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관

 

남효선

 

 

아흔살 화전농꾼의 신산한 삶

 

스무 몇 해 전에 문단이라는 곳에 처음 얼굴을 내밀고 난 그 해 구월에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 ‘작은빛내마을’에서 여든이 넘은 화전농꾼 어른을 만난 적이 있다.

울진지방 민속조사 조사 차 들렀던 참이었다.

처음 발을 들여놓은 소광리 ‘작은 빛내마을’은 하늘을 온통 덮고 있는, 울울창창 송림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하늘을 받치듯 곧게 뻗어 온통 솔숲을 이루고 있던 소나무가 최근 ‘금강소나무’로 각광받고 있는 ‘황장목’이었다.

황장목은 조선조 정부가 황장봉계를 지정하고 엄격하게 관리하던 국가관리 소나무 숲이다.

 

솔향만 가득한 첩첩산중에서 평생 화전을 일구며 벙어리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화전뙈기 어른을 만났다.

어른은 안태 고향이 영월 ‘꼬치바우’라 했다. 겨우 제 어머니 얼굴을 기억할 무렵에 소광리 ‘작은 빛내’로 양친을 따라 들어왔다고 했다.

여기서 평생 화전을 일구며 같은 마을 화전농꾼 달과 결혼해 삼남매를 낳아 두 딸은 대광리 ‘큰 빛내’마을로 시집보내고 하나 뿐인 벙어리 아들하고 살고 있다 했다.

팔십 평생을 화전농꾼으로 살아 온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어른의 눈빛이 황장목 솔숲을 흐르는 작은빛내 무구한 맑은 빛처럼 잔잔했다.

그 기억을 스무 해가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팔순 화전농꾼이 들려주시는 신산한 삶은 작은빛내 속살을 퍼올려 울리는 천상의 소리였다.

화전농꾼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이야기에 묻어 나오는 소리와 향내로 머리가 빙 돌며 아득해졌다.

아득함은 이내 작은빛내 마을을 평생 가꾸고 지켜온 화전농꾼들의 땀 냄새로 가슴 가득 밀려왔다.

태어난 곳에서도 마저 뿌리내리지 못한 채 산으로 쫒긴 화전농꾼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 땅의 또 다른 핍박과 수탈이었다.

이들 화전농꾼들이 평생 산을 가꾸고 평생 산을 지켜 온 ‘산의 질서’이자 ‘산의 경관’이었다.

 

스무 해가 훌쩍 지난 어는 여름 날, 소광리 작은빛내 마을을 찾았다. 스무 해 전 화전농꾼의 안부를 물었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문득 한줄기 바람이 황장목 솔숲을 흔들며 지나갔다.

평생을 함께 해 온 할미가 세상을 버릴 때처럼 초겨울 산바람이 금강솔숲을 흔들던 날처럼 솔바람이 일던 날 세상을 뒤로 했다는 ‘화전 농꾼 칠구 영감’이 일구는 바람소리였다.

화전농꾼 칠구영감의 평생은 ‘생의 마감’이 아니라 ‘산이 물려준 질서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 ‘또 하나의 산의 경관’이었다.

작은빛내를 한참 걸어 솔숲을 벗어나는 내내 칠구 영감의 바람이 내 가슴을 쓸었다.

 

 

남효선

경북 울진서 태어나다. 1989년 「문학사상」시 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가다. 동국대학교와 안동대학교 대학원 민속학과에서 국문학과 민속학을 공부하다. 시집으로 「둘게삼」과 사화집으로 「길 위에서 길을 묻다」「눈에도 무게가 있다」등 다수를 펴냈다. 「도리깨질 끝나면 점심은 없다」「남자는 그물치고 여자는 모를 심고」등의 민속지를 펴냈다. 안동 참꽃문학회와, 울진문학회, 한국작가회의, 경북작가회의에서 활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