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방의 내력

 

 

 

 

 

배추벌레한테는 배추가 세상의 전부이다. 아주 견문이 좁은 사람을 비유하여 누군가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을 두고 배추벌레라 할 수야 없겠지만, 나는 이런 표현에서 일말의 타당성을 느낀다. 다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인간들 또한 자기가 겪은 바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특히 열 살 이전에 체득한 것이 제 삶의 원형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산골에서 자랐다. 내가 언제 한글을 깨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고향에 댐이 생긴 지도 이미 수십 년이 지났다. 산을 넘고 내를 건너서 다니던 초등학교도 이제는 아주 사라졌다. 그래도 더러 물이 줄면 내 살던 마을도 드러나서 그 자리에 서 보는데, 내가 늘 확인하는 게 있다. 예전엔 그렇게나 넓어 보였던 데가 사실은 그렇지도 않구나. 여긴 정말 깊은 산골이구나.

거긴 집성촌이었다. 인근이 모두 다르지 않았다. 나는 한때 모든 동네가 다 이와 같은 줄 알았다. 겨우 스무 집이 작은 내를 사이에 두고 한 마을을 이루었는데, 거의 대다수가 일가였고, 타성 몇 집이라 하더라도 오랜 세월 동안 이웃하여 살아 기실 아무도 낯선 존재가 아니었다.

이러니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로 어둠을 밝혔던 내 어린 시절에 보고 들은 것들이 무척이나 고색창연했다. 그래서 나는 요즘도 누가 산소를 어떻게 하였다거나 오밤중에 도깨비를 만났다는 둥의 이야기가 익숙하다. 정화수 앞에서 두 손을 싹싹 비빈다거나 객귀를 물린다며 마당으로 칼을 내던지던 할머니의 행동도 마치 어제의 일인 양 암암하다.

“김 주사! 아이고, 우리 김 주사! 하하하!”

도대체 주사란 게 대단한 벼슬도 아닌데, 할아버지는 왜 내게 그러셨을까? 내 응석 또한 대단했는데, 할아버지한테 늘 ‘대감’이기도 한 ‘주사’는 또래보다 한참 늦도록 늙은 암소가 우두커니 서서 커다란 눈알을 굴리는 마당 한 구석에 똥을 누고도 직접 뒤를 닦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이런 유별난 손자 사랑이 두루두루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그게 우리들한테는 충분히 가능한 환경이기도 했다.

‘왜 아이들 싸움에 어른이 끼일까?’

‘아무개 아버지야 무슨 일을 하거나! 그게 어째서?’

‘장학사야 오거나 말거나. 그런데, 왜 이렇게 법석인가?’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봄에 대구로 전학을 와서 무척 의아스러웠던 게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내가 조숙했던가? 그럴 리가! 그런데도 나는 이런 생각을 다 했다. 이게 지금도 신통하다. 나로선 어른들이 기이했다. 내 판단으로는 그게 그럴 일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문학의 내력이란 걸 따져는 보지만, 그래도 나는 역시 모르겠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내 정신의 풍경을 나도 헤아리기 어렵다. 나한테도 처음 만났던 시간과 공간이 심대한 영향을 끼쳤을까? 내 살던 집은 동네에서 조금 높은 곳에 떨어져 있었는데, 그 앞으로 보리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시야가 막히면 언제나 불편하다.

나는 늘 트인 공간을 앞에 둔다. 지금 내가 사는 집도 그렇다. 나는 서재에서도 벽을 등지고 앉게 책상 배치를 한다. 글마저도 처음부터 따옴표로 시작하는 대화가 나오면 어색하다. ‘이건 너무 느닷없어!’ 내게는 전후좌우로 어떤 여유가 필요하다. 사람들과의 사이에도 일정한 거리가 있어야지 친하다고 마구 대하면 그만 거북하다.

그런데 이 거리란 것이 다 자[尺]로 잴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마다 요구하는 거리가 상이할 수도 있다. 그러면 일기니 편지니 하며 글을 썼던 내 행위도 결국 내게 필요한 마음의 거리를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었던가! 이렇게 생각하니 그게 그랬던 것도 같다. 내가 수필가란 것도 그래. 수필가로 살고자 어렸을 적부터 의도한 게 아니라, 내 나름의 기준으로 늘 뭔가를 읽고 썼는데, 이게 바로 수필가의 길이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학교와는 인연이 별로 없는 분들이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고, 어머니는 그나마 초등학교도 몇 달 다니다가 말았다. 그런데 이게 한때 고향이나 외가에선 일반적인 상황이었다. 이 분들이 독서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세상 물정에 어둡지는 않았다.

이승만 정권 시절의 토지개혁에 관한 글을 읽다가 내가 어머니한테 당시의 정황을 물은 적이 있다. 이게 생존과 직결된 일이어서 그랬을까? 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겪은 그 일을 아주 소상하게 알았다. 한글도 제대로 깨치지 못한 분이 그 방면의 전문가에 필적하는 이해를 하다니. 군사정권 당시 그렇게나 방송에서 좌경이니 용공이니 하며 떠벌렸지만, 재야 운동권 인사들의 실체도 어머니는 잘 간파했다.

내가 부모 세대와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두 분이 다 돌아가신 지금 다시 생각하면 적어도 한 가지는 같다. 그 누구를 함부로 찬양하지도 좀처럼 험담하지도 않는다. 이건 누가 누구에게 무심해서가 아니다. 예전 어른들은 그런 걸 다 ‘상놈들의 짓거리’로 알았고, 요즘 나는 그런 걸 ‘천박한 소행’으로 여긴다. 이런 태도의 근원을 따지고 보니,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된 것들이 떠오른다.

나는 늘 뭔가를 읽는 상태이다. 더러 감정이 상해서 손에서 책을 놓아버리기도 하지만, 이건 일종의 사고라 할 일이고, 나는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살아왔다. 글을 읽거나 쓰면 머리가 맑아진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구해 읽으니 즐겁기도 하다. 그렇다고 내가 재미만 쫓는 것도 아니다.

내가 내내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여러 신도들과도 어울려야 할 터이니, 그 교의를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군인들이 득세한 탓에 군사문화가 어떻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군대를 폐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설령 그걸 그렇게 하더라도 뭘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나아가다 보니, 나는 해방신학이니 중관사상이니 전략전술이니 성리학이니 파시즘이니 하는 책들을 뒤적이게 되었다.

매사가 다 그렇지만 독서도 역시 새끼를 친다. 그 새끼가 또 새끼를 치는 격으로 나아가니까, 결국 책 사느라고 내 주머니가 다 빈다. 아마도 내가 죽을 때까지 읽지도 못하고 말 책들도 내 서재에는 제법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또 책 살 궁리나 한다. ‘요즘 영상매체가 저렇게 활개를 치는데, 저것들이 사람들한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서도 좀 봐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아직도 이렇게 미진하다.

이런 태도가 일종의 질병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런 일로 내가 그렇게 손해를 보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알고 보면 다 재미난 현상이거니와 나 자신을 지키는 결과도 되었다. 대학 새내기 때 내가 책으로 노장(老莊)과 간디와 백범을 만났는데, 감수성이 예민할 적이어서 그랬는지, 내가 감화를 많이 받았다. 노장은 ‘억지스러운 작위’의 폐단을, 간디는 ‘하느님이 진리가 아니고, 진리가 하느님’이라는 진실을, 백범은 ‘순박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용기를 보였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적이다. 어느 날 정권이 무너지자 그렇게나 유신헌법의 위대성을 역설했던 인물들이 돌변하였다. 그게 정녕 그렇게나 문제가 많은 것이었다면 진작 좀 그러지. 그러다가 정국이 또 흔들리자 상황은 다시 바뀌었다. 이런 사람들의 모습이 한때 나를 무척 실망스럽게 했다. 어지러운 시대의 황당한 편린들이다.

한때 나는 난치병을 고친다거나 어떤 발명이라도 하는 과학자를 선망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분명 의미는 있을 일이다. 그러나 무고한 사람들이 마구 죽는 건 더 큰 문제이다. 무엇이든 의심하기 시작하면 다 의심스러운 법이다. 도대체 세상에서 훌륭하다는 것들이 훌륭해 보이지가 않았다. 그 판단 기준이 어디에 있으며, 그것에 제 삶을 다 바친다 하여 충분하다는 근거는 또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이건 내게 깊은 수렁이었다.

나는 이런저런 책들을 찾아 읽었지만, 항상 그 나름의 이유란 게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남들한테 자랑조차 되지 못하는 책들을 사느라 돈을 쓰지는 않았으리라. 그런데 이런 짓도 오래 하다 보니 깨닫는 바가 있었다. ‘이미 오래 전에 나와 같은 문제로 고민한 분들이 아주 많았구나.’ 이러면 내게 또 책을 살 구실이 생긴다.

나도 나이가 드는가? 근래에는 아주 정교한 논리보다 조금은 아득한 연민에 자꾸 이끌린다. 이게 나 자신에 대한 것인지 남들에 대한 것인지 나도 모른다. 결국은 누구나 이러다가 늙어서 죽는구나. 삼라만상이 허망하다는 인식은 없다. 그러나 모두 측은하지 않느냐. 그래서 논리로 따지면 외면해야 마땅할 비행마저 더러 인간적인 면모로도 보인다.

나는 아직도 문학이 무엇인지 모른다. 나야 그저 그 가까이에 있겠지. 어쩌면 이런 내 느낌조차 한갓 착각일지라도, 내겐 뭔가 건드려야 할 것들이 있지 않을까? 설령 이게 문학이 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는 언급해야 하지 않을까? 저마다 먹고산다고는 하지만, 그 삶의 내용이 너무나 비루하다.

더러 자신의 이력을 밝혀야 할 때가 있다. 어디에서 아무개의 자식으로 태어나 어느 대학 무슨 학과를 나왔고, 직업은 무엇이고, 혼인은 하였는지 말았는지 하는 등속이다. 자기가 가진 게 뭐라는 식의 주장이 때로는 애틋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것들이 다 배추에 붙은 벌레의 구구한 사정이다.

배추벌레는 나중에 배추흰나비가 된다고 한다. 그러면 그 배추흰나비는 배추가 세상에서 하찮은 존재란 사실도 단박 깨달을 것이다. 배추벌레와 그리 다를 바 없는 인간도 나비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로선 영광이겠다. 그러나 이건 내 욕심이 아닐까? 어두운 밤 가물거리는 불빛에 홀려 날아들었다가 끝내 불길에 날개를 태우는 나방이라면 모를까! 퍼덕퍼덕. 그러고 보니, 나는 어쩐지 나비보다 나방에 더 가까운 생물이 아닌가 싶다.

[2005.11.]

 

 

[작자 소개]

김인기

경상북도 영천 출생(1962).

《월간에세이》로 등단(1991)

수필집『함께 가는 우리들』(1999),『참 좋은 날』(2006).

대구경북작가회의, 대구수필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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