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의 문학관이라면

 

고사리 밭을 오갈 때마다 아카시아 꽃향기가 코를 찌른다. 강아지 두 마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를 따를 때마다 저 녀석들처럼 자유로운 것이 나라는 생각을 한다. 푸른 못 둑을 지날 때면 보랏빛 지칭개 꽃망울이 예쁘다고 살짝 쓰다듬어 주고, 길게 쭉쭉 뻗는 칡순은 슬쩍 옆으로 눕혀준다. 내가 가는 길을 막지 마라. 자연 속에 있을 때 나는 아무것도 부러운 것이 없는 여왕이다.

그렇다. 나는 산골 아줌마다. 작가 선생님 소리보다 고사리 집 아지매로 더 통하는 여자다. 내가 작가란 목걸이를 건 것이 199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중편소설이 당선 되면서 머리를 올렸다. 작가가 된지 오래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름 없는 작가에 불과하다. 문학의 분류표도 무시하고 시가 떠오를 때는 시를, 일상 줍기 식 수필을, 이야기를 짓고 싶을 때는 소설을 쓴다.

그러나 등단을 소설로 했으니 당연히 작가지만 아직 소설 집 한 권 묶지 못했다. 물론 소설은 해마다 서너 편은 발표한다. 주로 동인지지만 한 해도 빠진 적 없다. 시나 수필 역시 인터넷 지면을 통해, 혹은 청탁을 받고 쓴다. 가끔 나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분명한 것은 농사꾼 아낙으로 삼십 년을 산다는 거다. 또한 어떤 사람은 수필가로, 어떤 사람은 시인으로, 어떤 사람은 작가로 부른다는 거다. 농사꾼 아낙으로 사는 일과 작가로서 사는 일, 모두 나의 일이다. 글이 있어 살아지는 삶이고, 농촌에서 농사짓고 사는 일이 있어 글을 쓰는 삶이다.

나에게 문학관을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소박한 꿈이라면 평생 글을 쓰며 살다 죽을 것이고, 내 글에서 우리 동네 변천사를 읽을 수 있다는 거다. 농촌의 변화를 내 글에서 살펴볼 수 있고, 내 글에서 농촌의 진실을 볼 수 있다면 나는 한 생을 농사꾼으로, 글쟁이로 잘 살다 가는 것이리라. 거대한 문학관 운운할 필요도 없다. 일상 줍기 식이라도 내 글만이 가질 수 있는 나만의 향기가 나올 수 있다면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나는 글이 없는 삶은 생각하지 못한다. 행복하면 행복해 죽겠다고, 고단하면 고단해 죽겠다고, 힘들고 서러우면 힘들고 서럽다고 쓴다. 동네 사람들 이야기도 쓰고, 노인들 이야기에 집착을 보인다. 농촌 살이 삼십 년 동안 변한 것은 나잇살 늘어나는 외모일 뿐 내 속에 내재한 글쓰기는 멈출 수 없다. 책을 사랑하고, 글을 쓰는 순간을 아낌없이 사랑하며 사는 나는 촌부다.

다만 내가 추구하는 것은 농촌에 뿌리박고 사는 이상 농민의 시나 수필, 소설보다 농촌의 시나 수필, 소설을 쓰고자 한다는 거다. 내 글의 배경은 농촌이다. 산과 들과 바람과 숲,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줄줄 나오는 대로 적고 있다. 어려운 문자보다 누구나 읽기 쉽고 알기 쉽고 이해하는 편한 글쓰기를 지향하고 있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사랑한다. 사라져가는 토속어를 가능하면 내 글 속에서 살려놓고 싶다.

예를 들면 우리 집에 고사리 꺾어주러 오시는 할머니 중 이야기꾼이 있다. 그 할머니의 입담에는 그냥 웃음이 나온다. 글을 못 깨쳐 글을 못 읽지만 자기만의 셈법을 정확하게 하시는 어른이다. 예를 들면 노후 연금을 노리 연금이라 하신다. ‘우리 동네는 노리 연금 받아 묵고 사는 영감 할마이만 짜드라 있다 아이가. 노리가 빽빽 울어 샀는 걸 보모 저거 연금 타 묵는다꼬 저라까 싶다 카이.’ 캐액 캐액 앞뒤 산 울고 다니는 노루는 노루가 아니라 대부분 고라니다. 고라니는 아카시아 꽃이 피는 이맘때면 짝짓기를 하기 위해 짝을 부르는 소리다. 그 노루가 울면 노후 연금이 노리 연금으로 둔갑하는 것이 어찌 재밌지 않는가.

거창하게 나의 문학관 운운할 생각은 없다. 나는 그저 평범한 촌부고, 틈만 나면 아무 책이나 손에 잡히는 대로 읽기 시작하는 여자고, 틈만 나면 글을 쓰는 여자다. 시나 수필, 소설, 세 분야를 내 맘대로 오간다. 글이 생활이고, 생활이 글인 삶을 살고 있다. 돈도 안 되는 글이지만 평생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해 글쓰기는 나의 천형이란 말을 가끔 한다. 한 때 나는 지인으로부터 우리 동네 천연기념물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천연기념물, 괜찮은 예명 아닌가.

하지만 나는 천연기념물이 아니다. 올해 이순이 된 나는 그냥 평범한 촌부다. 이순이 되면 새로운 인생관이 열린다고 한다. 나는 거창한 깨달음 같은 것을 바란 적도 없다. 그저 내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이다. 어떤 욕망보다 일상의 따뜻함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열악하고 가난한 소농의 부모 밑에서 바르게 잘 자라준 내 아이들이 자랑스러운 평범한 어미이자 평범한 촌부다. 그리고 이야기를 짓고, 책을 사랑하고, 글을 쓰는 재능을 주신 부모님께 늘 고마워하는.

 

 

2. 약력

 

 

산청군 생

MBC 전원생활체험수기 대상 수상

농민신문 신춘문예 중편소설 당선

제8회 여수해양문학상 소설 대상 수상

현대시문학 시 등단

수필집 <푸름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