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4호...
   2019년 12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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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임연규 시인)자선 대표작 10편 file
편집자
1027 2017-08-10
蛙(와), 선생에게 들녘에서 당신을 만날 때 기쁘다 나도 당신처럼 살자 했으나 진실로 용감하지 못했다. 일생 父母의 遺言을 망각한 황망함을 어쩌지 못해 不敬한 눈으로 눈물 많은 세상 굴려보다 초탈한 개구리 방향이 잘못된 것을 탓하지 않고 용감하게 五體投止 하고 보는 蛙…선생 일생 펄펄한 기백이 부럽다. 된장 땅과 바다가 낳은 콩과 소금을 믿는다 항아리 안에서 지낼 우주의 큰 화합 해와 달빛도 그걸 알아 조신하게 차려 놓은 꽃잠을 지나갈 뿐. 집. 無量寺에서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산 無量寺 無量의 바람에 앉아 小暑에 겨우 입을 뗀 말매미 낮은 울음 듣네 몸이 집일까? 집이 몸일까? 뜨락에 모란이 꽃을 여의고 무성하다 600년 전 매월당 김시습, 오세 신동으로 나라의 동량이었으나 생육신으로 세상에 몸을 숨긴 이곳에서 초상화 속 탈속함으로 마주서는 눈아래 잡혀서 나는 뜨락에 늙은 느티나무 무릎에 앉았다 집의 무덤은 집의 자리 나무의 무덤은 나무의 자리 나와 매미는 무덤 자리를 모르네 슬프고 어리석지 않은가 달은 해에 숨고 해는 달에 숨고 바람은 또 어디서 일어 어디로 가는가 그래서 無量이라 하지 않는가. 조만간에 아주 생소한 이름처럼 가슴에 숨어 있던 그 말 전화를 끊고서 조만간에 보자는 살아 있다는 말 저 보름달과 초생달과 그믐달 사이쯤에 오고 있으면서 우리 生은 늘 ‘조만간’ 이라는 사이 속에 있지 않았는가? 耳順에 이르러 삶도 시덥잖게 지나간 작달비처럼 소멸되고 또 더러는 죽은 벗의 이름을 불쑥 되뇌어 보다가도 찔레꽃 질 때쯤이면 뻐꾸기처럼 일생 타인의 둥지를 빌려 쓴 망각의 집을 아주 잃기도 하면서 조만간이라는 징검다리를 우리는 오늘도 놓지 않았는지 무덤 고향집 장독대를 내려다보며 울 밖에 나란히 누우신 부모님 무덤 장맛비 지나는 틈에 악착같이 키를 키우는 무덤의 잡초를 뽑으며 무심히 ‘무덤’이란 말이 좋다 살아남은 자가 마지막으로 마련해 둔 기억의 집 소소하게 흐르는 생을 더듬어 시나브로 하나의 풍경으로 내 발이 붙잡히는 ‘무덤’이란 말이 깊다 파도 아내는 잠든 아들 녀석 귀청을 파주며 파도 소리를 넓혀주고 파도 소리는 뭍에서 따라온 시름 잊으라 잊으라 내 귀를 막아주네 맨드라미 장맛비 내리는 출근길 매일 동행의 버스를 기다리던 자리에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서 있던 뒤편에 애기 손 같은 맨드라미가 차창으로 불쑥 비에 젖은 손을 흔든다 잠시 내 상상의 골에 장맛비가 차창을 닦는다 나는 이별하는 자리에서 맨드라미같이 저렇게 따듯한 손 내밀은 적 있었던가 공손하게 오늘도 나 정말 공손하게 꽃잎처럼 바람결에 하늘도 돌아가는 그날이고 싶다 그날도 꽃이 피고 더러는 이미 꽃이 질 때 그 꽃들이 하여 일생 내가 간직하는 이름일 때 사랑한다는 말 일생 하지 않아도 꽃이 지는 그날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듯이 홀로 구름을 땅에 묻고 공손하게 돌아가고 싶다 具色 잔이 돌고 세월은 자꾸 거슬러 올라 세상 만남의 끝이 오늘만 같아라 간이 맷방석만큼이나 커진 옆자리 짝이었든 영자가 푸념한다 “야 그래도 넌 어엿하게 한자리 할 줄 알았다 이 촌동네에서 시나 쓴다고, 듣자하니 마누라 고생 좀 고만 시켜라” “얘,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우리 동창 중에 명색이 시인 하나 있으면 具色이 맞잖아” “그래…시인 조오치! 부도 날 일 없고…” 회사가 망한 착한 벗의 푸념에 일상 조여진 넥타이는 구겨져 풀리고 희미한 들길을 돌아서 오는 길 있는 듯 없는 듯 십일월의 하현달이 산마루에 잦아들어 저 달도 세상의 具色으로 떠 있는 것일까? 心 고즈넉한 산사의 채마전에 고추, 가지, 오이, 호박, 상추, 쑥갓, 아욱 심다가 허리 펴며 손 얹고 바라보는 청산 물오르는 산색이 봄바람에 부드러운 허리를 비트네 산꿩이 꿩! 꿩! 묻네 “네 마음은 어디에 심었느냐?”  
81 (임연규 시인) 나의 문학관 및 약력
편집자
1187 2017-08-10
나의 문학관 시는 왜 쓰나 밥은 왜 먹나 깊은 바다 속에 한번 잠을 자면 천년을 자는 자이언트 조개가 깨어나서 일성으로 파도 소리 땜에 한숨도 못 잤다 하고… 원래 시인은 누가 시켜서 되는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되는 것이란 말을 수긍하는 편이다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외로움과 고독이 일용할 양식이니 가난 할 수 밖에 없다. 치매가 처음 오신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가서 침대에 눕히니 아버지 曰. "연규야 나 사망 원인이 뮈냐!" 그래서 제가 일생 밥을 먹고 시를 쓰나 봅니다. 약 력 충북 괴산 출생. 시 집 『제비는 산으로 깃들지 않는다』 『꽃을 보고 가시게』 『산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노을치마』  
80 (이미령 시인)자선 대표작 10편 file
편집자
1077 2017-04-13
오후 세 시 담장 아래 어깨 축 늘어진 호박잎 위 게으른 햇살이 제멋대로 나뒹굴고 있다 한가로이 누워있는 개 등짝에 붙어 파리 두 마리가 천연덕스레 짝짓기를 하고 있다 갈비마트 앞 종이박스 줍는 노파의 무덤덤한 눈빛 속에서 엿물처럼 녹아든 세월을 본다 손님 없는 홀을 지키며 대형선풍기가 하품하며 저 홀로 돌아가고 있다 문 나는 청동 손잡이가 달린 문을 가졌다 길을 걸을 때나 일할 때 덩그렁 덩그렁 소리를 내며 심금을 울린다 혼자 있을 땐 열지 않아도 저절로 열려 고요한 생각의 강으로 나를 데려간다 사는 일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울 때 슬픔의 어둔 그림자가 머리를 감쌀 때도 말없이 문을 열고 앉아 남빛 우물 같은 안을 들여다본다 살아온 날만큼 햇살과 바람으로 단단해진, 아무도 열 수 없는 나는 꽃과 새 그리고 별이 수놓아진 문을 가졌다 돌담 바람의 살과 뼈로 만들어진 담이 있다 돌은 스스로를 버리고 몸에 몸 맞닿아 한 마음을 이루고 있다 또랑또랑한 새벽 계곡물소리 어린 새들의 어설픈 날갯짓소리 초저녁 별들의 웃음소리가 산다 다람쥐 눈치 보며 도토리 까먹는 소리 햇살이 만개한 손으로 상수리나무 등 긁어주는 소리 용흥사 다녀오는 사람들 크고 작은 발걸음소리도 산다 솔밭 그늘 아래 하얀 이불 내어 덮은 구절초 귀 활짝 열어 돌담이 전하는 이야기 구절구절 새기고 있다. 버려짐에 대하여 어둠이 잿빛 발로 걸어오는 저녁 어스름 전봇대 아래 박스에 담긴 강아지 한 마리 낑낑거린다 툭, 낯선 세상에 툭, 썩은 모과처럼 처박힌 그의 눈은 눈곱 반 눈물 반 엉치털 숭숭 빠져나간 자리에 십 원짜리 동전 크기만 한 선홍빛 도장 자국 버려진다는 건 어둠의 사막을 맨발로 걷는 일 검은 꽃과 검은 나무와 검은 하늘과 검은 햇빛 검은 웃음과 검은 눈물과 검은 말, 말들 긴 터널 건너와도 기억 저편 얼굴들은 검은빛 투성이 세상의 죄 죄다 끌어안은 눈빛으로 갈 곳 잃은 강아지 한 마리 벼랑 끝 목줄 잡아당긴다 흐린 눈 크게 뜨고 반달이 따라온다 봄을 읽다 창녕 말흘리 태암 선생 댁 서둘러 달려온 봄이 다리 뻗고 앉아있다 봄볕은 마당 구석구석 기웃거리며 꽃망울 몇 개 터트려놓고 흥얼흥얼 긴 우울증 끝내고 바깥으로 나온 진진이* 모닝커피 향 진하게 코끝에 올려놓자 솜털바람 진진이 등을 타고 놀고 있다 목단꽃 닮은 화가 사모님 텃밭에 호미로 그리는 그림 연둣빛, 분홍빛으로 깨어나는데 화왕산 그림자 슬며시 내려와 툇마루 나와 앉은 고서를 어눌하게 읽고 있다 * 태암 선생께서 붙여준 진돗개 이름 장씨 아저씨 저 길길이 날뛰는 꼴 좀 봐, 지랄났네 지랄났어 등등한 기세 온 세상 다 삼켜버리고도 남겠어 조무래기들은 얼씬도 못하지 전생부터 이승까지 못다 한 욕지거리 마구마구 퍼붓는 저 시커먼 아가리 시큼한 막걸리 냄새 진동하는 것 좀 봐, 미쳤군 미쳤어 요양원에 누워있는 아흔아홉 노모도 못 말리고 아부지 따돌리고 혼례 치른 외아들도 못 말리고 십년 전 남의 아내 된 마누라도 못 말렸던 풍물거리 초입 장씨 아저씨의 술주정, 상산인력 사장 머리통을 몇 번씩이나 박살내고 선술집 딸어라 마셔라 다리 부실한 의자가 저만치서 나뒹구는데 삿대질하는 손가락 태양을 찔렀는지 함지박 엎은 듯 쏟아지는 땡볕, 한 서린 세상을 향한 또 한 번의 발악이 지나간 자리 훌러덩 벗겨진 때 절은 모자가 무표정한 사람들 사이를 힘겹게 건너고 있는 장날 오후 흔적 저리 쉽사리 꽃 진자리 지워질 수 있는가 담쟁이넝쿨 붉은 손 우주로 뻗어나가던 가을 저물녘의 기억 하마 지워지고 건드리면 바스라질 것 같은 대궁만 남아 겨울바람 앞에 숭숭숭 울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인다, 손 갈퀴에 숨겨진 필사(必死)의 손놀림과 담벼락에 각인된 푸른 시간들 자목련 안으로만 삼켜온 소리 없는 울음 삼월 하늘에 걸려있다 때론 생이 걸어온 흔적을 지우는 마른 물길질이어도 일찍이 엿본 환한 이승의 봄날이 화인으로 찍힌 가슴 상처가 피워올린 붉은 절규 양은주전자 비마저 단풍들어 붉게 내리는 날 막걸리를 마신다, 찌그러진 몸으로 하 많은 허기 술술 달래주는 너를 보면 상주시 무양동 고향집 생각이 난다 술 취한 노을이 초가지붕 위로 쓰러지던 저녁 논고랑 뛰어다니며 잡은 메뚜기 담아놓던 양은주전자, 캄캄한 여름밤 반딧불이처럼 깜빡깜빡 졸던 할배의 긴 대꼬바리 생각난다 놋재떨이 탕탕 부아나신 듯 내려치시면 쪼던 감 내동댕이치고 달아나던 감나무의 까치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배가 쥐여주던 뚜껑 헐렁한 주전자 눈 흘기며 막걸리 부어주던 구멍가게 숙이 언니는 서울로 시집갔다지 갔다가 다시 왔다지 골목길 돌아서며 출렁이는 막걸리 한 모금 슬쩍 마셔보면 달짝지근하면서도 코끝이 찡했다 오늘 고향집 앞마당 낙엽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들으며 양은주전자 너를 끌어안고 그날의 노을처럼 취하고 싶다 등꽃1 등을 보이고 떠나는 사람의 등 뒤로 등꽃은 핀다 정든 발걸음소리 아슴아슴 멀어질 때마다 보랏빛 꽃송이 잠결에 눈뜨듯 피어난다 그래서 등꽃은 그리움일까 보내는 가슴주머니에서 조심스럽게 꺼내온 씨앗을 가는 이의 등 위에 빽빽이 뿌려놓고 참아도, 참아내어도 어쩔 수 없이 배어나오는 눈물로 키워낸 그리움일까 그래서 등꽃은 그렁그렁 피는 걸까 등꽃을 보려고 눈을 비비면 떠나는 사람의 덩그런 등이 그래서 보이는 걸까  
79 (이미령 시인) 나의 문학관 및 약력
편집자
1059 2017-04-13
나의 문학관 친구들이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모두 도시로 떠난 후부터 나의 외로움은 시작되었다. 친구를 쉬이 사귀지 못하는 성격이라 고등학교 시절 내내 홀로 시간을 보내며 사춘기의 감성을 키웠다. 교정의 벽오동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보랏빛 꽃에 흠뻑 취하고, 노을로 온몸을 물들이다가 별을 보며 노래를 부르면서 하교를 했다. 오월의 보리밭 들길에서 시를 외우고 소낙비를 고스란히 맞으면서 방천둑길을 걸어다녔다. 꽃들과 풀들과 하늘과 서늘한 바람 그리고 눈과 비 속에서 시가 내게로 건너왔다. 밤새 ‘전혜린’을 만나고 ‘천경자’ 그림에 심취한 시간들이 공부를 할 때보다 훨씬 행복한 순간이었다. 세월이 흘러 지천명이 지난 지금 삶과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을 자주한다. 성숙한 인간으로 서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해 나가는 과정이 곹 시의 길인 것 같다. 내면을 갈고 닦지 않고서 어찌 감동스런 시가 나올 수 있겠는가. 욕심을 버리고 키를 낮춘 풀꽃의 모습일 때 인생의 지혜가 녹아있는 시가 오지 않을까. 또한 내 심연의 언어들이 이웃과 세상에 밝음을 주었으면 좋겠다. 나의 몸짓들이 타인에게 웃음과 감흥을 줄 수 있다면 내가 표현하는 글들도 그들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벚꽃비 내리는 봄날 환한 세상을 꿈꾸어 본다. 이미령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현재 ‘느티나무시’동인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시집「문」으로 등단.  
78 (동길산 시인)자선 대표작 10편 file
편집자
1304 2017-01-20
바닥·1 비는 위부터 적시지만 가장 많이 젖는 것은 바닥이다 피함도 없이 거부도 없이 모든 물기를 받아들인다 비에 젖지 않는 것은 없지만 바닥에 이르러 비로소 흥건히 젖는다 바닥은 늘 비어 있다 빗방울 가느다란 빗방울에도 무게가 있어 빗방울 맞은 나뭇잎이 휘청댄다 휘청대는 나뭇잎이 일으킨 바람이 지구를 천천히 돌려 낮은 밤이 된다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한 생애를 천천히 밀고 가는 무게라곤 없어 보이는 것들 해송 바위 갈라진 틈에 뿌리 들이민 해송 바닷가 촌집 반 반 갈라 가운데 셋방 내 삼십대 초반 같다 문지르면 소금기 일어나던 백지장 얼굴 같다 노을 나무는 자기가 단풍드는 걸 알까 제 몸 물기 서서히 빠져나가 마지막 순간의 절정이 단풍이란 걸 알까 단풍든 잎 스스로 떨어지는 바람 불지 않는 저녁 저걸 주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의 저녁 이 나무 저 나무 새소리 번지는 하늘 발갛다 홍시 - 고현철을 그리며 얼마나 아팠을까 저 홍시 너를 떨어뜨린 게 너 꽉 찬 안이냐 너 텅 빈 바깥이냐 홍시 떨어진 거기 봄이면 감꽃 아무리 덮는들 얼마나 무서웠을까 저 홍시 속세 너무 높이 달려서 따먹지도 못하는 감 가지를 왕창 친다 나무에서 갈라지는 본래 가지만 두 가지 세 가지 사람 손 언제든지 닿는 속세 같다 임도 봄날 기우는 해가 따가우면 얼마나 따갑겠느냐 해를 정면으로 받으며 걷는 길 산불이 나면 불은 이쯤에서 끊기리 봄꽃이 나면 꽃은 이쯤에서 끊기리 해는 기울건만 나이는 기울건만 산불 나는 마음이여 봄꽃 나는 마음이여 그 마음 끊기지 않아 숲과 숲 사이에 난 길 임도 갈 데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해 기우는 봄날 한밤 개구리는 용하다 수십 마리 수백 마리 개구리 옆구리 붙이고 다니면서 옆 개구리 옆구리 쿡쿡 쑤셔 행동 같이하자고 신호를 보내는지 울면 한꺼번에 울고 그치면 한꺼번에 그친다 옆구리 쑤셔도 한 마리쯤 두 마리쯤 울음이 뚝 그쳐지지 않아 꺼이꺼이 계속 울어 댈 만도 한데 숨이 막힐 정도로 쑤시는지 뚝 그치지 않는 개구리 한 마리도 두 마리도 없다 남 다 자는 한밤 누가 옆구리 찌르는지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난다 나야 할 때 나지 않던 눈물이 나야 할 때가 아닌데 난다 진정이 되지 않아 내 옆구리 내가 치는 밤 잡냄새 나 어릴 때 축농증 앓았지 어른이 된 지금도 다 나은 것 같지는 않지 내 몸은 덜 말라 걸핏하면 콧물 달고 다니지 한쪽 또는 양쪽 콧구멍 막혀 말은 못 하고 답답할 때 많지 그래도 영 안 좋기만 한 건 아니지 냄새난다고 남들 꺼리는 수육 덩어리며 고깃국 나는 아무렇지 않지 내 몸에서 나는 냄새처럼 익숙해져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지 내 몸에서 나는 것일지도 모를 냄새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지 어릴 때 축농증 지금도 다 낫진 않았지만 그 덕에 이 냄새 저 냄새 이러니저러니 따지지 않고 받아들이지 나 아무렇지 않게 잡냄새 되어 가지 지구는 둥글까 지구는 둥글어서 그 끝이 없다고들 하지만 끝에서 추락하는 일이 없다고들 하지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어느 날 갑자기 소식이 끊긴 사람들 소식을 끊고 사는 사람들 어쩌면 이 지구에 우리가 모르는 막다른 곳이 있어서 천 길 절벽 아래로 밀려난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 반대로 막다른 곳에서 나도 모르게 밀려나 그들과 소식 끊긴 것은 아닐까 꿈에서 둥근 지구본 굴리다가 꿈을 깨면서 잠까지 깨어 기분 뒤숭숭한 새벽  
77 (동길산 시인) 나의 문학관 및 약력
편집자
1684 2017-01-20
나의 문학관 “시인 아저씨, 상대 나왔어요?” 동길산 시인 나는 상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처음 인사 나누는 사람에게 자기소개 한답시고 상대 출신이라고 밝히면 대개는 의아하단 표정을 짓는다. 시를 쓰니 문학전공이라 여겼으리라. 며칠 전 중1짜리 친구 아이와 저녁을 먹다가 장래 희망을 묻게 되었고 이야기 끝에 내 전공을 들추게 되었다. 그러자 아이도 의아한 듯 되묻는다. “시인 아저씨, 상대 나오셨어요?”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왜 상대에 갔는지. 상대 간 이유를 누가 물어보면 난감하다. 나도 이해 못하는데 남을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가. 도무지 요령부득이다. 상대를 가고 경제학을 택한 걸 내놓고 후회한 적은 없지만 잘했노라고 떠벌린 적도 없다. 나는 도대체 왜 상대 갔을까. 그래도 다행이다. 상대 간 이유는 딱히 내세우지 못해도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이유는 콕 집어 말할 수 있으므로. 사실 나는 국문학과에 가야 했다. 고교 동기나 아는 사람은 으레 그러려니 했다. 고교 문예부장이었고 내 방엔 문학책이 가득했으니.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은 책만 보고도 ‘야코’가 죽었다. 문학서적은 꽤 되었다. 중학교 다닐 때부터 보수동 헌책방을 뒤져 책을 사 모아 고교 졸업반이 돼서는 가히 장서 수준이었다. 문예부 동기는 5명. 3명이 대학에 있거나 있었다. 부산대 국문학과 고현철 교수, 서울대 정외과 강원택 교수, 동국대 김무곤 교수다. 고현철은 대학총장 직선제 약속을 지키라며 2015년 한여름 투신했다. 동국대 김무곤은 무슨 과 교수인지 잘 모르겠다. 몇 년 전 종이책 읽기를 권한다는 책을 냈다. 문예부 한 해 후배도 쟁쟁하거나 쟁쟁했다. 문학평론가인 한수영 연세대 교수, 서울대 정치과를 나왔던 소설가 채영주가 그들이다. 채영주는 의사도 모르는 병을 앓다가 2002년 해운대 바다에 뿌려졌다. 고교생 때 이미 장서 수준이었지만 국문학과는 가지 않았다. 문학을 즐기고 싶어서였다. 국문학과에 적을 두면 문학은 즐기는 대상이 아니라 머리 싸매고 작성해야 하는 리포트의 대상이 되겠거니 지레짐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단순한 이분법의 오류지만 그땐 그랬다. 문학을 평생지기인 양 곁에 두고 즐기고 싶다는 단순 무지하면서도 ‘어마무시’한 결기가 나를 문학 관련 학과에 등 돌리게 했다. 학과는 등 돌렸지만 문학마저 등한시하진 않았다.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글과의 인연은 이어 갔다. 대입 한두 달 후 부대신문사 시험에 응시했고 붙었다. 주간이 영문학과 홍기종 교수였고 간사는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창근 시인이었다. 면접 때 내 어눌한 발음을 갖고 이만규 편집국장이 딴지를 걸었다. 감히 대들었다. 신문기자가 글로 원고를 쓰지 말로 원고를 쓰느냐고. 동기 중 3명이 경제학과고 나 말고는 모두 언론계로 갔다. SBS 영남취재본부장인 송성준 기자, 부산MBC 보도국장을 지낸 이희길 등이 동기다. 학보사 입사 당시 3학년 기자였던 이명관 선배는 부산일보 사장을 지냈다. 학생기자를 하니 상대 교지 담당 선배가 눈여겨봤던 모양이다. ‘경맥’ 편집에도 참여했다. 내가 맡은 꼭지 가운데 사진과 시를 곁들인 포토포엠은 내가 봐도 잘 썼다. 러브레터를 받을 만했다. 상대에 여학생이 드문 게 아쉬웠다. 시는 열심히 썼다.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으니 내키는 대로 썼다. 좋게 말하면 자유분방이고 솔직하게 말하면 기본이 되지 않았다. 2학년 마치고 방위 소집을 앞둔 무렵 시집 한 권 분량으로 추려서 문예지 ‘세계의 문학’ 출판사인 민음사에 보냈다. 지극히 당연하게도 퇴짜 맞았고 하나밖에 없던 육필 원고마저 잃어버렸다. 나는 80학번이다. 팔십년대 첫 학번이다. 소위 380으로 불리며 뜨기도 했고 가라앉기도 했던 세대 맨 앞줄이다. 시작은 거창했다. 장밋빛이었다. 유신독재가 막을 내리고 바야흐로 봄이었다. 학내 민주화에 힘입어 총학생회장 직선제가 치러졌다. 고교 문예부 선배 정해조 현 부경대 교수가 출마하면서 연설문 작성을 떠맡게 되었다. 낮에는 연설회장에 가서 다른 후보는 무슨 말을 하나 엿듣고 저녁에는 무슨 글을 쓸지 토론하고 그리고 밤새워 연설문을 작성했다. 새벽에 잠시 쪽잠을 잤다. 그런 강행군을 열흘 가까이 지속하였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었다. 전두환 군부가 들어서면서 총학생회가 구성되기도 전에 봄은 끝났다. 학교는 휴교했다. 광주 5·18 그 무렵이었다. 학교가 언제 정상화될지 내 주변에선 아무도 감을 잡지 못했다. 설만 분분했다. 포항 해병대가 학교에 주둔해 출입을 통제했다. 둘째 형이 마침 포항 해병대였다. 형 면회를 핑계 대고 아무도 없는 학보사에 들어가 책이니 서류를 챙겨 나왔다. 학보사 열쇠는 출입문 위턱에 놔두는 게 학보사 전통이자 관례였다. 지금도 그랬으면 좋겠다. 언제든 책이니 서류를 챙겨 나오게. 봄은 끝났고 연속성이 끊기면서 모든 게 시들해졌다. 전라도로 충청도로 무전 여행했다. 돌아와선 형수의 도움을 받아 문전에서 포장마차를 했다. 형수 도움을 받아 닭발 따위를 장만했다. 지금은 학산여고 국어 선생을 하는 동네친구 손영수가 단골이었다. 사실은 손영수가 거의 유일한 손님이었고 학생 신분이라 외상하기 일쑤였다. 요즘도 만나면 그때 못 받은 외상값 명목으로 술을 얻어 마신다. 술은 참 지독하게도 마셨다. 군대 간다고 휴학하고는 100일 동안 매일 마셨다. 술 마시는 것도 시들해져서 100일 동안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100일이나 마시는 건 힘들었지만 100일이나 마시지 않는 건 더 힘들었다. 시도 시들해져 그만 쓰자고 작심했다. 시 쓰는 것도 힘들었지만 시 쓰지 않는 건 더 힘들었다. 봄이면 어김없이 꽃은 폈다. 엄동을 꿋꿋이 견뎌 내고 꽃 피우는 저 풀에게 저 나무에게 나도 뭔가를 보여 줘야 했다. 엄동을 견뎌 내고 뜨거운 꽃을 피우는 저들이야말로 나에겐 평생을 두고 읽어야 할 문학책이었다. 평생을 두고 써야 할 시였다. 꽃은 피면 핀다고 아프고 지면 진다고 아프다 손을 대어 짚어 보아라 절절 끓는 이 뜨거움 꽃이 뜨거운 것이냐 손이 뜨거운 것이냐 피는 꽃 짚어 보느라 지는 꽃 짚어 보느라 몇 발짝 걷다간 멈춰 서는 뜨거운 봄날 - 동길산 시 ‘꽃 몸살’ * 부산대 동문회보 2012년 겨울호 수록 글 일부 수정, 재수록 동길산 1960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9년 무크지 ‘지평’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무화과 한 그루’ 등 다섯 권과 산문집 ‘포구를 걷다’ 등 다섯 권을 펴냈다.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추모하는 304행 장시 ‘세월호’를 썼다. dgs1116@hanmail.net  
76 (김성찬 시인)자선 대표작 10편 file
편집자
1525 2016-12-08
신데렐라 김성찬 꿈을 안고 도회지로 상경한 소녀에게 한 사내가 마법을 걸어왔다 밤하늘의 별을 모두 따서 주겠다는 말에 혹 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성을 쌓았다가 허물었다 그 꿈이 영글어 갈 때쯤 솎아내던 밭고랑 패대기치고 흙발로 달려온 어머니 생머리 움켜쥐고 가위로 싹둑싹둑 자르고는 대문 밖으로 내쫓았다 문밖에는 별을 한다발 품은 사내가 서 있었다 주술은 신기하게 이루어졌다 소녀는 사내가 깔아놓은 별이 총총히 박힌 주단 위를 유리구두를 신고 사뿐사뿐 마법의 성으로 향했다 꿈의 꽃밭을 거닐던 소녀는 마법이 풀릴 때까지 신데렐라가 되어 있었다 매월당의 노래 1 나 어릴 적 학문 익혀 그 은혜 못 갚았거늘 고운님 여의옵고 속절없이 길 떠나네 이 산하가 나의 집이 되고 고요한 숲 속 침묵의 경계 거닐며 세상사 귀 닫고 부처께 귀의하노라 간밤에 눈 내려 쌓여 강릉 가는 길 모조리 지워지고 봉창 안으로 새하얀빛 쏟아져 들어와 산방 밝히는 이경 무렵 구전지술* 펼치고 책 속에서 길을 더듬어 보네 멀리 나간 마음들이 길고 깊은 겨울밤이 다 지났음을 예감했을까 처마 끝 고드름 톡 톡 떨어져 나간 지 달포 전 봄의 씨앗들 불려 나와 비질하다가 만 절간 앞마당에 우-우-바람 몰고 다니네 2 나 한세상 비켜 살다가 마흔일곱에 세상 한켠 머물렀으나 처妻 잃은 박복한 생 부처는 다시 길을 가라 하네 단장 짚고 가다 머무는 곳 시 한 수 적어 읊어보고 세상사 헛된 인연을 시냇물에 흘려보내네 지친 몸 자연 벗 삼아 티끌 없는 하늘 지붕 아래 잠시 쉬었다가 다시 도를 찾아 떠나는 길 돌아보면 아득하여라 나 갈 길 아득하여라 송림사 오솔길 들어서면 숲의 잎사귀들이 어둠 속에 묻힌 기억의 길을 흔든다 산문 앞 금간 비석의 내력 새들이 그 아픈 일생을 쪼아대고 있다 노승이 읊는 독경 소리에 이끌려 든 대웅전 가부좌 틀고 참회문 펼쳐들자 경들이 뛰쳐나와 죽비로 내 등짝을 후려친다나 불법에 기대 살지 못했음을 자책하며방석 위에 눈물 몇 방울 떨궈 놓고 법어 하나 떠올려 보느니 뜨거운 눈물로 무릎을 세 번 적셔라. 세상사 맺지 못한 인연 헤어짐이 없다는 불국토 소원 등 하나 켜 달았다 속계 묵은 때 다 닦아내고 요사채 가는 백팔 계단 내려올제 동승이 수행의 문 열고 나와 새벽 어둠 쓸어내고 있다 서포를 추억하다 1 백련 포구 얕은 바다 건너 큰골 허리등논배미 초옥 언덕배기 소나무숲 사이로 쪽빛 바다는 거친 바위틈을 벌린다 바람의 씨앗으로 잉태되어 자라 모질고 뒤틀린 흑송의 삶 껴안는 천근의 돌 가슴에 안고 삿갓만 떠다니는 앵강바다 어머니 메마른 손으로 써보낸 안부 돛배에 바삐 실려오네 이름모를 풀들과 몸 비벼대며 한 땀 한 땀 흙 적시며 채마밭 일구고 고단한 흙발로 걸어온 달 그림자 봉창에 어스름 드리우면 아주까리 등불 밝혀 '오늘 아침 어머니 그리워 시를 쓰자 하나* 쓰기도 전에 눈물이 가득하구나' 어머니 생신날 지은 시 읊조려보다가고운님 향한 선비의 절조와 두고온 세간에 관한 그리움에 삼경 무렵 아랫마을 마지막 등불 꺼질 때까지 못 이루던 잠은 혼돈이었다 2 삿갓처럼 엎어진 섬 등에 지고 달려드는 해거름 뿌리치고 돌아나오는 길에는 소금바람이 찾아와 헤진 꿈들 누덕누덕 기워 덮은 지붕 들춰보고 있다 파도가 가끔 엿보고 가는 적소를 뒤돌아보며 곧게 살았거라 곧게 살아가거라 어머니 깊게 패인 역정 떠올려 보다가 불효한 날들에 얼굴 붉어져서 뱃전에 기대 울음을 삼키고 있을 때 두샛바람 다가와 내 볼을 어루만지다가 은빛 톱날이 되어 사백년 웅크린 노도섬의 결(結)을 잘게 썰어 귀양바다 저 바다 눈물바다 저 바다 한 뼘 한 뼘 메우고 있다 *김만중 선생이 노도 유배지에서 어머니 생신날 지었다는 시천시 어느 날의 기록 퍼붓는 함박눈 하늘도 온통눈밭이다 숨비소리 뿜어내며 테왁에 매달려 올려다 본 하늘 뒤란 감나무에 목을 맨 청춘이 홀로 눈밭을 걷고 있다 자맥질로 낚아 올린 가난의 부스러기들 생활의 망사리에 우겨넣고 흥정해서 올릴 제사상은 슬픔의 저울추를 밀고 있다 눈발 그치자 급하게 불려나온 해가 셔터를 열고 시장 끄트머리 사진관 물먹은 유리창을 찍어대자 추억처럼 청춘 남녀가 걸려 있다 맑게 웃는 아기까지 판화처럼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바람도 발목 삔 걸음으로 더디 걷던 쌓인 눈 얼어붙은 밤길 절름거리며 먼 길을 걸어온 청춘이 젯밥 한 술 뜨고 있을 때 홀시어미 흐느낌 속에 스물한 살 청상이 절 하고 있다 혼불 나불나불 타올라 잘근잘근 어둠 잘라먹던 방 한 켠 잠깬 아기를 고요가 구덕을 흔들어 다시 재우고 있다 어시장 환경미화원이 밀고나오는 수레에 아침이 실려온다 얼음꽃 핀 생선들 지느러미 곧추 세우고 관 속 같은 비릿한 상자 안에 활굽이 등뼈로 누워 입 다물지 못한 채 토막날 시간 기다리고 있다 귓밥 얼얼한 추위 앞에 서성이던 나는 생선 좌판 앞에 진열 되어 있다가 기웃거리는 이방인들과 등줄기 퍼어른 파도의 싱싱함을 단칼에 도려내는 칼날의 날카로움을 화두로 주고 받았다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 어깨 치고 지나가는 취객 등에 저녁 어스름 업혀 간다 몇 홉 소주에 취한 생선 좌판 사내는 팔다 남은 생선 위에 소금 뿌려대며 풀린 눈 치켜뜨고 자신의 생이 좌판처럼 늘어놓고 산 것 만은 아니라고 혀 꼬부러져 혼자 주절대는 말이 젖은 바닥에 흩어졌다 다 못 판 생선 동게진 리어카가 어둠 밀고 간다 비틀거리는 그의 그림자도 더 깊은 어둠의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언덕배기 그집에 관한 단상 낮달이 수제비로 떠 있던 푸른 이끼 낀 우물이 있었다 낡은 정지문 군데군데 깊게 패인 주름이 세월을 예감했다 어둠이 웅크리고 있던 동굴 같던 아버지 앓던 방이 있었다 공책 손에 쥐고 순서 기다리던 송판 두개 걸친 재래식 변소가 있었다 쌀 반되 연탄 두장 하루치 생을 새끼줄에 매달고 형이 올 언덕 아래로 자주 눈길이 갔다 그해 봄부터 사춘기병을 심하게 앓았다 중장비들이 대오를 갖추고 신천1동 언덕배기 마을로 진군했다 캐러필트 발 아래 스러진 아카시아는 하이얀 꽃잎 수 없이 날려 보냈다 구겨진 판자집 지붕들 덤퍼트럭에 묶여 페기물 집합소로 실려갔다 개발 분진이 낮게 떠 다녀 낮에도 마을은 어두웠다 다이너마이트 폭발음이 작은 동산을 허물어버렸다 바위틈 산까치 둥지가 후폭풍에 먼 하늘로 날아갔다 포크레인이 긴 팔을 뻗어 지붕을 타격하자 전기가 나가고 먹물 같은 어둠이 들어왔다 우리 가족의 꿈도 서둘러 빠져나갔다 아버지 홧김에 마시던 막걸리 사발 안에 종이장처럼 구겨진 판자집이 둥 둥 떠 있었다 뻥- 뚫힌 지붕으로 별빛이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 우리 기족은 슬픔이라는 이불 덮고 뻥-뚫린 밤하늘 별밭 올려다 보다가 잠이 들었다 아버지는 마흔 일곱 생을 급하게 마감하고 하늘로 불려갔다 줄장미 몇 최후로 남아 악쓰며 기어오르던 무너진 담장을 넘어 빛바랜 가방 하나 달랑 메고 부서진 골목 혼자서 걸어 나왔다 내가 스무살이 되던 그해 불도저와 포크레인이 밀어낸 아버지 생과 내 사춘기와 언덕배기 그집이 내 기억의 창고 한켠에 추억처럼 걸려 있다 - 주례구치소* 1 모포 하나 책 몇 권 세면도구 가지런히 정돈된 0.75평 독방 새벽 칼바람 훈계의 회초리 되어 내 볼 후려치고 간다 가슴에 붉은 명찰 박고 잠시 해보는 명상의 시간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오늘을 죽을 것처럼 살라 리얼리스트의 다짐은 창살 너머로 흘러 나간다 범털 세숫물은 데워져 있다 간수는 공손하다 범털 사식 식단 아래 개털은 고개를 조아린다 범털 하얀 운동화는 더욱 반질거리고 개털 때 묻은 고무신은 더 깊은 슬픔에 빠진다 붉은 명찰** 흰 명찰*** 노랑 명찰**** 나이 구분 없이 함께 뒹구는 30분의 자유 운동 끝, 호각소리 발 맞춰 개털은 그들끼리 범털은 그들끼리 창살 안으로 들어가 제 수번을 호명하며 저녁 점호 자세를 취한다 어둠보다 더 깊은 밤 24시간 철야로 불 켜진 방, 뒤척이다가 든 잠, 꿈 마저도 수정에 채워져 있다 *부산구치소 **요주의 관찰대상(사상범. 강력범) ***일반잡범(개털) ****경제사범(범털) 주례구치소 2 창살 사이에 두고 대면 감시 중이다 붉은 명찰 독방 일상은 낱낱이 보고되고 있다 범털 또한 대면 감시 중이다 담당은 그의 동향을 기록하지만 전날을 베낄 뿐이다 범털의 위상은 구치소에서 더 빛난다 불려 나간 범털은 담배 한 갑 윗주머니 꽂고 돌아온다 모든 명찰들이 그 앞에서 고개를 조아린다 변론을 경청하던 법은 관대하다 재판관은 솜방망이를 두들기며 형 집행을 유예한다 출소하는 범 털에게 간수들은 거수경례로 경의를 표한다 개털도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낸다 붉은 명찰 몇 처우개선 요구하며 단식 중이다 허기진 겨울 해가 1사동 셔터를 서둘러 내리고 있다 사동 벽에 걸린 시계 초침마저 느리게 걷는 구치소 겨울 밤 황태 처마에 아가미 꿰여 있던 생선이 허기진 저녁상 구워냈다 새어머니 눈총 받던 밥상 모서리 아버지 당신 살점 뚝 떼어 꽁보리밥 위에 얹어주셨다 칼바람에 늘 살갗이 갈라졌다 솜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던 아이는 꿈속에서 제 몸을 키워 머-얼리 날려 보냈다 맵찬 바닷바람에게 오장육부 등뼈까지 다 내준 덕장 황태 얼어붙은 푸른 등짝은 달빛 아래서 오히려 빛이 났다 아들과 동해 덕장 갔다 오는 길 창유리에 비치는 내 모습 유년 시절 보았던 머리 희끗한 아버지를 다시 본다 폭설 하늘 마을 빙설 보관 창고가 무너졌나 오리털 보다 더 가벼운 수만의 은색 가루가 덩어리로 뭉쳐져 지상으로 마구 낙하한다 막힌 길들은 관절이 서로 얽혀 아우성 친다 할말이 많아진 전화기들은 하늘마을 안부 수시로 주고 받으며 귀가를 서두른다 하염없이 내리던 눈 어둠 위에 자꾸 쌓였다 축 늘어져 신음하던 땅은 스스로 만든 세상 길들을 다 지워버렸다 지팡이 더듬거리며 길 찾아 헤매다가 깨어보니 창문 너머 세상이 눈부시다 무심코 방문 열자 첫 눈은 맞아야 멋이라며 살포시 웃던 스무살 적 그리움이 와락 쏟아져 들어온다  
75 (김성찬 시인)나의 문학관
편집자
1900 2016-12-08
나의 문학관 문득, 새벽에 깨어나 불 켜지 않은 채 어둠속에서 한참을 그대로 누워 베란다 창 너머 별밭을 무심코 올려보다가 세상 어느 지붕 아래서 외로움의 쓰라림과 고통으로 눈시울 붉힐 영혼들을 떠올려 본다. 새어머니 등쌀에 집 나와 낯선 동네를 떠돌던 유년.... 나의 마음은 그렇게 자라났다. 누나 가고 눈물 자국으로 잠든 나를 늦은 밤 안젤라 수녀는 간구의 기도를 하늘에 올렸다지금도 가끔 꿈속에서유년의 눈물자국 닦아주는 안젤라 엄마 수녀대구시 중구 남산동 금남의 집 동산미소 짓는 성모 마리아 품에안겨 있는 내 일곱 살 적 유년 -백합 보육원 부문 나는 세 살 때 부모님이 이혼 하는 바람에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에서 자라다가 8살 때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복 동생들과 차별과 냉대를 받았다. 저들은 함께 쓰면서 어이없게도 키우던 개와 나는 더럽다는 이유로 밥그릇, 숟가락 등 따로 쓰도록 했다. 나는 말 없는 아이가 되었다. 장의차 기사였던 아버지가 일 마치고 가져오던 무협지, 문학 ,과학, 우주, 음악. 미술에 관한 책들을 장르를 불문하고 닥치는대로 읽으면서 내 유년은 그렇게 자라났다. 공돌이라고 불리던 시절 12시간 일 하고 돌아오던 길 시장 골목 모퉁이 좌판 카바이트 불빛 아래 굽은 허리 둥글게 말고 실눈 뜨고 졸던 노파 두부 반모 소주 한병 ..................중략.............................................................. 따뜻한 사람의 사랑이 그리웠던 시절이었다 -졸시 그때 그 골목 부문 한번도 받아 보지 못한 사람이 주는 따습은 정이 그리웠다. 청년시절 혹독한 외로움은 다시 책을 읽게 하고 글을 쓰게 했다. 그러다가 1991년 KBS 방송국 공모전에 낸 시가 당선되어 초회 추천을 받고 이듬해 1992년 합포에서 불러보는 유년의 노래가 당선 되면서 공동 공모전 형식으로 심상지 2회 추천으로 시단에 나왔다. 그러고는, 노동운동을 했다. 파업 후에 사측의 고소로 구치소에 갇혔다가 사직서를 쓰는 조건으로 합의서를 쓰고 45일 만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 이듬해 94년 아내를 만났고 약속한데로 노동운동도 하지 않았고 문학과도 담 쌓고 지내다가 2010년 아내가 암으로 하늘로 불려간 후, 복귀 해서 2012년 시집 파란 스웨터를 출간 했다. 그것은 내 삶의 기록이다 71년 명덕초등학교 체육대회 400m 계주 6-1반 대표로 함께 출전했던 친구 그해 겨울 내 생일날 사탕 한 봉지 손에 쥐여주고 수줍게 뛰어가던 친구 74년 영남중. 신명여중 시절, 휘파람 불면 창문 빼꼼 내다보며 눈 홀기던 친구 76년 협성고 2년 여름 첫 데이트 약속한 한일극장 앞에서 설렘으로 기다리던 친구 77년 학비 밀려 고3 중퇴하고 한동안 멀리했던 친구 83년 내가 다니던 야학교에 야학선생으로 봉사했든 친구 84년 결혼한다는 말에 나를 몹시 상심하게 했던 친구 85년 남편 따라 대전 이사 간 후 몇 년 동안 소식 끊겼던 친구 92년 kbs 방송국에 내 시가 당선되자 축전 보내온 친구 94년 이혼녀와 결혼하겠다는 말에 손사래 치며 극구 말리던 친구 2008년 아내 말기암 투병할 때 나까지 아프다는 소식 듣고 대구까지 달려와 오진이라며 흥분하던 친구 2009 남편과 이혼 했다는 말이 떠돌던 친구 2010년 여 동창 중 유일하게 장지까지 따라온 친구 아내 잠든 목관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갈 때 오열하던 내게 손수건 건네주던 친구2015년 방광암으로 하늘로 불려간 옛친구 안해숙 - 옛 친구 전문 옛 친구는 2009년에 이혼을 했다. 난 아내가 가고 첫사랑 옛 친구와 연인 사이가 되었지만 그도 암으로 내 곁을 떠났다. 신은 평등하지 않다. 나에게 왜 이런 가혹한 운명을 주는가? 지금 나는 진행형의 지병에 시달리고 있다, 가끔 벽에 걸린 십자가를 보며 원망도 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나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한치도 앞이 내다보이지 않는 어둠이 내 앞을 막아서고 있지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두고 미리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의 마침표를 찍고 부터는 평정심을 되찾고 있다. 오늘을 마지막인 것처럼 살라 혁명가 체게바라 리얼리스트의 다짐처럼 나도 손을 불끈 쥐고 다짐해 본다 하루하루를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으로 살자 2016. 12월 김성찬 약력 59년 대구 출생 92년 심상 2회 추천 완료 2012년 시집 파란 스웨터 출간 현제 시인협회 회원 한국작가회의 회원 대구 카톨락 문인회 회원  
74 (김재순 시인) 자선 대표작 10편 file
편집자
1564 2016-11-10
가극을 보다가 나도 한번 보리라 할인 받은 S석에 앉아 가극을 본다 수려한 시골 귀족 청년과 웃음을 덤으로 주면서 자신을 파는 불나비 그들의 사랑, 바위에 부딪혀 물방울처럼 흩어지리라 저 가극의 줄거리를 모른다 해도 흐름을 짐작할 수 있는 통속이다 아니다, 쉽게 지껄이면 안 된다 천민에게 행하는 귀족의 횡포를 고발한다고 너는 말한다 그러나, 친구여 수많은 관객들의 넋이 풀린 무대와 선율에서 내 마음은 뒤돌아 고향의 들판으로 향한다 보이지 않는 채찍을 누가 휘두르는가 팔순의 어머니는 산밭에서 엉금거릴 것이고 남루한 오라비 내외는 서푼짜리 과원에 꽁꽁 묶여 신음할 것이다 대대로 천민인 그들의 노역 나는 눈을 감고 어디선가 듣고 읽은 빅또르 쪼이의 음악을 생각한다 녹두꽃, 만발하다 층층 다랑논 벼포기들 검푸르다 구불구불 논둑따라 녹두꽃 자욱하다 저기 저 녹두꽃 그 멀리서 그 넓은 배들 들판에서 이 골짝 다랑논까지 뭐 하러 왔나 저기 저 다랑논 열세 살에 이국의 정글까지 끌려갔던 김씨할매 깨어진 몸과 마음 얼기설기 동여매고 돌아왔지만 윗 것들 대신해서 반 죽어 돌아왔지만 손을 잡는 사람보다 소금을 뿌리는 사람들 천지에서 김씨할매, 정글의 지옥에서도 살아왔는데 내 나라 내 고향에서 어찌 못 살까 겉보리 한 됫박에 종일 호롱기를 밟았고 장리송아지가 새끼를 낳고 낳아 저 다랑논 되었다네 천수답 저 다랑논 비 안 오면 어쩔꼬 산비탈 저 다랑논 물은 어찌 댈꼬 산 아래 저수지 물을 이고가다 지고가다 그렇게 몇 가마니 벼를 거두면 이고지고 날랐던 저수지물 값도 그 만큼 쌓여 할머니 목숨줄은 풀뿌리 나무껍질 따라서 이어졌다네 그 넓은 배들 평야에 들불을 질렀던 녹두꽃 아직도 타고 있는 그 빛은 이 골짝까지 뻗쳐 쓰러진 할머니 일으키고 불길처럼 물길을 끌고 와서 할머니 흔전만전 벼논에 물을 대어 다랑논 벼포기들 저리 검푸르고 그걸 또 지키느라 논둑마다 저리 자욱하다네 녹두꽃, 충주호 물길을 따라가다 관광선에 실려 충주호 물길을 에돌아 간다 사람과 짐승의 형상 같은 기암괴석이 영상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 저기 갑판에 서 있는 사람 그 때 보상금 받아 도시로 떠날 꿈에 부풀었을 사람일까 수위가 낮아 드러난 잡풀 무성한 저 둔덕이 물에 잠겨도 잃을 것도 버릴 것도 없다던* 그의 집터일까 남자는 상념에 젖었다 이제 관광객이 몰려들고 유람선이 뜨는 이곳 속을 보여주지 않은 혼탁한 강물은 저 남자의 가난은 확실히 수장시킨 듯 초로를 향하는 남자는 수려한데 숲 속 몇 채 남은 인가는 아직 낮고 낮다 물가를 빙빙거리던 새 한 마리 문득 난간에 올라앉는다 찌그러진 오두막을 물속에 던지고 이대로 흘러흘러 한강에 닿으리라 불야성의 그 도시 서울에 스며들어 마지막 꿈을 조명탑처럼 펼치리라 날카로운 발톱으로 바람 거센 난간을 꽉 붙잡는 할미새 한 마리 유람선은 천천히 절경을 내보인다 *신경림의 강물2에서 차용 은행나무의 분신(焚身) 가을비에는 휘발유가 섞였을까 점화의 불꽃같던 이파리 하나에서 큰 불길이 치솟는 은행나무 한 그루 몸에 불을 붙인 그 사람 저렇게 타올랐을 그 사람 힘차게 뻗친 저 가지는 노동법을 손에 든 그의 팔뚝 같아 화염이 수북한 저기가 불길보다 뜨거웠을 그의 가슴 언저리 같아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마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마라 마지막 생명을 짜낸 외마디 소리일까 그의 입술처럼 누런 잎 하나 살짝 움직이네 저기 할머니 한 무리, 그가 그 토록 아끼던 그 때의 순이 영희 영자였던가 그의 분신 후 혈서를 쓰던 그 날처럼 붉은 단풍잎 손에 들고 꽹과리 북소리처럼 떠들썩하네 천년을 타오를 은행나무 맹렬하고 깨끗한 분신 앞에 한 여자 고요히 손을 모우네 *3연 전태일 평전에서 차용 복숭아꽃밭을 찾던 여자 저 여자 이제 그 꽃밭을 찾았을까 얇은 입술에 꽃잎 한 점 묻어있네 옛 사람이 거닐었다는 복숭아꽃밭은 어디 있을까 번쩍이는 불빛 속에 숨었을까 클럽 ‘황태자’에서 밤을 지새우던 여자 속을 다 보여주지만 그 만큼 지독한 게 또 있을까 무릉도원은 분명 그 속에 숨었을 게야 벌컥벌컥 병째 소주를 들이키던 여자 자욱한 담배연기 요술램프 연기처럼, 문득 도원에 데려다 놓을 것 같아 쿨럭쿨럭 줄담배 피우던 여자 아아, 그의 가슴은 정말 활짝 핀 복사꽃밭일 거야 어린 것들 떼어놓고 남자들 가슴팍을 유랑하던 여자, 저 여자. 새로운 학설 공무도하가는 예언의 노래라네 오늘 그 예언의 성취를 보네 웃옷을 풀어헤친 더벅머리 중년 사내 그라목손 병을 들고 비틀비틀 강가로 가고 발끝에 꿰었던 고무신을 팽개치고 가지 마라, 그러지 말거라 꼬부랑꼬부랑 쫒아가다 엎어지는 그의 어미 어스름이 모래밭을 삼키는 낙동강 가에서 공무도하가를 성취시키는 저 추레한 사내는 산 너머 마을에 서마지기 다랑논 일구고 돌담위로 벙글벙글 해바라기 올리던 사람 어린것들 재롱에 너털웃음 웃던 사람 그러나 강물은 역류했네, 조개더미 싣고 소용돌이치며 밀려들어 마을은 패총이 되고 그는 이제, 예언을 성취시키네 낡은 운동화 가지런히 물가에 벗어놓고 공무도하가를 다 이루었네 슬픈 장미 여자의 허리에 장미가 피었다 여자가 팔을 올리고 발을 내밀며 작고 빵빵한 궁디를 흔들 때마다 붉은 장미 한 송이, 흰 셔츠 밖으로 이슬을 턴다 뜨거운 밤, 거리의 잡것들은 허리에 피는 장미를 식탐하지, 그래서 하우스 재배보다 수익이 좋다고 여자는 웃음을 꽃잎처럼 날리는데 웃음은 사뿐히 어디에 앉을까 샤넬일까 피아제일까 하나뿐인 아이가 그려내는 도원의 풍경일까 입체화법일까 대낮에도 게게풀려 소파와 변기를 한통속으로 보는 사내 그 사내에게로 아직도 이어지는 순정일까 능구렁이 하나 스르르, 여자의 허리를 감으면 오늘 밤도 대박이라고, 오늘 밤도 대승이라고 꽃잎을 활짝 여는 장미, 가시를 떼어버리고. 거대한 아가리를 탁 닫으며 잡것들의 우두머리, 두 눈을 사르르 감는다 캐피탈리즘 절필을 생각하다 내 시가 부끄럽다 시인이란 이름표 장미처럼 달았거나 국어사전 눈 감고도 복사하듯 베끼거나 시어가 수정처럼 빛나는 시, 그 앞에서가 아니라네 오라버니, 내 오라버니 농투성이 둘째 오라버니 그 앞에서, 시 쓴다고 내 시가 부끄러워, 시 쓴다고 말 못하네 노모의 틀니 값도 아슬아슬한 배밭에서 폭염의 몰매를 맞던 오라버니, 나 시냇가 버드나무 아래, 물놀이를 거침없이 써내려가 부끄럽네 쳐들어오는 어둠을 향해 전조등을 쏘아대며 자정까지 탈곡기를 밀고 가던 오라버니, 나 달맞이꽃의 기다림만 노래해서 부끄럽네 추곡수매 하던 날, 해장술 몇 잔에 휘감겨 멱살잡이 주먹질로 피멍든 오라버니 ,나 왜 저 지랄이냐 소리쳐 부끄럽네 빈 우렁이 껍질 같아, 누런 거품만 일어 부끄럽네 이것도 글 쓴다고, 시 쓴다고 절필이라 유식하게 이름하여 부끄럽네 뿌리내리다 첫사랑이 고개 돌리지 않았다면 이만한 딸아이 내게도 있을지 몰라 벙그는 목련꽃 같은 스물 하나 눈 내리는 창가에 처연하던 스물 하나 아기가 태어난 지 몇 달째인가 큰소리로 띄엄띄엄 물으니 오개월요 나직하고 또렷한 우리말 이제 동네 앞 느티나무처럼 굳건하다는 듯 아가의 손을 흔들어 보이고 수백 송이 꽃들 중에 최고 이쁜 것을 골랐다고 그래도 또 한 번 가고 싶다고 사이버 결혼상담소 벽에 붙은 여자아이 전신을 마우스로 더듬어 내리면서 요 이쁜 것 요 이쁜 것 군 침 삼키던 이 남자 아기의 할배뻘은 될 것 같은 이 남자 침상에 꽂았던 최고 이쁜 것을 이제 가슴으로 옮겼을까 그럴 거야 가슴 깊이 심었을 거야 아기와 색시에게 보내는 그윽한 저 눈 빛! 고향은 지상에 없다 노을이 주황기를 내릴 때까지 비닐부대를 부레처럼 끌어안고 물장구 판을 벌였던 시냇물이 없어요 금빛 응원수술처럼 햇살을 흔들던 미루나무가 나무가 없어요 성가신 동생을 따돌리다 숨어들었던 텃밭의 댑싸리가 없어요 기대서서 철수를 불렀던 돌담이 없고 그 돌담에 꽃가지를 얹어주던 살구나무가 없어요 그을음 냄새는 어머니 냄새, 가마솥에 밥을 안치고 부지깽이 끝에 붙은 불을 구정물에 적시며 불을 때던 부엌이 없어요 여름 한 낮, 샘물을 가득 안고 뻘뻘 땀 흘리던 두멍이 없어요 까치발로 안달해도 키를 낮추지 않던 시렁이 없어요 실뿌리 따라 내리던 맑은 물소리 콩나물시루가 없어요 사과 한 개를 돌아가며 베물어 먹던 친구들이 없어요 내 미소가 눈부시다던 동네 오라버니가 없어요 대보름 날 집집마다 찾아가 풍물치고 복을 빌던 걸립패가 없어요 겨울밤, 음담을 이불처럼 펴놓던 이웃 아지매들이 없어요 검은머리 수국숭어리처럼 쪽을 찌고 풀먹인 흰 광목 앞치마 허리에 두른 어머니가 없어요 그 서먹한 곳이 내 고향이라니 이 나침반은 나사가 풀렸을까요 아니, 아니요. 그 곳은 내 심중에 들어찬 고향이지요 환삼덩굴까지도 그리워라 그리운,  
73 (김재순 시인)나의 문학관-함께 아픈 시
편집자
1204 2016-11-10
함께 아픈 시 개발이 시작되기 전 시골 풍경은 어디나 비슷했으리라 마을 입구에 고목의 팽나무나 느티나무 몇 그루가 있고 뒤로는 좀 높은 산, 앞으로는 시내를 사이에 두고 반짝이는 모래밭과 키 큰 미루나무가 있고 들판이 있는 풍경, 아직 앞가슴이 밋밋하고 늘 냇가나 도랑에서 노느라 깡마르고 짧은 옷 밖으로 드러난 모든 피부가 새까만 계집아이 시절 서울에서 온 사촌 언니, 피부가 우윳빛이고 적당히 통통한 언니와 들판에 나갔는데 진경산수화 같은 경치를 보면서 언니는 이런 곳에 살면 좋은 시인이 될 거라는 말을 했다. 시인, 그 때 백지 같던 백치 같던 어린 나의 뇌리에 시인이란 형상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남겨진 것 같다. 잔디 / 잔디 / 금잔디, / 심심산천에 / 붙는 불은 /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 버드나무 끝에 실가지에, /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 심심 산천에도 금잔디에, // 갓 입학한 중학교, 국어 선생님이 낭송을 하시면 칠판에 쓰시던 김소월의 금잔디 이 시는 지금도 내 가슴에 모셔져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애틋함, 그 애틋함을 더욱 애틋하게 하던 리듬감, 나는 이 때부터 시의 매력에 끌려들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 며칠 후 아름다운 삽화로 꾸며진 김소월의 양장본 시집 산유화를 샀다. 지금까지 소중하게 간직하는 시집이다 . 그러나 지금 내가 쓰는 시는 수려한 자연풍경도 아니고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아픔, 떠난 님을 잊지 못 해 그리워하는 시가 아니다 좌절과 방황과 갈등의 봄 여름, 갈기갈기 찢어질 것 같던 날들을 보내면서 감동적인 연애 시에 위로 받고 뜨거운 생명을 노래하는 시에는 작은 불씨 하나 숨기기도 하면서 시는 이런 것이구나 이런 것을 써야하는 것이구나 했다 그러나 뭔가 부족했다 이런 시들을 내 가슴을 채워주지 못했다 갈증만 목을 더 마르게 했고 가슴은 허하기만 했다 사랑 타령 꽃 타령만 해서 뭐 어쩌자는 것인가 현실에서 저 만큼 비켜 앉아 뭐 어쩌자는 것인가 산 속 바위틈에 홀로 핀 꽃이 아름답고 고고하기도 하겠으나 사람의 사는 일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이렇게 서정시에 허허로움을 느끼던 어느 날 서점 한 구석에 있던 제법 두꺼운 민중시인 시선집을 만났다 민중 시인인 김지하 박노해의 시를 좀 알고 있었지만 이 시집에서 만나는 양성우 문병란 고은 신동엽 신경림의 시들은 또 다른 충격과 광대한 시야를 펼쳐주었다 이런 주제 이런 표현도 시가 되는구나 시는 자연이나 사랑을 노래하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으며 금방 날아가는 감성적 감동이 아니라 삶의 지표로써 오래 가슴에 남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내가 쓰는 시는 이 분들의 영향을 받고 발자국을 흉내 내기도 했으나 꼭 그렇지는 않다. 내 시의 시선은 항상 주변의 사람들에게 닿아있다 나는 시의 주제나 소제를 주변의 사람들이 아닌 것에서 찾기 힘들다 사람이 아니면 아무리 아름다운 걸 봐도 그냥 “좋네”일뿐 정서적으로 시를 쓸만한 감흥은 마음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도대체 시가 되지를 않는다 그렇다고 독자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일으키게끔 하는 시도 아니다 내 주변의 신산하고 애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내 마음에 아프고 슬프게 달라붙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시라는 불안한 날개를 달고 내게서 떠난다 그러면 내 마음은 조금 편안해지기는 해도 그 애련함은 그대로 남는다 이것을 나의 문학관 또는 시 세계라고 한다면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닌 선천적인 것, 혹은 여러 대에 걸친 무의식 세계의 발현이라고 생각된다 고향 뒷산에는 십 이대 조까지의 산소가 있지만 말단 관직도 한자리 하지 못한 선대들이다 그 오랜 세월 민초으로써의 삶, 그 시대의 그 삶이 얼마나 고달팠을까 나 또한 불우한 삶의 한가운데에 있다 이런 애환이 나의 무의식에 각인되어 나의 시가 이루어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앞으로도 내 시의 방향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다만 형식과 사유와 표현에서 깊고 매끈하게 다듬는 노력을 해야겠다. 김재순: 경북 상주출생 상주작가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  
72 (조재학 시인) 자선 대표작 10편 file
편집자
1133 2016-10-12
강의 한가운데였다 나무다리에 앉아 붉은 오디주를 마시고 있었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강물은 오디 속으로 들어간 햇빛처럼 반짝였다 반짝이는 것들은 어지러웠다 얕은 다리가 풀어진 치마끈처럼 강의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고 있었다 뻐꾹새 울음이 치맛주름 사이로 자꾸 흘러내렸다 다 마시지 못한 술을 강에 부었다 강이 붉었다 그는 물속으로 스며든 술 향기를 발가락으로 툭툭 차고 있었다 물속에서 이따금 기포가 올라왔다 술 취한 물고기의 노래 가락이었다 강물은 자신을 흔들며 흘러가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바람과 햇빛 속 잠시 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비 꽃이 피어서 꽃잎 안의 세상으로 밤비가 미끄러져 들어서 어둠 속에서 맨살의 세상을 어루만져서 어둠은 얼굴이 없어서 얼굴이 없는 것은 눈빛을 읽을 수 없어서 하나의 눈빛에도 우리는 쉽게 무너져서 살아있는 자들은 모두 이전에도 살았던 자들이어서 나무의 신념과 상상이 피워낸 꽃잎들 이전에도 살았고 생소한 미래에 소생한 꽃잎들이 한 세상 속에서 찢겨지고 있다 강물소리를 읽는 나무 흙을 읽는 나무 읽어서 더 캄캄해진 나무 죽은 자의 격렬한 침묵이 천둥처럼 뿌려진다 젖어서 지고 꽃잎 젖어서 피는 꽃잎 피어서 오는 밤비 나를 두고 온 것입니까 빛의 덩어리 같은 몸의 한 조각은 저 세상에 두고 왔다고 그분이 말합니다 그것이 언제 적 일입니까 내가 묻습니다 이 알 수 없는 진동에 이토록 휘둘리는 것이 두고 온 그를 열망하는 슬픔 때문입니까 눈물의 색깔이 나와 닮은 그대를 오래도록 생각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까 흰 담장에 무더기로 핀 넝쿨장미를 만져보고 싶은 것도 사막에서 지나가는 사람의 발자국을 대야로 덮어놓았다가 선인장처럼 외로워지면 대야를 벗기고 그것을 보는 것도 그 때문입니까 깊은 밤 글자들이 몰려와서 자신들로 세상을 창조하라고 조르는 것도 그 때문입니까 정말 나는 나를 두고 온 것입니까 저녁 답 혼자 남은 집에서 설거지를 할 때에 등 뒤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기운은 누구입니까 어느 날 밤 나는 어딘가에서 돌아와 거울에 기대어 오열했던 적 있습니다 거울 속에서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던 그 기운은 누구입니까 꿈속이었지요 시간의 저쪽이라 했습니다 언덕이 있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팔 벌려 노래 부르던 그 이상한 기운은 누구입니까 지는 해를 보며 노래 부르던 강변의 그대를 오래도록 생각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까 나의 인도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인도자는 있는 것입니까 나는 햇빛을 향해 눈을 감고 서 있습니다 지금 내 눈꺼풀 안에서 어른거리는 이 빛은 누구입니까 당신이 꿈꾸는 동안 - 소 나는 나무에 기대어 그녀를 기다렸어요 불에 구운 비스킷을 가득 실은 수레를 밀고 앞치마를 두른 그녀가 왔지요 그녀는 손바닥을 내밀었어요 값을 묻지도 않고 머리 위의 구름을 떼어 반만 주었어요 부족하다는 듯 그녀가 얼굴을 찡그렸어요 다시 지갑을 열고 꽃을 꺼내 주었어요 그녀는 가버리고 숲으로 가는 다른 길을 보았어요 잘 다져진 황톳길이었어요 키 큰 나뭇잎에서 햇빛이 반짝였어요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언덕 아래에는 분지에 갇힌 사자가 어슬렁거리고 있었어요 반짝이는 사자의 등에 작은 새가 흰 날개를 접고 있었어요 나는 사자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몸을 움츠렸지요 언덕 위로 사자가 올라올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떨렸어요 당신이 꿈을 꾸는 동안 나는 늙고 허약한 소 한 마리를 안고 숲으로 가고 있었어요 내가 왜 소를 안고 가야하는 지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언제 내 품에 있었던지 새끼 원숭이가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어요 소가 새끼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었어요 길에 모인 원숭이들이 소리쳤어요 내려놔! 내려놔! 그 소리에 돌멩이들이 대굴대굴 굴렀어요 소를 내려놓았어요 문득 소는 없고 원숭이는 가버렸어요 멀리서 상수리나무숲이 일렁거리고 있었어요 연분홍이란 말 나무도감에 모과꽃은 연분홍이라 했다 연분홍이란 말 천년을 산다는 모과나무가 뿌리를 내리기 전에도 있었을 것 같은 연분홍이란 말 모과는 모르는 말 과실이 맺히기 전 과육의 말 그리고 허공엔 연분홍이 있었다 햇빛을 손에 쥐고서 손을 펼치면 꽃이 있었다 하였으나 볼 수 없는 자에겐 슬픔 담장 너머로 가지를 뻗은 모과나무 꽃의 표정을 모르는 연탄곡 피아노 독주회를 보고 돌아오는 길 밤하늘의 반달이 아득히 우물에 떠서 환하게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우물 안에서 물 위에 떠 있는 달을 보았다 빌딩이 있고 버스가 지나가고 가로등이 켜지고 사람들이 지나가고 굉음을 지르며 오토바이가 사라졌다 달의 손가락이 동동댕 빌딩을 누른다 간판이 달린 낮은 지붕을 누른다 가로등을 누른다 달이 건반 위에서 쿵쾅쿵쾅 뛰어다닌다 연주자의 팔이 불빛에 반짝였다 그녀의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모차르트를 칠 때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은 문의 문양을 보듯 나는 그녀를 보았다 다시 불이 꺼지고 객석은 그림자처럼 조용했다 브람스의 대학축전서곡과 비극적서곡의 피아노연탄곡에 이르러서는 곡이 빠른 춤을 추며 내 몸을 친친 감았다 나는 짐짓 등을 세우고 몸을 약간 앞으로 밀어 곡과 곡 사이에 귀를 댔다 차가 터널을 지날 때 달의 환한 선율이 잠시 끊겼다 그때 차는 비로소 제 스스로 검은 건반을 누르며 달렸다 한밤, 내 방문을 노모가 두드리며 들어와 엉덩이를 내리고 앉는다 -내 노란 바가지 우쨌노 -여기가 어디냐 눈을 가늘게 뜨고 둘러본다 또 묻는다 여기가 어디냐 노모는 지금 어느 컴컴한 우물 속에 갇힌 것인가 노모와 나의 연탄곡은 몇 악장을 치고 있는 것인가 이 밤 우물 속 혹은 우물 밖에서 나는 울다 미술관에 왔다 점심 때 쯤이다 문을 밀고 들어가는데 배에서 낮은 도가 운다 모른 척 ‘빛과 시공간’을 지나가고 검은 먹과 옅은 먹을 지나가고 ‘천지’의 고요한 물 밑을 지나가는데 연신 낮은 도가 운다 ‘시간과 공간’의 모래를 몰고 가는 바람 속에서도 울고 ‘대지의 시적호흡’의 섬세한 한 붓질 사이에서도 낮은 도가 운다 우는 도를 달래며 거리에 나섰다 눈길이 간판을 훑으며 내리막길을 간다 두부촌 명동칼국수 전주풍남회관 마포갈비 오양회참치 정장보다는 티나 반바지 차림 같은 것 간단한 것이 좋겠다고 낮은 도가 칭얼대는 듯하여 화살표를 따라 낯선 길을 걸어 포장마차 ‘요기’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해안선을 잡아 꽂아 놓은 듯한 꼬치오뎅에서 김이 오르고 서로 비스듬히 기대고 누운 김밥엔 단풍이 들었다 해안선과 단풍이 내 테이블로 옮겨오고 고스란히 낮은 도의 음계 속으로 옮겨가고…… 낮은 도의 고픈 울음이 잦아질 즈음 어디선가 다시 솔...하고 울음이 일었다 ‘빛과 시공간’이 ‘천지’가 ‘시간과 공간’이 ‘대지의 시적호흡’이 어느새 내 만선의 뱃전에 올라와 솔... 솔... 하며 제 울음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오십 센티의 유머 바구니 안에서 입을 두리번거리는 사람 볼에 닿는 것 있으며 빨려고 고개 돌려 입을 대는 사람 그러다가 찡그리고 입 벌리고 우는 사람 가래떡 같은 팔다리 버둥거리는 사람 어미가 물려주는 젖 물고 빨다가 스르르 잠드는 사람 흔들어도 눈 안 뜨는 사람 말없이 똥 싸고 오줌 싸는 사람 하나같이 누런 탯줄을 달고 나온 사람들이 어미 품에서 울고 있다 아직 눈뜨지 못한 사람이 입을 벌리고 목청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다 양수를 막 빠져 나온 알몸이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울고 있다 고개 옆으로 돌리고 잠만 자는 사람 아무 생각 없이 속싸개에 똘똘 감긴 사람 자다가 문득 웃는 사람 목욕하고 배내옷 갈아입고 새카만 머리털이 잠만 잔다 뜨개실 왕관을 씌워도 잠만 잔다 바구니 안에서 잠만 잔다 웃고 울고 잠자고 싸고 버둥거리는 50센티의 사람 오는 것이 있다 저 얼굴 없는 것이 온다 시간도 아닌 것이 시간도 아닌 것이 아닌 것이 형체도 아닌 것이 형체가 아닌 것도 아닌 것이 온다 돌연한 것이 온다 돌연하지 않은 것이 온다 혼돈이 온다 끝없는 길이 온다 노래가 온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있었던 밤바다의 물결이 온다 플랑크톤을 데리고 온다 긴 노를 저으며 온다 철썩철썩 물소리 내며 온다 벌거벗은 달이 온다 절벽에서 뛰어내리며 온다 청춘이 손을 잡고 온다 빙글빙글 돌며 온다 사냥꾼 어깨에 걸친 뿔사슴이 온다 해바라기 사이로 흰 말이 끄는 마차가 온다 갈기를 날리며 온다 갈색 말의 탱탱한 엉덩이가 온다 우유통을 실은 목동의 자전거가 온다 노래 불러줄게요 문을 열고 허공이 온다 불꽃처럼 온다 없는 것으로 꽉 찬 씨앗이 온다 소용돌이가 온다 눈 뜬 침묵이 온다 오래된 기호가 온다 녹슨 구멍이 온다 벅벅 긁으며 온다 피를 묻히며 온다 손를 뒤틀며 온다 노래 불러줄게요 얼굴도 없는 것이 얼굴이 온다 카페 그레이스 대한성공회 대성당 마당의 천막 카페에는 북녘에서 온 눈이 커다란 여인이 커피를 내립니다 그녀가 포터필터를 걸고 커피를 내리는 것은 길 없는 길을 걸어걸어 닿은 자유이고 쪽문으로 하늘을 내다보는 그리움이고 혼자 불러보는 노래이고 목이 긴 꿈인지도 모릅니다 GFS우물가 카페 그레이스는 탈북인의 일터입니다 우물가에서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것은 세상의 나그네에게 물 한 바가지 건네는 일 그 물 나도 마시는 일 예수님께 물 한 바가지 드리는 일입니다 카페 그레이스는 눈이 작은 기쁨이 키가 작은 기쁨에게 한 잔 커피를 건네고 눈이 큰 아픔이 키가 큰 아픔에게 커피 한 잔 사는 자리 먼저 문을 밀고 들어온 사랑이 나중 오는 사랑에게 손 흔드는 자리입니다 동쪽과 서쪽에서 북쪽과 남쪽에서 커피를 찾아오는 발걸음 걸음은 이들의 꿈을 보듬는, 아니 우리들의 꿈을 보듬는 우리들의 푸른 마음인지도 모릅니다 포터필터를 걸고 커피를 내립니다 눈이 커다란 여인이 커피 같은 하늘의 향기를 내립니다  
71 (정숙 시인)자선 대표작 10편 file
편집자
1525 2016-09-10
휴화산이라예 [처용아내 2] 보이소예 지는예, 서답도 가심도 다 죽은   사화산인 줄 아시지예?        이 가심 속엔예 안죽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발할지 지도 몰라예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예? 시들긴했지만 지도 철따라 피었다 지는 꽃이라예        시상에        비랑끝의 꽃이 이뻐 보인다고        지를 꺾을라카는 눈빠진 싸나아 있다카믄        꽃은 꽃인가봐예? 봄비는 추적추적 임발자국 소리 겉지예 벚꽃 꽃잎은 나풀나풀 한숨지미 떨어지고 있지예 혼차 지샐라카이 너무 적막강산이라예 봄밤이라예 안그래예? 왠생트집[처용아내 1] 가라히 네히라고예?      생사람 잡지 마이소예     달이 휘영청 청승떨고 있지예      밤이 어서어서 다구치미 깊어가지예      임카 마시려던 동동주 홀짝홀짝      술삥 지혼차 다 비았지예      용광로 부글부글 끓는데      임이 안 오시지예      긴 밤 지쳐 살풋든 잠 찔레꽃 꺾어든      귀공자를 잠시 반긴 거 뿌인데예      웬생트집예?      셔블 밝은 달아래서      밤 깊도록 기집끼고 노닥거린 취기      의처증 된기라예?      아, 사철 봄바람인 사나아는 간음 아이고      외로붐에 속 골빙든 예편네      꿈 한분 살짝 꾼 기      죈가예. 예? 우포늪에서 어느 날 문득 깨달았던 것이다. 생각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흐르는 물은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푸우욱 썩어 늪이 되어 깊이 깨달아야 겨우 작은 꽃 한 송이 피울 수 있으리라퍼뜩 생각났던 것이다일억 사오천 만 년 전 낙동강 한 줄기가 무릎을탁, 쳤을 것이다. 분명히달면 삼키고 쓰면 버릴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제 속에 썩혀서 어느 세월엔가 연꽃 한 송이 꽃피울 꿈을 꾸었던 것이다조상의, 제 조상의 뿌리를 간직하려고 원시의 빗방울은 물이 되고 그 물 다시 빗방울 되어물결 따라 흘러가기를 거부한 늪은, 말없이 흘러가기를 재촉하는 쌀쌀맞은 세월 앞에 한 번 오지게 맞서 볼 작정을 했던 것이다때론 갈마바람 따라 훨훨 세상과 어울리고저깊이 가라앉아 안슬픈 밤이었지만 세월을 가두고 마음을 오직 한 곳으로 모아 끈질긴 가시들을 뿌리치고 기어이 뚫어긴긴 세월들이 썩은 진흙 구덩이에서 가시연꽃 한 송이 피워내고 만 것이다 연서戀書 네가 허기진 먹물이라면 나는 목 타는 한지 우리 서로 만나 하나로 어우러져 샘물 솟아내야만 붓꽃 몇 송이 피어나리니 하늘 열쇠 간직한 꽃과 열매를 틔우고 맺으리니 수묵화 한 점 꾹 꾸욱, 거칠게 누르다가 살 사알, 간질이듯 힘을 뺀다 붓은 한지에 짙게, 때로는 옅게 먹물을 뱉어낸다 삶기고 치대어진 닥나무의 한이 벼루에 갈린 먹물의 꿈을 걸신들린 듯이 빨아들인다 한과 꿈이 한 몸으로 어우러진 용트림, 숨결이 뜨겁게 끓어오른다 서로의 아픔을 포용하는 붓과 한지의 포옹, 그리고 입맞춤 연기 한 점 없이 타오르는 불꽃으로 환해지는 세상, 마침내 햇살 듬뿍 머금고 백련 한 송이 피어오른다 간절한 꿈은 아픔을 함께 나눠야만 화엄향기 품은 연꽃으로 거듭난다는 걸 한지와 붓은 묵언으로 보여주는지, 저 담백하고 우아한 수묵화 한 점 인생1 의자 하나 끌고 가려다 의자에 끌려 다닌다 어린 엉덩이조차 제대로 걸칠 수 없는 작은 의자 평생 마음 편히 앉아보지 못한 채 내가 끌려가는 이 의자 흰 소의 울음징채를 찾아 딸아, 네 몸도 마음도 다 징이니라 한 번 울 때마다 둔탁한 쉰 소리지만 그 날갯죽지엔 잠든 귀신도 깨울 수 있는 울림의 흰 그늘이 서려 있단다 살다 보면 수많은 징채들이 네 가슴 두드릴 것이니 봄눈 이기려는 매화 매운 향이 낙엽까지 휩쓸어 가려는 높새바람의 춤이 한파를 못 견디는 설해목의 목 꺾는 울음소리가 이 모든 바람의 징채들이 너를 칠 것이나 그렇다고 자주 울어서는 안 되느니라 참고 웃다가 정말로 가슴이 미어질 때 그럴 때만 울어라 울고 울어 네 흐느낌 슬픔의 밑뿌리까지 적시도록, 징채의 무게 탓하지 말고 네 떨림의 소리그늘이 은은히 퍼져 나가도록 눈 내리는 이 밤, 아버지 그 말씀의 거북징채가 새삼 저를 울리고 있습니다 인생 2 밥을 먹는다 밥이 나를 먹는다 밥은 내 아버지를 먹고 또 그를 먹는다 먹히다, 먹히다 지쳐 뼈만 앙상한 그를 밀치고 이제 내 아들이 먹힌다 밥술을 놓아야만 비로소 한 마리 나비되어 날아오를 수 있는 밥은 피눈물을 부른다 죽음과 삶을 가르는 길목의 갑질을 위해 연꽃 1 이 여름 지기 전 그 사람의 우렁각시 되고 지고 연꽃 2 한 여름 대낮에 관능경을 펼치고 있는 저, 환희불들 풋울음 잡다 딸아, 아무리 몸부림쳐도 꽃이 피지 않는다 봄날이 오지 않는다 투덜투덜 꽹과리 장구 깨지는 소리 따라다니지 말아라 한 생이 자벌레 키 자가웃도 못되는데 그렇게 헤프게 울거나 웃어 보내면 쓰겠느냐 놋쇠는 그런 풋울음 잡기 위해 불 속에서 수없이 담금질 당하고 수 천 번 두드려 맞는단다 주변의 쇠와 가죽 소리를 감싸 끌어안고 재 넘어 홀로 핀 가시연의 그리움 달래주는 징이 되기 위해서 그런 재울음은 삶의 고비 몇 고비 넘기면서 한을 삭히고 달래어 흐르는 물살처럼 부드러운 징채로 두드려야, 목으로 내지르는 쇳소리 아닌 이승과 저승의 경계 허무는 울림 징하게 터져 나오느니 비로소 햇살이 그 소리 비집고 들어 네 둥근 항아리 속 그늘진 도화 꽃 몽우리를 햇살로 피워 올릴 수 있는, 시의 참다운 징수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  
70 (정숙 시인) 나의 문학관
편집자
1106 2016-09-10
나의 문학관 시는 일단 감동을 주어야하지 않을까? 현대적 묘사에 치우치다보면 도무지 낯설기만 하고 상대방을 꾸짖다 보면 건방져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늘 나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깨닫는 길을 찾고 있다. 어떤 이들은 내 시가 법문 같다고 하기도 하지만 난 아직도 나 자신을 갈고 닦고 있을 뿐이다. 시를 거북이 알 까듯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잘 가꾸어 좋은 노래처럼 많은 이들과 서로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낭송, 시극 또는 마당놀이까지 펼치고 있다. 시는 절대 고상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대중들과 소통하는 그런 예술이었으면 한다. 오래 시를 가르치면서 깨달은 것은 예술만 추구하는 그런 시인보다 민중을 깨우치고 나라를 찾고 바로 세우려던 시인들이 훨씬 소중하다는 것이다. 경산 자인 출생 경북대 문리대 국어 국문학과 졸업 경주 월성 중학교 전직 국어교사 1991년 등단 1993년 계간지<시와시학>으로 신인상 수상. <신처용가> <위기의 꽃> <불의 눈빛> <영상시집><바람다비제> <유배시편>시집과 [DVD] 출간 시극극본 [봄날은 간다] [처용아내와 손톱 칼] <시선집-돛대도 아니 달고> 제7시집<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2010, 1월 만해 ‘님’ 시인 작품상 수상 2015년 12월 23일 대구 시인 협회상 수상 포엠토피아. 시마을 , 서부도서관, 청도도서관, 북부도서관 시강의 지금 본리도서관, 대구문학아카데미 현대시 창작반 강의 중 범물 시니어 복지회관에서 내 인생의 꽃에 대한 강의 중 현대불교문인협회 대구 경북지회 회장 시와시학시인회 회장 문학청춘 봄호에서 집중조명 2016년 5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극 극본과 연출 상화네거리에서 공연 2016년 5월 방천연가에서 처용아내와 장구쟁이 마당극 공연  
69 (신순말 시인)자선 대표작 10편 file
편집자
1411 2016-07-20
석류 저 단단한 슬픔이 익을대로 익으면 스스로 가슴팍을 열어젖히곤 하는데 하늘귀 어둠별 오르면 내려서는 뜨락의 별 꽃노을 붉은 울음 하늘 강에 풀 때 알알이 여문 결정 저리도 빛이 난다 자기를 쪼개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사랑할 수 없다 주산지 왕버들을 기억함 내려 올 데를 다 내려와 더는 내려갈 곳이 없다 여겼을 때 발등을 덮는 물 발목을 적시는 물 무릎을 지나 허리까지 젖고 늘어뜨린 머리카락마저 젖은 이승을 살아도 이승을 벗은 나무 저 생을 살아도 오늘을 사는 나무 달팽이 밤이 이미 늦었는데 비가 내린다 귀를 바깥으로 내밀고 식구들을 기다리는 엄마의 귀가 젖는다 몸이 젖는다 모두 돌아올 때까지 온통 젖어 이미 밖이다 환하다 연두빛 싹 돋듯 한알 씨알에서 내가 생길 때 어머니 자궁 사방은 저리 환했을 것이다 질긴 덤불 끝에서 익을 대로 익은 나백이 호박을 쩡 소리 나도록 갈라놓은 날 씨앗을 품은 방 눈부시게 밝고 아아, 나도 저렇듯 환한 뱃속에서 자랐을 것이다 자라게 하는 모든 것 그 안은 이처럼 환하다, 환하다 즐거운 돌연변이 시집 한 권 꺼내어 70편의 시를 읽다가 그림 우월성 효과* 이론에 생각이 닿아 시집에도 삽화가 필요한가 하다가 글만 실린 시집을 최고로 치는 마음이라 본시 시라는 것은 말 악보 없는 노래이며 그림 없는 그림 글자만으로 서너 줄, 예닐곱 줄, 아니면 열 댓 줄 소리도 없이 노래하는 노래를 듣는 형상 없이 보여주는 그림을 보는 끝내 스러지지 않는 말을 건네는, 시란 그림 우월성 효과의 돌연변이 문득 유쾌해져서 시집을 쓰다듬는다 * 사람이 시각적인 정보를 더 오래 기억하는 것을 가리켜 그림 우월성 효과라 한다 개구리 줄기의 가시가 거칠어도 부여잡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미끄러운 잎 위로 사뿐, 한 방울 물처럼 올라서기도 한다 꽃 속의 방은 너무 환해서 때론 꿈결 같지만 이내, 뛰어내리는 한 마리 저 개구리처럼 삶의 길 위에서 나 또한 그저 무심하게, 염소 -모성(母性)의 방증(傍證)에 대한 보고서 1 새끼를 낳을 시각이 오면 어미염소는 외진 곳을 찾아내어 어미만이 아는 진통으로 울다가 홀로 서서 새끼를 낳는다 한우리의 염소들도 이때만은 새 생명 꼬물거리는 공간을 넘어 다니지 않는다 어미가 핥고 쓰다듬는 동안 어린 것은 첫울음을 내며 가느다란 다리를 비칠거리다가 기어이 땅을 딛고 일어선다 신통하게도 금세 어미젖을 찾아 문다 2 염소가 새끼를 낳을 때는 사람의 간섭을 넣지 않고 멀리서만 지켜본다 핥고 인식하는 수순을 놓치면 갓 낳은 제 새끼라도 젖을 물리려 하지 않는다 비칠거리는 생명이 홀로 일어서도록 핥아주는 시간 새끼가 어미냄새를 따라가 젖꼭지를 찾아 무는 그 짧은 순간 핏줄기의 유대는 순간에 엮어진다 3 서툰 어미의 젖 물리기가 끝나고 새끼의 털도 보송보소송하게 마르면 하루 안에 무리들과 떼어놓으며 더 안전하도록 방을 옮겨주어야 한다 갓 태어난 한두 마리 또는 두세 마리의 새끼를 가슴에 껴안은 사람이 뒷걸음질을 하며 어미를 유도한다 순순히 따라오는 어미도 있으나 유독 겁 많고 초산이라 얼뜬 어미는 삼사 미터의 그 거리 이동이 쉽지가 않다 사람의 손에 안긴 새끼도 불안하고 살던 곳을 벗어나는 것도 불안해서 울며 따라가다가도 다시 되돌아서고 되돌아갔다가도 새끼울음에 다시 따라가는 무수한 도돌이표를 찍는다 울안은 어미와 새끼의 울음으로 가득해지고 생가지를 찢는다는 말뜻이 절로 알아진다 4 염소 울을 가득 채우던 울음소리며 이산가족이라도 되는 듯이 애처로운 시간도 어린 것의 울음에 답하며 따라가는 어미의 모정으로 마침내 끝이 난다 조용한 보육실로 옮겨 이틀을 지냈을 뿐인데 새끼들은 개구쟁이가 되어 천방지축 뛰어다니고 그런 어린 것을 부르느라 어미들은 목이 다 쉬어버릴 지경이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속 타는 건 언제나 어미의 몫이다 안개꽃 배경으로 서 있어도 즐거움을 아는지 환한 앞줄 내어주고 가운데도 비워주고 둥글게 품어 안는다, 비다듬는 손길로 때로는 돌아앉아 감춘 눈물 있었을까 야윈 손목 여린 눈이 하늘하늘 웃는다 옆옆이 간잔지런한 정(情)을 피워올리고 몫 어느 암자 비구니 스님들이 채소밭 절반을 갈라놓았다 ‘벌레들의 몫’ 끈을 두른 그 밭머리 이름표가 붙어있는데 벌레는 사람의 몫을 가리지 않아도 사람은 사람의 몫만 드나든다는 것 갖기 위한 나눔아니라 주기 위한 구분이라서 몫, 그 경계가 환해진다 달빛 경전(經典) 다 파먹어 텅 빈 소라 껍질 누웠네 살포시 귀에 대면 들려오는 숨소리 어머니 낮은 젖가슴 달빛 번져 물결이네 누가 다 읽었는지 달빛만 조각조각 조각난 달빛 아래 관음보살 누워있네 비워야 소리를 품는 뿔피리가 누웠네  
68 (신순말 시인)나의 문학관 및 약력
편집자
1231 2016-07-20
시래깃국 앞에서 시란 무엇인가. 어떻게 써야 시가 되는가. 문득 문득 내가 시라고 쓴 것들이 진짜 시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 들 때마다 스스로 물어보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본다. 정답을 찾는다기 보다는 방심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깨우는 시간이다. 시래깃국에 밥을 말아먹다가 어쩌면 시란 것도 이 시래깃국 같은 것이 아닐까 했다. 말린 시래기를 삶아 멸치육수에 된장을 풀고 마늘이며 파며 양념을 넣어가며 뭉근하게 끓이면 시래기와 된장과 마늘과 그 모든 재료가 가진 각각의 맛이 나면서도 또한 전혀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데, 거기에 또 밥을 더해 먹으면 시래깃국과 밥의 맛을 지닌 또다른 맛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시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가 가능하다. 낱말과 낱말의 조화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시의 창작. 낱말 본연의 맛을 지녔지만 더 새롭고 다양한 맛을 느끼게하는 것. 말의 요리사, 시의 요리사가 어떤 방법으로 조리하는가에 따라 맛이 달려있다. 또한 시래깃국에 밥을 말아먹는 일처럼 읽는 이가 새로운 맛을 더해주기도 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새로울 것이 없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로 새로움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창작이다. 시래깃국처럼, 그 국에 밥 말아먹는 일처럼 사는 일 사이의 소소한 모든 것. 어쩌면 시라는 것은 끊임없는 살아내는 일의 변주곡이다. 신순말: 상주출생 상주들문학.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 시집『단단한 슬픔』(詩와에세이, 2013)  
67 (곽도경 시인)자선 대표작 10편 file
편집자
1489 2016-06-21
만어사 1 -올챙이 대웅전 앞 뜰 물웅덩이에 올챙이들 우글우글 모여 부처가 되어가고 있다 아직 앞다리도 뒷다리도 없는 말 그대로 개구리의 유생 곧 없어질 꼬리로 살랑살랑 웅덩이에 빠진 하늘을 흔들고 있다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결은 부드럽다 저 잘박거리는 물 다 마르면 한 치 앞도 못 내다보는 저 미물들은 다 어쩌누 부질없는 걱정에 두 손 모으자 수십 마리 올챙이들 모두 생불이 된다. 만어사3 - 밀양역 산다는 게 그저 물 말아먹는 밥처럼 싱겁고 맛없는 날, 그런 날엔 세종대왕 몇 장 주머니에 찔러 넣고 무궁화 열차를 끌고 가 밀양역 즈음에 내리면 좋겠어 내가 왔노라 연락하면 늙은 로시난테는 돈키호테 같은 친구 한 놈 끌고 비실비실 마중 나와 줄까 그 빌어먹을 늙은 말은 헉헉, 긴 혓바닥으로 허공을 핥으며 꼬불꼬불 긴 비포장도로를 지나 만어사 즈음에 우리를 내려놓을지도 모를 일이야 만어사 앞뜰에 서서 친구 놈은 잘 익은 오디 몇 개 따서 입에 넣어주며 달큰하제?, 하고 물어볼까 아니, 쌉싸름하네 하고 대답하고 씨익 웃으면 그 친구 그저 말없이 슬그머니 등 뒤로 와 숨도 못 쉬게 꽉 안아 줄지도 모를 일이지 밀양역에 내리면 어쩔 수 없이 나는 바람나고 싶은 여자 밀양의 은밀함에 갇혀 비밀스런 이야기 하나쯤 만들어 버리고 싶은 오래전 그녀 살구빛 저고리 입은 그녀 갈래머리 소녀와 나란히 꽃밭에 앉아 있다 도토리묵 만들어 장에 내다 파느라 검게 물든 손바닥 누가 볼세라 움켜쥔 주먹 속에 닳아 희미해진 지문 같은 삶이 갇혀 있다 시간 여행을 하다가 능소화 한 송이 만난다 그날이 남은 생 중 가장 눈부신 날인 줄 모르고 무성한 잎들 힘겹게 끌고 높고 긴 돌담을 넘는 그 꽃 남평문씨 내 어머니 동자꽃 지난겨울 언 뺨이 아직도 발그레한 그 아이 풀잎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무심코 지나는 발목을 잡는다 혼자 견뎌냈을 밤의 무게와 바람의 모서리가 아이 몸 안에서 출렁인다 홀린 듯 취한 듯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그만 눈시울이 젖는다 어쩌면 나는 한 삼백 년 전 즈음 산속 암자에 아이를 버리고 모질게 등 돌리고 돌아 선 엄마였는지 울며 울며 내려오다 서너 번쯤 뒤돌아 보기는 했는지 무심사에서 전생을 만났다 한 삼백 년 전 그해 겨울 산속 암자에 버려졌던 그 아이 큰스님 옆에서 고사리손 호호 불며 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마음을 비우려고 떠난 길 위에서 마음이 얼었다 무심이란 본디 관심이 없는 것 혹은 소유함을 초월한 마음일진대 무심사에서 나는 없는 마음이 터졌다 예불을 끝내고 숙소로 이어진 돌층계를 오르는 동자승의 뒷모습이 눈 속으로 들어와 그대로 부처가 되었다 오래전 그날처럼, 나는 울며불며 산에서 내려오다 열 번, 스무 번도 더 뒤돌아보고 동파(冬破) 훈련소에 입소한 아들의 옷과 신발이 택배로 왔다 단정히 접은 옷 위에 신문지를 깔고 가지런히 놓인 운동화 한 켤레 왈칵, 서럽다 때 묻은 신발을 들고 냄새를 맡는다 흠흠, 쾌쾌한 아들 냄새 와락, 끌어안고 운다 향기롭다 “어머니, 아버지 여기는 졸라 춥습니다. 대박입니다. 하지만 잘 견디고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ㅋㅋ 충성!“ 처음 받아보는 아들의 짧은 편지에 울다가 웃는다 “내일 경기도 연천, 강원도 철원은 영화 20도의 강추위가 예상됩니다. 동파 될 위험이 있는 수도관 등은 점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기예보가 흘러나오자 점검 할 시간도 없이 엄마 마음이 바로 얼어 터진다. 간고등어 아침 식탁에 올릴 냉장고 속 간고등어 두 마리 밤새 무슨 일로 토라졌는지 등 돌리고 누운 놈을 다른 한 놈이 가만히 안아주고 있다 쓸개 창자 다 파내고 굵고 짠 소금에 생살 절이는 쓰라림 경험하지 않고서는 등 뒤에서 다 감싸 안아 줄 수 없다며 떨어질 줄 모르는 간 고등어 그 쫀득한 살 뚝뚝, 발라먹는 아침 입 안 가득 출렁이는 짜고 비린 바다 운흥사 바람 이리도 부는데 어쩌누 벚꽃 다 지는데 어쩌누 이런 날에는 우리 꽃 피는 것보다 꽃 지는 게 더 고운 운흥사에나 갈까요 절 앞마당 든든히 지키고 선 백 년 왕벚나무 그 늙으신 몸이 안간힘으로 피워 낸 환한 꽃송이들 꽃비로 지는데 아깝고 안타까운 봄날은 가는데 그 꽃그늘에 서서 굵은 나무의 몸 가만히 안고 눈 감으면 껍질에 촘촘히 점자로 박힌 나무의 일생 아무도 몰래 적은 그의 일기장 그것 좀 훔쳐보면 또 어때요 이렇게 바람은 불고 꽃비는 오고 봄날은 가는데 뒤돌아 보지도 않고 가는데 낮달이 되어 소를 찾아 떠난 길 위에 꽃 수를 놓는 그녀 분홍낮달맞이, 무리를 이룰 때까지 심어 놓고서야 바늘에 찔린 손가락 호호 불며 하늘 한 번 올려다본다. 보여도 보이지 않는 경계 그 어디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화두 하나 환갑을 앞둔 나이에도 잡지 못하고 채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로 출가하여 꽃이었던 기억조차 까무룩 지워버린 그녀 오월 하늘에 희미한 낮달로 걸려 먼 수행 길 가고 있다. 풍장 서러워말자 모진 겨울, 언 땅을 걸어 와 검은 몸뚱이 희디흰 꽃송이 환하게 피웠나니 비록 순간이라 한들 서러울 일 없는 일생이다 한 몸으로 엉겨 서로를 붙들고 있던 꽃잎들 한 잎 한 잎 흩어져 바람 따라 길 떠나는 저마다의 비행 어디에 떨어져 무엇으로 다시 태어날 지 알 수 없는 윤회의 고리 안에서 벚꽃 잎들 파르르 온 몸 떨며 환생을 기다리고 있다.  
66 (곽도경 시인)나의 문학관 및 약력
편집자
1680 2016-06-21
나의 문학관 시를 쓰는 일은 그림을 그리는 일과 같다. 나는 때때로 그림과 시를 혼돈할 때가 있다. 시로 그림을 그리고, 그림으로 시를 쓰는 것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시 쓰기 기법이다. 그냥 시야에 보이는 풍경이나 사물을 그대로 그림을 그리듯 쓰고, 그렇게 쓴 시를 독자도 편안하게 보고 읽어 주면 좋겠다는 것이 시인으로서의 내 바램이다. 사실 주변에 널린 모든 것들이 그 자체로 시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이나, 무심코 눈에 띄는 빈 의자. 마른 꽃, 찌그러진 깡통 등 이런 아무런 의미가 되지 않을 것 같은 것들도 실은 모두 시다. 세상에 시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런 것들을 무심코 흘려보내지 않고 마음 어딘가에 심어 두었다가 키우고 숙성시켜 활자화 시켰을 때 그것이 비로소 시가 되는 것이다. 또한 내 시의 저변에는 불교적인 사고가 은밀히 내재되어 있다. 언제나 내 마음 속에서 수없이 말을 걸어오는 전생과 윤회와 환생은 어김없이 내 시의 여러 편에서 불쑥불쑥 얼굴을 내민다. 이런 시에 대한 나의 생각은 내가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는 순간이 올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을 나는 안다. 오늘은 예전 같으면 그림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소스라쳤을 애벌레 한 마리의 이름을 알기 위해 그 벌레의 기어가는 모습이나 색깔 줄무늬까지 유심히 관찰하기도 했다. 내 시 쓰기도 이렇게 오래 지켜보고 자세히 바라보며 좀 더 깊고 맛있게 익어 갔으면 좋겠다. 프로필 계간 [시선] 등단 계간시선 신인상 제1회 고령문학 작품상 시집/ 풍금이 있는 풍경 계간[시하늘]운영자 현대불교문인협회 대구경북지회 재무국장 고령문인협회 부회장 은시문학 사무국장  
65 (박래여 소설가)자선 대표작 소설1편 수필1편 file
편집자
1628 2016-05-10
소설 : 동백나무 숲에 후박나무 그늘 아늑한 오동도 전망대 아래서 매점을 하는 그녀는 수화가 아니었다. 수화, 그녀는 여전히 석천사 공양보살로 있었다. 매점에 있던 처녀는 바로 수화의 딸이었다. 나는 아내가 왜 나를 이 오동도로 향하게 했는지 그제야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끝내 아내는 나를 울게 만들었다. 낯선 길이었다. 30년 만에 온 길은 어디에도 옛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여수 역 이정표만 보고 달리고 또 달렸다. 역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사각형의 역 건물은 이미 예전 모습이 아니다. 일본식 건물이었던 역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무척 작은 역이었다. 바람이 휘몰아칠 때마다 지푸라기들이 날아다녔다. 아마 그 때가 정월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네모반듯한 작은 역 앞에 가지런히 정차된 승용차 색깔만큼이나 다양한 상가 건물들이 즐비했다. 역을 들락거리는 사람도 없는 것을 보니 기차 시간이 아닌가 보다. 옆자리에 놓았던 동백 꽃무늬 실크 보자기로 쌓인 상자를 조심스럽게 보듬고 차에서 내렸다. 그러나 역 안으로 성큼 들어갈 수가 없다. 광장에 있는 홍익 매점, 홍익 스넥이라는 상점 앞에 늙은 촌로가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담배 생각도 간절히 났지만 담배 한 대 달라는 말을 건네기는 싫고, 그렇다고 한 갑을 사기도 뭣하고 하여 우선 홍익이란 말을 곱씹는다. 낱말이 정겹다. 弘益, 널리 이롭게 하는 이름 아닌가. 홍익 매점을 바라보고 한참을 서 있었나 보다. 갑자기 뱃속에서 꾸르르 소리가 난다. 그래, 우선 밥이나 먹고 생각하자. 역사 주변을 둘러봤다. 제법 현대식으로 잘 지은 녹원 갈비집도 있지만 어쩐지 도로 옆에 붙은 허름한 식당에 더 정이 간다. 돌산갓김치 식당, 해풍 식당, 두 곳 중에 해풍이란 낱말이 맘에 들어 그 집으로 들어섰다. 뚱뚱한 아주머니와 날씬한 아저씨는 아무리 봐도 환갑은 넘었을 것 같은데. 아주머니의 푸짐한 몸매와 인상이 어딘지 낯이 익다. 수화, 그녀랑 헤어지기 전에 같이 저녁을 먹었던 집은 아닐까. 이제 헤어지면 언제 또 만나나 싶어 무슨 음식을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조차 없고 고개 푹 숙이고 밥숟가락만 들었다 놨다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집이었을까. 그 땐 젊고 예뻤던 아주머니도 세월이 저렇게 삭혔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나도 저 아주머니보다 더 추레한 모습 아닌가 싶어 새삼스럽게 세월의 무상을 느끼게 한다. “백반으로 주시고 조미료는 쓰지 마십시오. 소주 한 병 주십시오.” 모서리가 닳은 직사각형의 나무 상 두 개가 놓인 식당 안에는 나 외엔 손님이 없다. 상 앞에 앉자마자 술과 밥을 청해 놓고, 무릎에 얹었던 보자기로 싼 네모 상자를 옆에 놓았다. ‘여보, 당신 원대로 여수에 왔소.’ 나는 보퉁이를 쓰다듬었다. 그 사이 물이 나오고, 술과 김무침 안주가 먼저 나와 빈속을 술로 데우는데. 싱싱한 갈치 굽는 냄새가 나더니 금세 밥상이 나왔다. 갈치 한 토막에 콩나물, 마늘장아찌 등 여남 가지 나온 반찬이 짭짜름한 것이 입에 맞는다. 특히 사골 육수를 진하게 내어 콩나물에 붓고 끓여야 제 맛이 난다는 얼큰한 콩나물 해장국이 별미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지만 입에 착 붙는 것이 먹을 만하다. 그러나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며칠인지라 뱃속이 금세 거부반응을 보인다. 술 한 잔을 더 털어 넣고 뜨거운 국물을 후룩후룩 마셨다. 국 한 그릇을 더 청했다. 아낙은 사골 국이라 금세 끓여 내야 맛있다면서 조금 기다리란다. 나는 주인 남자를 청해 술을 권했다. 소주 한 병이 금세 바닥났다. 다시 나온 국물에 밥 한 그릇을 말아 땀을 뻘뻘 흘리며 먹어 치우고 숟가락을 놓았다. “맛있을 께랍?, 근디 저거시 뭣이다요” 허겁지급 밥을 먹었던 탓일까. 전라남도 특유의 억양으로 주인이 빙그레 웃으며 묻는다. 나는 물수건으로 이마의 땀과 입가를 훔치며 씩 웃으며 말없이 보자기를 툭툭 두드렸더니 주인은 알았다는 듯이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다시 거리에 나와 역을 바라보고 섰다. 그래,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여보, 당신과 함께 가 보는 거야. 우리가 살아온 날의 흔적과 비할 바 못되지만 당신이 그토록 원했으니 당신 원대로 해 줄게. 그래야 당신도 마음 편하게 떠날 수 있겠지. 나는 보퉁이를 소중하게 안고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냉방장치가 잘 된 역사 안은 서늘했다. 바다가 보였는데 싶어 창가로 가 봤지만 정차 되어 있는 기차만 눈에 들어왔다. 역사 플랫폼으로 들어갔더니 그제야 키 큰 나무들 사이 멀리 바다가 보였다. 저기 어딘가 선착장이 있을 텐데. 수화, 그녀랑 같이 쾌속정에서 내려 역까지 걸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멀리 바다를 봤다. 크고 작은 배들이 물 위에 부표처럼 떠있다. 움직임을 저지당한 것처럼 아무 요동도 없는 배를 보면서 나는 수화, 그녀의 모습을 그려본다. 아무리 그려봐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형상이 없다. 너무 오랜 세월 묻어버리고 산 탓일까. 묻었다하면서도 나는 그녀를 전혀 묻은 적이 없는데. 왜 그녀의 형상이 그려지지 않는 것일까. 긴 머리를 묶었었지. 키가 컸든가. 작았든가. 작은 키는 아니었지만 아담했던 것 같다. 품에 쏙 들어오던 그녀, 그녀의 형상을 그려보니 어느새 아내가 그 자리에 서 있다. 단아하던 모습, 언제나 한결같았던 편안함과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봐주던 그녀, 겨우 오십도 못 채우고 떠나간 그녀, 갑자기 발병한 자궁암으로 이승을 떠난 그녀, 자궁암은 자궁 적출수술만 하면 완치 가능하다는데 그녀의 암은 이미 온 몸에 퍼진 상태였다. 어떻게 그렇게 되도록 몰랐더란 말인가. 아파도 참았을 것이다. 참는 것이 아내의 주 특기였으니까. 그녀의 소원대로 나는 수화를 찾아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여수 역을 나와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여보, 여기야,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지만 여기 맞아. 나는 크고 작은 배들이 방파제 안에 둥글게 묶여 있는 것을 바라보며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아내는 아직 내 품에 안겨 있다. 내게 수화는 과거지만 아내는 현재다. 그 아내가 과거가 되면 나는 어떻게 할까. 막막하다. 아내를 절대로 놓아버릴 수가 없다. 그런데 아내는 자꾸만 수화를 찾으라고 재촉한다. 언제부터 아내에게 그녀가 그렇게 소중해진 것일까. “당신, 수화, 그녀를 꼭 찾아야 해요. 만약 당신처럼 그녀도 평생 당신을 가슴에 품고 있다면 분명 어디선가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녀의 자리를 차지하고 산 이십여 년의 세월, 결코 불행하다고 생각지 않았어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남자를 바라보는 것도 행복일 때가 있었어요. 그렇다고 당신이 내게 소홀했던 적이 없으니까. 난 믿어요. 그녀만큼은 아니라도 내 자리도 분명 당신 마음 속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아니까. 그 자리에서 시작하세요.” 아내는 왜 그랬을까. 좀 더 일찍 나 때문에, 아니 내가 들려준 사랑 이야기 전부를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왜 말하지 않았을까. 왜 딴 여자를 가슴에 품고 살면서 나랑 사느냐고 따지지 않았을까. 차라리 그렇게 부부 싸움이라도 하면서 살았다면 난 오히려 홀가분하게 아내를 떠나보낼 수 있을 텐데. 나는 다시 길을 되 집어 역 있는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온몸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도 오소소 한기가 든다. 그녀의 흔적이 나를 서럽게 하는 것인지, 아내의 짧은 생이 나를 서럽게 하는 것인지. 내가 여수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대학에 낙방하고 재수를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갈림길에서 떠난 여행길에서였다. 서울 신림동 집에서 가볍게 챙긴 배낭을 메고 집을 떠났던 내가 남해 대교까지 내려간 것은 순전히 남해 대교 때문이었다. 미국의 금문교를 본떠 만들었다고 광고된 다리를 보고 싶었다. 남해가 서울에서 그렇게 먼 곳에 있는 줄도 몰랐으니 진주에 도착해 하룻밤을 여관에서 자고, 다음날 남해 가는 차를 갈아타고 겨우 도착했던 시각이 점심때였다. 점심도 굶고, 남해 대교를 건너 다리 밑에 있는 선창가에 나가 얼쩡거리다가 만난 것이 그녀였다. 그 때 막 떠나는 쾌속선 배가 있었다. 하얀 배가 아주 이색적이었다. 카페리 호라고 했지만 여객선이었는지 유람선이었는지 지금은 기억에 없다. 다만 그 배를 타고 싶었지만 내겐 집에 갈 차비 밖에 남지 않았다. 배를 타고 싶은데. 배 삯이 없으니 탈 수가 없었다. 배 삯은 또 너무 비쌌다. 배가 떠난다고 긴 뱃고동을 울렸다. 사람들이 서둘러 승선을 했다.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쫓으며 선창가에 서 있었다. 그 때 선뜻 다가선 것이 검고 긴 머리카락을 뒤로 질끈 묶은 그녀였다. 알록달록한 무늬가 든 무척 따뜻해 보이는 털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저 배 타고 싶지요?” “타고 싶은데 뱃삯이 너무 비싸네요.” “그래요?”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매표소로 뛰어가더니 배 표 두 장을 끊어 와 뱃전으로 뛰어가며 손을 흔들었다. 빨리타 라는 신호였다. 아주 잘 아는 사이처럼 구는 그녀의 선심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미지에 대한 동경 탓이었다. 배를 타고 싶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만 살아온 내게 바다와 배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배를 탈 수가 있다. 앞 뒤 잴 필요도 없이 나는 뛰었다. 승선이 끝난 배가 닻을 끌어올리기 전에 배에 뛰어내렸다. 여자는 생긋 웃더니 선실로 들어가 앞자리에 앉았다. 나 역시 그녀의 뒷자리에 가서 앉았지만 아는 체 하지 않았다. 가만히 주시했다. 저 여자가 무슨 맘으로 내 표를 사 준 것일까. 내가 어수룩해 보이는 것일까. 여자는 창밖만 바라봤다. 뒤에 앉은 내게 일별도 주지 않았다. 어찌 보면 논다니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천진난만해 보이는 여자였지만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녀와 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돈도 없었고, 갈 곳도 없었고, 배도 처음 타 보고, 여수라는 곳도 처음인 내게 그녀도, 바다도, 배도 모두 도박이었다. 좋다. 나도 남잔데 유혹하는 여자를 마다할 까닭이 없지. 어디든 가 보는 거야. 어차피 집 나왔으니 안 되면 노가다라도 하여 차비 좀 벌어 집에 돌아가지 뭐. 그렇게 맘을 다지고 나니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오밀조밀한 섬을 돌고 돌아 배는 물 위를 매끄럽게 지나갔다. 천천히 가는 것 같은데. 크고 작은 섬들이 휙휙 지나쳐 갔다. 나는 바다 풍경에 눈을 고정시킨 채 생각에 빠졌다. 한려수도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왜선 수백 척을 침몰 시킨 바다 아닌가. 역사의 현장을 답사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자 어쩐지 어깨가 으쓱해진다. 내가 거북선을 타고 창을 들고 섬과 섬 사이를 돌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배를 첨 탄다더니 넋이 나갔군요. 다 왔으니 내릴 준비해요.” 여자가 몸을 돌려 돌아보며 손으로 내 가슴을 쿡 찔렀다.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아무 말도 못하고 여자의 생글거리는 얼굴만 바라보는데. 뱃고동을 크게 울리면서 배는 천천히 선착장 앞으로 들어섰다. 한 40여분 탔을까. 여수 앞바다였다. “아쉽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방을 챙겼다. 가방이래야 어깨에 걸치는 보라색의 조그만 것이었다. 배를 탄 사람이 여남 명밖에 안 되었지만 그 사람들이 다 내리도록 뒤에 쳐졌다가 마지막에 배에서 내렸을 때 여자가 물었다. “여기 와 본 적 있어요?” “아니오. 처음입니다. 이상한 곳에 온 것 같아요. 배에서부터 말귀를 못 알아듣겠어요. 어디 외국에 나온 것 같이.” “전라도 사투리가 좀 특이해서 그래요. 제주도 사투리보다는 그래도 많이 알려졌을 텐데. 내겐 익숙한 곳이지만. 사실 나도 아직 이곳 사람들 사투리를 다 알아듣지는 못해요. 어디 가실 거예요? 아참, 처음이랬지. 갈 곳도 없죠?” 당연한 것을 그녀는 묻고 있었다. “음, 그럼 어떻게 할까. 나랑 같이 다녀요. 나도 여행 나온 참인데. 여기저기 구경할 곳이 많지만 우선 역에 먼저 가요. 기차 시간표를 알아봐야 하니까. 참 나 수화예요. 수화. 그 쪽은?” “이 정각이요” 부처처럼 삶의 깨달음에 이르라는 뜻으로 할아버지께서 지어준 이름 정각, 정각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게 대학 입시에 낙방하고 아무도 몰래 집을 뛰쳐나온 내가 나보다 서너 살은 많아 보이는 여자에게 코 꿰어 다니는 것이 남세스러운 일 같지만 그 곳은 낯선 곳이었다.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었고, 나를 알려고 하는 사람조차 없는 낯선 곳이란 것이 참 편하고 좋았다. ‘정각’ 여자가 입속으로 가만히 내 이름을 외더니 내게 바짝 다가서서 내 눈을 빤히 바라봤다. 그 눈 속에 내가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눈을 감아버렸다. “당신 좀 귀여운 데가 있어. 앞으로 우리 친구하자.” “도대체 당신이란 여자 몇 살 먹었소? 말을 탁 까네. 보니 나랑 비슷할 것 같은데.” 내가 볼멘소리를 툭 내지르자 여자가 까르르 웃었다. “아이고, 떠꺼머리 총각님, 지가 요래 뵈도요 유부녀랍니다. 성질나서 집을 나와 뿌렀지만. 허니 내가 어른이지. 아직 솜털도 안 마른 총각보고 예예 할까 그럼? 꼭 나이를 알고 싶다면 말하지 나 스물 셋.” 난 그녀를 누나라고 불러야 했지만 곧 죽어도 누나 소리가 안 나와서 “저기요 그냥 수화라고 하면 안 될까요? 친구 하자했잖아요.” 그렇게 우린 친구가 되었다. 무슨 이유로 집을 나왔는지도 모르고, 정말 유부녀인지도 모르지만 우린 의기투합해서 역에 들어가 기차 시간표를 봤다. 서울 가는 기차는 그 곳에서 아예 없었다. 순천 나가서 기차를 타고 가서 그 곳에서 다시 갈아타야 했다. 그것도 다음 날 아침 9시 몇 분에 있었다. 내가 실망하는 표정이자 수화는 그것 보라는 듯이 웃으며 ‘클 났다. 순진한 숫총각 내가 잡아가야겠네.’ 하면서 놀렸다. 역을 나오니 여자는 자신만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역 앞에 있는 재래시장에 들어가더니 사과를 한 봉지 샀다. 내게 그것을 들고 따라오라고 했다. 우리가 찾아든 곳은 산비탈 숲 속에 고즈넉하게 들어앉은 절 마당이었다. 미래산 석천사! 요사 채에 신발들이 가득하다. 동안거를 맞아 불교 학생회에서 온 학생들이 참선중이라는 것이다. 나도 그 속에 한 사람으로 들어가 부처님의 설법이나 배우며 며칠 쉬었다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수화는 서슴없이 공양 간으로 들어가더니 공양주로 있는 늙수그레한 아주머니에게 무슨 이야긴가를 하더니 나보고 따라 들어오라 한다. 그 아주머니에게 꾸벅 인사를 하니 내 인사를 받고 ‘반찬 없어도 마이 드이다.’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밥솥을 뒤져 밥 두 그릇을 퍼 담고, 나물과 된장국을 떠서 부뚜막에 놓더니 나 보고 걸터앉아 먹잔다. “배고팠지? 보살님께 부산서 온 남동생이라 했어. 누나 대접 잘 해야 해.” 밥을 먹으면서 수화는 석천사의 내력을 간단하게 이야기 해 주었다. 나는 역사 공부 새로 하는 셈치고 귀를 기울인다. 여수는 이순신 장군과 왜군을 빼면 이야기가 안 된다고 할 정도로 모든 유적지가 임진왜란과 관련이 깊다. 조선조 초에 왜적의 침략으로 경상도 뿐 아니라 전라도 지역까지 왜군의 침입이 속출하자 서해안 진출 및 전라도 길목에 위치한 여수에 전라좌도수군절도사영을 설치하여 417년간 조선수군의 본거지로 존속하였다 한다.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장소 선소, 충민사, 진남관, 좌수영대첩비 및 타루비, 세검정, 군기고, 굴강, 풀뭇간 등 모두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수군에 얽힌 이야기들이 산재한 곳이다. 석천사도 그 중의 하나다. 충무공을 흠모한 승군 자운선사, 옥형대사에 의하여 창건된 절이라 한다. 밤이 깊었다. 그 때만 해도 그 절엔 전기 시설이 없었다. 촛불과 석등에 불을 밝힌 절간은 현실 같지 않았다. 저녁에 그녀랑 산책을 나갔다. 석천사 뒷길을 돌아 숲길을 걸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낮에는 엄마처럼, 누나처럼 굴던 그녀도 밤이 무서운가 보다. 함께 호젓한 산길을 걷자 슬그머니 내 손을 잡더니 아예 팔짱을 끼고 착 달라붙는다. 나는 그런 그녀가 좋았다. 하루 만에도 그렇게 정이 드는 것이 남여일까. 멀리 여수 만에 떠있는 배의 불빛도, 길 아래 아슴푸레하게 내려다보이는 길쭉하게 뻗은 여수 읍의 불빛이 참으로 아늑했다. “근데 누나, 왜 집을 나오셨어요? 아이는 없어요?” “누나 소리 징그럽네. 둘이 있을 땐 그냥 수화라 불러. 친구잖아 우리. 그리고 아이는 무슨.......” 한참을 뜸을 들이며 앞서 걷던 그녀가 다시 내 곁에 오더니 살그머니 팔을 잡았다. “난 말이야. 돈에 팔렸어. 우습지? 우리 아버지가 날 무식한 뱃놈에게 팔았어. 나이가 열 살이나 차이가 나는 아버지 같은 사람이야. 나 부산이 고향이야. 아버지가 부산 어시장에서 건어물상을 해. 그 사람과 거래를 했다더군. 무슨 돈 관계가 얽혔는지 나는 잘 모르지만 어느 날, 조그만 회사의 경리를 보던 내게 강제로 결혼하라고 했어. 결혼날짜도 아버지 맘대로 받아놨다더군.” 그녀는 부산에서 여상을 갓 졸업한 풋내기 사회 초년생으로 세상 물정에 때도 묻기 전에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물설고 낯선 순천으로 오게 되었단다.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결혼을 했으니 결혼 생활이 평탄할리 없었다. 더구나 뱃사람이었던 남편은 늘 바다에 나가 살았고, 가끔 집에 와도 살가운 정이 없었다. 더구나 잔정이라곤 눈곱만치도 없고, 모질기조차 했던 남자에게 정을 붙이기엔 그녀는 너무 어렸다. “한 달 쯤 전일까. 그 남자가 술에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들어 온 거야. 난 그 남자 몸에 배인 비린내가 싫어. 정말 싫다. 아무리 목욕을 해도 그 비린내는 가시질 않는 거야. 내가 잠자리를 거부하자 그 남자가 이러데. ‘너 아니라도 여자 있다. 그 여자는 나 없으면 못 산다. 넌 돈에 팔려온 여자야. 그 사실을 잊지 마라. 너거 아버지가 널 팔았어. 나 아니었으면 너거 집 거덜 났을 거다. 은공도 모르고 잘난 체 하는 나쁜 년.’ 이러는 거야. 그 남자랑 살 붙이고 사는 여자가 여기 여수 어디 바닷가에 있다나. 대포 집을 한대.” 그 길로 집을 뛰쳐나왔지만 친정에도 갈 수 없고, 나선 김에 여수에 가서 그 여자 얼굴이나 찾아보자고 여수로 찾아든 길이란다. 처음 여수 역에 내렸을 때는 참 막막하더란다. 아는 사람도 없고, 잘 곳도 없고, 말도 잘 통하지 않고, 하여 길가는 사람에게 가까운 절을 물었더니 석천사를 알려 주더란다. 절에 찾아와 주지스님께 사정 이야기를 하고 그 때부터 이 절에 있게 됐다면서. 낮엔 여기저기 바닷가를 쏘다니며 대폿집 한다는 여자 집을 수소문 해 봤지만 알 수가 없고, 며칠 지나자 그게 다 부질없는 짓 같아서 접어버리기로 했단다. 오늘 아침에 유람선 선착장까지 걸어갔다가 남해 가는 카 페리호가 있어 무조건 올라탔었고, 그 배가 오후 2시에 출발한다기에 남해 시내 구경하고 돌아오던 길에 나를 만난 것이란다. “그 남자가 찾으면 어쩔 건데?” “아마 지금쯤 우리친정이 난리 났을 거야. 보나마나 뻔하지. 나 안 찾아내면 돈 갚으라고 우리 아버질 닦달하겠지. 어떻게든 이혼할 길을 찾아야지. 내 인생 이렇게 종치기는 싫어. 내 꿈이 뭔 줄 알아? 화가야. 돈 벌어서 미대 가려고 했는데. 가자. 내 방에 가면 여기 와서 스케치 한 것들 있어. 보여줄게.” 그녀의 방은 대웅전과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와 뚝 떨어진 한적한 곳에 있었다. 판자로 얽기 설기 엮은 하꼬방 같은 방인데. 그래도 옆에 화장실도 있고, 목욕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방을 혼자 쓰고 있었다. 방구석에 그녀의 스케치북이 놓여 있었다. 스케치북을 폈다. 섬세한 필치다. 나도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극성으로 미술학원에 다닌 경험이 있어 스케치라면 좀 자신이 있지만 그녀처럼 섬세하진 못했다. 여수의 해돋이, 여수항의 풍경, 기차 길 옆에 사는 사람들, 재래시장, 해수욕장 풍경, 나무와 숲, 섬과 바다. 두툼한 스케치 북에는 그림들로 꽉 차 있다. 새벽에 일어나 공양 간 일 하고, 절 청소 끝내고 나면 남는 시간은 돌아다니며 스케치 하는 것이 일이란다. 스케치북을 들고 있지 않았잖아 라는 내 말에 웃으면서 그녀가 내 놓는 것은 가방 안에 든 작은 스케치 북이다. 그 곳에 대충 잡아와서 집에 와서 틈나는 대로 다시 그린다고 했다. 나중에 이젤과 유화 물감을 사게 되면 이 스케치 한 것들을 다 화폭에 담을 것이라고 했다. “근데 왜 이 방에 혼자 있어?” “원래 이 방은 오갈 데 없어 절에 와 살던 불쌍한 할머니를 위해 만든 방인데. 그 할머니가 작년에 돌아가셨데. 그 후 허드레 창고로 사용하던 것을 내가 대충 치워서 기거하는 거지.” “절에는 밥값 안 내도 되나.” “몸으로 때우는 거지. 여기 공양주가 좀 게을러 터졌거든. 동네 아주머니가 오며 가며 스님 뒷바라지를 하는데 영 맘에 안 차나봐. 그러니 스님은 내가 푹 눌러 있었으면 싶지. 이래보여도 새벽 세시면 발딱 일어나서 밥 하러 가거든. 음식 솜씨 좋지 바지런하지. 나 같은 공양주를 어디서 구해. 그러니 공짜 아니잖아.” 밤을 새우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는 서로가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몰랐다. 다음 날 아침, 내가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정말 내 옆에 없었다. 나중에 밥 먹으러 오라고 데리러 온 그녀를 보고 나는 눈이 부셨다. 헐렁한 승복 차림의 그녀의 또 다른 변신에 놀라고 있었다. 여수 역까지 다시 온 나는 승용차에 올랐다. 아내를 옆 좌석에 얌전하게 앉히고 석천사 쪽을 바라봤다. 그 절엔 가고 싶지 않았다. 이미 옛 모습이 사라져버렸을 절, 절 앞으로 높이 오른 아파트 건물과 빼곡하게 들어 찬 건물들을 바라보며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 저 절엔 가지 말자. 대신 다른 곳에 가자. 당신과 나만이 간직할 수 있는 그런 절이 여기 어디 있을 거야. 석천사는 내 기억 속에 있는 아담한 절만으로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만성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여보, 만성리 해수욕장 알지? 검은 모래가 유리알처럼 반짝거렸다고 한 말 기억하지.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붉은 해가 너무도 인상적이었다고 했든가. 그 곳에 가고 있어. 그 곳이었어. 그 때 난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몰라. 그녀를 난 평생 잊지 못하고 내 가슴에 묻어두고 살 거란 사실을. 당신에게 미안하지만 정말 그랬어. 그때 이미 내 영혼이 오직 그녀 때문에 숨 쉬고 살게 될 것을 예감했었는지 몰라. 내 기억엔 지금 이 길과 반대방향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던 것 같은데. 고개 하나를 넘어 시골길을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에서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었지. 그런데 너무 변했다. 만성리 해수욕장 팻말을 보니 전혀 반대 방향이네. 시내를 들어가서 빙 둘렀던 것 같은데. 여수 역에서 바로 길이 나버린 건가봐. 그랬다. 다음날 우리는 만성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그녀는 주지스님께 텐트를 빌려왔다. 주지스님이 등산을 좋아해서 등산 장비는 다 갖추고 있다고 했다. 저녁노을이 멋지다며 노을을 스케치 하고 오겠다고 했더니 추운데 텐트를 가지고 가서 쳐 놓고 놀다 오라고 했단다. 스님이 그녀에게 너무 자상하게 군다 싶어 은근히 질투심이 났지만 나는 부산에서 온 동생 역할을 제대로 해야 했다. 여수 시장에 들어가 장을 봤다. 쌀 한 봉지, 감자 서너 개, 고등어 통조림, 쥐포, 과자, 소주를 샀다. 시장 본 것을 배낭에 넣어 등에 걸치니 영락없이 연인끼리 여행 나온 형색이다. 수화가 어찌나 사근사근한지 정말 그녀는 이상한 여자였다. 잠깐만 같이 있어도 십년지기나 된 듯 그녀를 좋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었다. 우리는 만성리 해수욕장이라는 장소에서 내렸다. 길옆에 허름한 가게 집이 있었고, 그 가게 집을 지나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그 곳이 바로 바닷가였다. 검은 모래로 유명하다는 겨울 해변에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이 우리 둘 뿐이었다. 바다 곁에는 나무가 쭉쭉 뻗어있었고, 풀밭도 있었다. 우리는 그 풀밭에 텐트를 쳤다. 텐트를 쳐 놓고, 등산용 작은 가스버너에 불을 붙여 커피를 끓였다. 그녀는 어떻게 그런 것들에 익숙한 것인지 몰라도 너무 익숙했다. 나는 남자 체면을 구길 정도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숙맥이었고, 그녀는 정말 누나답게 척척 잘도 해 냈다. 커피 잔을 들고 바닷가로 나갔다. 둘이 검은 모래에 발을 묻고, 그녀는 스케치를 하고, 나는 그 옆에 누워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봤다. 푸르디푸른 하늘이 오직 그녀와 나만을 위해 존재했다. 그녀와 나란히 누워 저녁노을이 아름답게 물드는 하늘을 보았다. 둘이서 소꿉장난을 했다. 텐트 밖에서 저녁을 짓는데. 그녀가 가게 가서 물 좀 얻어오라면 물통 들고 가서 얻어 오고, 파 좀 얻어오라면 얻어 오고, 그렇게 지은 뜨끔뜨끔한 설익은 밥이 세상에 태어나 먹어본 가장 맛있는 밥이었다. 그 날 밤 우리는 만성리 해수욕장에서 군용 모포 한 장을 덮고 텐트 안에서 잠을 청했다. 그 곳에서 나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비너스를 만났다. 춥지도 않았다. 가스버너에 올린 코펠의 물이 끓듯이 그녀와 나도 끓었다. 아침에 연두 빛 텐트의 둥근 문을 열어놓고 턱을 괴고 엎드려서 바다 속에서 불끈 솟아오르는 붉은 해를 봤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아무도 모르게 소원을 빌었다. 나와 그녀의 소원이 일치할리 없지만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자. 내가 당신을 찾든지, 당신이 나를 찾든지. 찾지 않아도 만나게 되면 더 좋겠지.’ 나는 그런 소원을 빌었었다. 그녀는 기념할 것을 남겨야 한다고 스케치 북을 들었고, 나의 누워 있는 모습과 텐트와 미루나무를 그렸다. 나는 천천히 운전대를 잡고 창밖 풍경을 바라봤다. 옛 흔적을 찾을 수 없었지만 섭섭하진 않았다. 이미 과거는 과거일 뿐인데. 나는 잊고 산 것을 아내만 잊지 못하고 산 것이 너무 마음 아파서, 아니, 아내에게 너무 미안해서 아내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온 것이 아닌가. 아내는 내게 과분한 여자였다. 서른이 넘어 만난 여자였지만 그 때까지 수화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나를 품어준 여자였다, 수화를 찾아가란 말을 해 주지 않은 유일한 여자였다. 청년이 되어, 결혼 적령기가 되어 만난 여자들, 하나같이 수화 이야기를 하면 왜 그렇게 사랑하는 여자를 찾아가지 않고 나를 만나느냐며 떠나갔다. 그러나 아내는 그렇지 않았다. 수화, 그녀를 다시 만나는 게 겁난다는 내 말을 이해해 줬다. 나는 바닷가 주차장에 차를 댔다. 보퉁이를 안고 바닷가로 나갔다.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모래사장에 퍼질러 앉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예전에 그토록 넓게 보였던 검은 모래밭도, 검은 자갈밭도 손바닥만 했고 푸르게 찰랑거리던 물도 좁은 입구만 열어놓은 채 양쪽으로 빙 둘러 둥글게 만들어진 방파제 탓에 맑게 보이지 않았다. 방파제에 가로막힌 바다는 이미 바다 같지 않았다. 저렇게 변하도록 나는 뭘 했나 싶었다. 아내가 속병을 앓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저 선생이라는 직업에 충실하게 학교와 집을 다람쥐 체 바퀴 돌듯이 왔다 갔다 했지 않았나 싶다. 중학교 국어 선생이라는 직업, 중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은 중학생 수준 밖에 안 된다고 누가 말했던가. 나는 정말 고지식하고 앞 뒤 꽉 막힌 샌님이었다. 어쩌면 나는 아내를 떠나보내면서 비로소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른다. 늘 과거의 한 시점에 붙잡혀 현실을 잊고 살았다는 것을 아내의 장례를 치루면서 깨달았다니 참으로 어리석은 인간이 아닌가. 하나 뿐인 아들에게도 아비 노릇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아들이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교환학생으로 캐나다로 떠난 후 타인처럼 잊고 살았다. 학비만 보내주면 아비 노릇 다 하는 걸로 생각하고 살았지 않나 싶다. 아내가 떠난 자리에서 아내는 아비 노릇까지 혼자서 다 해 냈다는 것을 알았다. 아들은 제 어미의 초상을 치르자마자 출국해 버렸다. 화장 해다 여수 오동도 바닷가에 뿌려달라는 유언 때문에 한 줌 가루로 변한 아내의 유골을 내 품에 안기고 떠나버린 것이다. 나는 다시 오동도로 향했다. 마지막 날, 그녀와 나는 오동도에서 이별 잔치를 했다. 석천사에서 새벽 예불을 마치고 배낭을 챙겨 절을 나섰다. 수화 역시 따라나섰다. 우리는 말없이 걸어 여수 역까지 갔고, 역 앞의 어느 음식점에 들어가 아침을 먹었다. 무엇을 먹었는지 모른다. 그 해풍 식당에서 콩나물 해장국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아침을 먹고 또 말없이 걸어 오동도 선착장으로 향했다. 오동도 들어가는 첫 배를 탔다. 그 때는 오동도가 육지가 아니라 섬이었고,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배가 있었다. 배를 타고 들어갔다. 사방에 붉은 동백꽃이 뚝뚝 떨어져 뒹굴었다. 섬을 한 바퀴 돌면서 동백나무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며 신발에 차이는 선홍색의 붉디붉은 동백꽃을 차마 밟을 수 없어 줍고 또 줍다보니 손아귀 가득 붉은 물이 들기도 했다. “나 서울 올라가면 후기 대학이라도 갈 거야. 가서 빨리 졸업하고 수화 찾으러 올게. 4년 후 여기서 만나 점심 때. 그 땐 혼자되어 있으면 좋겠어. 만약 그 남자랑 잘 산다면 안 나와도 되지만 꼭 나왔으면 좋겠어.” “네가 안 올 수도 있잖아. 나만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군. 어쩌면 평생 기다릴지도 몰라. 넌 서울 가면 금세 날 잊어버리고 잘 먹고 잘 살지도 모르고. 우리 약속은 말자. 행복했던 기억만 잊지 말자.” 그 4년이 30년이 되었다. 오동도는 이미 섬이 아니라 육지였다. 선혈처럼 뚝뚝 떨어지는 동백꽃의 환영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했을 때, 그 곳에서 나를 반기는 것은 뱃길이 사라지고 찻길이 생겼다는 것, 핏기 없이 해맑기만 하던 한 여인의 모습이 환영처럼 보일 뿐이었다. 오동도 들어가는 표를 샀다. 안내원에게 몸이 안 좋아 먼 길을 걸을 수 없다면서 저 섬에 취재차 가는 길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승용차를 가지고 다리를 건널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남자 안내원이 나와 차를 번갈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목에 걸린 비싼 사진기와 근 한달 잠을 설친 얼굴이니 병자로 보였으리라. 핼쑥한 볼이며, 충혈 된 눈이며, 검은 머리보다 흰 머리카락이 더 많은 부스스한 머리는 어깨까지 내려와 있지. 껑충한 키에 비해 헐렁한 개량한복 차림의 나는 누가 봐도 정상 같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시 운전석에 앉으면서 옆 좌석에 앉은 아내를 툭툭 부드럽게 두드렸다. 드디어 왔군요. 잘하셨어요. 아내가 속삭인다. 당신을 여기 데려온 것은 수화 때문이 아니야. 나는 힘차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정말 수화 때문이 아니다. 그 여자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여기 온 것이 아니라 지키지 못할 약속 때문에 온 것인지 모른다. 그녀가 그 날 약속 장소에 왔었는지 어쨌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해마다 그 날이 오면 나는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 밤을 새웠다는 것이다. 이제야 여기 온 것은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지 위해 온 것이다. 그녀에게 지키지 못한 약속이었기에 아내와의 약속은 꼭 지키고 싶어서. 그래서 왔다는 사실을 아내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승용차를 천천히 운전하여 섬으로 향했다. 걸어가는 사람들이 나를 본다. 그들은 걷고 있지만 여유롭다. 땀을 닦고, 부채질을 하고, 양산을 쓰고 가기도 하지만 그들은 여유로웠다. 차창을 열었다. 더운 열기가 훅 들어온다. 순간, 단순하게 가을이라지만 걷기엔 햇살이 너무 따갑겠다고 생각했다. 차를 오동도 섬 안에 있는 바다를 바라보는 주차장에 세웠다. 나는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숲 속을 통과한다. 오름길이다. 음습하다. 서늘한 기운이 온 몸을 관통 한다. 냉기가 흐르는 숲, 비릿한 냄새, 이끼가 파랗게 낀 축축한 계단, 빛 한 줄기 받기 위해 죽으랴 동쪽을 향해 솟구쳐 오른 가늘고 긴 산죽의 휘어진 허리, 내 기억에 한 아름은 족히 될 것 같았던 동백나무는 한 둥치가 아니라 회색 밋밋한 가지 뻗기로 건강한 아름다움을 뿜어냈다. ‘아야’ 소리치던 동백 꽃 붉은 꽃송이는 아무 곳에도 없다. 가을에 봄꽃을 찾는 게 이상하지만 예를 들면 그렇다는 뜻이다. 무엇하나 내 기억에 없는 것들 천지다. 그래도 여수는 건재할 것이고, 오동도 역시 존재할 것이다. 세인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는 이순신 장군은 아니라 해도 내 가슴에, 내 아이들의 가슴에 평생 살아있을 아내가 존재할 곳이다. 나는 손에 들었던 보퉁이를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당신과 처음으로 여길 왔군. 내가 그토록 와 보고 싶었던 자리건만 당신은 한번도 동행을 허락하지 않았지. 당신 자존심이었는지 몰라. 아무리 그래도 평생 가슴에 품고 살건 뭐요. 살다보면 잊기도 하고, 기억해 내기도 하는 것이 과거란 이름인데. 내가 잊고 살았던 수화를 그댄 못 잊었다는 게 말이 되오? 아내에 대해 자꾸 섭섭해진다. 내게 수화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아내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내에게 왜 좀 더 살갑게 사랑한다는 말을 못 해 주었을까. 섬의 능선에 올랐다. 오솔길이 아늑하다. 예전에 그토록 울창하던 동백나무는 쉽게 눈에 띄지 않고 아름드리 큰 후박나무 군락이 더 돋보인다. 큰 나무 아래 자잘하게 자라고 있는 어린 동백을 쓰다듬어 주었다.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둔 대나무 울타리도 없던 그 시절, 전망대도 없던 그 시절, 그 곳엔 오로지 동백나무 숲길이었다. 길바닥에 붉은 동백꽃이 뚝뚝 떨어져 까린 그 길을 그녀와 손잡고 걸었었다. 걷다가 지치면 동백나무에 기대어 흙길에 퍼질러 앉아 서로의 눈만 바라보았다. 이별은 그렇게 아팠다. 할말도 없었다. 안타깝기만 했다. 가능하면 같이 있고 싶었다. 가능하면. 쭉쭉 뻗은 산죽이 동쪽을 향해 기도하는 자세로 모여 있다. 전망대에 올라갔다. 이층이 그렇게 높은 줄 처음 알았다. 한려해상 국립공원답게 바다위에 정박한 화물선과 섬과 마을과 도시, 그리고 오동도 숲 전경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오동도에는 194종의 희귀 수목과 기암절벽이 섬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했든가. 전망대에서 내려와 다시 동쪽으로 난 가파른 길을 따라 바닷가로 내려갔다. 울퉁불퉁한 바위벽으로 이루어진 길 아래는 푸른 파도가 부드럽게 찰싹찰싹 때리고 갔다. 바닷물 곁의 바위 끝에 가 앉아 보자기를 풀었다. 그 안에 나무 상자가 나오고, 상자의 뚜껑을 열자 하얀 항아리가 나왔다. 잿빛의 아내는 얌전하게 나를 봤다. “당신 고생했어요. 여기 나를 풀어주세요.” 아내의 말이 미풍을 따라 귓전에 닿았다. 나는 살그머니 그녀를 안아 바다 속으로 가라앉혔다. 아내를 보내면서도 나는 울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 전망대와 사무실이 있는 자리로 다시 올라와 내가 걸어왔던 길의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그 곳에 한 처녀가 매점을 열어 놓았다. 늘씬한 키에 약간 핏기 없는 얼굴에 상큼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나를 반겼다. “시원한 냉커피 있어요. 한 잔 하고 가셔요.”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치고 있었다. “수화, 아직도 여기에 당신이!.......” 끝“ 수필 : 나무들 참선에 들다. 섣달이다. 마지막 남은 달력의 햇수를 헤아리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올 한 해는 참 다사다난 했다. 가을엔 벼 수매가와 쌀값 하락으로 농민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고, 쌀과 채소들이 시청과 군청 마당을 뒹굴었다. 개인적으로는 환경 파괴의 주범인 무분별한 농어촌 개발사업의 피해자가 되어 울분에 떨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 고장을 살리자는 취지에서 벌인 사업이라는데. 관광순환도로 개발 사업에 순응하게 되었고, 어제는 마당을 에워싸고 있던 사철나무 울타리와 정원수를 옮겼다. 굴착기로 정원수들을 옮기는 작업은 생각 외로 힘들었다. 지정된 장소가 아닌 가식을 했다가 다시 옮겨야 할 처지에 놓인 정원수다. ‘명 긴 놈은 살겠지.’하면서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속상하긴 마찬가지다. 살림집부터 지어서 옮긴 후에 정원 손질을 해야 옳은 데. 도로 공사 측에서 더 추워지기 전에 길을 넓히는 공사를 끝내야 한다고 사정을 한다. 덕분에 나무들만 생고생을 하게 생겼다. 30년생인 탐스럽고 아름다운 금목서는 두 번 옮기다가는 명 보존 못 할 것 같아서 안전 장소에 옮겼다. 밑동이 워낙 실해서 굴착기로 뽑아 올리는 데도 애를 먹었다. 나무는 나무대로 비명을 질렀다. 상처가 난 나무를 쓰다듬으며 ‘죽지 마. 내 사랑 죽지 마.’기도 했다. 지난번에 옮긴 느티나무도 산 것 같지가 않은 데. 내년 봄에 싹이 돋아 봐야 알겠지만 큰 나무들은 겨울에 옮기면 잘 산다는 말을 듣긴 했다. 하지만 두 번이나 이사를 다니며 멍들어야 할 나무들이다. 배나무는 옮기는 과정에서 중턱이 부러져 뽑아버렸다. 매실나무와 산딸나무와 모과나무, 포도나무, 능소화, 등나무도 온전하지 않아 내 살이 아팠다. 라일락과 차나무는 무더기 째 옮겼다. 꺾꽂이해서 키운 개나리는 지난봄부터 겨우 탐스러운 개나리꽃을 볼 수 있어 행복했는데 싶어 괭이를 찾아 들고 내가 직접 옮겼다. 대왕 참나무는 밑동이 너무 굵은 데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 있으니 옮길 재간이 없어 아예 밑동을 잘라 버렸다. 우리 집 정원수는 사랑과 애정을 먹고 자란 나무들이다. 남편과 내 손길이 가지 않은 나무는 없다. 어린 나무를 사다가 심어 날마다 물 주느라 호스와 물통을 들고 살았다. 만 9년을 키운 정원수다. 어디 그 뿐이랴. 나뭇잎에 맺힌 이슬 한 방울까지도 아름다웠던 기억들을 떠 올리며 나는 속삭인다. 나무들아 가식을 한 후엔 참선에 들어라. 내년 봄 땅심이 깨우면 힘차게 뿌리 뻗음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을 비우고 겨울잠을 자거라. 새로운 자리로 옮겨 줄 그날까지 알았지? 어떤 분은 어린 묘목을 사다가 다시 심으면 될 텐데. 뭐 하려고 헛일을 하느냐고 한다. 큰 나무는 옮겨 심어도 살리기가 어려운데 더구나 가식을 했다가 다시 옮긴다니 사서 고생한다는 말도 했다. 비싼 정원수라 해 봤자 몇 그루되지도 않는 것을 가지고 헛고생 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끈끈이 같은 이 정을 어찌 뗄거나. 나무도 생각한다. 사람처럼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생명의 귀함은 안다. 가꾸는 사람의 정성에 보답하는 것이 나무다. 사람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는 것이 나무다. 공기를 정화시켜 주고,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것이 나무다. 나무의 고마움을 어찌 인간의 얕은 심성으로 알 수가 있을까 마는 나는 나무에게 참 많이 미안하다. 사람 같으면 비명을 지르고 앙탈을 부리기도 하련만 거친 굴착기의 휘둘림에도 말없이 순종하는 나무를 보면서 가슴이 아리다. 나는 한 그루의 나무라도 죽일 수가 없는 심정이다. 또한 빈틈없이 펼쳐진 잔디밭이 굴착기의 바퀴에 뭉개지는 것을 보는 것도 마음 아프다. 그대로 버릴 수밖에 없는 잔디지만 키운 정성을 생각하면 다 옮겨 다시 살리고 싶다. 잔디밭을 제대로 가꾸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만한 사람은 알게다. 한 해는 잔디밭의 풀 뽑아내기가 지겨워 잔디만 살고 잡풀은 죽는 제초제를 쳤더니 주위의 정원수 잎까지 말라 비실거렸다. 그 뒤론 제초제를 치지 않는다. 들며나며 소일 삼아 풀을 뽑았다. 애써 키워 온 토종 잔디밭이 뭉개지는 것을 바라보며 내 속수무책이 안타까울 뿐이다. 마지막으로 촘촘하게 자라 집을 아담하게 감쌌던 사철나무 울타리도 파냈다. 울타리가 없어진 마당은 폐가처럼 어수선하고 집은 난달(사방이 휑하니 빈)이 되어 바람이 마구 심술을 부린다. 막아줄 울타리도 정원수도 없어졌으니 제멋대로 행패를 부리는 바람이구나 싶다. 마음이 춥다. 허름한 농가지만 사철나무 울타리와 나무들이 숨쉬고 있을 때는 그 안이 참 아담하고 운치 있었는데. 이틀 동안 굴착기 작업을 끝내고나니 남의 집 같다. “힘들고 속상해서 죽겠어.” “일은 내가 하는 데 성은 지가 다 내고 있네. 나무는 금세 자라니 너무 속상해 할 것 없다.” 남편 속이라고 편할 리 없을 텐데도 나는 또 남편 속을 긁는다. 집 옆의 못에 물도 뺐다. 축대를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황톳물이 사흘을 빠졌다. 바닥이 드러난 못 속을 두루미 몇 마리 날아와 먹이를 찾는다. 물 배미 아래 웅덩이에 붕어 떼가 옹송그리다 산짐승의 먹이가 됐다. 지난봄에 갖다 넣은 붕어 새끼가 그새 어른 붕어가 되어 있었다. 마당가에 황홀하게 피었던 봉숭아와 살사리꽃도 흔적이 없다. 꽃씨를 듬뿍 받아 놓긴 했지만 해마다 저절로 싹이 터서 여름에서 가을까지 쉬지 않고 피고 지기를 거듭하여 내 마음을 향기롭게 하던 꽃이기에 여간 아깝지 않다. 모든 것이 변해 간다. 내 얼굴에 주름 살 하나 더 늘어나듯이 세월 따라 변하는 것이 삶이라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멍드는 자연과 농심은 누가 지켜 줄 것인지. 내 삶의 터전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가식해 놓은 나무들이 한 그루도 남김없이 살아나기를 간절히 염원하면서 호스를 찾아 수도꼭지에 끼운다. 내 생전에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일이 다시없기를 바라면서 나무에게 물을 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의 흐름이 있다면 나무의 영혼과 만나 함께 사는 모습을 보여주리라. 나무들 참선에 들어 내년 봄까진 깨어나지 말기를.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면 새 터전에서 한 그루도 빠짐없이 소생하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어본다.  
64 (박래여 소설가)나의문학관 및 약력
편집자
1448 2016-05-10
1. 나의 문학관이라면 고사리 밭을 오갈 때마다 아카시아 꽃향기가 코를 찌른다. 강아지 두 마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를 따를 때마다 저 녀석들처럼 자유로운 것이 나라는 생각을 한다. 푸른 못 둑을 지날 때면 보랏빛 지칭개 꽃망울이 예쁘다고 살짝 쓰다듬어 주고, 길게 쭉쭉 뻗는 칡순은 슬쩍 옆으로 눕혀준다. 내가 가는 길을 막지 마라. 자연 속에 있을 때 나는 아무것도 부러운 것이 없는 여왕이다. 그렇다. 나는 산골 아줌마다. 작가 선생님 소리보다 고사리 집 아지매로 더 통하는 여자다. 내가 작가란 목걸이를 건 것이 199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중편소설이 당선 되면서 머리를 올렸다. 작가가 된지 오래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름 없는 작가에 불과하다. 문학의 분류표도 무시하고 시가 떠오를 때는 시를, 일상 줍기 식 수필을, 이야기를 짓고 싶을 때는 소설을 쓴다. 그러나 등단을 소설로 했으니 당연히 작가지만 아직 소설 집 한 권 묶지 못했다. 물론 소설은 해마다 서너 편은 발표한다. 주로 동인지지만 한 해도 빠진 적 없다. 시나 수필 역시 인터넷 지면을 통해, 혹은 청탁을 받고 쓴다. 가끔 나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분명한 것은 농사꾼 아낙으로 삼십 년을 산다는 거다. 또한 어떤 사람은 수필가로, 어떤 사람은 시인으로, 어떤 사람은 작가로 부른다는 거다. 농사꾼 아낙으로 사는 일과 작가로서 사는 일, 모두 나의 일이다. 글이 있어 살아지는 삶이고, 농촌에서 농사짓고 사는 일이 있어 글을 쓰는 삶이다. 나에게 문학관을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소박한 꿈이라면 평생 글을 쓰며 살다 죽을 것이고, 내 글에서 우리 동네 변천사를 읽을 수 있다는 거다. 농촌의 변화를 내 글에서 살펴볼 수 있고, 내 글에서 농촌의 진실을 볼 수 있다면 나는 한 생을 농사꾼으로, 글쟁이로 잘 살다 가는 것이리라. 거대한 문학관 운운할 필요도 없다. 일상 줍기 식이라도 내 글만이 가질 수 있는 나만의 향기가 나올 수 있다면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나는 글이 없는 삶은 생각하지 못한다. 행복하면 행복해 죽겠다고, 고단하면 고단해 죽겠다고, 힘들고 서러우면 힘들고 서럽다고 쓴다. 동네 사람들 이야기도 쓰고, 노인들 이야기에 집착을 보인다. 농촌 살이 삼십 년 동안 변한 것은 나잇살 늘어나는 외모일 뿐 내 속에 내재한 글쓰기는 멈출 수 없다. 책을 사랑하고, 글을 쓰는 순간을 아낌없이 사랑하며 사는 나는 촌부다. 다만 내가 추구하는 것은 농촌에 뿌리박고 사는 이상 농민의 시나 수필, 소설보다 농촌의 시나 수필, 소설을 쓰고자 한다는 거다. 내 글의 배경은 농촌이다. 산과 들과 바람과 숲,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줄줄 나오는 대로 적고 있다. 어려운 문자보다 누구나 읽기 쉽고 알기 쉽고 이해하는 편한 글쓰기를 지향하고 있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사랑한다. 사라져가는 토속어를 가능하면 내 글 속에서 살려놓고 싶다. 예를 들면 우리 집에 고사리 꺾어주러 오시는 할머니 중 이야기꾼이 있다. 그 할머니의 입담에는 그냥 웃음이 나온다. 글을 못 깨쳐 글을 못 읽지만 자기만의 셈법을 정확하게 하시는 어른이다. 예를 들면 노후 연금을 노리 연금이라 하신다. ‘우리 동네는 노리 연금 받아 묵고 사는 영감 할마이만 짜드라 있다 아이가. 노리가 빽빽 울어 샀는 걸 보모 저거 연금 타 묵는다꼬 저라까 싶다 카이.’ 캐액 캐액 앞뒤 산 울고 다니는 노루는 노루가 아니라 대부분 고라니다. 고라니는 아카시아 꽃이 피는 이맘때면 짝짓기를 하기 위해 짝을 부르는 소리다. 그 노루가 울면 노후 연금이 노리 연금으로 둔갑하는 것이 어찌 재밌지 않는가. 거창하게 나의 문학관 운운할 생각은 없다. 나는 그저 평범한 촌부고, 틈만 나면 아무 책이나 손에 잡히는 대로 읽기 시작하는 여자고, 틈만 나면 글을 쓰는 여자다. 시나 수필, 소설, 세 분야를 내 맘대로 오간다. 글이 생활이고, 생활이 글인 삶을 살고 있다. 돈도 안 되는 글이지만 평생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해 글쓰기는 나의 천형이란 말을 가끔 한다. 한 때 나는 지인으로부터 우리 동네 천연기념물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천연기념물, 괜찮은 예명 아닌가. 하지만 나는 천연기념물이 아니다. 올해 이순이 된 나는 그냥 평범한 촌부다. 이순이 되면 새로운 인생관이 열린다고 한다. 나는 거창한 깨달음 같은 것을 바란 적도 없다. 그저 내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이다. 어떤 욕망보다 일상의 따뜻함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열악하고 가난한 소농의 부모 밑에서 바르게 잘 자라준 내 아이들이 자랑스러운 평범한 어미이자 평범한 촌부다. 그리고 이야기를 짓고, 책을 사랑하고, 글을 쓰는 재능을 주신 부모님께 늘 고마워하는. 2. 약력 산청군 생 MBC 전원생활체험수기 대상 수상 농민신문 신춘문예 중편소설 당선 제8회 여수해양문학상 소설 대상 수상 현대시문학 시 등단 수필집 <푸름살이>  
63 (박일아 시인)자선 대표작 10편 file
편집자
1654 2016-04-10
마 디 아이는 아플 때마다 더욱 튼튼히 자라나고 대나무는 마디가 있어 홀로 큰 키를 단단히 세운다 나는 오늘 지금까지 살아온 방문을 닫고 못질을 하고 열심히 마디를 만들어 새방을 꾸밀 준비를 한다 내 여생을 더욱 튼튼히 버티고 살아가기 위해 속을 완전히 비우고 지금은 마디를 만들고 있다 자꾸만 틈새로 파고 들어오는 욕심에다 손바닥에 옹이가 박히도록 못질을 하고 있다 하루치의 무게 해가 서산너머 퇴근하면 범어 산과 신천을 오가며 먹이를 나르던 새들 고단한 날개를 접고 막 노동자가 일을 끝내는 시각 어두움이 찾아오는 순간 하루치의 무게를 품고 가는 저녁놀 화장 가난한 유학생의 아내 세 아이의 엄마 화장은 꿈도 못 꾸고 매일 곱게 단장하고 출근하는 이웃집 여인이 부럽던 선망의 눈망울 어느덧 주름진 모습 쳐진 피부 화장으로 갈무리하고 아닌 척 하면서 피정을 갔지 피정* 때 S대학 교수가 자신이 소녀가장으로 지내던 때를 생각하며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평생 화장을 안 하기로 결심했다면서 맨 얼굴로 강론 하는데 화장한 얼굴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지 * 피정; 가톨릭교회에서 일상생활을 떠나서 정신을 고요하게 하는 깊은 기도 시간 나도 나무 할래 초등학교 삼학년 딸 아이 아파 서울대 병원 가던 날 병원 가로수로 우람하게 서 있는 은행나무를 보고 엄마, 이 나무 몇 살이야 글쎄 몇 백 년은 자라야 이정도 굵지 나보다 오래 살았네 부럽다, 나무들은 오래 살아 좋겠다 발걸음을 옮기다가 또 한 아름 넘어 보이는 튼튼한 느티나무를 보더니 얘는 몇 살이야 못되어도 이백년은 되겠지 그럼 엄마보다 더 많이 살았네 나도 나무 할래 엄마도 나무 할래 전봇대 전봇대마다 서민들이 방, 방, 방이라 써 붙인 방이 전화번호와 함께 펄럭 인다 세입자들과 맞아 떨어진 소개비 절약 작전 세입자들은 방을 보고 房을 求한다 전봇대에 광고지 일당 받는 아줌마들 열심히 뜯어내면 그 자리에 또 붙이고 자리가 없을 때는 남의 광고위에도 붙인다 전봇대에 얽힌 전깃줄보다 더 많은 사연들 각자의 옷깃에 숨기고 사는 다세대 주택의 세입자 반 지하 홀로 사는 할머니의 잘 키운 오남매 맏아들 외국으로 이민가고 아들 딸 다 서울 부산 객지로 떠나가 영감이 잠든 고향을 못 떠나 혼자 남았다 단칸방에 사는 모녀는 마흔이 넘은 딸 근무력증으로 누워만 지내고 할머니가 리어카에 폐지 주워 모아 연명 한다 옥탑방 사는 영수네 가출한 엄마대신 중학교 일학년 누나가 소녀가장이다 앙상한 가지에 나뭇잎 하나, 둘 남아 달랑거려도 전봇대는 빈틈이 없고 수난의 끝을 알 수 없다 출석 봄 반 담임선생이 찾아와 출석을 부르면 예, 하고 앞산에 꽃들이 차례로 개나리는 노랗게 모습을 드러내고 진달래는 분홍빛으로, 제비꽃은 보라색을 각자 자기 색깔로 꽃을 피워 대답 한다 키가 큰 꽃들은 온통 초록 잎으로 몸을 숨기다 이름 부르면 부끄러운 듯 꽃송이를 흔들어 대답 한다 연보라 오동나무, 새하얀 아카시, 붉은 백일홍 이름 모르는 꽃들도 한번은 세상에 태어난 보람 꽃 피운다 앞산에 이렇게 많은 꽃들이 살고 있는 줄 출석 부르기 전에는 몰랐다. 한 덩어리 푸른 산으로 잘 조화를 이루어 각자 목소리를 죽이고 서로 양보하는 자연 햇살과 나뭇잎은 술래잡기 한다 바람 따라 이리저리 잎을 뒤집어 얼굴 숨기고 누군가 이름을 불러 줄 때 어떤 색깔로 답할지 자기만의 색을 만드느라 무아지경이다 풀꽃 마음을 낮춘 만큼 몸도 바닥에 바싹 붙였지 들판이든 길거리든 인도 틈바구니에든 작은 흙먼지만 있어도 자리를 잡았지 잎은 톱니바퀴 무늬로 나만의 멋을 부렸지 샛노란 깃발 높이 올렸지 나 여기 살아 있다고 무심한 발길에 수없이 밟혔지 어느 봄날 힘껏 밀어올린 공하나 바람 부는 날 하늘 높이 날려 보냈지 불꽃 축포 터뜨리며 포물선으로 내려앉은 관모 * 낙태아, 복제인간, 줄기세포 우리네 양심의 굳은살 제거수술은 언제나 가능한지 풀꽃이 우리를 보고 웃지 * 관모 ; 민들레꽃 씨앗 인력 시장 안동시 태화동 오거리 인력시장 앞 페인트 빈 통에 헌 나무토막들 활기차게 타오르는 불꽃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 불꽃 속에 새 설계도 너울대고 하얀 안개 속에서 집들이 얼굴을 내밀면 승합차 발 앞에 멈춘다 타오르던 나무토막이 숨죽이고 한사람 씩 선택되어 일터로 떠나면 불씨마저 사그라지고 고개 숙인 민 씨 노인 혼자남아 어제 마냥 헛기침도 해보고 발바닥으로 인도 블록 툭툭 차본다 태양이 노인의 그림자를 키우며 시간을 재촉하니 오늘도 이대로 끝나고 마는지 성경의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 에서 나오듯 해질녘에 나타나 하루 품삯을 쳐 줄 마음씨 착한 농장 주인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민 씨 생각은 하루 종일 그의 발목을 잡고 서 있다 빈손 강가에 앉아 두 손 모아 물을 담아 보았다 한모금도 남김없이 다 빠져 나갔다 반나절을 그러고 앉았다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모래를 움켜잡았다 손가락 틈새로 솔 솔 솔 다 빠져 나갔다 반나절이 또 그렇게 지나갔다 하늘에 해는 온 종일을 붙잡으러 쫓아다녀도 서산으로 넘어갔다 붙잡고 또 잡으려 해도 어머니는 떠나 가버렸다 영원한 곳으로 이사 새 아파트로 이사 온지 몇 년째 아직도 같은 엘리베이터 사용하는 주민들 서로 잘 모르고 대충 인사하고 혼자 저녁놀이 물들 때 정원을 산책하는 재미가 솔솔 하다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나무와 꽃들이 반겨준다 노란색 민들레 보라색 제비꽃 분홍색 매화 등 뾰족이 돋아나는 새싹도 꽃 인양 사랑스럽다 가끔 지난겨울 추위와 봄 가뭄을 견디지 못하고 말라 죽은 마로니에와 소나무 나란히 서 있어도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것들만 말라있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이주해온 이방인들 더러는 일터에서 부상입고 쫓겨나고 불법체류 자 되어 숨어살며 전전긍긍 하루를 연명하던 메마른 얼굴 자연도 사람도 힘든 이주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