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볏잎으로 만든 산실 속, 염낭거미가 힘겨운 산통을 겪은 후 갓 태어난 맑은 새끼들은 어미 등에 진드기같이 달라붙어 남김없이 진액을 빨아 먹는다 외갓집 부엌에서 유난히 큰 아기 낳느라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랐던 엄마가 김장을 담그신다 나는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밥을 먹는다 어미는 배고픈 새끼들에게 제 몸을 선뜻 내어준다 새끼들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가벼워진다 어미가 가벼워지는 만큼 새끼들은 조금씩 무거워진다 이제 예순의 엄마는 좌골신경통 앓는 다리 연신 어루만진다 나는 자꾸만 살이 찐다

  

 

 

캐빙막장

 

 

 

그는 병방, 마지막 채탄광부

이슥한 밤 별 보고 집을 나와

지하 수백 미터 캄캄한 막장에서

쥐를 벗 삼아 석탄을 캤다

 

칠면조 같은 마누라

철마다 옷 맞춰 입고 모양내더니

막장에서 들숨날숨 나눠 쉬던 친구와 배가 맞아

올망졸망 자식 넷 내팽개치고

가산 탈탈 털어 야반도주하던 날도

작은 돌멩이 바윗돌 되는 막장에서

갱내분진 마시며 석탄을 캤다

 

가슴 무너진 아들 위해 백발노모

밥해놓고 이불 깔아놓고

무나니골 소풍 가는 손자손녀 따라나선 날

석탄 더미에 하초가 깔려

나는 살아야 해 나는 절대 죽으면 안돼

울부짖던 그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캐빙막장이 되어버렸다

 

 

  

 

 

광산촌

 

 

 

  사북읍 정암광업소 눈만 번들번들 허연 이 드러낸 채 탄가루 뒤집어쓴 광부들이 곡괭이 메고 산에서 내려오면 타지에서 갓 시집온 새댁, 군인들이 온다 하였지요 그럼 옆집 아주머니 웃으시며 기다려봐 자네 집으로도 하나 갈 거야 했지요 여자들은 늘 조심조심 다녔지요 잘못하여 출근하는 광부 앞질러 가면 성질 불칼 같은 사람 안방에 드러누워 일당 달라 생떼 부릴지 모르거든요 뉘 집 아저씨 잠 깰까 집에서건 밖에서건 아이들도 조용했지요 까마귀 울거나 흉몽을 꾸면 출근을 삼갔지요 청색홍색 보자기에 도시락 싸고 밥주걱도 네 번은 뜨지 않았지요 매사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사고는 늘 있었지요 잊을 만하면 울며 떠나는 이 있었지요 모든 길은 검은 길, 흑빛이었지요

 

 

 

문디 가시나

 

 

 

희디흰 빨래를 널면

눈결에 석탄 알갱이 묻어나는 탄광촌

사택의 공동우물은 얼음 동굴 같아

학교 가는 길은 허리만큼 눈이 쌓였다

그해 아이들은 곧잘 무언가를 잃어버렸고

그때마다 교무실로 불려가던

맘 둘 곳 없어 시퍼렇게 멍든 가시나

엄니, 아부지가 네 번째 장가를 간대요

천더기 문디 가시나 눈물은

제 엄니 무덤가 돌아 놓여진 참꽃 위로

방울방울 떨어졌다

 

꽃잎 떨어지고 살 에는 참꽃 밭에

아서라 아서라 참꽃 밭에 돌아다니다간 문디한테 잡혀간데이

살천스런 바람이 홰를 치며 울었다

참꽃이 피려면 아직 멀었고

빨래 빨던 손이 뿔그죽죽 아렸던 1981, 겨울

바람도 길을 잃었다

 

 

 

 

밥줄

 

 

 

  가로수 활주로처럼 줄지어 선 강원랜드 가는 길 잭팟을 꿈꾸다 주저앉은 사람들 길에 잠들어 어쩌다 수중에 몇 푼 날삯으로 거머쥐는 날이면 취한 듯 어김없이 불야성으로 감겨들어 간다

 

  남편 잡으러 왔던 아내도 부나비처럼 따라 들어가 옆에 눕고

 

  카지노 문이 열리기만 목 빠지게 기다리는 읍내 장사치들 시선은 모두 한 방향

 

  녹슨 시간, 동공을 가득 메웠던 검은 길도 가뭇없고 깊은 땅속 길고 어둔 갱도 사람마저 검어져 분진 묻은 밥숟가락 밀어 넣던 검붉은 입술 광부도 이제 없는데

 

  칙칙한 벽돌 어깨걸이로 버티고 있는 건물 쪽에서 맞은편 한곳으로 모아진 질긴 거미줄

 

 

 

 

 

호사도요

 

 

 

사내로 태어나 새끼 낳고 살아는 봐야지

배운 것 없는 촌놈 장돌뱅이로 트럭 몰고 다녀도

낫낫한 가슴에 얼굴 묻고 살어는 봐야지

 

내 낳았으니 키우는 건 니 몫이라고

젖도 물리지 않고 기저귀 한번 갈아주지 않고

기분 따라 치장하고 내키는 대로 둥지 비우는

아내란 여자 관심은 늘 밖이었다

 

코롱코롱 친정 나들이

어린것은 두고 탈래탈래 돌아와

내 원하는 것 주면 데려오겠다고

사내는 몇 날 며칠 낯선 나라 새끼 찾아 헤매고

 

돈 제일 중한 여자 쥐여줄 만치 쥐여주고서야

어린것은 아비 품에 자란다

 

암컷이 호사를 누려 이름 붙여진

호사도요, 어쩔 수 없이 닮는다

강마른 가슴에 길 잃은 사내

눈 밑이 누렇다

 

바람 숭숭 접시 같은 둥지, 그래도

청청 하늘 담은 맑고 까만 눈동자

사내는 아비라서 웃는다

 

 

 

 

 

만항

 

 

 

  가는 대발 ㄷ자 지붕 너덜너덜 널빤지 덧대고 군데군데 돌덩이로 누른 그 집 삐딱구두 새벽 눈바람 우물물 길을 때 연거푸 꼬꾸라지더니 숟가락 걸어 어린 아들 가둬놓고 잘도 싸돌아다녔다 끝내 미친 바람 제대로 불어 아이는 몇 날 며칠 울어쌓고 갇힌 방에서 똥오줌 지렸다 술병 든 한량 아비가 데려온 또 다른 삐딱구두 띄엄띄엄 버스도 끊기고 사흘 멀다 내리는 눈길에 엎어지더니 검은 냇물 따라 흘러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어린 날 눈발 헤집고 걷던 길 사라지고 이제는 사내가 된 그 아이, 마누라 가진 적 없어 자식도 집도 없이 객지 떠돌며 여적 운다 밥을 먹어도 술을 마셔도 손이 운다

 

  울컥울컥 멈추지 않고 떨리는 손

  그만큼 울었으면 꽃 필 때 되었다고

  만항, 함백산 흐무러지게 야생화 핀다

 

 

 

 

 

 

그 길엔 맥이 산다

 

                       

                 

아스팔트 위에도 봄비 내리는데  

숨이 끊어진 채 널브러진 고라니

 

느닷없는 충격에 어미 배 밖으로 내팽개쳐진

눈 한번 떠보지 못한 새끼들

 

다 만 살 아 가 는 길 인 데

 

바퀴가 돌 때마다 깊숙이 달라붙는 울음

새까맣게 죽어 나자빠지는 꿈이

너무 슬퍼 눈감게 되는 날

 

문득, 꿈을 먹고 산다는 맥이 어딘가 있다면

이 길에 살지 않을까

 

더러 꿈이 사람도 괴롭힌다지만

빠름과 느림이 수없이 충돌하는 길

위험의 불빛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눈이

찢기고 잘리고 흩어져 길 위에서 길을 잃어버릴 때

 

꿈이 꿈을 잡아먹는 길을 오가며

길 잃은 꿈 다시 꽃필 수 있게 거두어주는

붉게 진자리 살뜰히 보듬어주는  

그 길엔 맥이 산다, 는 생각

 

 

 

 

행복슈퍼

 

 

 

  낭창낭창 살랑이는 바람 같던 스물셋, 선 봐서 만난 슈퍼 총각 좋아 슈퍼 안으로 들어갔어 그녀는 이제 슈퍼 아줌마 그녀를 데려가던 날도 슈퍼 문 열었던 아저씨 당최 문 닫는 일 없어 비 오고 눈 와도 명절에도 아이 둘 낳을 때도 그런 일은 없어 아줌마는 아파트와 슈퍼 사이만 왔다갔다 시부모 수발들고 참새처럼 드나드는 시누 가족 밥해주고 아들딸 키우느라 슈퍼 통로만 오락가락 미치게 바람 불어도 네모진 카운터 앞에 전화기만 붙들고 앉아있어

 

  놀러 좀 와

 

 

  

거미

       

 

 

그지없이 오르고 오르고

 

끝 간데없이 곤두박이 친 날들 지나고

 

보르르 부르르 떨려온다

 

끝없는 메시지, 느낀다

 

촘촘히 또는 성기게

 

느슨하게 혹은 팽팽하게

 

하루살이 여린 날갯짓에도 애벌레 기어가는 작은 소리에도

 

설렌다, 전율한다

 

창문 아래 고양이가 운다

 

새가 철사로 집을 짓는다

 

수달이 댐을 긁어댄다

 

쓰러진 노루 물컹한 배 위를 자동차가 달려간다

 

세상을 에둘러 점자를 읽는다

 

나의 집에 걸리지 않는 것은 없다

 

오늘 밤은 달이 먼저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