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 

 


          


                             김성찬


 


꿈을 안고 도회지로 상경한 소녀에게


한 사내가 마법을 걸어왔다


밤하늘의 별을 모두 따서 주겠다는


말에 혹 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성을 쌓았다가 허물었다


그 꿈이 영글어 갈 때쯤


솎아내던 밭고랑 패대기치고


흙발로 달려온 어머니


생머리 움켜쥐고 가위로


싹둑싹둑 자르고는


대문 밖으로 내쫓았다


문밖에는 별을


한다발 품은 사내가 서 있었다


 


주술은 신기하게 이루어졌다


소녀는 사내가 깔아놓은


별이 총총히 박힌 주단 위를


유리구두를 신고 사뿐사뿐


마법의 성으로 향했다


 


꿈의 꽃밭을 거닐던 소녀는


마법이 풀릴 때까지 


신데렐라가 되어 있었다






매월당의 노래  

  

                     

                      

                1 

나 어릴 적 학문 익혀 그 은혜 못 갚았거늘

고운님 여의옵고 속절없이 길 떠나네

이 산하가 나의 집이 되고 고요한 숲 속

침묵의 경계 거닐며

세상사 귀 닫고 부처께 귀의하노라

간밤에 눈 내려 쌓여 강릉 가는 길

모조리 지워지고 봉창 안으로

새하얀빛 쏟아져 들어와 산방 밝히는 이경 무렵

구전지술* 펼치고 책 속에서 길을 더듬어 보네

멀리 나간 마음들이 길고 깊은 겨울밤이

다 지났음을 예감했을까

처마 끝 고드름 톡 톡 떨어져 나간 지 달포 전

봄의 씨앗들 불려 나와 비질하다가 만

절간 앞마당에 우-우-바람 몰고 다니네  

  

            2

나 한세상 비켜 살다가

마흔일곱에 세상 한켠 머물렀으나

잃은 박복한 생

부처는 다시 길을 가라 하네 

단장 짚고 가다 머무는 곳 

시 한 수 적어 읊어보고

세상사 헛된 인연을 시냇물에 흘려보내네

지친 몸 자연 벗 삼아

티끌 없는 하늘 지붕 아래 잠시 쉬었다가

다시 도를 찾아 떠나는 길 

돌아보면 아득하여라  나 갈 길 아득하여라





송림사

 

 

 

오솔길 들어서면

숲의 잎사귀들이 어둠 속에

묻힌 기억의 길을 흔든다

문 앞 금간 비석의 내력

새들이 그 아픈 일생을

쪼아대고 있다

 

노승이 읊는 독경 소리에

이끌려 든 대웅전

가부좌 틀고 참회문 펼쳐들자

경들이 뛰쳐나와

죽비로 내 등짝을 후려친다나 불법에 기대 살지

못했음을 자책하며방석 위에 눈물 몇 방울 떨궈 놓고

법어 하나 떠올려 보느니

 

뜨거운 눈물로 무릎을 세 번 적셔라.

 

세상사 맺지 못한 인연

헤어짐이 없다는 불국토

소원 등 하나 켜 달았다

 

속계 묵은 때 다  닦아내고

요사채 가는 백팔 계단 내려올제

동승이 수행의 문 열고 나와

새벽 어둠  쓸어내고 있다

 

 

 

서포를 추억하다

                    

           1

백련 포구 얕은 바다 건너

큰골 허리등논배미 초옥

언덕배기 소나무숲 사이로

쪽빛 바다는 거친 바위틈을 벌린다  

바람의 씨앗으로 잉태되어 자라

모질고 뒤틀린 흑송의 삶 껴안는   

천근의 돌 가슴에 안고

삿갓만 떠다니는 앵강바다 

어머니 메마른 손으로 써보낸 안부

돛배에 바삐 실려오네

이름모를 풀들과 몸 비벼대며

한 땀 한 땀 흙 적시며 채마밭 일구고

고단한 흙발로 걸어온 달 그림자

봉창에 어스름 드리우면 아주까리 등불 밝혀

  

'오늘 아침 어머니 그리워 시를 쓰자 하나*

쓰기도 전에 눈물이 가득하구나' 

  

어머니 생신날 지은 시 읊조려보다가고운님 향한 선비의 절조와 

두고온 세간에 관한 그리움에

삼경 무렵 아랫마을

마지막 등불 꺼질 때까지

못 이루던 잠은 혼돈이었다

  

                 

             

          2 

삿갓처럼 엎어진 섬 등에 지고

달려드는 해거름 뿌리치고

돌아나오는 길에는 소금바람이 찾아와

헤진 꿈들 누덕누덕 기워 덮은 지붕

들춰보고 있다

파도가 가끔 엿보고 가는 

적소를 뒤돌아보며

곧게 살았거라 곧게 살아가거라

어머니 깊게 패인 역정 떠올려 보다가

불효한 날들에 얼굴 붉어져서

뱃전에 기대 울음을 삼키고 있을 때

두샛바람 다가와 내 볼을 어루만지다가 

은빛 톱날이 되어 사백년 웅크린

노도섬의 결(結)을 잘게 썰어  

귀양바다 저 바다

눈물바다 저 바다

한 뼘 한 뼘 메우고 있다

  

 

  *김만중 선생이 노도 유배지에서 어머니 생신날 지었다는 시천시

  




어느 날의 기록

 

 

퍼붓는 함박눈

하늘도 온통눈밭이다

 

숨비소리 뿜어내며

테왁에 매달려 올려다 본 하늘

 

뒤란 감나무에 목을 맨 청춘이 홀로 눈밭을 걷고 있다

 

자맥질로 낚아 올린 가난의 부스러기들

생활의 망사리에 우겨넣고

흥정해서 올릴 제사상은

슬픔의 저울추를 밀고 있다

 

눈발 그치자 급하게 불려나온 해가 셔터를 열고

시장 끄트머리 사진관 물먹은 유리창을 찍어대자

추억처럼 청춘 남녀가 걸려 있다

맑게 웃는 아기까지 판화처럼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바람도 발목 삔 걸음으로 더디 걷던

쌓인 눈 얼어붙은 밤길

절름거리며 먼 길을 걸어온 청춘이

젯밥 한 술 뜨고 있을 때 홀시어미 흐느낌 속에

스물한 살 청상이 절 하고 있다

혼불 나불나불 타올라

잘근잘근 어둠 잘라먹던 방 한 켠

잠깬 아기를 고요가 구덕을 흔들어 다시 재우고 있다

 

 

 

 




어시장 

                         

                              

 

환경미화원이 밀고나오는 수레에 아침이 실려온다

 

얼음꽃 핀 생선들 지느러미 곧추 세우고 

관 속 같은 비릿한 상자 안에 활굽이 등뼈로 누워  

입 다물지 못한 채 토막날 시간 기다리고 있다

 

귓밥 얼얼한 추위 앞에 서성이던 나는 

생선 좌판 앞에 진열 되어 있다가

기웃거리는 이방인들과 등줄기 퍼어른 

파도의 싱싱함을 단칼에 도려내는

칼날의 날카로움을 화두로 주고 받았다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 어깨 치고

지나가는 취객 등에 저녁 어스름 업혀 간다

  

몇 홉 소주에 취한 생선 좌판 사내는

팔다 남은 생선 위에 소금 뿌려대며

풀린 눈 치켜뜨고 자신의 생이

좌판처럼 늘어놓고 산 것 만은

아니라고  혀 꼬부러져 혼자 주절대는

말이 젖은 바닥에 흩어졌다

 

다 못 판 생선 동게진 리어카가

어둠 밀고 간다

비틀거리는 그의 그림자도

더 깊은 어둠의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언덕배기 그집에 관한 단상

                                             

 

                        

 

 

낮달이 수제비로 떠 있던 푸른 이끼 낀 우물이 있었다

낡은 정지문 군데군데 깊게 패인 주름이 세월을 예감했다

어둠이 웅크리고 있던 동굴 같던 아버지 앓던 방이 있었다

공책 손에 쥐고 순서 기다리던 송판 두개 걸친 재래식 변소가 있었다

 

쌀 반되 연탄 두장 하루치 생을 새끼줄에 매달고

형이 올 언덕 아래로 자주 눈길이 갔다 

그해 봄부터 사춘기병을 심하게 앓았다  

 

중장비들이 대오를 갖추고 신천1동 언덕배기 마을로 진군했다

캐러필트 발 아래 스러진 아카시아는 하이얀 꽃잎 수 없이 날려 보냈다

구겨진 판자집 지붕들 덤퍼트럭에 묶여 페기물 집합소로 실려갔다

개발 분진이 낮게 떠 다녀 낮에도 마을은 어두웠다

다이너마이트 폭발음이 작은 동산을 허물어버렸다

바위틈 산까치 둥지가 후폭풍에 먼 하늘로 날아갔다

포크레인이 긴 팔을 뻗어 지붕을 타격하자

전기가 나가고 먹물 같은 어둠이 들어왔다

우리 가족의 꿈도 서둘러 빠져나갔다

아버지 홧김에 마시던 막걸리 사발 안에

종이장처럼 구겨진 판자집이 둥 둥 떠 있었다

뻥- 뚫힌 지붕으로 별빛이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

우리 기족은 슬픔이라는 이불 덮고

뻥-뚫린 밤하늘 별밭 올려다 보다가 잠이 들었다 

아버지는 마흔 일곱 생을 급하게 마감하고 하늘로 불려갔다 

줄장미 몇 최후로 남아 악쓰며 기어오르던 무너진 담장을 넘어

빛바랜 가방 하나 달랑 메고 부서진 골목 혼자서 걸어 나왔다

 

내가 스무살이 되던 그해

불도저와 포크레인이 밀어낸 아버지 생과

내 사춘기와 언덕배기 그집이

내 기억의 창고 한켠에 추억처럼 걸려 있다

-  




주례구치소*  1

 

                              

 

           

모포 하나 책 몇 권 세면도구

가지런히 정돈된 0.75평 독방

새벽 칼바람 훈계의 회초리 되어

내 볼 후려치고 간다

가슴에 붉은 명찰 박고

잠시 해보는 명상의 시간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오늘을 죽을 것처럼 살라

리얼리스트의 다짐은 창살 너머로 흘러 나간다

  

범털 세숫물은 데워져 있다 간수는 공손하다

범털 사식 식단 아래 개털은 고개를 조아린다

범털 하얀 운동화는 더욱 반질거리고 

개털 때 묻은 고무신은 더 깊은 슬픔에 빠진다  

  

붉은 명찰**  흰 명찰***  노랑 명찰****

나이 구분 없이 함께 뒹구는 30분의 자유

운동 끝, 호각소리 발 맞춰 개털은 그들끼리 범털은 그들끼리 

창살 안으로 들어가 제 수번을 호명하며 저녁 점호 자세를 취한다 

  

어둠보다 더 깊은 밤 

24시간 철야로 불 켜진 방, 뒤척이다가 든 잠,

꿈 마저도 수정에 채워져 있다

  

  

            

*부산구치소 

**요주의 관찰대상(사상범. 강력범)

***일반잡범(개털) 

****경제사범(범털) 

 

 

 

주례구치소 2

창살 사이에 두고 대면 감시 중이다  

붉은 명찰 독방 일상은 낱낱이 보고되고 있다

  

범털 또한 대면 감시 중이다

담당은 그의 동향을 기록하지만

전날을 베낄 뿐이다 

  

범털의 위상은 구치소에서 더 빛난다

불려 나간 범털은 담배 한 갑 윗주머니 꽂고 돌아온다

모든 명찰들이 그 앞에서 고개를 조아린다

  

변론을 경청하던 법은 관대하다

재판관은 솜방망이를 두들기며 형 집행을 유예한다

출소하는 범 털에게 간수들은 거수경례로 경의를 표한다

개털도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낸다

  

붉은 명찰 몇 처우개선 요구하며 단식 중이다

허기진 겨울 해가 1사동 셔터를 서둘러 내리고 있다

  

사동 벽에 걸린 시계 초침마저 느리게 걷는 구치소 겨울 밤

 

  




황태

  

                      

  

처마에 아가미 꿰여 있던 생선이

허기진 저녁상 구워냈다

새어머니 눈총 받던 밥상 모서리   

아버지 당신 살점 뚝 떼어 

꽁보리밥 위에 얹어주셨다

  

칼바람에 늘 살갗이 갈라졌다 

솜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던 아이는

꿈속에서 제 몸을 키워 머-얼리 날려 보냈다 

  

맵찬 바닷바람에게 

오장육부 등뼈까지 다 내준 덕장 황태

얼어붙은 푸른 등짝은

달빛 아래서 오히려 빛이 났다

  

아들과 동해 덕장 갔다 오는 길

창유리에 비치는 내 모습 

유년 시절 보았던

머리 희끗한 아버지를 다시 본다




폭설            

 

                         

 

하늘 마을 빙설 보관 창고가 무너졌나 

오리털 보다 더 가벼운 수만의 은색 가루가

덩어리로 뭉쳐져 지상으로 마구 낙하한다

 

막힌 길들은 관절이 서로 얽혀 아우성 친다

할말이 많아진 전화기들은

하늘마을 안부 수시로 주고 받으며

귀가를 서두른다

 

하염없이 내리던 눈

어둠 위에 자꾸 쌓였다 

 

 

축 늘어져 신음하던

땅은 스스로 만든 세상 길들을

다 지워버렸다

 

지팡이 더듬거리며

길 찾아 헤매다가 깨어보니

창문 너머 세상이 눈부시다

무심코 방문 열자

첫 눈은 맞아야 멋이라며

살포시 웃던 스무살 적 그리움이 

와락 쏟아져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