하여 비록 언어 행동과 의지 실천의 일맥상통의 일관성은 취약하나 이중양심의 양치기소년처럼 자기 괘락과 만족으로 시창작의 사고는 지양해야 한다. 이런 관계로 건강한 시창작의 작가정신 긍정성에도 현실은 국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위기상황을 관성으로 관망하는 문인의 다수가 분포하는 문단상황이다. 현실상황으로 민족민중생존권을 방관하고 도피하며 기회주의 발상과 모더니즘 추상적 문학의 맹종적 맹목적 미학추구의 그릇된 지상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이제는 단순한 취미 여가보내기 자화자찬 시창작의 노력을 넘어 주관 관념적 개인 사고를 넘어 전진하고 도약하여 역사인식 가치관 철학정립으로 자주적 평화통일조국과 민족민중문화를 각인하고 삶의 깊이와 무게와 폭을 넓혀가는 실천이 중요 할 것이다. 우리의 민족성 민중성 계급성 인간존엄 생명존귀 원칙과 시창작가 정신의 부재로 시창작의 유형은 언어의 은유와 감성적 형상화에 의존하고 상업적 아름다움과 괘락추구 미학을 선호하는 대중의 무비판 수용적 영향은 정치 경제 사회의 자기 현실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편 자기 삶이 현실과 분리되는 심신이완현상을 영혼의 울림과 신비로운 문학으로 과대포장하고 해석하여 독서대중 대상화로 상호 분리되는 그릇된 시창작관이 전염병처럼 퍼지고 현실의 자기 목소리도 없어 허구만 춤추고 있는 현실이다. 과거 이명박, 박근혜출현의 정치경제적 적폐와 지각변동으로 사회공동체생활문화변화는 민중생존권을 짓밟고 비정규직을 벼랑으로 몰아갔다. 또 한 정치권력의 반북이념과 색깔공세로 신공안적 민중탄압의 처절하고 치열한 주객관적 상황이 전개되고 작가의 현실의식과 역동성을 고양함으로 촌철살인의 창작가는 출현되고 있다. 과거 친미반북 신공안적 민중생존권 탄압의 이명박, 박근혜정부본질과 비정규직 생존권 압살의 정권 본질은 문화계불랙리스트를 생산하는 문화적 획일화의 속성을 표출하고 있다. 이제 친일친미식민지 종속적 의존적 역사적 모순과 한계를 넘어 척박한 한반도 분단현실의 벽을 깨고 자주평화통일의 발판을 마련하는 비판적 참여와 실사구시의 실천을 문학의 무기로 새로운 리얼리즘 문학의 꽃을 피우야 할 것이다 참세상을 꿈꾸고 한반도 북녘 남녘 우리끼리 자주평화통일세상과 노동해방세상의 혁명을 꿈꾸고 시창작하는 모든 사람은 시인이고 시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더불어 전국노동자문학회의 자주적 현장노동자대중의 글쓰기 운동과 노동자문예운동의 조직적 성과를 계승하고 발전시켜 아래로부터 자주적 진보적 민중적 민주적 문화와 문학의 토양을 다져감으로 참여와 실천을 통한 문학관을 확립하고 창작가의 정체성, 진정성을 획득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우리에게 자주적 노동자, 농민, 학생, 시민대중의 민족민중계급과 대중운동의 철학, 사상, 가치관이 녹아있고 역동적 생명력으로 생성하고 형상화하며 체화하는 詩창작을 실천하는 사람, 일터에서 노동하며 詩를 쓰는 동지에게 또한 우리 조국과 사회공동체를 위하여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참 된 삶, 건강한 시인의 삶을 살아가는 동지에게 열성을 다하여 격려, 응원하고 연대하며 함께 詩를 쓰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다  
90 (김진희 시인)자선 대표작 10편 file
편집자
932 2018-04-10
태종대 조개구이 먹으러 태종대 간다 KBS일박이일에 나왔던 집은 유명세를 치르느라 바쁘고 그 옆 포장마차로 간다 비닐천막 구멍으로 바닷바람이 술술 들어와 서늘하다 목소리 걸걸한 아주머니는 옆 자리 갓난아기에 붙어 앉아 일손을 놓고 까꿍까꿍, 연탄불에선 조개가 자글자글 밖에선 하늘 한 쪽이 불그스름하게 익고 바다 위 배들은 전기회로도 스위치를 닫는다 기쁘고도 서러운 것이 노을 때문인가 약해진 잇몸에 낀 질긴 조갯살이 근심이구나 포장마차 밖 바다를 나는 자꾸 기웃거린다 어두운 바다 여기저기 배들이 꼬마전구를 밝혀 내 몸도 환하게 출렁인다 별들도 저희들끼리 손잡고 출렁인다 망개장수를 불러 망개떡을 사먹고 은박지 조개양념에 밥 볶아 숟가락으로 박박 긁어 먹는다 바닥이 드러난 어둔 하늘에 은빛으로 구겨지는 별, 별들...... 영도구청을 지나 영도를 한 바퀴 빙 돈다 바다를 잇몸처럼 끼고 사는 이 곳은 기쁨과 서러움이 방향을 바꿔가며 전류처럼 흐른다 김진숙씨가 크레인에 300일 넘게 올라가있었던 한진중공업이 어디냐 묻는데 바로 차창 밖이다 크레인도 보인다 김진숙씨의 외로움에 바다가 한 몫 했을거라 생각한다 또 위로와 힘이 되어 준 것 역시 바다일거라고 잠깐 생각하며 돌연 나는 숙연해져 조개처럼 입을 다문다 하늘을 붕붕 날다 기상이변으로 꽃들이 뒤죽박죽으로 피고 지는 봄날, 태어나 처음으로 종기가 나서 그것도 가슴에 깊숙이 나서 나는 겁을 먹었다 겁먹은 나를 더 겁주려는 듯 종기는 단단해지고 몇 날 며칠 벼른 끝에 고약을 붙였다 고약한 종기에서 고름과 진물이 흐르고 그것은 찌릿찌릿한 고통이면서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이기도 했지만 이 십 년이 지나 다시 만난 옛사랑은 찌릿한 아픔도 견딜 수 없는 가려움도 아니었다 그것은 맞춤법이 틀린 오래된 책을 펼쳐 읽는 것처럼 어색하고 신뢰가 가지 않는 일 계단을 오를 때 가끔 무릎이 삐끗했고 인간관계도 한 번씩 삐끗해 한 번 싫은 사람은 다시 보기 싫어졌다 나는 정의롭고 공명한 사람은 아니었으나 부끄럽지 않게는 살고 싶었다 차등지급하는 성과상여금을 똑같이 나누자는 제의는 할 정도였다 그들에게 의견을 말하는 내 얼굴은 붉어지고 종기에서는 진물이 질질 흘렀다 몇몇의 후배들에게 거절당하고 좌절한 가슴은 근질근질 고통스러우면서도 찌릿찌릿 가려웠다 우리가 그들에게 해 준 게 없었으므로 물려준 게 없었으므로 늦은 밤 나는 얌전히 고약을 갈아 붙였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밥상 위 찌개는 뚝배기에 말라붙었고 반찬은 김치에 고추장 같은 고약 한 종지. 괜찮아요, 조신한 후배가 말했다 아, 그러고서 나는 밖으로 나와 누군가에게 쫓기고 하늘을 붕붕 날아다녔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하늘을 나는 꿈을 꾸다니 하여간 하늘을 날아다니니 기분이 좋긴 좋네 주루룩 흐르는 눈물보다 변기 옆으로 흘린 오줌, 지린내, 아침활동은 자율적으로, 책상 위 흐트러진 지우개 가루, 주의 산만한 책상다리는 부러진 연필심을 문질러 교실바닥을 검게 먹칠하지, 매실, 오미자 따위를 먹다 흘린 검고 진득한 자국은 동글이밀대로 빡빡 밀어야해요, 물기를 너무 짜버리면 얼룩이 잘 안 닦여요, 멍하니 앉아있는 아이, 그 눈빛, 말을 걸면 눈물을 흘릴 듯 말 듯한 눈, 어린 나이에 세상의 밑바닥을 먼저 체험한 듯 체념한 눈빛, 물기 마른 밀대로 제 마음 속 얼룩을 문대고 문댔을 손, 또 다른 눈빛, 늘 손가락을 입에 물고 있는 아이, 흘릴 듯 말 듯한 눈물이 아니라 주루룩 주루루룩 범벅이 되는 눈물, 칠판에 이름 적히고 세상의 종말을 맞은 듯 비참해진 얼굴, 가면 같은 얼굴, 자라지 않는 손톱, 동생과 비교 당하는 구겨진 자존심, 부러진 연필심으로 제 속을 시꺼멓게 문지르는 아이, 주룩 주루루룩 흘리는 눈물보다 흘릴 듯 말 듯한 눈물이 더 절망적이지, 더 아프지, 위로도 꾸짖음도 할 수 없는 눈, 저도 알지 못하는 삶의 진득하고 검은 얼룩이 동공에 박혀있지, 아침활동은 자율적으로, 변기 옆으로 흘린 노란 오줌, 코를 찌르는 지린내...... 우리끼리 좋아도, 인터넷으로 주문한 바지는 허벅지까지만 나를 허용하고 융통성 없는 입을 더 이상 벌리지 않는다 오랜만에 느끼는 완강한 거부의 힘 그렇게 악착같이 나를 집어넣으려 애쓴 일이 나이 들어 몇 번 있었던가 신축성 없는 세월은 허벅지까지만 우리를 받아들여 입지도 벗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래도 우리끼리 좋아 술을 마시고 떠들고 노래 부르고 아, 우리끼리 좋아도 세상은 좋아라 너스레를 떠는 것이지만 입지도 벗지도 못한 바지로 엉거주춤 춤도 추는 것이지만 양푼이에 보리밥을 비벼먹고 끝도 없는 논쟁에 빠지는 것이지만 사용설명서도 없는 인생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저마다 한 마디씩 조언도 던져보는 것이지만 간절함을 찾으려는 간절함으로 서로의 얼굴을 멀뚱히 바라보다 주문한 것과 다른 삶에 어리둥절해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비루하게나마 살아있으므로 반품할 수 없는 세월을 걸치고 아, 그냥 우리끼리 좋아도 세상은 좋은 것이라 뚱보식당 범일동 뚱보식당은 오래 되고 낡아 웃풍이 심하고 탁자 다섯 개를 길게 이어 붙이고 마주 앉으면 운신할 공간이 거의 없어 달걀판 달걀처럼 제자리에서 고개만 이리저리 돌리며 붙박여 있어야한다 가스렌지 위에선 소고기를 듬뿍 넣은 전골이 끓고 앞치마를 두른 숙모님은 차곡차곡 포갠 앞접시 위에 스텐국자를 얹어 탁자마다 올려놓으신다 어머님이 해온 호박버무리, 작은 시외숙모님이 아침에 바로 끓여온 메밀묵이 놓이고 고성 시누가 썰어온 회는 초장에 몸을 담그기 바쁘다 늦게 온 사람들을 위해 몇 명은 달걀곽에서 나오고 그를 위해 몇 사람은 몸을 앞으로 숙여야한다 그래도 가운데쯤에 쪽문이 있어 답답한 출입이 숨통 트인다 그 문으로 나가면 줄 당겨 물 내리는 좁은 화장실이 있다 음식으로 배 불리고 케이크에 불을 켠다 어머님은 기다란 곽의 한가운데 균형을 잡고 앉아 웃풍의 힘을 빌어 한 번에 훅! 촛불을 끄신다 백발이 뭉게뭉게 크림처럼 피어오른다 러시아 마트로시카 인형처럼 비숫한 생김새에 크기만 다른 네 명 세트 삼대 친족들은 앉아서, 일어서서, 혹은 반만 일어서서 손뼉을 친다 기다란 곽이 출렁인다 뚱보 시외삼촌은 커피물을 올리신다 추석 무렵 지진이 일어났다 땅 속 깊숙이 자고 있던 지진파가 부스럭대며 몸을 일으켰다 그 때 우리는 족발집에서 인간관계의 균열에 대하여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존재의 흔들림에 대하여, 그 흔들림으로 조직이 어떻게 뒤틀리는지 어떻게 혼란에 빠지는지 침을 튀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람들은 가게 밖으로 나와 전화기를 들고 불안에 떨었다 멀지 않은 원전을 우려하는 소리도 있었다 중력보다 묵직하게 몸을 끌어당기는 취기를 밀어내려고 나는 눈을 크게 껌벅이는 것이지만 여기, 소주 한 병 더! 족발접시는 비어가고 소주잔은 차올랐다 우리 믿음의 접시는 바닥을 드러내고 울분과 분노와 공포가 코 밑까지 차올랐다 자꾸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은 밤이었다 남은 지진이 간 밤 우리의 침대를 몇 번 흔들었으나 아침이면 선물세트를 든 손이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택시문을 무겁게 열고 나왔다 심폐소생술 바닥에 무릎 꿇고 몇 번 가슴을 꾹꾹 누르다 나는 그만 둔다 옆에 서있는 젊은 소방관은 환자가 죽는다며 재촉한다 나는 얼굴이 붉어지며 다시 두 손 겹쳐 깍지를 끼고 힘을 준다 그러다 또 슬그머니 손을 푼다 상체만 덩그러니 놓인 마네킹을 대하니 아무래도 싱거운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건 사람이 아니다, 라고 내 머리가 자꾸 말한다 죽어가는 이는 이렇게 조용하지 않다, 라고도 말한다 바다에 묻힌 수 백 어린 목숨들 때문에 우리는 이 교육을 받게 되었지만 죽어가는 아이들을 한 명도 살리지 못했다는 무력감만 학습될 뿐. 이것은 살아있는 자들의 위선의 제스쳐 마네킹은 말이 없다 꼬집어도 꿈쩍 않는다 그 무덤덤한 마네킹이 나인 듯도 하고 우리인 듯도 하고 우리가 미워하는 권력자인 듯도 하다 도무지 그 여린 목숨들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 아이들은 마지막까지 조잘대고 깔깔대고 사랑의 문자를 타전했으니 그 누구보다 생생하게 반짝반짝 살아있었으니 그리하여 나는 이 실감나지 않는 응급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정작 죽은 것들은, 죽어가는 것들은 따로 있으니. 거미에 기대어 엄마집 천장을 가득 메운 거미줄 천장과 벽이 만나는 솔기에 실밥처럼 너덜너덜 붙은 거미줄 엄마집은 거미가 부족(部族)을 이루었다 거미의 엄마, 거미의 아빠, 거미의 할아비의 할아비까지 죄다 엄마집에 모여 엄마 숨결을 나누며 살고 있다 나는 붉은 플라스틱 의자를 딛고 거미줄을 치우다가 살아있는 거미를 만나기도 하고 죽은 거미를 만나기도 한다 거미는 비쩍 마르고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벌레대신 엄마의 손톱이나 머리카락을 먹고 살았을 것이다 그것마저 없는 날엔 낡은 벽지를 갉아먹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몸통이 저렇듯 벽지 색깔과 일치할 수 있겠는가 도망도 안 간다 가느다란 다리로 빈약한 몸통을 지탱하고 허술한 유모차에 기댄 노인처럼 간신히 서있다 제 집을 철거하는데도 가만 보고 있다 가끔 엄마가 먹는 국그릇이나 물컵에 스며들어가기도 했을 거미, 거미줄 엄마가 성모마리아 앞에 기도할 때 같이 고개를 조아리고 여덟 다리로 성호를 그렸을 거미 독거와 거미 사이 뜯어진 외로움의 솔기마다 바늘 같은 다리를 갖다 대었을 거미, 거미줄 얘야, 내가 니 어미란다 꽃들이 저물고 꽃들이 저물고 삐죽삐죽 연둣빛 번지는 산 아래 오래된 주점에 앉아 막걸리에 홍어, 파전을 주문한다 흐린 하늘, 가늠할 수 없는 빗방울 댓돌에 벗어놓은 신발이 젖을까 주인장은 신문지를 내밀지만 우리는 빈 속에 콩나물을 집어넣기 바쁘다 달큰한 어둠이 내려앉는다 산 아래 신도시 한 점 두 점 켜지는 노오란 콩나물대가리들 우리들 가슴에는 영원히 소화되지 않는 노란 슬픔이 도사리고 있다 무슨 이야기들을 했던가 학교 이야기, 선거 이야기, 떠도는 소문들 아주 오래되고 낡은, 새롭고 혁신적인, 이것도 저것도 아닌. 꽃을 꽃을 부정하여 잎을 틔우고 겨울이 겨울을 부정하여 봄을 부르고 우리가 우리를 부정하여 더 큰 우리를 잉태하는 봄밤 가게 불이 꺼지고도 우리는 우리 속에서 꺼지지 않는 불을 보듬고 한참을 뭉그적댄다 신발을 멀쩡하다 조금 젖어도 좋으련만 젖은 신발로 젖은 세상을 흔들흔들 걸어가도 좋으련만 새롭고 따뜻한 날 중앙현관 앞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한 마리 나를 피하지도 않고 몸을 외로 꼬고 앉아 한 곳을 본다 그 옆 화단가 날개 접은 까치 두 마리 새 날을 맞이하는 자세 숙직어르신은 티비를 크게 틀어놓고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소리도 못 들으신다 그러면 어떠랴 새 날이다 하늘로만 날던 까치가 안심하며 땅에 내려앉고 눈치 보며 먹이 찾던 고양이가 여유롭게 앉아 먼 하늘을 쳐다보는 새롭고 따뜻한 날이 시작되었다  
89 (김진희 시인)나의 문학관 및 약력
편집자
676 2018-04-10
참되거나, 뜨겁거나! 1.이름을 얻다 “느거 엄마 딸 낳았대매? 그라믄 길자가?” 반찬가게에 심부름 가서 이런 질문을 받고 멀뚱허니 서있는 어린 둘째오빠 모습을 나는 머릿속에 그려본다. 아들만 넷 있는 집 귀한 딸로 나는 태어났고 오빠들 이름은 모두 ‘길할 길(吉)’자 돌림-길환, 길복, 길호, 길범-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길자’가 되어야했다. 김길자. 그러나 손꼽아 기다리던 ‘딸’이었으므로 이름 짓는 데 신중을 기해야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종사촌오빠가 내민 이름은 참 진, 계집 희, ‘진희’였고 그 이름이 모두들 마음에 들었나보다. 아버지, 엄마는 내가 참한 계집으로 자라나길 바라셨을까. 길자였어도 괜찮았겠는데...... “길짜”라고 발음하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강인한 여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겉치레, 허영을 훌훌 털어버리고 홀로 길 위에 서서 진짜배기 삶을 살아가는 한 인간의 모습 말이다. 그런데 ‘진희’는 어떤가. 너무나 순종적이고 허약하지 않는가. 진짜를 추구하려면 좀 더 진취적이고 반항적이어야 할텐데 말이다. 하지만 나는 ‘진희’라는 이름에 오래 깃들어 살았고 앞으로 남은 날들도 ‘참된 것’의 언저리를 서성이며 살아갈 것이다. 2.흉터 하꼬방. 어렸을 때 많이 들었던 말이다. ‘히야시’라는 말도 있다. 아버지는 함경도에서, 엄마는 황해도에서 피난 내려와 가난한 부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온 부모님들 입에는 일본말들이 아직 남아있었다.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간당간당 매달려 돌아가는 와중에도 ‘하꼬방’에 살림을 차리고 리어카 끌며 ‘노가다’를 하면서 ‘히야시’된 막걸리를 찾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내가 태어난 부산 당감동 판잣집은 그전에 마굿간으로 쓰였던 곳이었다. 단칸방에 나무 널을 여러 개 잇댄 마루가 있었고 그 마루 한쪽에 연탄아궁이가 있었다. 날씨가 추운 이북식 가옥구조였다. 하루는 그 연탄아궁이에 큰솥이 올라갔고 솥 안에선 물이 끓고 있었는데 이제 막 기어다니기 시작한 내가 그 솥에 빠지는 일이 일어났다. 어린 나는 어쩐 일인지 오른쪽 팔꿈치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날이 마침 일요일이라 병원은 문을 다 닫았고 겨우 임시방편으로 약국에서 구한 게 가아제였다. 연고가 덧발라진 끈적한 가아제로 화상을 견뎠다. 그 흉터가 어떤 운명의 화인처럼 뜨겁게 내 삶을 관통하고 있다. 운동회 날 달리기하다 넘어져 바닥에 긁혀 흉하게 벗겨진 오른쪽 팔꿈치를 내려다보며 서럽게 울었던 일이 떠오른다. 그 후로 오랫동안 아니, 아직까지도 나는 그 흉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애할 때도 그 흉터가 걸림돌이었다. 결국 나의 흉터를 받아주고 이해해 줄 것 같은 사람을 골라 결혼을 하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사주를 보게 되었는데 이 팔꿈치 흉터가 아니었으면 더 큰 화를 입었을 거라는 점괘가 나왔다. 거대한 솥처럼 나를 덮치는 운명이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들었다. 자포자기의 심정일지도 모르겠다. 얼른 늙어지길 바란 것도 이 흉터 때문이다. 늙어 주름살이 생기면 흉터도 묻힐 거라는 희망. 하지만 그 때 쯤이면 이미 육신의 흉터라는 것에 연연 할 만큼 삶에 대한 애착과 열정이 남아있지 않겠지. 3.봄의 한가운데서 봄을 꿈꾸다 사춘기. 본격적인 사춘기는 중2 겨울방학 때 시작되었다. 치기어린 시절이었다. 방학동안 칩거를 했다. 밖에 나가지도 않고 씻지도 않고. 주로 한국단편소설 전집은 거의 다 읽었고 일본소설 전집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지 않을 땐 창이 없는 방에 누워 공상에 빠졌다. 생활력 약한 아버지에게 엄마가 퍼붓는 잔소리를 들으며 방 한쪽에서 ‘작문’을 했다. 시가 아닌 소설. 겨울방학 숙제였다. 나는 방학숙제를 내 인생의 숙제로 떠받들어 정성들여 써나갔다. 읽고 쓰고 읽고 쓰고 읽고...... 내 몸은 비대해졌고 그럴수록 달달한 초콜릿이나 빵에 더 손이 갔다. “기집애, 저, 저 발바닥 봐라!” 더께처럼 앉은 발바닥 때가 영광스런 훈장이었다. 그 겨울, 그 작은 방에 스스로를 가두고 나는 아주 먼 데 있는 봄을 기다렸던 것일까. 얼른 어른이 되어 자유롭게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난 후 그 희망은 더 멀어졌다. 봄의 한가운데서 봄을 생각하는 사춘기. 겨울방학이 지나고 내 글쓰기는 한 단계 올라선 느낌이었다. 그리고 비참하게 비대해진 몸을 숨기기 위해 해가 져서야 어둠을 덧입고 하교를 했다. 4.산문의 시절, 시의 시절 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고등학교 자율학습시간에 연습장을 펼치고 펜촉에 잉크를 묻혀 글을 써나갔다. 어떤 이야기들을 썼는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그랬다. 대학을 못 보낸다는 엄마 말을 듣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을 울었다.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절감했다.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공장에 취직하여 야근하고 돌아온 피곤한 몸으로 글을 쓰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책을 읽고 글만 쓸 수 있다면 뭘 하든 상관없을 것 같았다. 69번 버스 손잡이를 잡고 흔들흔들 학교와 집을 오가며 절망과 희망을 번갈아 씹어 삼켰다. 그리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학에 들어갔다. 등록금이 싸다는 교육대학. 가난은 나를 절망시켰지만 가난으로 인해 나는 좀 더 단단해지기도 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인이 멋져 보였다. 주말에 집에 가지 않고 기숙사에 남아 새우깡 봉지를 보며 시를 썼다. 대학3학년 때 교대 문학동아리에 들었다. 그리고 경상대 문학동아리에도 가입했다. 이제 산문의 시절은 지나고 본격적인 시의 시절이 나에게 온 것이다. 교대 문학동아리는 소위 순수문학을 추구했고 경상대 문학동아리는 민중문학을 지향했다. 둘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던 나는 결국 경상대 ‘울력’동아리 쪽으로 기울었다. 삶도, 문학도 치열한 동아리였기 때문이다. 시대의 아픔과 문학에 대한 갈증으로 나는 휘청댔다. 길 위의 구호와 예술성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면서 문학적으로 단련되어갔다. 5.부록의 삶 나는 20대 삶의 기억으로 살아가고 있다. 내 삶의 기준은 대학시절, 문학에 미쳐있던 시기이다. 그 이후의 삶은 사족의 삶이라고 생각해왔다. 몇 번 연애의 실패 끝에 결혼을 했고 아이를 둘 낳았다. 문학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것 같았고 반면, 문학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양가의 감정을 끌어안고 엉거주춤한 삶을 살았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경남작가 신인상으로 등단을 하게 되었고 마흔 셋에 시집을 출간하였다. 태연한 척 하면서도 마음 한 쪽엔 자부심이 꿈틀대었겠지. 하지만 나의 시는 이십 대의 뜨거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절망은 옅어지고 고통은 사라졌다. 행복이 무언지도 모르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이러한 상태로 문학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일처럼 나에게 글을 쓰는 일은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되어버렸지만 그런 만큼 타성에 젖어 있는 걸. 대학 시절, 당감동 집에 내려와 이불 위에 뒹굴거리며 시집을 읽다가 아!!! 눈앞이 밝아오는 그 깨달음의 순간을 다시 맞을 수 있을까. 몇 개의 동굴을 더 거쳐야 나는 글다운 글을 쓸 수 있을지... 6.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써야하리. 젊은 시절엔 세상에 대한 복수심으로 썼다. 그 복수심이 사라진 자리는 허망했고 다시는 글을 쓰지 못할 것 같았다. 한 편의 시를 쓰고 나면 늘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다. 그래서 겸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삶 앞에 그리고 시 앞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쓸 수밖에 없는 건 나에게 남은 부끄러움 때문이다. 양지쪽으로만 옮겨 산 것에 대한, 마른 땅으로만 골라 밟으며 살아온 것에 대한. 삶은 이미 나를 뜨거운 물에 한 번 빠뜨렸고 이제 되갚아줄 일이 남았다. 앗, 뜨거! 내 앞에 천연덕스레 놓인 운명이란 것에 내가 제대로 화상을 입힐 일이 아직 남았다. * 김진희 1969년 부산 출생, 2016년 경남작가 신인상, 시집 『굿바이, 겨울』 * bullaeya@hanmail.net  
88 (오형근 시인)자선대표작 10편 file
편집자
783 2018-03-13
거울의 꿈 바람이 후회하고 있다. 스스로 물체에 부딪쳐 소리를 냄으로써 자기가 바람임을 깨달은 바람이 울고 있는 것이다. 이 바람의 울음을 창백한 거울이 귀기울이고 있다. 거울은, 거울 이외의 어느 것도 되지 못함으로써 끝까지 거울이지만, 얼굴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바람소리 요란한 밤마다 거울은 얼굴 갖은 꿈을 꾼다. 혼자 노는 아이 1 혼자 노는 아이야 남들은 모두가 친구들끼리 어울려서 노는데 너는 혼자서도 잘 노는구나 남들은 서로가 서로의 장난감이 돼서도 잘 노는데 너는 네 스스로가 장난감이 돼서도 잘 노는구나 언제부터 혼자 노는 아이가 됐는지는 모르지만 가끔 그들 속에 끼어서 한번 신나게 놀아 보아라 혼자 노는 아이야 인생은 그렇게 살아가는 거란다 혼자만 깊어가는 아이야 소 1 그리움마저 죄가 될 줄이야 누렇게 타 버린 소 소 2 소는 눈을 뜨고 있지만 앞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소는 서 있지만 서 있는 것은 아니다 소는 항상 가을산 소 3 눈을 감은 만큼 눈 뜰 수 있을 테지만 눈을 뜬 만큼 눈 감을 수 있을 테지만 소는 눈 감은 그 이상으로 눈뜰 수 있다 소는 눈 뜬 그 이상으로 눈감을 수 있다 소 6 소의 눈에는 태어나기 전부터 비가 내렸다 눈 껌벅일 때마다 세상 하나씩 지나간다 소 17 빗물에도 소 발자국 떠내려가지 않네 눈보라에도 소 발자국 흐트러지지 않네 따라가면 소가 발자국을 핥고 있네 無題 6 도선사 화장실에서 오줌 싸다가 늦게 발견한 날벌레 한 마리. 벽에 부딪혀 떨어지다가 날아오르기를 반복할 때 쏟아 낸 오줌 줄기에 빗맞은 날벌레가 마지막으로 힘껏 날아오를 때 나는 운명처럼(!) 오줌을 멈출 수 있었다. 터덜터덜 내려오면서 하얀 변기 속을 빠져나간 날벌레에 나를 겹쳐 놓으면서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나를 일으켜 세우는 지렛대 역할을 못 하는 자신을 물감처럼 허공에 풀어 놓고서는 멀거니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조성모, 「가시나무」 중에서 번호판 없는 고라니 깜깜밤중 고속도로, 길 잃은 한 마리의 고라니가 달린다 두 동강난 산기슭에서 떨어진 고라니에게는 질긴 타이어가 없다 지칠 줄 모르는 엔진도 없다 놀란 가슴만 있는 고라니의 숨결은 점점 빨갛게 달아오르고 눈에서는 점점 눈물이 맺히는데 건너편 차선에서 사납게 달려오는 자동차의 불빛에 고라니의 몸뚱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몇 번, 고라니에게는 질긴 타이어가 없다 지칠 줄 모르는 엔진도 없다 자동차처럼 좌우측 깜박이도 없다 이제는 고라니의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끼어 있던, 엄마와 형제의 오줌 냄새가 스며 있는 달콤한 흙마저 떨어져 나갔다 고라니의 뒤에서 자동차가 냅다 덮친다 사람의 비명 소리가 칼날을 펴고 화들짝 날아올랐지만 자동차처럼 번호판 없어서, 나동그라진 고라니가 어떤 고라니인지 알 수 없었다 당신의 치욕 1 거친 숨결, 멈추지 않는 분노 몸을 데면서까지 뛰어가지만 제자리 주전자의 삶 2 오토바이에 맨 줄에 묶인 쪼그만 개가 그만, 힘센 오토바이 따라가는 것이 역부족이어서 넘어졌다 죄수같이 몸통이 끌려간다 두 발과 두 손이 하늘 향해 아 ․ 우 ․ 성 주위의 따가운 눈총 맞은 남자가 오토바이를 세워 놓고 쪼그만 개에게 다가가자 개가 먼저 제힘으로 일어나면서 ―주인, 만세! ―충성! 놀랍게도 온몸으로 꼬리친다  
87 (오형근 시인)나의 문학관 및 약력
편집자
788 2018-03-13
나 스스로 자신을 끝까지 타이르면서 살아야지. 1990.9. 위의 글은, 내 첫 시집인 『나무껍질 속은 따뜻하다』 「自序」다. 벌써(?) 긴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스스로,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신을 타이르면서 살고 있다. 자신을 타이르면서, 만약에 그렇게 살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를 상정想定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활화산 같은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잠 오늘은, 오늘만이라도 내 탓이라 생각하면 편안한 잠 찾아오실까 「잠」은, 두 번째 시집인 『환한 빈자리』(2009년 출간)에 있는 시인데, 이곳에 인용하게 된 것은, 딸이 이 시를 캘리그라피로 적어 놓은 것을 며칠 전에 보았기 때문이다. 「잠」은 참 나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날에……. 이 글을 쓰면서, 자연스레 떠오른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머리맡에 『菜根譚』을 두고서 한 구절, 한 구절 ‘씹으면서’ 자신을 달래곤 하였었다. 마음의 불을 껐는지도 모른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시인이 되겠다, 시를 쓰겠다는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일기 쓰기는 계속되었다. (내 키의 반쯤 되는 높이의 일기장들을 어느 해, 30대였을까, 공터에 나가서 모두 태워 버렸었다. 진정 새롭게 태어나고 싶어서. 그것은 실패!) 無題7 오늘도,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내 긴긴 삶에서 까짓것, 액땜한 셈 치면 된다고 중얼거리는 것이다. 「無題7」은, 2015년에 나온 세 번째 시집 『소가 간다』에 실은 시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금껏 살고 있는 것이다. 먹고, 자고, 배설 잘하고, 이것만큼 시가 나에게 중요하지는 않다. 시를 쓰지 않아도 잠을 제대로(!) 잘 수 있다면(내가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으로 족하다. 다만, 긴 시간 동안 시를 생각하고, 시를 썼으니 허전은 하겠지만……. 시 쓰기는 분명 ‘목숨’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제 와서 시를 버릴 수는 없다. 시를 쓰면서, 자신이 맑아지고, 깊어지고,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세상에 당당할 수 있다면 크게 기쁘고. 시를 쓴다고, 문학을 한다고, 세상에 비굴해 한 적은 없는지 두렵다……. 솔직히 나는 시보다는 『무문관 일기』(동은 지음, 뜰, 2011년)와 같은 책이 좋다. 시보다는 늘 ‘나’가 문제인 것이다. 오형근 1955년 서울 출생. 1978년 《시문학》주최 전국대학문예에 시가 당선되었고, 1988년《불교문학》과 2004년《불교문예》로 등단. 교직에 31년 5개월 동안 종사했다. 시집 『나무껍질 속은 따뜻하다』,『환한 빈자리』, 『소가 간다』등이 있음.  
86 (김인구 시인)자선 대표작 10편 file
편집자
701 2018-02-11
마음수련 스르륵, 발 없는 잠이 블랙홀에 빠지듯 몸을 주-욱 늘이세요 불면의 문턱을 마악 넘어오는 잠에서 꿈이 제외되도록 관절마디 마디에 토막 난 잠을 박아 넣으세요 자꾸만 일어서려는 불뚝거리는 생각의 욕망일랑 꾹꾹 접어 비트세요 삼일 간 비틀린 당신 잠의 실타래를 최대한 느슨하게 풀어내세요 생각이 생각을 먹고 시간의 고개를 넘어가다 낳은 말들일랑 모두 하얗게 게워내세요 천지간에 사라지고 말 희뿌연 한마디의 고백일지라도 접선된 암호를 믿듯 무작정 믿고 뱉어내세요 옆으로 몸을 말아요 고개는 겸손하게 처리된 부호처럼 앞가슴에 박고 마음의 질량을 최대한 늘여보아요 발 없는 잠과 꿈 없는 잠이 서로 밀납꽈배기처럼 몸을 꼬아 올라가는 잠의 나선형구조처럼 당신을 꼬아보세요 어설프게 배치된 당신 몸짓일랑은 절대 들여다보지 말고 깊은 우물 속 들여다보듯 당신 무의식의 창만 들여다보며 잠을 끌어다 덮어요 잠의 늪에 매몰된 잠으로 다시 당신을 만나요 스르륵-쉿! 당신, 잠의 문턱을 밟지는 말아요. 미스 홍당무 이쁜 것들은 모두 땅속에 묻어야 해 나는 내가 창피해 마음보다 먼저 얼굴이 달아오르지 사랑이라 믿었던 의혹들 모두 테잎 풀어지듯 늘어지고 나면 외설처럼 욕설처럼 입안에 껄끄럽게 남는 좁쌀 같은 언어의 굴욕들 모두 얼굴로 가 붉은 꽃잎처럼 피어나지 슬픈 건 내가 나를 욕망한다는 것 부재된 사랑의 힘 알 수 없어 모든 것 사랑으로 착각된다는 거지 착각이 사랑이 될 수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저 수많은 눈들 속에서 내가 숨을 곳은 나밖에 없다는 거지 내안에 꽃피는 이 착각 정말 사랑인지도, 분노인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는 거지 정말 슬픈 건 내가 나를 모른다는 것 세상을 향해 터져 나가는 일갈의 침묵도 내 안의 침묵인지 알 수 없다는 거지 나는 나, 너는 너 우리로는 함께 꿈꿀 수 없는 슬픈 방정식의 함수 밤마다 거울 속에서 확인 사살하는 총구는 나를 향하고 있다는 거지 혼재된 욕망이 열꽃처럼 핀 얼굴로 멋들어지게 버무려 견뎌내야 한다는 생의 법칙 아무렇지도 않게 쓰레기통에 구겨 던져버릴 수 있다는 내 안의 착각 신전처럼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거지 숨을 곳 없는 붉은 꽃잎들의 흔적 오늘도 밤을 흔들어 내 어깨를 깨워도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이 삶의 정의 비록 꽃 필수 없다 해도 나는 나의 꽃 바닥 꽃 모두를 떠나보내고 난 뒤에야 앉은 자리에서 싹을 내민다. 모든 걸 놓아 버리고 난 뒤에야 슬그머니 손 내밀어 핀다. 잃을 것, 가질 것 없어 두 손 툴툴 털어 버리고 가는 뒷모습에서 푸른 현기증처럼 아른대며 피어나는 바닥 이라는 꽃 한 송이 바닥을 치고서야 꽃으로 피는 그 눈물 꽃의 꽃말은 일어서야지 일어서야지. 백년의 고독 3 잠들어 있는 동안 나는 죄를 만들지 않네 우리는 오랫동안 깨어 있으려 얼마나 많은 실수를 저지르는지 고양이는 평균 14시간을, 파리는 12시간 잠을 잔다네 우리는 4시간,5시간만 잔 것을 자랑으로 여기지 반나절은 비몽사몽 또 다른 반나절은 비실대며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있지 깨어 있는 것은 다시 편히 잠들 수 있도록 에너지를 모으는 일 빨리 먹이를 구하는 동물들일수록 오랜 시간 백년의 꿈을 꿀 수 있다네 지나치게 오래 깨어 있는 건 세상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일 우리는 슬프게 깨어 있기 위해 카페인을 마시고 항상 어디론가 더 빨리 떠나기 위해 휘발유를 필요로 하지 서두른 잠에서 깨어 에너지는 날려 버리고 지구 한편을 망가뜨리네 지금 그대가 있는 그곳에 간절히 머물러 주시라 고요의 나라로 비행하는 동안 나와 그대는 죄를 만들지 않는 선행을 하고 있는 중이라네 천년을 들다 그렇듯 순한 눈빛과 그렇듯 겸허한 손등 아래로 아직 피지 않은 동백, 고개 밑을 표표히 지나 때 이른 봄날 품속을 마중 나온 서행의 나비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노니는 석불과 석불 사이 내 소망의 끝은 동백, 그 작은 그늘에 생의 무게 싣지 않고 가벼이 건너가 절두된 석불의 목덜미에 나의 천년을 반듯하게 접목하는 것 졸음처럼 쏟아지고 쏟아지는 천년의 푸르름을 지나 마침표가 있는 서방정토에 가 닿는 것 그 순한 천년의 눈빛과 여린 동백의 눈빛을 탁본으로 떠 다시 울울창창하게 소리 내어 우는 것 주 르 륵 치맛단에 흐르는 천년의 곡선을 새기고 또 새겨 넣는 일 나는 천년의 겹 주름을 풀어 헤치며 천년의 나를 지나왔다 거울 속으로 난 길 욕실거울을 닦는데 거울 한 쪽이 닳아있다 거울도 외로웠을까 드나드는 사람들의 고정된 눈길을 따라 비스듬히 기울어진 길을 내었다. 아무나 볼 수 있지만 함부로 들여다 볼 수 없는 저만의 길을 내놓은 거울의 길속엔 오랜 슬픔으로 다독여진 깊은 상처가 웅크리고 있다. 거울속의 길엔 볕이 들지 않는다 응달 속, 햇볕을 담지 못한 여린 잎맥 사이로 배추흰나비 애벌레 한 마리 숨어 든다 슬픔의 모퉁이만 갉아 먹고 자란 애벌레의 체액에는 한껏 슬픔을 이겨낸 쓸쓸함이 들어앉아 시간의 마디를 채워나간다 거울은 빠짐없이 그 시간의 마디를 닮은 길을 내게 보여준다 생의 무엇이 되었건 간에 정점에 닿아본 적이 있는 것들이란 가벼이 기억의 회로를 통과하지 않는다는 듯 거울 속으로 난 길들은 모두 닮은 예각을 지니고 있다 마악 허물을 벗은 배추흰나비 한 마리 날개를 퍼덕여 거울 밖으로 날아 오른다 경계를 잃어버린 달에 대하여 내 몸에서 달의 기울기가 사라지더니 나는 점점 뚱뚱해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조금씩 내 안으로 기어들어와 내 중앙의 변두리를 차지하더니 급기야 나는 뚱뚱한 발목과 뚱뚱한 허리를 가지고 기우뚱거리며 걷기 시작 했다. 달이 빠져 나간 다음 나의 가장 깊숙하고도 내밀한 그곳에서 진행된 일들은 나의 그 어디쯤에 서 있던 기울기의 경계를 잃어 버렸을 것이다. 경계를 잃어버린 나침반들이 사방 그 어딘가에 자신의 생애를 눕힐 어둑한 공간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반생을 뒤척이고 다독인 노곤한 갈지자를 어딘가에 가두거나 고착시킬 비밀의 방이 필요 했을 게다. 무사히 안착된 그들의 생애가 도도하게 내 중심부에서 뿌리를 내리고 둥글게 가지의 순을 치고 내며 자리 잡은 곳. 내 중앙의 변두리에서 그들은 내게 뚱뚱한 사물의 힘을 각인시키기 위해 날마다 팽창하려는 세포의 본질에 몸을 내 맡긴 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조금씩 더 나를 뚱뚱하게 만드는 작업에 열중했다. 뚱뚱한 것을 우롱하는 온갖 매체들을 자신의 영역으로 구겨 넣으며 이 땅의 제3의 성으로 살아남았을 게다. 내 안에서 빠져 나간 그 많은 달들의 표정들이 하늘로 올라가 푸른 달빛을 낳았다. 나는 조금씩 뚱뚱해져 가면서 내 안의 달들을 꺼내보는 버릇을 지니게 되었다. 마녀도 성녀도 없는 그 달 속에는 달의 기울기가 사라진 후 밤낮없이 희고 붉은 꽃숭어리들이 피고 졌다. 조금씩 더 뚱뚱해지는 사물들의 힘을 작품처럼 만들어 내며 오늘도 어제 보다 조금 더 뚱뚱해진 모가지로 서둘러 사라지려는 나를 지탱한다. Spica* 길이 끊긴 길 위에서 너를 찾아내는 단 하나의 방법은 길 위의 불빛을 모두 거두어 동병의 어둠에 나를 휘묻는 것이다 보여주지 않는 길들의 길을 어둠 속에 접어 넣고 어둠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면 그 때 너는 희미하게 네 모습 드러내어 길 하나 밝히고 땅의 먹빛에 순백의 은회색 빛을 뿌려줄 것이다 천천히 부유하는 빛을 따라 농부는 씨앗을 뿌리고 손가락 사이로 주르륵 시간의 아득함을 흘릴 것이다. 시간의 야속함마저 땅 끝에 심는 이 사라짐에 대해 너는 무슨 말을 보태어 세상 한 자락 품어 안을까 묵묵히 둥글게 생의 幻을 돌고 있는 자리 맴돌다 네가 사라진 자리에 뜨거운 입맞춤 조용히 내려놓으면 네가 사랑이라 명명했던 팽팽한 슬픔들 모두 손아귀에서 놓여날 수 있는 건지 너는 단 한 번도 쉬임 없이 길들의 길을 위해 어둠위에 서 있었음을 나 어둠과 함께 이마를 맞대고 오랜 시간을 보낸 뒤에야 알았다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들은 언제나 뒤늦게 찾아오는 법 나, 그렇게 뒤늦게라도 너를 찾아 어둠 속의 어둠을 끌어안고 네게 붙박히는 것이다. 시작의 끝에 또 다른 시작을 매다는 둥근 원처럼 네 주변을 하나의 점처럼 서성이는 것이다 *spica : 처녀자리에서 가장 빛나는 별 허공 법문* 시든 꽃 묶어버리고 각을 지닌 유리꽃병을 비운다 빈병 가득 허공 한 자락 들어와 앉는다 꽃병의 모양을 따라 나투는 허공의 허공 끝도 없는 그 무극의 어느 선상에서 허공은 태어나셨는가 금이 간 유리 꽃병 허공 가득 내가 들어 앉는다 *백봉 김기추거사 법어집 제목에서 빌어옴 해빙 무드 바람이 일어선다 출렁임을 받는다 오랜 가뭄 끝 단비가 내린다 입을 크게 벌려 빗방울을 받는다 어둑컴컴한 낮은 하늘 아래 키 큰 풀꽃들의 자잘한 수다가 사방으로 꽃피는 수면 위 꾸역꾸역 배가 불러온다 첫 아기 임신처럼 바깥쪽 둑길부터 조금씩 불러오는 검고도 푸른 포만감 오랜만의 폭식이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배위에 얹고 오늘 하루 배운 감사함을 머리맡에 풀어 놓는다 살짝 가려진 귀밑머리 옆으로 당신이 지나간다 설핏,  
85 (김인구 시인)나의 문학관 및 약력
편집자
724 2018-02-11
나의 문학관 어린 날엔 자주 앓았다. 지금 돌아보니 아픈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태어난 이상 살아야 하는 본능 같은 감으로, 살아남아진 삶이었다. 외할머님 댁에서의 일상은 우울과 외로움을 가져다주었다. 일곱 살은 자주 구부러졌고, 이모와 막내 삼촌 사이에서 눈총을 받으며 일곱 살은 많이 울어야 했다. 그렇기에 나의 유년기는 곧은 직선이 아닌 구부러진 곡선이었다. 서울 변두리에서의 셋방살이로 시작된 엄마의 삶 또한 고달프고 고단했다. 그 고단함과 고달픔을 베고 누워 밤마다 엄마의 눈물을 훔쳐보며 아침을 맞았다. 고단함을 잊는데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놀이였다. 공기놀이, 비석치기, 고무줄놀이, 구슬치기, 딱지치기, 발야구 등등. 어린 날에도 사는 게 버거우면 버거울수록, 손등이 곱아 터지도록 밖으로 나돌았다. 중학교 2학년 폐결핵을 앓으며 한 학기 동안 휴학을 했다. 그러는 사이 꽃이 피었다. 가슴에 흥건히 피어난 것은 폐를 갉아먹은 결핵균만이 아니었다. 그때 내 가슴 한 복판, 무너질 수 없는 경계에서도 송이송이 꽃망울들이 방울방울 꽃송이를 터뜨렸다.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나는 한 마리의 고양이와 고요를 벗삼아 시를 읽고, 쓰며 죽음과의 싸움에서 승자가 되어보고자 애를 썼다. 늘 죽음을 껴안고 있으면서도 행복했다. 밤 아홉시만 되면 전등을 꺼버리는 엄마의 야속한 손길도 밉지 않았다. 어두운 창가를 내다보면서 머리와 심장 속을 뛰어다니는 시어들을 주우며 지냈던 그 시간들이 내게서 죽음의 그림자를 저만치 떼어 놓았다. 휴학을 마치고 학교에 다시 복학하면서 나는 새로운 나를 만났다. 밖으로만 떠돌던 선머슴 같은 계집아이가 내 안으로 침잠해 들어오는 말수 적은 아이가 되었다. 그 후 몇 번의 휴학과 복학을 넘나들면서 나는 원인모를 우울과 슬픔을 지닌 눈빛을 갖게 되었다. 나의 시, 근간은 죽음과 삶이다. 삶속에 숨어사는 죽음과 죽음 사이에 드러나는 삶의 미학을 찾아낼 때마다 나는 살아 있음의 희열을 느낀다. 조금은 늦게 만난 불교와의 인연 또한 요즘 내 삶의 의미이자 화두이다. 색즉시공과 성주괴공을 알아가면서 깨닫는 법열은 살아있음이 곧 공덕임을 알게 한다. 몸 공부든 마음 공부든, 그리고 시 공부든 끝이 없는 길임을 안다. 몸과 마음을 가급적 사랑하려 애쓴다. 오고가는 인연에 매이지 않고 내 앞에 놓여있는 여건 속에서 답을 찾고자 한다. 걸림이 없는 내 안에서의 시와 마음공부.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가다 보면 내 앉을 자리 하나 보이지 않겠는가. 온전한 나로 피어나는 꽃 한 송이 만나지 않겠는가. 전북 남원 출생. 1991년 <시와 의식> 여름호에 <비, 여자>외 2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시작. 작품집으로 <다시 꽃으로 태어나는 너에게> <신림동 연가> <아름다운 비밀> <굿바이, 자화상> 외 공저 다수 전자우편 ingu8151@hanmail.net  
84 (김상출 시인)자선 대표작 10편 file
편집자
863 2018-01-10
술집 끝순네 천상병 그 양반 살아있다면 틀림없이 아, 좋은 술집이라며 날마다 찾았을 끝순네 마늘 까고 조선 쪽파 다듬으며 휘휘 쏟아내었을 그녀의 한숨들이 술방 구석구석에 나붓이 내리고 기웃거리던 햇살도 문턱 너머로 슬슬 자리를 잡는 오후 여섯시 어름 구풋한 뱃속에 막걸리 두어 잔이면 이태 전에 보낸 영감 생각에 짠한 그녀의 속내처럼 오장이 고만 알싸해지는데 맞은편 하망성당 꼭대기에 걸린 붉은 노을처럼 칠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얻은 그녀의 이름처럼 신산한 세월들이 간다 유행가 한 자락처럼 속~절~도 없이 문 닭실마을 종택 대청마루 너머로 은은하게 새어나오는 불빛 따라 슬며시 장지문 열고 들어가노라면, 삐 이 걱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 내 유년으로 이끄는 문 열리는 소리 아버지 머슴 살던 그 큰 주인집 창호지 바른 격자문들 넓게 늘어서서 오금이 저리던 나에게 다가오던 불빛, 주인 영감 카랑카랑한 잔기침 위에 실려 오던 차고 싸하던 그 불빛 막걸리 두어 잔에 얼근해진 아버지 흥얼거리시던 육자배기 가락이 슬슬 사위어 갈 때쯤이면 저만치 보이던 우리 육남매의 단칸방 쪽문, 구멍 숭숭한 댓살 사이로 희미하게 가난이 배어나오던 내 어린 날의 문 히말라야시다를 보다 풍기중학교 교무실 맨 왼쪽 창가에 서면 히말라야시다 나무가 우뚝합니다 족히 백년은 된 듯한 어른이 곧은 삼지창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서있지요 줄기가 잘리면 옆에서 나온 가지가 다시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섭니다 곧추 올라서서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먼 고향 히말라야를 가늠하는지 보고 있으면 저릿저릿합니다 굵은 줄기 곳곳에 오래 전에 잘려나간 가지들의 흉터가 조금은 쓸쓸하지만 흉터에 이름 모를 풀씨를 받아 싹을 틔우도록 두는 걸 보면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요 사는 게 힘들어 울고 싶거나 삶의 한 부분이 뭉텅 잘려나갔다 싶으면 풍기중학교로 와서 교무실 왼쪽 창가에 서서 히말라야시다를 보세요 비 오시는 날이면 더욱 좋겠지요 생 일 임진년 음력 팔월 스무이틀 식탁 위에 오른 생선 두 마리와 미역국 숟가락을 들다가 문득 오십 년 전 어머니를 뵈다 정갈하게 닦인 까만 개다리소반 그 밑에 잘 간추려 물 축인 볏짚 깔고 김 오르는 이밥 미역국 조기 한 마리 우리 집 가난으로는 당최 엄두가 안 나는 상차림 앞에 단정히 꿇어앉아 손바닥 부비며 무슨 말인지 가만가만 뇌시던 해마다 그리 하시던 어머니 5분 3백만이 넘게 산다는 부산 남구 용호동 후미진 어느 목욕탕 을미년 설날 새벽 여섯 시 어름 생면부지 사내 다섯이 두어 평 남짓한 욕조에 같이 들었다 그들에게 늘 데면데면한 세상처럼 서로를 쳐다보기가 좀 그랬다 침묵이 금처럼 깔리고 하나같이 천정만 올려보다가 하나 둘 빠져나갔다 참 표현하기 뭐한 5분 가끔은 경건하게 새벽 네 시 오줌 마려워 잠깨다 오줌줄기로 왁자해진 변기 그 소리 잦아들자 머리 위에서 간신히 들리는 쪼르르 쫄 쪼르르 위층 노인네 소피보시나 보다 어둑한 화장실 천정을 올려다보며 맥 빠진 오줌줄기로 새벽을 맞이하고 있을 이 땅의 그 모든 쪼르르 쫄 쪼르르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다 진심으로 경건하게 철옥씨 손 그이와 악수하고 있으면 이 사람 목젖이나 가슴 어디쯤 잘 간직해두었던 따순 눈물들 손금 따라 흘러나와 나까지 적시고 문득 눈길 들어 올려다보면 얼굴 가득 순한 웃음에 나는 고만 부끄러워지는데 내손에 붙잡힌 여린 뼈마디들이 가만가만 속삭인다. 괜찮아요. 저도 부끄러운 게 많아요. 그이와 악수하고 나면 가만히 막걸리가 묵고 잡다 효자 3 목욕탕 풍경-3 늙은이는 왼쪽이 불편했다. 왼손이 위아래로 자꾸 떨리고 왼발은 딛는 둥 마는 둥 아들이 부축하여 온탕을 나선다 세면대 앞에 아비를 앉히고 익숙한 솜씨로 씻기는데 아귀가 딱 맞는 순서나 손놀림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나는 일 없이 시간을 재봤다 좋이 30여 분이 지났다 서너 차례 맑은 물로 행구더니 수건으로 물기 닦아 앉혀놓고는 부리나케 제 몸의 땀을 닦아내고는 늙은이를 부축하고 나간다 그들이 나가고 나자 탕 안이 갑자기 불효로 가득 차버렸다. 청주집 변소 영주시 영주2동 337-6번지 깊고 좁은 골목 저 안짝에 옛날 주막 같은 술집 하나 있다네 청주집. 날마다 주물럭 고갈비 익어가고 술청 안팎이 모다 왁자한 그 집에는 여적 재래식 변소 하나 있는데 다시 말하건데 화장실 아닌 변소라네 한 자는 실히 되는 높으막한 시멘트 발판에 올라 두 다리 적당히 벌려 괴춤 풀고 호기롭게 오줌 줄기 갈기노라면 오줌줄기 따라 흘러가는 것이 버리고 싶은 그날 하루치의 삶인지 그럭저럭 이어가고 있는 인생인지 거기까지 알 필요야 없는 일이지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퀴퀴한 오줌 냄새는 우리를 아스라이 저 먼 곳으로 틀림없이 데려다 준다네 국민학교 시절 칸막이도 없던 변소 열댓 명이 늘어서도 충분하던 그곳 엉덩이 다 드러나게 바지춤 훌떡 까내려 고만고만한 고추들 꺼내놓고는 오줌줄기로 갈지자 만들며 낄낄거리던 가난이고 기성회비고 죄다 잊은 채 맑고 푸진 웃음만 가득하던 그곳으로 어김없이 데려다 준다네 폐교에서 1956년에 개교하여 1998년 졸업생 2451명을 배출하고 문을 닫는다는 교적비 옆으로 이순신 장군 서 계신다. 잡초 무성한 운동장을 부릅뜬 눈으로 지키며 여적 오른쪽 손아귀 힘주어 긴 칼 잡고 계신다. 투구 끝 삼지창 철근 칠 벗겨져 벌건 녹물 이마로 흘러 내린지 오래 장군님, 그만 긴 칼 내려놓으시고 청동 갑옷도 훌러덩 팽개치고 지긋지긋한 바다도 떠나서 용상 위 줏대 없는 나라님이나 그 아래 망극이나 외는 이들도 없는 내륙 깊은 영주 어느 선술집에서 막걸리 한잔 어떻습니까 그리하여 얼근히 취한 후 혹 들려오는 일성호가라도 있으면 안주삼아 흥얼거리시든가 아니면 그 옆 노래방에서 늴리리 지화자로 목청 한 번 돋우시던지 수세식 화장실에서 앞자락 훌렁 제치고 오백년 참았던 오줌이나 후련히 갈기시던지  
83 (김상출 시인)나의 문학관
편집자
722 2018-01-10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태어났는지는 모르지만, 자꾸 안으로부터 ‘써라. 쓰지 않고 버틸 수 있는지, 견뎌보든지.’라는 재우침이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쓸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겠지요. 문학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름답게 바꾸는 것이 궁극의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마음에 나쁜 것이 깃들 수 없습니다. 거짓과 불의, 무책임과 부정부패는 마음이 아름답지 못해서 발생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문학을 하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마음으로 글을 쓰고,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이 아름다워지면, 세상은 아름답게 바뀔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용기와 통합니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불의와 거짓과 무책임과 부정부패를 보면, 용기를 내서 떨쳐 일어나고 결국에는 역사의 흐름을 돌려 정의로운 쪽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우리가 존경하고 있는 시인 윤동주나 이육사의 삶과 문학을 보면, 문학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또 소설가 서영은이 ‘작가는 사람들이 원하던 것, 서러워하던 것에 대해 이미 다 잊어버린 뒤에도, 그것을 주지 못한 아픔으로 오래오래 신음하고 남몰래 혼자 웁니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가장 아프게, 가장 나중까지 우는 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문학을 왜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이 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나의 작품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 않습니다. 다만 글을 쓰는 그 시간만은 내 마음에 최소한 거짓이나 추함이 없다고 스스로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쓰고 있습니다. ------------------------------------------- 1955년 출생 2011년 영주작가 신인상 당선 2107년 국어교사 정년퇴임 시집 ‘부끄러운 밑천’(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