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20호...
   2020년 06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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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박래여 소설가)나의문학관 및 약력
편집자
1587 2016-05-10
1. 나의 문학관이라면 고사리 밭을 오갈 때마다 아카시아 꽃향기가 코를 찌른다. 강아지 두 마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를 따를 때마다 저 녀석들처럼 자유로운 것이 나라는 생각을 한다. 푸른 못 둑을 지날 때면 보랏빛 지칭개 꽃망울이 예쁘다고 살짝 쓰다듬어 주고, 길게 쭉쭉 뻗는 칡순은 슬쩍 옆으로 눕혀준다. 내가 가는 길을 막지 마라. 자연 속에 있을 때 나는 아무것도 부러운 것이 없는 여왕이다. 그렇다. 나는 산골 아줌마다. 작가 선생님 소리보다 고사리 집 아지매로 더 통하는 여자다. 내가 작가란 목걸이를 건 것이 199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중편소설이 당선 되면서 머리를 올렸다. 작가가 된지 오래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름 없는 작가에 불과하다. 문학의 분류표도 무시하고 시가 떠오를 때는 시를, 일상 줍기 식 수필을, 이야기를 짓고 싶을 때는 소설을 쓴다. 그러나 등단을 소설로 했으니 당연히 작가지만 아직 소설 집 한 권 묶지 못했다. 물론 소설은 해마다 서너 편은 발표한다. 주로 동인지지만 한 해도 빠진 적 없다. 시나 수필 역시 인터넷 지면을 통해, 혹은 청탁을 받고 쓴다. 가끔 나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분명한 것은 농사꾼 아낙으로 삼십 년을 산다는 거다. 또한 어떤 사람은 수필가로, 어떤 사람은 시인으로, 어떤 사람은 작가로 부른다는 거다. 농사꾼 아낙으로 사는 일과 작가로서 사는 일, 모두 나의 일이다. 글이 있어 살아지는 삶이고, 농촌에서 농사짓고 사는 일이 있어 글을 쓰는 삶이다. 나에게 문학관을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소박한 꿈이라면 평생 글을 쓰며 살다 죽을 것이고, 내 글에서 우리 동네 변천사를 읽을 수 있다는 거다. 농촌의 변화를 내 글에서 살펴볼 수 있고, 내 글에서 농촌의 진실을 볼 수 있다면 나는 한 생을 농사꾼으로, 글쟁이로 잘 살다 가는 것이리라. 거대한 문학관 운운할 필요도 없다. 일상 줍기 식이라도 내 글만이 가질 수 있는 나만의 향기가 나올 수 있다면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나는 글이 없는 삶은 생각하지 못한다. 행복하면 행복해 죽겠다고, 고단하면 고단해 죽겠다고, 힘들고 서러우면 힘들고 서럽다고 쓴다. 동네 사람들 이야기도 쓰고, 노인들 이야기에 집착을 보인다. 농촌 살이 삼십 년 동안 변한 것은 나잇살 늘어나는 외모일 뿐 내 속에 내재한 글쓰기는 멈출 수 없다. 책을 사랑하고, 글을 쓰는 순간을 아낌없이 사랑하며 사는 나는 촌부다. 다만 내가 추구하는 것은 농촌에 뿌리박고 사는 이상 농민의 시나 수필, 소설보다 농촌의 시나 수필, 소설을 쓰고자 한다는 거다. 내 글의 배경은 농촌이다. 산과 들과 바람과 숲,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줄줄 나오는 대로 적고 있다. 어려운 문자보다 누구나 읽기 쉽고 알기 쉽고 이해하는 편한 글쓰기를 지향하고 있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사랑한다. 사라져가는 토속어를 가능하면 내 글 속에서 살려놓고 싶다. 예를 들면 우리 집에 고사리 꺾어주러 오시는 할머니 중 이야기꾼이 있다. 그 할머니의 입담에는 그냥 웃음이 나온다. 글을 못 깨쳐 글을 못 읽지만 자기만의 셈법을 정확하게 하시는 어른이다. 예를 들면 노후 연금을 노리 연금이라 하신다. ‘우리 동네는 노리 연금 받아 묵고 사는 영감 할마이만 짜드라 있다 아이가. 노리가 빽빽 울어 샀는 걸 보모 저거 연금 타 묵는다꼬 저라까 싶다 카이.’ 캐액 캐액 앞뒤 산 울고 다니는 노루는 노루가 아니라 대부분 고라니다. 고라니는 아카시아 꽃이 피는 이맘때면 짝짓기를 하기 위해 짝을 부르는 소리다. 그 노루가 울면 노후 연금이 노리 연금으로 둔갑하는 것이 어찌 재밌지 않는가. 거창하게 나의 문학관 운운할 생각은 없다. 나는 그저 평범한 촌부고, 틈만 나면 아무 책이나 손에 잡히는 대로 읽기 시작하는 여자고, 틈만 나면 글을 쓰는 여자다. 시나 수필, 소설, 세 분야를 내 맘대로 오간다. 글이 생활이고, 생활이 글인 삶을 살고 있다. 돈도 안 되는 글이지만 평생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해 글쓰기는 나의 천형이란 말을 가끔 한다. 한 때 나는 지인으로부터 우리 동네 천연기념물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천연기념물, 괜찮은 예명 아닌가. 하지만 나는 천연기념물이 아니다. 올해 이순이 된 나는 그냥 평범한 촌부다. 이순이 되면 새로운 인생관이 열린다고 한다. 나는 거창한 깨달음 같은 것을 바란 적도 없다. 그저 내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이다. 어떤 욕망보다 일상의 따뜻함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열악하고 가난한 소농의 부모 밑에서 바르게 잘 자라준 내 아이들이 자랑스러운 평범한 어미이자 평범한 촌부다. 그리고 이야기를 짓고, 책을 사랑하고, 글을 쓰는 재능을 주신 부모님께 늘 고마워하는. 2. 약력 산청군 생 MBC 전원생활체험수기 대상 수상 농민신문 신춘문예 중편소설 당선 제8회 여수해양문학상 소설 대상 수상 현대시문학 시 등단 수필집 <푸름살이>  
63 (박일아 시인)자선 대표작 10편 file
편집자
1873 2016-04-10
마 디 아이는 아플 때마다 더욱 튼튼히 자라나고 대나무는 마디가 있어 홀로 큰 키를 단단히 세운다 나는 오늘 지금까지 살아온 방문을 닫고 못질을 하고 열심히 마디를 만들어 새방을 꾸밀 준비를 한다 내 여생을 더욱 튼튼히 버티고 살아가기 위해 속을 완전히 비우고 지금은 마디를 만들고 있다 자꾸만 틈새로 파고 들어오는 욕심에다 손바닥에 옹이가 박히도록 못질을 하고 있다 하루치의 무게 해가 서산너머 퇴근하면 범어 산과 신천을 오가며 먹이를 나르던 새들 고단한 날개를 접고 막 노동자가 일을 끝내는 시각 어두움이 찾아오는 순간 하루치의 무게를 품고 가는 저녁놀 화장 가난한 유학생의 아내 세 아이의 엄마 화장은 꿈도 못 꾸고 매일 곱게 단장하고 출근하는 이웃집 여인이 부럽던 선망의 눈망울 어느덧 주름진 모습 쳐진 피부 화장으로 갈무리하고 아닌 척 하면서 피정을 갔지 피정* 때 S대학 교수가 자신이 소녀가장으로 지내던 때를 생각하며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평생 화장을 안 하기로 결심했다면서 맨 얼굴로 강론 하는데 화장한 얼굴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지 * 피정; 가톨릭교회에서 일상생활을 떠나서 정신을 고요하게 하는 깊은 기도 시간 나도 나무 할래 초등학교 삼학년 딸 아이 아파 서울대 병원 가던 날 병원 가로수로 우람하게 서 있는 은행나무를 보고 엄마, 이 나무 몇 살이야 글쎄 몇 백 년은 자라야 이정도 굵지 나보다 오래 살았네 부럽다, 나무들은 오래 살아 좋겠다 발걸음을 옮기다가 또 한 아름 넘어 보이는 튼튼한 느티나무를 보더니 얘는 몇 살이야 못되어도 이백년은 되겠지 그럼 엄마보다 더 많이 살았네 나도 나무 할래 엄마도 나무 할래 전봇대 전봇대마다 서민들이 방, 방, 방이라 써 붙인 방이 전화번호와 함께 펄럭 인다 세입자들과 맞아 떨어진 소개비 절약 작전 세입자들은 방을 보고 房을 求한다 전봇대에 광고지 일당 받는 아줌마들 열심히 뜯어내면 그 자리에 또 붙이고 자리가 없을 때는 남의 광고위에도 붙인다 전봇대에 얽힌 전깃줄보다 더 많은 사연들 각자의 옷깃에 숨기고 사는 다세대 주택의 세입자 반 지하 홀로 사는 할머니의 잘 키운 오남매 맏아들 외국으로 이민가고 아들 딸 다 서울 부산 객지로 떠나가 영감이 잠든 고향을 못 떠나 혼자 남았다 단칸방에 사는 모녀는 마흔이 넘은 딸 근무력증으로 누워만 지내고 할머니가 리어카에 폐지 주워 모아 연명 한다 옥탑방 사는 영수네 가출한 엄마대신 중학교 일학년 누나가 소녀가장이다 앙상한 가지에 나뭇잎 하나, 둘 남아 달랑거려도 전봇대는 빈틈이 없고 수난의 끝을 알 수 없다 출석 봄 반 담임선생이 찾아와 출석을 부르면 예, 하고 앞산에 꽃들이 차례로 개나리는 노랗게 모습을 드러내고 진달래는 분홍빛으로, 제비꽃은 보라색을 각자 자기 색깔로 꽃을 피워 대답 한다 키가 큰 꽃들은 온통 초록 잎으로 몸을 숨기다 이름 부르면 부끄러운 듯 꽃송이를 흔들어 대답 한다 연보라 오동나무, 새하얀 아카시, 붉은 백일홍 이름 모르는 꽃들도 한번은 세상에 태어난 보람 꽃 피운다 앞산에 이렇게 많은 꽃들이 살고 있는 줄 출석 부르기 전에는 몰랐다. 한 덩어리 푸른 산으로 잘 조화를 이루어 각자 목소리를 죽이고 서로 양보하는 자연 햇살과 나뭇잎은 술래잡기 한다 바람 따라 이리저리 잎을 뒤집어 얼굴 숨기고 누군가 이름을 불러 줄 때 어떤 색깔로 답할지 자기만의 색을 만드느라 무아지경이다 풀꽃 마음을 낮춘 만큼 몸도 바닥에 바싹 붙였지 들판이든 길거리든 인도 틈바구니에든 작은 흙먼지만 있어도 자리를 잡았지 잎은 톱니바퀴 무늬로 나만의 멋을 부렸지 샛노란 깃발 높이 올렸지 나 여기 살아 있다고 무심한 발길에 수없이 밟혔지 어느 봄날 힘껏 밀어올린 공하나 바람 부는 날 하늘 높이 날려 보냈지 불꽃 축포 터뜨리며 포물선으로 내려앉은 관모 * 낙태아, 복제인간, 줄기세포 우리네 양심의 굳은살 제거수술은 언제나 가능한지 풀꽃이 우리를 보고 웃지 * 관모 ; 민들레꽃 씨앗 인력 시장 안동시 태화동 오거리 인력시장 앞 페인트 빈 통에 헌 나무토막들 활기차게 타오르는 불꽃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 불꽃 속에 새 설계도 너울대고 하얀 안개 속에서 집들이 얼굴을 내밀면 승합차 발 앞에 멈춘다 타오르던 나무토막이 숨죽이고 한사람 씩 선택되어 일터로 떠나면 불씨마저 사그라지고 고개 숙인 민 씨 노인 혼자남아 어제 마냥 헛기침도 해보고 발바닥으로 인도 블록 툭툭 차본다 태양이 노인의 그림자를 키우며 시간을 재촉하니 오늘도 이대로 끝나고 마는지 성경의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 에서 나오듯 해질녘에 나타나 하루 품삯을 쳐 줄 마음씨 착한 농장 주인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민 씨 생각은 하루 종일 그의 발목을 잡고 서 있다 빈손 강가에 앉아 두 손 모아 물을 담아 보았다 한모금도 남김없이 다 빠져 나갔다 반나절을 그러고 앉았다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모래를 움켜잡았다 손가락 틈새로 솔 솔 솔 다 빠져 나갔다 반나절이 또 그렇게 지나갔다 하늘에 해는 온 종일을 붙잡으러 쫓아다녀도 서산으로 넘어갔다 붙잡고 또 잡으려 해도 어머니는 떠나 가버렸다 영원한 곳으로 이사 새 아파트로 이사 온지 몇 년째 아직도 같은 엘리베이터 사용하는 주민들 서로 잘 모르고 대충 인사하고 혼자 저녁놀이 물들 때 정원을 산책하는 재미가 솔솔 하다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나무와 꽃들이 반겨준다 노란색 민들레 보라색 제비꽃 분홍색 매화 등 뾰족이 돋아나는 새싹도 꽃 인양 사랑스럽다 가끔 지난겨울 추위와 봄 가뭄을 견디지 못하고 말라 죽은 마로니에와 소나무 나란히 서 있어도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것들만 말라있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이주해온 이방인들 더러는 일터에서 부상입고 쫓겨나고 불법체류 자 되어 숨어살며 전전긍긍 하루를 연명하던 메마른 얼굴 자연도 사람도 힘든 이주생활  
62 (박일아 시인)나의 문학관 및 약력
편집자
1428 2016-04-10
샘물이 되고 싶다 박 일 아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는 글을 학창시절에 읽었다. 그 후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는 꿈을 가슴에 품고 막연히 세월만 허비했다. 늦게나마 글의 밭고랑에서 서성인지 어느덧 성인의 나이가 되었다. 경쟁사회 속에서 생, 노, 병, 사의 삶을 살아내기 힘든 시간 남의 시를 통해 위로받고 기분이 흐림에서 맑음으로 바뀌었다. 마음에 먼지가 끼여 우울한날 가끔 일기장에 혼자서 글을 끄적거려 적고나면 비가 내려 깨끗이 씻은 듯 맑아졌다. 글을 통해 자신이 정화되고 다른 사람에게도 위로가 되는 따듯한 글을 쓰고 싶다. 누구나 쉽게 동화 될 수 있고 마음속에 오래 기억되면 더 좋겠다. 울림을 주고 평화를 주는 글을 쓰는 게 꿈인데 어렵다. 시를 쓴다는 것은 꽃샘추위 속에서 목련꽃을 피우는 일이라 생각 한다 정신이 맑고 사고 할 수 있는 한 글밭에서 흙을 일구고 싶다. 끊임없이 이웃에게 그냥주려고 스스로를 정화시키고 맑은 물을 솟아내고 있다 조용히 깊은 곳으로부터 세상이 잠든 새벽 조금씩 쉬지 않고 넘쳐흐르는 옹달샘 내 속에는 무엇으로 가득 찼기에 꽉 막혀 갑갑한지 하나, 둘, 돌덩이를 집어치우고 굳어진 흙을 파내 샘을 만들자 낮은 곳에 자리 잡아 자신과 이웃이 정화되는 샘물이 되고 싶다 자작시 <옹달샘>부분 약력;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하다 『사람의 문학』 (2009년 여름호)으로 등단, 시집『 하루치의 무게』가 있고 대구 경북 작가 회원임  
61 (김인기 수필가)자선 대표작 3편 file
편집자
1407 2016-03-10
역시 내 아들 김인기 아내는 꾀병을 부리지 않는다. 내가 알기로 아직까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그러므로 아내가 아프다고 말하면, 실지로 어디에 탈이 난 것이다. 설령 몸이 멀쩡하다고 해도 그래. 아마 속이라도 상했으리라. 그래서 저렇게 요를 깔고 누웠으리. 아무도 본인을 대신해서 앓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치가 그러니까, 그저 감기에 걸렸나 보다 하며,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다. 그러다가는 아내가 나를 원망할 것이다. ‘어째 사람이 그렇게나 매정하냐?’ 이러면서 내가 앓았을 적에 자신이 보인 태도를 거론할 것이다. 이래서 나도 아내 곁에 드러눕는다. 나는 아내의 이마에 손도 대어본다. 이마가 뜨겁다. “어휴, 감기에 걸렸네.” 이러면서 나는 물수건이라도 준비한다. 아무리 증상이 가벼워도 아기는 위험하다. 또 노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아내가 그렇지는 않다. 그래서 나도 내심 염려하지는 않는다. ‘저러다가 곧 낫겠지.’ 아내 이마에 열이 없을 때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뭐, 괜찮네!” 하지도 않는다. 이러면 환자가 섭섭하니까. 이마를 만지고도 가만히 있기는 어쩐지 머쓱하다. 그래서 내가 자신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대어본다. 열이 날 리 없다. 그래도 내가 목청을 높여 이렇게 말한다. “아이고, 나도 여기에 열이 있네!” 몸살감기에 걸리면 누구나 고생한다. 으슬으슬한 게 뭔가 심상찮은 기운이라도 돌면, 나도 만사 제쳐 두고 일단 자리에 누워 이불을 덮고 푹 잔다. 안이하게 굴다가 곤욕을 치른 적이 몇 번이나 있었으니까. 특히 환절기에는 몸을 잘 챙겨야 한다. 나도 전문가들한테 감기와 독감이 어떻게 다른지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게 들을 때마다 새롭다. 이런 내가 도대체 뭘 할 수 있겠는가? 얼마 전에도 나는 아내 곁에 누워서 아픈 척을 했다. 내가 몸이야 멀쩡하더라도 마음은 아파야 하지 않겠는가. 문명사회 현대인들도 미개사회 원시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언젠가 내가 기록영화를 봤더니, 여기에 아주 재미난 장면이 나왔다. 부인이 산고를 겪자, 남편도 덩달아 산고를 겪는다. 그러면 실지로 남자가 아프냐? 에이, 남편이 아내를 걱정할 수는 있을 것이다. ‘혹시 저러다가 저 사람이 죽는 건 아닐까?’ 그래도 남자가 산통을 느낄 수는 없다. 그러나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게 그 사회의 풍습이다. 누가 이걸 무시하면 아마 후환이 따르리라. 그러니 그 사나이도 아프다며 울부짖어야 하지 않으랴. 내가 그를 알지 못하고, 그가 나를 알지 못해도, 그 사나이와 나는 분명 통하는 데가 있다. 그러나 나는 아무래도 그 사나이에 미치지 못한다. 내게는 커다란 약점이 있으니까. 나는 머리를 바닥에 대면 이내 잠들어버린다. 누구는 아파서 끙끙 앓는데, 나는 곁에서 잠을 쿨쿨 잔다. 이건 곤란하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수마(睡魔)를 이기려 분투한다. 갑자기 너스레도 떤다. 뭐가 못마땅하더라도 이때에는 내색하지 않는다. 나는 외려 여기 이렇게나 위대한 인물이 있다며 칭송한다. 내 표현대로라면 아내는 거의 선녀(仙女)에 가깝다. 그러나 내 가까이 있는 분이야 잠시나마 식욕이 없더라도, 나는 배가 고프다. 이게 새로운 고민이다. 아내가 아프다며 저러고 있는데, 내가 밥 달라고 하나. 아이들도 있는데, 그만 한 끼쯤 굶자고 하나. 밥이야 어떻게 짓는다 하더라도 반찬은 뭘 어떻게 하지? 라면이라도 몇 개 끓일까? 아무리 궁리해도 묘안이 없다. 당장은 내게 선녀가 아니라 요리사가 필요하다. 그날도 그렇게 누워 있자니, 아들이 방으로 들어온다. 그러고는 내 가까이 오더니, “아버지, 아버지…….” 한다. 딴에는 나만 들으라고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는데, 그 소리가 너무나 크다. 그래서 아내도 나도 다 듣는다. ‘이 녀석이 또 몰래 빵이라도 먹자고 이러나?’ 아들이 목소리를 낮추는 만큼 모두 귀를 가만히 기울인다. 나는 습관대로 그 언행에 어울리게 음량과 음색은 물론 음조까지 맞춰 물었다. “왜~에?” 그러자 아들이 이런다. “어머니가 감기에 걸렸어요.” 나도 안다. 그래서 내가, “그래, 나도 알아.” 했다. 그러자 아들이, “그러니까 빨리빨리 피하세요. 아버지한테도 감기가 옮을 수 있어요.” 한다. 아, 아들이 나를 이렇게나 걱정하다니, 이 세상에 이런 효자가 어디에 또 있을꼬? 그러나 아내는 이렇게 탄식한다. “어쩌면 저렇게나 인정머리가 없나…….” 아픈 것도 권력이다. 그러니까 이런 성토도 이렇게나 쉬이 나온다. 그러나 아내가 아파서 그런지 몰라도 그 판별이 다 공정하지는 않다. 내가 감기에 걸렸더라도 아들은 제 어머니한테 피하기를 권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누가 누구의 마음을 몰라주었다기보다도 이건 어디까지나 나름대로는 합당하게 생각하고 행동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사회에서도 이러면 후환이 따른다. 그래서 나도 아들의 노선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도리어 나는 ‘함께 병을 앓기로 했다.’며 의뭉을 떨었다. 이러자 환자로 돌아온 선녀의 푸념이 아들에게로 쏟아진다. “아이고야! 어머니가 아프면, 아들은 용돈으로 초콜릿이라도 한 개 사서 ‘이것 드시고 빨리 나으세요.’ 해야지. 아이고, 뭐가 어쩌고 어쩐다고?” 이러면서 그만 위대한 말씀이 한동안 이어진다. 이러더니 아내는 이불을 푹 덮어쓰고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 곁에서 나도 역시 이불을 푹 덮어쓰고 아픈 척을 했다. 잠깐이나마 아들은 외로웠을 것이다. 나도 아들을 두둔하지는 못했으니까. ‘아들아, 미안하다. 네가 다 이해해라.’ 이게 내 마음이었다. 그러자 아들이 부스럭거리더니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어? 녀석이 정말 초콜릿을 사러 가나?” 이러면서 아내와 내가 쑥덕거리노라니, 아들이 다시 돌아오는 기척이 났다. 우리들은 마치 중환자라도 되는 양 있기로 했다. ‘저 녀석이 뭘 어떻게 하나?’ 우리들은 이게 궁금했다. 과연 아들이 가게에 가서 초콜릿을 한 개 사왔다. 그리고는 제 어머니더러 이 초콜릿을 드시고는 금방 건강을 회복하시라 한다. 그게 얼마 하더냐는 내 물음에 아들이 700원이라 대답했다. 그 초콜릿 한 개를 식구 네 명이 나눠 먹었다. 이리하여 ‘인정머리 없는 녀석’도 돌연 ‘장한 아들’로 돌아왔다. 나는 이런 변화를 크게 환호하며 초콜릿값으로 아들한테 2,000원을 주었다. [2010.10.14.] [수필] 핏빛 시월의 자리 사람 평생도 잠깐이다. 그 마음이 한결같지도 않다. 나도 그래. 만사가 마뜩찮다며 아우성을 치다가, 이내 웃고 떠들다가, 밥도 먹고 잠도 잔다. 이러면서 또 잊지도 않고 아무개가 이러니저러니 한다. 신소리도 한다. 어떤가? 그래봤자 이게 별것도 아니니 아예 무시할래? 아마 이러는 남녀들도 있을 것이다. 특히나 자기가 잘났다고 믿는 이들이 그렇다. ‘저것들이 감히 우리들 상대가 되겠어?’ 그러나 이런 믿음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한다. 이완용이란 자가 있었다. 나름대로 대세를 읽고는 품위와 교양으로 우아하게 나아가 영화를 누렸다. 사후에는 장례식도 성대하게 치렀다. 그러나 이 작자도 바로 후손이 자기 무덤을 파헤칠 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천하 명당도 소용이 없었다. 코흘리개들마저 무덤을 발로 쾅쾅 짓밟으며 ‘만고역적 이완용!’이라 하였으니. 안두희라는 자가 있었다. 백범 선생한테 총질하고도 끄떡없었다. 이 인간을 비호하는 세력이 있었으니까. 나는 그 면면들이 궁금하다. 이 암살범이야 끝내 험한 꼴을 당하고 말았지만, 그 배후세력은 또 어디에서 암약하는지 몰라. 이들이 다 사라졌을 리는 만무하다. 노덕술이라는 자도 있었고, 하판락이라는 자도 있었다. 지독한 고문으로 악명을 떨친 자들이다. 이들만이 아니다. 그 자식들도 있었다. 누구라도 선대의 과오로 내내 고초를 당해야 한다면, 이것도 부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네들이 오히려 그 배경으로 승승장구하면서 허튼소리나 내뱉는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들이 대통령도 하고 총리도 한다. 실상은 사회악 그 자체인 집단들도 한통속으로 나댄다. 공공성은 안중에도 없다. 시절마저 더럽다. 그래도 누군가는 이 인간들을 지켜는 봐야겠지. 바로 이런 것들이 귀향한 노무현 대통령도 몰아서 죽였지 않느냐? 나는 그 권력자들과 그 하수인들의 근황도 궁금하다. 수양대군도 격식은 차렸다. ‘내가 왕위를 빼앗은 게 아니라, 조카가 보위를 선양했다. 그래서 만백성과 종묘사직의 안위가 염려스러워 부득이 받아들였다.’ 비록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켜 실권은 장악했어도 이런 구실이 필요했다. 금상(今上)을 허울 좋은 상왕(上王)으로 물렸으나, 그들은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자꾸만 동티가 났다. 다시 누군가 흉계를 꾸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애꿎은 왕은 유배지에서 죽었다. 우리들 주위에도 의분 어린 험담이 떠돈다. 나도 이에 공감할 때가 있다. 여기에도 물론 한계가 있다. 기껏 비속어 몇 마디로 뭐가 당장 달라지기야 하랴. 그래도 나는 염려하지 않는다. 후인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까. ‘그것들은 모두 흉물이었다.’ 아마도 이럴 거야. 이들도 이러다 스러지면, 또 후인들이 뒤를 잇겠지. 예전에도 그랬을까? ‘그것들이 인두겁을 썼다고는 하나, 인간들은 아니었다.’ 아마도 그랬겠지. 이른바 ‘사람의 도리’라는 게 있다. 누가 누굴 칭송하거나 성토할 때에도 나름대로 그 규준이 있는 법이다. 이게 오탁악세를 만나 희롱거리로 전락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이의 가치마저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 도리가 환경에 따라 모습을 달리 할 수는 있으나, 그 근저마저 흔들리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실성한 자들이 있다. 사람이면 차마 하지 말아야 할 짓을 누가 내게 하라고 부추기나? 이게 사람 탓이 아니라 제도 탓이라 해도 묵과할 수 없다. 단종은 승하한 지 무려 242년이 지나 신원이 되었다. 사육신들의 충절도 공인을 받았다. 그러면 그 사이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한동안은 그 누구도 진실을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수양대군 그 폐륜아’라거나 ‘한명회 그 망종’이라거나. 이러다가는 명대로 못 사니까. 그러면 다 끽소리 없이 지냈을까? 그랬더라면 사서에 노산군 아닌 단종이 있을 리 없다. 그 시절에도 사람들이 ‘그건 다 지난 일이니까, 이제 그만 잊자.’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일제 패망 직후에도 이 땅에 숱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그 누구도 용서할 수 없는 반인륜범죄이다. 군인들과 경찰들과 이의 끄나풀들이 갖은 만행을 다 저질렀다. 이들의 중추는 친일파들이었다. 즉각 물고가 났어야 할 것들! 이들이 외세에 빌붙어 나라를 접수한 탓이다. 1950년 전면전이 터지자 서로서로 죽이고 죽는 피바람이 일었다. 사람들의 혀가 또 얼어붙었다. 그렇기로 이런 참상을 예사로 말하기까지 설마 242년이야 걸리랴. 후인들이 선인들을 평가한다. 그래도 답답이들은 이럴 것이다. “수백 년 뒤 사정이야 내가 알 바 아니다.” 나는 대꾸한다. “그래, 너희들이 그렇다면 마음대로 해봐라.” 그 말로는 뻔하다. 이들한테는 차라리 당대의 지식인들이 더 편할 것이다. 상대는 후대의 속인들이다. 후인들의 삶이라고 다 훌륭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거부감은 더더욱 격렬하다. 이들의 피와 눈물이 다 마른다고 해도 그 정서는 여일할 것이다. 시월항쟁은 1946년 10월에 대구에서 발발해 남한전역으로 뜨겁게 번진 불길이었다. 그해는 풍작이었으나, 미군정의 잘못으로 사람들이 굶주렸는데, 이게 사회모순과 뒤얽혔다. 많은 사람들이 몰살을 당했고, 유족들의 삶도 파탄이 났다. 2014년 오늘을 기준으로 헤아리면, 이게 68년 전이다. 이제는 그 잿더미도 흩어졌고 당시를 증언할 생존자도 찾기 어렵다. 이제까지 진상이랍시고 밝혀진 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도 다 알 수는 없다. 이건 어쩔 수 없다. 당사자들이나 관련자들의 기억도 흐리다. 더러는 아직도 겁을 먹고 이렇게 회피도 한다. “이제 와서 뭘 그러느냐?” 이게 단견이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그냥저냥 지나가자.’ 이건 망언이다. ‘누구한테 죄를 묻고자 해도 당사자가 이미 사망했다. 요행히 진상을 규명했다 하더라도 공소시효가 지나버렸다. 이제 와서 누가 누굴 망신 주려고 그러느냐?’ 이건 몰상식이다. 사람도 먹어야 사는 동물이다. 전시의 생존자들은 악취가 진동하는 주검들을 뒤집으며 손목시계도 풀고 금니도 뽑았다. 이걸로 양식도 마련했다. 이렇게라도 해서 연명해야 했으니까. 빈부귀천에 따라 그 감정이 그리 다르지도 않았다. 세도가 자식들은 너도나도 후방으로 빠졌는데, 난들 자식들을 전방에 보내고 싶었겠는가? 자기 목숨 귀하지 않는 사람도 없었다. 이런 실상을 어떻게 나 몰라라 하나? 그러면 그 작자가 나쁘지. 그간 인간들이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맹꽁이들이 그 생각만은 멀리도 나아갔다. 내가 버럭 고함을 지른다. “제발 정신 좀 차려!” 세사가 그리도 쉬웠더라면, 어느 곳인들 낙원이 아니었으리. 그게 그렇지 않으니까, 우리들의 고민도 깊은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따로 놀지 않는다. 미래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만큼 누구라도 진실을 왜곡하고 공의(公議)를 파기하려는 시도는 제지해야 마땅하다. 기실은 이것도 지난하다. 가해자들이 참회는커녕 그럴 의사조차 없었고, 어쩌다 궁지에 몰려 겨우 그 시늉만 했는데도, 누가 불쑥 나타나 이들을 다 용서하자 했다. 이래야 떡고물이 생기니까. 피해자들이 어리둥절했다. ‘나는 사태의 경위조차 파악하지 못했는데, 도대체 누가 무엇을 어떻게 용서한다는 거냐?’ 그건 길이길이 조소거리로 남을 오두방정이었다. 사람들이 목숨을 부지했다고는 하나 두려움이 가시지는 않았다. 이들이 안간힘을 쓰다가 망가졌다. 외지인들이 나타나 총칼로 부모형제를 참살했다. 친인척들마저 발길을 끊었다. 누군가는 아녀자를 능욕했고, 누군가는 재물을 앗아갔다. 입을 열고 더듬거리며 뭐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철퇴가 내려졌다. ‘유언비어를 유포하여 사회불안을 조성했다.’ 이게 죄목이었다. 나는 종종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이치마저 거칠게 배척하는 어른들을 본다. 이것도 이 여파일까? 나는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이들도 암암리에 누군가를 고문했을까? 이들도 패덕을 강요했을까? 이들도 날조한 증거로 훈장을 받았을까? 사람들을 죽인 그 죗값으로 승진도 했을까? 그래서 누가 상식을 지키자는 당연한 그 한 마디에도 이들이 길길이 날뛰며 횡설수설하는 게 아닐까? 의혹의 구름이 뭉게뭉게 솟아난다. 사람들이 질환에 시달린다. 차마 눈 뜨고는 못 볼 광경들을 보고 말았으니까. 증상도 다양했다. 제복을 기피하거나, 제복에 맹종하거나. 그 무엇을 대하는 그 태도가 유별나다. 도처에 광신과 냉소가 혼거한다. 이들은 남을 믿을 수 없다. 그래서 돈에 집착한다. ‘그래도 이게 있으면 수가 나더라.’ 이들은 단순한 수전노들이 아니다. 이들이 사실 아닌 것을 사실로 믿으려고 몸부림을 치기도 했다. 이 후유증이 당대로 끝나지도 않는다. 분별력 상실은 심각한 재난이다. ‘시비곡직이니 뭐니 하는 건 못난 작자들의 넋두리이고, 남들이야 뭐라고 그러든 끝까지 버티면 그만이더라.’ 이것도 학습효과이다. 나라가 망해도 고위공직자들이 망하지는 않는다. 처음엔 대중들도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끝내는 이들도 물이 들었다. ‘다 그렇고 그런 세상에 나만 별나게 굴 게 뭐 있나.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이런 풍조가 만연한다. 법률제도마저도 흉기로 돌변했다. 사람들이 눈앞의 이익에 홀려 못 하는 짓이 없다. 구석구석에서 이전투구가 벌어진다. 아무도 예의와 염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화장터에서는 한 줌 재가 되고 땅에서는 구더기의 밥이나 될 몸뚱어리이다. 하지만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네들이 막판에 뭔가를 꾸미기는 한다. 그러나 누가 아무리 동상을 세우고 무덤을 치장해도 허접한 실체가 가려지지는 않는다. 이런 작폐를 어떻게 해야 단절할 수 있을까? 한때 독립기념관의 관장으로 있었던 김삼웅 선생은 일전에 『반민주인명사전』 편찬을 제안했다. 그렇지.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연전에 『친일인명사전』을 펴낸 전례도 있다. 물론 이게 만만한 작업일 리도 없고, 이게 최상의 해법이라 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우리들이 이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또 차후에는 『반통일인명사전』도 만들어야지. 이 시대의 의인들을 꼼꼼히 챙기는 자료집도 필요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퍼 담을 수는 없다. 아무도 반성하지 않으면 실수도 되풀이한다. 이래서야 앞날인들 어찌 무사할까! 내가 묻는다. “소달구지를 타면 주인도 종복이 되고, 비행기를 타면 종복도 주인이 되나?” 속물들이 똥오줌을 못 가린다. “야바위꾼이든 개망나니든 그게 뭐 대수냐?” 이것도 정신병의 일종이다. 이들은 그저 권력자의 옷자락이라도 잡아보는 게 소원이다. 아무 것도 외따로 존립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마치 끈 떨어진 연처럼 허공에 버려진 이들이 있다. 너무나 많은 사건들도 그렇게 버려졌다. “그것들은 마귀들이다.” 지배자들은 이러면서 속속들이 감시했다. 이들은 오지랖이 넓었다. 이 등쌀에 나도 이렇게 간청한다. “그래, 나 그렇게 죽은 듯이 있을 테니, 이것 하나는 꼭 답변해 줘. 사람들이 사라진 그 자리가 내내 공백으로 남아도 나머지는 다 무탈할 수 있어?” 나도 웬만하면 편히 살고 싶다. 그러나 이게 이럴 수도 없지 않느냐. 귀신도 네모난 동그라미를 그릴 재간은 없다. 제 자리로 찾아가야 하는 건 비단 핏빛 시월만이 아니다. 공과에 두루두루 공정하라. 달리 묘책도 없다. 그래도 기어이 총칼로 협박하고 방송으로 속이겠다고? 내가 도리어 걱정스럽다. “그러다가는 그대들이 무척이나 허탄해질 텐데?” 하기야 이런 충고에 변할 위인들이 아니지. 그래도 내가 오늘은 이렇게 권한다. “어이, 자꾸 혐오스럽게 굴지 말고, 부디 그 수준이라도 좀 높여.” [2014.5.15.] [수필] 만첩심산 범나비 수수 만 년 전에는 이곳이 아마도 수림이었을 것이다. 봄날이면 울울창창한 나무들 사이사이로 나비들도 꽃을 찾아 훨훨 날아다녔으리. 그러다가 이것들이 너울너울 짝짓기도 하였으리. 오늘 누가 있어 과거 그 광경을 기억이나 하랴. 그래도 나는 생각한다. 그때 범나비도 있었을 거야. 뻐꾸기도 울었을 거야. 그로부터 세월이 흐르고 흘렀다. 사람들이 산도 깎고 언덕도 뭉갰다. 늪에서 놀던 물방개랑 미꾸라지도 사라졌다. 이제는 각종 콘크리트 구조물들 사이로 자동차들이 매연을 뿜으며 밤낮도 없이 내달린다. 사람은 적응한다. 주위의 소음이나 이에 따르는 긴장에도 이러하다. 이것들이 심신을 야금야금 잠식할지라도 너나없이 그저 그런가 보다 한다. 모두 묘책이 없다. 나도 많은 것들을 망각한다. ‘남들도 이런 나와 사정이 다르지 않을 테니까…….’ 나는 이러다가 더러는 놀란다. ‘남들이 나와 사정이 같다고 해서 그 대응마저 같지는 않더라.’ 누구한테나 변명거리는 있다. 이것들이 때로는 내 상상을 넘어선다. 이런 만큼 나도 함부로 뭐라고 할 건 아니지. 옷차림이야 그렇다 하자. 이게 새삼스럽지도 않으니까. 근래에는 여자들이 콧대를 높인다는 둥 쌍꺼풀을 만든다는 둥 하며 병원에 열심히 들락거린다. 이게 널리널리 소문이 났다. 한때는 여론도 비등했다. 세상살이가 복잡해서 본인이 싫어도 수술을 받아야 하는 사연도 있을 것이다. 누가 이런 걸 두고 뭐라는 게 아니다. 그리고 남자들이 다 사라진다면 여자들이 이러지도 않을 테니까, 이게 오로지 여자들만의 탓도 아니다. 이들이라고 이런 환경이 좋을 리도 없다. ‘그대 가까이 갈 수만 있다면, 내 몸이야 상해도 좋아요.’ 그러면 이게 이런 것일까? 나는 이것도 믿기 어렵다. 이 나이에 이르도록 내가 지켜본 바로는 여자들을 그렇게 흔들 만한 인물들도 흔치가 않다. 또 그런 사나이가 그러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됨됨이가 그리 훌륭하지 못하더라도 그 인간이 아주 망종이 아닌 다음에야 나름대로는 분별도 한다. “아무개야. 너는 맨얼굴이 더 예쁘다.” 이십대 청년이었던 나도 또래 처녀한테 이랬다. 사실이 그렇기도 했거니와 그가 이까짓 것들에 골몰하길 바라지 않았으니까. 겨우 이런 감정을 두고 감히 사랑이라 할 수는 없다. 짧은치마를 입은 채로 자리에 앉으면 치맛단이 위로 말려든다. 그러면 내가 들고 있던 가방을 맡긴다. ‘이걸로 허벅지를 가려라.’ 이런 뜻이다. 이게 요즘 청년들이라고 다를까? 나는 아직도 이렇게 행동한다. 책 한 권을 간직하면서도 여기에 손때가 묻을까봐 조심했다. 하물며 사람한테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에게 나쁘면, 내게도 나쁘다. 그 시절에는 가슴이 두근거려서도 가까이 가지 못했지만, 내가 뭘 어쩌기에도 그는 아까운 사람이었다. 나는 남들도 다 이런 줄 알았다. 잡놈들 또는 잡년들이라 할 인간들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이들의 수효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게 내 믿음이었다. 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던 셈이다. 그때에도 갖가지 추태들이 있었다. 어느 녀석은 변심한 애인이 밉다고 상대의 사생활을 폭로했다. 이렇게 지지리도 못난 지정머리가 요즘에도 나타난다. 공직에 나서는 후보자들한테도 잠복했던 사건들이 불거지기도 한다. 아무개가 어디에서 성추행 또는 성폭행을 저질렀다나 뭐라나. 그게 정녕 사랑이었다면, 그 누구도 이걸 이렇게 들먹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그 복잡한 심사를 그 누가 다 헤아리나. 남녀가 벌이는 한바탕 소동에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형식은 부부여도 내용은 앙숙인 관계도 있다. 성(性)은 교(交)해도 정(情)은 통(通)하지 않는다. 여기에 또 경우의 수가 있다. 이런 우여곡절들을 상기하면, 나 역시 나이 들어 남들의 상열지사를 두고 뭐라 할 게 없다. 나는 비밀을 알아도 발설하지 않는다. 아무쪼록 저 사랑이 아름답게 이어지기를! 일이 이미 저렇게 되었는데, 이제 와서 난들 어쩌겠느냐. 누군가는 분통을 터뜨릴 이런 정서마저도 내게는 있다. 누구라도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지. 한 끼에는 각자 한 그릇이면 족하다. 그가 대식가라 해도 서너 그릇이면 충분하다. 그런데도 어느 녀석이 밥을 수십 그릇이나 혼자 먹겠다고 챙기면 어떻게 되나. 이건 어디에 탈이 난 거다. 사랑이니 관심이니 하는 것들도 많이 필요하지 않다. 하물며 잘난 것도 없는 자기를 지아비 또는 지어미라고 섬기는 배우자를 속이면서 누가 뭐라고 둘러대나. 이런 꼴이 한심하다. 이게 내 상식인데도 역시 내가 뭘 모르나 보다. 오늘날 세태가 이런 내 정서와는 잘 맞지가 않는다. 다른 게 곧 그른 건 아니다. 그런 만큼 나도 고집을 버리고 허영과 치정으로 어지러운 삶도 존중하자. 나도 속인 아니냐. 이런 마음으로 남들의 처지를 응시하자. 그래도 나는 따라 배우기 어렵다. 무엇보다 구지레해서 못 견디겠다. 그 누구와 분방하게 사랑을 하자 해도 그 판을 벌일 장소마저 찾기가 어렵다. 한 건물에 밀실이 여럿 딸린 곳은 아무리 치장을 해도 어쩔 수 없이 비천하다. 그래서 대웅전이나 칠성각이 그렇듯 성소(聖所)는 대개 단일 건축물에 단일 공간이다. 범나비는 만첩심산에서 너울너울 춤을 춘다. 이것들이 암수 서로 어르며 노니는데, 이때에는 밝은 햇살과 더불어 하늘도 크게 열렸다. 주변의 풍경마저 이들과 함께 일렁인다. 이것들이 비록 몸은 작아도 천지를 휘젓는다. 인간들이 말로는 자기들 사랑이 대단하다고 떠들면서도 몸은 햇빛을 피해 밀실로 숨어든다. 나비만도 못하다. 이러면서 무슨 까탈이 그리도 많은지 몰라. 이러느니 차라리 들[野]에서 붙는다[合]는 그 ‘야합(野合)’이 더 낫다. 내가 너무 비관하는가? 그렇기도 하다. 인간이라고 다 같지도 않으니까. 오월의 섬진강은 아름답다. 나는 강물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여기라면 그 누구와 사랑하더라도 죄가 되지 않을 거야.’ 오늘도 나비들은 끼리끼리 어우러지며 산과 들을 흔든다. ‘나도 저 강물을 장엄할 수 있다면, 이것도 참 좋을 거야.’ 누구한테나 이런 사랑의 성지(聖地)가 있을 수 있다. 혹자한테는 거기가 태백산이고, 혹자한테는 거기가 한탄강이고, 또 혹자한테는 거기가 포구이다. 그러나 이런 행위가 그 풍광을 빛내기는커녕 도리어 더럽힌다면, 누구라도 이를 삼가야 마땅하다. 예전에 이런 남녀들이 있었다. ‘그대와 나 현생에서 그리워만 하였으니, 그대와 나 후생에는 범나비로 만나보자.’ 이래서 범나비의 날개에는 눈물 젖은 흔적이 남았나 보다. 나는 어느 여름날 염천 아래에서 노니는 나비들을 보았다. 이 나비가 펄럭대자 저 나비가 뒤따른다. 펄렁펄렁 솟구치고 너울너울 뒤섞인다. 오리나무도 희롱하고 느릅나무도 지나더니, 이들이 한 몸으로 칡꽃에 앉았구나. 이때 나는 참매미 우는 소리도 들었다. ‘내게도 후생이 있다면, 나 또한 저렇게 황홀하게 사랑하리.’ 이런 남녀들이 요즘이라고 없을 리 없다. 주위에 너절한 것들이 많다. 곳곳에 갖가지 종류의 업소와 업태가 즐비하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다 무감각한 것도 아니다. 의사는 환자의 종교나 정파를 따져서 치료하지 않는다. 사형수한테도 밥은 준다. 그러면 누군가는 이런 고민도 해야 한다. ‘러브호텔’에 ‘러브’가 없다고 개탄만 할 게 아니라, 그게 정말 이름값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질문이 답변하기에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너나없이 이를 외면할 수 없다. 그런데도 사방팔방이 괴괴하다. 사람들이 냉방기나 세탁기는 신형을 선호한다. 그 성능이 좋으니까. 구형은 시장에서 곧 사라진다. 그러면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가? 하기야 마음에 신형이 있고 구형이 있는 건 아니다. 이게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도 좋고 나쁜 건 분명히 있다. 그런데도 이건 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 도리어 난잡한 마음이 오래도록 분위기를 흐린다. 이래서 이런 역설도 있다. ‘절간은 산골로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 고즈넉해지더라.’ 이게 이렇게 된 데에도 다 이유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걸 뛰어넘는 게 바로 설법이 아니냐. 그 안목이 낮으면 어쩔 수 없다. 누구는 자기를 바라보기만 한 상대를 두고 도리어 못났다며 힐난했다. 그는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 그런 사랑을 그는 감당하지도 못한다. 사람들이 극성스레 산을 깎고 늪을 메워 여기도 이제는 속진(俗塵) 자욱한 도회지가 되었다. 그러면 우리들한테 하늘과 땅이 함께 화사했던 그 시절은 영영 오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보지도 않는다. 그 만첩심산이 너와 나 사이에 펼쳐졌으니까. 보라! 여기 이렇게 범나비가 있다. 이런 사람들은 허세로 우격다짐이나 하지 않는다. [2012.3.30.]  
60 (김인기 수필가)문학적 자전
편집자
1309 2016-03-10
어느 나방의 내력 배추벌레한테는 배추가 세상의 전부이다. 아주 견문이 좁은 사람을 비유하여 누군가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을 두고 배추벌레라 할 수야 없겠지만, 나는 이런 표현에서 일말의 타당성을 느낀다. 다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인간들 또한 자기가 겪은 바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특히 열 살 이전에 체득한 것이 제 삶의 원형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산골에서 자랐다. 내가 언제 한글을 깨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고향에 댐이 생긴 지도 이미 수십 년이 지났다. 산을 넘고 내를 건너서 다니던 초등학교도 이제는 아주 사라졌다. 그래도 더러 물이 줄면 내 살던 마을도 드러나서 그 자리에 서 보는데, 내가 늘 확인하는 게 있다. 예전엔 그렇게나 넓어 보였던 데가 사실은 그렇지도 않구나. 여긴 정말 깊은 산골이구나. 거긴 집성촌이었다. 인근이 모두 다르지 않았다. 나는 한때 모든 동네가 다 이와 같은 줄 알았다. 겨우 스무 집이 작은 내를 사이에 두고 한 마을을 이루었는데, 거의 대다수가 일가였고, 타성 몇 집이라 하더라도 오랜 세월 동안 이웃하여 살아 기실 아무도 낯선 존재가 아니었다. 이러니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로 어둠을 밝혔던 내 어린 시절에 보고 들은 것들이 무척이나 고색창연했다. 그래서 나는 요즘도 누가 산소를 어떻게 하였다거나 오밤중에 도깨비를 만났다는 둥의 이야기가 익숙하다. 정화수 앞에서 두 손을 싹싹 비빈다거나 객귀를 물린다며 마당으로 칼을 내던지던 할머니의 행동도 마치 어제의 일인 양 암암하다. “김 주사! 아이고, 우리 김 주사! 하하하!” 도대체 주사란 게 대단한 벼슬도 아닌데, 할아버지는 왜 내게 그러셨을까? 내 응석 또한 대단했는데, 할아버지한테 늘 ‘대감’이기도 한 ‘주사’는 또래보다 한참 늦도록 늙은 암소가 우두커니 서서 커다란 눈알을 굴리는 마당 한 구석에 똥을 누고도 직접 뒤를 닦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이런 유별난 손자 사랑이 두루두루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그게 우리들한테는 충분히 가능한 환경이기도 했다. ‘왜 아이들 싸움에 어른이 끼일까?’ ‘아무개 아버지야 무슨 일을 하거나! 그게 어째서?’ ‘장학사야 오거나 말거나. 그런데, 왜 이렇게 법석인가?’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봄에 대구로 전학을 와서 무척 의아스러웠던 게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내가 조숙했던가? 그럴 리가! 그런데도 나는 이런 생각을 다 했다. 이게 지금도 신통하다. 나로선 어른들이 기이했다. 내 판단으로는 그게 그럴 일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문학의 내력이란 걸 따져는 보지만, 그래도 나는 역시 모르겠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내 정신의 풍경을 나도 헤아리기 어렵다. 나한테도 처음 만났던 시간과 공간이 심대한 영향을 끼쳤을까? 내 살던 집은 동네에서 조금 높은 곳에 떨어져 있었는데, 그 앞으로 보리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시야가 막히면 언제나 불편하다. 나는 늘 트인 공간을 앞에 둔다. 지금 내가 사는 집도 그렇다. 나는 서재에서도 벽을 등지고 앉게 책상 배치를 한다. 글마저도 처음부터 따옴표로 시작하는 대화가 나오면 어색하다. ‘이건 너무 느닷없어!’ 내게는 전후좌우로 어떤 여유가 필요하다. 사람들과의 사이에도 일정한 거리가 있어야지 친하다고 마구 대하면 그만 거북하다. 그런데 이 거리란 것이 다 자[尺]로 잴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마다 요구하는 거리가 상이할 수도 있다. 그러면 일기니 편지니 하며 글을 썼던 내 행위도 결국 내게 필요한 마음의 거리를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었던가! 이렇게 생각하니 그게 그랬던 것도 같다. 내가 수필가란 것도 그래. 수필가로 살고자 어렸을 적부터 의도한 게 아니라, 내 나름의 기준으로 늘 뭔가를 읽고 썼는데, 이게 바로 수필가의 길이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학교와는 인연이 별로 없는 분들이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고, 어머니는 그나마 초등학교도 몇 달 다니다가 말았다. 그런데 이게 한때 고향이나 외가에선 일반적인 상황이었다. 이 분들이 독서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세상 물정에 어둡지는 않았다. 이승만 정권 시절의 토지개혁에 관한 글을 읽다가 내가 어머니한테 당시의 정황을 물은 적이 있다. 이게 생존과 직결된 일이어서 그랬을까? 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겪은 그 일을 아주 소상하게 알았다. 한글도 제대로 깨치지 못한 분이 그 방면의 전문가에 필적하는 이해를 하다니. 군사정권 당시 그렇게나 방송에서 좌경이니 용공이니 하며 떠벌렸지만, 재야 운동권 인사들의 실체도 어머니는 잘 간파했다. 내가 부모 세대와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두 분이 다 돌아가신 지금 다시 생각하면 적어도 한 가지는 같다. 그 누구를 함부로 찬양하지도 좀처럼 험담하지도 않는다. 이건 누가 누구에게 무심해서가 아니다. 예전 어른들은 그런 걸 다 ‘상놈들의 짓거리’로 알았고, 요즘 나는 그런 걸 ‘천박한 소행’으로 여긴다. 이런 태도의 근원을 따지고 보니,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된 것들이 떠오른다. 나는 늘 뭔가를 읽는 상태이다. 더러 감정이 상해서 손에서 책을 놓아버리기도 하지만, 이건 일종의 사고라 할 일이고, 나는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살아왔다. 글을 읽거나 쓰면 머리가 맑아진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구해 읽으니 즐겁기도 하다. 그렇다고 내가 재미만 쫓는 것도 아니다. 내가 내내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여러 신도들과도 어울려야 할 터이니, 그 교의를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군인들이 득세한 탓에 군사문화가 어떻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군대를 폐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설령 그걸 그렇게 하더라도 뭘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나아가다 보니, 나는 해방신학이니 중관사상이니 전략전술이니 성리학이니 파시즘이니 하는 책들을 뒤적이게 되었다. 매사가 다 그렇지만 독서도 역시 새끼를 친다. 그 새끼가 또 새끼를 치는 격으로 나아가니까, 결국 책 사느라고 내 주머니가 다 빈다. 아마도 내가 죽을 때까지 읽지도 못하고 말 책들도 내 서재에는 제법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또 책 살 궁리나 한다. ‘요즘 영상매체가 저렇게 활개를 치는데, 저것들이 사람들한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서도 좀 봐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아직도 이렇게 미진하다. 이런 태도가 일종의 질병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런 일로 내가 그렇게 손해를 보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알고 보면 다 재미난 현상이거니와 나 자신을 지키는 결과도 되었다. 대학 새내기 때 내가 책으로 노장(老莊)과 간디와 백범을 만났는데, 감수성이 예민할 적이어서 그랬는지, 내가 감화를 많이 받았다. 노장은 ‘억지스러운 작위’의 폐단을, 간디는 ‘하느님이 진리가 아니고, 진리가 하느님’이라는 진실을, 백범은 ‘순박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용기를 보였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적이다. 어느 날 정권이 무너지자 그렇게나 유신헌법의 위대성을 역설했던 인물들이 돌변하였다. 그게 정녕 그렇게나 문제가 많은 것이었다면 진작 좀 그러지. 그러다가 정국이 또 흔들리자 상황은 다시 바뀌었다. 이런 사람들의 모습이 한때 나를 무척 실망스럽게 했다. 어지러운 시대의 황당한 편린들이다. 한때 나는 난치병을 고친다거나 어떤 발명이라도 하는 과학자를 선망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분명 의미는 있을 일이다. 그러나 무고한 사람들이 마구 죽는 건 더 큰 문제이다. 무엇이든 의심하기 시작하면 다 의심스러운 법이다. 도대체 세상에서 훌륭하다는 것들이 훌륭해 보이지가 않았다. 그 판단 기준이 어디에 있으며, 그것에 제 삶을 다 바친다 하여 충분하다는 근거는 또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이건 내게 깊은 수렁이었다. 나는 이런저런 책들을 찾아 읽었지만, 항상 그 나름의 이유란 게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남들한테 자랑조차 되지 못하는 책들을 사느라 돈을 쓰지는 않았으리라. 그런데 이런 짓도 오래 하다 보니 깨닫는 바가 있었다. ‘이미 오래 전에 나와 같은 문제로 고민한 분들이 아주 많았구나.’ 이러면 내게 또 책을 살 구실이 생긴다. 나도 나이가 드는가? 근래에는 아주 정교한 논리보다 조금은 아득한 연민에 자꾸 이끌린다. 이게 나 자신에 대한 것인지 남들에 대한 것인지 나도 모른다. 결국은 누구나 이러다가 늙어서 죽는구나. 삼라만상이 허망하다는 인식은 없다. 그러나 모두 측은하지 않느냐. 그래서 논리로 따지면 외면해야 마땅할 비행마저 더러 인간적인 면모로도 보인다. 나는 아직도 문학이 무엇인지 모른다. 나야 그저 그 가까이에 있겠지. 어쩌면 이런 내 느낌조차 한갓 착각일지라도, 내겐 뭔가 건드려야 할 것들이 있지 않을까? 설령 이게 문학이 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는 언급해야 하지 않을까? 저마다 먹고산다고는 하지만, 그 삶의 내용이 너무나 비루하다. 더러 자신의 이력을 밝혀야 할 때가 있다. 어디에서 아무개의 자식으로 태어나 어느 대학 무슨 학과를 나왔고, 직업은 무엇이고, 혼인은 하였는지 말았는지 하는 등속이다. 자기가 가진 게 뭐라는 식의 주장이 때로는 애틋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것들이 다 배추에 붙은 벌레의 구구한 사정이다. 배추벌레는 나중에 배추흰나비가 된다고 한다. 그러면 그 배추흰나비는 배추가 세상에서 하찮은 존재란 사실도 단박 깨달을 것이다. 배추벌레와 그리 다를 바 없는 인간도 나비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로선 영광이겠다. 그러나 이건 내 욕심이 아닐까? 어두운 밤 가물거리는 불빛에 홀려 날아들었다가 끝내 불길에 날개를 태우는 나방이라면 모를까! 퍼덕퍼덕. 그러고 보니, 나는 어쩐지 나비보다 나방에 더 가까운 생물이 아닌가 싶다. [2005.11.] [작자 소개] 김인기 경상북도 영천 출생(1962). 《월간에세이》로 등단(1991) 수필집『함께 가는 우리들』(1999),『참 좋은 날』(2006). 대구경북작가회의, 대구수필가협회 회원. 전자우편: gagozigo@hanmail.net  
59 (김이숙 시인)자선 대표작 10편 file
편집자
1543 2016-01-12
자화상 볏잎으로 만든 산실 속, 염낭거미가 힘겨운 산통을 겪은 후 갓 태어난 맑은 새끼들은 어미 등에 진드기같이 달라붙어 남김없이 진액을 빨아 먹는다 외갓집 부엌에서 유난히 큰 아기 낳느라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랐던 엄마가 김장을 담그신다 나는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밥을 먹는다 어미는 배고픈 새끼들에게 제 몸을 선뜻 내어준다 새끼들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가벼워진다 어미가 가벼워지는 만큼 새끼들은 조금씩 무거워진다 이제 예순의 엄마는 좌골신경통 앓는 다리 연신 어루만진다 나는 자꾸만 살이 찐다 캐빙막장 그는 병방, 마지막 채탄광부 이슥한 밤 별 보고 집을 나와 지하 수백 미터 캄캄한 막장에서 쥐를 벗 삼아 석탄을 캤다 칠면조 같은 마누라 철마다 옷 맞춰 입고 모양내더니 막장에서 들숨날숨 나눠 쉬던 친구와 배가 맞아 올망졸망 자식 넷 내팽개치고 가산 탈탈 털어 야반도주하던 날도 작은 돌멩이 바윗돌 되는 막장에서 갱내분진 마시며 석탄을 캤다 가슴 무너진 아들 위해 백발노모 밥해놓고 이불 깔아놓고 무나니골 소풍 가는 손자손녀 따라나선 날 석탄 더미에 하초가 깔려 나는 살아야 해 나는 절대 죽으면 안돼 울부짖던 그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캐빙막장이 되어버렸다 광산촌 사북읍 정암광업소 눈만 번들번들 허연 이 드러낸 채 탄가루 뒤집어쓴 광부들이 곡괭이 메고 산에서 내려오면 타지에서 갓 시집온 새댁, 군인들이 온다 하였지요 그럼 옆집 아주머니 웃으시며 기다려봐 자네 집으로도 하나 갈 거야 했지요 여자들은 늘 조심조심 다녔지요 잘못하여 출근하는 광부 앞질러 가면 성질 불칼 같은 사람 안방에 드러누워 일당 달라 생떼 부릴지 모르거든요 뉘 집 아저씨 잠 깰까 집에서건 밖에서건 아이들도 조용했지요 까마귀 울거나 흉몽을 꾸면 출근을 삼갔지요 청색홍색 보자기에 도시락 싸고 밥주걱도 네 번은 뜨지 않았지요 매사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사고는 늘 있었지요 잊을 만하면 울며 떠나는 이 있었지요 모든 길은 검은 길, 흑빛이었지요 문디 가시나 희디흰 빨래를 널면 눈결에 석탄 알갱이 묻어나는 탄광촌 사택의 공동우물은 얼음 동굴 같아 학교 가는 길은 허리만큼 눈이 쌓였다 그해 아이들은 곧잘 무언가를 잃어버렸고 그때마다 교무실로 불려가던 맘 둘 곳 없어 시퍼렇게 멍든 가시나 엄니, 아부지가 네 번째 장가를 간대요 천더기 문디 가시나 눈물은 제 엄니 무덤가 돌아 놓여진 참꽃 위로 방울방울 떨어졌다 꽃잎 떨어지고 살 에는 참꽃 밭에 아서라 아서라 참꽃 밭에 돌아다니다간 문디한테 잡혀간데이 살천스런 바람이 홰를 치며 울었다 참꽃이 피려면 아직 멀었고 빨래 빨던 손이 뿔그죽죽 아렸던 1981년, 겨울 바람도 길을 잃었다 밥줄 가로수 활주로처럼 줄지어 선 강원랜드 가는 길 잭팟을 꿈꾸다 주저앉은 사람들 길에 잠들어 어쩌다 수중에 몇 푼 날삯으로 거머쥐는 날이면 취한 듯 어김없이 불야성으로 감겨들어 간다 남편 잡으러 왔던 아내도 부나비처럼 따라 들어가 옆에 눕고 카지노 문이 열리기만 목 빠지게 기다리는 읍내 장사치들 시선은 모두 한 방향 녹슨 시간, 동공을 가득 메웠던 검은 길도 가뭇없고 깊은 땅속 길고 어둔 갱도 사람마저 검어져 분진 묻은 밥숟가락 밀어 넣던 검붉은 입술 광부도 이제 없는데 칙칙한 벽돌 어깨걸이로 버티고 있는 건물 쪽에서 맞은편 한곳으로 모아진 질긴 거미줄 호사도요 사내로 태어나 새끼 낳고 살아는 봐야지 배운 것 없는 촌놈 장돌뱅이로 트럭 몰고 다녀도 낫낫한 가슴에 얼굴 묻고 살어는 봐야지 내 낳았으니 키우는 건 니 몫이라고 젖도 물리지 않고 기저귀 한번 갈아주지 않고 기분 따라 치장하고 내키는 대로 둥지 비우는 아내란 여자 관심은 늘 밖이었다 코롱코롱 친정 나들이 어린것은 두고 탈래탈래 돌아와 내 원하는 것 주면 데려오겠다고 사내는 몇 날 며칠 낯선 나라 새끼 찾아 헤매고 돈 제일 중한 여자 쥐여줄 만치 쥐여주고서야 어린것은 아비 품에 자란다 암컷이 호사를 누려 이름 붙여진 호사도요, 어쩔 수 없이 닮는다 강마른 가슴에 길 잃은 사내 눈 밑이 누렇다 바람 숭숭 접시 같은 둥지, 그래도 청청 하늘 담은 맑고 까만 눈동자 사내는 아비라서 웃는다 만항 가는 대발 ㄷ자 지붕 너덜너덜 널빤지 덧대고 군데군데 돌덩이로 누른 그 집 삐딱구두 새벽 눈바람 우물물 길을 때 연거푸 꼬꾸라지더니 숟가락 걸어 어린 아들 가둬놓고 잘도 싸돌아다녔다 끝내 미친 바람 제대로 불어 아이는 몇 날 며칠 울어쌓고 갇힌 방에서 똥오줌 지렸다 술병 든 한량 아비가 데려온 또 다른 삐딱구두 띄엄띄엄 버스도 끊기고 사흘 멀다 내리는 눈길에 엎어지더니 검은 냇물 따라 흘러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어린 날 눈발 헤집고 걷던 길 사라지고 이제는 사내가 된 그 아이, 마누라 가진 적 없어 자식도 집도 없이 객지 떠돌며 여적 운다 밥을 먹어도 술을 마셔도 손이 운다 울컥울컥 멈추지 않고 떨리는 손 그만큼 울었으면 꽃 필 때 되었다고 만항, 함백산 흐무러지게 야생화 핀다 그 길엔 맥이 산다 아스팔트 위에도 봄비 내리는데 숨이 끊어진 채 널브러진 고라니 느닷없는 충격에 어미 배 밖으로 내팽개쳐진 눈 한번 떠보지 못한 새끼들 다 만 살 아 가 는 길 인 데 바퀴가 돌 때마다 깊숙이 달라붙는 울음 새까맣게 죽어 나자빠지는 꿈이 너무 슬퍼 눈감게 되는 날 문득, 꿈을 먹고 산다는 맥이 어딘가 있다면 이 길에 살지 않을까 더러 꿈이 사람도 괴롭힌다지만 빠름과 느림이 수없이 충돌하는 길 위험의 불빛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눈이 찢기고 잘리고 흩어져 길 위에서 길을 잃어버릴 때 꿈이 꿈을 잡아먹는 길을 오가며 길 잃은 꿈 다시 꽃필 수 있게 거두어주는 붉게 진자리 살뜰히 보듬어주는 그 길엔 맥이 산다, 는 생각 행복슈퍼 낭창낭창 살랑이는 바람 같던 스물셋, 선 봐서 만난 슈퍼 총각 좋아 슈퍼 안으로 들어갔어 그녀는 이제 슈퍼 아줌마 그녀를 데려가던 날도 슈퍼 문 열었던 아저씨 당최 문 닫는 일 없어 비 오고 눈 와도 명절에도 아이 둘 낳을 때도 그런 일은 없어 아줌마는 아파트와 슈퍼 사이만 왔다갔다 시부모 수발들고 참새처럼 드나드는 시누 가족 밥해주고 아들딸 키우느라 슈퍼 통로만 오락가락 미치게 바람 불어도 네모진 카운터 앞에 전화기만 붙들고 앉아있어 놀러 좀 와 거미 그지없이 오르고 오르고 끝 간데없이 곤두박이 친 날들 지나고 보르르 부르르 떨려온다 끝없는 메시지, 느낀다 촘촘히 또는 성기게 느슨하게 혹은 팽팽하게 하루살이 여린 날갯짓에도 애벌레 기어가는 작은 소리에도 설렌다, 전율한다 창문 아래 고양이가 운다 새가 철사로 집을 짓는다 수달이 댐을 긁어댄다 쓰러진 노루 물컹한 배 위를 자동차가 달려간다 세상을 에둘러 점자를 읽는다 나의 집에 걸리지 않는 것은 없다 오늘 밤은 달이 먼저 걸린다  
58 (김이숙 시인)나의 문학관, 약력
편집자
1083 2016-01-12
되짚어보면 글은 이름 석 자 겨우 알고 손수건 가슴에 달고 입학하던 그때부터 언제나 좋은 벗이었다. 덜 외롭게 덜 아프게 견디게 하는 힘이었다. 길을 가다 번번이 멈춰 섰고 자주 울었고 언제든 어디서든 어떤 글이든 썼다. 그냥 좋았고 편했고 잘 할 수 있었고 당연한 듯 교만해졌다 뒷통수도 맞았고, 공들여 채운 것들이 순간 텅 빈 듯 강한 충격을 받기도 했고 그래서 고마웠고 행복했다. 이런 글과 어느 순간부터 소통이 힘들어졌다. 핑계가 많아졌고 욕심이 늘어났고 게을러졌다. 그래도 놓아버릴 수 없어서 붙들고 시를 썼고 시집을 냈다. 이따금 스스로에게 묻는다. 너는 하루 중 얼마를, 일 년 중 얼마를 시인으로 살고 있느냐고. 어쭙잖은 핑계들은 차치하더라도 쉬 뻥끗할 수 없으면서 문학관이라니, 감히 할 말이 없다. 다만 경계를 잘 넘나들 수 있기를, 부끄러운 시간을 줄여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경북 상주 출생. 1998년  
57 (임수랑 시인)자선 대표작 10편 file
편집자
1799 2015-10-10
한쪽 잠시 현관입구에 세워놓은 20리터짜리 가연성쓰레기봉투, 막 바닥으로 넘어져 안의 것들 모두 토해낼 태세다 그래서 나는 신발끈을 묶다가 기울어지는 쪽을 얼른 신발장에 기대어놓는다 그래도 한쪽 어깨 점점 기울어진다 길가 모퉁이에서 산 미나리 쌌던 검은 비닐 봉투, 칼날에 얇게 깎여 나온 연필밥과 젖은 저녁 무렵 박박 찢어낸 A4용지, 낙서투성이 신문지와 신정아도 먹고 싶었다던 삼양 짱구 봉지, 간밤에 야식으로 냈던 구운 감자 쌌던 호일뭉치와 접시에 남은 기름을 닦아낸 키친타월, 꼬깃꼬깃 뭉쳐서 버린 휴지로 가득 찬 무거운 적체다 기울어지는 것은 한쪽이다 양쪽으로 동시에 기울어지는 것은 기울어지는 것이 아니다 뒤뚱거리며 기어코 바닥에 떨어지려는 것은 한쪽이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봉투 끝에서 법흥사 적멸보궁 처마에 고인 빗물이 떨어진다 미나리 파는 할머니의 빈손처럼 거칠지만 기댈 데가 있는 쪽이 나는 안심이 된다 천지간 무수히 많은 한쪽 중의 한쪽, 어느 쪽이든 한쪽을 차지해야 한다면 나는 기울어지는 쪽이다 봄날, 파편을 응시하다 세기말의 개 짓는 소리들이다 하지만 소리들이다 그래도 흰옷 입은 인간들은…… 그것은 저만큼 떨어진 공중에서 터지는 풍선 같은 소리였다 터져 버린 풍선은 더 이상 풍선이 아니다 양재동 시민의 숲, 봄의 공원 위로 풍선의 파편이 날아다니다가 그리도 연한 빛깔로 하늘을 떠받친 채 바람을 가르는 나뭇잎에 걸려서 안식을 찾는다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 앞에서 어린 아동들이 졸졸졸 뛰어다니다가 나무에 기대서 하늘을 쳐다보다가 얼굴에 떨어지는 풍선의 파편에 호흡을 심는다 탄약냄새, 피 냄새, 회초리와 고함, 흰옷들과 말총들의 젖은 냄새를, 한참 동안 하늘과 수평을 유지하며 치켜 올린 머리, 마지막으로 바람에 쓸려 볼이 빵빵해지도록 아동은 바람을 마신다 그리고 사뿐히 짓밟고 지나간다 신록의 나뭇잎이 떨어뜨린 풍선의 파편을 어느 누구도 파편을 나중에 쓰려고 몸속에 모아두지 않는다 사과와 낮잠 고통으로 고통을 달래는 고통이 청사과라면 머릿속에 사과의 푸릇푸릇한 기운이 퍼지고 잇몸 사이사이 뻗어나가 딱딱 아래 위 흰 이빨 맞닿을 때 사과즙 흘러내려 온몸에 말라붙은 노란 허기, 상처딱지 같은 것들 사막과 납골당, 팔려가는 것들 즐비한 지구를 적시고 소녀가장이 사는 골목길에 청사과가 주렁주렁 열리면 냄비 속의 식은 음식 입속에서 청사과처럼 씹히고 지구와 골목과 사막에게 청사과가 오죽 많이 필요한지 누나 동생 보고 울고 보고 웃다 불룩 나온 배 두드리며 초여름 날 오후처럼 낮잠 자는 낮잠 깨지만 않는다면 여름 여름에 잎들이 더 짙어진다 짙푸르다 못해 나무 잎잎 침묵한다 이제 그만 계란 내피처럼 얇은 고도(古都)의 지도처럼 탈색된 세상의 관계 방패와 총도 없이 맞닥뜨리는 뜨거운 지금 녹음은 빌딩 외벽만을 드리우고 어디엔가 나둥그러져 있을 잔해 폭격으로 무너진 호주머니에서 떨어진 녹슨 동전의 집 잃은 비명소리는 햇빛에 더 도드라진 핏빛처럼 붉어진 낮술 한 잔 견딜 수 없는 막다른 여름에 잎들이 짙어진다 비록 그래도 거리 거리는 언제나 그립다 거리는 죽은 시인들이 지나간 자리 시인들이 영혼을 훔쳐가 버린 거리는 언제나 빈 곳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거리를 걸어도 거리에 서 있어도 마찬가지 거리는 결핍이다 거리는 허점이다 세상의 껌 하얀색 껌 다섯 알이 떨어져 있다 누군가의 발에 껌이 밟힌다 퇴근 시간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탄다 금강구두는 에스콰이아 구두에게 밀려 움직인다 구둣발을 들어 올릴 때마다 구두 밑창에 붙어 다니며 지하철 바닥 여기저기에 들러붙는 껌 하얀색 껌 다섯 알을 떨어뜨렸다 립글로스를 발라 입술이 반짝거리는 여자는 방금 학교를 졸업했다 살색 스타킹에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두꺼운 <오만과 편견>으로 훤한 무릎 위를 가렸다 여자는 껌을 입안에서 굴리며 침을 자꾸 삼킨다 맞은편에 앉은 사내들도 침을 삼킨다 하얀색 껌 다섯 알이 여자의 다리 밑에 머물러 있다 여자가 떠나고 난 자리에 여드름투성이 남학생이 가서 앉는다 남학생의 발에 채인 껌 두 알이 아슬아슬하게 굴러다니다 지하철 바닥 중간에서 멈춘다 하모니카로 <즐거운 나의 집> 불며 지나가는 장님여자가 껌 한 알을 밟는다 껌은 납작해진다 사람들이 납작해진 껌을 보고 있는 사이 장님여자는 전철 칸 끝에까지 갔다가 하모니카로 <즐거운 나의 집>을 다 불기도 전에 되돌아온다 납작해진 껌은 보이지 않는 눈에 의해 또 밟힌다 몸이 무거워 보이는 남자가 들어와 바닥에 붙은 껌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지나간다 남자의 무거운 몸은 즉석복권을 긁듯이 눈을 두리번거리며 빈자리를 찾는다 여자가 떠나고 난 자리에 앉아있던 여드름투성이 학생이 자리에서 떠나자 남자는 얼른 앉는다 그 남자가 앉을 때 구둣발에 채여 껌 한 알이 구석에 박힌다 껌 한 알은 사람들 발 사이로 사라진다 껌 한 알은 남자의 편한 신발 락포트 밑창에 달라붙는다 그 남자 음음, 헛기침을 한다 껌은 바닥에서 벽을 따라 지하철 천장에까지 들러붙는다 불가사리 거실에 나와 자다가 심장이 아파 눈을 뜬다 심장은 바닥에 그대로 붙어있다 심장이 빠진 몸은 욕실 거울 속의 누렇게 뜬 달을 바라보다 칫솔에 페리오 치약을 발라 싹 싹 싹 칫솔질을 한다 싹 싹 싹 닫혀있는 현관문으로 뱀처럼 은밀하게 바닷물 스며든다 파란 거품 냄새 파랗게, 파랗게 자꾸 스며들어와 거실을 채운다 바닥에 붙어 있던 심장은 수력에 떠밀려 물속에 둥둥 뜬다 황금 동전 같이 작고 예쁜 물고기들로 물속이 환하다 바닷물 속 둥둥 떠다니다가 불가사리와 마주친 심장은 귀퉁이부터 그와 몸을 맞춘다 춤을 춰. 춤을 춰봐. 이렇게 살랑살랑 강렬하게, 몸을 움직여봐. 심장은 춤을 춘다 하지만 몸을 잃어버린 심장에게 춤은 외롭고 두려운 일이다 툭 칫솔을 놓치고 만다 파도가 하얀 세면대 위로 산산이 부서진다 경계의 노래 머리는 한낮 내내 뙤약볕 속에 방치된 돌멩이처럼 뜨거워지고 현실은 낡아서 물이 새고 온도조절이 되지 않아 고장 난 스팀에서 뿜어대는 수증기 같다 21세기로 넘어와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밀알 크기의 답도 없는 감동과 생활의 문제 저렇게 더운 날 집이 없는 자는 폭염의 한낮이 오뉴월 한을 품은 여자 같아 으스스하다 그들 중 누군가 읊조리는 주술의 노래는 그래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흐린 하늘같은 거였다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이 예고되는 날 집이 없는 자는 쇳물이 끓고 있는 용광로 같은 세상 앞에서 경계 너머에 있는 누추한 시멘트벽으로 가린 집에서 비틀어진 노래라도 부를 수 있기를 바라고 아름다운 하모니가 그친 분수가 꺼진, 분수대 주위를 맴돌며 돌멩이를 던질 기회를 엿보는 아이들 아이들은 돌멩이를 던지고 싶어 한다 명랑함이여. 어디서나 노래를 부르는 소년들의 얼굴은, 목소리는 저리도 평화로운데 세계는 왜 평화롭지 않을까?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다 어른은 어른이 되지 못했다 이 아슬아슬한 경계여 어머니와 올드무비와 찐빵 귀갓길 모퉁이의 분식집 아저씨 손님들 앞에서 무쇠솥뚜껑을 들어 올리고 있다. 골목의 허름한 입구는 하늘의 문처럼 어둑해졌고 골목에서 우리를 부르던 젊은 어머니의 목소리는 기억 속에 희미해진 올드무비처럼 제대로 재생되지 않는다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던 길고양이 한 마리는 담벼락 옆에 주차된 트럭 아래 땅 밑으로 사라지고 무거운 무쇠솥뚜껑이 열리자 찐빵이 부풀어 오른 냄새는 공중으로 부유하며 이내 골목전체를 차지한다 허연 소복 입은 귀신들이 한꺼번에 내가 먼저, 네가 먼저, 하며 떠오르고 나서야 검은 솥 속에 숨어있던 부풀어 오른 찐빵의 실체가 뜨겁다는 걸 안다 반으로 자른 찐빵 안에 든 팥소를 보는 순간 병상의 끝자락을 물들였던 어머니의 검은 피부와 마지막에 라라를 놓쳐버리고 차갑게 흔들렸던 오마 샤리프의 까만 눈동자가 떠오른다 너는 찐빵을 삼키지 못한다 그것이 전체가 아니라면 허연 성에가 낀 마차 바퀴를 굴리며 골목의 끝을 떠나가야 하리라 하지만 너는 이십 년 전으로 돌아가 제임스 블런트를 듣는다 무화과 무화과가. 있었다, 없었다, 어제 같은 오늘이, 그래서 어제가 된 오늘과, 오늘이 된 어제와 내일이 될 오늘이. 있었다, 없었다. 달고나 눈을 가진 남자와 붉은 물고기의 벽화가. 있었다, 없었다. 거미가 고통을 참고 기어들어간 벽의 눈으로. 있었다. 없었다. 바람과 나무와 그림자와 흔들리는 관계에 대하여 노래하는 서시가. 있었다, 없었다. 왼쪽과 오른쪽으로 엇갈려 두 번이나 서로 어깨를 스치며 산책하는 두 명의 여자가. 있었다, 없었다. 무화과 속에는 이 모든 걸 무화시키는 그늘의 밥상과 얼룩진 흰 빛과 끈질기게 달라붙는 자본의 천박한 숲이. 있었다. 없었다. 가까운 계단들에서 어깨가 통째로 실려가 방에서 더 먼 거리가 되었다. 거미의 시체가 말라붙은 텅 빈 벽속으로 어디선가 들려오는 크리스마스 노래가. 있었다. 없었다. “있음”의 찰나가 지나갔다, 지나가지 않았다. 다시 있었다. 없었다. 사라졌다. 다시 사라지는 죽은 시인의 이끼 낀 시가, 다시 선글라스를 덧씌워서 팔아먹은 노을이, 다시 하늘의 천 개의 계단에 동전을 한 개씩 던지며 도착한 노을이. “없음”의 영원으로, 마지막으로 우리는 비어있는 바다를 해체시키며 철탑에 갇힌 면류관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사라지고 없었다. 무화과를 입 안에서 터뜨리는 소리가. 있었다. 없었다.  
56 (임수랑 시인)나의 문학관- 그 길에서 보이지 않는
편집자
1490 2015-10-10
그 길에서 보이지 않는 -움직이는 것들 길은 어디로 향하는 것이기에 길이라는 의미가 주어진다. 그렇지 않으면 길이 아니다. 길은 차 없는 날, 대학로 한복판에서 아이가 마술사의 묘기를 서서 구경하거나, 정오의 빛이 거리에 쏟아질 때, 종로 종묘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노인,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잡지에 소개된 가게를 물어물어 찾아가는 여자, 휴가를 나온 군인이 일산 라페스타 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있고, 여의도 대형교회 앞에서 학생이 친구를 기다리며 잠시 서있을지라도 그들은 계속 길을 가고 있다. 몸은 잠시 멈춰있지만 마음은 이미 어디를 향해야할지 주파수를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길은 움직이는 것이다. 길은 걸어가는 곳이지만 차를 타고 쌩쌩 달려가기도 한다. 길은 우리가 땅을 딛고 있는 세계 안에서 끊임없이 이어져있다. 똑같은 길을 또 다시 일주할지언정 끝이 나지 않는다. 길은 시작과 맞물려 있다. 하지만 길은 언제나 끝을 향해서 간다. 끝이 없는 길의 끝이 있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내밀한 의미 남들이 많이 하는 일을 하는 것은 쉬워 보여도 어려운 일이다. 남들이 많이 하는 일을 못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소설로, 시로 남들이 많이 하는 일이나 말을 남기는 것이다. 문학은 그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 자신의 눈으로 받아들인 주관적인 입장이 개입된다. 사람들은 살아오면서 길에서 만난 무수한 모퉁이와 모서리, 몇 군데 막다른 골목과 급커브, 평탄대로를 갑자기 만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작가라면 그 길을 걸어오며 획득한 그녀, 혹은 그가 쓸 수 있는 문체가 있다. 문학작품은 그것이 태어난 시대적 현실의 직접적 소산으로 읽히는 일이니 각기 걸어온 길에 따라 달리 해석할 여지가 남아있기도 하다. 지나온 길에는 지금 여기보다 더 깊은 내밀한 의미가 함의되어 있기 마련이다. -코맥 맥카시의『로드』 『로드』 에서 그리는 세계가 그리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로드』에선 비축해두었던 식량은 모두 바닥이 났고 온 땅에 살인이 만연하다. 매카시는 서서히 붕괴하는 문명에 대한 끔찍하고도 준엄한 소설을 쓰기 위해 인간 감정의 가장 어두운 곳까지 걸어 내려갔다. 모든 원인과 과정, 전조는 생략한 채 『로드』는 바로 증상 한 가운데서부터 시작한다. 세상은 곧 부모 눈앞에서 자식을 잡아먹는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된다. 도시 전체를 시커먼 약탈자들의 세력이 장악하고 있다. 약탈자들은 폐허에서 굴을 뚫고 돌아다니다 잡석 더미에서 눈과 이만 새하얗게 빛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을 때마다, 남자는 아들이 더 큰 고통을 겪기 전에 아들을 죽이고 자신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극도의 공포에 시달린다.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이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들 아버지와 아들에게는 최소한 서로가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세상의 전부였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소설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기껏해야 절망 없는 절망 밖에 없다면 현실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조세희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난쟁이 가족의 절규가 더 이상 호소력을 갖지 않는, 상식과 순리가 지배하는 평범한 세상이 오길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쓴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세상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안고 오늘을 살아가는 불확실한 존재다. 문학은 이 순간도 쉬지 않고 세상에 진동하는 무거운 증상의 원인을 지금 여기 인간을 통하여 말하고, 어딘가 있을 그 근원의 끝을 향해서 가는 일이다. 다시 또 절망할지언정 바로 지금 우리는 그 너머에 있는 어떤 것이라도 소설 속에서 잡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기는 적나라한 자서전이다 최근엔 일기를 쓰지 않지만 이전부터 일기를 오랫동안 써왔다. 큰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일기는 내게 더 중요한 부분으로 다가왔다. 예전 일기에서 시를 건진 것도 많았고, 마음이 바로 동할 때 일기를 쓴 것은 일기를 쓸 당시의 일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록한다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일기란 진실하지 않을 구석이 없는 것이므로 일기 대목이 그대로 시나 에세이가 되기도 했다.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나 소설대목이 되기도 했는데, 혹은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시를 일기에 바로 기록하거나 그때그때 떠오르는 소설을 바로 구상하기도 한다. -인간에 대한 생각만큼 더 새로운 것은 없다. 지금도 운이 좋으면 길 위에서 비바람에도 묵묵히 피어있는 맨드라미를 만난다. 그 꽃을 보면서 잠시 유년으로 되돌아가보기도 하고, 한낮의 거리에서 자작나무의 그림자를 보고 러시아 시인의 시를 읊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길 위에서 제일 먼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다. 여자들, 남자들, 할아버지, 할머니들, 아기들, 청소년들, 여자 아이, 남자 아이, 장녀와 차녀, 대학생들, 알바생들, 샐러리맨들, 노숙자, 노점상, 실업자, 환자, 장애우, 노동자들……. 길 위를 지나가며 많은 사람들을 본다. 시인의 숙명처럼 아주 많은 사람들을 보는 것이 때론 벅찬 일이기도 하다. 길은 모든 사람의 도착지이기도 한 것처럼 길은 멈출 수 없는 문학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세계에 질문을 던지는 일 현실과 인간세계에 대한 전망은 소설로 꿈을 꾸기도 전에 이미 불길하다. 내 문학의 방향 또한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내가 딛고 서있는 길과 마주하고 있는 불안한 미래가 대부분이다. 천안함, 세월호의 안타까운 젊은 죽음들, 산업현장에서 재해를 당하고, 해고자복직 시위를 하다가 부상을 입은 사람들하며, 떡볶이 할머니의 좌판도 길 위에서 내동댕이쳐진다. 하지만 그 길에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 길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앞에 놓인 현실에 문제의식을 갖고 외부 압력을 이겨내면서 끊임없이 세계에 질문을 던지는 일, 사람들에게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 작가로서의 가치를 지켜내는 일이 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걸 보이게 하는 일, 인간에 대한 생각이 퇴색되지 않는 한, 절망적인 현실에서도 새로 도래하는 신처럼 계속 살아서 기능하는 일이 문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약력 2003년 시 「 마른 꽃」으로, 2006년《월간문학》에서 단편소설 「 꽃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1년에는 단편소설「끝나지 않는, 녹슨」으로 5.18문학상을 수상했고, 교보 <퍼플>에서 장편소설《지하철 아이》, 소설집 《끝나지 않는, 녹슨》과 《재》, 《로라의 게시판》, 《배달구역》을 비롯하여, 장편동화 <엄마의 달>, 제 1시집 <늪의 방식>과 함께 십여 권의 시집을 전자책으로 냈다.  
55 (이원준 시인)자선 대표작10편 file
편집자
1626 2015-09-10
서울특별詩 - 봄의 자백 까나따라마빠싸아짜카타파하 날 선 모국어들 시린 발로 겨울도시를 지나 뛰어갔다 불면을 베고 누웠던 새벽이 일어나 결국 꽃을 머리에 일 때 책갈피 넘기듯 아이들이 태어났다 죽어가고 도로표지판은 더 이상 길을 품고 있지 않았지 태클 없이도 자꾸만 넘어지는 시민들 마음에 메뉴판 떼어낸 착한식당은 착하지 않은 사람들로 붐비고 하숫물로 커가던 가로수가 머리를 숙이면 이별 같은 바퀴의 자동차가 구른다 길바닥 버려진 비닐봉지처럼 잠들고 싶어 비 온다 젖지 않는 비닐봉지 그만큼 높아지는 허공 하늘에 가까운 다리 위에서 빗물 툭툭 차는 새벽의 소녀 절망을 검산하는 사이 또 아침을 아무렇게나 던져놓는 허리 꺾인 신문 먼저 일어나는 자 이제부터 불행할지니 아직 홀몸인 태양이 기웃거리는 아래 꽃샘추위에 멱살 잡힌 봄의 자백 사각도시 둥근 지구는 언제부턴가 사각의 종이 위에 그려지고 많은 도시들도 사각의 이념 아래 편리하게 角을 부여하는 방법을 익혀왔다 도시는 단지 사각으로 말할 뿐 둥근 산을 깎던 발파음의 기억조차 품지 않는다 조각난 꿈을 줍던 허리 낮은 지붕 위로 갈매기가 날아왔지만 아무도 하늘을 보지 못했고 철 늦은 풀꽃들만 사각사각 상처 난 콘크리트를 비집고 무겁게 일어서 일방통행의 행인들 걸음을 방해했다 다양한 오르가즘을 위해 시민들은 삶의 체위를 매일 바꿔야 했고 밤은 언제나 컬러로 켜지고 남근을 닮은 빌딩들은 앞선 유행의 현수막을 착용하여 현재형의 바람이 불고 있음을 알렸다 뿌리를 포박한 가로수들을 남성명사의 트럭이 어디론가 데려갈 때마다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지만 서 있지 못한 시민들은 손끝으로도 결코 질문하지 않고 가끔씩 급송된 고딕체의 전단이 새벽도시를 덮어 말없음표로 늘어선 창문마다 일찍 불을 켰다 둥글지 못한 지갑을 서둘러 꺼낸 이들은 또 버릇처럼 하루를 셈하고는 역시 오늘도 둥글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의 둥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사각의거푸집사이로살아남은여름강이비상식량으로 갈 그 리 내 든 매 을 며 리 려 기 원 는 몰 날 눈 아 다 을 좇 아 맞 를 른 오 으 새냄은익낯때힐눕을몸운거무해향를류하엿뉘엿뉘며 자연은 자산 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 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 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 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 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 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 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 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 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 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 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 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숲金 목수 장씨 교회의 시뻘건 십자가가 하나 둘 셋···. 달궈진 인두처럼 돌아누운 밤하늘의 덤덤한 등짝을 지지는 거룩하지 않고 고요한 밤 그 사이로 조금 멀리 보이는 이단인 양 외롭게 녹십자를 이고 있는 강동성모병원 삼층 입원실엔 공사장 비계에 매달려 못질하다가 실족해 목과 한쪽 다리를 다친 목수 장 씨가 있다 관 뚜껑 닫을 때꺼정은 장담 못 할 게 바로 우리네 인생이여 병문안 온 사람들을 오히려 위로했다는 장 씨 한 달 가까이 닳아빠진 대패처럼 누워 있다 나머지 두 다리는 멀쩡하니 안심하라고 옆에서 눈물 찍는 마누라 손잡으며 다른 손으로는 풍뎅이 등딱지 같은 성경책을 꼭 쥐더라나 그를 만나고 온 사람들은 입을 모아 죽은 나무 깎아먹고 사는 목수라 부자는 못 되어도 제 둥지만큼은 알아서 타고날 줄 알았는데 방세가 밀려 곧 쫓겨날 판이라며 애석해 했다 오늘도 초록빛 십자가 밑에서 물음표로 누운 몸으로 성경책을 읽고 있을 장 씨가 문득 떠오른다 인두자국 같은 달만 퀭한 낯빛으로 떠 있는 이 밤에 둥근 것에 대하여 - 감자 긴시간온몸으로 세상의양식이될수있는법 익히고익혔다모나면칼질더받는다는 교훈아래동그랗게둥지를마련하는습관을 들이고간혹튀어나가려는부위몸굴려안으로 쑤셔넣었다둥근것이편하리오래전부터전수된 세상살아내기보이지않는지하에서남몰래 예습했다동글동글맺힌땀처럼여러개 눈달고지상으로뽑혀나갈 그날을기다리며 둥근 것에 대하여 - 동그란 손거울 마누라 손거울 들여다보니 그 속에 내 얼굴이 아,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얼마나 슬펐을까 ( ) 비워두어야비로소충만해지고 좁히지말아야뭐라도품어주는 선택란이란이름하에디룩디룩 살쪄가는자유같았던이속에서 이제는그만튀어나가고싶구나 대한민국 목차 제1장 광화문, 펜과 칼 1. 북악산 후광으로 점잖이 앉아 2. 훈민정음 해례본을 펼친 세종 3. 한손 들어 무어라 연신 일러주는데 4. 칼 움켜쥐고 선 결의의 충무공 5. 높은 데서 한곳만 노려보며 6. 도무지 대꾸하지 않는다 7. 멀찍이 떨어져 등 돌린 채로 8. 여태 제2장 국가관 1. 내가 잘 살아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2. 내가 잘 돼야할 텐데 자신 없습니다 3. 내가 행복해야 되는데 모호합니다 4. 내가 걱정 끊어야하는데 복잡합니다 5. 내가 언제 고꾸라질지 몰라 불안합니다 6. 너에게 미안합니다 7. 내가 앞으론 더 너그러워지겠습니다 제3장 돌 섬 1. 마음속 강에 2. 잦은 신경질이 쌓은 3. 돌섬 하나 4. 아, 불쌍한 내 여의도! 재4장 공통 레시피 1. 밥 먹다 더부룩하면 왼손으로 배를 오른쪽으로 쓰다듬지 대부분 2. 똥 누다 변비다 싶으면 오른손으로 배를 왼쪽으로 쓰다듬고 3. 잘 먹고 잘 싸기 인간 숙원에 필요한 양손 4. 작은 몸의 나라 한데 어우러지고 소통되도록 5.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고 6. 팔도! 신발 두 켤레 두 아들 신발이 현관에서 나를 본다 집 나갈 때 편하게 신발코 밖으로 두렴 어릴 때부터 일러줘도 생활로 만들지 못한 주인들 닮은 얼굴이지만 습관처럼 드나들다 길 되면 떠날 성년의 두 아들 물잔 찻잔 술잔까지 투명하게 바꾼 채 언제나 지켜보려는 미련과 마주쳤다 각질로 남은 추억만 긁적거리는 나를 혼자 거실에 헛헛해진 지천명 깔고 앉아 불면과 싸우다 허공 같은 밥 먹는 아비를 깻잎 눌러줄 사람 없는 쉰내의 남자를 데면데면 구경하고 있다 내 눈에는 훗날 제 식구 거느리고 어느 겨울 지날 때 보일러 켜려던 며느리 가운데 하나라도 여보 아버님 댁에 과부 놓아드려야겠 언감생심 공상마저 조그맣게 열다 틀어막고 댁이 귀로 과부가 보청기로 바뀌자 어깨 킬킬대는 어수선한 새벽이 차다 동가이몽에서 일어나 난방온도 높이려는데 잠들지 않고 어둔 현관 바닥에 나란히 누워 뭐 하세요 또 안 주무세요 아휴 허연 입김의 하품하는 아들 두 켤레 소리를 위하여 꽃잎 떨어지는 소리 들어야겠다 낙엽 썩는 소리와 인적 끊긴 산길 야윈 풀들이 몸 비며 만드는 노래, 올무를 의심치 않은 고라니 발목 죽어가는 소리, 바퀴벌레로 오인 받은 귀뚜라미 일생 터지는 소리도, 이별 뒤 어둠에도 눈부신 눈꺼풀의 절규, 취객 타넘는 찰나 바퀴가 토한 신음, 의사봉이 내려지며 지르는 비명과 집 짓다 죽은 바둑알 쌓이는 소리 들어야겠다 입양 가는 아이 공갈젖꼭지 감빠는 소리, 사람의 무게 알아내고 0점으로 복귀하는 체중계의 한숨, 불면을 밟는 새벽 첫 발소리, 사식으로 넣어지는 햇살이 막 창틀 넘어오는, 무료급식소 콩나물국이 뜨겁게 아침을 연주하는, 전방생활 전해준 나라사랑카드 닳아가는 소리도, 하수구로 등 떠밀리는 다시 못 볼 날 씻긴 물소리, 망설임의 주머니에서 꺼낸 손등에 울컥하는 피, 밤하늘의 오래된 서랍 열리는 소리, 추억의 가지마다 매달리는 떠난 것들의 뒤척임, 성급히 넘긴 책장이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떨림까지 앞으론 꼭 들어야겠다 나 이제 귀를 열기 위해 귀를 닫네  
54 (이원준 시인)나의 문학관-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
편집자
1710 2015-09-10
<나의 문학관>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 마음 높이 엇비슷한 이들과 비워내던 막걸리 주전자들이 스친다. 술상에 이마 박은 채 한국문학사 새로 쓰자며 취기와 객기로 외쳐대던 날들. 서로에게 소설 잘 쓰는 잡놈이 되고 시로도 먹고 살 수 있는 詩팔놈이 되자며 창작욕을 어깨동무로 나눠주던 시간들. 지나고 보니 값진 자산이다. 무엇보다 소중했던 시간은 아득하고 고통스럽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자신과의 싸움이 아니었을까. 나를 문초하고 실험하는 시간이었다. 인도 철학자 오쇼 라즈니쉬가 그랬던가, ‘인간이 탐험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유일한 것은 자신의 내면세계’라고. 진정한 보물은 그곳에 있다는 그의 말이 내 생각과 닮았다. 시인이 되고자 소 팔아 가방끈까지 늘렸던 동기는 등단 후 재야시인으로 살겠다고 입버릇처럼 떠들었다. 15년 만에 첫 시집을 출간하더니 그동안 참았던 숨을 토하듯 놀랍게도 다음해 두 번째 시집을 묶었다. 시인은 한평생 시집 한 권이면 족하다던 선배는 그새 죽었다 살았는지 새로운 시집을 냈다. 시집을 내지 못하고 있는 나는 여전히 약력에 시인이라고 꼬박꼬박 적는다. 그리고 술상에 이마를 박는다. 내 안에서 탐험중인 나는 아직은 즐겁다. 이원준 서울 출생. 1991년 《현대시세계》로 등단한 시인, 소설가. 저서 《흔들림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한 모습이다》, 《권정생》, 《김오랑》, 《이상》, 《김구》, 《노먼 베순》, 《넬슨 만델라》, 《정약용의 편지》, 《야사로 읽는 조선 왕들의 속마음》 외  
53 (임영석 시인)자선 대표작 10편 file
편집자
1705 2015-08-12
받아쓰기 내가 아무리 받아쓰기를 잘 해도 그것은 상식의 선을 넘지 않는다 백일홍을 받아쓴다고 백일홍 꽃을 다 받아쓰는 것은 아니다 사랑을 받아쓴다고 사랑을 모두 받아쓰는 것은 아니다 받아쓴다는 것은 말을 그대로 따라 쓰는 것일 뿐, 나는 말의 참뜻을 받아쓰지 못 한다 나무며 풀, 꽃들이 받아쓰는 햇빛의 말 각각 다르게 받아써도 저마다 똑 같은 말만 받아쓰고 있다 만일, 선생님이 똑같은 말을 불러주고 아이들이 각각 다른 말을 받아쓴다면 선생님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햇빛의 참말을 받아쓰는 나무며 풀, 꽃들을 보며 나이 오십에 나도 받아쓰기 공부를 다시 한다 환히 들여다보이는 말 말고 받침 하나 넣고 빼는 말 말고 모과나무가 받아 쓴 모과 향처럼 살구나무가 받아 쓴 살구 맛처럼 그런 말을 배워 받아쓰고 싶다 똥을 싼 별 아름답기만 한 별들도 똥을 싼다 그 모습이 마치 참새가 제 새끼의 똥을 물어다가 버리듯 허공에 휙 버린다 순간의 일이다 똥을 싼 별 아무 일 없다는 듯 빛난다 어둠을 묶어야 별이 뜬다 거미는 밤마다 어둠을 끌어다가 나뭇가지에 묶는다 하루 이틀 묶어 본 솜씨가 아니다 수천년 동안 그렇게 어둠을 묶어 놓겠다고 거미줄을 풀어 나뭇가지에 묶는다 어둠이 무게를 이기지 못해 나무가지가 휘어져도 그 휘어진 나뭇가지에 어둠을 또 묶는다 묶인 어둠 속에서 별들이 떠오른다 거미가 어둠을 꽁꽁 묶어 놓아야 그 어둠 속으로 별들이 떠오르는 것이였다 거미가 수천년 동안 어둠을 묶어 온 사연 만큼 나뭇가지가 남쪽으로 늘어져 있는 사연이 궁금해졌다 무엇일가 생각해 보니 따뜻한 남쪽으로 별들이 떠오르게 너무 많은 어둠을 남쪽으로만 묶었던 거미의 습관 때문에 나무도 남쪽으로만 나뭇가지를 키워 왔는가 보다 이젠 모든 것들이 혼자서도 어둠을 묶어 놓을 수 있는 것은 수천년 동안 거미가 가르친 어둠을 묶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리라 거미는 어둠을 묶어야 별이 뜨는 것을 가장 먼져 알고 있었나 보다 참새 참새는 제가 살 집은 짓지 않는다 집을 지어도 제 새끼를 키우기 위한 것으로 마지막 지붕은 제 몸을 얹어 완성한다 제 새끼에게 어미의 온기만 주겠다는 것이다 머리 위 은하수 별빛을 맘대로 바라보고 포롱 포로롱 하늘을 날아가는 꿈을 주고 있다 참새는 제 자식에게 다른 욕망은 가르치지 않는다 제 몸을 얹어 집을 완성하는 지극한 사랑 그 하나만 짹짹짹 가르치고 있다 고래 발자국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면 고래들의 발자국을 보고 싶다 고래가 발을 버리고 왜 지느러미를 갖게 되었는지 무슨 아픔이 있어 바다로 몸을 숨겼는지 발자국을 보면 그 의문이 풀릴 것만 같다 새끼를 낳고 젖을 물리는 고래들의 발자국을 고고학자들은 왜 아무도 찾지 않을까 바닷속 어딘가는 두 발로 혹은 네 발로 걷던 발자국 무덤들이 가득히 있을 것인데 수천 년 동안 고래 발자국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이 역사(歷史)를 발로 쓰고 다닐 때 고래들은 천 리 밖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바닷속 가득 풀어놓고 낙엽처럼 밟고 다녔을 것이다 그 발자국 따라 오늘도 새우떼를 쫓을 것이다 足文 -구룡포에서 족문으로 써 내려간 갈매기의 생각들이 모두가 하나같이 뒤를 향한 화살표다 제 몸이 뒤에 있다는 눈속임의 글 한줄 적벽에 그려 놓은 반가사유 미소처럼 알아도 모르는 척 그 글의 끝을 보니 날아가 쓰지 못한 글 모래알보다 더 많다 배경 내 허름한 지갑 속 반백의 사진 한 장 빗소리 먹물처럼 마음을 적시는 날 살포시 꺼내어 보면 눈가 주름 그대로다 세월은 붉은 동백 해 마다 토해 내고 바람은 그 동백을 말없이 지우지만 동백 숲 배경을 삼아 혼자 웃는 어머니 수백 권 책을 읽고 수백 편 시를 써도 임종에 끓어 오른 어머니의 가래 소리 자식을 가슴에 담은 또 하나의 책이였다 물 위를 뜨기 위해 제 속을 다 파낸 배 물보다 더 가볍게 마음을 비우지만 어머니 가슴에 섬긴 불바다는 못 건넌다 어머니 마음같이 섬기는 삶의 배경, 낱알의 빗방울이 뱃길의 배경이듯 내 삶의 배경 뒤에는 어머니가 항상 있다 초승달을 보며 괄호도 아니고 반 괄호로 달이 떠서 어떤 말의 의미들을 풀어줘야 할 것인데 앞 문장 깊은 여백에 품은 글이 사라졌다. 내 나이 다섯 살에 죽었다는 아버지는 콩깍지 속 콩들처럼 칠남매를 남겼지만 어머닌 육십 평생을 반 괄호로 살았다. 괄호()로 묶어내도 쭉정이가 많을 건대 어떻게 칠남매를 혼자서 키웠는지 반 괄호 달빛을 보니 그 의문이 풀린다. 둥그런 달빛 속을 파고 든 저 그림자 제 몸을 다 내주고 그림자로 채운 마음 서로가 품고 품어서 반 괄호가 되어 있다. 불혹의 내 나이도 반 괄호가 되었지만 자식의 숨소리에 쫑긋 세운 내 두 귀는 언제나 초승달처럼 앞 괄호를 열어둔다. 無言 -故노무현 대통령이 뛰어내린 부엉이 바위에서 민들레가 피는 것도 제 영혼의 말일 건데 유언 한 줄 써 두고서 뛰어내린 이 바위는 얼마나 많은 말들을 가슴 속에 새겼을까. 부엉이 울음들이 잠시 멈춘 그 틈에서 허공에 써 내려간 한 획의 뚫을 곤(丨)자 無言의 획으로 남아 무슨 글을 완성할까 참매미 나무 등에 혹처럼 매달려서 소리로 완성하는 글들을 남기는데 내 몸의 척추 뼈 같은 그 無言은 무엇일까 산다는 게 죄가 되면 절벽이 되는 건가 아무리 둘러봐도 바람 같은 말뿐인데 이 세상 두고 가는 말, 無言 말고 뭐 없을까 故鄕詩抄 1. 세월 앞에 묵묵한 산이 또 한 해를 다 보내고 빈 가지에 받쳐든 것은 팽팽한 메아리뿐, 바람은 구름을 몰고 어진 목숨을 다스린다. 2. 알타리무우 밭에 흐르는 노적가리 빈 그림자 산염불(山念佛) 하듯 서서 우짖는 세상사에 마실 온 하현 달마저 반백(半百)이 되어 빛난다. 3. 늦가을 농사 빚에 떠나고 싶은 고향 일년만 더 하던 것이 고추 붉듯 나이들어 어느덧 저승 문턱에 귀(耳)를 기울인 사춘형. 4. 섬돌 밑 저승바닥 드나드는 10월 달빛, 그 말 없는 말 속에서 쑥꾹새 잠재워 두고 득음을 이루워 살자 피리 불던 사람아. 5. 쇠죽가마 아궁이에 발을 구르며 앓던 시절, 잃어버린 세월 만큼 남아 있는 불씨 속에 해탈문(解脫門) 걸어 가듯이 가슴을 다 태운 나(我). 6. 잡목림(雜木林) 우거진 숲에 구구구 산비들기 사랑 맺는 정이 깊어 불 붙는 가을 단풍, 평생에 내 가슴 태울 시심(詩心)을 본 듯 하구나. 7. 어버이 저승 가시고 재롱떠는 아들을 보니 씨감자 눈 트듯이 무거운 罪의 시름만 한 장의 창지(窓紙)로 가려 동불(童佛)처럼 달려든다.  
52 (임영석 시인)문학관-세월,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려낼까
편집자
1421 2015-08-12
세월,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려낼까 임영석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나는 거기 아무것도 모르는 촌놈이었다. 공업고등학교 기계과를 나와 시나 쓰고 다니는 백수였다. 그러다가 연애를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노동자가 되었다. 그렇게 먹고 사는 문제를 현실로 받아들이면서도 시 쓰는 일은 항상 가슴으로 끌고 다녔다. 어떤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닌데 30년을 그렇게 고집스럽게 잘 쓰지도 못하는 시를 붙잡고 살았다. 어떤 이는 그게 외고집이라 하고 어떤 이는 바보라고도 한다. 그러나 나 스스로는 그게 가장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돈을 벌었다면 돈 때문에 세상 사람을 등졌을 것이고, 정치를 했으면 표를 받기 위해 거짓의 말을 흘렸을 것인데, 글을 썼기 때문에 어린아이처럼 살았다고 본다. 앞으로도 나는 내가 살아가는 세상, 그 세월을 잘 그려 별빛처럼 빛나게 만들고 싶을 뿐이다. 5년 후면 나는 백수로 돌아가는 나이가 된다. 그러나 시를 붙잡고 사는 시인이니 백수(白手)는 면할 것이다. 내 마음에 있는 더듬이의 촉수가 세월을 잘 더듬어 삶의 감각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것<!--[endif]--> 뿐이다 1961년 충남 금산 출생. 1985년 계간 『현대시조』 봄호에 2회 천료 등단. 시집으로 《초승달을 보며》외 6권 상재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부분 창작기금과 2012년 강원문화재단 문화예술진흥 지원금(시조) 수혜를 받았고, 2011년 제1회 시조세계 문학상을 수상, 계간 『스토리문학』 부주간.  
51 (이해리 시인)자선 대표작 10편 file
편집자
2116 2015-07-17
이슬의 눈 속에 / 이해리 여름 아침 토란잎이 가만히 받쳐들고 있는 이슬을 보아라 간밤에 분명 누군가가 울고 간 흔적이 있다 얼마나 투명하고 깊은 슬픔이 몰래 밤길 다녀 간 것일까 바람이 일렁이면 초록 손바닥 펴드는 토란잎 위에서 깨어질 듯 방울방울 빛나는 눈물 산도 하늘도 새소리도 그 속으로 들어가 한 방울 보석되어 고요하다 함부로 울 수 없는 세상 몰래 울고 난 자국 저렇듯 영롱할 수 있다면 나도 한 방울 찬란한 슬픔이 되고 싶다 포석정, 호랑가시나무 / 이해리 호랑가시나무, 꽃의 향기는 비단보다 부드럽고 쟈스민보다 향긋한데 잎의 가시는 호랑이 발 톱을 닮았다. 한 몸 안에 감미로운 향기와 날카로운 맹수의 발톱을 함께 키우는 나무, 그 애 틋한 이중성 안엔 무슨 쓸쓸한 비밀을 숨겼는가, 초록 발톱 이파리들이 우우 옹립하고 있는 가지의 우듬지에 샛별보다 작고 하얀 꽃이 적막을 깨물고 피어 있다. 망국의 황녀가 자결을 결심할 때 독하게 알몸에 바르는 독약 같은 향기, 발톱은 그 향기를 사수하기 위해 외부로 뽑 아 든 칼날인가, 그렇지만 향기란 것이 칼날로 지킬 수 있는 슬픔이던가 대항할 힘을 잃은 군 졸들처럼 가을 잎 떨어지고 서늘히 쓰러져 뒹구는 것에 마음 끌려 찾아온 가을 포석정, 마지 막 잔을 마시고 불콰한 왕이 슬픈 이사금 슬픈 이사금 탕진되지 않는 슬픔을 들고 내 가슴에 쓰러져 운다. 그대 누구인가/이해리 이렇게 비 내리는 밤에는 먼 곳부터 먼저 몸 젖은 어둠이 내 창 앞까지 찾아와서 비를 맞고 서 있다 문을 열어도 들어오지 않고 닫아도 돌아서지 않는 흐린 침묵이 문틈 새로 새어나간 가느다란 불빛에 가슴을 패이고 있다 그대 누구인가 밝고 찬란한 것들 모두 마른 이불 속에 곤히 잠 든 시각 어둡고 흥건한 곳만 디디고 와서 들뜬 꽃잎처럼 덜컹거리는 창문과 빗소리 사이에 머물러 있는 그대 불 꺼진 손바닥이 만져지지 않는 그대를 만져본다 크고, 어둡고, 텅 빈 빗소리뿐인 그대를 어느 날의 열차표는 역방향이다/이해리- ktx 타고 간다 역방향에 앉아 차창 밖을 보며 간다 모든 다가오는 것이 지나간 것이다 지나간 것만 보고 간다 보이는 게 한 물 간 것 뿐인데 새로운 것을 목표하며 간다 같은 시간 같은 목적지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좌석이 생이라면 나의 생 출발부터 누군가에게 밀렸음이다 오, 차별 받은 내 좌석, 불리한 내 여정 이건 자연스레 피 돌리는 내 박동과는 다른 일 여학교 때 단체로 맞춘 교복 중에 내 것에만 나있던 흠결과도 다른 일 방향이란 원래 누구의 점유물이 아닐진대 누군가 차지하고 남은 방향 내자리라 하고 간다 남들이 눈으로 세상을 볼 때 등으로 세상을 더듬는 자리 내 자리 비좁고 속 울렁겨려도 순방향으로 꾸고 싶은 꿈 하나는 고속레일보다 뜨거워 코스모스처럼 흔들리며 가지만 도착하면 그 뿐, 누가 타고 온 방향을 묻겠는가 보슬비 이 해 리 보고 싶고 보고 싶었지만 보고 싶은 것도 죄될까 말없이 다가갔다가 소리 없이 돌아간다 많고 많은 당신을 보아 왔지만 진정 보고 싶은 당신은 보지 못하고 이 대지 저 하늘 기웃거린 만큼 젖고 젖어서 목마른 몸만 끌고 돌아간다 어둠 또는 허공이 된 사람 /이해리 현관 센서등이 한참 있다가 켜진다 뒤죽박죽 몇 켤레 어둠이 발등을 밟을 때까지 안 보이는 외출 더듬더듬 챙길 때까지 기척도 않다가 정작 내가 나가고 현관문이 닫힐 때 벌컥 켜진다 참 센스도 없는 센서등, 그러므로 센서등에 있어 나는 가까이 오면 캄캄한 空이거나 텅 빈 어둠이다가 안 보이게 사라지고 나면 뚜렷이 감지되는 어떤 존재이다 센서등을 지날 때마다 空이 된 나는 조금 쓸쓸하다, 어떤 때는 없는 나를 인식해 보라고 손 휘저어 본다 있는 내가 결코 어둠이 아니라고 소리 질러본다 허연 천정에 매달려 묵묵부답인 센서등 첨벙첨벙 물 속 같은 어둠을 풀어내려 시효가 어긋난 사랑 같은 것 삶 같은 것을 떠내려 보낼 뿐이다 시험 끝난 후에 번쩍 생각나던 정답 같은 것 열차 떠난 후에 문득 생각 난 시각표 같은 것 아아, 가까이 있을 땐 몰라보고 멀리 떠난 후에 들어오는 등불 같은 것들 허공에 밟힌다 배추를 묶으면서/이해리- 안지 않으면 묶여주지 않겠다는 듯 퍼들퍼들 벌어지는 잎들, 부둥켜안고 묶으면서 알았다 배추 한 포기도 안아야 묶여준다는 걸, 묶여야 속을 채워 오롯한 배추가 된다는 걸 안는다는 건 마음을 준다는 것 마음도 건성 말고 진정을 줘야한다는 걸 보듬듯이 배추를 묶으면서 쓸 곳이 너무 많았던 내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잠시 방심 했다고 죽어버린 화초들과 매일 살피지 않는다고 날아 가버린 펀드와 깜박해서 태워버린 빨래와 어느새 가버린 사람 나는 안는다고 안았지만 안긴 것들은 부족함을 느꼈던가 보다 대체 내 마음의 용량은 얼마만해야 하는 걸까 풀 먹인 옥양목소리 싱싱한 배추를 파랑파랑 묶으면서 감싸 안고 안아도 안겨지지 않던 당신이라는 서운한 바람에게 오늘은 내가 안겨 묶여본다. 안개를 안아 보다/이해리 외로움도 사무치면 안개도 사람인가하여 안아보는 밤이 있습니다 안 아도 안아도 실감이 없는 사람, 뼈도 살도 없이 푸르스름 분위기만 있는 그를 품는 밤엔 내가슴에 한 겹 더 허무의 지층 쌓이지만 그가 보여주는 수묵담채빛 선경은 길을 잃어도 좋은 피안입니다 멀리 無優寺 연등 물결 눈물처럼 가물거리고 사십 리 복사꽃밭은 분홍 꽃잎만 공중에 둥둥 떠내 려 보낼 때 어디선가 귀촉도귀촉도 두견이 울어 그도 나처럼 살고 싶은 누구입니까 마음은 자욱하나 드러낼 수 없는 실물을 가진 누구입니까 그의 가슴을 만지면 잠시 사랑했다 헤어진 이름 생각나고 희미해진 이름 끌고 골짜기 배회하는 서늘한 누군가가 느껴집니다. 어쩌면 너무 멀어서 쉽게 만져보기 어려운 슬픔의 입자들과 하룻밤 뺨 대고 싶어 길을 잃는 저녁이 있습니다 길을 잃고서야 무릉도원을 만나는 그런 밤이 있습니다. 코스모스/이해리 그 시절에 코스모스 길을 걸어가면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조건 없이 좋듯이 코스모스가 피어있어 그냥 좋았다 그 때 코스모스는 지조 높은 정령인 듯 꼭 가을에만 피었다 황금빛 나락 출렁이는 들길에 기차가 산모롱이 돌아가는 철로 변에 교복 입은 학생이 자전거 몰고 가는 오솔길에 어머니 상여 나가던 송정리 뒷길에 한들한들 피어서 나를 불러냈다 코스모스는 나그네와 친하고 싶은 꽃인지 길 가는 내 가까이 가까이 피어 주었다 그 가녀린 몸매와 맑은 꽃잎으로 내 몸을 한 번씩 스윽 스쳐 주기도 하었다 스쳐 주고 제 자리로 가는 꽃대궁 속에서 가끔 벌 나비 떼 화르르 날아오르고 이슬도 몇 방울 찰랑 떨어 뜨려 내 사랑과 사색과 낭만을 풍성하게 흔들어 주었다 이제 코스모스는 가을에만 피지 않는다 아무 때나 핀다 코스모스가 아무 때나 피고부터 물질은 풍요해 지고 나의 가을은 실종 되었다 나의 사랑도 사색도 낭만도 자꾸만 누추해져 갔다 밤길 이 해 리 가야겠다고 살며시 나오니 눈발이 날린다 눈발도 눈나라 어디서 살며시 빠져나온 손님일까 어둠은 소리 없는 눈을 받아 어디에 쌓는지 보여주지 않고 바람은 천상도 지상도 아닌 곳을 고속으로 달리는 내 헤트라이트 속에 한 줌씩 뿌려댄다 불처럼 타오르며 재처럼 잦아들며 눈발은 분분한 춤을 춘다 온몸으로 하얗게 춤추고 나면 그뿐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사람들은 겨울밤 흥청거림에 취해 내가 간 줄도 모르겠지만 오늘밤 나는 사라진 줄 모르게 떠나는 눈발이 되어 방향감각 잃은 산야에 펄펄 날리고 싶다 살아보니 알겠더라 끝까지 눌러 붙어 흥청거리는 삶은 아쉬움의 연인이 되지 못한다는 걸, 나 그대에게 아무 아쉬움 없는 방구들이 될까봐 고민하였지 다 떠난 뒤에도 남아 뒹구는 술병처럼 될까봐 두려워하였지 아쉬움 잃은 따뜻함보다 그리움에 사무치는 흰 뼈로 펄펄 날리는 혹한이 나의 것 가야겠다고 살며시 나오니 눈발이 날린다  
50 (이해리 시인)나의 문학관
편집자
1503 2015-07-17
자기를 알고 싶고 보고 싶고 또한 표현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구다. 그래서 언어라는 틀을 사용하여 자신의 감정과 사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문학이다 한 이십 년 시에 관심을 두고 시를 써 왔다. 시도 문학의 한 갈래이니 시를 써 온 경험으로 문학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언어예술임과 동시에 삶의 재현이다. 인간의 삶을 에술적 언어로 표현한 작품이 문학이라면 나의 작품도 나의 삶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창작활동을 해오면서 이런 저런 지면을 통해 발표를 해오면서 과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문학의 길일까 고민하였다. 바람직하다는 것은 문학이 인간 삶의 가치나 유용성에 관심을 두고 창작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문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저서에서 문학의 사명에 대해 피력한 바 있다. 그는 문학을 정치 사회적 현실을 변혁하는데 참여 하는 것이라고 했다. 언젠가 소설가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를 읽으면서 그 소설이 영화화되어 많은 관중을 확보 하면서 아무도 손대지 못했던 사회악을 응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나는 문학의 힘이라고 본다. 또한 사르트르가 말한 문학의 사명이란 이런 게 아닐까 나름대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대단한 실력이 아직 나에게는 없다. 시든 소설이든 문학으로 그런 일을 해보기를 아직은 소원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나는 문학이란 아름다운 글이어야 한다고 믿는다,.세상을 변화 시킬 만큼 대단한 글은 못 되더라도 지상의 외로운 어느 한 사람이 읽고 메마른 가슴 촉촉이 적실 위안이 있는 아름다운 글이면 나에겐 문학인 것이다.  
49 (김주애 시인)자선 대표작 10편 file
편집자
1414 2015-06-12
세상에서 가장 큰 삼각형 긴 골목을 두고 삼각형처럼 꼭짓점을 마주보고 사는 할매 셋 일찍이 남편을 보내고 서로 축을 이루고 산다 해도 지지 않은 골목에 가로등 미리 불을 밝히고 단출한 저녁 식사 집에 불을 켜지도 않고 절뚝절뚝 민철이네 집을 나선다 하룻밤 딸네 갔다 온다더니 왜 이틀이나 자고 와여 나무라듯 뱉는 소리에 금순네 막걸리 한 병을 들고 나간다 기울이는 술 냄새에 순호네 뒷짐을 지고 온다 긴 하루 맛 좋은 안주가 되고 발그레 기울어가는 그림자 슬며시 합을 맞춘다 이따 배추밭에 약 좀 치세 안개 잦은 지역 내가 사는 곳은 수시로 안개가 몰려온다 음산한 기운을 불러 아득하게 정신을 홀리는 여우 누이의 꼬리 같은 앞날이 늘 안개 같다던 친구는 열아홉에 살림을 차렸고 서른아홉에 혼자 돌아왔다 그의 어머니 낙동강 나룻배를 타고 떠난 그 안갯속으로 제법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으나 차가운 기운만 가져본 친구는 부푸는 돈이 몰고 오는 뜨거운 기운에 아내를 잃어버렸다 흔히 있는 일이지 안개가 내리는 곳은 둥둥 떠다니는 출구가 없는 이야기들 맑은 날 울 일이 많아 차를 타고 길을 나서면 누군가 울다 간 물방울이 길을 잃고 헤매는 중 속도를 줄이고 전방을 주시할 것 진달래장의사 영월 읍내 공영주차장 맞은편 그곳에 있었다 회색 콘크리트 외벽에서 막 분홍색 꽃이 무더기로 피어날 듯한 간판을 단 진달래장의사, 웃음이 난다 저 여린 꽃잎 같은 죽음이라니 오물오물 씹어 먹으면 시큼털털한 맛을 가진 죽음이라니 감히 음침함이나 두려움 따위 비집고 들어설 틈없는 이름 연분홍 꽃잎을 날리며 가는 그곳 어느 누가 열반에 들지 못하겠는가 한낮 영월 읍내 먹을 것 찾아 빙빙 돌다 팡 터진 꽃무더기 구경하고 온다 나는 발바닥에 가시를 품고 산다 어디서 찔렸는지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아프다 바늘로 발바닥을 조심스럽게 후벼보지만 도무지 보이지가 않는다 후벼 팔수록 상처는 커져갈 뿐이다 더 깊숙이 숨어서 걸을 때마다 온몸 가시 돋게 한다 핏물이 고여 더는 손쓸 수가 없다 그래 처음 상처 받았을 때 분노로 밤을 새우지 시간이 약이라고 네 살이 내 살인 양 내 살이 네 살인 양 몇 날 지내다 보면 소름 끼치던 고통도 참을 수 없는 가려움 같기도 하고 그렇게 발바닥 한켠이 단단해지더라고 언제 그랬냐는 듯 살다가 쭈뼛쭈뼛 성질 돋는 일 생길 때마다 그래 내 안에도 가시가 있다고 조심하라고 발길질 한번 할 수 있게 개구멍 이끼 낀 담에 쩍 금이 가더니 주먹만한 구멍이 생겼다 개 한 마리가 구멍을 파 들락거린다 금계줄 같던 담 스스로 문이 되었다 느슨해진 철조망이나 허물어진 담 개구멍은 늘 지름길이다 이제 개는 구멍에서 잠을 자면서 금계가 사라진, 헐거운 시간을 즐기고 있다 탱자나무 촘촘하게 가시를 품고 지나가는 바람도 걸러낼 것처럼 빈틈도 없어 보이는 탱자나무 속 참새떼가 날아든다 그렇게 독하게 들이밀던 가시는 다 어디가고 저 느슨함이라니 제 집인 듯 폴랑거리며 날아다니는 저 날개 좀 봐 짹짹거리는 소리 가시 끝에 매달고 감히 손도 뻗지 못하게 감싸안는다 아무도 도망가지 못하게 독을 품은 벽인가 했더니 저렇게 쉴 곳 많은 빈 곳 투성이라니 넝쿨 어머니 가꾸시는 텃밭은 넝쿨 아닌 것이 없다 호박, 수세미, 박, 울양대 행여 허물어진 속살이 보일까 서로 덮어주면서 천둥이라도 치면 번개라도 치면 서로 몸을 비비며 한고비 넘고 쉬이 달래지지 않는 마음이라도 있으면 넝쿨넝쿨 담이라도 넘어가 맺히는 것 없이 걸리는 것도 없이 술술 풀어내는 인생 어머니 텃밭은 풀어보면 한 알 한 알 목 메이지 않는 것이 없다 눈 깜빡하는 그 사이 느닷없이 재채기를 하였고 엉겁결에 뛰어든 노루가 부딪치고 진정되지 못한 마음은 커피를 쏟았다 화끈거리는 살갗이 곪아 걸을 때마다 불쑥 욕이 튀어나와 욕먹은 돌멩이가 지나가던 사람의 가슴을 치고 걸음은 삐딱해졌다 자꾸만 발에 걸려 나무가 넘어지고 느닷없이 아파트가 무너졌다 그래도 하늘 높이 비행기가 날았고 뉘 집 개는 허공을 향해 짖었다 이 모든 게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봄을 잊은 꽃이 깜빡깜빡 기억을 놓고 꽃가루 날리는데 얼룩지다 안방 문 뒤 누런 벽지에 점점이 말라붙은 아버지 납신다 먹지도 않고 팽개친 김칫국물에서 다시 살아보자고 내민 한약국물에서 젖은 눈 닦으시고 퉁퉁 불은 말기 간도 다 떼어내시고 추녀 날렵한 기와집 썩어 문드러지지도 않는 기둥은 아버지 대처로 향한 꿈을 내리찍어 고학력이란 낙인을 달고 평생 방앗간 주인으로 주저앉혔다 꿈을 삼킨 발동기 소리는 동네에서 제일 큰 고함소리를 가지게 했고 콸콸 쏟아지는 쌀알들은 불쑥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봉놋방 화투장에 팔공산 꿈을 쳐 넣기도 하고 한 손이면 후려칠 수 있던 밥상에 화풀이를 해대며 어느 해 둑이 터진 논둑에 벌건 눈물마저 흘러넘쳐 다섯 병 막걸리에도 들을 수 없었던 아름다운 꿈 그 텅 빈 공간은 몹쓸 암덩이가 채워지고 너무도 어이없게 마지막 밥상을 꽃송이 만발한 벽지가 쳐 먹고 몇 점 남긴 얼룩, 납작하게 말라붙어 왜 슬픈 얘기만 하는지 얼룩진 이야기는 닦아지지도 않는다 납작한 풍경 며칠 내가 집에 없응께 집 터서리에 풀이 천지라 저것들은 잘 뽑히지도 안해여 뽑아도 뿌리에 흙이 타박하게 붙어서 잘 죽지도 안 한데이 채울 것 없던 헛간을 밀어내고 만든 텃밭 어머니 질긴 풀을 뽑으신다 저것들도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게다 못 쓴다고 눈에 들지도 못하는 것들 질기게 살아야 씨라도 뿌리는 걸 되도록 납작하게 엎드려 콘크리트 담이라도 숨구멍이 있는 곳이면 뿌리를 내려야 하는 것을 봄날 따신 밥 위에 얹히지도 못한 독한 풀 납작하게 눌러 붙어 잘 잡히지도 않는 것을 한 줌씩 뜯다가 후벼 파다가 더러 뽑히기도 하다가 주절주절 할 말이 많아진다 끝끝내 고분고분하지 않는 몇은 땅을 움켜쥐고 멍울멍울 자란다 그래도 저것들도 희꾸무리한 꽃이 핀데이  
48 (김주애 시인)나의 문학관, 약력- 속속들이 아픈
편집자
1349 2015-06-12
속속들이 아픈 초등학교 4학년 때 언니 친구에게 편지를 한 통 받았다. 편지 속에는 아카시아 껌 하나와 시가 참 좋다는 칭찬이 담겨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언니가 시를 읽은 보답으로 보내준 아카시아 껌 하나는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첫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후부터 참 끈질기게도 글을 써 오고 있다. 시가 뭔지도 모르고 시를 썼고 허세를 부리기 위해서도 썼고, 답답한 세상에 삿대질을 하기 위해서도 썼고,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도 버려진 것들을 더 안아주고 싶어서도 썼다. 이런 글을 모아서 시집이란 것도 내게 되었지만 나의 글은 여전히 방황하는 중이다. 어느 강섶을 헤매고 있기도 하거니와 절벽과 마주 앉아 답 없는 이야기를 중얼거리는 중. 여기저기 헤매이다 때가 묻고 깎이다 보면 제 모양을 찾을 수 있을까. 속속들이 아픈 나의 시를 기대해 본다. ************** 경북 상주 출생 1998년 느티나무시 동인으로 작품 활동 시작 2014년 첫시집 ‘납작한 풍경’ 발간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  
47 (김기연 시인) 자선 대표작 10편 file
편집자
1791 2015-05-11
다솔사 누드 다솔사 앞마당에 불에 탄 느티나무 한 오백 년 살고 있다 죽음의 화평은 누드임을 몸소 설파 중이다 살아온 습성의 자리일까 움푹 파진 아랫도리, 낯선 마음 붙잡아 세운다 이왕지사 컴컴한 그 품속으로 한 사람 또 한 사람 들어가 키득거려보는데 그 순간만은 그들 오롯이 나무이지 않겠는가 단란한 관 속의 한 때랄까 죽음도 나이가 되는 느티나무, 이래저래 손을 타긴 탔나보다 수척하다 다시 찾은 다솔사 검은 누드의 아랫도리에 밥그릇만한 목불상 독방 차지다 그 품에 들지 못한 마음 서운해져서는 깊고 웅숭한 뒷간에 오줌발 갈기는데 해지는 오후 잠시 왁자해졌다 하늘 안감으로 짜놓은 추억의 사닥다리 다솔사 누드 천리 밖 그대이다 가시 눈물 탱자나무 눈은 가시다 한 때 저 눈이 피어내던 소란한 흰 꽃 그 꽃자리에 매단 단란한 등 등 바람 풀 수 없는 경계의 눈 젖고 있다 난무한 숲 속속들이 부풀리고 있다 잿빛 허공에 맺혀 그렁대는 생각 어제 혹은 내일 그대에게 걸린 시린 내 맘처럼 꿈의 판화 허공이에요 토실한 나무가 주먹만한 꽃을 내달아요 연분홍 꽃 위 노란 꽃 사이 별들이 툭툭 불거져요 나무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서 꽃을 입에 문 물고기가 헤엄쳐 와요 집 한 채 오도카니 나뭇가지에 돋았네요 연둣빛 창 금세 환해요 지붕 아래 방 한 칸 그 집의 전부예요 뽀글뽀글 이야기가 끓어요 별들이 체위를 바꿀 때마다 다섯 꼭짓점을 펴며 솜사탕구름이 태어나요 몽글몽글 대문이 사라졌어요 이제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는, 아주 정교한 당신이라는 나라예요 나를 관람하다 시안갤러리 뒤뜰 대숲 아래 댕강 머리 없는 맨 몸의 석상들 나란히 앉아 고민 중이다 볼록한 아랫배 가운데로 모은 두 발 발가락이 일곱이다 세운 무릎에 왼손 올려두고 늘어뜨린 오른팔 종아리 근처에서 스리슬쩍 손을 버렸다 B컵 왼쪽 가슴 탱글탱글한데 흉터조차 남지 않은 오른쪽 가슴은? 아, 저들은 지금 가슴으로 생각한다 똥배로 생각한다 왼손으로 생각한다 일곱 발가락으로 생각한다 버젓이 머리 버리고 생각 깊다 詩! 저수지 눈 갈대 곁에 선다 출렁출렁 구름이 그리는 네 얼굴 막막한 그리움 돋움체로 쓰는 노을 대지의 외눈 붉게 운다 어둑 어둑 분별하지 못하도록 둑길 함께 도는 하루살이 떼 둥글게 춤을 추며 걸음을 잰다 팔 훠이 휘저으면 고만큼 멀어졌다간 황급히 따라붙는 가벼운 집착 무리를 잃은 한 마리 안하무인 왼쪽 눈에 뛰어든다 그렁그렁 내가 운다 나의 맘 잠긴 외눈 저도 이토록 아팠겠다 죽어서 태어났다 한 때 울울창창한 숲인 적 있다 우여곡절 없는 삶 있으랴만 싱싱한 몸 문득 잘리어 속속들이 벗기어 패이어 허공에 사육하며 木魚라 한다 생전 만난 적 있었던가 내장으로 들어왔던 바람 캄캄히 쉬어가는 밤은 망망대해 헤엄쳐 너에게 간다 나는 기차는 올까 가을, 간이역 구석진 곳부터 싸늘히 식고 있다 고개 돌린 해바라기가 건너다보는 들녘 하롱하롱 고추잠자리 떼 액자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직한 담장에 기대어선 개망초 시든 이마 쓰다듬고 있다 기차는 좀처럼 오지 않고 시선 자주 역사 밖 철로를 서성이는 여자 비스듬히 길어진 그림자 흔들어 깨우는 스피커의 비음 ‘새마을호 열차를 먼저 보내는 관계로 무궁화호 열차가 연착하겠음’을 알리는 사이 저무는 들녘 빤한 길속으로 휘어진 햇살 꽁무니 말아 쥐며 달아나고 있다 언제쯤 기차는 여자를 만나러올까 막무가내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나팔꽃 푸른 눈으로 잎 내밀고 발 만들어내고도 일어설 생각은 없다 나팔꽃의 중심은 허공에 있다 의뭉스런 몸짓으로 기어오르면서 기어올라 칭칭 감아댄다 나무이든 담장이든 녹슨 갈비뼈이든 무작정 밀고 올라간다 갈 길 멀기라도 하다는 듯 하늘 맞닿는 그곳 제 집이란 듯 길, 막힌 곳이 길이다 막무가내 벙어리 그대 소리에 젖다 오지게도 내린다 삼월 한밤 내내 두터운 침묵 두드리는 푸른 빗소리 안으로 동여맨 섶 풀어내어 차박차박 적시고 있다 부풀리고 있다 꿈속까지 따라와 하염없이 수런대는 댓잎 같은 그대처럼 지금 지상은 제 소리에 겨워 우는 타악기이다 가을 포도밭 이젠, 다 주었구나 황갈색 늑골 듬․성․듬․성 남은 늦포도 아름다운 주검으로 매달렸구나 핏빛 그리움 캄캄히 저무는구나  
46 (김기연 시인) 내 시의 에스프리
편집자
1558 2015-05-11
내 시의 에스프리 마음이 보챌 때 나는 자연 속으로 파고든다. 동병상련의 내통을 꿈꾸면서이다. 그 속에서 전적인 위무를 얻는다. 엄살을 피우기도하고, 뱉지 못할 말 밀어 넣어두기도 한다. 내 시의 근간은 자연과의 자웅동체이다. 다정하게 또는 싸늘하게 <약력> * 경북 의성 출생 *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전공 * 시집:『노을은 그리움으로 핀다』 『소리에 젖다』 『기차는 올까』 * 수상: 2014‘대구의 작가상’수상  
45 (송은영 시인)자선 대표작 10편 file
편집자
3147 2015-03-10
완벽한 사내 사내는 한쪽 다리가 짧다 주지 스님만 있는 성 불사의 아침은 시작되고 목탁 소리는 쟁쟁하게 퍼져 아슬아슬 동네를 깨우는 동안 흰 고무신 신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면 사람들이 그의 등뒤에서 소리를 지른다 바보, 거지, 딸기코, 다리 병신 무엇 하나 성한 것이 없는데 한번도 투레질하지 않고 바보같이 웃기만 한다 실족한 다리를 하늘에 널다 노란 햇살에 기우뚱하는 사내 아이들이 까준 땅콩 캬라멜 같은 웃음을 만지작거린다 생살이 미어지도록 눌러 붙은 상처에서 종주먹만한 멧새 한 마리 운다 섶다리 위를 걷는 나그네처럼 자신의 그림자를 굽어보며 아픈 다리를 지운다 활기차고 다부진 다리가 지운 다리를 거둔다 뻥튀기에 대한 생각 1톤 트럭에 뻥과자 틀은 똑같은데 주인만 바뀌었다 생선가시같이 삐죽한 사람이 주인이란다 첫날은 그런대로 맛이 괜찮았는데 가면 갈수록 뻥튀기의 크기가 줄고 금방 튀겨낸 따끈한 새맛도 덜하더니 요모조모 손장난을 익혔는지 뻥튀기의 넉넉한 봉지까지 홀쭉하다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마다 않는 주인 양반 수입쌀도 국산쌀로 2.5초만에 곧잘 튀겨내 생과자처럼 바삭하게 만들어 팔기도 하고 글로벌 시대에 발 맞춰 뻥튀기의 질보다 양에 더욱 신경 쓴다 작은 것은 더 크게 큰 것은 더 크게 주머니가 더 빨리 부풀어 오르게 뻥튀기 기계를 돌린다 자동차 주식 부동산 채권 자신의 숨소리 빼고 다 튀겨낸다 뻥이요! 일년 내내 허기가 가시지 않는 아프리카 기근 같은 소리 알맹이 빠진 껍데기도 훌륭한 뻥이 된다 고래 트럭에서 고래가 내려온다 남태평양을 향해 울었는지 눈 밑에 마스카라가 번져 새끼들이 떠난 자궁까지 검붉다 몸 전체를 꽁꽁 묶은 바코드 자국 사람들이 몰려오고 새벽 종소리가 들린다 심해로 줄줄 흐르던 혈관이 한 순간 파편처럼 튀어 분수가 된다 어판장 위로 햇빛이 쏟아져 고래의 양 지느러미가 곱게 돋아난 무지개 빛 날개처럼 보인다 잠시 눈물 속을 유영하는 추억이라도 떠올렸던가 고래의 몸이 환하게 열리고 캄캄한 바닷물이 천둥 소리를 내며 비루한 잠을 깨운다 죽음을 지나친 시간이 수초처럼 흔들린다 껍질 까진 상처는 좋아라 뛰어다니고 번식이 끝난 고래는 몇 안 남은 공기를 정성껏 마시며 짧은 제 생을 묵념하고 있다 내장 도서관 비만에 걸린 공공 도서관 책과 책장 사이를 충격요법으로 허물자 문법과 어순들이 부르르 떤다 읽히지 않는 글자가 체지방처럼 쌓이고 폭식증에 걸린 위장이 영양가 없는 유행어를 쉴틈없이 받아먹는다 순대속 밥알처럼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제목에 반응하는 자본주의 대장은 항상 베스트셀러다 오늘도 간은 활자 옆에 쪼그리고 앉아 소원을 빌듯 침묵의 권장도서가 될때 소장은 시시껄렁한 음담패설을 거침없이 분비한다 마지막 조합인 직장과 항문마다 온갖 변명을 늘어놓는 동서고금 배설이 안된 책들로 오랜 변비를 앓는 도서관 그리운 공복에 자꾸 트림을 한다 등 가족 얇아진 아버지의 등과 한쪽으로 기우뚱하는 어머니 등이 저녁을 먹는다 집안 대소사를 짊어진 오빠의 등이 아버지 어머니 등을 보고 별일 없냐고 묻는다 사춘기 조카의 여드름 송송 박힌 등이 학원가야 된다고 보챈다 큰 올케 등은 아가씨처럼 바깥에서 기다린다 아버지 어머니 등이 오빠 등에게 밥 먹었냐고 묻는다 오빠 등은 약속 있다고 말한다 등들은 바쁜데 얼른 가라고 떠민다 아버지 등이 남동생에게 전화를 건다 동생이 아버지 쪽으로 등을 돌리며 오늘은 장사가 안 된다고 말한다 아버지와 동생은 서로의 등을 토닥거린다 혈액순환이 안 되는 어머니의 등이 자주 끙끙 앓아도 아버지 등은 눈치를 못 챈다 아버지를 유독 닮은 나는 어머니 등이 부를 때마다 불편하고 차가운 어머니 등을 보고 오기 일쑤다 철이 들고 지금까지 등 돌리는게 편한 나는 등이 키워낸 가풍일지도 모른다 마흔 증후군 중심에 가보지도 못하고 서성이다 마흔이 되었다 바야흐로 좋아하는 일도 밥벌이가 된 마흔 길 모퉁이를 돌았을 때 새털처럼 가벼웠던 몸이 이제는 쇠뭉치처럼 무거워졌다 그대 생각하면 마음이 싸하니 청량해지다가도 우리 아이에게 불량 장난감 총을 판매한 학원 문구 주인과는 안면 몰수하고 대들며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건다 살아온 시간이 콩인지 된장인지 거친 백파가 일어나는 바다를 보면 말없이 뛰어들고 싶다가도 금새 현실로 돌아와 안주하는 나는 염화시중 미소가 통하는 마흔이 좋다 외우는 일 매일 당신 얼굴을 봐야 하는 나는 언젠가부터 당신을 외우기 시작했다네 말 안 듣는 아이들에게 불같이 화내는 당신 성격도 외우고 품을 줄이지 못하는 내 욕심도 외우고 앞차를 추월할 때 긴장하는 당신 표정도 외우고 ‘저 사람은 원래 저렇게 사는 사람이야’ 주변 사람들과 회사 동료들이 당신에게 자주 하는 말도 외우고 당신이 그들에게 했던 말도 외운다네 자꾸 외우다 보니 정월 찬바람에 된신음하는 어미의 몸사정도 외워지고 잎이 먼저 피고 꽃이 뒤를 따르는 후박나무의 넓이도 외워지고 겨우내 언 땅에서 씨눈을 갈무리하는 새싹의 몸부림도 외워지고 중심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절망도 저절로 외워진다네 구구단 외우듯 어려운 문법 외우듯 달달 외우다 보니 이젠 이해 못할 일도 없다네 이데올로기 아침 신문을 보면 학연,지연,내편.니편 변절자,배신자,빨갱이,수구꼴통 주류,비주류만 있고 서민은 없다 진짜 서민은 언제쯤 제대로 대접 받나 달이 지고 해가 뜨면 내일은 오늘이 된다 죄지은 자 떳떳하고 죄짓지 않는 자 두부처럼 단숨에 으깨진다 없는 것이 너무 많은 하늘 어디에도 구원은 없다 거머쥘 가방 끈 하나 없는 자유 없는 것이 차라리 구원이고 이데올로기다 현대 약국 명품 브랜드로 차이의 소비를 과시하는 초등 학생 의사 아들에 걸 맞는 며느리를 보려고 다도를 배우고 난을 치는 103호 어머니 친구가 고급 아파트를 분양 받았다고 자랑합니다 보기엔 멀쩡한 사람들이 현대 약국에 약을 사러 갑니다 그들의 병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모르는 것에 있습니다 온 몸이 축축 늘어지고 잠이 쏟아지고 남이 잘되는걸 볼라치면 자꾸 불안합니다 동네에서 내 노라 하는 사람들만 드나드는 현대 약국 입구만 들어서도 그들의 얼굴이 한껏 산다지요 약국 안에는 여럿 사람 앞에서 떵떵거리며 먹는 약 끝없이 배를 채워도 언제나 날씬해서 뒷모습까지 감탄사가 나오는 약 자신을 조각 내 팔지 않아도 절 때 밀리지 않는 강력한 약을 우리 나라 유명 대학을 나온 약사가 따로 지어줍니다 턱턱 숨막히는 세끼 밥이 내려가지 않는 날 나는 그들만 먹는 흥청망청 소화제를 사러 현대 약국에 갑니다 숨은꽃 착한 여인은 숨겨진 보물이다 그런 여인을 발견한 사람은 자랑하지 않는게 좋을 것이다 -라로시푸코 오늘은 하루 종일 적막한 빗소리를 듣다가 이내 쓸쓸해져서 술을 마셨다 한때 지나가는 비야 우산으로 가리겠지만 오래 젖을 것 같은 마음은 한번 피면 영원히 지지 않는 소금꽃 같은지라 갸륵한 시간이 그저 그리울 따름이다 청컨데 그대여 내일의 태양은 오늘의 태양이 아니기에 뜨거운 여름 당신을 향해 부르는 노래는 파도처럼 왔다가 되돌아가고 무턱대고 생을 살아가는 동안 구비구비 저릿한 시간속에 놓여있을 천혜의 비경들은 잔혹하리만치 아름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