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1

 

  비는

  위부터 적시지만

  가장 많이 젖는 것은

  바닥이다

  피함도 없이

  거부도 없이

  모든 물기를 받아들인다

  비에 젖지 않는 것은 없지만

  바닥에 이르러 비로소 흥건히 젖는다

  바닥은 늘 비어 있다

 

   

  빗방울

 

  가느다란 빗방울에도 무게가 있어

  빗방울 맞은 나뭇잎이 휘청댄다

  휘청대는 나뭇잎이 일으킨 바람이

  지구를 천천히 돌려 낮은 밤이 된다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한 생애를 천천히 밀고 가는

  무게라곤 없어 보이는 것들

 

 

  해송

 

  바위 갈라진 틈에

  뿌리 들이민

  해송

  바닷가 촌집 반 반 갈라

  가운데 셋방

  내 삼십대 초반 같다

  문지르면 소금기 일어나던

  백지장 얼굴 같다

 

 

  노을

 

  나무는 자기가 단풍드는 걸 알까

  제 몸 물기 서서히 빠져나가

  마지막 순간의 절정이

  단풍이란 걸 알까

  단풍든 잎 스스로 떨어지는

  바람 불지 않는 저녁

  저걸 주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의 저녁

  이 나무 저 나무

  새소리 번지는 하늘

  발갛다

 

 

  홍시

    - 고현철을 그리며

 

  얼마나 아팠을까 저 홍시

  너를 떨어뜨린 게

  너 꽉 찬 안이냐

  너 텅 빈 바깥이냐

 

  홍시 떨어진 거기

  봄이면 감꽃 아무리 덮는들

  얼마나 무서웠을까 저 홍시

 

 

  속세

 

  너무 높이 달려서

  따먹지도 못하는 감

  가지를 왕창 친다

  나무에서 갈라지는 본래 가지만

  두 가지 세 가지

  사람 손 언제든지 닿는

  속세 같다

 

 

  임도

 

  봄날 기우는 해가

  따가우면 얼마나 따갑겠느냐

  해를 정면으로 받으며 걷는 길

  산불이 나면

  불은 이쯤에서 끊기리

  봄꽃이 나면

  꽃은 이쯤에서 끊기리

  해는 기울건만

  나이는 기울건만

  산불 나는 마음이여

  봄꽃 나는 마음이여

  그 마음 끊기지 않아

  숲과 숲 사이에 난 길 임도

  갈 데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해 기우는 봄날

 

 

  한밤

 

  개구리는 용하다

  수십 마리 수백 마리 개구리

  옆구리 붙이고 다니면서

  옆 개구리 옆구리 쿡쿡 쑤셔

  행동 같이하자고 신호를 보내는지

  울면 한꺼번에 울고

  그치면 한꺼번에 그친다

  옆구리 쑤셔도 한 마리쯤 두 마리쯤

  울음이 뚝 그쳐지지 않아

  꺼이꺼이 계속 울어 댈 만도 한데

  숨이 막힐 정도로 쑤시는지

  뚝 그치지 않는 개구리

  한 마리도 두 마리도 없다

  남 다 자는 한밤

  누가 옆구리 찌르는지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난다

  나야 할 때 나지 않던 눈물이

  나야 할 때가 아닌데 난다

  진정이 되지 않아

  내 옆구리 내가 치는 밤

 

 

  잡냄새

 

  나 어릴 때 축농증 앓았지

  어른이 된 지금도

  다 나은 것 같지는 않지

  내 몸은 덜 말라

  걸핏하면 콧물 달고 다니지

  한쪽 또는 양쪽 콧구멍 막혀

  말은 못 하고 답답할 때 많지

  그래도 영 안 좋기만 한 건 아니지

  냄새난다고 남들 꺼리는

  수육 덩어리며 고깃국

  나는 아무렇지 않지

  내 몸에서 나는 냄새처럼 익숙해져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지

  내 몸에서 나는 것일지도 모를 냄새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지

  어릴 때 축농증

  지금도 다 낫진 않았지만

  그 덕에 이 냄새 저 냄새

  이러니저러니 따지지 않고 받아들이지

  나 아무렇지 않게 잡냄새 되어 가지

 

  

  지구는 둥글까

 

  지구는 둥글어서

  그 끝이 없다고들 하지만

  끝에서 추락하는 일이 없다고들 하지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어느 날 갑자기 소식이 끊긴 사람들

  소식을 끊고 사는 사람들

  어쩌면 이 지구에

  우리가 모르는 막다른 곳이 있어서

  천 길 절벽 아래로 밀려난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 반대로

  막다른 곳에서 나도 모르게 밀려나

  그들과 소식 끊긴 것은 아닐까

  꿈에서 둥근 지구본 굴리다가

  꿈을 깨면서 잠까지 깨어

  기분 뒤숭숭한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