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사내



사내는 한쪽 다리가 짧다

주지 스님만 있는 성 불사의 아침은 시작되고

목탁 소리는 쟁쟁하게 퍼져

아슬아슬 동네를 깨우는 동안

흰 고무신 신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면

사람들이 그의 등뒤에서 소리를 지른다

바보, 거지, 딸기코, 다리 병신

무엇 하나 성한 것이 없는데

한번도 투레질하지 않고 바보같이 웃기만 한다

실족한 다리를 하늘에 널다

노란 햇살에 기우뚱하는 사내

아이들이 까준 땅콩 캬라멜 같은 웃음을 만지작거린다

생살이 미어지도록 눌러 붙은 상처에서

종주먹만한 멧새 한 마리 운다

섶다리 위를 걷는 나그네처럼

자신의 그림자를 굽어보며 아픈 다리를 지운다

활기차고 다부진 다리가 지운 다리를 거둔다

 

 

뻥튀기에 대한 생각

 

1톤 트럭에 뻥과자 틀은 똑같은데 주인만 바뀌었다

생선가시같이 삐죽한 사람이 주인이란다

첫날은 그런대로 맛이 괜찮았는데

가면 갈수록 뻥튀기의 크기가 줄고

금방 튀겨낸 따끈한 새맛도 덜하더니

요모조모 손장난을 익혔는지

뻥튀기의 넉넉한 봉지까지 홀쭉하다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마다 않는 주인 양반

수입쌀도 국산쌀로 2.5초만에 곧잘 튀겨내

생과자처럼 바삭하게 만들어 팔기도 하고

글로벌 시대에 발 맞춰

뻥튀기의 질보다 양에 더욱 신경 쓴다

작은 것은 더 크게 큰 것은 더 크게

주머니가 더 빨리 부풀어 오르게

뻥튀기 기계를 돌린다

자동차 주식 부동산 채권

자신의 숨소리 빼고 다 튀겨낸다

뻥이요!

일년 내내 허기가 가시지 않는

아프리카 기근 같은 소리

알맹이 빠진 껍데기도 훌륭한 뻥이 된다

 

 

 

고래

트럭에서 고래가 내려온다

남태평양을 향해 울었는지

눈 밑에 마스카라가 번져

새끼들이 떠난 자궁까지 검붉다

몸 전체를 꽁꽁 묶은 바코드 자국

사람들이 몰려오고 새벽 종소리가 들린다

심해로 줄줄 흐르던 혈관이

한 순간 파편처럼 튀어 분수가 된다

어판장 위로 햇빛이 쏟아져

고래의 양 지느러미가

곱게 돋아난 무지개 빛 날개처럼 보인다

잠시 눈물 속을 유영하는 추억이라도 떠올렸던가

고래의 몸이 환하게 열리고 캄캄한 바닷물이

천둥 소리를 내며 비루한 잠을 깨운다

죽음을 지나친 시간이 수초처럼 흔들린다

껍질 까진 상처는 좋아라 뛰어다니고

번식이 끝난 고래는

몇 안 남은 공기를 정성껏 마시며

짧은 제 생을 묵념하고 있다

 

 

내장 도서관

 

비만에 걸린 공공 도서관

책과 책장 사이를 충격요법으로 허물자

문법과 어순들이 부르르 떤다

 

읽히지 않는 글자가 체지방처럼 쌓이고

폭식증에 걸린 위장이

영양가 없는 유행어를 쉴틈없이 받아먹는다

 

순대속 밥알처럼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제목에

반응하는 자본주의 대장은 항상 베스트셀러다

 

오늘도 간은 활자 옆에 쪼그리고 앉아

소원을 빌듯 침묵의 권장도서가 될때

소장은 시시껄렁한 음담패설을 거침없이 분비한다

 

 

마지막 조합인 직장과 항문마다

온갖 변명을 늘어놓는 동서고금

배설이 안된 책들로 오랜 변비를 앓는 도서관

그리운 공복에 자꾸 트림을 한다

 

 

등 가족

 

 

얇아진 아버지의 등과

한쪽으로 기우뚱하는 어머니 등이 저녁을 먹는다

집안 대소사를 짊어진 오빠의 등이

아버지 어머니 등을 보고 별일 없냐고 묻는다

사춘기 조카의 여드름 송송 박힌 등이

학원가야 된다고 보챈다

큰 올케 등은 아가씨처럼 바깥에서 기다린다

아버지 어머니 등이 오빠 등에게

밥 먹었냐고 묻는다

오빠 등은 약속 있다고 말한다

등들은 바쁜데 얼른 가라고 떠민다

아버지 등이 남동생에게 전화를 건다

동생이 아버지 쪽으로 등을 돌리며

오늘은 장사가 안 된다고 말한다

아버지와 동생은 서로의 등을 토닥거린다

혈액순환이 안 되는 어머니의 등이 자주 끙끙 앓아도

아버지 등은 눈치를 못 챈다

아버지를 유독 닮은 나는

어머니 등이 부를 때마다

불편하고 차가운 어머니 등을 보고 오기 일쑤다

철이 들고 지금까지 등 돌리는게 편한 나는

등이 키워낸 가풍일지도 모른다

 

 

마흔 증후군

 

중심에 가보지도 못하고 서성이다 마흔이 되었다

바야흐로 좋아하는 일도 밥벌이가 된 마흔

 

길 모퉁이를 돌았을 때

새털처럼 가벼웠던 몸이

이제는 쇠뭉치처럼 무거워졌다

 

그대 생각하면

마음이 싸하니 청량해지다가도

우리 아이에게 불량 장난감 총을 판매한

학원 문구 주인과는 안면 몰수하고 대들며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건다

 

살아온 시간이 콩인지 된장인지

거친 백파가 일어나는 바다를 보면

말없이 뛰어들고 싶다가도

금새 현실로 돌아와 안주하는

염화시중 미소가 통하는 마흔이 좋다

 

 

외우는 일

 

매일 당신 얼굴을 봐야 하는 나는

언젠가부터 당신을 외우기 시작했다네

말 안 듣는 아이들에게 불같이 화내는

당신 성격도 외우고

품을 줄이지 못하는 내 욕심도 외우고

앞차를 추월할 때 긴장하는 당신 표정도 외우고

저 사람은 원래 저렇게 사는 사람이야’

주변 사람들과 회사 동료들이

당신에게 자주 하는 말도 외우고

당신이 그들에게 했던 말도 외운다네

자꾸 외우다 보니 정월 찬바람에

된신음하는 어미의 몸사정도 외워지고

잎이 먼저 피고 꽃이 뒤를 따르는

후박나무의 넓이도 외워지고

겨우내 언 땅에서 씨눈을 갈무리하는

새싹의 몸부림도 외워지고

중심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절망도 저절로 외워진다네

구구단 외우듯 어려운 문법 외우듯

달달 외우다 보니 이젠 이해 못할 일도 없다네

 

이데올로기

 

아침 신문을 보면

학연,지연,내편.니편

변절자,배신자,빨갱이,수구꼴통

주류,비주류만 있고 서민은 없다

 

진짜 서민은 언제쯤 제대로 대접 받나

달이 지고 해가 뜨면

내일은 오늘이 된다

 

 

죄지은 자 떳떳하고

죄짓지 않는 자

두부처럼 단숨에 으깨진다

 

 

없는 것이 너무 많은 하늘

어디에도 구원은 없다

 

거머쥘 가방 끈 하나 없는 자유

없는 것이 차라리 구원이고 이데올로기다

 

 

현대 약국

명품 브랜드로 차이의 소비를 과시하는 초등 학생

의사 아들에 걸 맞는 며느리를 보려고

다도를 배우고 난을 치는 103호 어머니

친구가 고급 아파트를 분양 받았다고 자랑합니다

보기엔 멀쩡한 사람들이 현대 약국에 약을 사러 갑니다

그들의 병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모르는 것에 있습니다

온 몸이 축축 늘어지고 잠이 쏟아지고

남이 잘되는걸 볼라치면 자꾸 불안합니다

동네에서 내 노라 하는 사람들만 드나드는 현대 약국

입구만 들어서도 그들의 얼굴이 한껏 산다지요

약국 안에는 여럿 사람 앞에서 떵떵거리며 먹는 약

끝없이 배를 채워도 언제나 날씬해서

뒷모습까지 감탄사가 나오는 약

자신을 조각 내 팔지 않아도 절 때 밀리지 않는 강력한 약을

우리 나라 유명 대학을 나온 약사가 따로 지어줍니다

턱턱 숨막히는 세끼 밥이 내려가지 않는 날

나는 그들만 먹는 흥청망청 소화제를 사러 현대 약국에 갑니다

 

 

숨은꽃

 

착한 여인은 숨겨진 보물이다

그런 여인을 발견한 사람은 자랑하지 않는게 좋을 것이다

-라로시푸코

 

 

오늘은 하루 종일 적막한 빗소리를 듣다가

이내 쓸쓸해져서 술을 마셨다

 

한때 지나가는 비야 우산으로 가리겠지만

오래 젖을 것 같은 마음은

한번 피면 영원히 지지 않는 소금꽃 같은지라

갸륵한 시간이 그저 그리울 따름이다

 

청컨데 그대여

내일의 태양은 오늘의 태양이 아니기에

뜨거운 여름 당신을 향해 부르는 노래는

파도처럼 왔다가 되돌아가고

 

 

무턱대고 생을 살아가는 동안

구비구비 저릿한 시간속에 놓여있을

천혜의 비경들은 잔혹하리만치 아름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