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아픈 시


  개발이 시작되기 전 시골 풍경은 어디나 비슷했으리라 마을 입구에 고목의 팽나무나 느티나무 몇 그루가 있고 뒤로는 좀 높은 산, 앞으로는 시내를 사이에 두고 반짝이는 모래밭과 키 큰 미루나무가 있고 들판이 있는 풍경, 아직 앞가슴이 밋밋하고 늘 냇가나 도랑에서 노느라  깡마르고 짧은 옷 밖으로 드러난 모든 피부가 새까만 계집아이 시절 서울에서 온 사촌 언니, 피부가 우윳빛이고 적당히 통통한 언니와 들판에 나갔는데 진경산수화 같은 경치를 보면서 언니는 이런 곳에 살면 좋은 시인이 될 거라는 말을 했다. 시인, 그 때 백지 같던 백치 같던 어린 나의 뇌리에 시인이란 형상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남겨진 것 같다.

  잔디 / 잔디 / 금잔디, / 심심산천에 / 붙는 불은 /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 버드나무 끝에 실가지에, /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 심심 산천에도 금잔디에, // 갓 입학한 중학교, 국어 선생님이 낭송을 하시면 칠판에 쓰시던 김소월의 금잔디 이 시는 지금도 내 가슴에 모셔져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애틋함, 그 애틋함을 더욱 애틋하게 하던 리듬감, 나는 이 때부터 시의 매력에 끌려들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  며칠  후 아름다운 삽화로 꾸며진 김소월의 양장본 시집 산유화를 샀다. 지금까지 소중하게 간직하는 시집이다 . 

 그러나 지금 내가 쓰는 시는 수려한 자연풍경도 아니고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아픔, 떠난 님을 잊지 못 해 그리워하는 시가 아니다 좌절과 방황과 갈등의 봄 여름, 갈기갈기 찢어질 것 같던 날들을 보내면서 감동적인 연애 시에 위로 받고 뜨거운 생명을 노래하는 시에는 작은 불씨 하나 숨기기도 하면서 시는 이런 것이구나 이런 것을 써야하는 것이구나 했다 그러나 뭔가 부족했다 이런 시들을 내 가슴을 채워주지 못했다 갈증만 목을 더 마르게 했고 가슴은 허하기만 했다 사랑 타령 꽃 타령만 해서 뭐 어쩌자는 것인가 현실에서 저 만큼 비켜 앉아 뭐 어쩌자는 것인가 산 속 바위틈에 홀로 핀 꽃이 아름답고 고고하기도 하겠으나 사람의 사는 일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이렇게 서정시에 허허로움을 느끼던 어느 날 서점 한 구석에 있던 제법 두꺼운 민중시인 시선집을 만났다 민중 시인인 김지하 박노해의 시를 좀 알고 있었지만 이 시집에서 만나는 양성우 문병란 고은 신동엽 신경림의 시들은 또 다른 충격과 광대한 시야를 펼쳐주었다 이런 주제 이런 표현도 시가 되는구나 시는 자연이나 사랑을 노래하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으며 금방 날아가는 감성적 감동이 아니라 삶의 지표로써 오래 가슴에 남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내가 쓰는 시는 이 분들의 영향을 받고 발자국을 흉내 내기도 했으나 꼭 그렇지는 않다. 

  내 시의 시선은 항상 주변의 사람들에게 닿아있다 나는 시의 주제나 소제를 주변의 사람들이 아닌 것에서 찾기 힘들다 사람이 아니면 아무리 아름다운 걸 봐도 그냥 “좋네”일뿐 정서적으로 시를 쓸만한 감흥은 마음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도대체 시가 되지를 않는다 그렇다고 독자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일으키게끔 하는 시도 아니다 내 주변의 신산하고 애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내 마음에 아프고 슬프게 달라붙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시라는 불안한 날개를 달고 내게서 떠난다 그러면 내 마음은 조금 편안해지기는 해도 그 애련함은 그대로 남는다 이것을 나의 문학관  또는 시 세계라고 한다면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닌 선천적인 것, 혹은 여러 대에 걸친 무의식 세계의 발현이라고 생각된다 고향 뒷산에는 십 이대 조까지의 산소가 있지만 말단 관직도 한자리 하지 못한 선대들이다 그 오랜 세월 민초으로써의 삶, 그 시대의 그 삶이 얼마나 고달팠을까 나 또한 불우한 삶의 한가운데에 있다 이런 애환이 나의 무의식에 각인되어 나의 시가 이루어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앞으로도 내 시의 방향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다만 형식과 사유와 표현에서 깊고 매끈하게 다듬는 노력을 해야겠다.



김재순: 경북 상주출생 상주작가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