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사내는 자고로 화끈해야 한다고

말끝마다 노래하던 사내,

훌라판 뒷구녕에서 개평 챙겨

가끔은 쫄깃한 슬픔도 시켜 먹었다

삶은 온통 계약 만기였으나

수천 번 구르다 보면 분명코 땡 잡을 날 온다고

배짱 하나 꼬불치고 뻥치고 등치며

머릿기름 확실하게 발라 넘겼다.

흰운동화 만큼은 눈부시게 빨아 신었다

긁으면 긁을수록 부풀어 오르는

가려운 저녁일수록

잃고 따는 법칙을 좆나게 읽었다

 

사내는 자고로 화끈해야 한다고

말끝마다 노래하던 사내,

시원하게 그었다

생의 카드깡

 

활활 붉은 손목

화끈하게 타고 있었다

 

 

 

 

편지

 

 

당신은 저기 저 녹음 속 추녀 겨우 보여주는 미소사에 잠을 풀고 나는 산하촌 여인숙에 몸을 맡겼지요 그 거리 이승과 저승처럼 닿아있어도 밤새 잡을 수 없었소이다만 아, 다행히도 혼몽 지나며 뜨거워진 영혼이 몸뚱 몰래 일어나 주더이다 나는 그 새벽 유령처럼 산으로 향하고 당신은 내려오고 그러다 샛푸른 솔향기 아래 우뚝 멈추었을 때,

 

그렇소 사실은 당연한 거였소 당신과 내가 아무리 몸을 꽁꽁 동여매고 따로 누워도 영혼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 겨우 잠든 사이를 절대 놓치지 않았을 것이오 그리하여 결국은 지름길 가로질러 서로 반씩 달려가 민숭달팽이처럼 끈끈한 새벽을 누리고야 말 것이었소 몸튼 소나무 한 그루 아래를 스님 혹여 지나신다 해도 그 새벽이 멈추지는 않을 것이고 오히려 더욱 정갈한 템포로 익을 것이라 확신하오

 

그래봤자 꿈일 뿐이라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고 당신은 우길지 모르나 천만에, 나는 아오 이 편지만으로도 당신에게 미소사微笑寺는 더 이상 절이 아니라 새벽임을, 흐흐

 

 

 

 방생일화

 

 

향일암에서 내려와 온양서 오신 보살님들과 셔틀버스 탔지요

정월대보름 방생법회 왔다시는데요 미꾸라지 풀고 돌아가는 길이라데요

동백나무에서 톡톡 달아나고 피어나는 꽃 보며 그러시구나 끄덕이다

가만있자 바다에 미꾸라지라, 괜찮겠냐고 물었지요

 

괜찮을겨유 찝찌름하니 아마도 좋아할겨유

 

방생放生인지 방사放死인지 공양供養인지

뻣뻣하게 죽은 미꾸라지와 훨훨 헤엄치는 파도 사이가

암만 생각해도 갸우뚱한데요

보살님 한 분 두 분 졸기 시작할 무렵, 글쎄

아홰나무 너머 고단한 남해는 왜 그리 푸르던 지요

 

 

 

숙주宿主

 

 

괄약근을 푼 똥꼬는 새집 같았다.

 

나는 비닐장갑을 낀 둘째손가락으로 살살 똥을 주웠다.

 

오목한 새집에서 알이 굴러 나왔다.

 

손바닥에 안기는 까만 어머니는 작고 귀여웠다.

 

낡아 허물어질 때마다 보수 기회를 놓친 몸에서

 

똥은 칠십구 년이나 잘 살다 완전히 떠났다.

 

 

 

 친절한 독촉

 

아, 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주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에 오늘은 아파뜨 관리비 마감 날입니다. 여러분들이 막바로 농협에 가가 내야 하지마는 바쁘신 양반들은 뭐시 오늘 오전 중으로 여기 관리실에다 갖다 주므는 지가 대신 내 줄라카이 일로다 갖다 주시믄 고맙겠니더. 그라고 여지껏 멫 달이고 밀리가 돈이 늘어난 분들으는 다맨 을매라도 우선 갚아 주시믄 좋겠니더. 통째로 낼라꼬 미라두믄 마 자꾸 늘아가 낸중에는 감당 몬하고 그기 마캐 다 빚이 되는 기라요. 그라이까네 다맨 을매라도 쪼매씩이라도 갖다 내이소. 그라믄 내가 퍼뜩 농협에 가가 대신 내 줄끼요. 에, 에, 한성아파뜨 주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알리니데이. 내가 오후에는 바빠가 여 없으이 오전 중으로 꼭 좀 갖다 주시믄 고맙겠니더. 마캐 알아 들었능교?

 

 

 

 

부적符籍

 

 

아내는 지난여름 떼로 몰려 온 우환을 겨우 치르고

삼재가 들었다는 말 한 마디에 뱀띠 부적 하나 똘똘

말아 끼운 단풍나무 목걸이 걸고 다니다 그만 잃어

버렸는데요 다시 재앙의 복판에 선 듯 불안을 안고

살다 아무래도 안되겠다며 떠난 밀양 어딘가에 있다는

그 절, 나 참, 대단한 큰스님이 써준 것도 아니고

십이지신마다 수십 개 수백 개씩 복제되어 걸린

불교용품점에 그걸 구하러 간 것이 한심하다가 문득,

‘깊고 간절한 마음은 닿지 못하는 곳이 없다네’

벽에 붙은 한 구절에서 그만 붉어지는데요

 

눈발 뚫고 가는 그 길이 바로 부적입디다요

 

 

 

 11월의 저녁식사

 

뱃공장 언덕 조광상회 검둥이 눈매 깊은 국

꾸무리한 먼 산 지느러미 조림

덕장 시누대 비늘 볶음

수평선 총총 오징어배 집어등 무침

제일 먼저 불 켠 제일교회 첨탑 위 벌건 십자가 구이

 

그러고도 빌어먹을, 그리움 한 잔

 

 

 

수장水葬

 

모로 누운 등 뒤에서

나를 껴안는 낯선 바다

밀고 드는 물기둥 속에서

쿨렁쿨렁

간지러운 치어 떼와

수초들이 풀려나왔다

숨죽인 귀로

눈송이처럼 터져 심해로 간 사람들과

산란을 향하는 뱀장어의 긴 유영과

검은 해류를 지나는 푸른바다거북의 안부가

흘러들었다

금빛복숭아를 들고 돌아오는 저녁처럼

비로소 붉어진 나는

눈 감은 채 젖을 무는 바다

이마를 쓰다듬었다

 

 

 

 꼬리

 

 

떠나란다고 훌쩍 떠난 당신

족히 백 리는 더 갔을 터인데

쇳줄 끌고 빙빙 도는 검둥이

나는 뱃공장 언덕 조광상회 검둥이만 쓰다듬다가

사정없이 흔들리는 꼬리

읽고 만다

 

감추지 않는 속내다

버려두어 살아남은

정직한 반응이다

 

미안하다 핥지마라

속내 읽지 못하고 떠난

이별 탓이 아니다

증오조차 달콤하게 굴리는 흉측한 고깃덩어리

혀만을 갈고 닦은 탓이다

정작 사랑 앞에서

힘차게 흔들려야 할 꼬리

잃은 것조차 잊어버린 내 탓이다

 

배들이 내항 돌아 나가는 저녁

북실한 반응 차오르는

꼬리뼈가 울고 있다

 

 

 

 

 

 

물장화 고무장갑 냅다 던지고

고무줄바지 낡은 버선 돌돌 말아 처박고

꽃내 분내 관광 간다

굼실굼실 떡도 찌고

돼지머리 꾹꾹 눌러

정호반점 앞에서 버스 한 대

씨바씨바 출발이다

소주도 서너 박스 맥주도 서너 박스

행님아 아우야 고부라지며

구룡포에서 하동까지

자빠질 듯 자빠질 듯

흔들며 흔들리며

간다. 매화야 피든 동 말든 동

간다. 빗줄기야 치든 동 개든 동

쭉쭉 뻗은 길 따라

죽은 영감 같은 강 따라

술 마시고 막춤 추며

씨바씨바 봄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