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큰 삼각형

 

 

 

긴 골목을 두고

삼각형처럼 꼭짓점을 마주보고 사는 할매 셋

일찍이 남편을 보내고 서로 축을 이루고 산다

해도 지지 않은 골목에 가로등 미리 불을 밝히고

단출한 저녁 식사

집에 불을 켜지도 않고

절뚝절뚝 민철이네 집을 나선다

하룻밤 딸네 갔다 온다더니 왜 이틀이나 자고 와여

나무라듯 뱉는 소리에 금순네

막걸리 한 병을 들고 나간다

기울이는 술 냄새에 순호네 뒷짐을 지고 온다

긴 하루 맛 좋은 안주가 되고

발그레 기울어가는 그림자

슬며시 합을 맞춘다

 

이따 배추밭에 약 좀 치세




 

안개 잦은 지역

 

 

 

내가 사는 곳은

수시로 안개가 몰려온다

음산한 기운을 불러 아득하게 정신을 홀리는

여우 누이의 꼬리 같은

앞날이 늘 안개 같다던 친구는

열아홉에 살림을 차렸고

서른아홉에 혼자 돌아왔다

그의 어머니 낙동강 나룻배를 타고 떠난

그 안갯속으로

 

제법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으나

차가운 기운만 가져본 친구는

부푸는 돈이 몰고 오는 뜨거운 기운에

아내를 잃어버렸다

흔히 있는 일이지 안개가 내리는 곳은

둥둥 떠다니는 출구가 없는 이야기들

 

맑은 날 울 일이 많아

차를 타고 길을 나서면

누군가 울다 간 물방울이 길을 잃고 헤매는 중

 

속도를 줄이고

전방을 주시할 것




 

진달래장의사                   

 

 

 

영월 읍내 공영주차장 맞은편

그곳에 있었다

회색 콘크리트 외벽에서

막 분홍색 꽃이 무더기로 피어날 듯한 간판을 단

진달래장의사, 웃음이 난다

저 여린 꽃잎 같은 죽음이라니

오물오물 씹어 먹으면 시큼털털한 맛을 가진 죽음이라니

감히 음침함이나 두려움 따위

비집고 들어설 틈없는 이름

연분홍 꽃잎을 날리며 가는 그곳

어느 누가 열반에 들지 못하겠는가

한낮 영월 읍내 먹을 것 찾아 빙빙 돌다

팡 터진 꽃무더기 구경하고 온다  




 

나는 발바닥에 가시를 품고 산다



   어디서 찔렸는지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아프다 바늘로 발바닥을 조심스럽게 후벼보지만 도무지 보이지가 않는다 후벼 팔수록 상처는 커져갈 뿐이다 더 깊숙이 숨어서 걸을 때마다 온몸 가시 돋게 한다 핏물이 고여 더는 손쓸 수가 없다

 

  그래 처음 상처 받았을 때 분노로 밤을 새우지 시간이 약이라고 네 살이 내 살인 양 내 살이 네 살인 양 몇 날 지내다 보면 소름 끼치던 고통도 참을 수 없는 가려움 같기도 하고 그렇게 발바닥 한켠이 단단해지더라고 언제 그랬냐는 듯 살다가 쭈뼛쭈뼛 성질 돋는 일 생길 때마다 그래 내 안에도 가시가 있다고 조심하라고 발길질 한번 할 수 있게




 

 

개구멍

 

 

 

이끼 낀 담에

 

쩍 금이 가더니

 

주먹만한 구멍이 생겼다

 

개 한 마리가 구멍을 파

 

들락거린다

 

금계줄 같던 담

 

스스로 문이 되었다

 

느슨해진 철조망이나 허물어진 담

 

개구멍은 늘 지름길이다

 

이제 개는 구멍에서 잠을 자면서

 

금계가 사라진,

 

헐거운 시간을 즐기고 있다



 

 

탱자나무

 

 

 

촘촘하게 가시를 품고

지나가는 바람도 걸러낼 것처럼

빈틈도 없어 보이는 탱자나무 속

참새떼가 날아든다

그렇게 독하게 들이밀던 가시는 다 어디가고

저 느슨함이라니

제 집인 듯 폴랑거리며 날아다니는 저 날개 좀 봐

짹짹거리는 소리 가시 끝에 매달고

감히 손도 뻗지 못하게 감싸안는다

아무도 도망가지 못하게 독을 품은

벽인가 했더니

저렇게 쉴 곳 많은 빈 곳 투성이라니




 

 

 

넝쿨

     

 

 

어머니 가꾸시는 텃밭은 넝쿨 아닌 것이 없다

 

호박, 수세미, , 울양대

행여 허물어진 속살이 보일까

서로 덮어주면서

천둥이라도 치면 번개라도 치면

서로 몸을 비비며

한고비 넘고

쉬이 달래지지 않는 마음이라도 있으면

넝쿨넝쿨 담이라도 넘어가

맺히는 것 없이

걸리는 것도 없이

술술 풀어내는 인생

 

어머니 텃밭은

풀어보면 한 알 한 알 목 메이지 않는 것이 없다




 

 

눈 깜빡하는 그 사이                               

 

 

 

느닷없이 재채기를 하였고

엉겁결에 뛰어든 노루가 부딪치고

진정되지 못한 마음은 커피를 쏟았다

화끈거리는 살갗이 곪아

걸을 때마다 불쑥 욕이 튀어나와

욕먹은 돌멩이가

지나가던 사람의 가슴을 치고

걸음은 삐딱해졌다

자꾸만 발에 걸려 나무가 넘어지고

느닷없이 아파트가 무너졌다

그래도 하늘 높이 비행기가 날았고

뉘 집 개는 허공을 향해 짖었다

이 모든 게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봄을 잊은 꽃이

깜빡깜빡 기억을 놓고

꽃가루 날리는데




 

 

얼룩지다

 

 

안방 문 뒤 누런 벽지에 점점이 말라붙은 아버지 납신다

 

먹지도 않고 팽개친 김칫국물에서

다시 살아보자고 내민 한약국물에서

젖은 눈 닦으시고

퉁퉁 불은 말기 간도 다 떼어내시고

 

추녀 날렵한 기와집 썩어 문드러지지도 않는 기둥은

아버지 대처로 향한 꿈을 내리찍어

고학력이란 낙인을 달고 평생 방앗간 주인으로 주저앉혔다

꿈을 삼킨 발동기 소리는

동네에서 제일 큰 고함소리를 가지게 했고

콸콸 쏟아지는 쌀알들은  

불쑥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봉놋방 화투장에 팔공산 꿈을 쳐 넣기도 하고

한 손이면 후려칠 수 있던 밥상에 화풀이를 해대며

어느 해 둑이 터진 논둑에 벌건 눈물마저 흘러넘쳐

다섯 병 막걸리에도 들을 수 없었던 아름다운 꿈

그 텅 빈 공간은 몹쓸 암덩이가 채워지고

너무도 어이없게

마지막 밥상을 꽃송이 만발한 벽지가 쳐 먹고

몇 점 남긴 얼룩,

 

납작하게 말라붙어 왜 슬픈 얘기만 하는지  

얼룩진 이야기는 닦아지지도 않는다




 

납작한 풍경

 

 

 

  며칠 내가 집에 없응께 집 터서리에 풀이 천지라 저것들은 잘 뽑히지도 안해여 뽑아도 뿌리에 흙이 타박하게 붙어서 잘 죽지도 안 한데이

 

  채울 것 없던 헛간을 밀어내고 만든 텃밭

  어머니 질긴 풀을 뽑으신다

  저것들도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게다

  못 쓴다고 눈에 들지도 못하는 것들

  질기게 살아야 씨라도 뿌리는 걸

  되도록 납작하게 엎드려

  콘크리트 담이라도 숨구멍이 있는 곳이면 뿌리를 내려야 하는 것을

  봄날 따신 밥 위에 얹히지도 못한 독한 풀

  납작하게 눌러 붙어 잘 잡히지도 않는 것을

  한 줌씩 뜯다가 후벼 파다가

  더러 뽑히기도 하다가

  주절주절 할 말이 많아진다

  끝끝내 고분고분하지 않는 몇은  

  땅을 움켜쥐고 멍울멍울 자란다

 

  그래도 저것들도 희꾸무리한 꽃이 핀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