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에게

 

                               

 

들녘에서 당신을 만날 때 기쁘다

나도 당신처럼 살자 했으나

진실로 용감하지 못했다.

일생 父母遺言을 망각한

황망함을 어쩌지 못해

不敬한 눈으로

눈물 많은 세상 굴려보다

초탈한 개구리

방향이 잘못된 것을 탓하지 않고

용감하게 五體投止 하고

보는

…선생

일생 펄펄한 기백이 부럽다.






된장

 

 

 

땅과 바다가

낳은

콩과 소금을

믿는다

항아리 안에서

지낼

우주의 큰 화합

해와 달빛도

그걸 알아

조신하게 차려 놓은

꽃잠을

지나갈 뿐.






. 無量寺에서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산 無量寺

無量의 바람에 앉아

小暑에 겨우 입을 뗀 말매미 낮은 울음 듣네

몸이 집일까?

집이 몸일까?

뜨락에 모란이 꽃을 여의고 무성하다

600년 전 매월당 김시습,

오세 신동으로 나라의 동량이었으나

생육신으로 세상에 몸을 숨긴 이곳에서

초상화 속 탈속함으로 마주서는 눈아래 잡혀서

나는 뜨락에 늙은 느티나무 무릎에 앉았다

집의 무덤은 집의 자리

나무의 무덤은 나무의 자리

나와 매미는 무덤 자리를 모르네

슬프고 어리석지 않은가

달은 해에 숨고

해는 달에 숨고

바람은 또 어디서 일어 어디로 가는가

그래서 無量이라 하지 않는가.






조만간에

 

 

 

아주 생소한 이름처럼 가슴에 숨어 있던

그 말

전화를 끊고서 조만간에 보자는

살아 있다는 말

저 보름달과 초생달과 그믐달

사이쯤에 오고 있으면서

우리 은 늘

‘조만간’ 이라는 사이 속에 있지 않았는가?

耳順에 이르러 삶도 시덥잖게 지나간 작달비처럼

소멸되고 또

더러는 죽은 벗의 이름을 불쑥

되뇌어 보다가도

찔레꽃 질 때쯤이면

뻐꾸기처럼 일생 타인의 둥지를 빌려 쓴

망각의 집을

아주 잃기도 하면서

조만간이라는 징검다리를

우리는 오늘도 놓지 않았는지





무덤

 

 

 

고향집 장독대를 내려다보며

울 밖에 나란히 누우신 부모님

무덤

장맛비 지나는 틈에

악착같이 키를 키우는 무덤의 잡초를 뽑으며

무심히

‘무덤’이란 말이 좋다

살아남은 자가 마지막으로 마련해 둔

기억의 집

소소하게 흐르는 생을 더듬어

시나브로

하나의 풍경으로

내 발이 붙잡히는

‘무덤’이란 말이 깊다






파도

 

 

 

아내는 잠든

아들 녀석 귀청을 파주며

파도 소리를 넓혀주고

 

파도 소리는 뭍에서 따라온 시름

잊으라 잊으라

내 귀를 막아주네






맨드라미

 

 

 

장맛비 내리는 출근길

매일 동행의 버스를 기다리던 자리에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서 있던 뒤편에 애기 손 같은

맨드라미가 차창으로 불쑥

비에 젖은 손을 흔든다

잠시 내 상상의 골에 장맛비가

차창을 닦는다

나는 이별하는 자리에서

맨드라미같이 저렇게

따듯한 손 내밀은 적 있었던가





공손하게

 

 

 

오늘도 나 정말 공손하게

꽃잎처럼 바람결에

하늘도 돌아가는 그날이고 싶다

그날도 꽃이 피고 더러는

이미 꽃이 질 때

그 꽃들이 하여 일생

내가 간직하는 이름일 때

사랑한다는 말 일생 하지 않아도

꽃이 지는 그날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듯이

홀로 구름을 땅에 묻고

공손하게 돌아가고 싶다





具色

 

 

 

잔이 돌고

세월은 자꾸 거슬러 올라

세상 만남의 끝이 오늘만 같아라

간이 맷방석만큼이나 커진 옆자리 짝이었든

영자가 푸념한다

“야 그래도 넌 어엿하게 한자리 할 줄 알았다

이 촌동네에서 시나 쓴다고, 듣자하니 마누라 고생 좀 고만 시켜라”

“얘,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우리 동창 중에 명색이 시인 하나 있으면 具色이 맞잖아”

“그래…시인 조오치! 부도 날 일 없고…”

회사가 망한 착한 벗의 푸념에

일상 조여진 넥타이는 구겨져 풀리고

희미한 들길을 돌아서 오는 길

있는 듯 없는 듯

십일월의 하현달이 산마루에 잦아들어

저 달도 세상의

具色으로

떠 있는 것일까?




 

 

고즈넉한 산사의 채마전에

고추, 가지, 오이, 호박, 상추, 쑥갓, 아욱

심다가

허리 펴며 손 얹고 바라보는

청산

물오르는 산색이

봄바람에 부드러운 허리를 비트네

산꿩이

! !

묻네

“네 마음은 어디에 심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