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지독히 이기적인

 

“엄마, 나 어릴 때 혹시 시인이 될 조짐 같은 거 없었수?”

 

오랜 만에 모녀는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별반 특이사항이라곤 없다. 유리병이 귀하던 시절 참기름을 마당에 다 쏟아 버리고는 그 병에 꽃을 꼽아 놓고 예쁘지 예쁘지 하다가 혼줄이 났다는 얘기가 그나마 감성 쪽으로 근접한 것인데 그게 어디 조짐이라고 명함을 내밀 수 있는가. 말도 느리고 동작도 느리고 게다가 하는 짓도 야물지 못해 ‘털팔이’라 불렸다니 타고 난 시인은 일단 아니다. 그렇다고 후천적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문예반 활동 한 번 한 적 없고 독서는 싫어하지는 않았으나 그다지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복잡한 가족사나 지독한 가난 속에서 움튼 절실한 체험 또한 없었으니 그야말로 상황은 문학과 가까이 있기엔 너무 빈약했다.

 

학창 시절, 나는 문학일랑 저 멀리 던져두고 참 잘 놀았다. 명동으로 종로로 저녁마다 디스코텍에 출근부를 찍었다. 도끼빗으로 당시 유행하던 짱구퍼머를 최대한 부풀리고는 최루탄 가스에 눈물 콧물 다 흘려가며 미팅을 했다. 학교 근처 영화진흥공사에서 초대권을 발행했는데 시사회 때마다 수업을 빼먹고 얼굴이 조막만한 배우들을 구경하는 재미 또한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오만 똥멋 만을 쫒는데 청춘을 고스란히 받치던 시절이었다.

 

전기 대학에 떨어지고 후기대학에도 떨어진 주제에 시집까지 가겠다고 우기던 나를 엄마는 문창과에 쑤셔 넣었다. 덕분에 몇 개의 상장과 추천서로 특별전형 입학을 했지만 내가 탄 상장들은 실력이 아니라 순전히 운 덕이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당시엔 나이가 많은 언니 오빠들이 많았다. 정규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입학한 경우도, 직장을 다니면서 공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문예창작과를 간절히 원하고 스스로 선택한 그들은 진지했다.

 

나는 딱 한 번 백령도로 가는 애인을 배웅하며 쓴 시를 칭찬 받은 기억이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잠시 솔깃해서 춤을 춰대고도 싶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글을 쓰며 살 종자가 못되는 것 같았다. 학기마다 발간하는 작품집에 의무적으로 시와 단편소설을 실었을 뿐, 신춘문예 응모나 등단에 대한 열정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모르겠다. 시가 환상적인 미래를 보장하는 기미를 보여줬다면 악을 쓰고 달려들었을지도.

 

학교를 떠난 지 꼭 13년 만에 시와 마주했다. 서점에서 시집을 들추거나 신춘문예 당선 작품집을 사들고 오는 일, 두어 문예지를 정기 구독하는 일은 습관처럼 진행되고 있었으나 그것은 철저한 독자의 입장이었다. 새해 첫 신문을 펴고 낯익은 이름이 있나 없나 들여다보았는데 그 다음에 따라와야 할 부럽고, 속상하고, 배 아픈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끊어도 아주 제대로 끊었던 것 같았다.

 

포항에 정착하면서 만난 푸른시 동인은 내 첫 글동무들이었다. 축산에 내려와 사시던 김명수 시인의 집을 찾아가 ‘푸른시’란 이름을 짓고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각자 두 편의 작품을 들고 와 토론했다. 몇 번의 동인 모임을 갖고 돌아오며 내 시쓰기가 시작조차 없었다는 것을 비로소 인정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만났다. 오랜만에 마주한 그 앞에서 괜히 미안하고 고맙고 감사한 그런 이상한 기분을 느꼈던 것은 왜일까.

 

어느 잠 못 드는 날 새벽녘 내린 결정이 구룡포 행이었다. 조금 빠른 행보로 정확하게 이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내륙에서 자란 내게 포항은 바다를 자랑했다. 특히 구룡포란 포구는 시집 한 권이 충분히 나오고도 남을 곳이었다. 가서 살면 분명 얻을 것이라 믿었다.

 

아침 식탁에서 낭군에게 통보를 했을 때 대답이 놀라웠다. “좋아, 당신이 나를 13년 동안 도왔으니 앞으로 딱 13년은 내가 당신을 돕지.” 결혼 후 군인이라는 직업 때문에 2년 주기로 이사를 다녔던 고달픈 세월을 셈하였거나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뱉은 말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 말은 내 생에 다시없을 귀한 선물이 되었다. 당장 매매 광고를 아파트 게시판에 떠억 붙였다. 다음 날, 다닥다닥 붙은 광고들을 제치고 내 집을 찾아 온 부부와 바로 계약서를 썼다. 낭군은 구룡포로 근무지 발령 신청서를 냈고 중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는 보름 만에 전학을 했다. 내 생에 가장 추진력 있던 시절이었다.

 

구룡포에 들어와 본격적인 시쓰기를 했다. 돌아보면 그 무렵이 참 재미있었다. 아침마다 트롤 판장으로 활어 판장으로 나갔다. 처음엔 내가 바라 본 풍경을 썼다. 시간이 흐르자 눈인사를 건네는 이웃이 생겼다. 그들은 내가 관광객이 아니라 마을 사람이라는데 후한 점수를 주었다. 말걸기가 시작되고 난 뒤에는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썼다. 구룡포 연작시를 쓰면서 운 좋게도 여러 지면의 청탁을 받게 되었다. 물론 내 시에 대한 가치보다는 구룡포라는 포구가 주는 호기심과 골짜기를 죽어라 물어뜯고 사는 삶의 방식에 대한 격려의 의미가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시로 인해 좋은 독자도 얻었으며 오래전 함께 공부했던 동기와도 연락이 닿았다. 선배도 생겼고 후배도 생겼다. 구룡포는 떠돌이처럼 외롭게 살았던 내 가족에게도 많은 것을 선물했다. 이웃이 되어주고 먹을 것을 나눠 주었다.

 

시집 한 권을 묶으면 당연히 나갈 줄 알았다. 그러나 7년 만에 ‘구룡포로 간다’는 제목을 걸고 시집을 얻었지만 나갈 수 없었다. 말씨도 사는 방식도 다른 사람들이 주던 생경함이 무뎌질 무렵, 놀랍게도 익숙함의 매력이 생겨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속내를 안다는 것, 상황을 공유한다는 것, 함께 사는 것은 서로의 본질이 닮아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바다가 단 한 순간도 같은 모습이 아니듯 좁은 포구에 붙박이처럼 사는 우리들의 삶도 결코 제자리가 아니었다. 그들과 내 안에는 상승이나 하강의 개념이 아닌 스멀거리는 변화가 늘상 있었다. 나도 모르게 이곳에 정말 제대로 스며들고 말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시인이라는 걸 알면 주변의 지인 중 얼른 시인을 찾아내 들이민다. 아무개 아세요? 등단은 어디로 했어요? 막막하다. 많은 시인을 알지도 못하고 신춘문예나 신인문학상 공모에 응모한 적 역시 한 번도 없다. 내 시는 모두에게 본보기가 될 만한 문장술이나 독특한 발상을 지니지 못했다는 것을 미리 인정한 탓이다. 아닌 게 분명한 것에 부딪칠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약력을 쓸 때는 ‘1998년 포항문학으로 작품 활동’ 이라고 기분 좋게 쓴다. 좀 더 알아주는 문예지를 쓰지 그러냐는 의견도 있지만 그럴 마음은 전혀 없다. 그나저나 이제는 ‘포항문학’의 제호가 ‘문학만’으로 바뀌었으니 이럴 땐 어찌해야 하나 고민 좀 해야겠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가끔 구룡포를 알리기 위해 글을 써주어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다행히 양심은 남아 있는지 진심으로 펄쩍 뛴다. 솔직히 나의 모든 글쓰기는 처음부터 오로지 나를 위한 작업이었음을 고백한다. 글을 쓰는 일이 홀로도 즐거운 법을 가르쳐 주었고, 여행을 떠나게 했고, 외롭게 했고, 아프게 했다. 구룡포는 내가 사는 마을이고 내가 쓰는 글 속 무대일 뿐이다. 그러니까 내가 오히려 인세나 원고료의 10%는 내놔야 한다. 혹여 글쟁이가 하나 끼어 사는 것이 마을 사람들에게 가져다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 또한 나에게 얹어지는 즐거움의 하나일 뿐.

 

주문한 분량을 채우느라 장황히 풀어 놓은 이야기가 난전의 좌판 같다. 요즘말로 “그냥 쪼대로 살고 쪼대로 써요.”하면 될 것을 부족한 만큼 덧칠을 해댄 꼴이다. 구룡포가 싫어지면 나는 미련 없이 보따리를 쌀 것이다. 가서 살고 싶은 곳이 너무나 많다. 나의 시도 분명 나를 닮았을 테니 그 또한 내가 싫어지면 떠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지겹도록 보았던 포구 한 귀퉁이가 볼 때마다 다른 문장으로 일어서는 여기 구룡포, 내가 생을 풀고 사는 이곳이 모든 세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 잦아지는 걸 보니 당분간은 보따리를 싸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나도, 나의 시도. / 권선희

 

*약력 및 기타

-1998년 포항문학으로 작품활동

-저서: 시집<구룡포로 간다(도서출판 애지 2007)>

항해기<우리는 한배를 탔다(해양문화재단 2009)>

도보여행기<바다를 걷다, 해안누리길(도서출판 생각의 나무 2010)>

공동 르포집 <예술밥 먹는 사람들 (도서출판 눈빛 2008)>

2인 공저 다큐<구룡포에 살았다(도서출판 아르코 2009)>

경북 해양 문화 속 인,생,길< 뒤안 (도서출판 아르코 2012)> 외

-한국작가회의 경북지회 사무국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