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디

 

                                               

아이는 아플 때마다

더욱 튼튼히 자라나고

 

대나무는 마디가 있어

홀로 큰 키를 단단히 세운다

 

나는 오늘 지금까지 살아온

방문을 닫고 못질을 하고

 

열심히 마디를 만들어

새방을 꾸밀 준비를 한다

 

내 여생을 더욱 튼튼히

버티고 살아가기 위해

 

속을 완전히 비우고

지금은 마디를 만들고 있다

 

자꾸만 틈새로

파고 들어오는 욕심에다

 

손바닥에 옹이가 박히도록 

못질을 하고 있다





하루치의 무게

 

                                           

 

해가 서산너머 퇴근하면

 

범어 산과 신천을 오가며

먹이를 나르던 새들

고단한 날개를 접고

 

막 노동자가 일을 끝내는 시각

어두움이 찾아오는 순간

 

하루치의 무게를

품고 가는 저녁놀

 

 


화장

                                    

 

가난한 유학생의 아내

세 아이의 엄마

화장은 꿈도 못 꾸고

 

매일 곱게 단장하고

출근하는 이웃집 여인이

부럽던 선망의 눈망울

 

어느덧 주름진 모습 쳐진 피부

화장으로 갈무리하고

아닌 척 하면서 피정을 갔지

 

피정* S대학 교수가

자신이 소녀가장으로 지내던 때를 생각하며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평생 화장을 안 하기로 결심했다면서

맨 얼굴로 강론 하는데

 

화장한 얼굴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지

 

 

 

 

 * 피정; 가톨릭교회에서 일상생활을 떠나서 정신을 고요하게 하는

        깊은 기도 시간

 

 

 

나도 나무 할래

 

 

초등학교 삼학년 딸 아이 아파

서울대 병원 가던 날

병원 가로수로 우람하게 서 있는

은행나무를 보고

엄마, 이 나무 몇 살이야

글쎄 몇 백 년은 자라야 이정도 굵지

나보다 오래 살았네

부럽다, 나무들은 오래 살아 좋겠다

발걸음을 옮기다가 또 한 아름 넘어 보이는

튼튼한 느티나무를 보더니

얘는 몇 살이야

못되어도 이백년은 되겠지

그럼 엄마보다 더 많이 살았네

나도 나무 할래

 

엄마도 나무 할래

 

 

 

 전봇대

 

 

전봇대마다 서민들이

, , 방이라 써 붙인 방이

전화번호와 함께 펄럭 인다

 

세입자들과 맞아 떨어진

소개비 절약 작전

세입자들은 방을 보고

한다

 

전봇대에 광고지

일당 받는 아줌마들 열심히 뜯어내면

그 자리에 또 붙이고

자리가 없을 때는 남의 광고위에도 붙인다

 

전봇대에 얽힌 전깃줄보다 더 많은 사연들

각자의 옷깃에 숨기고 사는 다세대 주택의 세입자

반 지하 홀로 사는 할머니의 잘 키운 오남매

맏아들 외국으로 이민가고

아들 딸 다 서울 부산 객지로 떠나가

영감이 잠든 고향을 못 떠나 혼자 남았다

단칸방에 사는 모녀는

마흔이 넘은 딸 근무력증으로 누워만 지내고

할머니가 리어카에 폐지 주워 모아 연명 한다

옥탑방 사는 영수네 가출한 엄마대신

중학교 일학년 누나가 소녀가장이다

 

 

앙상한 가지에 나뭇잎 하나, 둘 남아 달랑거려도

전봇대는 빈틈이 없고

수난의 끝을 알 수 없다  




출석

 

 

 

봄 반 담임선생이 찾아와

출석을 부르면 예, 하고

앞산에 꽃들이 차례로

개나리는 노랗게 모습을 드러내고

진달래는 분홍빛으로, 제비꽃은 보라색을

각자 자기 색깔로 꽃을 피워 대답 한다

 

키가 큰 꽃들은 온통 초록 잎으로 몸을 숨기다

이름 부르면 부끄러운 듯 꽃송이를 흔들어 대답 한다

연보라 오동나무, 새하얀 아카시, 붉은 백일홍

이름 모르는 꽃들도

한번은 세상에 태어난 보람 꽃 피운다

앞산에 이렇게 많은 꽃들이 살고 있는 줄

출석 부르기 전에는 몰랐다.

한 덩어리 푸른 산으로 잘 조화를 이루어

각자 목소리를 죽이고 서로 양보하는 자연

 

햇살과 나뭇잎은 술래잡기 한다

바람 따라 이리저리 잎을 뒤집어 얼굴 숨기고

 

누군가 이름을 불러 줄 때

어떤 색깔로 답할지

자기만의 색을 만드느라 무아지경이다

 

 

 

 

풀꽃

                                   

 

마음을 낮춘 만큼

몸도 바닥에 바싹 붙였지

들판이든 길거리든 인도 틈바구니에든

작은 흙먼지만 있어도 자리를 잡았지

잎은 톱니바퀴 무늬로 나만의 멋을 부렸지

샛노란 깃발 높이 올렸지

나 여기 살아 있다고

 

무심한 발길에 수없이 밟혔지

어느 봄날 힘껏 밀어올린 공하나

바람 부는 날 하늘 높이 날려 보냈지

불꽃 축포 터뜨리며 포물선으로 내려앉은 관모 *  

 

낙태아, 복제인간, 줄기세포

우리네 양심의 굳은살 제거수술은

언제나 가능한지

 

풀꽃이 우리를 보고 웃지

 

 

 

 

 * 관모 ;  민들레꽃 씨앗                          

 

 

 

 

인력 시장

 

                                       

 

안동시 태화동 오거리 인력시장 앞

페인트 빈 통에 헌 나무토막들

활기차게 타오르는 불꽃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

불꽃 속에 새 설계도 너울대고

하얀 안개 속에서 집들이 얼굴을 내밀면

승합차 발 앞에 멈춘다

타오르던 나무토막이 숨죽이고

한사람 씩 선택되어 일터로 떠나면

불씨마저 사그라지고

고개 숙인 민 씨 노인 혼자남아

어제 마냥 헛기침도 해보고

발바닥으로 인도 블록 툭툭 차본다

 

태양이 노인의 그림자를 키우며

시간을 재촉하니

오늘도 이대로 끝나고 마는지

 

성경의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 에서 나오듯

해질녘에 나타나 하루 품삯을 쳐 줄

마음씨 착한 농장 주인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민 씨 생각은

하루 종일 그의 발목을 잡고 서 있다 

 

 

 

 

빈손

 

                                     

강가에 앉아

두 손 모아 물을 담아 보았다

한모금도 남김없이 다 빠져 나갔다

반나절을 그러고 앉았다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모래를 움켜잡았다

손가락 틈새로 솔 솔 솔 다 빠져 나갔다

반나절이 또 그렇게 지나갔다

 

하늘에 해는

온 종일을 붙잡으러 쫓아다녀도

서산으로 넘어갔다

 

붙잡고 또 잡으려 해도

어머니는 떠나 가버렸다

영원한 곳으로

 

 

 

 이사

                               

 

새 아파트로 이사 온지 몇 년째

아직도 같은 엘리베이터 사용하는 주민들

서로 잘 모르고 대충 인사하고

 

혼자 저녁놀이 물들 때

정원을 산책하는 재미가 솔솔 하다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나무와 꽃들이 반겨준다

노란색 민들레 보라색 제비꽃 분홍색 매화 등

뾰족이 돋아나는 새싹도 꽃 인양 사랑스럽다

 

가끔 지난겨울 추위와 봄 가뭄을

견디지 못하고 말라 죽은 마로니에와 소나무

나란히 서 있어도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것들만 말라있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이주해온 이방인들

더러는 일터에서 부상입고 쫓겨나고

불법체류 자 되어 숨어살며

전전긍긍 하루를 연명하던 메마른 얼굴

 

자연도 사람도 힘든 이주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