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과 오른쪽에 대하여

                                          

개미가 모서리를 오르내린다 왼쪽과 오른쪽에 관하여 내가 알 길 없는 소통으로 나아간다 바람을 거슬러야 멀리 날 수 있는 새떼는 교행하는 법이 없다 한때 제 몸속에 갇힌 십자매의 불알에 대하여 궁리해 본 적이 있다 새도 개미도 제 몸속에 초록 신호등을 품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많은 별들을 머리에 이거나 사막을 보듬어 제 몸을 통행한다 수캐가 내달릴 때는 온몸 따라 그것도 왼쪽으로 기뚱댄다 나는 한 번도 나무란 적 없다 목욕탕으로 드는 아들의 그것은 오른쪽이다 나도 그러하듯이 왼쪽으로 기우는 내 걸음은 노동의 무게 때문인 줄 안다 아니, 심장의 중량 때문이다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을 반복하는 내 오른쪽이 저리다 이제, 내 몸을 갓길로 댄다

 

 

 

사이에

사구에 갇힌 부레없는 넙치를 보다가 우주의 호기심은 왼쪽이라는 생각 하나와,동굴호수에 갇힌 망둥어를 보다가 우주의 암전 속에서 살아남는 생각은 오른쪽일거라는 생각 둘,사이에,내가 지구에 처음 왔을 때는 물 속을 유영하다가 대기권으로 던저졌다는 것 하나와, 개미나 새떼들의 교신법이 퇴화된 직립보행의 존재라는 둘,사이에,호기심과 호기심은 서로 투명망또를 두른 채 왼과 오른 사이에,내 생이 민물에 갇힌 넙치와 동굴에 갇힌 망둥어사이에,그 사이 사이를 질주하는 사이에나는 자꾸만 왼과 오른 사이에 던저진 실종들을 이야기하려 하지만,왼의 끝마디와 오른의 끝마디가 띠로 연결되는지 매듭으로 이어지는지 광년의 거리인지 모르겠다그 사이 사이에 웅크리고 있는 사이에눈을 잃은 망둥어라는 생각과폭풍과 해일 속으로 되돌아갈 짠물을 두려워하는 넙치라는 생각사이에

 

 

 

나는 구절리에 사는 소를 찾으러 간다

 

 

시 한 개를 얻기 위해서는 반백년쯤 외로운, 그런 사내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

 

곰곰 곱아보고 펴보니 나는 바래고 성긴 헝겊쪼가리이고사내는 원색의 촘촘한 직립

 

외줄로 오르는 벼랑에도 땅을 헤집는 삽날에도 꿋꿋하기만 한, 그런

 

선한 숨들이 멈춘 소한(小寒)날 사내의 전화를 받았다 직지사로 가잔다 내 귀에는 죽자사로들려

 

왜란, 호란, 동란, 4·3 그리고 5·18 때는 선한 사람들이 먼저 죽었고이번 겨울에는 착한 짐승들이죽고

 

시, 한 채 품기 위해

 

사내가 숨겨놓았을,구절리간다

 

 

 

세 무덤

      

작년 겨울에는무덤 셋이 나란히 있는산역山域을 지나면아내 둘 사이좋게 거느린어진 남자가 가운데 있었다

 

올 겨울은 잦은 폭설에조금 심약해졌는지 집나간 아들이 아비와 어미의 곁으로 왔다

 

하얀 고봉밥 차린 저녁사연들이 튀밥으로 솟았고온 하늘과 산들이 왁자했다

 

밤 깊어 눈이 벅차도록 더 와젖가슴이 더 불어 오르기도 하였고가슴끼리 더 가까이 붙기도 하였다

 

눈먼 고요의 젖물림 환영(幻影)으로부터어진 아낙이 깊은 눈을 풀어 헤치며성큼 걸어 나왔다

 

 

 

수음을 사주(使嗾)하다

 

들켰다 아니 정직하자면 태생적 관음을 토로해야겠지만 주워들었던 사주四柱가 그러하지 못하다 할 일 없다라지만 그것도 아니다 당장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수음밖에 없다라고 하기에는 상상력의 수액만을 탓할 일도 아니다

 

사주단자四柱單子 신부집에 보낼 적 좋은 날과 밤을 누려보자 했다지만꾸려온 사주가 그러하지 못했다

 

잉그리드 버그만을 흑백화면에서 불러내어4D 화면으로 끌어들여온 험프리 보가트가 되기로 한다그녀의 두 다리와 내 두 다리가 사주四柱가 되다가도그녀는 사라지고 남근을 담은 손끝에서 사주射注로 눈을 뜬다

 

수음이라는 것도어쩌다 주워온 사주가 아니라생명의 기원이 자웅동체의 사주임을 알아차리고선아주, 또는 제법 근엄하게나의 원시를 구체적으로 관음한 날, 있었다

 

 

 

광배 뒤로 숨었다

 

 

설악이 해를 감춘다

광배가 부처 뒤로 숨는다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해 아래서 숨바꼭질 중이다

 

술래 된 눈으로 감아보면

너의 숨과 냄새를 좇는다는 것

너의 이름을 묵송하는 것

 

너를 잃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조차

숨을 곳 없어

내일이면 잊을,

다 버렸다는 거짓말까지

광배 뒤로 숨겼다

 

 

 

한 여름, 까마귀 되어

 

 

까마귀떼 빙글빙글 노는 한 여름이었는데

꾸벅꾸벅 땅만 보는 비석치기가 되기도하고

허둥허둥 직진만 하는 날이기도 했는데

 

뭉개뭉개 구름도 뭉게버린 여름하늘에

까마귀들 왼쪽으로만 맴맴맴맴, 또 맴맴

시침, 분침, 초침 할것 없이 어지럽기만 해

 

기웃기웃 왼쪽 날개 누르며 끼리끼리 오른쪽 놀이

눈 감고 솟구처 같이 붕붕붕붕 어라, 아니네

까마귀들 오른쪽으로 욍욍 왼 어깨 들썩이네

 

 

 

그냥 승부라 이름 짓고

 

승부에 닿으면 내 흘려보낸 봄빛들도 여한 없겠네

모르고도 닿았음직한 셀 수 없는 욕망들까지

가을빛에 닿아서야 빈 서랍 속으로 드네

 

승부에 닿으면 아무도 없어 좋겠네

봄 오지 못할, 한겨울 묻혀도 좋겠네

차라리 외길, 닫힌 길, 눈 속에라도 갇히어

이러저러지도 오도가지도 않아 좋겠네

그냥, 콱, 눈을 감고 뜨지 않아도 좋겠네

 

승부에 닿으면, 손수건 흠뻑 적셔도 좋겠네

세상은 울음들의 무덤이어서

세상은 비리고도 얼음에 채워진 어물전이어서

세상은 집과 여자를 탐하고 사냥에 나서는, 승냥이떼 캥캥대는 왕국이어서

차라리 빈 하늘, 땅, 승부라 이름 짓고 그곳에 살겠네

 

자식 떠나고 마누라 없어도 좋겠네

그냥, 승부라 불러보고 살아도 좋겠네

담배포도 없고, 막걸리집도 없고,

예배당도 없고 절집 없어도 좋겠네

 

내 맘, 오로지 승부에 닿기만 해도 좋겠네

그리운 것들은 애당초 변덕스럽고도 거추장스러워

잡지 못하거나 닿지도 못한 사랑조차 용서되는 곳,

아무도 닿지 않아 내 마음 쇠심줄로 이미 닿아있는 곳

 

나 하나 둘러업고 나서기만 한다면,

나 하나 부려놓을 한 뼘의 승부가 있기라도 한다면,

 

 

 

하조대

 

 

1.

도시락을 먹을까하다 삼각 김밥을 먹었다

하늘과 물과 바람을

등대계단의 빈틈, 삼각에 담아본다

지상의 반쯤은 이미 그늘이다

진주빛 백색 프레임이 제격이다

바람과 햇살은 가둘 수 없어 불안하다

행성의 푸른 한 토막을

빈삼각 바늘귀에 데려와 다시 들여다본다

좋은 것은 반 만 보아야겠다

좋은 것도 반 눈으로만 보아야겠다

그러면 반 부처는 되겠다

 

2.

사각에서 삼각으로 바뀐 내 팬티가

왼 무릎과 오른 무릎에 걸쳐있다

반 만 보고 일어서다가

누린빛 토막을 애써 들여다본다

산다는 건

그늘들을 담아보거나 그늘로 들어가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삼각 김밥도

한 나절 내 몸을 지나면 둥글거나 길죽해진다

만화경 속, 끝 모를 프레임 놀이다

하씨와 조씨가 있던 곳에 강씨가 참견하는

빈 삼각을 그려 놓고는

그 그늘에 두 다리를 걸쳐본다

내 속에 오줌보가 참견한다.

삼각 파도가 또 달려든다.

 

 

 

나, 그런 숲에 살고 싶네  - 김사인 풍으로    나, 작은 숲을 보네. 할 일 없이 해거름 게으름으로 높은 산을 넘는 해를 보네. 내가 가진 두 개의 눈으로 내일도 동녘 너울 위로 움실거릴 해를 기다리거나, 오늘 밤처럼 그믐달 눈 감기며 새 한 마리 보듬고 싶네. 숲은 고요해, 오른 쪽 물결에 내 맘 주어버린다 해도 숲의 거미들이 어느새 발등 톡톡거리네. 나, 하릴없이 터벅대던 발바닥이, 봄의 고운 순들의 말을 듣고있네. 어쩌나, 벼랑 같던 외길이 토끼풀이며, 괭이밥이 나풀대는 길목에 머무네. 이쯤해서, 아랫목 뜨실 방 한 칸 만들어, 되돌이 봄으로 되살아볼까. 터무니는 어디서 왔는지 몰라. 잿물에 젖은 화롯불이 성큼 되살아나는 것은 무슨 기묘한 마법인가.나 빙벽을 흐르는 바람에 대들지 않고 살아볼까나, 홍길동처럼 도적질도 하며, 숲을 가르거나, 숲의 여왕도 훔쳐, 율도국으로 갈꺼나. 세상은 늪이고, 수렁이어도 고요한 호숫가 쪽배에 외낙 바늘로 아궁이 곁불에 얹힐 고기도 낚으리.  보쌈 풀어 내려놓은 처자, 구석진 벽에 붙어 여러 낮밤 울어대리.  이따금 마른번개 숲을 빗기며 그렁대리. 하늘 북채 쾅쾅대는 밤이면, 쾌쾌하거나 북슬대는 덥석부리 품으로 안기리. 서너 해 지나 사슴 같고 방울초롱꽃 같은 아이들도 곁방에서 고슬대리. 이 즈음해서 베껴온 동화책처럼 울긋불긋 숲과 호수가 한 낮처럼 환해지리. 늘그막,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도 이제는 도망 못가, 노을에 늙다가 한 숨 내어 쉬리. 가끔은 마른 몸에 불 지피거나, 재떨이 깡깡대며 맞담배도 하리.  나, 옛날 옛적 그런 숲에 살고싶네.