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내 아들

김인기

 

 

 

 

아내는 꾀병을 부리지 않는다. 내가 알기로 아직까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그러므로 아내가 아프다고 말하면, 실지로 어디에 탈이 난 것이다. 설령 몸이 멀쩡하다고 해도 그래. 아마 속이라도 상했으리라. 그래서 저렇게 요를 깔고 누웠으리. 아무도 본인을 대신해서 앓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치가 그러니까, 그저 감기에 걸렸나 보다 하며,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다. 그러다가는 아내가 나를 원망할 것이다. ‘어째 사람이 그렇게나 매정하냐?’ 이러면서 내가 앓았을 적에 자신이 보인 태도를 거론할 것이다. 이래서 나도 아내 곁에 드러눕는다.

나는 아내의 이마에 손도 대어본다. 이마가 뜨겁다. “어휴, 감기에 걸렸네.” 이러면서 나는 물수건이라도 준비한다. 아무리 증상이 가벼워도 아기는 위험하다. 또 노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아내가 그렇지는 않다. 그래서 나도 내심 염려하지는 않는다. ‘저러다가 곧 낫겠지.’ 아내 이마에 열이 없을 때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뭐, 괜찮네!” 하지도 않는다. 이러면 환자가 섭섭하니까. 이마를 만지고도 가만히 있기는 어쩐지 머쓱하다. 그래서 내가 자신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대어본다. 열이 날 리 없다. 그래도 내가 목청을 높여 이렇게 말한다.

“아이고, 나도 여기에 열이 있네!”

몸살감기에 걸리면 누구나 고생한다. 으슬으슬한 게 뭔가 심상찮은 기운이라도 돌면, 나도 만사 제쳐 두고 일단 자리에 누워 이불을 덮고 푹 잔다. 안이하게 굴다가 곤욕을 치른 적이 몇 번이나 있었으니까. 특히 환절기에는 몸을 잘 챙겨야 한다. 나도 전문가들한테 감기와 독감이 어떻게 다른지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게 들을 때마다 새롭다. 이런 내가 도대체 뭘 할 수 있겠는가? 얼마 전에도 나는 아내 곁에 누워서 아픈 척을 했다. 내가 몸이야 멀쩡하더라도 마음은 아파야 하지 않겠는가.

문명사회 현대인들도 미개사회 원시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언젠가 내가 기록영화를 봤더니, 여기에 아주 재미난 장면이 나왔다. 부인이 산고를 겪자, 남편도 덩달아 산고를 겪는다. 그러면 실지로 남자가 아프냐? 에이, 남편이 아내를 걱정할 수는 있을 것이다. ‘혹시 저러다가 저 사람이 죽는 건 아닐까?’ 그래도 남자가 산통을 느낄 수는 없다. 그러나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게 그 사회의 풍습이다. 누가 이걸 무시하면 아마 후환이 따르리라. 그러니 그 사나이도 아프다며 울부짖어야 하지 않으랴.

내가 그를 알지 못하고, 그가 나를 알지 못해도, 그 사나이와 나는 분명 통하는 데가 있다. 그러나 나는 아무래도 그 사나이에 미치지 못한다. 내게는 커다란 약점이 있으니까. 나는 머리를 바닥에 대면 이내 잠들어버린다. 누구는 아파서 끙끙 앓는데, 나는 곁에서 잠을 쿨쿨 잔다. 이건 곤란하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수마(睡魔)를 이기려 분투한다. 갑자기 너스레도 떤다. 뭐가 못마땅하더라도 이때에는 내색하지 않는다. 나는 외려 여기 이렇게나 위대한 인물이 있다며 칭송한다.

내 표현대로라면 아내는 거의 선녀(仙女)에 가깝다. 그러나 내 가까이 있는 분이야 잠시나마 식욕이 없더라도, 나는 배가 고프다. 이게 새로운 고민이다. 아내가 아프다며 저러고 있는데, 내가 밥 달라고 하나. 아이들도 있는데, 그만 한 끼쯤 굶자고 하나. 밥이야 어떻게 짓는다 하더라도 반찬은 뭘 어떻게 하지? 라면이라도 몇 개 끓일까? 아무리 궁리해도 묘안이 없다. 당장은 내게 선녀가 아니라 요리사가 필요하다. 그날도 그렇게 누워 있자니, 아들이 방으로 들어온다. 그러고는 내 가까이 오더니,

“아버지, 아버지…….”

한다.

딴에는 나만 들으라고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는데, 그 소리가 너무나 크다. 그래서 아내도 나도 다 듣는다. ‘이 녀석이 또 몰래 빵이라도 먹자고 이러나?’ 아들이 목소리를 낮추는 만큼 모두 귀를 가만히 기울인다. 나는 습관대로 그 언행에 어울리게 음량과 음색은 물론 음조까지 맞춰 물었다.

“왜~에?”

그러자 아들이 이런다.

“어머니가 감기에 걸렸어요.”

나도 안다. 그래서 내가,

“그래, 나도 알아.”

했다. 그러자 아들이,

“그러니까 빨리빨리 피하세요. 아버지한테도 감기가 옮을 수 있어요.”

한다. 아, 아들이 나를 이렇게나 걱정하다니, 이 세상에 이런 효자가 어디에 또 있을꼬? 그러나 아내는 이렇게 탄식한다.

“어쩌면 저렇게나 인정머리가 없나…….”

아픈 것도 권력이다. 그러니까 이런 성토도 이렇게나 쉬이 나온다. 그러나 아내가 아파서 그런지 몰라도 그 판별이 다 공정하지는 않다. 내가 감기에 걸렸더라도 아들은 제 어머니한테 피하기를 권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누가 누구의 마음을 몰라주었다기보다도 이건 어디까지나 나름대로는 합당하게 생각하고 행동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사회에서도 이러면 후환이 따른다. 그래서 나도 아들의 노선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도리어 나는 ‘함께 병을 앓기로 했다.’며 의뭉을 떨었다. 이러자 환자로 돌아온 선녀의 푸념이 아들에게로 쏟아진다.

“아이고야! 어머니가 아프면, 아들은 용돈으로 초콜릿이라도 한 개 사서 ‘이것 드시고 빨리 나으세요.’ 해야지. 아이고, 뭐가 어쩌고 어쩐다고?”

이러면서 그만 위대한 말씀이 한동안 이어진다. 이러더니 아내는 이불을 푹 덮어쓰고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 곁에서 나도 역시 이불을 푹 덮어쓰고 아픈 척을 했다. 잠깐이나마 아들은 외로웠을 것이다. 나도 아들을 두둔하지는 못했으니까. ‘아들아, 미안하다. 네가 다 이해해라.’ 이게 내 마음이었다. 그러자 아들이 부스럭거리더니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어? 녀석이 정말 초콜릿을 사러 가나?”

이러면서 아내와 내가 쑥덕거리노라니, 아들이 다시 돌아오는 기척이 났다. 우리들은 마치 중환자라도 되는 양 있기로 했다. ‘저 녀석이 뭘 어떻게 하나?’ 우리들은 이게 궁금했다. 과연 아들이 가게에 가서 초콜릿을 한 개 사왔다. 그리고는 제 어머니더러 이 초콜릿을 드시고는 금방 건강을 회복하시라 한다. 그게 얼마 하더냐는 내 물음에 아들이 700원이라 대답했다. 그 초콜릿 한 개를 식구 네 명이 나눠 먹었다. 이리하여 ‘인정머리 없는 녀석’도 돌연 ‘장한 아들’로 돌아왔다. 나는 이런 변화를 크게 환호하며 초콜릿값으로 아들한테 2,000원을 주었다.

[2010.10.14.]

 

 

 

[수필]

핏빛 시월의 자리

 

 

 

 

 

사람 평생도 잠깐이다. 그 마음이 한결같지도 않다. 나도 그래. 만사가 마뜩찮다며 아우성을 치다가, 이내 웃고 떠들다가, 밥도 먹고 잠도 잔다. 이러면서 또 잊지도 않고 아무개가 이러니저러니 한다. 신소리도 한다. 어떤가? 그래봤자 이게 별것도 아니니 아예 무시할래? 아마 이러는 남녀들도 있을 것이다. 특히나 자기가 잘났다고 믿는 이들이 그렇다. ‘저것들이 감히 우리들 상대가 되겠어?’ 그러나 이런 믿음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한다.

이완용이란 자가 있었다. 나름대로 대세를 읽고는 품위와 교양으로 우아하게 나아가 영화를 누렸다. 사후에는 장례식도 성대하게 치렀다. 그러나 이 작자도 바로 후손이 자기 무덤을 파헤칠 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천하 명당도 소용이 없었다. 코흘리개들마저 무덤을 발로 쾅쾅 짓밟으며 ‘만고역적 이완용!’이라 하였으니.

안두희라는 자가 있었다. 백범 선생한테 총질하고도 끄떡없었다. 이 인간을 비호하는 세력이 있었으니까. 나는 그 면면들이 궁금하다. 이 암살범이야 끝내 험한 꼴을 당하고 말았지만, 그 배후세력은 또 어디에서 암약하는지 몰라. 이들이 다 사라졌을 리는 만무하다. 노덕술이라는 자도 있었고, 하판락이라는 자도 있었다. 지독한 고문으로 악명을 떨친 자들이다. 이들만이 아니다. 그 자식들도 있었다.

누구라도 선대의 과오로 내내 고초를 당해야 한다면, 이것도 부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네들이 오히려 그 배경으로 승승장구하면서 허튼소리나 내뱉는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들이 대통령도 하고 총리도 한다. 실상은 사회악 그 자체인 집단들도 한통속으로 나댄다. 공공성은 안중에도 없다. 시절마저 더럽다. 그래도 누군가는 이 인간들을 지켜는 봐야겠지. 바로 이런 것들이 귀향한 노무현 대통령도 몰아서 죽였지 않느냐? 나는 그 권력자들과 그 하수인들의 근황도 궁금하다.

수양대군도 격식은 차렸다. ‘내가 왕위를 빼앗은 게 아니라, 조카가 보위를 선양했다. 그래서 만백성과 종묘사직의 안위가 염려스러워 부득이 받아들였다.’ 비록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켜 실권은 장악했어도 이런 구실이 필요했다. 금상(今上)을 허울 좋은 상왕(上王)으로 물렸으나, 그들은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자꾸만 동티가 났다. 다시 누군가 흉계를 꾸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애꿎은 왕은 유배지에서 죽었다.

우리들 주위에도 의분 어린 험담이 떠돈다. 나도 이에 공감할 때가 있다. 여기에도 물론 한계가 있다. 기껏 비속어 몇 마디로 뭐가 당장 달라지기야 하랴. 그래도 나는 염려하지 않는다. 후인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까. ‘그것들은 모두 흉물이었다.’ 아마도 이럴 거야. 이들도 이러다 스러지면, 또 후인들이 뒤를 잇겠지. 예전에도 그랬을까? ‘그것들이 인두겁을 썼다고는 하나, 인간들은 아니었다.’ 아마도 그랬겠지.

이른바 ‘사람의 도리’라는 게 있다. 누가 누굴 칭송하거나 성토할 때에도 나름대로 그 규준이 있는 법이다. 이게 오탁악세를 만나 희롱거리로 전락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이의 가치마저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 도리가 환경에 따라 모습을 달리 할 수는 있으나, 그 근저마저 흔들리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실성한 자들이 있다. 사람이면 차마 하지 말아야 할 짓을 누가 내게 하라고 부추기나? 이게 사람 탓이 아니라 제도 탓이라 해도 묵과할 수 없다.

단종은 승하한 지 무려 242년이 지나 신원이 되었다. 사육신들의 충절도 공인을 받았다. 그러면 그 사이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한동안은 그 누구도 진실을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수양대군 그 폐륜아’라거나 ‘한명회 그 망종’이라거나. 이러다가는 명대로 못 사니까. 그러면 다 끽소리 없이 지냈을까? 그랬더라면 사서에 노산군 아닌 단종이 있을 리 없다. 그 시절에도 사람들이 ‘그건 다 지난 일이니까, 이제 그만 잊자.’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일제 패망 직후에도 이 땅에 숱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그 누구도 용서할 수 없는 반인륜범죄이다. 군인들과 경찰들과 이의 끄나풀들이 갖은 만행을 다 저질렀다. 이들의 중추는 친일파들이었다. 즉각 물고가 났어야 할 것들! 이들이 외세에 빌붙어 나라를 접수한 탓이다. 1950년 전면전이 터지자 서로서로 죽이고 죽는 피바람이 일었다. 사람들의 혀가 또 얼어붙었다. 그렇기로 이런 참상을 예사로 말하기까지 설마 242년이야 걸리랴.

후인들이 선인들을 평가한다. 그래도 답답이들은 이럴 것이다. “수백 년 뒤 사정이야 내가 알 바 아니다.” 나는 대꾸한다. “그래, 너희들이 그렇다면 마음대로 해봐라.” 그 말로는 뻔하다. 이들한테는 차라리 당대의 지식인들이 더 편할 것이다. 상대는 후대의 속인들이다. 후인들의 삶이라고 다 훌륭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거부감은 더더욱 격렬하다. 이들의 피와 눈물이 다 마른다고 해도 그 정서는 여일할 것이다.

시월항쟁은 1946년 10월에 대구에서 발발해 남한전역으로 뜨겁게 번진 불길이었다. 그해는 풍작이었으나, 미군정의 잘못으로 사람들이 굶주렸는데, 이게 사회모순과 뒤얽혔다. 많은 사람들이 몰살을 당했고, 유족들의 삶도 파탄이 났다. 2014년 오늘을 기준으로 헤아리면, 이게 68년 전이다. 이제는 그 잿더미도 흩어졌고 당시를 증언할 생존자도 찾기 어렵다. 이제까지 진상이랍시고 밝혀진 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도 다 알 수는 없다. 이건 어쩔 수 없다. 당사자들이나 관련자들의 기억도 흐리다. 더러는 아직도 겁을 먹고 이렇게 회피도 한다. “이제 와서 뭘 그러느냐?” 이게 단견이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그냥저냥 지나가자.’ 이건 망언이다. ‘누구한테 죄를 묻고자 해도 당사자가 이미 사망했다. 요행히 진상을 규명했다 하더라도 공소시효가 지나버렸다. 이제 와서 누가 누굴 망신 주려고 그러느냐?’ 이건 몰상식이다.

사람도 먹어야 사는 동물이다. 전시의 생존자들은 악취가 진동하는 주검들을 뒤집으며 손목시계도 풀고 금니도 뽑았다. 이걸로 양식도 마련했다. 이렇게라도 해서 연명해야 했으니까. 빈부귀천에 따라 그 감정이 그리 다르지도 않았다. 세도가 자식들은 너도나도 후방으로 빠졌는데, 난들 자식들을 전방에 보내고 싶었겠는가? 자기 목숨 귀하지 않는 사람도 없었다. 이런 실상을 어떻게 나 몰라라 하나? 그러면 그 작자가 나쁘지.

그간 인간들이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맹꽁이들이 그 생각만은 멀리도 나아갔다. 내가 버럭 고함을 지른다. “제발 정신 좀 차려!” 세사가 그리도 쉬웠더라면, 어느 곳인들 낙원이 아니었으리. 그게 그렇지 않으니까, 우리들의 고민도 깊은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따로 놀지 않는다. 미래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만큼 누구라도 진실을 왜곡하고 공의(公議)를 파기하려는 시도는 제지해야 마땅하다.

기실은 이것도 지난하다. 가해자들이 참회는커녕 그럴 의사조차 없었고, 어쩌다 궁지에 몰려 겨우 그 시늉만 했는데도, 누가 불쑥 나타나 이들을 다 용서하자 했다. 이래야 떡고물이 생기니까. 피해자들이 어리둥절했다. ‘나는 사태의 경위조차 파악하지 못했는데, 도대체 누가 무엇을 어떻게 용서한다는 거냐?’ 그건 길이길이 조소거리로 남을 오두방정이었다.

사람들이 목숨을 부지했다고는 하나 두려움이 가시지는 않았다. 이들이 안간힘을 쓰다가 망가졌다. 외지인들이 나타나 총칼로 부모형제를 참살했다. 친인척들마저 발길을 끊었다. 누군가는 아녀자를 능욕했고, 누군가는 재물을 앗아갔다. 입을 열고 더듬거리며 뭐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철퇴가 내려졌다. ‘유언비어를 유포하여 사회불안을 조성했다.’ 이게 죄목이었다.

나는 종종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이치마저 거칠게 배척하는 어른들을 본다. 이것도 이 여파일까? 나는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이들도 암암리에 누군가를 고문했을까? 이들도 패덕을 강요했을까? 이들도 날조한 증거로 훈장을 받았을까? 사람들을 죽인 그 죗값으로 승진도 했을까? 그래서 누가 상식을 지키자는 당연한 그 한 마디에도 이들이 길길이 날뛰며 횡설수설하는 게 아닐까? 의혹의 구름이 뭉게뭉게 솟아난다.

사람들이 질환에 시달린다. 차마 눈 뜨고는 못 볼 광경들을 보고 말았으니까. 증상도 다양했다. 제복을 기피하거나, 제복에 맹종하거나. 그 무엇을 대하는 그 태도가 유별나다. 도처에 광신과 냉소가 혼거한다. 이들은 남을 믿을 수 없다. 그래서 돈에 집착한다. ‘그래도 이게 있으면 수가 나더라.’ 이들은 단순한 수전노들이 아니다. 이들이 사실 아닌 것을 사실로 믿으려고 몸부림을 치기도 했다. 이 후유증이 당대로 끝나지도 않는다.

분별력 상실은 심각한 재난이다. ‘시비곡직이니 뭐니 하는 건 못난 작자들의 넋두리이고, 남들이야 뭐라고 그러든 끝까지 버티면 그만이더라.’ 이것도 학습효과이다. 나라가 망해도 고위공직자들이 망하지는 않는다. 처음엔 대중들도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끝내는 이들도 물이 들었다. ‘다 그렇고 그런 세상에 나만 별나게 굴 게 뭐 있나.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이런 풍조가 만연한다.

법률제도마저도 흉기로 돌변했다. 사람들이 눈앞의 이익에 홀려 못 하는 짓이 없다. 구석구석에서 이전투구가 벌어진다. 아무도 예의와 염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화장터에서는 한 줌 재가 되고 땅에서는 구더기의 밥이나 될 몸뚱어리이다. 하지만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네들이 막판에 뭔가를 꾸미기는 한다. 그러나 누가 아무리 동상을 세우고 무덤을 치장해도 허접한 실체가 가려지지는 않는다.

이런 작폐를 어떻게 해야 단절할 수 있을까? 한때 독립기념관의 관장으로 있었던 김삼웅 선생은 일전에 『반민주인명사전』 편찬을 제안했다. 그렇지.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연전에 『친일인명사전』을 펴낸 전례도 있다. 물론 이게 만만한 작업일 리도 없고, 이게 최상의 해법이라 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우리들이 이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또 차후에는 『반통일인명사전』도 만들어야지. 이 시대의 의인들을 꼼꼼히 챙기는 자료집도 필요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퍼 담을 수는 없다. 아무도 반성하지 않으면 실수도 되풀이한다. 이래서야 앞날인들 어찌 무사할까! 내가 묻는다. “소달구지를 타면 주인도 종복이 되고, 비행기를 타면 종복도 주인이 되나?” 속물들이 똥오줌을 못 가린다. “야바위꾼이든 개망나니든 그게 뭐 대수냐?” 이것도 정신병의 일종이다. 이들은 그저 권력자의 옷자락이라도 잡아보는 게 소원이다.

아무 것도 외따로 존립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마치 끈 떨어진 연처럼 허공에 버려진 이들이 있다. 너무나 많은 사건들도 그렇게 버려졌다. “그것들은 마귀들이다.” 지배자들은 이러면서 속속들이 감시했다. 이들은 오지랖이 넓었다. 이 등쌀에 나도 이렇게 간청한다. “그래, 나 그렇게 죽은 듯이 있을 테니, 이것 하나는 꼭 답변해 줘. 사람들이 사라진 그 자리가 내내 공백으로 남아도 나머지는 다 무탈할 수 있어?” 나도 웬만하면 편히 살고 싶다. 그러나 이게 이럴 수도 없지 않느냐.

귀신도 네모난 동그라미를 그릴 재간은 없다. 제 자리로 찾아가야 하는 건 비단 핏빛 시월만이 아니다. 공과에 두루두루 공정하라. 달리 묘책도 없다. 그래도 기어이 총칼로 협박하고 방송으로 속이겠다고? 내가 도리어 걱정스럽다. “그러다가는 그대들이 무척이나 허탄해질 텐데?” 하기야 이런 충고에 변할 위인들이 아니지. 그래도 내가 오늘은 이렇게 권한다. “어이, 자꾸 혐오스럽게 굴지 말고, 부디 그 수준이라도 좀 높여.”

[2014.5.15.]

 

 

[수필]

만첩심산 범나비

 

 

 

 

 

수수 만 년 전에는 이곳이 아마도 수림이었을 것이다. 봄날이면 울울창창한 나무들 사이사이로 나비들도 꽃을 찾아 훨훨 날아다녔으리. 그러다가 이것들이 너울너울 짝짓기도 하였으리. 오늘 누가 있어 과거 그 광경을 기억이나 하랴. 그래도 나는 생각한다. 그때 범나비도 있었을 거야. 뻐꾸기도 울었을 거야. 그로부터 세월이 흐르고 흘렀다. 사람들이 산도 깎고 언덕도 뭉갰다. 늪에서 놀던 물방개랑 미꾸라지도 사라졌다. 이제는 각종 콘크리트 구조물들 사이로 자동차들이 매연을 뿜으며 밤낮도 없이 내달린다.

사람은 적응한다. 주위의 소음이나 이에 따르는 긴장에도 이러하다. 이것들이 심신을 야금야금 잠식할지라도 너나없이 그저 그런가 보다 한다. 모두 묘책이 없다. 나도 많은 것들을 망각한다. ‘남들도 이런 나와 사정이 다르지 않을 테니까…….’ 나는 이러다가 더러는 놀란다. ‘남들이 나와 사정이 같다고 해서 그 대응마저 같지는 않더라.’ 누구한테나 변명거리는 있다. 이것들이 때로는 내 상상을 넘어선다. 이런 만큼 나도 함부로 뭐라고 할 건 아니지.

옷차림이야 그렇다 하자. 이게 새삼스럽지도 않으니까. 근래에는 여자들이 콧대를 높인다는 둥 쌍꺼풀을 만든다는 둥 하며 병원에 열심히 들락거린다. 이게 널리널리 소문이 났다. 한때는 여론도 비등했다. 세상살이가 복잡해서 본인이 싫어도 수술을 받아야 하는 사연도 있을 것이다. 누가 이런 걸 두고 뭐라는 게 아니다. 그리고 남자들이 다 사라진다면 여자들이 이러지도 않을 테니까, 이게 오로지 여자들만의 탓도 아니다. 이들이라고 이런 환경이 좋을 리도 없다.

‘그대 가까이 갈 수만 있다면, 내 몸이야 상해도 좋아요.’ 그러면 이게 이런 것일까? 나는 이것도 믿기 어렵다. 이 나이에 이르도록 내가 지켜본 바로는 여자들을 그렇게 흔들 만한 인물들도 흔치가 않다. 또 그런 사나이가 그러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됨됨이가 그리 훌륭하지 못하더라도 그 인간이 아주 망종이 아닌 다음에야 나름대로는 분별도 한다. “아무개야. 너는 맨얼굴이 더 예쁘다.” 이십대 청년이었던 나도 또래 처녀한테 이랬다. 사실이 그렇기도 했거니와 그가 이까짓 것들에 골몰하길 바라지 않았으니까.

겨우 이런 감정을 두고 감히 사랑이라 할 수는 없다. 짧은치마를 입은 채로 자리에 앉으면 치맛단이 위로 말려든다. 그러면 내가 들고 있던 가방을 맡긴다. ‘이걸로 허벅지를 가려라.’ 이런 뜻이다. 이게 요즘 청년들이라고 다를까? 나는 아직도 이렇게 행동한다. 책 한 권을 간직하면서도 여기에 손때가 묻을까봐 조심했다. 하물며 사람한테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에게 나쁘면, 내게도 나쁘다. 그 시절에는 가슴이 두근거려서도 가까이 가지 못했지만, 내가 뭘 어쩌기에도 그는 아까운 사람이었다.

나는 남들도 다 이런 줄 알았다. 잡놈들 또는 잡년들이라 할 인간들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이들의 수효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게 내 믿음이었다. 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던 셈이다. 그때에도 갖가지 추태들이 있었다. 어느 녀석은 변심한 애인이 밉다고 상대의 사생활을 폭로했다. 이렇게 지지리도 못난 지정머리가 요즘에도 나타난다. 공직에 나서는 후보자들한테도 잠복했던 사건들이 불거지기도 한다. 아무개가 어디에서 성추행 또는 성폭행을 저질렀다나 뭐라나. 그게 정녕 사랑이었다면, 그 누구도 이걸 이렇게 들먹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그 복잡한 심사를 그 누가 다 헤아리나. 남녀가 벌이는 한바탕 소동에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형식은 부부여도 내용은 앙숙인 관계도 있다. 성(性)은 교(交)해도 정(情)은 통(通)하지 않는다. 여기에 또 경우의 수가 있다. 이런 우여곡절들을 상기하면, 나 역시 나이 들어 남들의 상열지사를 두고 뭐라 할 게 없다. 나는 비밀을 알아도 발설하지 않는다. 아무쪼록 저 사랑이 아름답게 이어지기를! 일이 이미 저렇게 되었는데, 이제 와서 난들 어쩌겠느냐. 누군가는 분통을 터뜨릴 이런 정서마저도 내게는 있다.

누구라도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지. 한 끼에는 각자 한 그릇이면 족하다. 그가 대식가라 해도 서너 그릇이면 충분하다. 그런데도 어느 녀석이 밥을 수십 그릇이나 혼자 먹겠다고 챙기면 어떻게 되나. 이건 어디에 탈이 난 거다. 사랑이니 관심이니 하는 것들도 많이 필요하지 않다. 하물며 잘난 것도 없는 자기를 지아비 또는 지어미라고 섬기는 배우자를 속이면서 누가 뭐라고 둘러대나. 이런 꼴이 한심하다. 이게 내 상식인데도 역시 내가 뭘 모르나 보다. 오늘날 세태가 이런 내 정서와는 잘 맞지가 않는다.

다른 게 곧 그른 건 아니다. 그런 만큼 나도 고집을 버리고 허영과 치정으로 어지러운 삶도 존중하자. 나도 속인 아니냐. 이런 마음으로 남들의 처지를 응시하자. 그래도 나는 따라 배우기 어렵다. 무엇보다 구지레해서 못 견디겠다. 그 누구와 분방하게 사랑을 하자 해도 그 판을 벌일 장소마저 찾기가 어렵다. 한 건물에 밀실이 여럿 딸린 곳은 아무리 치장을 해도 어쩔 수 없이 비천하다. 그래서 대웅전이나 칠성각이 그렇듯 성소(聖所)는 대개 단일 건축물에 단일 공간이다.

범나비는 만첩심산에서 너울너울 춤을 춘다. 이것들이 암수 서로 어르며 노니는데, 이때에는 밝은 햇살과 더불어 하늘도 크게 열렸다. 주변의 풍경마저 이들과 함께 일렁인다. 이것들이 비록 몸은 작아도 천지를 휘젓는다. 인간들이 말로는 자기들 사랑이 대단하다고 떠들면서도 몸은 햇빛을 피해 밀실로 숨어든다. 나비만도 못하다. 이러면서 무슨 까탈이 그리도 많은지 몰라. 이러느니 차라리 들[野]에서 붙는다[合]는 그 ‘야합(野合)’이 더 낫다. 내가 너무 비관하는가? 그렇기도 하다. 인간이라고 다 같지도 않으니까.

오월의 섬진강은 아름답다. 나는 강물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여기라면 그 누구와 사랑하더라도 죄가 되지 않을 거야.’ 오늘도 나비들은 끼리끼리 어우러지며 산과 들을 흔든다. ‘나도 저 강물을 장엄할 수 있다면, 이것도 참 좋을 거야.’ 누구한테나 이런 사랑의 성지(聖地)가 있을 수 있다. 혹자한테는 거기가 태백산이고, 혹자한테는 거기가 한탄강이고, 또 혹자한테는 거기가 포구이다. 그러나 이런 행위가 그 풍광을 빛내기는커녕 도리어 더럽힌다면, 누구라도 이를 삼가야 마땅하다.

예전에 이런 남녀들이 있었다. ‘그대와 나 현생에서 그리워만 하였으니, 그대와 나 후생에는 범나비로 만나보자.’ 이래서 범나비의 날개에는 눈물 젖은 흔적이 남았나 보다. 나는 어느 여름날 염천 아래에서 노니는 나비들을 보았다. 이 나비가 펄럭대자 저 나비가 뒤따른다. 펄렁펄렁 솟구치고 너울너울 뒤섞인다. 오리나무도 희롱하고 느릅나무도 지나더니, 이들이 한 몸으로 칡꽃에 앉았구나. 이때 나는 참매미 우는 소리도 들었다. ‘내게도 후생이 있다면, 나 또한 저렇게 황홀하게 사랑하리.’ 이런 남녀들이 요즘이라고 없을 리 없다.

주위에 너절한 것들이 많다. 곳곳에 갖가지 종류의 업소와 업태가 즐비하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다 무감각한 것도 아니다. 의사는 환자의 종교나 정파를 따져서 치료하지 않는다. 사형수한테도 밥은 준다. 그러면 누군가는 이런 고민도 해야 한다. ‘러브호텔’에 ‘러브’가 없다고 개탄만 할 게 아니라, 그게 정말 이름값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질문이 답변하기에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너나없이 이를 외면할 수 없다. 그런데도 사방팔방이 괴괴하다.

사람들이 냉방기나 세탁기는 신형을 선호한다. 그 성능이 좋으니까. 구형은 시장에서 곧 사라진다. 그러면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가? 하기야 마음에 신형이 있고 구형이 있는 건 아니다. 이게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도 좋고 나쁜 건 분명히 있다. 그런데도 이건 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 도리어 난잡한 마음이 오래도록 분위기를 흐린다. 이래서 이런 역설도 있다. ‘절간은 산골로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 고즈넉해지더라.’ 이게 이렇게 된 데에도 다 이유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걸 뛰어넘는 게 바로 설법이 아니냐.

그 안목이 낮으면 어쩔 수 없다. 누구는 자기를 바라보기만 한 상대를 두고 도리어 못났다며 힐난했다. 그는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 그런 사랑을 그는 감당하지도 못한다. 사람들이 극성스레 산을 깎고 늪을 메워 여기도 이제는 속진(俗塵) 자욱한 도회지가 되었다. 그러면 우리들한테 하늘과 땅이 함께 화사했던 그 시절은 영영 오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보지도 않는다. 그 만첩심산이 너와 나 사이에 펼쳐졌으니까. 보라! 여기 이렇게 범나비가 있다. 이런 사람들은 허세로 우격다짐이나 하지 않는다.

[2012.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