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어사 1

-올챙이


 

  

대웅전 앞 뜰

물웅덩이에 올챙이들 우글우글 모여

부처가 되어가고 있다

 

아직 앞다리도 뒷다리도 없는

말 그대로 개구리의 유생

곧 없어질 꼬리로 살랑살랑

웅덩이에 빠진 하늘을 흔들고 있다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결은 부드럽다

저 잘박거리는 물 다 마르면

한 치 앞도 못 내다보는

저 미물들은 다 어쩌누

 

부질없는 걱정에 두 손 모으자

수십 마리 올챙이들

모두 생불이 된다.

 

 

 

 

 

 만어사3


- 밀양역

 


 


산다는 게 그저
물 말아먹는 밥처럼 싱겁고 맛없는 날, 그런 날엔
세종대왕 몇 장 주머니에 찔러 넣고
무궁화 열차를 끌고 가
밀양역 즈음에 내리면 좋겠어
내가 왔노라 연락하면
늙은 로시난테는 돈키호테 같은 친구 한 놈 끌고
비실비실 마중 나와 줄까
그 빌어먹을 늙은 말은 헉헉, 긴 혓바닥으로 허공을 핥으며
꼬불꼬불 긴 비포장도로를 지나
만어사 즈음에 우리를 내려놓을지도 모를 일이야
만어사 앞뜰에 서서 친구 놈은

잘 익은 오디 몇 개 따서 입에 넣어주며
달큰하제?, 하고 물어볼까
아니, 쌉싸름하네 하고 대답하고 씨익 웃으면

그 친구 그저 말없이 슬그머니 등 뒤로 와

숨도 못 쉬게 꽉 안아 줄지도 모를 일이지
밀양역에 내리면
어쩔 수 없이 나는 바람나고 싶은 여자
밀양의 은밀함에 갇혀
비밀스런 이야기 하나쯤 만들어 버리고 싶은

 

 

 

 

 

 

오래전 그녀

 

 

 

살구빛 저고리 입은 그녀

갈래머리 소녀와 나란히 꽃밭에 앉아 있다

 

 

도토리묵 만들어 장에 내다 파느라

검게 물든 손바닥 누가 볼세라

움켜쥔 주먹 속에 닳아 희미해진 지문 같은 삶이 갇혀 있다

 

 

시간 여행을 하다가 능소화 한 송이 만난다

 

 

그날이 남은 생 중 가장 눈부신 날인 줄 모르고

무성한 잎들 힘겹게 끌고 높고 긴 돌담을 넘는

그 꽃

 

남평문씨 내 어머니

 

 

 

 

동자꽃

 

 

 

지난겨울 언 뺨이

아직도 발그레한 그 아이

풀잎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무심코 지나는 발목을 잡는다

 

 

혼자 견뎌냈을

밤의 무게와 바람의 모서리가

아이 몸 안에서 출렁인다

 

 

홀린 듯 취한 듯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그만 눈시울이  젖는다

 

 

어쩌면 나는

한 삼백 년 전 즈음

산속 암자에 아이를 버리고

모질게 등 돌리고 돌아 선

엄마였는지

 

 

울며 울며 내려오다

서너 번쯤 뒤돌아 보기는 했는지

 

 

 

 

 

무심사에서

 

 


전생을 만났다

한 삼백 년 전 그해 겨울
산속 암자에 버려졌던 그 아이
큰스님 옆에서 고사리손 호호 불며
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마음을 비우려고 떠난 길 위에서
마음이 얼었다

무심이란 본디 관심이 없는 것
혹은 소유함을 초월한 마음일진대
무심사에서 나는 없는 마음이 터졌다

 

예불을 끝내고
숙소로 이어진 돌층계를 오르는
동자승의 뒷모습이 눈 속으로 들어와
그대로 부처가 되었다

오래전 그날처럼, 나는
울며불며 산에서 내려오다
열 번, 스무 번도
더 뒤돌아보고

 

 

 

 

 

 

 

 

동파(冬破)

 


 

훈련소에 입소한 아들의 옷과 신발이

택배로 왔다

단정히 접은 옷 위에 신문지를 깔고

가지런히 놓인 운동화 한 켤레

왈칵, 서럽다

 

때 묻은 신발을 들고 냄새를 맡는다

흠흠, 쾌쾌한 아들 냄새

와락, 끌어안고 운다

향기롭다

 

“어머니, 아버지 여기는 졸라 춥습니다. 대박입니다.

하지만 잘 견디고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ㅋㅋ

충성!

처음 받아보는 아들의 짧은 편지에

울다가 웃는다

 

“내일 경기도 연천, 강원도 철원은

영화 20도의 강추위가 예상됩니다.

동파 될 위험이 있는 수도관 등은

점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기예보가 흘러나오자

점검 할 시간도 없이

엄마 마음이 바로 얼어 터진다.

 

 

 

 

 

 

간고등어

 


 

아침 식탁에 올릴

냉장고 속 간고등어 두 마리

밤새 무슨 일로 토라졌는지

등 돌리고 누운 놈을

다른 한 놈이 가만히 안아주고 있다

쓸개 창자 다 파내고

굵고 짠 소금에 생살 절이는

쓰라림 경험하지 않고서는

등 뒤에서 다 감싸 안아 줄 수 없다며

떨어질 줄 모르는 간 고등어

그 쫀득한 살

뚝뚝, 발라먹는 아침

입 안 가득 출렁이는 짜고 비린 바다

 

 

 

 

 

 

 

운흥사

 


 

바람 이리도 부는데 어쩌누

벚꽃 다 지는데 어쩌누

이런 날에는 우리

꽃 피는 것보다 꽃 지는 게 더 고운

운흥사에나 갈까요

 

절 앞마당 든든히 지키고 선

백 년 왕벚나무 그 늙으신 몸이

안간힘으로 피워 낸 환한 꽃송이들

꽃비로 지는데

아깝고 안타까운 봄날은 가는데

 

그 꽃그늘에 서서

굵은 나무의 몸 가만히 안고 눈 감으면

껍질에 촘촘히 점자로 박힌 나무의 일생

아무도 몰래 적은 그의 일기장

그것 좀 훔쳐보면 또 어때요

 

이렇게 바람은 불고

꽃비는 오고

봄날은 가는데

뒤돌아 보지도 않고 가는데

 

 

 

 

낮달이 되어

 

 

소를 찾아 떠난 길 위에 

꽃 수를  놓는 그녀

분홍낮달맞이, 무리를 이룰 때까지 심어 놓고서야

바늘에 찔린 손가락 호호 불며

하늘 한 번 올려다본다.

 

 

보여도 보이지 않는 경계

그 어디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화두 하나

환갑을 앞둔 나이에도 잡지 못하고

 

 

채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로 출가하여

꽃이었던 기억조차

까무룩 지워버린 그녀

오월 하늘에 희미한 낮달로 걸려

먼 수행 길 가고 있다.

 

 

      

 

 

풍장

 

 

 

서러워말자

모진 겨울, 언 땅을 걸어 와

검은 몸뚱이

희디흰 꽃송이 환하게 피웠나니

비록 순간이라 한들

서러울 일 없는 일생이다

 

 

한 몸으로 엉겨 서로를 붙들고 있던 꽃잎들

한 잎 한 잎 흩어져

바람 따라 길 떠나는 저마다의 비행

어디에 떨어져 무엇으로 다시 태어날 지

알 수 없는 윤회의 고리 안에서

벚꽃 잎들

파르르 온 몸 떨며

환생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