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화산이라예 [처용아내 2]

             

보이소예

지는예, 서답도 가심도 다 죽은  

사화산인 줄 아시지예?

       이 가심 속엔예 안죽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발할지 지도 몰라예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예?

시들긴했지만 지도 철따라 피었다 지는 꽃이라예

       시상에

       비랑끝의 꽃이 이뻐 보인다고

       지를 꺾을라카는 눈빠진 싸나아 있다카믄

       꽃은 꽃인가봐예?

봄비는 추적추적 임발자국 소리 겉지예

벚꽃 꽃잎은 나풀나풀

한숨지미 떨어지고 있지예

혼차 지샐라카이 너무 적막강산이라예

봄밤이라예

안그래예?



왠생트집[처용아내 1]

             

가라히 네히라고예?

     생사람 잡지 마이소예

    달이 휘영청 청승떨고 있지예

     밤이 어서어서 다구치미 깊어가지예

     임카 마시려던 동동주 홀짝홀짝

     술삥 지혼차 다 비았지예

     용광로 부글부글 끓는데

     임이 안 오시지예

     긴 밤 지쳐 살풋든 잠 찔레꽃 꺾어든

     귀공자를 잠시 반긴 거 뿌인데예

     웬생트집예?

     셔블 밝은 달아래서

     밤 깊도록 기집끼고 노닥거린 취기

     의처증 된기라예?

     아, 사철 봄바람인 사나아는 간음 아이고

     외로붐에 속 골빙든 예편네

     꿈 한분 살짝 꾼 기

     죈가예. 예?



우포늪에서


어느 날 문득 깨달았던 것이다. 생각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흐르는 물은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푸우욱 썩어 늪이 되어 깊이 깨달아야 겨우 작은 꽃 한 송이 피울 수 있으리라퍼뜩 생각났던 것이다일억 사오천 만 년 전 낙동강 한 줄기가 무릎을탁, 쳤을 것이다. 분명히달면 삼키고 쓰면 버릴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제 속에 썩혀서 어느 세월엔가 연꽃 한 송이 꽃피울 꿈을 꾸었던 것이다조상의, 제 조상의 뿌리를 간직하려고 원시의 빗방울은 물이 되고

그 물 다시 빗방울 되어물결 따라 흘러가기를 거부한 늪은, 말없이 흘러가기를 재촉하는 쌀쌀맞은 세월 앞에 한 번 오지게 맞서 볼 작정을 했던 것이다때론 갈마바람 따라 훨훨 세상과 어울리고저깊이 가라앉아 안슬픈 밤이었지만

세월을 가두고 마음을 오직 한 곳으로 모아

끈질긴 가시들을 뿌리치고

기어이 뚫어긴긴 세월들이 썩은 진흙 구덩이에서 

가시연꽃 한 송이 피워내고 만 것이다



연서戀書


네가 허기진 먹물이라면

나는 목 타는 한지


우리 서로 만나 하나로 어우러져

샘물 솟아내야만

붓꽃 몇 송이 피어나리니


하늘 열쇠 간직한

꽃과 열매를 틔우고 맺으리니




수묵화 한 점


꾹 꾸욱, 거칠게 누르다가

살 사알, 간질이듯 힘을 뺀다

붓은 한지에 짙게,

때로는 옅게 먹물을 뱉어낸다


삶기고 치대어진 닥나무의 한이

벼루에 갈린 먹물의 꿈을

걸신들린 듯이 빨아들인다

한과 꿈이 한 몸으로 어우러진 용트림,

숨결이 뜨겁게 끓어오른다


서로의 아픔을 포용하는

붓과 한지의 포옹, 그리고 입맞춤

연기 한 점 없이 타오르는 불꽃으로

환해지는 세상,

마침내 햇살 듬뿍 머금고

백련 한 송이 피어오른다


간절한 꿈은 아픔을 함께 나눠야만

화엄향기 품은 연꽃으로 거듭난다는 걸

한지와 붓은 묵언으로 보여주는지,

저 담백하고 우아한 수묵화 한 점



인생1


의자 하나 끌고 가려다

의자에 끌려 다닌다


어린 엉덩이조차 제대로 걸칠 수 없는

작은 의자


평생 마음 편히 앉아보지 못한 채

내가 끌려가는


이 의자





흰 소의 울음징채를 찾아

                          


딸아, 네 몸도 마음도 다 징이니라

 

한 번 울 때마다 둔탁한 쉰 소리지만 그 날갯죽지엔

잠든 귀신도 깨울 수 있는 울림의 흰 그늘이 서려 있단다

 

살다 보면 수많은 징채들이 네 가슴 두드릴 것이니

봄눈 이기려는 매화 매운 향이 낙엽까지 휩쓸어 가려는

높새바람의 춤이 한파를 못 견디는 설해목의 목 꺾는

울음소리가


이 모든 바람의 징채들이 너를 칠 것이나

그렇다고 자주 울어서는 안 되느니라

참고 웃다가 정말로 가슴이 미어질 때

그럴 때만 울어라


울고 울어 네 흐느낌 슬픔의 밑뿌리까지

적시도록, 징채의

무게 탓하지 말고 네 떨림의 소리그늘이

은은히 퍼져 나가도록


눈 내리는 이 밤, 아버지

그 말씀의 거북징채가 새삼 저를 울리고 있습니다



인생 2


밥을 먹는다

밥이 나를 먹는다


밥은 내 아버지를 먹고

또 그를 먹는다


먹히다, 먹히다 지쳐 뼈만 앙상한

그를 밀치고

이제 내 아들이 먹힌다


밥술을 놓아야만 비로소

한 마리 나비되어 날아오를 수 있는

밥은

피눈물을 부른다


죽음과 삶을 가르는 길목의

갑질을 위해



연꽃 1


이 여름 지기 전


그 사람의


우렁각시 되고 지고



연꽃 2


한 여름 대낮에


관능경을 펼치고 있는


저, 환희불들



풋울음 잡다


딸아, 아무리 몸부림쳐도 꽃이 피지 않는다

봄날이 오지 않는다 투덜투덜

꽹과리 장구 깨지는 소리 따라다니지 말아라

한 생이 자벌레 키 자가웃도 못되는데

그렇게 헤프게 울거나 웃어 보내면 쓰겠느냐


놋쇠는 그런 풋울음 잡기 위해

불 속에서 수없이 담금질 당하고

수 천 번 두드려 맞는단다

주변의 쇠와 가죽 소리를 감싸 끌어안고

재 넘어 홀로 핀 가시연의 그리움 달래주는

징이 되기 위해서

 

그런 재울음은 삶의 고비 몇 고비 넘기면서 한을 삭히고 달래어 흐르는 물살처럼 부드러운 징채로 두드려야, 목으로 내지르는 쇳소리 아닌 이승과 저승의 경계 허무는 울림 징하게 터져 나오느니

 

비로소 햇살이 그 소리 비집고 들어 네 둥근 항아리 속 그늘진 도화 꽃 몽우리를 햇살로 피워 올릴 수 있는, 시의 참다운 징수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