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솔사 누드

 

 

다솔사 앞마당에 불에 탄 느티나무 한 오백 년 살고 있다

죽음의 화평은 누드임을 몸소 설파 중이다

살아온 습성의 자리일까

움푹 파진 아랫도리, 낯선 마음 붙잡아 세운다

이왕지사 컴컴한 그 품속으로 한 사람 또 한 사람 들어가 키득거려보는데

그 순간만은 그들 오롯이 나무이지 않겠는가

단란한 관 속의 한 때랄까

죽음도 나이가 되는 느티나무, 이래저래 손을 타긴 탔나보다

수척하다

 

다시 찾은 다솔사

검은 누드의 아랫도리에 밥그릇만한 목불상 독방 차지다

그 품에 들지 못한 마음 서운해져서는

깊고 웅숭한 뒷간에 오줌발 갈기는데

해지는 오후 잠시 왁자해졌다

하늘 안감으로 짜놓은 추억의 사닥다리 다솔사 누드

천리 밖 그대이다

 

 

 

 

가시 눈물

 

 

탱자나무 눈은

가시다

 

 

한 때 저 눈이 피어내던 소란한 흰 꽃

그 꽃자리에 매단

단란한 등

등 바람

 

풀 수 없는 경계의 눈 젖고 있다

난무한 숲

속속들이 부풀리고 있다

잿빛 허공에 맺혀

그렁대는 생각

 

어제 혹은 내일

그대에게 걸린

시린 내 맘처럼

 

 

꿈의 판화

 

 

허공이에요 토실한

나무가 주먹만한 꽃을 내달아요

연분홍 꽃 위 노란 꽃 사이

별들이 툭툭 불거져요

나무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서

꽃을 입에 문 물고기가 헤엄쳐 와요

집 한 채 오도카니 나뭇가지에 돋았네요

연둣빛 창 금세

환해요 지붕 아래 방 한 칸

그 집의 전부예요

뽀글뽀글 이야기가 끓어요

별들이 체위를 바꿀 때마다 다섯 꼭짓점을 펴며

솜사탕구름이 태어나요

몽글몽글

대문이 사라졌어요 이제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는,

 

아주 정교한 당신이라는 나라예요

 

 

 

나를 관람하다

 

시안갤러리 뒤뜰 대숲 아래

댕강 머리 없는 맨 몸의 석상들

나란히 앉아 고민 중이다

 

 

볼록한 아랫배 가운데로 모은 두 발

발가락이 일곱이다

세운 무릎에 왼손 올려두고

늘어뜨린 오른팔

종아리 근처에서 스리슬쩍 손을 버렸다

B컵 왼쪽 가슴 탱글탱글한데

흉터조차 남지 않은 오른쪽 가슴은?

아, 저들은 지금

가슴으로 생각한다

똥배로 생각한다

왼손으로 생각한다

일곱 발가락으로 생각한다

 

버젓이 머리 버리고 생각 깊다

詩!

 

 

 

저수지 눈

 

 

갈대 곁에 선다

출렁출렁 구름이 그리는 네 얼굴

막막한 그리움

돋움체로 쓰는

노을

대지의 외눈 붉게

운다 어둑

어둑 분별하지 못하도록

 

 

둑길 함께 도는 하루살이 떼

둥글게 춤을 추며 걸음을 잰다

팔 훠이 휘저으면

고만큼 멀어졌다간 황급히 따라붙는

가벼운 집착

무리를 잃은 한 마리

안하무인 왼쪽 눈에 뛰어든다

그렁그렁 내가 운다

 

나의 맘 잠긴

외눈

저도 이토록 아팠겠다

 

죽어서 태어났다

 

한 때 울울창창한 숲인 적 있다

우여곡절 없는 삶 있으랴만

싱싱한 몸 문득 잘리어

속속들이 벗기어 패이어

허공에 사육하며

木魚라 한다

 

생전 만난 적 있었던가

내장으로 들어왔던 바람 캄캄히 쉬어가는 밤은

망망대해 헤엄쳐

너에게 간다

나는

 

 

 

기차는 올까

 

가을,

간이역

구석진 곳부터 싸늘히 식고 있다

 

고개 돌린 해바라기가 건너다보는 들녘

하롱하롱 고추잠자리 떼

액자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직한 담장에 기대어선

개망초 시든 이마 쓰다듬고 있다

 

기차는 좀처럼 오지 않고

 

시선 자주 역사 밖 철로를 서성이는 여자

비스듬히 길어진 그림자

흔들어 깨우는 스피커의 비음

‘새마을호 열차를 먼저 보내는 관계로 무궁화호 열차가 연착하겠음’을

알리는 사이 저무는 들녘

빤한 길속으로 휘어진 햇살

꽁무니 말아 쥐며 달아나고 있다

언제쯤 기차는 여자를 만나러올까

 

 

 

막무가내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나팔꽃

푸른 눈으로 잎 내밀고 발 만들어내고도

일어설 생각은 없다

나팔꽃의 중심은 허공에 있다

의뭉스런 몸짓으로 기어오르면서 기어올라

칭칭 감아댄다

나무이든 담장이든 녹슨 갈비뼈이든

무작정 밀고 올라간다

갈 길 멀기라도 하다는 듯

하늘 맞닿는 그곳 제 집이란 듯

 

길, 막힌 곳이 길이다

막무가내

벙어리 그대

 

 

 

소리에 젖다

 

 

오지게도 내린다

 

삼월 한밤 내내

두터운 침묵 두드리는

푸른 빗소리

안으로 동여맨 섶 풀어내어

차박차박 적시고 있다

부풀리고 있다

 

꿈속까지 따라와

하염없이 수런대는 댓잎 같은

그대처럼

 

지금 지상은

제 소리에 겨워 우는

타악기이다

 

 

 

가을 포도밭

 

이젠, 다 주었구나

 

 

황갈색 늑골

듬․성․듬․성

남은 늦포도

 

아름다운 주검으로 매달렸구나

 

핏빛 그리움 캄캄히 저무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